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했던 일에 대한 반성
중국 쟝링저는 2019년에 한 교회의 리더를 맡아 윗선 리더 두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진리 교제로 문제를 해결할 때, 두 사람은 문제 핵심도 잘 파악하고, 얕은 데서부터 깊은 데까지 차근차근 교제하고 해부하는데, 듣고 있으면 정말 도움이...
2017년,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본분에 성과가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저는 지위의 복을 탐하고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으면서, 늘 제 자질이 부족하고 업무를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사역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윗선 리더인 창징 자매가 사역에 대해 물어올 때면 저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고,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며 만나는 실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창징은 저에게 조언하며 도와주었지만 저는 달라질 줄 몰랐습니다. 창징은 제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며 몇몇 집사들 앞에서 두 번이나 저를 폭로했고,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며 교활하게 굴고, 너무 간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창징이 사람들 앞에서 저를 망신 주면서 괴롭힌다는 생각에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한 예배에서, 창징이 사역에서 저지른 실수를 발견한 제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그녀를 판단하는 바람에 형제자매들이 그녀를 거짓 리더로 잘못 여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교회 사역을 교란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폭로된 후, 저는 리더가 저를 책망하고 저의 본분을 조정할까 두려워 서둘러 창징을 찾아가 사과했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제 자신을 해부하고 인식했습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윗선 리더가 저를 찾아 제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직무 유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망과 훈계는 받아들이지 않고, 뒤에서 남을 음해했다며, 이는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이라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속으로 계속 따지고 들었습니다. ‘난 실제적인 사역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자질이 너무 부족해서 못하는 거야. 뒤에서 남을 음해한 일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창징에게 사과했고, 형제자매 앞에서도 내 패괴를 해부했어. 그런데 창징은 왜 아직도 그 일을 문제 삼는 거지?’ 당시에는 자매들이 아무리 저에게 교제를 해줘도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리더는 저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늘 부정적인 것을 퍼뜨리는 사람은 사탄의 종이자 교회를 교란하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전부 출교되고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사역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수치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언행이 불신자처럼 제멋대로이고 절제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이방인보다 더 사악한 사람이며, 전형적인 악마이다. 교회에서 독설과 악담을 퍼뜨리는 자나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이간질하며 당을 짓는 자는 마땅히 출교시켜야 하겠지만, 사역의 시대가 다르므로 그들에게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도태될 대상이기 때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저는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제가 창징을 판단한 건 확실히 교회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온 짓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종’, ‘교회를 교란하는’, ‘출교되고’, ‘도태될’ 이런 말들을 들으면 감히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정했다간 정죄되는 것은 아닐지, 그러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리더가 고의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저를 공격하고 정죄하는 거라며 리더를 원망했습니다. 저는 감정이 격앙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진리를 교제해 제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저를 공격하고 있어요!” 제가 자신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본 리더는 또다시 교제하며 저를 도와주었고, 자신의 체험과 결부시킨 교제를 통해 제가 자신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했고, 리더는 제가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회개하는 태도조차 보이지 않자 결국 저를 교체시켜 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2, 3년 된 새 신자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역은 거의 끝나가고, 사람을 드러내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때가 되었는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드러났으니, 이는 도태된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고, 앞날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소극적이 된 저는 나날이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제가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폐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늘 하나님께 버림받은 기분이었고, 마음이 하루 종일 불안했습니다. 비록 제가 반성하고 실패 가운데 공과를 배우도록 형제자매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었지만, 저는 제가 이미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으로 드러나서 다시 추구해도 헛수고일 거라고 고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교회가 저에게 어떤 본분을 안배하든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로 대충대충 이행해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습니다. 결국 리더는 원칙에 따라 저의 본분을 정지시키고 저를 따로 분리시켜 스스로 반성하게 하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완전히 끝이야. 본분을 잃었는데, 내게 구원의 희망이 있겠어?’ 그 기간 저는 하루 종일 산송장 같은 상태로 하나님께 미움받고 버려졌다는 느낌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자니 면목이 없었고, 저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자격도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당시 몇몇 형제자매들이 저를 붙들어 주고 도와주며 저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 말씀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지 저 같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그 기간 저는 매일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저를 버리신 거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징벌이 임해 죽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제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매일 고통 속에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러다 저를 감동시키는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저는 가사도우미 일자리를 구했는데, 고용주가 인성이 좋고 생활적으로도 저를 잘 돌봐주는 것을 보고 고용주에게 복음을 전했고, 고용주는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버리지 않으셨고 저를 여전히 긍휼히 여기며 구원하신다고 생각해 무척 감격했습니다. 저는 죄책감에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소극적으로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저를 구해주세요!”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이 사람을 정죄하는 말씀을 보면 관념이 생기고, 반발심이 생긴다. 예를 들면, 하나님 말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를 좋아하지 않고, 너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는 악을 행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이니 너만 보면 마음이 언짢다. 하나님은 너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은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런 말씀들은 다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야. 하나님께서 나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규정했어.