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에서 책임지기 두려워하는 결과

2022.3.1

스페인 샤오모

2021년 2월이었어요. 하루는 교회 리더가 저한테 스페인어권 새 신자 교회를 맡으라고 하는 거에요. 많이 놀랐죠. 전 지금까지 복음만 전했던 사람이라 새 신자 교회에 관한 사역을 맡아 본 적이 없고, 새 신자 양육에도 경험이 없거든요. 게다가 언어도 안 통하는데, 새 신자를 양육하다 보면 분명 문제와 어려움이 많을 거고, 그런 걸 해결할 자신이 없었어요. 새 신자들은 갓난아기와 같은데, 진리도 모르고 참도에 뿌리내리지도 못한 사람들한테 양육이 제때 따라가지 못해 다 떨어지고 나면, 그건 악행을 저지르는 거잖아요. 그러면 교체되는 건 당연한 거고, 심각하면 도태될지도 모르겠다 싶더라구요. 그전의 책임자도 사역에 그렇다 할 성과가 없어서 교체됐거든요. 새 신자 교회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라 사역하기가 쉽지 않고, 제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것 같았어요. 근데 저한테 맡겨진 본분이니까 거절할 수는 없었죠. 전에 복음을 전할 땐 어려운 게 없이 순조롭게 잘돼서 한 달 동안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새 신자 교회 사역은 어려워서 자칫 잘못하면 도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 않더라구요.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지니 이 본분을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복음 전할 때가 자꾸 그리운 거예요. 새 신자 교회엔 실제적인 어려움과 문제가 많고, 어떤 건 해결할 방법도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이 본분이 저한테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어요…. 근데 그런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교회 사역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잖아요. 너무 막막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요.

다음 날, 한 형제님이 새 신자 교회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구역에 따라 교회를 나누는데, 어떤 새 신자 리더는 무책임하게 명단을 빠트려서 몇몇 사람이 예배를 못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하고 있다고요. 그러면서 그 새 신자들의 메시지를 전달해 줬어요. 내용을 보니까 어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분이 맞냐며 온라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고 싶은데, 예배 그룹이 없다고,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하니 너무 괴롭다고 도움을 요청했고, 또 한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지 못하고 하나님 집에 들어오지 못해서 너무 괴롭다고 예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더라구요. 또 매일 예배 모임을 기대하면서 계속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리더는 하나도 배정하지 않은 거예요. 그때 그 형제님이 괴로운 목소리로 그러시는 거에요. “새 신자 양육을 어떻게 하시는지 잘 모르겠고, 그쪽 사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어려움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예배도 못 드리고,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지 못하고 있잖아요. 이런 걸 보면 속이 타지 않습니까? 가슴 아프지 않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면 그분들이 하나님 집 밖에서 이렇게 떠돌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형제님의 질문과 새 신자들의 메시지를 보니 양심에 너무 찔리고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저희가 맡은 직무를 다하지 못해서 새 신자들이 하나님 집 밖에서 떠돌게 됐고, 교회 생활도 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해 생명에 손해를 보고 있는데, 전 새 신자 교회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로 무책임하게 했고, 새 신자들의 생명에 부담을 가지지 않았던 거예요. 새 신자들이 빨리 교회 생활을 잘하고, 양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안배하진 않고 계속 책임질 게 두려워서 피하려고만 했거든요.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모두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고 교회의 증거를 수호한다고 말하는데, 누가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했느냐?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라. 네가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는 사람이냐? … 내 마음이 너에게서 만족을 얻도록 할 수 있느냐? 결정적인 순간에 네 마음을 내놓았느냐? 너는 내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냐? 스스로 많이 자문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3편> 중에서) 이 말씀에서 질문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저를 두고 질책하시는 것 같았어요. 정말 마음이 찔리고 괴롭고 양심의 가책이 많이 들더라구요. 하나님 집에서 저한테 새 신자 교회의 사역을 맡긴 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형제자매들과 합심해서 새 신자들이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빨리 참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양육을 잘하라는 거잖아요. 몇몇 나라에서는 새 신자 교회가 이제 막 세워지다 보니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와 어려움이 많았어요. 근데 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죠. 이 사명을 받은 날부터 늘 제가 이 본분을 잘 못해서 도태되거나 나쁜 결말이 있지 않을까 제 앞날만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본분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고 부담도 없었어요. 얼마나 이기적이고 인성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날 형제님을 통해 새 신자의 메시지를 보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더라구요. 제가 짊어진 책임이 뭔지 알게 하시고, 이 본분에 대해 진정한 부담을 가지라고 하나님께서 제 무감각한 마음을 일깨워 주시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는 제 앞날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사명을 짊어지고, 마음을 다해 본분에 임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진리를 구해서 교회 문제를 빨리 해결하겠다고 기도했어요.

