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향한 요구와 기대는 이기적인 것이었습니다

2025.12.8

중국 장후이신(張慧欣)

어릴 적 할아버지는 중국 전통극을 무척 좋아하셔서 저를 데리고 공연을 보러 다니셨습니다. 무대 위 배우들은 우아한 자태와 심금을 울리는 노랫소리로 객석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배우들이 부러웠는 저는 절로 이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무대에 서서 사람들의 박수와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 저는 극단에 들어가 훗날 전통극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여건이 되지 않았고, 제 무대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 저에게는 딸이 하나 생겼습니다. 딸이 유치원에 들어간 후, 저는 또래 아이들이 댄스 학원이나 음악 학원에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어린이날 무대에서 공연할 때면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박수갈채를 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저도 딸에게 춤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예쁜 몸매를 만들고 기품을 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공연할 기회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딸은 다리를 찢고 허리를 굽히는 것을 무서워하며 절대로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네 뜻대로 할 수는 없지. 언젠가는 꼭 재주 하나를 배우게 해서, 장차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해야지.’ 2012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며, 평생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예정과 안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딸이 무대에 서길 바라는 기대는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악기를 배우면 무대에 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딸을 데리고 악기점에 갔습니다. 하지만 딸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딸에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하나 골라야 해. 재주 하나는 배워야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기고, 그래야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단 말이야. 그때가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널 부러워하겠니!” 제가 화를 내자 딸은 마지못해 가야금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 딸이 배우지 않으려 하자, 저는 경험 많은 가야금 선생님을 찾아서 억지로 배우게 했습니다. 딸이 가야금에 흥미를 느끼도록 자주 격려했고, 선생님도 아이가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딸은 서서히 가야금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금세 몇 곡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딸이 기쁘게 말했습니다. “엄마, 앞으로 가야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어요!” 철이 든 딸의 모습을 보니 저는 무척 흐뭇했습니다.

그 후, 저는 딸의 무대 경험을 늘려 주기 위해 공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제가 나서서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오래 서 있지 못해도 딸의 연습에 꾸준히 동행했습니다. 딸은 실력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공연 쪽으로도 매우 뛰어나서 매번 무대의 중심에 섰고, 선생님과 심사위원들도 칭찬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아이의 공연을 따라 나서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준비했습니다. 아이를 챙기느라 밥도 거르기 일쑤였고, 하루가 끝나면 어지럽고 심신이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빛나는 딸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무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딸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가치 있는 일이야!’ 공연 준비가 힘들고 학업 스트레스까지 겹치자, 딸은 몸이 힘들어서 가야금 연습을 그만두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달래고 설득하자 딸은 마지못해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는 매일 딸이 하교하면 서둘러 가야금 연습을 시켰습니다. 주말에 딸이 놀러 나가고 싶어 하면, 반드시 연습을 마친 후에 나가도록 했습니다. 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야단쳤습니다. “아빠랑 내가 힘들게 먹을 것 쓸 것 아껴 가며 너 학원 보내고 가야금 가르치는 게 다 뭣 때문이니? 다 네가 나중에 무대에 서서 성공하라고 그러는 거잖아? 우리 체면 좀 세워 주면 안 되겠니!” 제가 성화를 부리고 화를 내자 딸은 울면서 연습하러 갔습니다. 중학생이 되니까 학업 부담이 커지고 스트레스도 심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늘 연습하고 각종 공연에 참가해야 하는 상황에 딸은 또다시 가야금을 그만두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딸을 꾸짖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연습은 계속해야지.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에 서는 건 평생의 자랑이잖니!” 그래도 딸이 연습하지 않자, 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책과 가야금 피크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습니다. “배우지 마! 커서 쓰레기나 줍고 살아!” 제가 정말 화가 난 것을 보고 딸은 서둘러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따금 딸은 억울해서 울면서 말했습니다. “왜 내 운명을 항상 엄마 마음대로 정하는 거예요?” 저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 아니니? 왜 그걸 모르니?” 딸도 화를 냈습니다. “난 가야금이 싫어요!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배운 거라고요!” 우리의 다툼은 매번 그렇게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공연과 예배 시간이 겹치면 저는 딸에게 공연에 먼저 참가하라고 했습니다. 딸이 예배에 가고 싶어 하자 저는 서둘러 말했습니다. “예배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지만 공연할 기회는 놓치면 안 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무대에 서서 얼굴을 내밀 좋은 기회를 잃는 거야.” 그렇게 딸은 여러 번 예배에 빠졌습니다.

