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은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2025.11.27

중국 쉬쥐안(徐娟)

저는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났고,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저희를 버리고 새 가정을 꾸렸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저와 오빠,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리고 살면서 무척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때 저희 남매는 모두 몸이 약해서 병을 달고 살았는데, 특히 저는 어릴 때부터 가장 허약해서 찬 기운만 닿아도 감기에 걸려 기침과 고열에 시달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늘 저를 업고 병원에 다니셨습니다. 어떤 때는 밤에 제가 기침이 심해 잠을 못 이루자 어머니는 제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킨 다음에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평소에 맛있는 것이 생겨도 당신은 드시지 않고 모두 제게 남겨 주셨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조그마한 장사를 해서 저희를 공부시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저희를 위해 너무나 많이 희생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양심 없는 사람이 되면 안 돼. 커서 꼭 엄마한테 효도하고 그 은혜에 보답할 거야.’ 어른이 되어 돈을 좀 벌게 되자 저는 어머니께 옷 같은 물건을 사 드리며 효도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희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셨으니까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08년 어느 날, 오빠에게서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입원하셨다는 전화를 받고 저는 곧바로 사장에게 얘기해서 휴가를 내고 병원으로 가 어머니를 돌봐 드렸습니다. 어머니의 몸이 거의 회복되고 나서야 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몇 년 후, 저와 어머니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반년 뒤 저는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었고, 석방된 후에는 경찰의 감시와 체포를 피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한번은 한 자매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제가 집에 돌아가지 않자 오빠가 매일 어머니와 다투고, 저와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인터넷에 올렸으며, 경찰도 저를 잡으러 집에 몇 번 찾아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읽고 나니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저를 위해 그토록 헌신하셨는데, 제가 효도는 못 할망정 어머니께서 저를 감싸느라 오빠에게 시달리고 계시다니, 어머니께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해마다 늙어 가시는데, 오빠는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와 다투며 구박하는구나. 만약 어머니가 어느 날 병으로 쓰러져 자리에 눕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 한바탕 마음이 괴로웠고, 저 자신이 불효자에 양심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마음이 늘 교란을 받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정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더니 내적 상태가 조금 나아졌습니다.

2021년 5월 어느 날,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해서 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수술 후에도 최소 네 번의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새언니와 올케는 제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한 푼도 낼 수 없고 어머니도 돌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읽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머니가 어쩌다 이렇게 중병에 걸리셨을까? 집에서 너무 고생하셔서 그런 걸까? 만약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제때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실 텐데,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 잘못이잖아?’ 어릴 적 어머니께서 저를 힘들게 키워 주신 것을 생각하니, 지금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는데 이 중대한 시점에 돌아가서 돌봐 드리지 않는다면 너무나 도리에 어긋나고 양심 없는 짓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돌아가지 않으면 친척과 이웃들이 저를 어떻게 말할지 모릅니다. 분명 저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네 엄마가 너를 지금까지 키웠는데 엄마조차 버리다니, 그러고도 양심이 있는 게냐?”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머니 병세가 심각한데, 만약 이번에 내가 돌아가지 않아서 제때 치료를 못 받고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러면 다시는 어머니를 뵐 수 없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워 당장이라도 어머니 곁으로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고, 오빠한테 고발도 당했어. 집에 돌아갔다 잡히면 어떡하지? 게다가 본분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야!’ 때로 주변 형제자매들이 부모님을 뵈러 집에 가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속으로 원망이 싹텄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가 중공에 체포되게 하셨을까? 위험만 없어도 집에 가서 어머니를 돌봐 드릴 수 있을 텐데. 애초에 본분을 이행하러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쫓겨서 집에도 못 돌아가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거야.’ 며칠 동안 저는 이 일로 마음이 불안하여 본분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제 상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제 상태를 하나님께 아뢰며 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라 그 누구도 누구를 도와줄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니 마음이 조금은 밝아졌습니다. 어머니가 이번에 중병에 걸리신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던 것이고, 어머니가 받아야 할 고난이었습니다. 설령 제가 집에 돌아간들 그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으니, 저는 어머니의 병을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수명을 다하게 하셨다면 제가 돌아가도 소용이 없고, 만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병이 아무리 위중해도 돌아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체험 간증문이 생각났습니다. 한 연로한 자매님이 암에 걸려서 필요한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위독하다는 통지서까지 발부했습니다. 자녀와 친척들은 모두 자매님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자매님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자신의 생사를 하나님께 맡겼고, 결국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의 체험은 제게 큰 격려가 되었고, 저도 어머니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인식한 뒤 제 마음은 어느 정도 평온해졌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이번에 아프셨을 때 사촌 올케 둘과 올케가 병원에서 교대로 어머니를 돌봐 주었고, 수술도 잘 되어 몸도 잘 회복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본분을 잘 이행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는 무척 감동받아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늘 반성했습니다. ‘나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왜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하는 이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늘 어머니께 미안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본분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을 배반하려고까지 했을까?’ 