그다음 아직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새 신자들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 안배하고, 교회 사역들을 조금씩 파악해 나갔어요. 많은 지역에 새 신자 교회가 막 세워지고, 책임자들도 처음 해 보는 거라 이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부분이 많았어요. 또 건성으로 본분에 임하고, 새 신자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문제를 제때에 해결해 주지 않는 책임자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은 말씀으로 교제하면서 도와주거나 본분을 조정해야 했어요. 특히 어떤 새 신자들은 목사의 미혹을 받아 예배드리러 오지도 않는데, 그런 사람이 갈수록 더 많아졌어요. 이런 문제에 부딪히니 저도 모르게 또 걱정이 되더라구요. 제가 사역을 맡은 지도 좀 되는데, 이런 문제나 어려움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사역에 그렇다 할 성과가 없으면, 분명 전 책임을 피해 갈 수 없을 거고, 그럼 분명 드러나 도태될 거란 생각에 점점 기운이 빠지더라구요. 표면적으론 바빠 보였지만 제 속의 부담감은 정말 컸어요. 월말에 통계해 보니 정상적으로 예배드리지 않는 새 신자가 그 전 달보다 더 많아진 거에요. 힘이 다 풀리더라구요. 그러면서 이 사역을 맡은 지 얼마 안 됐으니 더 악행을 저지르기 전에 빨리 사직해야겠다 싶었어요. 계속 이 본분을 맡았다간 새 신자들이 어려움을 해결받지 못하고 실족하게 되면 제 악행이 더 커질 텐데, 그럼 교체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좋은 종착지도 없어질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 일찍 사직해야겠단 생각이 더 많이 들었고, 결국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빙글빙글 돌면서 쓰러질 것 같은 거예요. 처음 겪어 보는 거였는데, 그냥 업무 부담이 커서 그런 건가보다 생각했어요. 근데 나중에 한 자매님이 알고 그러시더라구요.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고요. 그제서야 전 마음을 가라앉히고 반성하면서 저의 패괴함을 알 수 있게 깨우쳐 달라고 기도드렸어요.

