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2025.9.26

중국 칭톈(晴天)

저희 집은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타지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 저와 남동생을 공부시키셨습니다. 평소에는 덜 먹고 덜 쓰고, 아파도 쉬지 않으셨습니다. 철없던 시절부터, 저는 아버지가 우리를 키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커서 꼭 효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비록 어렸지만, 집에서 빨래도 하고, 밥도 짓고, 남동생도 돌보는 등, 힘이 닿는 대로 부모님을 도왔습니다. 이웃들은 다들 저를 칭찬했습니다. “저 집 딸은 참 철도 일찍 들고 부지런해!” 어른이 된 후에도 저는 매달 번 돈에서 용돈만 조금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평소에 부모님께 옷이나 먹을 것, 생필품도 사 드리곤 했습니다. 가끔 아버지는 제가 사 드린 새 옷을 입고 허허 웃으시며 친척과 이웃들에게 자랑하셨습니다. “이것 봐, 우리 딸이 사 준 거야!” 부모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무척 기뻤습니다.

2009년,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나중에는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본분을 이행하는 곳이 집에서 가까워 부모님을 자주 찾아뵐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3년, 중공 경찰이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저를 잡으러 집에 찾아왔고, 그때부터 저는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17년 11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손목이 부러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를 뵈러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친 운전자가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아 소송까지 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남동생도 집에 없고, 어머니 혼자 아버지를 돌보면서 이런 일까지 직면해야 하는데, 감당하실 수 있을까? 내가 집에 있으면 아버지 돌보는 걸 도울 수 있을 텐데, 지금 집안에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도 나는 두 분의 어려움을 조금도 덜어 드릴 수가 없구나.’ 저는 마음속으로 죄송했고, 집에 돌아가 아버지를 돌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갔다가 잡힐까 두려워 섣불리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입원했는데도 찾아뵙지 않으면 친척과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고 저를 인성도 없고 양심도 없다고 욕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무척 심란하고, 집에 가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가 근무까지 해 가며 맡은 일을 다 끝내고, 섣달그믐 전날 위험을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이미 퇴원하신 후였습니다. 아버지의 몸이 괜찮게 회복된 것을 보고 그제서야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보자마자 무척 기뻐하셨지만, 금세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셨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경찰이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제가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해 알아보겠다며 고향에 다녀 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괴롭힘에 저희 온 가족은 억압감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어머니는 파출소에서 일 년에 여러 번씩 집에 전화를 걸어 제 행방을 묻고, 할아버지 댁에도 수시로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명절 때마다 제가 집에 돌아왔는지 묻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제가 집을 떠난 몇 년 동안 경찰이 계속 저를 찾고, 심지어 명절에도 부모님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경찰이 잡으러 올까 봐 두려워, 집에 있던 이틀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다시 뵙고 싶었지만, 사흘째 되는 날까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이 불안했던 저는 집에 하루 더 머무는 것이 그만큼 더 위험하다고 느껴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곳으로 돌아와서도 집안에 발생한 일이 생각나 마음이 계속 편치 않았습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명절에 다들 부모님 뵈러 집에 가서 영양제도 사 드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속 깊은 대화도 나누는데, 나는 어렵게 집에 한 번 가 놓고도 부모님 곁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부모님은 나 때문에 경찰에 시달리기까지 하다니. 아버지도 이번에 가셔서 경찰에게 어떤 취급을 받으실지 모르겠구나.’ 저는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부모님 생각만 하면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고 나서야 제 내적 상태가 조금 나아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모는 그런 복과 운명이 있어서 자손이 번창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복이다. 반면 어떤 부모는 그런 운명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옆에서 지켜 주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복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배치로,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 됐든 결론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은 최소한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환경이 허락하고 여건이 된다면 효도해도 된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여건도 되지 않는다면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뭐라고 하겠느냐? (순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이 순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냐? 순종의 근거는 무엇이냐?