마음속 응어리를 풀다
중국 춘위 작년 봄에 저는 복음 전하는 본분을 했고 왕 자매가 복음 집사로 뽑혀서 저희는 자주 본분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왕 자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한테 무슨 문제가 보이면 바로 말했고 말투도 좀 강했어요....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교회에서 리더 일꾼을 맡았다가 나중에는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두 본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둘 다 자질 있는 사람들이 맡는 본분이라 언제 이야기해도 멋지고 떳떳해서 남들에게 부러움을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2016년 말, 하나님 집 문서팀에 발탁되어 본분을 이행하게 되면서부터는 더더욱 제가 자질도 좋고 글재주가 있어서 문서 본분에 적합하다고 자부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8월, 저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고 본분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 교체되었습니다. 마침 몇몇 문서 사역자들이 마땅한 섬김 가정이 없던 터라, 리더는 제게 그들을 섬기면서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그 본분을 안배해 주었습니다. 저는 섬김 본분을 맡으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섬김 본분은 힘쓰는 일이라 자질이 부족하고 별다른 특기가 없는 사람들이나 맡는 본분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나는 몇 년 동안 문서 본분을 이행하던, 자질과 특기가 있는 사람인데, 본분이 조정된다 한들 섬김 본분을 맡기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런데 리더가 정말로 섬김 본분을 안배해 주다니!’ 그 당시 저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동안 문서 본분 이행에 성과가 없어 사역을 지체시켰던 것을 반성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제게 책임을 묻지 않고 섬김 본분을 맡겨 준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리저리 따지는 건 이성이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단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보름 동안은 매일 제시간에 식사를 준비하고 방을 깨끗이 청소한 뒤, 영 생활을 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들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본분을 이행하는데 온종일 주방용품과 씨름하고 앞치마, 대걸레, 쓰레기통과 함께하는 제 처지를 보니 점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섬김 본분은 육체노동이야. 요리만 할 줄 알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특별한 자질이나 특기도 필요 없지. 하지만 문서 본분은 정신노동이니, 힘만 쓰는 섬김 본분과는 급 자체가 확연히 다르잖아!’ 이런 생각이 들수록 저는 섬김 본분에 대한 반발심이 커져만 갔습니다.
한번은 천(陳) 자매가 쓰레기를 버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치 하녀가 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고, 섬김 본분을 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가끔 자매들이 같이 예배드리자고 할 때도 저는 섬김 본분을 하고 있으니 자매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에 예배 교제 시간에 제 내적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해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문서 본분을 이행하던 지난 몇 년간에는 어딜 가나 형제자매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섬김 본분을 하는 지금은 아무도 저를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섬김 본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심지어 ‘여기서 섬김 본분을 하느니 차라리 원래 있던 교회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 어쩌면 다시 문서 본분을 맡게 돼서 형제자매들에게 인정받고 부러움을 살 수도 있잖아.’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한번은 책임자가 저희 집에 왔는데, 저와 인사만 나눈 뒤 바로 자매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문이 닫히는 순간, 저는 소외감을 느꼈고, 그들은 저와 급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매들은 문서 본분을 이행하기에 지위가 저보다 높아 존중받는 반면, 저는 볼품없고 힘쓰는 본분을 맡은 열등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극명한 차이가 제 가슴을 찢어 놓았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책임자는 요즘 제 내적 상태가 어떤지는 묻지도 않은 채 홀연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사역이 바빠 못 물어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서운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문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책임자가 주기적으로 제 내적 상태를 물어보고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며, 어떤 일에 대해서는 제 의견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섬김 본분이나 맡은 사람일 뿐, 아무도 제게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잘한다고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앞으로도 쭉 이렇게 지내야 한단 말이야?’ 하고 생각하니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섬김 본분과 문서 본분은 급이 다르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면서 섬김 본분에 대한 반발심이 한층 심해졌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식사 준비를 소홀히 했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제시간에 준비하고, 기분이 나쁘면 준비가 늦어졌습니다. 청소도 예전만큼 부지런히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매사에 건성으로 임하니 하루가 끝나면 무척 피곤하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주방 배수관이 하수관에서 빠져나온 줄도 몰랐고, 결국 오수가 바닥으로 흘러 아래층 집에 누수까지 일으켜 이웃이 몇 번이나 찾아왔습니다.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수색하고 신고자를 포상했기 때문에, 사람이 올 때마다 자매들은 재빨리 컴퓨터를 숨기고 사역을 중단해야 했고, 그로 인해 자매들의 본분이 지체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보내며 괴로움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밥을 짓고 있는데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주방 창틀에 앉았습니다. 온몸이 새하얀 깃털로 덮여 있던 그 비둘기는 가슴을 쫙 펴고 고개를 든 채 까만 콩 같은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니, 잠시 후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갔습니다. 제 마음속에 처량함이 밀려왔습니다. 제 삶이 한 마리 새보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하늘을 나는 작은 새를 보며 즐긴다. 비록 새들은 내 앞에서 다짐을 하지도, 말로 나에게 ‘공급’해 주지도 못하지만, 내가 준 ‘세상’으로 인해 누림을 얻는다. 하지만 사람은 이것조차 하지 못한다. 사람은 언제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설마 내가 사람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이라도 졌단 말이냐? 어째서 사람의 얼굴은 늘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34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을 두드렸고,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새는 하나님이 주신 천지를 낙원 삼아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갑니다. 