나중에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일을 여전히 간파하지 못하고 진리를 정말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속적인 관계를 타파하지 못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용기와 믿음도 없고, 그런 의지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학교 교육과 가정의 가르침을 통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와 같은 사탄의 전통 사상을 우리 내면에 깊이 심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효도하지 않으면 불효자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양심에 가책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전통 사상에 따라 살면서,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가장 많은 심혈과 대가를 치르셨으니 키워 주신 은혜에 보답해야 하고, 만약 보답하지 않으면 양심과 인성이 없는 것이고, 불효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셨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도저히 어머니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적 제가 아플 때 어머니께서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셨으니, 저 또한 어머니께서 아프실 때 어머니가 제게 하셨던 것처럼 곁에서 정성껏 돌봐 드려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저를 키우신 보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이라도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 치료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쫓기느라 집에 돌아가 어머니를 돌봐 드리지 못하자, 저는 어쩌다 제가 경찰에 쫓기게 되었는지 원망하기 시작했고, 애초에 본분을 이행하러 나온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런 잘못된 상태를 지니게 된 것은 바로 사탄의 사상과 관점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어머니가 키워 주신 은혜를 어떻게 올바르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말해 보자.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 일을 이치에 맞게 분명히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가 너를 낳은 것에 대해 살펴보자.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이냐, 아니면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이냐? 누가 누구를 택했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아니다.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도 아니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운명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이 일은 사람이 이해하기 쉬우니 이 주제는 일단 제쳐 두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네 관점에서 보면 너는 수동적으로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그들에 의해 태어났다. 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주관적으로 너를 낳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본다면 네가 태어난 일에서 주도권은 부모에게 있다. 그들이 너를 낳기로 했으니 그들에게 주도권이 있다. 너는 그들에게서 태어날 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태어났다. 너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 부모가 주도권을 가지고 너를 낳기로 선택했다면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고 키울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너를 공부시키든, 먹이고 입히며 돈을 쓰든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이다. 하지만 너는 양육받는 동안 늘 수동적인 입장이다. 네게는 선택권이 없고 그들에게 양육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는 어리고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의 손에 수동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너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난다. 부모가 네게 좋은 것을 먹이면 좋은 것을 먹고, 부모가 네게 제공하는 생활 환경이 고달프고 빈곤하면 너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양육받는 동안 너는 수동적이고, 부모는 책임을 다한다. 부모가 꽃을 키우는 것과 같다. 화분의 꽃을 키우기로 했으면 비료와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너를 극진하게 보살피든, 정성껏 보호하든, 결국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들이 너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이든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이 너를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가 네게 하는 것이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식하며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다. 예를 들어 새, 소, 양 심지어 호랑이도 새끼를 낳은 후에는 키워야 한다. 후대를 키우지 않는 생물은 없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다. 이는 생물이 생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물의 본능이다. 그것을 은혜로 귀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저 창조주가 동물과 인간에게 정해 준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네게 책임을 다하고 심혈을 쏟고 돈을 썼다고 해서 너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깨달았습니다. 제가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살며 본분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은, 제가 어머니를 저의 채권자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희생하신 만큼 저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줄곧 이 은혜라는 빚을 짊어지고 있었고,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돌봐 드리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이번에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셨을 때,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은혜를 평생 갚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 제게 잘해 주시고 돌봐 주신 것은 어머니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으셨기에 저를 성인으로 키울 책임이 있었고, 이것은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동물이 새끼를 낳으면 키워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동물의 본능이자 하나님의 정하심입니다. 또 집에서 고양이나 개를 키우면, 주인으로서 돌봐 줘야 할 책임이 있는데, 이것들은 무슨 은혜라기보다는 단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께서 제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오늘날까지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몇 번이나 차에 치일 뻔했지만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평안하고 무사했습니다. 