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독립할 수 있도록 어떻게 놓아줄 것인가

2025.9.26

중국 친웨(秦悅)

저는 어릴 때부터 늘 어머니 곁에서 살며, 어머니께서 저희 형제자매의 직장과 결혼, 생활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저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뒤에도 어머니께서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손주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자녀를 다 키우신 것은 물론 손주들까지 하나하나 키워 내셨고, 그런 모습은 가족의 존경과 주변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어머니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고, 본받아야 할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점차 제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2005년, 저는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번에 성육신하여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며, 우리가 죄의 근원을 알게 하시고 패괴 성품을 벗어 던지도록 하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을 알고 무척 감격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오지 못한 것을 보고, 저 역시 복음을 전하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2013년, 저는 복음을 전하다 악인에게 신고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23년 4월, 집에 잠시 들렀다가 어머니를 통해 딸이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딸이 사는 도시로 가서 마침내 딸과 재회했습니다. 딸은 한번은 시누이와 한방에서 자는데, 꿈속에서 계속 “엄마… 엄마…” 하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찡해 왔습니다. 딸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동안 곁에 있어 주지 못해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는 진심으로 그곳에 남아 딸을 도와주고 더 따뜻하게 보살펴 주며 이전의 빚진 마음을 갚아 주고 싶었습니다. 남편도 저에게 남으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다른 본분으로 바꾸어 딸 곁으로 돌아가면 딸을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딸은 몸이 약해서 아이를 돌볼 수 없으니, 지금이야말로 내 도움이 필요할 때야.’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복음을 확장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교회 리더로서 처리해야 할 사역이 많았고, 당장 제 본분을 대신할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습니다. 만약 제가 교회 사역을 제쳐 두고 집에서 가족을 돌본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한쪽은 교회 사역, 다른 한쪽은 딸의 어려움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몹시 갈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 곁에 있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많이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딸과 교제하는 한편,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았으며, 밤에는 일어나 손녀에게 분유를 데워 먹였습니다. 매일 밤 제대로 쉬지 못하고 때로는 땀으로 얼굴이 흠뻑 젖고 허리와 등도 쑤시고 아팠지만,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렀습니다. 며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어느덧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남고 싶었지만, 제 본분을 생각하며 결국 떠났습니다. 그 후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마음은 늘 돌아가서 딸을 돌볼 생각에 사로잡혀 본분에 대한 부담감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점검해야 할 사역이나 형제자매의 문제를 봐도 그저 간단하게만 교제해주었고, 마음을 써서 해결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 본분을 대신할 적임자를 빨리 찾아 딸을 돌보러 돌아갈 기회를 가지려 했습니다. 제가 미적지근하게 본분을 대하는 바람에 복음 사역과 양육 사역 모두 제때 점검하지 못했고, 결국 사역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윗선 리더는 제가 본분에 부담감이 없다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딸에게 빚진 마음에 사로잡혀 사역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사역에 영향이 갔음을 반성했습니다.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하나님 앞에 나아 와 제가 가족에 대한 감정에서 벗어나 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이끌어달라며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저는 늘 제 아이가 마음에 걸려요. 걔는 태어나길 약골로 태어났어요. 선천적으로 야무지지 못하고 겁도 많죠. 자질도 떨어져서 사회에서 늘 괴롭힘을 당해요. 그래서 마음이 안 놓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네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네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네 감정이 작용했을 뿐이다. 너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저는 아이가 늘 마음에 걸리고 걱정돼요. 밥은 잘 먹는지, 속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식사를 규칙적으로 안 한 지 오래되고 늘 배달 음식만 시켜 먹으면 위장병이 생기지는 않을지, 병에 걸리지는 않을지, 아플 때 보살펴 주고 챙겨 주는 사람은 있는지, 배우자가 관심을 갖고 돌봐 주는지 말이에요.” 네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그저 감정과 혈연관계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너의 책임은 아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부여한 책임은 그저 자식이 미성년자일 때 그를 부양하고 보살피는 것뿐이다. 자식이 어른이 되고 나면 부모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책임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측면에서 본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네가 얼마나 감정에 휘둘리든, 어느 시점에 너의 모성애가 크게 표출되든 그건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감정의 작용일 뿐이다. 감정의 작용은 인성의 이성이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쳐 준 원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에 대한 사람의 순종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의 책임에서 비롯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감정이라고 한다. … 너는 감정에 사로잡혀 살고 정으로 자식을 대하는 것이지 부모의 책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이 모든 것을 느끼고 바라보고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명백히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알려 준 책임은 자식이 어른이 되고 나면 모두 끝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알려 준 이 실행법은 수월하고 간단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면 헛수고할 일이 없고 자식에게 어느 정도 자유와 단련할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들을 번거롭게 하거나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기분을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어른으로서 그들이 어른의 시선으로, 어른의 독립적인 일 처리 방식이나 일을 바라보는 방식, 독립적인 세계관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주하고 자신의 생활과 생존 과정에서 부닥치는 여러 문제를 마주하도록 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자유이자 권리이며 더욱이 그들이 어른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다. 