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한 번도 떠나지 않았음을 보았습니다

2025.12.27

중국 양샤오린(楊小林)

1997년, 저는 병을 계기로 주님을 믿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세가 호전되고, 저는 주님의 은혜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2003년 봄, 저는 주 예수께서 이미 돌아오셨고 그 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고서, 하나님의 6천년 경륜은 세 단계로 나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 마지막 단계인 심판 사역이라는 사실과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여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복음 전파 대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비록 가족들도 반대하고, 이웃들도 비웃고, 큰 붉은 용도 추적하고 잡아가려 했지만, 하나님께서 제 병을 고쳐 주신 일과 사람에게 약속하신 아름다운 종착지를 생각할 때마다 이 정도 고난은 얼마든지 받아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2021년 초가 되었고, 저는 교회에서 새 신자들을 양육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아랫배에 당기는 듯한 통증을 자주 느꼈지만, 처음에는 날이 추워 감기 기운이 있나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6월 말에 이르러 복통은 점점 심해졌고 혈뇨까지 잦아지자 가족들 손에 이끌려 서둘러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 후,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왜 이제야 오셨어요? 자궁이 임신 10주 크기만 하고, 안에 종양이 많습니다. 단순한 혈뇨가 아니라 자궁 출혈입니다. 낙관할 상황이 아니니 빨리 수술하셔야 합니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계속 본분을 이행해 왔는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 집에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병에는 당신의 허락이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두렵습니다. 부디 저를 이끄시어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은 너의 전능자임을 믿어라.”라는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고 컴퓨터를 켜서 그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급히 알려고 하지 말고, 자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고 진실한 마음을 바쳐라. 하나님은 너의 전능자임을 믿어라. 대단히 하나님을 원하는 의지를 가지고, 갈망하며 구하라. 사탄의 구실과 속셈, 간계를 거절하고, 실망하거나 연약해지지 말고, 마음을 다해 구하고 기다려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협력하고, 내면의 걸림돌을 없애라.(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니 마음이 차츰 평온해졌습니다. 이번에 병을 얻은 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구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저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십니다. 의사는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 진단할 뿐이므로, 의사의 말에 겁먹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7월 초, 저는 자궁 및 부속기 전체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조직 검사 결과가 양성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조용히 감사드렸습니다. 20여 일간 요양한 후 저는 다시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이 다 나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담낭, 맹장, 자궁 절제술까지 세 차례 수술을 연달아 받은 탓에 갖가지 수술 후유증이 쉴 새 없이 찾아왔습니다. 8월 초 어느 날 밤, 갑자기 복통이 심하게 와서 가족들이 저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검사 결과는 장폐색이었고, 의사는 즉시 관을 삽입해 위액을 빼내고 장을 세척했습니다. 위관이 식도를 자극해 계속 구토가 나왔고, 참을 수 없는 복통까지 더해져,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꼬박 하루 밤낮을 시달리느라 저는 완전히 기진맥진했습니다. 이튿날 밤 11시, 또다시 극심한 복통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제가 아파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것을 보고 황급히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CT 촬영 후 의사는 장 천공이 생겨 복부에 복수가 많이 찼으니 즉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고통에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고, 눈물과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거듭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 어렴풋이 제 머릿속에 “하나님은 너의 전능자임을 믿어라.(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라는 하나님 말씀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가 저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습니다. “괜찮으세요? 어쩌다 잠이 드셨어요?” 저는 그제야 그렇게 아픈 와중에 제가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수술할 의사에게 연락할 수 없어, 일단 병실로 돌아가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저는 다음 날 아침 7시 넘어서까지 잠을 잤습니다. 의사가 제 상태를 살피러 왔다가 의아해했습니다. “분명 CT상에 복수가 보였는데, 어떻게 지금은 상태가 안정되었지?”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일주일 후 저는 퇴원했습니다.

