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실패 속에서 배운 공과

2025.12.27

2014년, 저는 교회에서 배우 본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평소 연기 시간이나 실무를 배우는 시간 외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서 비교적 편하게 지냈습니다. 제가 연기를 좋아하기도 했고 연기 욕심이 있었던 까닭에 영화 두 편을 찍고 나니 제 업무 역량이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그러자 리더는 제게 감독 본분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때 저는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감독은 책임질 일도 많고, 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일일이 관여해야 해. 촬영이 끝나면 확인까지 해야 하니 신경이 많이 쓰이고, 몸도 피곤할 텐데, 매일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는 삶에 찌든 아줌마처럼 초췌해지고 말 거야!’ 하지만 본분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받아들였습니다. 자매들은 제가 감독 본분을 맡게 된 것을 알고 모두 기뻐해 주었지만, 저는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잖아. 중요한 본분을 맡는 건 싫단 말이야. 책임이 막중할수록 몸만 더 고단할 테니 그냥 평범한 배우로 지내면 좋을 텐데. 백수처럼 놀지만 않으면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감독을 맡고 첫 영화를 촬영할 때, 총괄 책임자는 매일의 일정을 빽빽하게 짰습니다. 그래서 촬영이 끝날 때마다 다음 신의 연기나 앵글, 또는 장면 문제를 상의해야 했고, 촬영 중에는 모니터 앞에 앉아 한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습니다. 잠시라도 정신을 팔면 제대로 연기했는지 판단할 수 없어서 돌려 보거나 재촬영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현장 촬영이 끝난 후 다른 스태프들이 모두 퇴근해도 저는 남아서 다른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주연이 많아서 선역과 악역 모두 제가 연기 지도를 하고 리허설을 이끌며 진두지휘해야 했습니다. 각 신마다 미리 배역을 연구하고 캐릭터를 깊이 이해해야만 배우의 연기가 적절한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감정 신을 찍을 때 배우가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면 제가 어떻게든 배우의 감정을 끌어내야 했습니다. 저는 감독을 맡으면 정말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는 자기 연기만 잘하면 그만이니 감독 본분보다 훨씬 수월했습니다. 진심으로 감독 본분을 이행하기 싫었던 저는 그 후로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촬영할 때 배우가 계속 제대로 연기하지 못하면 어떻게 지도해서 연기력을 향상시킬지 고민하지는 않고 대충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 결과 리더가 영화 일부를 심사할 때 연기가 미흡하다고 지적하여 재촬영해야 했습니다. 또 한 번은 동역자 자매가 리허설 때 배우에게 제스처를 추가해 달라고 했지만 저는 너무 귀찮아서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배우의 연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촬영 시작 직전에 동역자 자매가 현장에서 배우에게 제스처를 추가로 지도하느라 촬영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실제로 협력해야 할 때가 되면 여전히 본분이 너무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두 달여가 지났고, 배우들의 연기에 문제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총괄 책임자는 제게 배우들의 리허설을 좀 더 꼼꼼하게 봐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지만, 저는 그 말을 듣기는커녕 ‘더 꼼꼼하게 하라니,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리허설을 언제까지 하라는 거야!’라며 반감을 품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배우 할 때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나요? 연기는 배우 본인의 몫이 아닌가요?”라고 따지기까지 했습니다. 리허설을 할 때 저는 배우에게 큰 틀만 잡아줄 뿐 세부적으로 지도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잦은 재촬영으로 일정이 지연되었습니다.

