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5.11.27

중국 한주이(韓玖祎)

저는 교회에서 2년 넘게 전자 기기를 수리하는 본분을 맡았습니다. 이 본분을 처음 맡았을 때는 새로운 업무와 기술을 배워야 했기에 상당히 도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시간과 공을 들여 열심히 배웠고 고생하며 대가 치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형제자매들은 제가 본분 이행에 책임감이 있다고 평가했고, 그 말을 들으니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본분을 이행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술과 업무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일 처리도 수월해지자, 저는 이 본분이 평범하고 단조롭게 느껴졌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작업을 마주하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해야 하나? 너무 단조롭잖아! 기술도 이제 익숙해져서 웬만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다 알고, 크게 어려운 점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하는 건 너무 지겨워! 차라리 다른 본분을 맡겨 주면 좋겠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일을 접하면 의욕이 넘칠 텐데.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고 해도 괜찮아.’ 저는 책임자에게 제 생각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본분을 맡은 지 꽤 됐고 당장 제 본분을 대신할 적합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에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하자니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했습니다. 저는 매일 기계적으로 기기를 수리했고, 무슨 일을 하든 진지하게 구하거나 마음을 쓰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넋 나간 사람처럼 보냈습니다.

본분 이행에 마음을 쓰지 않은 탓에 제가 수리한 기기들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때로는 반복해서 수리해야 했고, 사흘이면 고칠 수 있는 컴퓨터를 닷새, 혹은 그 이상 끌면서 형제자매들이 사용하는 데 지장을 주었습니다. 한번은 컴퓨터 한 대를 받았는데, 흔한 문제인 것을 보고 싫증이 나서 대충 수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파트너 형제가 검사하다가 다른 고장을 발견하여 다시 분해해서 수리해야 했습니다. 또 한번은 책임자가 새로 온 우밍(吳明) 형제와 정양(鄭揚) 형제에게 기기 수리를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저는 자주 발생하는 고장을 처리하는 방법만 간단히 알려 주고 두 형제에게 수리를 연습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기기가 수리되지 않아 저는 가서 상황을 물어보았습니다. 우밍 형제가 수리 중이라고 하기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기기는 수리하기 별로 어렵지 않은데 왜 아직도 못 고쳤을까? 됐어, 하고 있다니 그럼 됐지.’ 며칠이 더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리를 마치지 못했고, 저 역시 진행 상황을 재촉하기만 했을 뿐, 그들의 어려움이나 수리 상황을 실제적으로 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이틀이 더 지나서야 그들이 핵심 단계를 파악하지 못해 전혀 진전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분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해 일정이 지연되고 모두가 덩달아 고생하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무척 자책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한 탓임을 깨닫고, 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건성으로 대충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인성이 나쁘니, 신뢰할 수 없고 미덥지 못하다. 그렇다면 성령이 이런 사람에게 역사하겠느냐? 절대 역사하지 않는다. 그러니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지도 못하고, 영원히 하나님께 쓰임 받지도 못한다. 건성으로 대충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간사한 사람으로, 꿍꿍이가 너무 많고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다. 이들은 일을 처리할 때 원칙과 최저선 없이 그저 자신의 기호에 따라 할 뿐이라 어떤 나쁜 일도 다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기분에 따라 행동한다. 기분이 좋고 기쁘면 약간 더 잘하고, 기분이 나쁘고 언짢으면 건성으로 대충 한다. 화가 나면 제멋대로 행동해 중대한 일을 망칠 수도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는데, 그저 그럭저럭 대충 살며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 양심이 없는 사람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최저선이 없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겠느냐?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합니다.) 어째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겠느냐? (양심의 기준, 인성, 최저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맞다. 그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양심의 기준이 없으며,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마음대로 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한다. 그의 본분 이행 성과가 좋고 나쁜 것은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기분이 좋으면 성과가 좋고, 기분이 나쁘면 성과도 좋지 않으니, 이런 본분 이행이 합격할 수 있겠느냐? 그의 본분 이행은 진리 원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분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면 진리를 실행해 내기 어렵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어렵다. 육적 선호도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하나님 경륜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중에서), 『많은 사람이 본분을 늘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한 번도 진지하게 대한 적이 없다. 