너와는 관련이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부모는 자식이 공짜로 부리는 가정부나 노예도 아니다. 자식에게 어떤 기대를 품든 부모는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식에게 함부로 부림을 당하는 하인, 식모,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식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부모 역시 독립된 사람이다. 그가 너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가 어른이 된 이후의 생활을 당연한 듯 책임져서는 안 된다. 그럴 필요 없다. 그가 어른이 되었으니 너는 그를 부양하는 책임을 다한 것이다. 그가 앞으로 잘 살지 못 살지, 부유할지 가난할지, 즐겁게 생활할지 불행하게 생활할지 등은 그 자신의 일이지 부모와는 관련 없다. 부모는 이 모든 것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 … 부모 역시 자식이 어른이 된 후 자식의 일이 잘 풀리는지, 사업이 잘되는지, 가정이 화목한지, 그리고 결혼 생활이 순탄한지 여부에 대한 책임을 전부 부모 자신이 짊어져서는 안 된다. 너는 관심을 갖고, 물어볼 수는 있지만 모든 책임을 떠맡고 자식을 자기 곁에 묶어 둔 채 가는 데마다 데려가고 어디에 가든 다 지켜보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늘도 밥 잘 먹고 즐겁게 지내고 있을까? 일은 잘하고 있겠지? 상사가 예쁘게 봐 주려나? 며느리(사위)가 걔를 사랑하겠지? 우리 손주는 말 잘 듣고 있겠지? 학교에서 공부는 잘하려나?’ 이런 것들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자식의 일은 자식 스스로 해결하면 되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왜 물어보겠느냐? 정말로 너와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너는 자식에게 책임을 다했고 그가 클 때까지 정성 들여 길렀다. 그러니 너는 이제 물러나야 한다. 물러난다고 해서 네가 할 일 없이 한가한 것도 아니다. 너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네가 이번 생에 완수해야 할 사명에 있어 자식이 어른이 될 때까지 정성 들여 기르는 것 외에도 완수해야 할 다른 사명이 또 있다. 너는 네 자식의 부모일 뿐 아니라 피조물이기도 하다.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에게 와서 너의 본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너의 본분은 무엇이겠느냐? 너는 본분을 완수하였느냐? 전력을 다했느냐? 구원받는 길에 들어섰느냐? 너는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자식이 어른이 된 후 어떤 길을 갈지, 어떻게 생활할지, 형편이 어떨지, 기쁘고 즐거울지는 부모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형식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는 이미 독립했다. 너도 그를 독립적이 되게 하고, 그만 놓아주어야지 통제해서는 안 된다. 형식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육체적 혈연관계 차원에서든 너는 이미 책임을 다한 것이고, 더 이상 그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 그들이 독립했다는 것은 너는 책임을 다했다는 뜻이다. 여건이 허락하는 상황에서 네가 그들에게 무엇을 하든, 그들에게 관심을 갖든, 그들을 보살피든 그것은 그저 정인 것이고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혹은 그들이 자식으로서 너에게 무엇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부수적인 것이지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이 점을 알아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해 보니, 저는 자녀 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제 감정에 따라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책임은 자녀가 미성년일 때 양육하고 돌보는 의무를 다하는 것에 불과하며,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책임도 끝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라면 마땅히 자녀를 계속 돌봐야 하고, 자녀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곁을 지키며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고, 따뜻함과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어머니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특히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곁에 있어 주지 못해 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딸에게 빚진 마음이 들어, 그래서 더더욱 곁에 남아 돌봐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처럼 잘못된 관점으로 살며 이성적으로 문제를 보지 못했습니다. 딸은 이미 성인인데도 저는 계속 딸을 돌보고 싶어 했고, 심지어 본분을 조정해서라도 딸 곁에 남으려 했습니다. 그 결과, 본분을 형식적으로만 이행했고 온 마음을 쏟지 않았으며, 일부 사역은 리더가 일깨워 주고 재촉해야 해서 사역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저는 늘 딸의 일을 모두 떠안으려 했고, 딸이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으니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감정이 너무 앞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야 저는 제 책임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딸은 32살로, 이미 오래전에 성인이 되었고, 혼자서 생각하고 생활할 능력이 있습니다. 딸 또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직접 겪고 체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딸의 무료 보모가 아니며, 제 평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딸에게 쏟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실 아이에게 여러 어려움이 닥치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며, 오히려 그들에게 유익합니다. 저는 놓아주는 법을 배워 아이가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딸을 유난히 아꼈습니다. 딸이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모든 집안일을 조금도 시키지 않았더니, 다 큰 후에도 밥을 할 줄 몰랐습니다. 이번에 집에 돌아가 보니 딸은 닭곰탕 끓이는 법도 배웠고, 여러 가지 생활 속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가 집에 있었다면 모든 일을 도맡아 했을 것이고, 딸은 여러 방면에서 단련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로서 놓아주는 법을 배워 딸에게 성장하고 단련할 기회를 주어야 했습니다. 저는 피조물이지, 자식의 보모가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가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으며,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

