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 속에서 배운 공과

2025.8.8

중국 리제(李潔)

2022년 연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갑자기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웠습니다. 저는 너무 급하게 일어나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얼른 눈을 감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아졌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머리가 또다시 어지럽기 시작했고, 그렇게 네댓 번을 반복하자 무슨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니 혈압이 195mmHg까지 나왔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몇 년 동안 줄곧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도 적잖이 했는데,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셔서 건강했어. 그런데 혈압이 왜 갑자기 이렇게 높아진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10년 넘게 반신불수로 침상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나도 혈압이 이렇게 높은데, 만약 언젠가 아버지처럼 죽게 되면 어떡하지? 몸 관리를 잘해야겠어. 예전처럼 힘들게 일해서는 안 돼. 몸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병이 심해져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구원받을 기회가 있겠어?’ 저는 공포와 우려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배에 가서 형제자매들에게 고혈압에 좋다는 민간요법만 들으면 집에 와서 바로 시도해 보았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혈압을 재며 혈압 상태에 신경 썼고, 혈압약도 한 번 거르지 않았으며, 식단도 특별히 신경 쓰는 등 온통 어떻게 하면 몸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혈압이 좀 안정되고 어지럼증도 사라지자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계속해서 몸을 잘 관리해야지. 예전처럼 힘들게 일하면 안 돼. 그래야 병이 더 심해지지 않을 거고, 건강한 몸으로 본분을 이행해야 앞으로 구원받을 기회도 있을 거야.’ 그 후 저는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했지만 본분을 이행할 의욕을 잃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 몸부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낮에 예배에 갔다가 교회에 있는 문제들을 발견하고 저녁에 돌아와 진리를 구해 해결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조금 늦은 것을 보면 밤을 새우다 혈압이 또 오를까 봐 걱정되어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한 교회에 새 신자 몇몇이 석 달 동안 예배에 오지 않아서 그들을 양육하고 붙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낮에 일하기 때문에 저녁에만 양육할 수 있는데, 제가 가게 되면 제 휴식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새 신자를 붙들어 주는 일은 한두 번 교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정력을 많이 들여야 했습니다. ‘내 몸이 버텨 낼 수 있을까? 또 과로해서 혈압이 오르면 어떡하지? 만약 아버지처럼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면 어떡하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이 새 신자들을 다른 형제자매에게 맡겨 버렸습니다. 그 기간 저는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줄곧 병고로 인한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았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리더가 저에게 복음 사역을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혈압이 아직 조금 높은데, 복음을 전하는 건 괜찮지만 책임자가 되면 일이 너무 많잖아. 내 몸이 어떻게 감당하겠어?’ 저는 서둘러 리더에게 혈압이 높고 몸이 견딜 수 없어서 그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리더는 저에게 다시 좀 구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침대에 누워 잠 못 이루고 뒤척였습니다. 지금은 복음이 크게 확장되는 시기라 협력할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책임자가 되면 사역량이 많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질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만약 과로로 병이 악화되어 갑자기 뇌출혈이라도 오면 죽지 않더라도 반신불수가 될 것이고, 그럼 나중에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저는 몸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다시 리더를 만났을 때 핑계를 대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우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한 부류는 본분 이행을 거절하는 부류이다.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어떤 요구를 하든, 어떤 사역을 시키고 어떤 본분을 시키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심지어 말을 전하도록 시킬 때도 있는데, 이런 간단한 일도 그는 하려 하지 않는다. 이방인을 찾아 도와달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을, 자칭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그가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본분 이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형제자매가 아무리 권면해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온갖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이것이 바로 본분 이행을 거절하는 부류이다. 이 부류 역시 하나님이 볼 때는 이미 물러났다. 이렇게 물러난 것은 하나님 집에서 그를 제거하거나 제명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본인에게 이미 참된 믿음이 없는 것이고 그가 스스로를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본분 이행을 거절하는 것의 성질이 이렇게 심각해서 하나님께 도태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지금 복음 사역에 협력할 사람이 필요한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책임자의 본분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일을 다해야 했어. 그런데 나는 늘 몸이 축날까 봐 걱정하며 본분을 거절했으니, 이 또한 내가 본분을 거절한 게 아닌가? 그럼 나도 하나님께 도태되는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이제 끝이라고, 더 이상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졌다고 느껴져 그 본분을 거절했던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매우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며칠 동안 제 마음은 마치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본분을 거절해서는 안 됐습니다. 이제 기꺼이 순종하여 당신의 뜻을 구하겠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드러냈을 때 이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선택해야 하겠느냐? 