그 짧은 생애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저는 똑같은 피조물인데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책임자는 저의 실제 상황과 사역의 필요성에 따라 제게 섬김 본분을 안배해 주었고 이는 저에게나 교회 사역에나 모두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거부감을 품고는 섬김 본분을 하면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고, 존중이나 인정을 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에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했으며, 사역 환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자매들의 본분에 교란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하나님을 너무나 거역했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동안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며 섬김 본분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이런 본분을 하면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느껴져 도무지 순종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본분을 이렇게 대하고 싶지 않은데 저 스스로 바로잡지 못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세요.’
묵상 시간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의 상하 귀천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부탁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깔볼 거야! 체면이 서는 일은 남들보고 하라고 하고, 티 나지 않고 뒤에서 힘을 내는 일은 나한테 시키네. 이건 불공평하잖아! 난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 난 체면도 세우고 이름도 날리는 본분을 맡아야 해. 이름을 날리거나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해도 내게 이득이 되고 몸이 편한 본분이어야 돼.”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 태도가 옳은 것이냐?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본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습이다. 그 안에는 개인적인 취향과 바람이 섞여 있다.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그것은 순종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떤 태도로 본분을 대해야 하느냐? 첫째, 분석하지 말고, 누가 안배한 것인지 따지지도 말고,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부탁이고 자신의 본분이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본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상하 귀천을 논하지 말고, 어떤 성질의 본분인지,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앞에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뒤에서 하는 일인지 등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 가지 태도는 순종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준에 맞는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니 오랫동안 어둠에 잠겨 있던 제 마음에 문득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본분을 대할 때 올바른 관점과 태도를 가지라고 요구하십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기호에 따르지 말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충성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호에 따라 본분을 대하면서, 체면이 서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발하는 것은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자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를 반성해 보니, 저는 순종하지 못하고 오로지 저의 기호에 따라 이것저것 가리기만 했습니다. 리더 일꾼을 맡거나 문서 본분을 이행하면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어 체면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해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섬김 본분을 안배 받자, 이는 힘쓰며 남 시중드는 일이라 남들보다 열등한 본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체면이 서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이나 존중을 받을 수도 없으니 제 지위가 추락하고 망신스럽다고 느껴져 도저히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매가 쓰레기를 버려 달라고 하자 저는 그 자매가 저를 부려 먹는다고 생각했고, 자매들과 함께 예배드릴 때도 제가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느껴져 참석하고 싶지 않았으며, 심지어 섬김 본분을 맡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그저 미천한 피조물일 뿐, 이렇다 할 만한 지위가 없었습니다. 책임자가 제게 섬김 본분을 안배해 주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 이성 있는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기호에 따라 이것저것 가리면서 오로지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문서 본분만을 이행하고 싶어 했고, 섬김 본분에는 반발심을 품고 무성의하게 임했습니다. 정말이지 양심이나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제가 어찌 하나님의 혐오와 증오를 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가 어둠 속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지내는 것은 모두 제가 체면과 지위를 너무 중시하여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저는 책임자가 제게 섬김 본분을 안배해 준 배경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저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저의 지위에 대한 욕심을 책망해서, 제가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여 진실하게 회개하고 변화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본분은 확실히 저에게 필요하고, 제 생명 진입에 유익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서 하나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 무렵 저는 늘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결심 때문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 의미 없는 공허한 인간 세상에서 살려고 했겠느냐?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다급히 와서 또 다급히 가는데, 만약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는다면 헛되이 한세상을 보내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봤을 때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해도 네가 죽을 때 기쁨과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겠느냐? 