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일수록 더욱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2026.1.15

저는 쉰 살 되던 해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희망이 보이자 살맛이 났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하나님 말씀을 읽었고,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안배해도 받아들이고 순종했습니다. 꾸준히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나중에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23년, 저는 일흔다섯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기억력도 나빠지고, 귀도 어두워지고 눈도 침침해졌으며, 다리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제 상황에 맞춰 섬김 본분을 맡겨 주었습니다. 점점 나이 들고 몸도 안 좋아지는 데다, 기억력도 나빠져 늘 깜빡깜빡하고 가끔은 정신이 흐릿해지는 제 자신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몇 년 뒤에 정말 정신이 흐릿해져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거 아닐까? 그래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한번은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자매님이 무심코 “정신이 흐릿해지신 거 아니에요?”라고 한마디 하자 저는 다급히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속으로는 ‘내가 정신이 흐릿해졌다고 생각해서 본분을 못 하게 하면 안 되는데. 본분을 못 하게 되면 끝이잖아? 그럼 어떻게 구원을 받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평소에 요리할 때 소금 넣는 걸 깜빡하거나 파 넣는 걸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가끔은 길에 나가 방향을 잃고 집을 못 찾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내가 정말 정신이 흐릿해진 걸까? 교회에서 계속 나에게 본분을 맡겨 줄까? 내가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저는 걱정과 근심 속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6월, 저는 형제자매들의 예배 모임을 섬겼습니다. 마침 저희 집 위층이 인테리어 중이라 매일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후 한동안 형제자매들이 예배드리러 오지 않자 저는 의아했습니다. ‘왜 안 오지? 이제 나한테 섬김 본분을 맡기지 않으려는 건가? 이렇게 나이도 많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섬김 본분뿐인데, 이것마저 못 하게 되면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지는 거잖아?’ 마음이 무척 조급해져서 형제자매들이 오기만을 바랐습니다. 어느 날 밤, 한 자매님이 문을 두드렸고 며느리가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서너 번이나 찾아왔는데 문을 두드려도 열어 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이건 내가 나이 들어 귀가 어두워져서 못 들은 거잖아? 내 본분을 제대로 못 한 거야. 이젠 귀도 어둡고 눈도 침침하고, 반응도 느려지고 다리도 불편하니, 정말 뭘 해도 안 되는구나. 섬김 본분조차 제대로 못 하다니. 나이 드니 정말 쓸모가 없구나!’ 저는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어떤 본분이든 다 해낼 수 있는 젊은이들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하나님은 젊은이들을 좋아하시니 그들은 마지막에 분명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10년만 젊어서 60대이기만 했어도 본분을 좀 이행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점차 제 내적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졌습니다. 매일 근심과 걱정 속에 살다 보니 기도도 정상이 아니었고, 하나님 말씀을 봐도 깨우침과 빛 비춤이 없었으며, 마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넘어져 다리 인대를 다쳤습니다. 예배에 지장은 없었지만, 저는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넘어졌어도 괜찮았지만, 언젠가 병으로 쓰러져 예배도,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게 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후 정말로 병이 나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몹시 소극적이 되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예배도 못 드리게 되고, 아무 본분도 못 하게 됐으니, 이러다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 되겠어.’ 퇴원 후에도 제 내적 상태는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섬김 본분조차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세월 하나님을 헛믿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슬프고 괴로워서, 저는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시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연로한 자매님이 쓴 체험 간증문을 읽게 되었는데, 제 내적 상태와 딱 들어맞았고, 그 글에 인용된 하나님 말씀 한 단락에 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중 일부 연로한 사람들, 다시 말해 60대에서 80, 90대의 사람들도 많은 나이로 인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정확하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생각과 관점이 진리에 부합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 연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충이 있으니 그들은 항상 이렇게 걱정한다. ‘이제 몸도 따라 주지 않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한정적이구나. 이 정도 본분만 이행해서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려나? 병에 걸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는 홀로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나이를 먹으니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기억이 안 나고 진리를 깨닫기도 쉽지 않다. 진리를 교제할 때 횡설수설하며 논리적이지 않고 이렇다 할 체험도 없구나. 나이를 먹으니 기운도 없고, 시력도 나빠지고, 체력도 달린다. 다방면으로 고충이 많으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툭하면 깜빡하고 실수한다. 때로는 흐리멍덩해서 교회나 형제자매에게 폐를 끼치니, 이래서는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고 싶어도 힘들겠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어떻게 이 나이에 하나님을 믿었을까? 왜 남들처럼 20, 30대에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까? 하다못해 40, 50대에 믿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늙어서야 하나님의 사역을 만나게 되었을까? 팔자가 사납다고 하자니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역을 만나게 되었으니 팔자가 좋은 편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기억력도, 건강도 좋지 않고, 열의는 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예배 시간에 조금만 듣고 있어도 졸리고, 눈을 감고 기도하면 잠들 때도 있다. 하나님 말씀도 입으로만 읽을 뿐, 조금만 읽어도 졸리고 노곤하여 읽어 나갈 수가 없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런 현실적 고충에도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수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허투루 믿은 게 아닐까? 구원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럼 어쩌지? 걱정이다! 이 나이 먹고 무엇이 중요하겠나. 이왕 하나님을 믿었으면 걱정하거나 근심할 게 무엇이냐. 아들딸 모두 장성하여 내가 돌봐 주거나 보살피지 않아도 된다. 평생 가장 큰 소망은 살아 있는 동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여 마지막에 구원받는 거다. 하지만 지금 나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을 보면 늙어서 눈도 침침하고 흐리멍덩해. 건강도 나빠졌으며 본분도 이행하지 못한다. 힘닿는 대로 일을 해 보지만 폐만 끼칠 때도 있으니 이래서는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걱정한다. 생각하다 보니 근심하게 된다. ‘좋은 일은 모두 젊은이들과 관련 있지 연로한 사람과는 무관한 것 같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든 내가 누릴 복은 없는 것 같다.’ 생각하면 할수록 근심하고 염려한다. 자기를 걱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 때문에 속상해한다. 울자니 딱히 울 일도 아니고, 울지 않으려 하나 약간 마음이 쓰리고 아프니 어쩌면 좋겠느냐? … 진정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냐? 방법이 없겠느냐? (노인도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노인이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냐? 노인이 설마 늙었다는 이유로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노인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느냐? 