얼마 후, 푸(付) 형제가 저와 협력하며 감독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총괄 책임자는 제게 “자매님 혼자 감독 본분을 하는 게 힘들어 보여요. 앞으로 자매님은 배우들 리허설을 주로 맡아 주시고, 모니터링은 푸 형제님에게 맡기도록 하죠.”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고 정말 기뻤습니다. ‘모니터링은 하지 않아도 된다니 너무 잘됐다! 이젠 내 개인 시간도 널널해지고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겠어.’ 그 후, 저는 배우들의 리허설을 마치면 바로 개인적인 일을 보러 갔고, 배우들의 연기가 어떤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정식 촬영에 들어가자 배우들의 연기에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총괄 책임자가 제게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성찰해 보라고 했을 때, 저는 ‘연기를 못하는 건 배운데 나보고 무슨 성찰을 하라는 거야? 그게 내 탓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 본분은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일 같았습니다. 그즈음 촬영 중에 제가 지도하던 몇몇 배우의 연기에서 문제가 속출하자, 총괄 책임자는 다시 한번 제게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반성할 것을 당부했고, 그제야 저는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며칠을 돌아보니 제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왠지 불안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반성했습니다. 그때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게으름 피우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말하며,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라는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라 그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며 경시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한다면, 결과가 어떻겠느냐? 네가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잘 이행하지 못해 기준에 달하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너의 태도에 매우 못마땅해할 것이다. 원래는 네가 만약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하여 성심성의껏 할 수 있다면, 네가 이렇게 협력할 수 있다면, 네가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성사되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나님이 앞에서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놓는다. 네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때, 하나님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해 놓는다. 만약 네가 잔꾀를 부리며 불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그릇된 길로만 간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지 않아 너는 기회를 잃게 된다.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은 안 되겠다. 쓸 수가 없구나. 옆으로 비켜라!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게으름 피우고 편안함을 누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러니 영원히 편안히 있어라!”라고 말하며,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손해를 본 것이냐, 아니면 이익을 본 것이냐? (손해를 본 것입니다.)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마음과 뜻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본분을 가볍게 여기거나 건성으로 이행할 경우 조금만 신경 쓰면 잘 해낼 수 있는 본분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배우의 연기가 미흡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하기는커녕 힘들이기 싫어서 건성으로 넘어가 버렸고, 결국 배우들의 미흡한 연기로 촬영을 다시 해야 했습니다. 배우에게 리허설을 시킬 때도 큰 틀만 알려줄 뿐 세부적으로 지도해주지 않아 몇몇 배우의 실전 연기에 문제가 생겼고, 그 바람에 재촬영이 거듭되어 촬영 일정이 지연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요령을 피운 탓이었습니다. 총괄 책임자가 여러 차례 제게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반성하라고 당부했지만 저는 오히려 따지고 들며 변명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늘 건성으로 하여 자주 문제가 생기자 총괄 책임자는 제게 모니터링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몸이 편해졌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니, 정말 무감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저를 배우로 양성하며 많은 훈련의 기회를 주었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로 저 또한 연기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감독으로 양성되기 위해 제가 얻은 것을 본분에 활용해야 할 때인데, 저는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육적인 고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감을 품고 원망하며 무성의하게 굴었습니다. 너무나도 인성이 없었던 저는 정말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만했습니다! 특히 “너는 몸을 사리고 농간 부리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 은혜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남겨 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을 때, 제가 모니터링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제가 요령을 피우고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하여 더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이번 본분의 기회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제가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배우의 리허설을 지도할 기회조차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배우들과 리허설을 할 때 진지하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배우의 연기가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지적해 주며 인내심을 가지고 지도했고, 참고 영상을 찾아 배우들과 함께 배우기도 하면서 영화 촬영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변화된 줄 알았는데, 다음 영화를 찍을 때 또다시 고질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그때도 저는 배우들의 연기 지도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 영화의 주연은 류(劉) 자매였는데, 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연기에 부족한 점이 많아 제가 이전보다 더 많이 신경 쓰고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영화 촬영이 막 시작되었을 때는 저도 진지하게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연기가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지적해 주었고, 때로는 직접 시범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 신마다 지도하며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났습니다. 게다가 저와 협력하는 청(程) 형제가 본분을 꽤 적극적으로 이행하며 배우 연기 지도에 신경을 써주다 보니, 제 책임감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다른 일에도 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몇 번은 류 자매가 배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저녁에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눠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낮 동안 리허설로 온종일 바빠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데, 저녁에 또 류 자매를 지도하면 다음 날 촬영할 때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아 ‘됐어, 그냥 지도하지 말자’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결국 다음 날 촬영에서 류 자매의 연기에 문제가 생겨 일정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저는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지만, 그 후에도 대가를 치러야 할 때마다 여전히 육적인 것만 생각하며 진리를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연기 지도가 점점 힘에 부쳤고, 배우들의 연기에서 문제점을 잡아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연기 문제로 재촬영이 잦았고, 여러 다른 원인까지 겹치면서 영화 촬영이 계속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결국 영화팀이 해체되었습니다. 팀이 해체되던 날 밤, 저는 밤잠을 설쳤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는 감독 본분을 맡은 후로 줄곧 진정으로 순종하지 못했고, 늘 본분이 너무 힘들다고 짜증만 냈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고작 내 몸 편하자고 하나님을 믿었나? 이건 하나님을 거역하는 거잖아?’ 예배 시간에 리더는 “하나님 집에서 자매님을 감독으로 양성했는데, 이렇게 무책임할 줄은 몰랐네요. 정말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군요!”라며 저를 책망했습니다. 그 시기에 제 마음은 늘 텅 빈 것 같았고, 만회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고통의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습니다. 