그 후, 딸은 예술고등학교 진학에 성공했습니다.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동료와 친구들은 부러움과 칭찬의 눈빛을 보냈고, 제 허영심은 커다란 만족감을 얻었습니다. 딸도 점차 공부와 가야금 연주에만 몰두했습니다. 이상적인 음악대학에 합격하고 주변 친구들을 뛰어 넘기 위해, 딸은 밤낮없이 가야금 연습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저도 비싼 돈을 들여 개인 레슨을 시켰습니다. 딸의 연주 실력이 이전보다 향상된 것을 보고 저는 마음속으로 기뻤습니다. 딸이 방학 때 집에 돌아왔을 때, 저는 딸이 예배에 참석하기를 바랐지만, 딸은 숙제를 다 못 했다든가 가야금 연습을 아직 안 했다며 거절했습니다. 딸이 거의 1년 동안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저는 조바심이 났습니다. 하지만 숙제와 가야금 연습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말에 가야금 수업을 포기하고 예배에 참석하게 할까?’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 실력이 겨우 좀 늘었는데, 주말에 배우지도 않고 연습도 안 하면 다른 애들한테 뒤처지지 않겠어? 가야금 연습을 게을리해서는 안 돼. 하지만 오랫동안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생명에 손해를 볼 텐데.’ 저는 고민 끝에 시간을 내서 딸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루는 딸이 제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학교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연애하고, 더러는 조직폭력배와 어울리기도 해서 도무지 공부에 집중할 수 없고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렵게 예술 학교에 합격했잖아. 2년만 더 노력하면 예술 대학에 갈 수 있어. 일단 합격만 하면 더 큰 무대의 꿈이 이루어지는 거고, 그때가 되면 친척, 친구, 선생님, 동급생들이 모두들 우러러보고 부러워할 거야. 나도 덩달아 기를 펼 수 있을 거고.’ 그래서 저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어렵게 예술고등학교에 합격했는데, 그만두면 네 밝은 앞날이 다 사라지는 거 아니니?” 딸은 제가 성화를 부리고 화내는 모습을 보고 울면서 학교에 갔습니다. 억울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저도 마음이 아팠지만, 딸이 무대에 서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번은 예배에서 제 내적 상태를 리링(李玲) 자매에게 이야기했더니,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녀가 어릴 때 사악한 흐름 속에서 생겨난 일을 보거나 잘못된 주장, 사상 관점을 듣는다면 분별력이 없어서 그것들을 따르고 모방할 수 있다. 이럴 때 부모는 바로 알아채서 가능한 한 빨리 바로잡아 주고 올바르게 지도해 주어야 한다. 이 또한 부모의 책임이다. 요컨대, 자녀가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혹은 사람으로 처신하고 남들을 대하고 각 부류의 사람과 일,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긍정적이며 올바른 발전 방향을 갖게 해서 나쁜 방향이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방인들은 “생사는 운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람이 평생 얼마나 누리고 얼마나 고생할지는 전부 하나님이 정한 것으로, 사람은 바꿀 수 없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 주는 한편, 사람이 평생 육의 먹고 입는 것을 위해 살아가서도, 더욱이 향락을 위해 살아가서도 안 된다는 것을, 먹고 마시고 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오직 육적으로 먹고 마시고 노는 것과 향락만 위한다면 그런 사람은 산송장처럼 삶에 아무 의미도 없으며,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런 사람은 살아갈 자격도, 사람으로 처신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자녀가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바른 일을 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물론, 자녀가 하나님이 택한 대상이며, 성년이 된 후 교회 생활을 하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자녀가 그런 사람이라면 부모는 마땅히 하나님이 알려 준 원칙대로 미성년 자녀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이가 하나님을 믿을지, 하나님이 택한 대상인지 모르겠다고 해도 최소한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다해야 한다. 네가 모르는 것, 밝히 알지 못하는 것이 있어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최대한 부모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네가 알고 있는 긍정적인 사상과 사물을 자녀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의 심적 성장이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고, 건강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의 기대와 양성, 또는 압박 속에서 각종 기술이나 지식을 배우게 해서는 안 된다. 심각한 경우, 어떤 부모는 자녀와 함께 각종 문예 대회, 지식 대결, 기술 경기에 참가하며, 사회의 각종 트렌드를 따라 기자 회견이니 사인회니 세미나니 무슨 대회니 시상식이니 하는 등에 참석하기도 한다. 부모라면 최소한 자녀가 자신과 함께 이런 일을 하지는 말게 해야 한다. 만약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이런 일을 한다면 이는 분명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대놓고 자녀를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이끄는 것이며, 자녀의 마음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이런 부모는 자녀를 어디로 이끌겠느냐? 사악한 흐름 속으로 이끈다. 이는 부모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이 밖에, 부모는 자녀가 장차 걷게 될 길이나 종사하게 될 직업에 대해 “저 피아니스트를 좀 봐. 저 사람은 네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대. 놀지도 않았고, 친구도 장난감도 없이 매일 피아노만 연습했다지. 부모가 피아노 수업에 데려가고, 선생님들을 찾아 주고, 온갖 피아노 대회에 참가시켰대. 봐 봐, 얼마나 성공했니. 생계 걱정도 없는 데다가 어디를 가든 환영받고 존중받잖아.”라는 말 따위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 이런 교육이 자녀를 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키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어떤 교육이겠느냐? 