그들도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젊은이들도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항상 착각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흐리멍덩하고 기억력도 없으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이 진정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청년은 노인보다 기운이 넘치고 체력도 좋지만 이해하고 깨닫고 인식하는 능력은 사실 노인과 똑같다. 노인도 청년을 거쳐 온 것이 아니더냐? 태어날 때부터 늙은 것도 아니다. 청년 역시 결국은 늙기 마련이다. 노인은 자기가 늙어서 체력이 달리고 건강하지 않으며 기억력이 나쁘다고 청년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차이가 없다. 여기서 차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 하는 말이더냐? 노인이든 청년이든 패괴 성품이 같고 여러 사물을 대하는 태도, 관점이 같으며, 여러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 역시 같다는 말이다. … 노인이 할 일이 없는 것도,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진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다. 네가 현세에서 축적한 여러 그릇된 견해와 황당한 논리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생각과 관념, 우매하고 완고한 것, 보수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치우친 것들이 마음속에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청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것들을 파헤치고 해부하여 인식해야 한다. 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은 네 임무도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먼저, 노인은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비록 나이가 많아 몸은 상대적으로 노화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젊어야 한다. 비록 네가 늙어 생각도 느리며 기억력도 나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는 네가 늙지 않았고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70, 80대가 되어서도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분량이 너무 작아 아직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진리 앞에서 나이의 구분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저는 그 하나님 말씀을 몇 번이고 읽었고, 볼수록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감찰하신다는 그 말씀은 바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나이가 많고, 몸도 아프고, 귀도 어둡고 눈도 침침하며, 기억력까지 나빠지자, 나이가 들수록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될까 봐 걱정하며 온종일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말씀을 다 읽고 나니 제 마음이 단번에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노년의 어려움을 아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런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하나님은 모두에게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비록 나이가 많지만 저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제게 임한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저의 패괴와 부족함을 인식하며, 진리를 추구하여 회개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노년의 패괴 성품이 젊은이들보다 결코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저는 교만한 성품이 매우 심해서, 때로 형제자매들이 제 문제를 지적하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생활에서도 가끔 며느리가 제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나서 권위적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패괴 성품이기에 제가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었습니다. 저는 할 일이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는 매일 집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읽을 수 있고, 제게 임한 사람과 일, 사물에서 진리를 구해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체험 간증 영상을 보며 형제자매들의 체험에서 공과를 배울 수도 있고, 체험 간증문을 써서 저의 진실한 체험을 기록하여 하나님을 증거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제가 해야 할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자 저는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며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지를 더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교회가 저에게 본분을 맡기든 안 맡기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매일 안심하고 앉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고, 어떤 일이 임해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섬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섬김 본분은 이행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 사람에게 최종적으로 이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몇 가지이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우선 진심으로 추구하고 능동적으로 향상하려고 노력해야지, 이 일을 소극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나이나 자격, 고난의 많고 적음으로 결말을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를 보십니다. 저는 스스로 나이가 많아 쓸모없어졌다고 생각해 하나님께 도태될까 봐 두려워했는데, 이는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결말을 정하시는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나 자질의 좋고 나쁨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저는 하나님 집을 이방 세계와 똑같이 보았습니다. 사회에서는 노인이 환영받지 못하고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으니, 하나님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저의 오해이자 모독이었습니다. 세상은 사탄이 권세를 잡고, 사탄 마귀는 사람을 자기에게 봉사하도록 이용하다가 늙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할 기회를 주시고,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하며 내면에 있는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십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추구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으셨고, 계속 말씀을 선포하시어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해 주셨으며, 일이 닥쳤을 때도 말씀으로 저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늙고 정신이 흐릿해지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기만 한다면, 설령 어느 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하나님 집에서 제명되거나 도태되는 일은 없습니다. 제 주변에도 저와 나이가 비슷한 노년의 형제자매들이 많이 있는데, 지금은 이렇다 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도 꾸준히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교회 생활을 하고 있고, 교회도 그들을 제명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어떤 젊은이들은 계속 본분을 이행했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심각한 패괴 성품이 줄곧 변화되지 않아 결국 온갖 악행을 저질러 교회에서 제명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실 때 젊고 늙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를 보십니다. 앞으로 본분이 있든 없든, 저는 하나님 말씀을 잘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며, 저의 부족함과 결점, 그리고 저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오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배 때, 자매님이 제 내적 상태를 알게 된 후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이며,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사람의 책임이자 의무이며,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본분을 이행하는 가운데 하나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체험하여 성품 변화에 이르러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해야만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늘 생각했는데, 이는 완전히 저의 관념이자 상상일 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본분을 적잖이 이행했지만, 본분을 이행하는 중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제 뜻대로 했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뜻이나 진리를 구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성품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리 본분을 많이 이행해 봤자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난 세월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앞으로는 닥치는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며, 진리를 추구하여 성품 변화에 이를 것입니다. 