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과오에 갇히지 않게 되다

2025.4.18

2006년 7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저는 동역자 모임에 가던 길에 갑자기 경찰에 잡혔어요. 그날 밤에 저는 비밀 취조실에 끌려갔는데, 경찰은 저한테서 교회 재산 관리 증빙 서류가 나오니까 교회 돈 보관처와 윗선 리더가 누구인지 돌아가면서 취조했어요. 제가 아무 말이 없자 경찰은 가죽띠로 저를 때렸어요. 그리고 양손에 수갑을 채운 후에 쇠사슬로 매달아 놓고 1주일 동안 계속 고문했어요. 그땐 정말 배고프고 목마르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저도 모르게 기절했어요. 깨어났을 때는 그들이 저한테 뭘 먹였는지 모르겠지만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가 났고 온몸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어요. 정말 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어요. 앞으로 또 어떤 고문을 들이댈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겁이 났고,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가 될까 봐 두려웠어요. 그래서 굳게 설 수 있게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죠. 경찰은 제가 고문으로 그 지경이 됐는데도 교회 리더와 돈 보관 장소를 발설하지 않으니까 방법을 바꾸더라고요. 바로 혈육 간의 정을 이용해 절 유혹하는 거죠. 저보고 집에 못 간 지 몇 년 되지 않았냐고, 가족들이 걱정하고 애도 많이 보고 싶어 한다면서 교회 돈을 어디에 뒀는지 말만 하면 집에 보내 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돈을 보여 주면서 교회 재산을 보관하는 집을 이미 찾아냈다고 했어요. 경찰의 말을 들으니까 보관 중이던 교회 돈이 경찰 손에 넘어간 이상 제가 입을 다물어도 의미 없으니 차라리 말하면 고문만큼은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회 재산을 보관하고 있는 집을 한 곳 발설했어요. 그 후에 경찰들이 저한테 돈을 찾으러 같이 가자고 했을 때에야 경찰한테 속았다는 걸 눈치챘어요. 그땐 저도 고문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라 속으로 ‘이미 어느 집인지 다 말을 했는데, 여기서 앞장서지 않으면 분명 고문으로 고통받을 거야. 내가 잡힌 지 1주일이 지났으니 교회에서도 돈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간 짧은 생각으로 경찰을 데리고 돈을 보관한 집으로 향했어요. 다행히 교회에서는 제가 잡혔다는 걸 알고 신속하게 돈을 다 옮긴 상태였죠. 하지만 집주인 형제님이 하마터면 경찰에 잡힐 뻔했는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벗어날 수 있었죠. 경찰은 교회 돈을 손에 넣지 못하게 되자 마음대로 저에게 죄명을 씌워 징역 1년 9개월을 선고했어요.