또 한 번은, 이혼 후 사귀던 남자친구가 아이를 돌보지 못하게 하자, 제가 그 말을 듣지 않았는데, 그는 그것 때문에 저를 목 졸라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부르짖었고, 그를 밀쳐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한 다음에는 네가 태어날 날짜도 정했다. 이어서 네가 울며 태어나는 모습, 네가 옹알옹알 말을 배우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모습까지 하나님은 다 지켜보았다. 한 걸음씩, 너는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뛸 수 있게 되었으며, 말을 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사탄은 성장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일은 사람이나 일, 사물, 공간, 시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는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할 뿐이다. 너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 질병,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곁에서 너를 보호하고 돌보아 주었다. 그렇게 이 길을 걷는 너의 생명과 미래를 엄격하게 지켜 주었으며, 너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직접 겪어 보니, 저는 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남몰래 보호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그토록 많은 심혈과 대가를 치르셨는데도, 저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줄곧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살며 본분에 충성하지 않아 사역의 진행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어머니가 길러 주신 은혜를 올바르게 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묵상 시간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부모를 위해 살러 온 것이 아니며, 각자 완성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피조물이고,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 해 동안 밖에서 본분을 이행한 것은 저의 직책을 이행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한 것이며,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경찰에 쫓기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과 어머니를 떠나야 했고, 그것은 불효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늘 어머니께서 아프실 때 곁에서 잘 돌봐 드리지 못하는 것이 진정으로 인성이 없고 불효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의 이런 관점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인성이 없고 부모에게 불효한 것은, 여건이 되는데도 부모를 돌보지 않고, 부모에게 무관심하며, 심지어 부모를 짐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고, 진정으로 인성이 없고 대역무도한 것입니다. 제 행동을 대조해 보면, 예전에 환경이 허락되었을 때는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자 정성껏 돌봐 드렸고, 평소 집에 있을 때도 어머니께 관심을 갖고 헤아리며 자식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이번에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셨을 때 제가 집에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경찰이 여전히 저를 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집에 돌아간다면 잡힐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면 어머니를 돌봐 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본분을 이행할 기회마저 잃게 됩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더 이상 어머니를 돌봐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만약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대신 집에서 부모 곁을 지킨다면 부모가 병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생사나 빈부의 문제가 네게 달려 있느냐? (그 역시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네가 아무리 효도해 봤자 기껏해야 그들의 육적인 고통이나 부담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병에 걸리고 어떤 병에 걸릴지, 언제 죽고 어디서 죽을지 너와 상관있겠느냐? 너와 아무 관련이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설령 제가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줄곧 어머니 곁을 지키며 돌봐 드렸더라도, 어머니께서 병에 걸리지 않으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람마다 얼마나 고생하고 어떤 좌절을 겪을지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주재되고 장악되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예순이 넘으셨으니, 그 연세에 병이 드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설령 제가 집에 돌아가 옆에서 돌봐 드렸더라도, 살뜰히 챙기고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며 시중을 들었더라도, 기껏해야 마음에 작은 위안을 드릴 수는 있었겠지만, 어머니께서 겪으시는 병의 고통을 제가 대신 짊어질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자녀들은 부모에게 효심이 깊어서 부모를 집에 모시고 극진히 돌보지만, 그래도 부모는 병에 걸립니다. 이를 통해 자녀가 곁에 있다고 해서 부모가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곁에서 돌본다고 해서 부모의 병이 낫는 것도 아니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정하심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 어머니께서 암에 걸렸을 때도, 겉보기에는 병세가 심각하여 나을 수 있을지 불투명했고, 새언니와 올케는 제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머니 치료비를 대지 않겠다고 독한 말을 쏟아냈지만, 결국에는 올케와 두 사촌 올케가 돈을 내고 병원에서 교대로 어머니를 돌봐 드렸습니다. 어머니의 병세는 악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잘 회복되셨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정녕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땅히 어머니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어머니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2023년 11월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남동생이 어머니께 새집을 사 드렸고, 어머니는 동생의 아이를 돌보면서 본분도 이행하고 계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몸도 아주 건강하니 안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짧은 몇 마디에 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곁에서 돌봐 드리지 못하는데도 여전히 잘 지내실 뿐만 아니라 본분까지 이행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 또한 의지를 더욱 굳게 다졌습니다. 앞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든 없든,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있든 없든, 더 이상 어머니를 돌봐 드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가책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을 잡고 제 본분을 잘 이행할 것이며, 이것이 제가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저는 제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전통 사상에 너무나 깊이 얽매여 있었고, 적합한 환경에 처하기만 하면 그것이 제가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끄심 덕분에 저는 이런 전통 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고, 더 이상 그로 인해 영향과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을 잡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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