설령 나중에 정말 구원받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제 성품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제가 나이가 많아 하나님께서 저를 원치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더는 당신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마음과 뜻을 다해 당신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또 제 내적 상태에 맞춰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찾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거나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스스로 가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고, 복받으려는 속셈에 대해 인식이 있고 이미 포기했으며, 지금은 그런 속셈에 지배되거나 속박받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복받으려는 속셈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일을 바라볼 때 그저 겉면만 본다. 시련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사람은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긴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위해 계속 헌신하면 자기에게 변화가 있다고, 더는 열성과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할 수 있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해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실제적인 변화가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종착지, 결말과 직접 관계된 일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그때 본모습이 낱낱이 드러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지표> 중에서)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숨겨진 복 받으려는 속셈을 폭로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복과 이익을 얻기 위함이며, 겉으로 집과 생업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모두 하나님과 거래하기 위함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천국에 들어갈 희망이 생기자 열정적으로 헌신했고,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맡겨도 순종했으며, 매일 힘이 넘쳐났습니다. 나이가 점점 많아져 제가 할 수 있는 본분이 줄어들자, 저는 복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소극적으로 변했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에도 신경 쓰지 않았으며, 일이 생겨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매일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았습니다. 지난 세월 제가 본분을 이행한 것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향해 달려갔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것은 하나님과 거래하고 하나님을 속인 것이니, 너무나 비인간적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저는 약간의 진리를 깨달았고, 저의 사탄 본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며,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고심도 조금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하나님과 거래하려 했고, 복을 받지 못할 것 같으니 소극적이 되어 더는 나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제 또래들을 보면, 그들은 매일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할 뿐, 잡담이나 하고 카드놀이, 마작이나 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먹고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세월 동안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의미가 있는지를 깨달았고, 더 이상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찾으니 마음이 충실하고 평안해져,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하나님과 거래해서도 안 되고, 복을 받기 위해 추구해서도 안 됩니다.

얼마 후, 자매님이 저를 찾아와 섬김 본분을 계속 이행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고,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싶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말고도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 네가 멍청하거나 치매가 있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제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이상 네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청년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구할 수도 있다. 또한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진리 원칙을 구하여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걸어야 할 길이다. 자신이 나이가 많고 병치레가 잦으며, 육신이 노화되었다 하여 늘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해서는 안 된다. 근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네가 할 일이 아니다. 이는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 노인도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일상생활이나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늘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노인은 본업에 충실하지는 않고 자신의 연로함과 사후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느냐? 어째서 청년처럼 본분을 이행하거나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냐? 그런 기회가 네게 주어졌는데 움켜쥐지 않는다면 정말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앞가림을 할 수 없을 때 인생이 실로 덧없이 흘러가 버렸구나 하고 후회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지를 놓고 근심하고 걱정해서는 안 되며, 예전처럼 늘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제가 해야 할 일은 진리를 추구하여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정말 정신이 흐릿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될 때, 그때 가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 이미 늦지 않겠습니까? 저는 저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을 잡아 진리를 추구하여 성품 변화에 이르러야합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하나님 말씀을 건성으로 읽곤 했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나이가 많아 젊은이들처럼 기억력이 좋지는 않지만, 반복해서 읽고 많이 묵상하며,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구하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처럼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기 위해 힘써야하고, 저의 생명 진입에 집중해야합니다. 더는 곁길로 새면 안 됩니다. 근심 속에서 저를 이끌어 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로는 본분을 이행할 때나 가족과 지낼 때나,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실행했습니다. 저의 교만한 본성이 서서히 조금씩 변화되었고, 아들은 제가 예전처럼 고집부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무척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제가 이만큼이나마 변화된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일상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며 하나님을 증거하여 그분께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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