담낭 절제술로 인해 담즙 역류가 생겨 제 위는 늘 가스가 차고 타는 듯했으며, 가슴과 등이 심하게 아파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니고 한약도 많이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불면증은 점점 더 심해져 어떨 때는 밤새 한잠도 못 잤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제 모습을 보며 늘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러다가 본분을 계속 이행할 수 있을까?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면 죽지나 않을까? 정말 죽으면 어떻게 구원받지?’ 절로 하나님께 오해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난 몇 년 동안 온갖 시련 속에서도 줄곧 본분을 이행해 왔고, 1년 넘게 몸이 좋지 않을 때도 본분을 멈춘 적이 없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보호해 주시지 않는 걸까? 병을 통해 나를 드러내어 도태시키려는 것은 아닐까?’ 저는 몇 번이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고, 죽으면 구원받지 못할까 봐 더 두렵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 속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 근심, 염려, 걱정에 빠진 채 자신의 장래와 퇴로를 위해 고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때일수록, 이런 특수한 환경과 배경에 있을수록, 그리고 이렇게 절실한 고충이 있을 때일수록 사람은 더욱 진리를 구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예전에 들었던 설교와 깨달은 진리가 물거품이 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네게 그런 고충이 있는 때일수록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그런 환경을 배치하고 그런 조건을 안배한 목적은 너를 근심, 염려, 걱정의 정서 속으로 몰아넣기 위한 것도, 네가 질병에 걸렸을 때 과연 하나님이 치료해 주는지 시험해 보고 실제 상황을 알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네게 그런 특수한 환경과 조건을 배치한 목적은 그런 환경과 조건에서 네가 실제적인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진리에 더 깊이 진입할 수 있게 하여 더욱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나님이 사람과 일, 사물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든 없든, 분명하게 지각할 수 있든 없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순종이지, 반항이나 거부가 아니며, 시험은 더더욱 아니다.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네가 만약 반항하고 거부하며 시험한다면 마지막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반대로 네가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피조물이 창조주의 지배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구하고, 하나님이 네게 준 환경에서 네가 어떤 공과를 배우고 자신의 어떤 패괴 성품을 인식해야 하는지를 구하며,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네가 제대로 증거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는 것, 이것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질병 하나를 안배한다면 크고 작음을 떠나 그 목적은 네가 질병의 경과, 인간에 대한 질병의 해악, 인간에게 미치는 질병의 여러 불편과 고충 및 감각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질병 속에서 질병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병 속에서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드러내는 패괴 성품과 하나님을 대하는 옳지 못한 태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함으로써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 너를 구원하고 정결케 하고자 한다. 너의 무엇을 정결케 하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여러 사치스러운 욕망과 요구,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러 계산과 판단 그리고 계획을 정결케 한다. 하나님은 너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에 대해 사치스러운 욕망을 품는 것을 금하고 오직 네가 순종하기를, 순종을 실행하고 체험하면서 질병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하나님이 네게 준 이런 건강상의 조건에 대한 태도, 그리고 네 개인적 소원을 인식하기를 요구한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면 너는 하나님이 네게 준 질병이라는 환경이나 신체 조건이 네게 무척 유익이 된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네 성품의 변화, 네 구원, 네 생명 진입에 대단히 커다란 도움이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병에 걸린 데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근심과 우려, 걱정 속에 빠져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워 스스로가 드러낸 패괴 성품을 알라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저의 믿음과 순종이 진짜인지 시험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넘게 병을 앓았던 시간을 돌아보니, 한약, 양약, 민간요법까지 안 써 본 것이 없었고, 명의와 전문가도 많이 찾아다녔지만, 병은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저는 근심과 걱정 속에 살며 병세가 악화되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고, 죽으면 구원받지 못할까 봐 더 두려웠습니다. 속으로 고통받고 연약해져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 잃었습니다. 예전에 병들었을 때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을 보고 마음에 감사가 넘쳤지만, 지금 병세가 심각해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보이지 않자 하나님께서 병을 통해 저를 드러내어 도태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하나님을 믿은 지난 몇 년간 버리고 고난받은 것을 자본으로 삼아 하나님과 흥정하며 왜 저를 보호해 주시지 않느냐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 병을 통해 제 믿음의 불순물을 드러내시고, 저의 패괴를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하려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고심을 깨닫자 저는 마음속 깊이 후회하며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자신을 당신의 손에 맡기고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 원하오니,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로 또 한약을 한동안 먹었지만 병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속은 불타는 듯했고 메스꺼워서 밥을 먹을 수 없었으며, 온몸이 아팠습니다. 밤에는 수면제에 의지해 겨우 두세 시간밖에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예배조차 꾸준히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23년 7월, 교회에서는 제 상황을 고려하여 일단 교회 생활을 중단하고 집에서 요양하며 치료에 전념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꾸준히 본분을 이행한 건 하나님께서 내 병을 고쳐 주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그런데 이제는 예배조차 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내게 무슨 증거가 있겠어? 이건 하나님께 도태되기만을 기다리는 꼴이잖아?’ 제 마음속에 남아 있던 한 줄기 희망마저 끊어졌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저는 침대에 엎드려 한참을 통곡했습니다. ‘주위 형제자매들은 모두 건강해서 정상적으로 예배도 드리고 본분도 이행하고, 이방인들도 다들 건강하기만 한데, 왜 나만 끊임없이 병으로 고통받아야 하나?’