정말 감옥 안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특히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날 때면 더 그랬죠.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제가 형제를 판 유다가 되었으니, 이건 분명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일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거든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너무 괴로웠어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을 했으니 분명 구원받지 못할 것이고 제 신앙의 삶은 종지부를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매우 의기소침해져 매일 고통스럽게 보냈어요. 마음의 괴로움은 배가 되었고 죽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죽어서 편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날이 오기만 기다렸어요. 물론 기도는 계속했지만 과오 때문에 하나님께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저는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어 보였어요. 출소하고 2년 뒤에 형제자매들이 절 찾아왔어요. 제가 자신을 조금 인식하는 게 있으니 교회 생활을 하게 복귀시켜 줬고 본분도 배정해 줬어요. 정말 크게 감동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인 것 같아서 하나님께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어요. 저는 울면서 기도했죠. “하나님! 전 정말 당신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이 주신 상황에서 전 간증이 전혀 없었고, 형제를 팔아 유다가 되었고 수치의 기호가 됐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 돌아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정말 당신의 긍휼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본분을 잘 이행해 과오를 만회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죠. 그 뒤로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주든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손 놓고 있지 않았어요. 그렇게 전 최선을 다해 지난날의 과오를 만회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경찰에 잡힌 천화(陣華)가 많은 리더 일꾼과 보관 장소 정보를 넘김으로 유다가 돼서 제명하기로 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제 처지가 생각났어요. 제가 발설한 것 때문에 교회의 돈이 전부 경찰 손에 넘어갈 뻔했고, 돈을 보관했던 형제님도 집에 못 들어가고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됐으니까요. 전 제가 한 짓이 천화랑 다를 게 없는 큰 오점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지 않으실 과오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천화가 교회에서 제명됐으니 나도 언젠가 저렇게 제명으로 도태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이런 생각이 드니까 많이 의기소침해졌어요. 그 후에도 교회에서 본분을 맡겨 주면 맡아서 하기는 했지만, 과거처럼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열정이 나지 않았어요. 가끔 진리 원칙을 구하면서 노력해야 할 때에도 찾고 구하지 않았고 그저 순서대로 맡은 바를 완수하면서 힘을 좀 쓰는 것에 만족했어요. 소기의 효과를 봤는지는 고민하지 않았고 그저 양심이라는 최저선에 의존해 본분을 이행했죠. 그때 한 자매가 체포되는 게 겁이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 자매를 붙들어 주고 도와줘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인데, 무슨 자격으로 교제를 나누겠어.’라는 생각에 어떻게 교제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 이치에 맞는 말만 해 줬어요. 저도 그렇게 본분을 대하는 자세는 하나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지만, 제가 이미 엄청 큰 과오를 저질러 구원받을 가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기운이 나지 않아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 패괴 성품이 표출되면 진리를 구해 제 문제를 해결해야 사역과 제 생명 진입에 이롭다는 걸 알았지만, 전 용서받지 못할 과오를 남긴 사람이고 앞으로 제명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힘이 나지 않았어요. 그저 매일 할당량을 채우면 된다는 것에 만족할 뿐, 내적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하는 걸 중시하지 않았어요. 그 후로 두통도 잦고 위장병도 자주 재발했어요. 처음에는 그래도 이런 문제를 올바르게 대했지만 갈수록 병세가 호전되기보다 더 심해지니까 ‘이건 하나님께서 주시는 벌이 아닐까?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저질러 하나님의 염증을 샀기에 이런 병에 걸렸을 거고, 하나님은 분명 나를 원하지 않으실 거야.’라고 추측했어요. 가끔 본분에서 별로 성과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추구하거나 본분을 이행해 봤자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괴로움이 밀려왔어요. 그러면서 ‘내가 그때 조금만 더 버텼으면 굳게 설 수 있었을 텐데, 왜 그걸 못 참고 배신을 했을까?’라는 생각에 하나님을 배반했던 게 너무 후회가 됐고, 하나님을 몹시 원하는 마음은 없이 지나치게 제 육을 돌봤던 제가 너무 미웠어요. 그때 제가 굳게 섰더라면 이런 마음의 괴로움을 감당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마음에 생각할수록 괴로워서 자주 소극적인 정서로 살게 됐어요.