마치 이방인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일을 너무나 거칠게 하고 건성으로 대충 하며, 장난이라도 하는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고 대강 한다. 이는 어찌 된 일이냐? 이는 이방인이 힘쓰는 것이다. 불신파는 바로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한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불량 습성이 심해서 방탕하고 제약을 받지 않으며, 이방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는 자신을 위해 일할 때는 절대로 건성으로 대충 하지 않으면서 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전혀 진지하지 않고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냐?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늘 장난하는 것처럼 까불며 말썽을 피우고, 늘 건성으로 대충 하며 기만한다. 이런 사람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절대로 인성이 없다.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고, 야생 당나귀나 야생마와 다를 것 없으니, 누군가가 옆에서 관리 감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하나님 집을 속이고 기만하는데, 여기에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의미가 있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힘쓰는 것조차 합격하지 못한다. 만약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어 일한다면, 며칠 못 가 잘리고 해고를 당하게 된다. 하나님 집에서는 힘쓰는 자이자 고용 노동자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며, 그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교회의 이익과 자신의 책임을 고려하지 않고, 늘 제멋대로 기호에 따라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것은 인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최근 제가 본분을 이행하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이 본분을 맡은 지 오래되고 기술과 업무를 어느 정도 파악하자 신선함과 도전성이 사라졌다고 느꼈고, 그때부터 저는 본분에 마음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할 수 있는 건 대충 했고, 기기를 수리할 때 마음을 쓰지 않아 눈에 띄는 고장도 발견하지 못하는 바람에 재작업으로 일정이 지연되었습니다. 우밍 형제와 다른 형제들은 이 본분을 막 훈련하기 시작했으므로 저는 그들이 빨리 수리 기술에 익숙해지도록 자주 교류하고 세심하게 점검해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임감 없이 세세하게 지도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들의 업무 능력은 더디게 성장했으며 수리 업무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 개인적인 기호가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 교회의 이익을 지킬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가볍게, 제멋대로 이행했으니 정말이지 너무나 인성이 없었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것은 본분을 이행할 때 절대 금물이다. 네가 늘 대충 건성으로 임한다면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려면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며, 대충 건성으로 임하는 현상을 발견하는 즉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얼렁뚱땅 넘어가면 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늘 건성으로 임하며 형식과 절차에만 치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본분 이행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기회는 잡지 못하면 사라지고 그 후에 다시 잡으려 해도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도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시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기호에 따라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여 이미 사역을 지연시켰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제멋대로 행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엔 분명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그렇게 지내고 싶지 않아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렸고, 본분에 진지하게 마음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기를 수리할 때는 마음을 다해 수리했고, 그와 함께 우밍 형제와 다른 형제들에게도 기술을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자 제 내적 상태가 많이 좋아졌고, 수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횟수도 줄었으며, 본분이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느낌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저는 ‘왜 한 가지 본분을 좀 오래 하면 권태롭다고 느끼고 지루해져서 건성으로 하게 되는 걸까?’ 하고 반성했습니다. 며칠 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이 패괴 성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패괴 성품이냐? 교만함이냐, 간사함이냐, 아니면 흉악함이냐? (모두 아닙니다.) 이는 어느 측면의 패괴 성품과도 관련이 없다. 그럼 이는 무슨 문제겠느냐? (인성의 문제입니다.) 인성에 있는 어느 측면의 문제겠느냐?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처신이 올바르지 않고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며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고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분수를 모르는 것은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다. 이는 양심과는 관련이 없으며, 보통은 정상 인성의 이성이 없는 것이다. 그는 정직하고 반듯하게 분수를 지키면서 한 가지 일을 맡거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지도 못하며, 생각이 성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처신하는 스타일이나 행동 방식까지 미성숙하다. 이는 최소한 인성에 존재하는 한 측면의 결함이다. 물론 이는 인품 문제라고까지는 할 수 없고 처신하고 행동하는 일종의 태도와 관련된다. 