마귀식 교육이다. 어린 마음에 이런 교육은 일종의 학대이다. 이런 교육은 아이가 명인이나 각종 영광, 명예, 지위, 누림을 동경하게 하고,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을 지향하고 추구하게 하며, 그것을 위해 초조해하고 속 끓이고 걱정하고 심지어는 온갖 대가를 치르게 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거나 각종 예체능을 배우느라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게 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어린 시절의 시간을 지불하고 그것을 얻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부모의 진정한 책임은 아이가 미성년일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즐겁게 성장하도록 돕고, 긍정적인 사상으로 인도하며 어린 시절을 누리게 하는 것이지, 자신의 기대를 아이에게 강요하며 아이를 유명인으로 만들려 애쓰고 각종 명예와 영광, 지위, 향유를 추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어릴 때부터 악기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저는 딸이 장차 유명해져서 어디서든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억지로 가야금을 배우게 했습니다. 딸이 심사위원과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을 때면,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마침내 딸을 통해 이루었다고 느끼며 딸을 키우는 데 더욱 열을 올렸습니다. 공연 소식이 들릴 때마다 딸의 동의도 없이 참가 신청을 했고, 딸이 무대에 서서 얼굴을 알릴 기회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딸이 놀고 싶어 할 때마다 연습을 게을리할까 봐 꾸짖었습니다. 딸의 연주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전문 강사를 고용한 것도, 아이를 유명하게 만들어 제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아이의 여린 마음이 얼마나 큰 압박과 고통을 받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제 소원을 이루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저의 교육 방식 때문에 딸은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매우 중시하게 되었고, 주변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 밤낮없이 연습하며 본래의 활발함과 순수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모녀 사이에는 벽이 생겼고, 딸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거나 예배에 참석할 마음도 없이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제가 초래한 것입니다. 아이는 예전에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기를 원했는데, 저는 아이가 하나님을 믿으며 바른길을 걷게 하지는 않고, 오히려 아이를 사악한 흐름 속으로 이끌어 끊임없이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게 했습니다. 그게 어디 어머니의 책임을 다한 것이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저의 강압적인 교육이 아이에게 이토록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무척 후회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보았다고 해 보자. 너는 그런 삶의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너는 자식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있겠느냐? 또 돈과 명리를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았다고 해 보자. 너는 마음속으로 그 길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너는 돈과 명리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네가 걷는 길이 곧 명리를 추구하는 길이고, 그것이 잘못된 길임을 알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한다. 너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너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람이 참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정신을 어느 곳에 의지하겠느냐? 단란한 가정, 행복한 혼인, 물질적 향락, 금전, 명리, 지위, 감정, 사업, 그리고 후손의 행복, 이런 일들에 의지한다. 모든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다 이러한 것들 아니겠느냐?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에게 의지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과 혼인, 사회적 지위와 명리에 의지한다. 그래서 생겨나는 삶의 방식이 모두 같은 것이다. 모두 사탄의 권력과 통제 아래에서 자기도 모르게 명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앞날, 사업, 혼인, 가정, 후손, 육적 향락,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내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겠느냐? 인류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바쁘게 지내고 사업이 아무리 성공했다 한들, 가정이 아무리 행복하고 가족이 아무리 대가족이라 한들,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인생의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겠느냐? 인류가 명리와 세상을 좇고 사업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고 인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 이는 불가능하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길을 걷든 만약 그가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가 걷는 길은 잘못된 길이고 올바른 길이 아니며 비뚤어진 길이자 사악한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고통스럽게 하며, 사람에게 ‘출세하고’,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가문을 빛내야 한다’는 사상 관점을 주입하여 끊임없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게 만들고, 그것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사악해지고 고통스러워지게 한다는 것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전통극 배우가 되어 무대에 서서 사람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받고, 지위와 명성을 얻기를 갈망했습니다. 