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이 선택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선택할 권리가 없으며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배치라는 것을 느낄 때, 네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그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느냐? 늘 가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다. 인성에는 정상적인 생각이나 본능이 있는데,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부모가 평생 얼마나 자녀복을 누릴지, 또는 자녀를 위해 어떤 고통을 겪을지는 모두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부모는 평생 자녀와 함께하며 단란한 행복을 누리지만, 어떤 부모는 그렇지 못한 삶을 사는데, 이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있습니다. 실제로 아버지가 이번에 교통사고를 당하셨을 때, 처음에는 가해 운전자가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지만, 뜻밖에도 길가에 있던 한 기자가 그 교통사고를 폭로해 주었고, 그 후 어머니가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변호사도 자발적으로 소송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그 일은 순조롭게 해결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부모가 평생 어떤 일을 겪을지, 얼마만큼의 복을 누리고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을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며, 자녀가 곁에 있는지 없는지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일을 바라보고, 부모님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현명한 선택입니다. 또 생각해 보면, 제가 이번에 집에 돌아가서 감정적으로 부모님께 약간의 위안을 드린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집에서 잡혔더라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 생명에도 손실을 가져왔을 것이고, 부모님은 제가 잡히는 모습을 보고 더욱 고통스럽고 괴로워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하고 구하며, 더는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2023년 8월 어느 날, 저는 남동생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2년 전에 관상동맥 심장병 진단을 받으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시면 다시는 저를 못 보게 될까 봐 늘 걱정하시다가 우울증이 생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경찰에 잡혀 고문당하는 건 아닌지 늘 의심하시고, 제가 무슨 변을 당하는 꿈을 자주 꾸신다고 했습니다. 또 가족들에게 늘 제가 보고 싶다면서, 얘기하시다가 이내 눈물을 흘리신다고 했습니다. 그 편지를 읽는 순간, 저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편지에서 얘기하는 그 사람이 제 아버지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계속 건강하셨는데, 어떻게 관상동맥 심장병에 우울증까지 걸리셨지? 아버지가 내 얘기만 나오면 우시고, 늘 나를 보고 싶어 하신다니. 아버지의 병이 나를 걱정해서 생긴 게 아닐까? 나 때문에 늘 불안에 떨며 지내시다가 우울증이 생긴 게 아닐까?’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온갖 고생을 하시며 어렵사리 저를 키우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저에게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저 때문에 연루되어 중공에 시달리고, 불안에 떨며 지내셨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우울증까지 얻으셨고요. 친척과 친구들은 분명 저를 배은망덕하고 양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욕할 것입니다. 저는 커다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저는 또 관상동맥 심장병이 심해지면 목숨을 앗아갈 수 있고, 이 병은 정서적 흥분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아버지가 계속 저를 걱정하시며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계속 이렇게 우울해하시면 정신 이상이 되는 건 아닐까?’ 저는 더 이상 생각할 수도 없었고, 가슴이 저미는 듯한 고통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습니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만약 그때 내가 리더로 선출되지 않았더라면, 자주 예배드리러 나가지 않았을 테고, 경찰의 감시와 추적을 받지도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집을 떠날 필요도 없었고, 부모님이 아프실 때 곁에서 돌봐 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도 나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으셨을 거야.’ 그 이틀 동안 저는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에 사로잡혀 내적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들지 않았습니다. 가끔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께 멀쩡한 모습을 보여 드리면, 아마 기분이 좋아져서 병도 빨리 나으실지 몰라.’ 이런 생각들이 들 때마다 마음이 무척 심란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일이 닥친 데에는 당신의 허락이 있음을 압니다. 마땅히 당신의 뜻을 구해야 하지만, 제가 정에 얽매여 늘 부모님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부디 저를 이끄시어 제가 진리를 구하고 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소서.”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만약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대신 집에서 부모 곁을 지킨다면 부모가 병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생사나 빈부의 문제가 네게 달려 있느냐? (그 역시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네가 아무리 효도해 봤자 기껏해야 그들의 육적인 고통이나 부담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병에 걸리고 어떤 병에 걸릴지, 언제 죽고 어디서 죽을지 너와 상관있겠느냐? 너와 아무 관련이 없다. 네가 배은망덕하지 않고 효자라고 해서 온종일 부모 곁을 지키며 돌본다면 그들이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겠느냐? 결국 걸릴 병은 걸리고, 죽을 사람은 죽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너는 부모가 겪고 직면한 모든 것이 너와 관계가 있으니 너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임을 네게로 돌린다. 