8월 말, 저는 장폐색으로 다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기간 저는 매일 복부, 위장, 등의 통증에 시달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 링거로 단백질과 포도당을 맞으며 영양을 보충해야 했고, 체중은 순식간에 20kg 넘게 줄었습니다. 남편은 일을 쉬고 병원에서 저를 간호하며 매일 등을 주물러 주었습니다. 몇 번은 그의 눈물이 제 등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저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지난 20년간 하나님을 믿어 온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편이 이혼까지 거론하며 믿음을 반대했지만 저는 타협하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 모욕에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큰 붉은 용의 미행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지난 몇 년간 버리고 고생한 것을 보아서라도 끝까지 이 길을 가도록 지켜 주시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마주한 것은 어쩌면 생명의 끝일지도 모릅니다. 슬픔에 잠겨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결국 죽어야 한다니,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왜 하나님을 믿었던가?’ 며칠 동안 저는 병상에 누워 기도도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도 보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죽음 이후의 광경으로 가득 찼습니다. 특히 영계가 안개처럼 자욱해 손을 내밀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가족도 곁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하루는 오빠 부부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고 기력조차 없는 제 모습을 보고 오빠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의지해라!” 오빠의 말에 저는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병이 생긴 이래로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주실 때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하나님 믿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죽음이 닥치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믿은 것마저 후회하다니, 이건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야!’ 그 무렵 저는 매일 열 시간이 넘게 링거를 맞아야 했고, 9일째 되는 날에는 양팔이 너무 부어 더는 주사를 맞을 수 없어 퇴원해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거듭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죽음 앞에서 제 마음은 너무나 두렵고 무력하며, 당신에 대한 오해와 원망, 무리한 요구로 가득합니다. 하나님, 저의 패괴를 알고,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저는 침대에 기댄 채 컴퓨터를 켜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여호와가 사람에게 준 모든 은혜와 축복, 약속만을 떠올릴 뿐, 여호와가 사람에게서 그 모든 것을 취할 때의 상황이 어땠을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떠올리지도 못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믿은 후 단순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약속만을 받아들이고자 준비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만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시련과 연단, 박탈을 받아들이려고 기다리고 예비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박탈, 저주를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지 않는다. 사람과 하나님의 이런 관계가 정상적이냐? (비정상적입니다.) 어째서 비정상적이라고 하겠느냐? 문제가 어디에 있겠느냐? 사람에게 진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은 관념과 상상이 너무 많고 늘 하나님을 오해하며,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할 줄도 모르기에 문제가 발생하기 아주 쉽다. 특히 사람은 오직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거래하려 하며, 하나님에게 요구하려고만 할 뿐,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다가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이 닥치면 바로 하나님에게 관념과 오해, 원망을 가질 것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무척 심각하지 않겠느냐? 대부분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길을 가느냐? 몇 년간 설교를 들었고, 또 글귀와 도리를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다고는 하나, 사실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니다. 입으로는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진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1)> 중에서), 『욥은 확실히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복을 내릴 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하나님이 징계하고 거둬 갈 때도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가 체험하면서 마지막에 이르러 늙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모든 것을 거둬 갔다. 그때 욥이 어떻게 행동했느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양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증거했다. … 평소에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사람에게 유익하며 그 속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 진리이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나님이 너를 축복할 때는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거둬 갈 때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너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욥은 받아들이고 그 말을 진리로 여겼다. 