제 꿈이 이루어지지 않자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후, 저는 제 꿈을 딸에게 강요하며 억지로 가야금을 배우게 했고, 장차 딸이 무대에 서서 빛이 나기를 바랐습니다. 딸이 가야금 배우기를 싫어하는 것을 보고 저는 성화를 부리며 화를 냈습니다. 딸이 예배에 참석하고 싶어 할 때, 저는 딸의 연습을 방해할까 봐 막았습니다. 이게 어디 엄마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겠습니까? 그야말로 악행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지만 추구하는 관점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사탄의 사상 관점으로 살면서 이방인처럼 명예와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심지어 딸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게 되더라도 딸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여 제 허영심을 만족시키기를 바랐습니다.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고 판단력이 흐려져 저 자신도 고통스러웠고, 아이도 해쳤습니다. 명예와 이익은 바로 사탄이 제게 씌운 보이지 않는 족쇄였고, 저희에게 끝없는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연예계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지만 마음의 공허함과 고통 속에서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예인들을 생각해보니, 지위와 명성을 얻는다 해도 잠시 허영심을 만족시킬 뿐, 내면의 공허와 고통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들어, 결국 사탄에게 삼켜지는 결말을 맞게 할 뿐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더 이상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부모가 자식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하는 모든 것은 다 양심과 이성에 위배되는 일, 자연 규칙에 위배되는 일, 더욱이 하나님의 예정과 주재에 위배되는 일이다. 미성년자는 비록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과 문제를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없지만 그의 운명은 여전히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다.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부모들은 이런 점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생각과 의식 속에서 자식에게 기대를 품을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더 많은 대가를 치러 자식을 위해 자신이 하고자 하고 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일을 한다. 돈이든, 시간이든, 에너지든 모두 기꺼이 쏟아붓는다. 비록 부모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들이지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느냐? 만약 자식을 해친다면 그것은 인도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행동은 결코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이 아니며 이미 부모가 다해야 하는 책임의 범위를 넘어섰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왜냐하면 부모는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부터 그들의 미래를 계획하고 통제하며 결정하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한 사람을 평범한 노동자로 정해 놓으면 이번 생에 그는 얼마 되지도 않는 기본적인 임금이나 벌어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부모는 기어코 그를 유명 인사, 부자, 고위 관료로 만들기 위해 그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그의 미래를 계획하고 안배해 두며, 그를 위해 소위 다양한 대가를 치르며 그의 인생과 미래를 통제하려고 한다. 이는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저는 이 말씀을 반복해서 읽으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제가 딸에게 가졌던 기대와 딸을 위해 쏟았던 노력은 모두 인성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예정과 주재를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자녀의 운명은 부모가 주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예정에 순종해야 했으며, 딸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강요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람이 평생 무엇을 하고,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예전에 전통극 배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운명조차 바꿀 수 없으면서 딸의 운명을 바꾸려 했으니, 저는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의 본질을 해부해 보면, 부모의 기대는 이기적이고 인성에 위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모의 책임과도 관련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여러 가지 기대와 요구를 하는 것은 자식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지 결코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은 무엇이겠느냐? 최소한 자식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말을 하며 정직한 일을 하라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 밖에, 자식의 자질과 조건에 따라 실용적인 지식이나 재능 등을 배우도록 지도해야 한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달았다면 자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창조주를 인식하도록 해야 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고 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자식이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도록 이끌어 어른이 된 이후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좇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인간관계에 빠지며 이 세상의 온갖 사악한 흐름에 유혹되고 패괴되고 짓밟히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은 바로 부모라는 역할을 하면서 자식이 미성년자인 기간 동안 자식을 긍정적으로 인도하고 적절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 밖에, 자식의 육적 생활 측면에서 의식주를 제때 보살펴 주어야 한다. 