한번은 어느 자매한테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놨는데, 자매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여 줬어요.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지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전 또는 성인이 된 이후에 특수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떠한 과오를 범했거나 어리석은 일, 우매한 일, 무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오, 어리석은 일, 무지한 일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다. 그들의 의기소침함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규정하는 것이다. … 설교를 듣거나 진리를 교제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의기소침함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이렇게 힐책한다. ‘내가 할 수 있겠어? 내가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겠어? 내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내가 어떤 인간인데? 과거에 그런 짓을 했으니, 그런 인간이었으니 나는 구제 불능인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구해 주실까?’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의기소침한 정서를 버리고 거기서 벗어나 본인의 진심과 본인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본분, 의무, 책임을 다하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 전부를 바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특수한 환경과 배경이 임했다 하면 그런 의기소침한 정서가 다시 우위를 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참소한다. ‘너는 그런 짓을 했었잖아. 과거에 그런 인간이었잖아. 네가 구원받을 수 있겠어? 네가 진리를 실행한들 소용이 있을까? 네가 저지른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네가 한 짓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네가 이렇게 대가를 치른다고 해서 예전에 범한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늘 자책과 참소가 존재하며, 의문과 힐책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가 저지른 추악한 일 때문에 언제나 내면이 불안하다. 그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음에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구원받는 일이 자기와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과연 사함과 구속을 받을 수 있을지, 자기한테 과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정론이 없기 때문에, 그의 깊은 내면은 항상 의기소침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한번 또 한번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한다. 그 일의 경과를 회상하고, 그 일의 전후를 회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항상 죄악감이 든다. 그 일 때문에 수년간 시종일관 의기소침한 상태다. 본분을 이행하고 어떤 일의 책임자가 돼도 자기는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진리 추구를 무엇보다 올바르고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직시한 적이 없다. 그는 자기가 과거에 범한 잘못, 혹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몹시 안 좋거나 남들에게 정죄와 버림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도 자기를 정죄하리라 여긴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말씀을 했든, 그는 줄곧 진리를 추구하는 일을 올바르게 마주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체험한 뒤에 최종적으로 얻는 결론이다. 그는 올바른 결론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제 상태에 꼭 맞는 말씀이었어요. 사실 지난 몇 해 동안 매번 유다로 판명 나 제명되는 사람들 사례를 들을 때면 저 자신을 연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는 ‘나도 형제를 파는 유다 짓을 해 하나님 앞에서 과오를 남겼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원하실 리가 있겠어? 내가 구원받을 가망이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계속 소극적인 상태로 지냈어요. 외적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에는 참된 부담을 가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저랑 상관이 없는 것 같아 항상 저 자신을 진리를 추구하는 행렬에서 제외시켰죠. 저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권면해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일 엄두가 안 났어요. 그 말씀은 저 같은 사람한테 하시는 게 아닌 것 같았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맹세할 자격도 없어 보였으며, 더욱이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을 자격도 없는 존재 같았어요. 특히 천화가 유다로 판명 나 제명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도 천화랑 마찬가지로 죽음이 두려워 교회의 돈과 형제님의 정보를 팔아넘긴 탓에 형제님은 경찰에 쫓겨 집에도 못 가는 신세가 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제가 살겠다고 형제님한테 그렇게 큰 재앙을 안겨 줬으니 전 참으로 이기적이고 인간성이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한 행동의 성격은 유다랑 다를 게 없으니 제가 행한 짓에 따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셔도 할 말이 없고 지옥에 떨어져도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하나님은 저의 과오에 따라 저를 대하지 않으시고 다시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어요. 오늘날 제가 살아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는 건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높여 주심을 받은 거니까 진리를 더 잘 추구해서 자신의 패괴를 해결하고 제대로 회개해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게 맞거든요. 근데 저는 계속 과오에 묶여서 제 미래와 운명만을 걱정하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정서에 빠져 점점 수동적으로 본분에 임했어요. 결국 사역에 손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저의 생명 진입에도 지장을 주었고, 진리를 얻을 기회를 많이 놓쳤어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얼굴을 마주하고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과오 때문에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있기를 바라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반성하고 계속 높은 곳을 향해 추구하기만을 바라셨고, 언제든지 진리 추구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셨어요.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참된 사랑이었어요. 이제는 진리를 추구해 이런 부정적인 정서의 매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어요.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모두 복받기 위한 속셈과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셨어요. 