신선하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며 무슨 일을 하든 끈기가 없어서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또 분수를 모르고 올바르지 않으며, 늘 자극을 찾으며 새로운 것을 하려 한다. 이런 문제는 인성의 결함에 해당한다. 자극을 좋아하는 이 부류는 정상 인성의 이성이 부족하며, 어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 또 어떤 사역을 하든 시간이 흘러 신선함이 사라지면 싫증을 내고 의욕을 잃는다. 그저 신선하고 자극적인 느낌만 찾을 뿐, 자극이 없으면 삶이 평범하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정신적으로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을 받으면 분수를 모른 채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일만 찾는다. 늘 독특한 일들만 하려 하고, 어떤 사역을 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 따분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면 더 이상 하려 하지 않는다. 설사 해야 하는 사역이거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역이라 하더라도 지속하지 못한다. … 이런 부류는 흔히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분별하지 않는다면, 혹은 이 부류와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단지 성품이 불안정해서 서른, 마흔이 되었는데도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한 거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부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찾는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어른스러운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어른스러운 일 처리 방식과 태도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런 부류는 아주 골치 아프다. 그는 인성이 나쁘지 않고 인품도 그다지 악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성에 이런 측면의 결함이 있기 때문에 큰 사역, 특히 일부 중요한 사역을 능히 감당하지 못한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권태로움과 지루함을 느끼고, 건성으로 마음을 쓰지 않았던 가장 주된 이유가 제 인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선하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평범하고 단조로운 것은 싫어했습니다. 제가 추구한 것은 변화와 도전으로 가득한 본분이었지, 한결같이 한 가지 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 수리 본분을 맡았을 때처럼 신선한 것들을 접하고, 본분과 관련된 일부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 어느 정도 도전과 어려움이 있어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신선하고 자극적인 체험을 많이 할 수 있을 때는 이 본분을 좋아했고 기꺼이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 본분을 오래 하다 보니 신선함이 사라졌고, 본분이 지루하고 단조롭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싫증이 난 상태였고 매일 건성으로 기기를 수리하며 속으로는 다른 환경, 다른 본분으로 바꾸고 싶다는 궁리만 했습니다. 저는 본분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고, 본분에서 신선하고 자극적인 느낌이 없으면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제 기호에 따라 본분을 이행했던 것입니다. 제 사람됨과 일 처리 방식은 진중하지 못하고 얌전하지 못하며 끈기가 없었고, 어른스러운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이러니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웠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다음의 하나님 말씀을 보았을 때 더욱 그러했습니다. “어떤 사역을 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 따분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면 더 이상 하려 하지 않는다. 설사 해야 하는 사역이거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역이라 하더라도 지속하지 못한다. … 그는 인성이 나쁘지 않고 인품도 그다지 악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성에 이런 측면의 결함이 있기 때문에 큰 사역, 특히 일부 중요한 사역을 능히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인성적 결함의 해악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기 수리를 책임지고 있었고, 제 특기를 고려할 때 교회가 제게 이 본분을 안배한 것은 적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기호에 따라 본분을 대했고, 신선함과 재미를 느끼지 못하자 싫증을 내고 건성으로 했으며, 심지어 본분을 바꾸고 싶다는 궁리까지 했습니다. 이런 제게 충성심이 어디 있었단 말입니까? 만약 바로잡지 않고 책임감 없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쉽게 드러나 교체될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나니,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며 굳게 지켰던 일이 생각나 이와 관련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렸느냐? (120년입니다.) 120년이라는 시간이 지금 사람들에게는 어떤 개념이냐? 보통 사람은 정상적인 수명으로도 살지 못하는 세월이고, 심지어 두 사람의 나이를 합쳐도 이만큼 산다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노아는 12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했고, 매일 똑같은 일만 했다. 산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아직 정보의 유통이랄 것도 없었던 시대, 모든 것을 사람의 두 손과 노동력에 의지해야 했던 시대에 노아는 그렇게 하루하루 같은 일만 했고, 120년 동안 포기한 적도, 중단한 적도 없었다. 120년이란 대체 어떤 개념이냐? 인류 가운데 한 가지 일을 120년이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한 가지 일을 120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120년 동안 변함없이 하나님의 부탁을 굳게 지키면서 불평한 적도, 포기한 적도 없고, 어떤 외부 환경에도 영향받지 않은 채 끝내 그 일을 하나님이 말씀한 그대로 똑같이 완수했다면, 이는 어떤 일이냐? 이는 인류 가운데서 희귀할 뿐 아니라 보기 드물고, 심지어 거의 없다시피 한 일이다. 인류 역사 전체의 기나긴 과정을 통틀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인류 가운데 이는 극히 드문 일이다. 