아이가 병에 걸려서 치료해야 하면 곧장 치료해야지 학업에 지장을 줄까 봐 치료는 포기한 채 계속 학교에 보내서는 안 된다. 병을 치료해야 하면 치료에 전념하게 해야 하고 쉬어야 하면 쉬게 해야 한다. 아이의 건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학업에 지장이 생기면 방법을 찾아 다시 보충하면 된다. 이것이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한편으로는 자식이 지식을 잘 배우도록 도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가 바른길로 가도록 지도하고 교육해야 한다. 자식이 사회의 좋지 않은 풍조에 영향받지 않고 건강한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절한 운동을 하며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이런 것이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어떤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거나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필요로 하는 측면과 육적 생활이 필요로 하는 측면 모두에서 부모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니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이전에는 아이가 다양한 재능을 배워 유명한 무대에 서서 이름을 떨치고 사람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받게 하는 것이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진정으로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이의 마음이 건강하고 즐겁게 자라도록 하고, 긍정적인 사상 관점을 심어 주며, 올바른 인생 목표를 갖게 하고, 아이의 흥미와 취미에 따라 아이를 키우며, 하나님의 예정과 주재에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생활적인 면에서는 의식주에 대해 보살펴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에게 어떤 음식이 건강에 좋고 어떤 음식이 해로운지 알려 주고, 아이가 아플 때는 보살펴 주고, 필요하면 약을 먹이고 주사를 맞혀야 합니다. 아이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돌보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분주하게 뛰어다닌 것은 겉보기에는 딸을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딸이 제 체면을 세워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심지어 딸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빼앗고, 딸이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막기까지 했으니,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강압적으로 억누르고 주입식으로 교육할 것이 아니라 딸의 자질과 흥미, 취미에 따라 가르쳐야 했습니다. 또한, 저는 딸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아이가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고, 세상의 온갖 사악한 흐름에서 멀어지게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뒤, 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딸을 데리고 각종 공연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딸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도록 인도하고, 딸과 함께 더 많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 후, 저와 딸은 예배에서 <안녕, 나의 푸르던 교정>이라는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딸은 뮤지컬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고, 사탄이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딸은 오직 본분을 다하는 것만이 인생의 바른길을 걷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루는 딸이 하교 후에 제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학교생활이 너무 답답해요. 저도 형제자매들처럼 자유롭고 해방된 삶을 살고 싶어요. 학업을 포기하고 교회에서 본분을 다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학업을 포기하면 무대의 꿈은 완전히 건너가고, 예전의 노력이 다 헛수고가 되는 거 아니야?’ 그 순간 저는 제가 여전히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딸이 학업을 포기하겠다니, 제 마음속에 아직 미련이 남습니다. 하나님, 제게 의지를 주시고 명예와 이익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기도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의 본질을 해부해 보면, 부모의 기대는 이기적이고 인성에 위배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지금 너희 중 누가 하나님 집에서 우연히 본분을 이행한 것이냐? 어떤 배경에서 나와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아무나 몇 명 찾는다고 해서 그들이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해 놓은 것이다. 정해 놓았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자세한 내용은 어떻게 되느냐?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전체 경륜 안에서 일찍부터 계획해 놓았다는 뜻이다. 네가 몇 번 인간 세상에 올지, 말세에 네가 어느 집안,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지, 네 가정이 어떤 조건일지, 네가 남자일지 아니면 여자일지, 어떤 특기가 있고 교육 수준이 어떨지, 네 말주변이 어떻고 자질과 외모가 어떨지, 네가 몇 살에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 이행을 시작할지, 언제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하나님은 일찍부터 하나하나 정해 놓았다. 