반드시 진리를 구해야 하고, 절대 흐리멍덩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체험하고 자신의 패괴된 실체를 깨닫는 것은 좋은 일인데 왜 소극적이 되느냐? 하나님이 너를 드러내는 것은 너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너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사실, 네가 드러낸 패괴 성품은 네 본성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이 너를 드러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너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너는 여전히 패괴 성품을 드러내지 않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이 너를 드러내지 않았어도 너는 줄곧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살지 않았느냐? 너는 사탄 성품으로 사는 인간이다. 이런 일로 호들갑 떨지 마라. 패괴를 조금 드러냈다고 해서 소스라치게 놀라 네가 이제 끝장이고 하나님에게 버림받을 것이며 이전에 했던 모든 일이 허사가 됐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호들갑 떨 것 없다.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은 패괴된 인간이지 로봇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바울의 본성 본질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일깨움으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마련해 저를 드러내신 것은 저의 죄를 정죄하시거나 저를 도태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의 엄중한 심판을 통해 제가 진리를 구하고 제 안의 잘못된 사상 관점과 속셈, 불순물을 인식하게 하여 저의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제 생명을 책임져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엄중한 심판을 보고도 자신을 반성하며 공과를 배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을 짐작하고 오해하며, 하나님이 저를 도태시키시려는 줄로만 알고 소극적이 되어 자신을 규정했습니다. 제가 너무나 패역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고,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 속에서 공과를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구하는 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값지고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먼저, 삶과 인생의 길에서 직면하는 여러 대소사에 대해 올바른 인생관과 생각, 관점을 가져야 하고, 정확한 시각과 입장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아야지, 극단적이거나 과격한 생각과 관점으로 인생 혹은 생활에서 직면하는 여러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 이런 일을 바라보아서도 안 되며 이런 부정적이고 올바르지 못한 생각과 관점은 내려놓아야 한다. … 암에 걸린 사람을 예로 들면,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하나님에게 죽지 않고 몇 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한다. 그는 근심과 염려, 걱정 등의 부정적 정서를 품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 남들처럼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는데, 겉으로는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 병과 죽음을 겪으면서 그 역시 하나님에게 기도하였고 심지어 예전 못지않게 본분 이행을 포기하지 않고 사역하였다. 다만 사람이 알고 꿰뚫어 봐야 할 것은 그가 품고 있는 생각과 관점이 늘 부정적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대가를 치렀는지를 떠나 그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관점을 품고 추구했다. 항상 그런 잘못된 생각과 관점에 지배되어 부정적 정서를 품고 본분을 이행했는데, 그런 본분 이행으로 자신의 죽지 않는 결말을 맞바꾸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 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진리를 깨닫거나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모든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이와 정반대이다. 자신의 뜻과 요구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염원 중에서 추구하는 바를 얻고자 했고, 자신의 운명, 나아가 생사를 스스로 지배하고 안배하고자 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결말을 맞은 것이다. 진리를 얻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마저 부인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었다. 죽음이 임박해서도 그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이것이 가장 가련하고 슬픈 부분이다. 그는 죽음이 임박해서도 사람이 일생 동안 살면서 모든 일이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 아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창조주가 너를 살게 한다면 네가 죽을병에 걸려도 죽지 않을 것이며, 창조주가 너를 죽게 한다면 네가 설령 젊고 건강하며 건장하더라도 죽을 때가 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 아래 있다는 것을, 이것이 하나님의 권병으로, 아무도 이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깨닫지 못했다. 이토록 간단한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으니 가련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예배드리며 설교를 듣고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생사를 포함한 사람의 운명은 사람의 의지에 의해 바뀌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그는 계속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기가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이 아니며, 살아 있다고 해도 죽는 게 무서워 살기를 바랐기 때문에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이토록 단순한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고, 죽음이 임박해서도 꿰뚫어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생사가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창조주가 정해 놓은 것이라는 점도 알지 못했다. 슬프지 않으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울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되어 진리 실제가 어느 정도는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하나님의 주재를 전혀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질병이 닥쳤을 때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구해 공과를 배우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방인의 관점으로 살았습니다. 병이 생긴 것은 과로 때문이니 몸 관리에 신경 써야 하고, 몸을 잘 돌봐야만 병이 나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처럼 저도 언젠가 이 병으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루빨리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간요법이라는 말만 들으면 바로 시도해 보았습니다. 