너는 소극적으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더 좋은 실행이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해석ㆍ제39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여 사역하시는 기간에 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중요한 것은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자신의 기호에 따라 본분을 가리지 않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수록 감격스러웠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죄송했으며, 거역했던 제 모습을 더욱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섬김 본분을 기꺼이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제시간에 식사를 준비하고 사역 환경을 잘 지켰으며, 자매들이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방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하나님과의 관계도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본성 본질을 진실하게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후 저는 또다시 그릇된 내적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저처럼 본분을 조정받아 섬김 본분을 하던 한 자매가 인터넷 기술 관련 본분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 순간 속이 부글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섬김 본분을 얼마간 하다가 다른 본분으로 조정되는데, 책임자는 왜 내 본분을 안 바꿔 주는 거지? 원래 있던 교회에 가서 문서 본분이라도 하게 해주지. 그러면 적어도 이야기 꺼낼 때 섬김 본분보다는 체면이 설 텐데. 지금은 온종일 여기서 바쁘게 힘쓰고 발품 파는 일만 하고 있잖아. 아무리 애써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이래서는 앞날도 없을 거야. 차라리 리더에게 본분을 조정해 달라고 말해 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성이 없는 행동 같았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밥을 할 때도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한번은 정신을 딴 데 팔다가 국수를 너무 많이 삶는 바람에 자매들이 세 끼를 국수만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체면이 땅에 떨어졌고, ‘밥 하나 제대로 못 하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생각에 더욱 괴롭고 소극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장을 보러 갔다가 사무 본분을 하는 샤오(蕭) 자매를 만났습니다. 자매는 땡볕에 자전거를 타고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데도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온종일 우거지상으로 도통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똑같이 교회에서 사무 본분을 하는데, 저 자매는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 어쩜 저렇게 기뻐할 수 있지? 왜 나는 늘 진실하게 순종하지 못하는 걸까?’ 그 무렵 저는 이런 문제들을 계속 곱씹어 보았고, 이 방면의 진리를 깨닫도록 인도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습니다.
묵상 시간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희의 추구에는 개인의 관념, 기대와 미래에 대한 것이 너무나 많다. 현재 이렇게 사역하는 이유는 바로 지위에 대한 너희의 마음과 사치스러운 욕망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그러한 기대와 지위, 관념은 모두 전형적인 사탄 성품을 대변한다. …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생존의 토대가 된 사상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좀먹어 사람을 간사하고 나약하며 비열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은 끈기도,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하게 변했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 흑암 권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는 더더욱 없다. 사람의 사상과 삶은 썩어 문드러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 또한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며 비열하고 연약하다. 흑암 권세에 대해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못하고, 광명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쫓아낸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적그리스도에게 지위, 권세, 명망과 같은 몇 가지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익이자 자신의 생명과 동일시하는 요소들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교체될 때, 리더의 직함이 없어지고 지위가 없어진다는 것은 곧 권세와 명망이 사라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누리던 우러름과 옹호, 앙망과 같은 특별 대우가 사라진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처럼 지위와 권세를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저 자신을 반성하고 나서야 제가 섬김 본분에 진정으로 순종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리고 ‘마음을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며 늘 체면과 지위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탄의 독소에 영향받고 물들다 보니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대학에 합격해서 번듯한 직장을 구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평생 힘든 일을 하면서 남에게 부림을 받고 무시당하면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든 일이 내키지 않았던 저는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직을 구했습니다. 박봉이어도 체면이 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이런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집의 본분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고, 체면이 서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본분만 좋아했습니다. 섬김 본분은 힘쓰는 일이라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여겨 사양하고 거절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런 사탄의 독소에 지배되어 인생관과 가치관이 비뚤어졌고, 오로지 명예와 지위만을 추구하며 제 체면과 지위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삶의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문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늘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느라 내적 상태가 줄곧 좋지 않았고,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으며, 본분에 성과가 없어 교체된 것이었습니다. 이 방면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조만간 실패하고 넘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저의 패괴를 반성해서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어떻게 섬김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문서 본분을 맡아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심을 채울 생각만 하고 섬김 본분에는 반발심을 갖고 무성의하게 대했습니다. 충성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이기적이고 비열하기 짝이 없었던 저는 정말이지 인성이나 이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집과 생업을 버리고 십수 년간 본분을 이행했는데, 단 한 번의 본분 조정으로 저의 실제 분량이 드러났고 그제야 평소에 제가 말했던 것들이 모두 글귀와 도리일 뿐, 진리 실제는 조금도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저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악착같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 교체와 조정을 아무리 겪어도 끝까지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하나님께 도태됩니다. 저 또한 그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돌아서지 않는다면 결국엔 저도 하나님께 버림받아 도태될 것입니다.