네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네가 전생에 여러 번 인간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은 네가 마지막 단계 사역에서 이행해야 할 본분을 모두 안배해 놓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이 언제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다하게 될지는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딸이 언제 본분을 다할 수 있을지도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저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딸이 하나님을 따라 본분을 이행하기로 선택한 이상,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안배이므로, 마땅히 아이를 긍정적으로 인도하여 바른길을 걷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다해야 할 책임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저는 흔쾌히 딸의 요구에 응했습니다. 곧 딸은 학업을 포기하고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예전의 밝고 환한 모습을 되찾은 것을 보니 저 역시 기뻤습니다. 그리고 오직 창조주의 예정과 안배에 순종해야만 해방되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돈과 명예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두 단락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와 의미에 대해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은 전부 헛된 것이며 기념할 가치가 없다. 네가 경천동지하는 큰일을 하고, 하늘과 달에 올라가 봤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네 과학 연구의 성과가 인류에게 약간의 이익과 도움이 되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다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지 않는 유일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오직 하나님에 대한 증거만이, 창조주를 증거하는 모든 작품들, 간증, 그리고 사람의 선행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너무나 가치 있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말고 큰 뜻을 펼쳐 나가야 한다.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의 구속도 받지 말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여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심혈을 본분 이행에 쏟아부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이니, 아무리 많은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너무나 가치 있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중에서), 『지금 너는 하나님을 따라가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창조주가 맡긴 부탁을 받아들이고 있다. 때로는 좀 어렵고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모욕당하고 연단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다. 네가 결국에는 무엇을 얻겠느냐? 진리와 생명을 얻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너에 대한 창조주의 인정과 긍정을 얻게 된다. 하나님이 “네가 나를 따르니, 너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는 네가 피조물이라고만 말한다. 이는 네가 헛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인정하는 것이니 대단한 것 아니겠느냐?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만약 사람이 사탄을 따르면 무엇을 얻겠느냐? (멸망입니다.) 멸망하기 전에 사람은 무엇으로 변하느냐? (마귀가 됩니다.) 사람이 귀신이 된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주를 배우고, 많은 돈을 벌고, 많은 명예와 이익을 얻고, 많은 물질과 대우를 누린다 하더라도, 또 세속에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내면은 나날이 패괴되고 점점 사악해지고 더러워지며, 갈수록 더 거역하고 위선적이게 된다. 결국에는 산 귀신, 비인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창조주의 눈에 어떻게 보이겠느냐? 그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냐? 이러한 사람에 대한 창조주의 관점과 태도는 무엇이냐? 반감을 갖고, 역겨워하고, 혐오하고, 포기하며, 마지막에는 저주하고 징벌하며 멸망하게 한다.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걸으니, 마지막에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어떤 길을 택하겠느냐?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선택은 옳은 길을 선택한 것이며, 이로써 광명의 길로 나가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야만 진리를 얻고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사탄을 따르는 길이고, 설령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며, 결국 멸망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지금 저와 딸은 모두 본분을 다하며, 사회의 온갖 시험과 사악한 흐름의 해악에서 멀어졌습니다. 딸은 더 이상 답답함과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제 마음도 편안하고 해방되었습니다. 딸이 본분을 다하다 어려움을 만나면 형제자매들이 사랑으로 도와주고, 모두 진심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딸에게 좋지 않은 습관이 있을 때도, 자매님들이 인내심을 갖고 지적하고 도와주어, 반년도 안 되어 딸은 많은 나쁜 습관을 고쳤습니다. 때로는 딸이 제 문제를 보고 먼저 제게 진리를 교제해 주기도 했습니다. 딸이 바른길을 걷고, 이렇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아니었다면, 저와 딸은 모두 사탄의 고통 속에서 살며,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결국 사탄과 함께 멸망했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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