또 마음을 쓰고 과로하여 병이 악화될까 봐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도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제가 붙들어 줘야 할 새 신자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등 본분에 대한 부담을 점점 잃어 갔습니다. 리더가 저를 발탁하여 사역을 책임지게 했을 때도, 저는 신경을 많이 쓰고 과로하면 혈압이 올라 뇌출혈이라도 생길까 봐 본분을 거절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믿지 않았고, 제 목숨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온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몸을 잘 돌볼지에만 신경 썼습니다. 마치 사람의 몸이 건강한 것은 스스로 잘 관리한 덕분이지 하나님의 주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제가 어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가 사람과 일을 볼 때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삼으라고 교제하셨습니다. 제 몸이 어떠하든지, 언제 무슨 병에 걸리고 언제 죽을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죽게 하시면 제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해도 살 수 없고, 하나님께서 저를 살게 하시면 중병에 걸려도 죽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매일 산해진미를 먹으며 몸 관리를 해도 죽을 때가 되면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변변치 않은 음식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지만 장수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해 준다고 인정하는데,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되고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으면서도 병이 들자 이런 인식조차 없었으니, 제 믿음은 너무나 가여울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일을 보지도 않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늘 어떻게 하면 몸을 잘 관리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조금도 없었으니, 이것이 이방인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질병이 임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제가 진리를 구해 공과를 배우고, 제 안의 잘못된 속셈과 관점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며, 제가 걷는 잘못된 길을 바로잡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공과를 배우지 않는다면, 제 병이 다 낫는다 해도 아무 진리도 얻지 못해 헛된 체험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더는 예전처럼 병고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적당히 휴식 시간을 조절하며 본분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고, 바쁠 때는 제가 환자라는 사실도 잊은 채 약 먹는 것과 혈압 재는 것을 잊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몸에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떤 병이 닥치든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사람의 걱정과 염려는 다 불필요한 것임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고통받으며 더 괴롭게 살게 될 뿐입니다.

그러다 한 자매가 제게 병고가 닥치면 중요한 본분을 감당하려 하지 않고 근심과 걱정 같은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사는 것은 우리의 추구 관점, 복을 얻으려는 속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매의 일깨움으로 저도 그 방면으로 구해 보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앞날이나 복받는 것, 좋은 종착지, 나아가 면류관에 마음속 깊이 한껏 기대를 품고, 큰 믿음을 갖는다. 또 그들은 이런 속셈과 포부를 갖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한다. 그러니 그들이 이행하는 그 본분에 하나님이 바라는 진심과 참된 믿음, 충심이 있겠느냐? 이때는 참된 충심이나 믿음, 진심을 찾아볼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그는 거래하겠다는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익에 이끌리고 야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상황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은 무엇이겠느냐? 거래와 교환을 하려는 것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전제 조건은 ‘본분을 이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류에게 예비된 모든 복과 이점들을 다 얻어야 한다고.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속셈과 야심, 욕망을 품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얼마간 진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막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진실한 믿음과 충심이 없다. 그저 그 정도의 열정이 있을 뿐, 진심을 이야기할 것은 못 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분 이행 태도를 통해 볼 때, 그의 내면은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으며,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고 면류관을 얻고 상을 받는 등 이점에 대한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교되기 전까지 본분을 이행한다. 심지어는 그들이 버린 것, 고생한 것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을 때도 있다. 그들의 헌신과 그들이 치른 대가, 그들이 뛰어다닌 길은 바울보다 부족하지 않다. 이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행위나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는 다짐에 관해 논한다면 그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표면적인 행위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과 성품, 그 사람이 표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의 성질과 본질에 근거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기든 저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고, 믿지 않는 가족의 방해나 공산당의 핍박,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방을 받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본분을 이행하려는 제 의지는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가 치른 모든 대가를 분명 기억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혈압 진단을 받자 복을 받으려는 제 욕망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저는 건강한 몸으로 계속 본분을 이행해야만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고, 본분을 이행하다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 할 때면 병이 악화되어 죽게 되고 복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하며 조금의 충성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했던 것은 전적으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푸른 산이 있는 한 땔나무 걱정은 없다”와 같은 사탄의 사상 관점에 지배되었기 때문입니다. 