항상 너와 결부시키고 자신을 개입시키려 하니 이런 생각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으냐? …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생로병사나 크고 작은 일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네가 성인이라면 네 생각이 성숙했을 테니 이 일을 냉정하고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면 날 생각하느라 그런 거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나 돼? 생각이야 했겠지. 자기 자식인데 어떻게 생각을 안 할 수가 있겠어? 나도 부모님을 생각하는데 어째서 나는 병에 걸리지 않는 거지?’ 병에 걸리는 사람은 모두 자식이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겠느냐? 그런 게 아니다. 그럼 부모가 큰일을 당하는 것은 어찌 된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에 그 일을 배치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하나님의 손으로 배치한 것이니 객관적 원인이나 이유를 들이댈 수 없다. 그저 부모가 그 나이가 되면 그 일이 일어나고 그 병에 걸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네가 곁에 있다고 피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의 운명에 병에 걸리는 일을 안배하지 않았으면 네가 그들 곁에 없어도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의 인생에 그런 큰일이 일어나도록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네가 그들 곁에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들은 여전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보아라. 온 식구가 해마다 같이 있지 않더냐? 부모에게 큰 어려움이 닥치면 가족과 자녀가 모두 부모 곁에 있지 않더냐? 부모가 병에 걸리거나 병세가 악화되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겠느냐? 그런 게 아니라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단지 자녀로서 부모와의 혈연관계 때문에 남이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네가 들으면 괴로운 것일 뿐이다. 이는 정상이다. 하지만 부모가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네가 분석하고 연구하며 어떻게 벗어나고 해결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부모도 성인이고 사회에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그들이 그 일에서 벗어나게끔 환경을 안배한다면 그 일은 조만간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들이 겪어야 할 인생의 고비 중 하나라면 얼마 동안 겪어야 할지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것이니 피해 갈 수 없다.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그 일의 근원과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이며 부질없고 쓸데없는 짓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교제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평생 운명이 어떠할지, 병에 걸릴지 안 걸릴지, 몇 살에 병에 걸릴지, 어떤 병에 걸릴지, 병에 걸리면 죽을지 안 죽을지, 수명이 얼마나 될지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라 그 누구도 개입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버지는 저를 그리워하다 병을 얻으신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단계에서 아버지가 그런 고비를 겪도록 예정하신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의 병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 사촌들도 부모님과 함께 살며 부모님을 돌보고 있지만, 고모는 몇 년 전에 고혈압과 천식을 앓으셨고, 고모부도 큰 병을 앓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자녀가 부모 곁을 지킨다고 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육을 지닌 유한한 존재이기에 온갖 양식을 먹고 살다 보면 병들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버지는 예순이 넘으셨으니, 그 나이가 되면 생리 기능이 퇴화하고 저항력이 떨어져 중장년층이 흔히 걸리는 병에 걸리는 것은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을 앓습니다. 예전에 제가 집에 있을 때 아버지는 담배와 술을 과하게 하셨고 생활 습관도 불규칙했습니다. 저는 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버지의 금연과 금주를 돕고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드시게 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제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조차 바꿔 드리지 못했는데, 병에 걸리는 일은 오죽할까요? 제 주변의 한 자매는 부모님이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으셨는데, 그 자매는 의사였습니다. 자매는 편찮으신 부모님께 가장 좋은 약을 쓰고 고급 건강보조식품을 드시게 했으며, 비싼 돈을 들여 최고의 요양원을 찾아 드리고, 거의 매일 부모님 곁을 지키며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극진히 돌봐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당뇨 합병증으로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아버지도 노인성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또 제가 만났던 한 나이 든 자매님은 자녀들이 곁에 없는데도 여든이 다 된 나이에 여전히 건강하셨고, 매번 건강검진 때마다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평생 어떤 일을 겪을지, 병의 고통을 겪을지 여부는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으며,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곁에서 돌본다고 해서 복을 더 누리고 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며, 자녀가 곁에서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병에 더 걸리고 더 많은 고통을 겪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모든 사람의 생로병사는 운명으로 정해졌고, 아버지가 병드신 것은 설령 제가 곁을 지켰다 해도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하루는 한 체험 간증 영상을 보았는데, 그 안에 담긴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 또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대범하고 품위 있는 말이냐! 