그 후에 하나님 말씀 영상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기도하고 훈련하며, 하나님이 준 부담과 사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네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맡긴 사명에 부담을 가질수록 하나님께 더 잘 온전케 될 수 있다. 혹자는 일어나서 협력하며 섬기라 해도 싫어하는데, 그런 자는 게으르고 안락을 탐하는 사람이다. 네가 일어나 협력하며 섬길수록 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너의 부담과 체험이 많아지기 때문에 온전케 될 기회 또한 많아진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도 많아진다. 지금 이런 사람들을 온전케 하고 있다. 성령이 너를 갑절로 감동시킬수록 너는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할 때가 많아지고, 하나님께 더 많이 온전케 되고 얻어져서 마침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된다. 현재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못하고, 태만하게 굴며 자신의 육체만을 생각하는데, 그런 자들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눈먼 사람이다. 네가 이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부담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헤아릴수록 하나님이 네게 더 많은 부담을 더해 줄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그러한 고난을 받는 것도, 대가를 치르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온전케 될 기회를 놓치게 되니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대한 참된 부담을 느낄 것이다. 사실,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갖는다고 하기보다는 너 자신의 생명에 부담을 갖는다고 말하는 게 옳다.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갖는 것은 그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 부담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생명 진입에 대해 부담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분명히 이해했느냐? 네가 속한 교회가 엉망진창인데도 전혀 애타하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하는데도 본체만체한다면 이는 부담이 없는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땅히 지금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해야지,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 만인에게 드러난 후에 생각하려 해선 안 된다. 그때가 되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지금은 하나님께 온전케 될 좋은 기회다. 만약 네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처럼 평생의 한으로 남아 후회하며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만민에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너를 형벌하지 않아도 후회로 인해 너 스스로 자신을 형벌하게 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부담을 갖지 않는 건 온전케 되고 못 되고와 직결된다는 걸 알게 됐죠. 책임을 많이 짊어질수록 하나님의 부담을 더 헤아리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더 받게 돼요. 반대로 하나님 집의 사역과 자기 본분에 책임감을 갖지 않고, 본분에서 늘 자기를 지키려고만 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전혀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라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없죠. 그래서 반성해 보니 제가 바로 그런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더라구요. 무거운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않고 그저 제 앞날과 종착지만 생각했죠. 정상적으로 예배드리지 않는 새 신자가 점점 많아질 때도 어떻게 하면 그런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새 신자들을 붙들어 줘야 할지 찾고 구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본분을 계속하면 더 빨리 드러나 도태될 거란 걱정이 들고, 이건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영혼의 빚이란 생각만 들었죠. 결국 제 자신을 지키려고 사직서를 내고 본분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정말 충성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말이 본분 이행이지, 전 제 이익만 생각했던 거예요. 이 본분에서는 그저 고생만 하고 많은 걸 책임져야 할 뿐, 저한테 이로운 게 없는 것 같으니 도망갈 생각만 한 거죠.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거예요. 순조롭게 잘할 수 있는 사역은 기쁜 마음으로 임했지만 어려움이 있는 본분, 제 미래와 종착지를 보장할 수 없는 본분은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전 하나님께 진심을 바치지 않았고, 정직하게 대하지도 않았어요. 정말 교활하고 간사하고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 비열한 소인배더라구요. 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저처럼 이기적이고 간사한 사람은 하나님도 온전케 하지 않으시죠. 생각할수록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는 제가 너무 미웠고,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제서야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오더라구요.