병고로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고, 온종일 저의 결말과 종착지만을 생각하며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부담이 없었고, 심지어 본분을 거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말끝마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이라고 말했지만, 이제 와서야 제가 본분을 이행한 것이 모두 복을 얻으려는 속셈에 지배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저는 겉으로 무언가를 버리고 헌신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 대단히 충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조금도 없었고, 온통 거래와 기만뿐이었습니다. 제 성품이 너무나 간사하고 사악하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 것이 모두 하나님과 거래를 한 것이었고, 제가 걷는 길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우리에게 풍성한 진리를 공급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바치셨으며, 우리에게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모두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분을 이행한 것은 전부 제 자신의 복과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고, 조금이라도 헌신한 것이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과 거래를 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이기적이고 양심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서 회개해야 합니다. 앞으로 복을 받든 화를 당하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결국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즉, 사람이 마지막에 이르러 직면하는 것은 모두 죽음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죽음에는 여러 성질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네가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이 육의 생명에 마침표를 찍으면 네 육의 생명은 끝난다. 그렇지만 그것이 네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생명도 사라진다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그 생명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는 네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네가 나중에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존재하기는 할지는 네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 달린 것이다. 만약 너란 사람이 살면서 죽음과 여러 병에 직면했을 때 거역하고 저항하며 싫어하는 태도로 진리를 대했다면, 훗날 네 육의 생명이 끝날 때 너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겠느냐? 분명 다른 형태일 것이고, 그 생명은 존속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만약 네가 살아 있어서 육의 감각이 있을 때 순종과 충성심, 진실한 믿음으로 진리와 하나님을 대했다면 네 육의 생명은 끝날지라도 네 생명은 또 다른 세계에서 다른 형태로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죽음의 정의 중 하나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마음이 정말 환해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죽음의 성질이 다릅니다. 진리를 추구하며 본분 이행에 충성하는 사람은 설령 죽어서 생명이 끝나더라도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며, 일생의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받는 것은 생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관건은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을 중시하고, 하나님께 진실한 순종과 경외심을 갖는 것이 바로 구원받는 기준입니다. 반면 저는 질병이 닥치자 병마에 시달리며 살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했으며, 본분을 가볍게 여기고 심지어 거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품이 변화되지 않으면 역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온종일 병세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 쓰고 수고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중요한 부탁을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싫었습니다. 비록 그렇게 많은 마음을 쓰거나 많은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저는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해 만회할 수 없는 유감과 빚을 남겼고, 언제 그 생각을 해도 양심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비로소 진정으로 체험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신체 상태가 어떠하든,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해야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며, 설령 몸에 병이 있고 좀 힘들더라도 평생을 허무하게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자 저는 본분을 이행할 동력이 생겼고, 속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 더는 제 육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석 달 후, 리더는 다시 저에게 복음 사역을 책임지도록 안배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회개의 기회임을 알았고, 더 이상 제 병 때문에 걱정하고 염려할 수 없었기에 이 본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실제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고, 때로는 조금 피곤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제 몸이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 병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병이 더 악화되든 아니든 더는 본분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고, 기도하고 나면 제 마음은 더 이상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저는 합리적으로 생활 패턴을 조절했고, 사역에 어려움이 있으면 협력하는 자매와 상의하여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짐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루는 접대 가정의 자매가 혈압을 재는 것을 보고 저도 겸사겸사 재 보았는데, 뜻밖에도 혈압이 정상이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추구 관점을 바로잡아 주었고, 하나님의 주재와 정하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지 복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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