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한 이상 나도 하나님을 안 믿을 거야.’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면 사람의 패괴된 내적 상태를 드러내고 사람을 정죄하는 말씀을 보고 자주 관념과 오해가 생겨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겨냥한 거라고, 하나님은 자신을 포기하고 구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소극적으로 변해 대성통곡을 하면서 더는 하나님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는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규정하지 마라.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포기하는지 모르며,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 사람을 포기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 사람을 한쪽에 내버려두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전부 원칙과 배경이 있다. 너는 이 세부적인 일에 관해 밝히 알지도 못하면 쉽게 예민해져서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를 근거로 자신을 규정하게 된다. 이는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할 때 주로 사람의 어떤 면을 정죄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고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이다. 하나님이 정죄하는 것은 사람의 사탄 성품과 사탄 본성이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다양한 태도와 행동이다. 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늘 자신만의 속셈과 목적을 품고 있는 것을 정죄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죄가 사탄 성품이 있는 사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너는 사람을 정죄하는 말씀을 듣고는 하나님이 사람을 포기했다고,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로 인해 소극적으로 변해 자포자기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자신을 포기한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무엇보다 치명적이다. 이는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잠 10:21)라는 구약 성경의 구절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포자기는 가장 어리석은 행위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규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그건 어떤 한 사람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견해를 선포한 것이다. 이는 전부 진리와 원칙에 속하는 말씀이지 어떤 한 사람에 대해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화나거나 분노할 때 한 말씀이라고 해도 그건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고, 이 말씀은 곧 진리이며, 나아가 원칙에 속한다. 사람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한 목적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절대 어떤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최후의 종착지나 상과 무관하며, 최후에 내리는 벌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심판하거나 책망하는 말씀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말씀이고, 사람을 깨우치고 지적하는 말씀이자 하나님의 마음속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심판의 말씀 한마디에 쓰러지거나 하나님을 저버리기도 한다. 이런 자는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말도 안 통하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관념을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1)>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마치 하나님이 저를 마주 보고 위로하시는 듯한 느낌에 자책의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다음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심판하거나 책망하는 말씀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말씀이고, 사람을 깨우치고 지적하는 말씀이자 하나님의 마음속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심판의 말씀 한마디에 쓰러지거나 하나님을 저버리기도 한다. 이런 자는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고 말도 안 통하는,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꿈에서 막 깨어난 기분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 말씀을 대하던 예전의 저의 태도는 이랬습니다. 리더가 읽어준 하나님 말씀 안에 ‘폭로’, ‘정죄’와 같은 단어가 나오면 제가 정죄되었다는 생각에 반발심을 느끼며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 말씀이 비록 매섭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고 회개하여 변화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깨달았습니다. 리더가 저를 폭로한 것도 제 일하는 방식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품이 강퍅하여, 사실 앞에서도 인정하지 않았고, 교체된 후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줄곧 하나님께서 저를 드러내고 도태시키신다고 오해해 소극적인 상태로 살며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가 되었습니다. 너무도 강퍅하고 패역한 자신이 증오스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느냐? 그의 공의 성품을 통해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성품은 기본적으로 공의, 진노, 위엄과 심판, 저주이며,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할 때 주로 심판의 방식을 택한다. 어떤 이는 어째서 심판과 저주를 통해야만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면 사람은 죽지 않겠습니까? 심판을 받는다는 건 정죄받는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럼 어떻게 온전케 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묻는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다. 비록 엄한 말씀으로 가차 없이 사람 내면의 것들을 전부 들춰내고, 사람 내면의 본질적인 것들을 전부 드러내기는 하지만, 이러한 심판의 방식을 통해 사람이 육의 본질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게 한다. 사람의 육은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한다. 육은 패역한 것이고 하나님의 형벌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게 하려면 오직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임해야 하며, 게다가 온갖 방법으로 연단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사역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여러 차례 읽었던 말씀이었는데, 어째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 없이는 영원히 자신의 패괴 본질과 패괴된 실상을 인식할 수 없고, 진실된 회개와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 심판받고 폭로 당한 사람은 정죄 받고 도태된 자로, 이는 그에게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그릇되고 터무니없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황당하고 터무니없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전혀 알지 못했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이 말씀의 실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려 하시고, 사람이 스스로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느 한 사람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구원할 생각이 아니셨다면, 하나님은 일찌감치 그런 행동을 한 나를 도태시켰겠지? 굳이 심판으로 나를 폭로하고, 매번 상황을 마련하셔서 나의 패괴함을 드러내고, 내가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하도록 깨우치고 인도하셨을까? 형제자매들이 나를 책망하고 나를 일깨워준 것도, 내가 돌아오고 반성하라고 그랬던 거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구원 아닐까? 하지만 나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 방식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한 채 하나님을 오해하며 소극적인 상태 속에 살며 하나님께 반항했어. 나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람이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랫동안 무감각했던 마음에 그제야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고, 제가 한 행동들이 너무나 후회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어떤 좌절과 실패가 닥쳐도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자신을 잘 반성하고 인식하며 공과를 배우겠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성실히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며, 진정으로 회개하겠습니다.”