그러다 전 왜 본분을 이행하면서 먼저 제 이익과 미래부터 생각하는지, 왜 이렇게도 간사하고 이기적인지 그 이유를 찾아봤어요. 하루는 묵상 시간에 적그리스도를 해부하신 말씀 영상을 보게 됐는데, 그때 그 이유에 대해 좀 명확하게 깨닫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본분을 조정하는 일이 생길 경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스스로를 반성하고, 문제의 본질과 자신의 결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좋은 일이고, 넘어서지 못할 난관은 없다. 이런 일은 간단하고 복잡하지 않다. 누구나 분명히 생각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일이 생기면 최소한 한 방면의 수확은 거둘 수 있는데, 바로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평가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어떤 일에서든 그들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를까?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 진짜로 받아들이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 대신 속으로 반감을 품고, 반발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며 머리를 짜내어 추측한다. ‘왜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서 사역하라고 하는 걸까? 왜 지금의 본분을 이행하지 말라는 걸까? 설마 내가 적합하지 않은 걸까? 나를 교체하고 도태시키려는 걸까?’ 그들은 속으로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석하고, 고민한다. … 적그리스도는 지극히 간단한 일을 큰 문제로 부풀려 생각하고 궁리하며, 심지어는 밤새 잠도 자지 못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어째서 간단한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즉,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이 그에게 한 모든 안배를 자신의 훗날 종착지나 복받을 희망과 긴밀하게 결부하고 연관 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 첫발을 잘못 내디뎠다간 완전히 길을 잘못 들 수 있어. 그럼 복받을 희망도 사라질 테고, 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거야. 방심하면 안 돼! 하나님 집, 형제자매, 상부 리더,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다 믿을 수 없어. 모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야. 사람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그리고 가장 신뢰할 만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야.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타산하지 않는다면, 또 누가 나를 생각해 주겠어? 누가 내 앞날을 생각해 주고, 앞으로 복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해 주겠어? 그러니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타산하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궁리해야지, 작은 일이라도 대충 넘어가선 안 돼. 그랬다간 다른 이에게 이용되고 속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복받는 일을 하늘보다도, 목숨보다도 크게 생각하고, 복받는 일을 성품 변화나 구원받는 것,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는 것,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 구원을 받는 일을 다 사소한 일, 언급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고, 복받는 일만 평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일로 여긴다. 따라서 어떤 큰일이나 작은 일이 닥치든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달았어요.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제 자신을 지키고 자기 이익부터 챙기는 건 하나님이 폭로하신 적그리스도가 드러낸 성품과 똑같은 거더라구요. 항상 자기가 받을 복과 이익부터 생각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한 거였어요.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복을 얻으려고 하는 거라, 어떤 일이 임하든 먼저 자기 결말과 종착지부터 고민했던 거고, 복을 목숨처럼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본분에 임할 때도 앞뒤를 재고, 항상 하나님을 경계했던 거구요. 혹시라도 드러나 도태돼서 종착지를 잃게 될까 봐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놨어요. 정말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전혀 없더라구요. 새 신자 교회 본분을 받게 됐을 때도 전 그 본분은 어려움이 많으니까 복음 전하는 걸 계속 하고 싶었어요. 복음을 전하면 성과가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럼 하나님의 약속대로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죠. 그리고 새 신자 교회에 갈수록 어려움과 문제가 많이 생기니 괜히 양육을 잘 못해서 새 신자들이 떨어져 나가면, 저한테 책임을 물을 것 같고, 도태될 것 같았어요. 그러면 저의 지위와 미래가 보장받지 못하고 복도 받지 못할 것 같았죠. 그래서 전 도망갈 생각만 하고, 이 본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목적을 찾아보니 하나님께 순종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게 아니라 순전히 복을 받고 이득을 보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거였더라구요. 바울을 보면 유럽을 반 이상 돌면서 복음을 전했고 또 곳곳에 교회를 세우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그 모든 헌신이 다 복을 얻기 위한 거였고, 사역을 대가로 하나님과 거래한 거잖아요. 그래서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딤후 4:7~8)고 그런 말까지 했던 거구요. 저를 보니까 바울과 다를 게 없었어요. 본분에 마음을 다하지 않았고, 표면적인 헌신으로 하나님께 복이라는 삯을 요구했죠. 순전히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독소에 따라 살았어요. 이건 본분을 이행했다고 할 수가 없죠. 정말 하나님 집에 몰래 들어온 투기자이고 불신파인 거예요. 전 너무 양심이 없었어요. 교회에 해결해야 할 실제적인 문제가 많은데도 전 거기에 신경 쓰지 않고 맨날 제 종작치와 복이 없어질까 봐 고민하고 있었잖아요. 어디서도 인성을 찾아볼 수 없었죠. 그러니까 더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이제 더 이상 제 미래와 종착지를 위해 고민하지 않고 이 본분을 잘 완수하기 위해 마음을 쏟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그 후에 또 말씀 영상을 보면서 본분에 임할 때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해 조금 알게 됐어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사람이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 된다. 섬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은 단계적으로 체험하고 심판받는 과정에서 점점 줄어들므로 본분을 가로막거나 본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섬기는 과정에서 폐단이 생길까 봐 섬김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가장 나약한 자다. 사람이 섬기는 과정에서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하기까지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런 자는 이른바 ‘둔재’이자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자를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하겠느냐?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자가 아니겠느냐?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고,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본분을 이행하는 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거랑 상관이 없는 거죠. 본분은 피조물인 제가 당연히 이행해야 할 직책이고 의무니까 복을 받는 거랑 연관시키면 안 되죠. 이 본분에 아무리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충성을 다해 책임을 짊어져야 해요. 나중에 이 본분을 잘 완수하지 못해서 조정되거나 해임된다고 해도 제가 반성하고 깨달아야 할 게 있는 거구요. 드러나 도태되는 게 무서워서 이 본분을 하지 않는 건 잘못된 거더라구요. 사실 하나님 집에는 해임시키고 도태시키는 것에도 다 원칙이 있어요. 하나님 집에서 도태시킨 사람들도 어떤 본분 때문에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본분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바로 도태시킨 것도 아니에요. 하나님 집에서는 그런 걸로 사람을 도태시키진 않죠. 도태된 이유는 다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바른길로 가지도 않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아서에요.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들한테는 과오를 저질렀다 해도 회개할 기회를 줘요. 진리로 교제해 주면서 도와주고 책망도 하는 거죠. 그런 걸 통해 자신을 알고 회개하고 변화가 있다면 하나님 집에서도 계속 그 사람을 쓰는 거구요. 그리고 하나님은 본분 이행의 합격 기준을 표면적인 헌신이나 성과를 잣대로 판단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사람이 그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해 원칙대로 일을 하는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지를 기준으로 보시죠. 하나님은 그걸 보시거든요. 또 본분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진리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깨우쳐 주시고요. 그럼 해결 못 할 일도 없죠. 근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계속 자기 이익만 챙기고 본분에 건성으로 임하면서 회개도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서 기도했어요. 더는 제 개인의 이득을 따지지 않고 본분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요.