저의 잘못된 사상 관점에 대해 인식하게 된 후, 저는 또 묵상했습니다.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이 잘못된 관점은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이 현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다.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사람의 사상 관점에는 전통문화의 요소가 적지 않다. 특히 전통문화는 여자에게 남편을 돕고 자식을 가르치며 현모양처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아가며, 가족들 세끼 식사 준비와 뒷정리를 비롯한 모든 집안일을 훌륭히 해내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의 기준이다. 여성들도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심에 어긋나고 도덕 기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도덕 기준에서 벗어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남편과 자식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서 진리를 이해하고 일을 간파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피조물이니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이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과 현모양처가 되는 일이 부딪히지 않느냐? 현모양처가 되려면 본분에만 전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본분에만 전념하려면 현모양처가 될 수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책임 있게 교회 사역을 대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을 택한다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럴 때 너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네 사상에는 어떤 파동이 일겠느냐? 네 자식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겠느냐? 너의 그런 미안함과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드느냐? 미안함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면 그것은 네 마음과 네 사상 속에 진리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네가 이해한 바는 무엇이냐? 전통문화이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네 사상 속에는 현모양처가 못 되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바른 여자가 아니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너는 이 관념에 얽매이고 사로잡혀 하나님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여전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분 이행과 현모양처 되는 일이 부딪혔을 때, 너는 비록 마지못해 본분을 택하거나 하나님께 충성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틈이 생기면 자식과 남편에게 더 많이 보상해 주려는 마음에 여전히 그들을 챙길 기회를 찾는다. 설령 본인이 더 고생스럽더라도 마음만 편하면 된다. 이것은 전통문화 중에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일이 아니냐? 너는 지금 양다리를 걸친 채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고 싶고 현모양처도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책임과 의무, 너희의 사명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하나뿐이다. 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였느냐? 어째서 또 다른 길로 빠지려 하느냐? 설마 네 마음속에 죄책감도 참소도 없단 말이냐? 진리가 아직 마음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고, 마음에서 진리가 권세를 잡지 못한 까닭에 너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다른 길로 빠진다. 비록 지금 본분을 이행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사실 진리의 기준, 하나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했던 하나님 말씀은 무슨 뜻이냐?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부모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대자연에서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단지 우리 육만 부모를 빌려서 나왔고, 우리 자식은 우리를 빌려서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자 하나님이 정한 운명,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사람의 일생에서 반드시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너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아니다. 사람이 볼 때 너는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주부, 효녀, 사회의 선량한 시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 자신의 의무와 본분을 전혀 다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도 완성하지 못한 사람, 도중에 포기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눈곱만큼의 가치도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스스로 돌아보며 문제점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중공의 박해로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느라 딸을 돌보지 못했고, 딸에게 빚진 마음을 가진 상태로 살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자는 마땅히 남편과 자녀를 중심으로 살며 그들의 하루 세끼와 생활 전반을 돌보고, 심지어 자녀의 다음 세대까지 돌봐 키워 내야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나쁜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모양처’는 대대로 여성의 덕행을 가늠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저 또한 당연히 제가 그 아이를 키우고 그들의 의식주를 세심히 돌봐주며, 딸이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야말로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딸이 이런 것들을 누리지 못하자, 저는 마음속으로 딸에게 빚을 졌다고 느꼈고, 본분을 조정해서라도 딸 곁으로 돌아가 더 많이 돌봐 주고 싶어 본분을 이행할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충성하지도, 순종하지도 않았고, 가족과 딸의 위치가 제 마음속 하나님의 위치보다 더 높았습니다. 이런 제가 어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습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설령 제가 딸을 아무리 잘 돌봐 준다 해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진리를 추구할 시간과 에너지 없이 온종일 분주하게 육적인 감정 속에서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죽는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생명을 주셨고, 가정과 딸을 주셨으며, 또 은혜를 베푸시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진리를 깨달아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각종 사람과 일을 분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루빨리 사탄의 패괴와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를 얻고, 마침내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고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통 제 딸과 가족의 이익만 생각하며 교회 사역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적으로 살며 본분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도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조차 없었으니, 정말 양심과 이성이 없고 사람이라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저는 사탄의 전통 사상에 너무 깊이 물들었고, 진리가 없으니 참으로 불쌍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인이 된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늘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고 싶어 하고, 자녀가 받는 고통을 대신해 주려고 하며, 기꺼이 그들의 노예가 되려고 한다면 이는 불필요한 것 아니겠느냐? 