묵상 시간에 저는 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섬김 본분에 진실하게 순종하지 못하는 데에는 또 어떤 그릇된 관점이 있을까?’ 그러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 발탁되고 양성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시간이 비슷하다. 발탁되거나 양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누구도 진리를 추구할 권리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추구하고 자질도 어느 정도 있어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거라면, 이는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 집에서는 사람을 발탁하고 쓸 때 왜 이런 원칙을 적용하겠느냐? 각 부류 사람은 자질과 인품이 다르고, 각자 선택하는 길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결과 역시 달라진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된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양성하고 쓸 때는 진리를 추구하는지,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지를 보고 결정한다. 그럼 하나님 집에서 각 부류 사람에게 등급의 차이가 있겠느냐? 각 부류 사람은 신분, 계급, 지위, 직급에 있어 당분간 등급의 차이가 없다. 적어도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인도하는 기간에 각 부류 사람의 등급, 신분, 계급, 지위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그저 사역 분담과 본분 역할이 다를 뿐이다. 물론 이 기간에 어떤 사람은 특수 사역을 하도록 파격적으로 발탁되고 양성되며, 어떤 사람들은 자질 문제나 가정 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 사람들의 계급이나 신분이 다른 이보다 한 등급 낮겠느냐? 그렇지도 않다. 모든 사람은 진리 앞에 평등하다.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추구하고 얻을 기회를 가지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5)>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읽고 나서 저는 하나님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며 모두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행하는 본분이 다르다고 해서 지위나 신분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리더를 하거나 문서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서 신분이나 지위가 남들보다 높다는 의미가 아니며, 섬김 본분이나 사무 본분을 이행한다고 해서 신분이나 지위가 낮다는 의미도 아니었습니다. 각 사람이 이행하는 본분은 그 사람의 자질, 특기, 그리고 교회 사역의 필요에 따라 안배됩니다. 이행하는 본분이 다른 것은 단지 역할 분담이 다를 뿐, 지위의 높고 낮음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를 얻었는지를 중시하십니다. 이것이 핵심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제 관점이 너무나 그릇되고 터무니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집에서 리더 일꾼을 맡은 사람, 혹은 복음을 전파하거나 문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질과 특기가 있고 지위가 높으며 존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섬김 본분이나 사무 본분을 하는 사람들은 그저 힘쓰는 일이나 하는 낮은 지위의 열등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지배되어 문서 본분만 좋아했던 저는 섬김 본분을 맡게 되자 찬밥 신세가 된 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상실감이 들어 순종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일을 보지 않고, 이방인의 관점으로 하나님 집의 본분을 바라보며 본분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고 마음속으로 섬김 본분을 멸시했습니다. 정말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파의 관점입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은 우리가 본분 이행과 진리 추구를 통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기를 바라십니다. 주변의 몰락한 거짓 리더들과 적그리스도들을 생각해 보면 비록 그들은 교회에서 리더로 사역했지만, 오로지 지위만 추구하느라 진리 추구는 등한시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을 수없이 저지르고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아 결국 도태되었습니다. 반면, 사무 본분이나 섬김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 중에는 비록 지위는 높지 않지만, 교회의 안배에 순종하며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다해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 진입에 성장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개중에는 생명 체험 간증문까지 쓴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수년간 하나님을 믿었는데도 본분이 조정되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제 그릇된 관점으로 판단해 성실하게 섬김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했으며 하나님께 조금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대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결국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것을 중시해야지,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찬양을 들었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훨씬 가까워졌습니다. 평소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매들에게 마음을 열어 구했고, 그들 역시 교제를 통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자매들과의 관계도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일이 일어났을 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훈련도 중시했습니다. 제시간에 식사를 준비하고 위생에 신경 쓰며 보안 조치를 잘 취하는 등, 자매들에게 조용하고 쾌적하며 안전한 본분 이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로는 자매들이 본분을 마치고 저를 도와 청소하기도 하고, 제가 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쁠 때는 자발적으로 와서 돕기도 했습니다. 제가 관점과 마음가짐을 바로 잡고 순종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홀가분해졌습니다.