그 후에 전 본분에 마음을 들이며 했어요. 그리고 교회 사역을 구체적으로 정리를 했어요.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놓고, 해결하기 어려운 건 다른 리더나 사역자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지교회 리더나 사역자들이랑 같이 의논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관련된 원칙과 실행의 길을 찾게 되니까 많은 문제가 해결되더라구요. 이렇게 마음 자세를 바로잡고 제 결말과 종착지에 신경 쓰지 않고, 형제자매들과 마음을 합해 새 신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신경 쓰니까 한동안 지나 교회 생활도 점차적으로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 거에요. 전에 예배드리지 않던 분들도 다시 교회 생활을 회복하고, 정상적으로 예배드리면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어요. 또 많은 분들이 복음 전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구요. 그때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보게 됐고, “자발적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말씀을 피부로 느끼게 됐어요.

새 신자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문제가 발생했던 부분에서 조금씩 정상 궤도로 들어서고, 모두가 정상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정말 모든 게 하나님의 역사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정말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하시고, 사람은 협력하는 것밖에 없다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어떤 본분에서든 어떤 어려움에서든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순종하는 자세로 임하고 본분하는 과정에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최선을 다해 협력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체험하게 됐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어떻게 해야 죄성을 이기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상태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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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과 지위가 나를 해치다

미국 신루 제가 2017년에 리더로 뽑혀서 몇 군데 교회 사역을 맡았었어요. 근데 교회 리더들이 저보다 믿은 지 다 오래됐더라구요. 특히 고 자매랑 손 자매는 리더 본분도 오래했었고 전에 저랑 같이 사역자 모임을 했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엄마가 감옥에 간 후

중국 저우제 엄마 따라 도피했을 때가 15살이었어요. 그게 2002년 늦은 밤이었어요. 엄마가 갑자기 작은 소리로 경찰이 온다고 위험하니까 빨리 피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서둘러 옷가지를 챙기고 급하게 나왔어요. 그 후로는 우린 집에 못 가봤어요....

모든 이의 감독을 받기 원합니다

산시성 셴상 그동안 소구역 리더와 일꾼이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교회에 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강하게 맞서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제발 안 왔으면 좋겠어. 오더라도 제발...

쉽지 않았던 지위 내려놓기

중국 허난 리정농촌의 한 가정에서 태어난 저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형과 서로 의지하며 자랐습니다. 가난하단 이유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자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자. 언젠가는 출세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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