그가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그의 모든 재산을 거둬 갔을 때 그는 그렇게 큰 손실을 입고 그렇게 중한 병에 걸렸음에도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옳으며 그 속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마음속으로 알았기 때문에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말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가 진리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그를 시련하든 그는 모두 받아들였다. 거둬 가는 방식이든, 강도를 당하는 방식이든, 아니면 그의 몸에 종기가 나게 하는 방식이든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욥은 어떻게 대했느냐? 그가 하나님을 원망했느냐?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진리를 사랑하고 공평과 공의를 사랑하는 모습인 것이다. 그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척 공평하고 공의로우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모두 옳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저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눈에 피조물은 그저 구더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시든 상관없으며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옳고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것은 진실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 실제적인 모습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큰 손해를 입고 어려움을 겪어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사랑하는 모습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아야 진리 추구에 유익하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제 사상 관점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이었고, 저는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이 제게 닥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기 위해 미리 진리를 갖춘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욥의 체험을 마음속에 똑똑히 기억하고, 그가 굳게 서서 증거할 때 했던 명언들을 줄줄 외울 정도였지만, 제가 아는 것은 도리에 불과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기에 하나님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으며, 아내에게 비웃음당하고 친구들에게 조롱당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순수함을 굳게 지켰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차라리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저버리는 일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옳으며 그 속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최고의 진리로 삼아 실행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받아들이고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경외심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힘 있게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반면 저는, 도리상으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옳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알았지만, 오랜 병이 낫지 않고 죽음의 위협이 닥치자 저의 실제 분량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제 공로를 따지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왜 저를 보호해 주시지 않는지 원망했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믿은 것과 그동안 버리고 헌신한 것마저 후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하실 때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감사드렸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제 관념에 맞지 않자 하나님께 따지고 대항했으니, 저는 정말 양심과 이성이 없고 너무나 비인간적이었습니다! 저는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조물주이시고 저는 피조물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하시든 저는 어떠한 원망도, 요구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다음 며칠간, 저는 뒷일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말씀 책을 정리해 두고 자매에게 어디에 두었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어떻게 죽음을 올바로 대해야 할지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저는 한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는 ‘죽음’이라는 것을 이렇게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의 일생은 결국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즉, 사람이 마지막에 이르러 직면하는 것은 모두 죽음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죽음에는 여러 성질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이 정해 놓은 시간에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이 한 사람의 육적인 생명에 마침표를 찍으면, 그 육적인 생명은 끝이 난다. 하지만 이는 그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육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생명도 사라진다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그 생명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는 네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네가 나중에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존재하기는 할지는 네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 달린 것이다. 만약 너란 사람이 살면서 죽음과 여러 병에 직면했을 때 거역하고 저항하며 싫어하는 태도로 진리를 대했다면, 훗날 네 육적인 생명이 끝날 때 너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겠느냐? 