또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과오를 남긴 것 때문에 괴로웠고 하나님께 무척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기도할 면목조차 없었고, 하나님께서 저를 역겨워하고 혐오하시며, 저를 외면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내버려진 사람처럼 괴롭고 암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복음 전파 본분을 맡게 되었지만, 이 일은 제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고 응어리로 남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여러 차례 기도하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도대체 왜 실패한 건가요? 저 자신을 알 수 있게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한번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자를 두 글자로 요약하면 ‘폐인’이다. 바로 2급 장애인이다. 게으른 사람의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은 장식에 불과하고, 자질이 좋아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는 너무 게으르기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을 해야 성과가 날지 아는데도 그 가치 있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그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어떤 실질적인 사역도 해내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고생을 겪지 않으려 하면서 그저 편안함을 즐기고,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느냐?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언제나 기생충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이며 바로 짐승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힘쓰는 것조차 자격이 없다. 그는 고생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힘쓰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희망은 더더욱 없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폐인이다. 힘쓰는 것조차 기준에 맞지 않으니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짐승이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시켜야 하나님의 뜻에 맞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감독 본분을 이행할 때의 제 모습을 일일이 떠올려 보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저를 감독으로 세워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게 했지만, 주연 배우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힘든 게 싫어 지도하지 않은 저는 제게 주어진 책임조차 다하지 않았습니다. 청 형제가 본분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보고는 그 틈에 사역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나 몰라라 했습니다. 이름만 감독이었을 뿐, 실제로는 청 형제 혼자서 감독 역할을 하며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방면의 사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결국 영화를 찍지 못하고 팀 전체가 해체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몇 달간 치른 대가와 하나님 집이 지출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저는 메가폰만 잡았지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바로 허수아비나 무용지물이 아니겠습니까? 게으르고 무관심한 저는 본분을 늘 건성으로 이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사람과 일을 통해 저를 일깨워 주셨지만 저는 늘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성령의 역사를 잃어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몹시 괴롭고 암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는 줄곧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와 같은 사탄의 사상 관점으로 살아왔습니다. 사람이 수십 년을 살면서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매일 자유롭게 지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사상에 지배된 저는 게으르고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남들이 1등을 하려고 열심히 공부할 때 저는 공부가 너무 힘들다며 일찌감치 자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혼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차를 사고 집을 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하우스 푸어나 카푸어가 되어 자신에게 그렇게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된 후에도 저는 중요한 사역을 맡기보다는, 그저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적당히 죽지 않는 결말이면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저를 감독으로 양성하여 제 장기를 발휘해 본분을 잘 이행하기를 기대했지만, 저는 본분이 너무 힘들다며 마음속으로 감독 일을 거부했고, 받아들이고 나서도 온갖 요령을 피우며 건성으로 임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10:26) 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요령을 피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육의 안일을 위해 그런 행동을 하면서 영화 사역을 지체시켰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사탄의 사상 관점으로 살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 편안함을 탐하고 무책임했으며, 본분에 매번 과오만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오는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 중에서) 라고 말씀하셨듯이, 저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면서 침륜과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독으로서 팀에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함에도, 저는 바른길을 걷지 않고 오로지 육의 안일만을 생각하며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요령을 피웠습니다. 그 결과 형제자매들은 몇 달의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고, 팀 전체가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으니, 쓸모없는 사람이고 도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버려 두신 것은 저에 대한 무언의 심판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제게 임한 것이고,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제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반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인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인류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생명을 전부 희생하며, 인류를 위해 생명의 매분 매초를 기여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그 중 ‘그는 인류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의 구절을 깊이 묵상하니, 감격스러우면서도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셔서 두 번 성육신하시고는 어마어마한 굴욕을 견디셨습니다. 처음에는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바치셨고, 말세에는 다시 성육신하셔서 이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하여 우리를 양육하시고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께 돌려드린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거역과 대적이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하나님 집에서 제게 본분 이행의 기회를 준 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자, 회개의 기회입니다. 만약 저의 옛 성품이 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저는 틀림없이 멸망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 시기에 저는 <노아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라는 찬양을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1. 노아는 인류 중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한 가장 본받을 만한 인물로, 하나님이 칭찬하는 대상이자 오늘날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이 본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에게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이냐? 그는 오직 한 가지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였다. 그것은 바로 듣고는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는 순종하며, 죽을 때까지 순종하는 태도였다. 바로 이렇게 가장 귀한 태도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대충 대하거나 건성으로 대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연구하고 분석하고 반발하고 거부하다가 뒷전으로 미뤄 두지 않았으며, 진지하게 경청하고 마음으로 조금씩 받아들였다. 그런 다음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이행할지, 어떻게 왜곡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본뜻에 따라 실행할지 묵상했다.