일단 자기 미래와 운명에 복이 없을 것 같으면 하나님을 믿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있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죠.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잘못된 추구죠.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해 반성에 들어갔어요. 처음 이번 단계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 저는 복을 얻기 위해 어떤 것도 헌신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체포된 후에는 고생이 두렵고, 고문받다 죽는 게 두려워 형제를 팔아넘기는 과오를 남겼어요. 그 일로 제게는 더 이상 구원받을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의기소침한 정서에 빠져 저 자신을 단정 짓고 있었죠. 출소한 후에는 어떤 본분을 주든 다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로 했었는데, 그것도 단순히 속죄하고 복을 받기 위함이었지 참된 회개가 아니었어요. 저는 구원받기 어렵고 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완전히 소극적으로 변해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보니까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목적은 복을 받기 위한 거였고, 바울처럼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거였어요. 바울이 초반에 강력하게 예수님을 대적하고 주님의 제자들을 체포하고 박해했을 때 하나님께서 큰 빛으로 그를 치셨어요. 그래도 바울은 자신을 괴수라고만 인정했어요. 나중에 주님의 복음을 전했던 것도 속죄를 위한 것일 뿐, 참된 회개와 변화를 위한 게 아니었어요.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했던 본질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역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자 자기는 자본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대놓고 하나님과 거래를 했어요. 그렇게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8)라는 말을 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저주받고 벌을 받게 됐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저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됐어요. 제가 그렇게 큰 악행을 저지르고도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었으니 너무 비이성적이더라고요. 앞으로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이 또한 하나님의 공의이고, 제가 악행을 하고 하나님을 배반한 것으로 얻게 되는 결과잖아요. 모든 결과는 다 제가 자처한 거고 자업자득인 거잖아요. 결말이 어떠하든 저는 응당 피조물의 자리에서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는 게 제가 갖춰야 할 이성과 실행이더라고요. 저는 하나님께 나아가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 건 복과 상을 얻기 위한 거였고, 제가 다 버리고 헌신했던 것도 당신과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전 참으로 비이성적이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주인을 위해 집을 지킬 줄 아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진리로 저를 양육하고 공급해 주시고, 저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주셨는데, 저는 하나님과 거래나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종착지가 없을 것 같으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는데, 정말 개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하나님, 이제 회개합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되든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더는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보고 나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조금 알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과오와 오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말을 했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거부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다가 하나님께 버림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시험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배반했고, 어떤 사람은 체포된 후 ‘3서’에 서명해 하나님을 배반했다. 또 어떤 이는 몰래 제물을 훔쳐먹거나 낭비했고, 어떤 이는 늘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해하였으며, 어떤 이는 패거리를 짓고 다른 사람을 괴롭혀 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도 어떤 이는 수시로 관념과 죽음을 퍼뜨려 형제자매들을 해하였고, 어떤 이는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맺고 음란한 짓을 하면서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과오와 오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어도 회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본성 본질 그리고 일관된 태도에 근거하여 사람을 대해야 한다. 회개할 수 있는 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죽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자는 제명하거나 출교시켜야 한다. …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처분을 내릴 때 당시의 환경과 배경 등 실제 상황에 근거하고, 사람의 모든 행동과 본성 본질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억울하게 대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일면이다. … 하나님은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에게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 혐오하거나 반감하는 태도를 보일 때, 혹은 그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말을 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내적 상태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감찰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는 신성뿐이야.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셔. 하나님은 사람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도 않으시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은 그를 징벌하실 거야.’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역, 사람에 대한 태도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단단히 틀린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근거하며, 각각의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하나님은 공의롭다.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깊이 인정하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원칙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저지른 한순간의 과오로 결말을 정하시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된 배경과 성격에 근거하여 정하시는 거였어요. 과오를 저지른 후에 진리를 받아들이는지, 참된 회개가 있는지 보시는 거죠. 그게 하나님의 공의로움이더라고요. 이걸 깨닫게 되니 마음이 확 밝아졌어요.