그 후, 저는 그 기간 동안의 제 체험과 인식을 글로 썼습니다. 그 글을 본 한 자매가 하나님 말씀을 보내주며 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왜 자신에게 책망과 훈계가 닥쳤는지 반성하고, 리더가 폭로한 자매님의 문제를 하나하나 꺼내어 반성하고 인식하며, 진리와 대조해 보며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스스로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왜 리더는 나에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을까? 나에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어떤 모습이 있는 걸까?’ 돌이켜 보면 저는 리더를 맡은 동안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제 육적인 것만 생각했습니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대가를 치러가며 진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간사함을 부렸습니다. 진리를 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니, 자질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문제를 윗선 리더에게 넘겨 버리고 나는 걱정을 덜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결국 해결되지 않더라도, 저는 아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사역 중 만난 문제를 리더에게 보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보고를 들은 리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문제를 만나면 해결하기 위해 구하며 노력하지는 않고 그 어려움을 마치 짐짝처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네요. 만약 자매님이 그 어려움에 관한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면, 분명 자신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화가 났습니다. ‘내가 문제를 보고한 것도 잘못인가? 왜 내가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거지?’ 당시, 저는 속으로 계속 변명하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저는 그제야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창징이 여러 차례 저의 문제를 지적해 주고, 예배에서도 저를 폭로해 주었음에도, 저는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복수할 기회를 노리다가 그녀가 사역에서 실수를 하자 뒤에서 그녀를 판단하고, 음해하며, 교회 생활을 교란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의 악행이 폭로된 후에도 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가식적으로 창징에게 사과하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그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자신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 사건을 유야무야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리더가 하나님 말씀과 결부시켜 저를 폭로하자, 저는 마음으로는 수긍하면서도 겉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리더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저를 공격하고 정죄한다며 생트집을 잡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아닙니까? 그 후, 저는 또다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저의 상태에 대해 더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패괴가 정결케 되고 생명 성품이 변화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무엇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냐? 네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든, 네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 즉 어떤 사탄 독소가 있든, 하나님 말씀에서 그것을 폭로하면 인정하고 순종해야 한다. 아무런 선택도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해도, 그 말씀이 아무리 엄해도, 어떤 어휘를 사용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사실 진상에 부합한다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을 얼마나 깨달았든 순종해야 한다. 형제자매가 성령의 깨우침으로 인한 빛 비춤을 교제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어 성품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인성이 어느 정도 있고 좋은 일도 얼마간 하거나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할 수 있을지라도 진리를 참답게 대하지 않고 건성이며, 생명 성품에 늘 변화가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어투가 매섭든, 부드럽든, 심판과 폭로이든, 권고와 위로이든, 마땅히 모두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폭로하신 상태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그 말씀이 폭로하는 바는 모두 사실로, 우리 패괴 성품 안에 있는 것들임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아멘’이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하는 내용이 저의 상태란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리더가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 저를 정죄하고 저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겼습니다. 저는 정말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조언과 도움, 책망과 훈계와 같은 긍정적인 일도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순종하지 못했고, 저를 책망하고 폭로한 사람을 오히려 공격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인성이 없는 제 모습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마음으로부터 저 자신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임을 인정했습니다.