공사의 거대한 규모와 난이도를 보더라도, 공사에 소모된 체력과 에너지, 그리고 공사가 지속된 시간으로 보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노아가 한 이 일은 인류 가운데 극히 드문 일이며,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이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자 본보기이다. 노아는 그렇게 많은 도(道)를 들은 적이 없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말씀을 많이 선포하지 않았으므로 노아는 분명 많은 진리를 깨닫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또 노아는 현대의 과학이나 지식을 알지도 못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 인류 가운데서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느 누구와도 다른 부분이 하나 있었다. 즉, 그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줄 알았으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고 지켜야 할지, 사람의 본래 위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참된 믿음과 순종을 보였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이 몇 가지 단순한 신조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노아는 하나님이 그에게 한 부탁을 완수하기에 충분했다. 그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그가 지속한 시간은 몇 달도, 몇 년도, 몇십 년도 아니었다. 백 년이 넘어갔다. 이 수치가 놀랍지 않으냐? 노아 외에 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노아가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노아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서는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하나님의 부탁을 인생 최대의 중요한 일로 삼아 행하고 굳게 믿으며 백 년 동안 마음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고 가장 이성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방주 만드는 일을 노아에게 맡긴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2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감동받았고 또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지도 못했고 진리도 많이 깨닫지 못했지만, 120년간 하나님의 부탁을 굳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기 전에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다급한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헤아리는 마음이 생겨 방주 만드는 일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로 여기며 실행에 옮겼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거대한 공사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 실패, 질병, 피로뿐만 아니라 가족의 몰이해와 세상 사람들의 조롱, 비방에 직면했지만, 시종일관 하나님의 부탁을 굳게 지켰고, 포기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렇게 중요한 부탁을 맡겨 주신 것에 깊이 감사했고,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에 늘 힘을 얻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과 부탁을 듣고 받아들이며, 순종하고 굳게 지켰습니다. 이 모든 것이 노아에게 양심과 이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인품은 정말로 너무나 소중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물으신 말씀을 보았습니다. 『노아는 120년을 변함없이 지속했는데, 너희는 몇 년을 지속할 수 있겠느냐?(<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2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1)> 중에서) 저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수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받았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도 누렸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기기 수리 본분을 맡은 지 2년여 만에 버티지 못하고 태만해지며 건성으로 했습니다. 정말이지 조금의 양심과 이성도 없었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몹시 후회하고 자책하며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이 본분을 얼마 동안 더 맡기시든, 저는 기꺼이 잘 이행하고 더는 제 기호에 따라 하지 않겠습니다.”

그 후 지난 일을 되짚어보면서, 저는 제 본분 이행에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제 수리 기술은 평범한 수준이라 기술적으로 계속 배워야 했지만, 저는 발전을 추구하지 않고 업무를 파고드는 데 힘쓰지 않아 수리 기술이 별로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교만하고 독선적이어서 저의 부족함을 알지 못했고, 오히려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파악했다며 이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별다른 어려움이나 도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무지했고, 제 분수를 전혀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에 진지하게 임하고, 저의 부족함을 발견하며, 어떻게 기술을 향상시켜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지 구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더 이상 본분을 바꾸려는 궁리를 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가짐이 바뀌자, 이전에 느끼던 초조하고 권태롭던 느낌이 사라졌고, 본분에 마음을 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문제든 어려운 문제든 모두 진지하게 대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기기를 최대한 빨리 수리하여 형제자매들이 사용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스스로의 본분 이행 상태를 조금이나마 인식하고 변화하게 해주신 하나님 말씀의 폭로에 감사드리며,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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