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심판뿐만 아니라 긍휼로 사람을 대하신다는 걸 보게 됐어요. 획일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저도 그때는 육의 연약함을 못 이겨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을 했는데, 저는 일단 그런 일을 하면 아무리 회개해도 구원에 이를 수 없고 무조건 정죄받아 도태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제 보니 제가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저랑 천화는 똑같이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는 행위를 했지만 교회에서 저한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준 건 제가 배반하게 된 배경과 성격을 보고, 그동안 본분에 임했던 일관된 모습을 보고 판단한 거였어요. 그때 저는 8일 동안 고문에 시달리면서 한계에 도달했던 탓에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지 못하고 한순간의 연약함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이고,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온 것도 아니었어요. 그 일이 있은 후에 저는 또 자신을 증오하고 후회하기도 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심한 과오에 해당하기에 하나님 집에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는 거였어요. 근데 천화의 경우, 경찰이 단순히 몇 마디 취조만 했을 뿐인데, 그녀는 큰 붉은 용의 힘에 굴종하여 많은 리더 일꾼들과 말씀 책을 보관하는 집을 팔아넘겼어요. 결국 많은 형제자매들이 체포되었고, 교회 사역에도 큰 손실을 안겨 줬어요. 천화는 한순간의 연약함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유다였던 거죠. 교회는 천화가 한 행위의 성격과 이어진 결과를 기반으로 제명한 거예요. 그건 온전히 하나님의 공의로움이죠. 이걸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조금 알게 됐어요. 하나님의 성품은 정말로 아름답고 선했어요. 근데 전 그런 하나님을 경계하고 추측했으니 죄송함이 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회개하고 변화되겠다고 다짐했고, 다시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면 아무리 육이 고통스럽더라도, 설령 죽더라도 하나님 편에 굳게 서서 사탄에게 수치를 안겨 주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면서 과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사함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 이는 네 마음에 달렸다. 네가 진심으로 죄를 인정하고, 자기 잘못과 문제점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네가 범한 과오가 됐든 죄업이 됐든, 그 죄를 진실로 인정하는 태도가 네게 있고 네가 정말 그 일을 증오하고 돌아설 의사가 있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면, 언젠가는 하나님에게 관용과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즉, 하나님이 네가 과거에 범한 무지하고, 어리석고, 더러운 일을 바탕으로 네 결말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기도를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는지 알 수 있나요?” 그 일이 더는 너를 참소하지 않고 네 내면이 더는 그 일로 인해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면 결실을 본 것으로, 하나님이 너의 죄를 사하였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힘도, 그 어느 외부 세력도 너를 방해하지 못하고, 네가 그 어떤 사람, 일, 사물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면 결실을 본 것이다. 이것이 네가 첫 단계로 해야 할 일이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에게 사함 받기를 부단히 간구하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원칙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네 과오를 만회하고, 네가 회개하고 돌아섰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실제 행동이자 실제 모습이고 태도이기도 하다. 이는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과 네 손에 맡겨진 본분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느냐? 의기소침한 태도로 대하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는 원칙대로 대하고 있느냐? 너는 충성심을 바쳤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근거로 네 죄를 사해야겠느냐? 네게 회개하는 태도가 있었느냐? 네가 무엇을 보여 줬느냐? 하나님에게 사함 받고 싶다면 우선 네 진심을 꺼내 보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성실하게 죄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을 보이며 네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해낸다면, 정말 네 진심과 성의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네 죄를 사해 주도록 한다면, 너도 남들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보는 관점으로 너를 볼 것이요,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으로 너를 대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네게도 행하고, 너를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게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염원이 생길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너를 깨우치고, 인도하고, 너에게 공급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네게 이러한 진심과 간절한 태도가 생겼으니 하나님이 너를 불공평하게 대할 리가 없다.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알았어요. 지난날 어떤 과오를 저질렀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사람의 참된 회개와 변화였어요. 잘못을 한 후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죄를 자복하고, 그다음 자신의 본분을 지켜 행하며 충성을 다하고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과오를 만회해야 하는 거죠. 다윗이 그랬죠. 우리아의 아내를 범함으로 음란죄를 저질렀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 말씀을 하셨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알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침상을 띄울 정도로 울었어요. 그리고 노년이 되었을 때 처녀가 이불 속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어요. 그 외에, 다윗은 자신을 미워하는 동시에 자신의 본분을 실제 행동으로 지켜 행했어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성전을 지으려고 했죠. 다윗은 자신의 과오를 대할 때 의기소침한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임했고 참된 회개와 변화를 보였어요. 그리고 베드로도 보면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함으로 증거를 잃었지만 의기소침한 자세로 임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성의를 다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참된 회개를 보이고 궁극적으로 주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였어요. 저도 다윗과 베드로를 본받아 긍정적인 자세로 제 과오를 직면하고 소극적 정서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와 변화를 얻고자 추구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게 제가 갖춰야 할 자세와 실행이더라고요.