분명 다른 형태일 것이고, 그 생명은 분명 존속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만약 네가 살아 있어서 육의 감각이 있을 때 순종과 충성심, 진실한 믿음으로 진리와 하나님을 대했다면 네 육의 생명은 끝날지라도 네 생명은 또 다른 경지에서 다른 형태로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죽음의 정의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아주 담담해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마주해야 하지만, 그 죽음의 성질과 그 이후의 결말은 저마다 크게 다릅니다. 조물주 앞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사탄과 함께 지옥에 가느냐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욥 42:17)라고 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욥은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고, 사탄의 공격과 괴롭힘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위안을 드렸습니다. 죽음 앞에서 욥은 마음으로부터 순종할 수 있었고, 그의 마음은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담담하고 평온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살아 있을 때 진리를 추구하여 얻지 못하고, 여전히 패괴 성품과 사탄 철학에 따라 사는 것이고, 여전히 하나님을 패역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 육의 생명은 아무리 오래 살고 편안하게 누린다 한들 일시적일 뿐이며, 죽은 후에는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진리를 추구하고 그것을 얻어 생명으로 삼고,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실제를 살아 내며,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여 사탄에게 치욕을 안길 수 있다면, 설령 어느 날 육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제가 죽음 앞에서 드러낸 것이라곤 온통 오해와 원망, 하나님에 대한 무리한 요구뿐이었고, 하나님께 패역과 대적만 가득했습니다. 설령 계속 살아간다 해도 패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도태되어 징벌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가까운 병의 고통을 겪으며 저는 하나님에 대한 많은 패역과 오해를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모두 옳으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 앞에서는 도무지 순종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께 따지고 대항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도대체 어떤 패괴 성품으로 인한 것일까요?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앞날이나 복받는 것, 좋은 종착지, 나아가 면류관에 대해 마음속 깊이 한껏 기대를 품고, 큰 믿음을 갖는다. 또 그들은 이런 속셈과 포부를 갖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한다. 그러니 그들이 이행하는 그 본분에 하나님이 바라는 진심과 참된 믿음, 충성심이 있겠느냐? 이때는 참된 충성심이나 믿음, 진심을 찾아볼 수 없다. 본분을 이행하기 전 사람은 거래하겠다는 생각뿐, 이익에 이끌리고 야심과 욕망으로 점철된 상황에서 본분을 이행하기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은 무엇이겠느냐? 거래와 교환을 하려는 것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전제 조건은 ‘본분을 이행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인류에게 예비된 모든 복과 이점들을 다 얻어야 한다고. 그것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속셈과 야심, 욕망을 품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는데, 얼마간 진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이제 막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진실한 믿음과 충성심이 없다. 그저 그 정도의 열정이 있을 뿐, 진심을 이야기할 것은 못 된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본분 이행 태도를 통해 볼 때, 그의 내면은 거래 심리로 점철되어 있으며,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고 면류관을 얻고 상을 받는 등 이점에 대한 욕망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교되기 전까지 본분을 이행한다. 심지어는 그들이 버린 것, 고생한 것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많을 때도 있다. 그들의 헌신과 그들이 치른 대가, 그들이 뛰어다닌 길은 바울보다 부족하지 않다. 이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행위나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려는 다짐에 관해 논한다면 그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표면적인 행위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과 성품, 그 사람이 표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행한 모든 일의 성질과 본질에 근거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복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함이며, 만약 좋은 결말이나 상과 복이 없다면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지도, 본분을 위해 고난받지도 않을 것이라고 폭로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며, 작은 대가를 큰 축복과 바꾸려는 망상입니다. 저 자신을 반성해 보니,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축복을 약속하셔서 장차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저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가족이 아무리 가로막고, 주위에서 아무리 조롱하고 모욕해도, 심지어 큰 붉은 용의 핍박을 받을 때조차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병마에 시달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상황에서도 본분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병이 점점 심해져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자, 저는 하나님께서 왜 저를 보호해 주시지 않느냐며 원망했고, 심지어 지난 몇 년간의 헌신과 희생을 후회하고 하나님을 믿은 것마저 후회했습니다. 제가 드러낸 것이라곤 온통 하나님에 대한 패역과 배반뿐이었습니다. 저는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평생 유럽의 절반 이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많은 고난과 대가를 치렀지만, 그의 고난과 희생은 오직 복과 면류관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과 희생을 하나님과 거래하는 밑천으로 삼고, 공공연히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그 말의 뜻인즉, 자신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이룬 성과에 따라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게 상과 면류관, 좋은 종착지를 주셔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러낸 성품은 바울과 똑같았습니다. 