하루는 새로 선출된 문서 책임자가 저희 집에 왔는데, 다름 아닌 2년 전 저와 함께 협력했던 천(陳) 자매였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도 잠시, 제 마음속이 다시 부글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교체되었던 천 자매는 얼마간 반성하다가 문서 본분을 맡았는데, 이번에는 책임자로 선출되기까지 했네. 그런데 나는 본분이 조정된 이후로 줄곧 여기서 섬김 본분만 하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은 계속 승승장구하는데, 나는 추락하고 있으니, 정말 비교가 안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또다시 섬김 본분을 감당하기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는 그 즉시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후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큰 측면에서 보면, 너는 하나님의 경륜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고, 작은 측면에서 보면, 너는 하나님이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각종 사역의 필요에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어떤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이다. 때로는 그것이 중요한 물건 하나를 간수하거나 보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사소한 일로서 네가 맡은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것이고,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네 본분이다. … 어쨌든 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복음 확장 사역에 필요한 일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본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본분이란 크게 보면 한 사람의 사명이자 하나님이 맡긴 부탁이고, 작게 보면 네가 맡은 책임이자 의무이다. 너의 사명이자 하나님이 맡긴 부탁이고, 너의 책임이자 의무라면 본분 이행은 네 개인적인 일과 무관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기준에 맞는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저는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자 높여 주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 구원 사역을 펼치시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공정으로 리더 일꾼, 복음 전파, 섬김 등 사람의 협력이 필요한 본분이 매우 많습니다. 어느 본분이든 모두 중요하며, 본분 간에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의 구분이 없습니다. 정신노동을 하든 육체노동을 하든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비록 제가 하는 섬김 본분은 눈에 띄지 않지만, 모두가 마음 놓고 본분을 이행하게 하는 것 역시 피조물의 책임과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더 이상 섬김 본분을 거부하지 않았고, 섬김 본분을 그저 힘만 쓰는 남들보다 열등한 일로 여기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본분을 이행함과 더불어 제 내적 상태를 반성하고 진리를 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니 마음이 무척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저는 뜻밖에도 다시 문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섬김 본분을 이행하던 시절은 제 마음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저의 그릇된 추구 관점을 분별하게 해 주고, 본분에는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함이 없으니 어떤 본분이 주어지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저를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중시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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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위 작년 봄에 저는 복음 전하는 본분을 했고 왕 자매가 복음 집사로 뽑혀서 저희는 자주 본분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왕 자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한테 무슨 문제가 보이면 바로 말했고 말투도 좀 강했어요....
2024년 3월 중순, 저는 윗선 리더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예전에 저와 함께 본분을 이행했던 샤오디 자매가 체포된 후 하나님을 배반하고 유다가 되어 교회 사역과 리더 일꾼들을 팔아넘겼으니, 잘 숨어 있으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미국 크리스티나(Kristina)2011년, 저는 교회에서 복음 집사를 했습니다. 당시 저는 리더인 장민(張敏)이 예배 시간에 글귀와 도리를 읊으며 우쭐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태도는 형제자매들에게도,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중국 어우양쉐(歐陽雪)2015년, 리더가 제게 문서 본분을 맡겼습니다. 당시 팀장이었던 청눠 자매는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가 좋지 않아 리더에게 책망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리더가 자신을 대신하라고 저를 보낸 줄 알고 사사건건 저를 힘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