2.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동시에 그는 속으로 조용히 자신에게 말했다. ‘이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분부, 하나님의 부탁이니 책임을 미룰 수 없고 반드시 순종해야 해. 세부 사항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하나님의 의도를 하나도 거스르지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세한 부분을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난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부탁과 그분의 높여 주심 앞에 떳떳할 수 없어. 만약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맡기신 일을 이번 생에 완수하지 못한다면 여한이 되고, 하나님의 부탁, 하나님의 높여 주심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거야. 그러면 창조주 앞으로 돌아갈 면목도 없어.’

3. 노아가 속으로 생각한 것, 그의 모든 관점과 태도는 그가 결국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 내고 하나님 말씀을 현실로 바꾸고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이행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 말씀은 그의 노력과 수고를 통해 이루어지고 성취되었으며, 그를 통해 실제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하나님의 부탁은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노아는 하나님이 일을 맡길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하나님이 신임하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고 마음과 생각을 살핀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렇게 생각을 하는 노아는 잘못된 선택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탁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신임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는, 전체 인류 가운데 유일한 사람이었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3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2)> 중에서

노아는 양심과 인성을 지닌 사람으로, 하나님의 부탁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며 방주 짓는 일을 평생의 책임과 사명으로 삼고 완수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그를 감독하거나 재촉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많은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부탁이며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힘이 솟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했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진심을 다했습니다. 저는 “노아가 속으로 생각한 것, 그의 모든 관점과 태도는 그가 결국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 내고 하나님 말씀을 현실로 바꾸고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이행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 말씀은 그의 노력과 수고를 통해 이루어지고 성취되었으며, 그를 통해 실제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하나님의 부탁은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살아낸 실제의 삶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는 기술을 몰랐고, 당시의 기술 수준이 지금처럼 발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온갖 자재를 직접 구해야 했고, 자기 힘으로 방주를 조금씩 지어야 했습니다. 또한 노아는 다양한 생물을 모으고, 각 동물의 먹이를 준비해서 정성껏 돌보며 길러야 했습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노아가 신경 쓰이고 힘들다면서 건성으로 임했다면, 방주는 지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모든 생물은 멸종의 위기에 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엄수하며 120년간 꿋꿋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했습니다. 노아는 마음이 진실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으며,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고 노아가 존경스러웠습니다. 반면 저 자신을 돌아보니, 저는 그토록 많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고 충성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보다 훨씬 쉬운 본분을 이행하는데도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것이 싫다며 건성으로 임했습니다. 너무나도 인성이 없는 저는 사람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자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산되지 않게 하나님께서 서두르시는 일을 서둘러 하고,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아무리 고단하고 피곤해도 하나님의 부탁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순종한 노아는 숨이 붙어 있는 한 방주를 지었고 죽을 때까지 순종했습니다. 그의 이런 귀한 태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위안이 되었으니, 노아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인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 집에서 우리에게 영화를 찍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한 것은 방주를 짓는 것과 형식은 다르지만,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은 같습니다. 영화 한 편이 완성되면 사람들의 관념을 해결할 수 있을뿐더러, 주님이 오시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참도를 구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되기에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저는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우거나 신경 쓰는 것을 귀찮아하지 말고 노아를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본분을 잘 이행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2024년 5월, 교회는 제게 체험 간증 영상을 심사하는 본분을 겸임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회개의 기회임을 깨달은 저는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서 영상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심사했습니다. 본분이 일과나 휴식 시간과 충돌할 때는 육을 저버리고 본분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10월, 리더는 또 저를 영화팀에 보내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게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배우들의 리허설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 저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거나 점심시간에 영상을 심사했습니다. 