그럴 필요는 없다. 이는 이미 부모의 의무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 모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므로 평생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릴지, 어떤 가정과 결혼, 자녀를 갖게 될지, 이 사회와 인생 속에서 어떤 일들을 겪을지 자녀 스스로도 예측하거나 바꿀 수 없으며, 부모는 더더욱 바꿀 능력이 없다. 그러니 자녀에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부모가 도와줄 능력이 있다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에서 도와주되, 그럴 능력이 없다면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피조물의 입장에서 그 일을 대하고, 자녀를 자신과 같은 선상에 있는 피조물로 대하는 것이 좋다. 네가 겪은 고난과 인생을 그들도 겪어야 하고, 네가 미성년 자녀를 양육한 과정을 그들도 겪어야 한다. 또 네가 사회와 사람들 사이에서 겪은 갖가지 우여곡절, 사기와 기만, 감정적 갈등, 인간사의 갈등 등을 그들도 겪어야 한다. 자녀 또한 너처럼 패괴된 인간이며, 이 사악한 흐름에 휩쓸리고, 사탄에게 패괴되었다. 네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듯이 자녀 역시 거기에서 벗어날 힘이 없다. 그러므로 자녀가 어떤 고난도 겪지 않고 세상의 모든 복을 누리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은 허황된 망상이자 어리석은 생각이다. 매의 날개가 아무리 커도 새끼 매를 평생 지켜 줄 수는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새끼 매가 홀로 날아가야 할 때가 온다. 새끼 매가 홀로 날아갈 때, 그것이 날아올라 향하려는 하늘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자녀가 성인이 된 다음, 부모의 가장 이성적인 태도는 손을 놓아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체험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인생의 각종 문제를 혼자 직면하고 처리하고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자녀가 도움을 청할 때 네가 능력과 조건이 된다면 당연히 손을 뻗어 필요한 도움을 주어도 된다. 하지만 너는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네가 자녀에게 어떤 도움을 주든, 금전적인 도움이든 정신적인 도움이든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어떤 실질적인 문제도 바꿔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녀의 인생길은 그들 스스로 걸어가야 한다. 너는 자녀 대신 어떤 일도, 어떤 결과도 책임질 의무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가져야 할 태도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너의 시간과 에너지, 생각이 진리와 원칙에 점유되어 있다면, 네가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지,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갈지 등 긍정적인 사물들만 생각한다면, 너의 에너지와 시간을 모두 이런 긍정적인 사물들을 위해 쓴다면 너는 다른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너는 가장 실속 있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갈지, 어떻게 처신할지, 어떻게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마주할지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마주할지 알게 되면 너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자연스럽게 순종할 줄 알게 되면 너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이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어쩌면 너는 알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과정에서, 네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너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게 되고, 너는 너도 모르게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신뢰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에너지와 시간, 세월을 쏟으면 결국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성인이 된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정하신 것이며, 자녀가 평생 어떤 고난을 겪고 어떤 복을 누릴지는 모두 하나님의 안배에 달려 있어 부모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된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녀를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사탄에게 패괴된 세상에 태어나 어지럽고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겪고 맛보았습니다. 자녀 또한 마찬가지로 똑같이 겪으며 여러 어려움에 맞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만약 자녀가 정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자녀를 도와주거나 잘 타이르면 됩니다. 시간이 있다면 자녀의 아이를 돌봐 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없다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자신의 본분이 있으며, 피조물로서는 마땅히 복음 사역을 위해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024년 6월, 저는 몇 가지 일을 처리하러 집에 갔다가 딸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가정의 경제적 부담도 커서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위는 외지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아직 살 곳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고생할까 봐 걱정되어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방법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제 어려움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딸의 말을 듣고 나니 저는 조금 부끄러워졌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가 겪은 고난과 인생을 그들도 겪어야 하고, … 자녀가 어떤 고난도 겪지 않고 세상의 모든 복을 누리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은 허황된 망상이자 어리석은 생각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그래, 딸은 이제 다 컸고 자립했어. 더 이상 딸의 삶에 끼어들어서는 안 돼. 이제 딸을 놓아주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게 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들자 제 마음도 담담해졌습니다. 저는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고, 더 이상 딸 때문에 걱정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비록 때때로 딸의 어려움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것이 딸이 마땅히 겪어야 할 과정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본분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자 제 마음이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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