그 후, 저는 리더가 저에게 읽어주었던 하나님 말씀을 다시 찾아 묵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잔꾀만 쓰는 사람, 본분을 이행할 때 늘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가 없어 진흙탕 속이나 어둠 속에 사는 것과 같다. 아무리 찾고 노력해도 빛을 보지 못하고 방향을 찾지 못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영감과 하나님의 인도가 없어 벽에 많이 부딪힌다. 심지어 어떤 일들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드러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중에서),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늘 부정적인 것을 퍼뜨리는 사람은 사탄의 종이자 교회를 교란하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전부 출교되고 도태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고>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해 보며 저는 그제야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 옹졸하고 간교하며 교활한 사람임을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고,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면 늘 육적인 것만 생각할 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대가를 치르며 진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문제를 윗선 리더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한가로이 지내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늘 자질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간사했습니다! 본분을 대함에 있어 줄곧 건성으로 대충 하고 무책임했던 저는 당연하게도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지 못해 어떤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리더가 저를 책망할 때, 저는 반성하기는커녕 체면이 깎였다는 생각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사적인 분노를 풀기 위해 뒤에서 그녀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교회 생활을 교란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악행들을 비춰보면,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사탄의 종’, ‘교회를 교란하는 자’가 맞지 않습니까? 그때 저는 왜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을까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대하던 저의 태도와 과거 제가 저지른 온갖 과오들을 떠올리자 무척이나 후회가 되었고 스스로가 너무나 증오스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 패역했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든 그 모든 것이 저를 정결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기도 후, 저는 무척 감동을 받아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있던 나날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후, 저는 이전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를 고쳤습니다. 예배에서는 적극적으로 교제하고, 자발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으며, 체험 간증글을 쓰는 훈련도 했습니다. 저의 상태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 명확히 느껴졌습니다. 마치 큰 병에서 막 나은 환자처럼 나날이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본분을 잃었던 약 1년간의 시간 동안, 저는 줄곧 오해하고 경계하는 상태로 살았고, 마음은 늘 불안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역사를 잃은 온갖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마침내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구원입니다. 얼마 전 저는 교회로 돌아와 본분을 이행하라는 리더의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 메시지를 보며 감격한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뭔가 일이 닥치면 거기에 대해 따지고 들기 쉬운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상태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구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 혹은 한 부류의 사람에게 크게 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기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한 사람이 진리를 싫어한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구원에 결점이 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용서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행위의 일종이 아니며 일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닌 사람의 본성 본질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만약 네게 가끔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표출이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네 패괴 표출이 진리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진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성찰해야 한다. 이는 네가 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과 도움이 필요하다. 네가 만약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 본질을 가지고 있어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심한 반감만 품은 채 진리를 적대시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너는 악인이 분명하니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저는 하나님이 어째서 사람에게 크게 노하시는지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선포자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진리를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본성을 가진 사람은 절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패괴 성품을 표출하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몇 년을 믿어도 패괴 성품에 변화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에게 버림받고 도태될 운명입니다. 바울처럼 말입니다. 그의 본성은 진리를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한 번도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았고, 그 결과 아무리 오랜 세월 사역했어도 여전히 교만방자했고, 이익만을 탐하였습니다. 패괴 성품이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에게 정죄당하고 징벌을 받았습니다. 바울에게서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삶에서 진리를 싫어하는 사탄 성품을 표출했습니다. 그 결과 오랜 시간 어둠과 공포 속에 살며 고통에 시달렸고, 하나님께 방치당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모두 제가 진리를 싫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하며 사람이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제가 만약 계속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정결케 하심과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 믿음은 결국 헛수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해결하지 않는 것은 너무 위험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하는 것을 중시했고, 저의 패괴 성품을 저버렸습니다. 이후로 또다시 책망과 훈계가 닥쳐도, 그에 대해 따지고 반항하는 정도가 더는 예전처럼 심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말이 얼마나 맞든, 사실에 부합하기만 하면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때로는 인식이 잘 안되어 따지고 들며 변명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일단 순종했고, 나중에 반성함으로써 약간의 인식과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과거 그렇게나 강퍅하고 패역하여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가 지금은 이 정도의 인식과 수확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비로소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사역하시며 사람을 구원하시는 방식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책벌과 징계, 책망과 훈계는 사람을 정죄하거나 도태시키기 위함이 아닌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것임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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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성품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