그 후에 제가 잡혔을 때 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됐는지 성찰해 봤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제가 지나치게 제 육을 돌보고 목숨을 아꼈기 때문이더라고요. 저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어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4) 사실 제가 죽고 사는 문제도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에 달린 거죠. 제가 정말 경찰의 박해로 죽음에 이른다고 해도 하나님 편에서 굳게 선다면 죽어도 가치와 의미가 있는 거죠. 제가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육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게 됐지만 마음의 고생을 감당해야 하더라고요. 제가 형제와 교회의 돈을 팔아넘긴 걸 생각할 때면 마음은 칼로 에이듯 아팠고, 저한테는 영원한 오점이나 영원한 아픔으로 남게 됐죠. 사실 육적인 고생은 한순간이에요. 참으면 넘어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마음의 고통은 영원한 고통이에요. 육은 보전했지만 대신 평안과 기쁨을 잃었으니 그건 살아 있어도 산송장인 거잖아요. 감옥에서도 굳게 선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면, 정말 육의 고통을 많이 당하고 심지어 폭행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지만, 그들은 정의를 위해 죽은 거잖아요. 그 죽음은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 기억되는 거죠. 그리고 저는 제가 팔아넘기게 된 다른 원인이 경찰의 간계를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교회 돈을 경찰들이 다 수거했다고 하니까 저는 이미 다 경찰 손에 넘어간 이상 제가 말을 하나 안 하나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말을 조금 하면 고문은 받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발설했는데, 그 결과 간증을 잃게 됐죠. 사실 교회의 돈이 그들한테 넘어갔든 아니든 제 입으로 발설해서는 안 되었던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저의 충성심과 간증이니까요. 제가 실패한 원인을 찾게 되면서 다짐했어요. 앞으로 다시 잡혀가는 일이 생기면 죽어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지는 않겠다고요. 지난 몇 년간 저는 현실에 직면해서 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 문제를 계속 피했어요. 저 자신을 미워하기는 했지만 저 자신을 진정으로 알지는 못했고,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끌어 주셔서 하나님과 저 사이에 있던 마음의 벽과 오해가 사라졌어요.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새 신자 양육 본분을 맡게 됐는데,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원칙에 따라 양육을 잘하는 거죠.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이해하고 참도에 빨리 뿌리를 내리고 선행을 예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거예요. 이제는 제 과오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어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경계도 풀렸고 열린 마음으로 그간의 실패의 체험을 놓고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증거하고 있어요. 소그룹 예배에서도 적극적으로 교제를 나누고 본분에서 어려움이 발생하면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하면서 자아 성찰에도 들어가고요. 이렇게 실행을 하다 보니 저의 내적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본분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정말 하나님은 저의 과오 때문에 저를 내치지 않으셨고 오히려 절 이끄시고 인도해 주셨어요. 이번 일을 통해 과오를 저지르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어요. 일단 진심으로 회개하고 원칙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면 하나님의 긍휼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보게 됐어요.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거든요. 『얻기 힘든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이 아닌 사람의 참된 회개.』(<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제가 이걸 깨닫고 느낄 수 있게 된 건 온전히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이에요.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려요.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실수를 인정하는 것의 어려움

미국 크리스티나(Kristina)2022년 12월 3일 토요일 비오늘 사역 표를 정리하다 한 영상이 잘못 배정돼 중복으로 제작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확인해 보니 제작 전에 기록표를 확인하는 절차를 깜빡해서 생긴...

조이의 이야기

필리핀 조이(Joy)예전에 저는 사람을 대할 때 늘 감정에 치우쳤습니다. 누가 저에게 잘해 주면 저도 그 사람에게 잘해 주었죠. 사람에 대해 분별하려고 하지 않았고, 어떤 원칙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나서야 저는 제가 떠받들던...

본분을 이행하면서 왜 항상 드러내고 싶어하는가?

중국 우옌(吳姸)2021년 6월 말, 기독교인들에 대한 중공의 광적인 체포로 인해 제가 머물던 접대 가정이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즉시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미 경찰의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집에서 숨어 지내며 사역을 해야...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은 결과

중국 샤오모(小默) 저는 교회에서 복음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형제자매들이 신웨(心悅) 팀장이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팀원의 의견을 듣지 않아 사람들과 협력하지 못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모두가 그녀의 통제를 받고 있어서 복음...

댓글 남기기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