제가 한 행동대로라면 마땅히 멸망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게 숨을 붙여 주셨습니다. 이는 제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크나큰 긍휼과 은총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최종적으로 자기 앞날과 운명을 고려치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며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 이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니 너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전에는 핍박과 환난이 닥치든, 병으로 생명이 위급해지든, 본분만 잘 이행하면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살아남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야 구원받기 위한 관건은 본분을 꾸준히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얻어 성품이 변화되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여러 환경 속에서 공과를 배우고, 욥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지배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야 구원받고 살아남을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저는 기도하며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든 이성 있는 피조물이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주신다면 새사람이 되어 복받으려는 속셈을 내려놓고 더는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겠으며,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 수명을 지금까지만 살도록 정하셨다 해도,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기꺼이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제 내적 상태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비록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온몸이 아프고, 심지어 때로는 의식조차 희미했지만, 제 마음은 아주 담담했습니다. 저는 거듭 하나님께 기도하며 생사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배하시든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제 몸은 날이 갈수록 나빠져 물 한 모금만 마셔도 메스꺼워 구토를 했고 걸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9월 18일 밤이었습니다. 밤새 끙끙 앓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새벽녘에는 열이 나기 시작하며 온몸이 참을 수 없이 아팠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곧 죽을 것 같습니다. 비록 아쉬운 점이 많지만, 저는 피조물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든지 없든지, 저는 오직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만을 구할 뿐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하나님 말씀은 특효약이며, 마귀와 사탄을 치욕스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 의지할 곳이 생기며,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데 즉효이다! 만사가 해결되고 모든 것이 평안해진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편> 중에서) ‘그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어. 의사는 병을 고칠 수는 있어도 목숨을 구할 수는 없어. 오직 하나님만이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분이시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아야만 마음에 평안이 있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다가 저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2년여 만에 처음으로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잠이 들었고, 거의 네 시간 가까이 잤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정신이 훨씬 맑아지고 통증도 많이 가라앉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기분은 너무나 기묘해서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더 기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남편의 부축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산책을 나갔다가 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언니는 몸이 왜 이렇게 약하세요?” 남편이 제 병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제 친구도 예전에 그랬는데, 근처 작은 병원에서 치료받고 지금은 다 나았어요.” 다음 날 남편은 저를 그 병원으로 데려갔고, 고작 몇십 위안짜리 양약을 처방받았을 뿐인데 병이 나았습니다. 한 달 후 저는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달 후, 제 체중은 20kg 넘게 늘었고, 형제자매들도, 저를 아는 이방인들도 모두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이며, 하나님의 기묘한 행적이심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전에 그토록 패역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계속 하나님과 거래하며 하나님을 속였던 저 자신을 생각하니, 이토록 큰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살아 있고, 또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크나큰 긍휼과 사랑 덕분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어렵게 얻은 본분 이행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 병의 고통을 겪으며 비록 육체는 약간의 고난을 받았지만, 제가 얻은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복이나 이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여 정결케 되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따라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저의 직책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외하는 데에 이르는 것이 제가 추구해야 할 목표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저는 『질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속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편> 중에서) 는 말씀이 진리이자 사실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 체험은 제 생명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재산이며, 하나님의 특별하고 남다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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