배우들의 리허설을 지도할 때도 최선을 다해 지도하고 배우들과 함께 더 많이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마음이 무척 든든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한 자매에게 예전의 실패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제가 추구 관점을 반성하고 인식하도록 이끌어 주었는데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체험을 갖춰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고 순결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베드로 같은 사람이다. 너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만족하며 소극적이 되어 후퇴해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적극적인 면에 자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추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타락해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기 삶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는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개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마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그렇게 건성으로 대해선 안 된다. 일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의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우롱하지 마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전에도 이 말씀을 본 적이 있었지만, 저는 제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올바른지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사람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른 후 곳곳을 다니며 예수님의 도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안일한 삶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힌 그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의 일생은 가치 있고 의미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저는 안일한 삶을 추구했고, 신경 쓰는 일은 기피했습니다. 이는 그저 허송세월하는 무의미한 삶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제게 맡겨진 감독 본분은 남들보다 조금 덜 쉬고, 신경이 좀 더 쓰이고, 몸이 좀 더 고단한 일이었지만, 복음 사역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만약 그때 잘 해냈더라면 언제 회상해 봐도 마음이 평안하고 든든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실패의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너무나 후회스럽고 괴롭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저의 잘못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이 일은 제 인생의 큰 과오와 한으로 남았습니다. 저는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추구 목표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사람이 만약 육체의 안일만을 탐하며 별다른 추구 목표 없이 산다면,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타락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 마음과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야 사람다운 삶인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제가 또다시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채찍질하고 징계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고는 본분을 이행하는 저의 태도를 늘 성찰했고, 건성으로 하고 싶을 때는 즉시 기도하여 육을 저버렸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배우와 대사 연습을 하는데, 몇 번을 교정해 줘도 나아지지 않자 저는 귀찮은 나머지 더는 가르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틀 전에 보았던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자기 몸을 사리고 하나님의 감찰을 피하려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 때 얼른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면서 그런 행동이 옳은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거지? 내가 이렇게 건성으로 하면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까지 속일 수는 없어. 게다가 내가 몸을 사리려고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잖아.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거야.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정상 인성의 모습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태도도 아니야. 안 되겠어. 세상에 있을 때는 몸을 사리면서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그만이었지만, 지금 나는 하나님 집에 있잖아. 하나님의 주재와 감찰 아래 있다고. 나는 사람이니까 마땅히 양심적으로 일해야지, 내 마음대로 행동해선 안 돼. 대충 건성으로 하면서 몸을 사릴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몸을 사리거나 건성으로 임하는 게 아닐까? 더 노력해야겠다. 방금 나는 그렇게 하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해 고생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이젠 나도 알아. 그렇게 하면 귀찮기는 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 그렇게 해야만 해.’ 막상 행동에 옮기려고 하면 그래도 고생할 게 걱정될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게으르고 뺀질거리는 사람입니다. 저를 징계하고 질책하여 제 양심이 자각하게 해 주시고, 제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저는 대충 건성으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패역과 추태를 알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주시고 깨우쳐 주십시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면 후회의 마음이 생길 것이며, 자신의 추태를 증오할 수 있어 잘못된 내적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저는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저버리겠다고 기도한 뒤, 배우와 함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분석하며 무엇이 문제인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배우의 연기가 한결 나아졌고, 다음 날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무척 평안하고 든든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감독은 저보고 배우를 데리고 가서 내레이션을 녹음하라고 했습니다. 그 일도 진지하게 임하니 새벽까지 녹음해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영화 촬영이 끝나고 편집된 영상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비록 이 영화에서 제 역할은 일개 부속품과도 같이 미미했지만, 그 본분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이행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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