사실, 그들이 말하는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정해 준 법칙일 뿐이다. 사람을 포함한 각종 생물은 모두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 생물마다 그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모든 생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한층 더 입증하는 것이다. 어떤 생물도 이 법칙을 깨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 생각해 보아라, 사자나 호랑이는 사나운 육식 동물이지만 새끼 때는 성체가 되기 전까지 길러지고 물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사납든, 온순하든 모든 동물은 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따라야만 번식해 나갈 수 있다.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각종 생물이 이 법칙을 지키지 않거나 이런 법칙과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번식할 수 없을 것이고, 먹이 사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바로 생물계가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성체가 될 때까지 암컷이나 수컷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각종 생물도 자기 새끼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극진하게 돌보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이 자칭 고등 동물이라고 하면서 이 법칙을 지키지 않고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동물보다 못하다. 그러니 부모가 너를 키우면서 얼마나 보살피고 책임을 졌든 그들은 그저 피조된 인류의 능력 범위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그들의 본능이다. … 각종 생물이나 동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가지고 있고, 이를 잘 지키고 제대로 실행한다. 아무도 이를 깨뜨릴 수 없다. 이 외에도 특별한 동물이 있다. 호랑이, 사자와 같은 동물들은 성체가 되면 부모에게서 떨어진다. 심지어는 수컷끼리 경쟁하며 물 땐 물고, 겨룰 땐 겨루며, 싸울 땐 싸우기도 하는데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것이 법칙인 것이다. 그것들은 정에 얽매이거나 인간처럼 정에 빠져 살지 않는다. “은혜에 보답하고 은혜를 갚아야 돼.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 불효하면 남들이 비난하고 욕하며 뒤에서 험담할 거야.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어!”라는 말은 동물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사람은 이런 말을 하겠느냐? 왜냐하면 사회나 사람들 가운데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상과 여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런 잘못된 사상과 여론에 영향을 받고 물들고 부식되고 나면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다루게 된다. 결국, 부모를 자신의 채권자로 삼고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부모가 죽으면 부모가 기뻐하고 원하는 걸 해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부모의 은혜에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것은 불필요하지 않으냐? 사람이 정에 빠져 살면 정에서 비롯된 여러 생각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종 생물에게 부여하신 본능입니다. 각종 동물은 어릴 때 독립적으로 생존할 능력이 없어서 부모의 양육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것은 각종 생물이 번성하고 생존하는 법칙입니다. 인류도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며,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지 자녀에 대한 은혜가 아닙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저를 키워 주셨고, 특히 아버지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저를 공부시키기 위해 평소 덜 먹고 덜 쓰며 아파도 쉴 엄두를 못 내시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저를 키우시며 치르신 대가와 그로 인해 겪으신 고통을 은혜로 여겨 마음에 깊이 새겼고, 커서 반드시 효도하지 않으면 너무 양심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와 같은 사상 관념의 영향을 받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아버지를 뵈러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관상동맥 심장병과 우울증을 앓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버지가 저 때문에 연루되어 중공에 시달히고, 저 때문에 불안에 떨며 지내다 병을 얻으신 것이라 여겨 마음속으로 심한 가책을 느꼈고, 심지어 당시에 리더 본분을 이행했던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비록 기도를 통해 본분을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본분에서 완전히 떠나 건성으로 형식만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이런 전통 사상은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켜, 사람이 정에 이끌려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하게 하며,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만든다는 것을요.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네 부모로 하여금 너를 성인이 되기까지 키우도록 정한 것은 네가 평생 부모에게 보답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네게는 평생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고 가야 할 길이 있다. 네게는 너의 삶이 있으니 평생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에 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지 네 인생길에서 네 삶에 딸려 오는 일, 인성과 감정의 관계에서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하지만 너와 부모 간 어떤 인연이 있는지, 네 남은 인생에서 부모와 함께 살 것인지, 아니면 함께할 인연이 없어 떨어져서 살 것인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달려 있다. 만약 하나님이 너와 부모를 평생 멀리 떨어져 있게 배치하고 안배하여 늘 함께 생활할 수가 없다면 너는 그 책임을 그저 마음에 품게 될 것이다. 만약 네 인생에서 하나님이 너와 부모를 가까이 살게 안배해서 부모의 곁을 지키게 한다면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고 효도하는 것도 네가 해야 할 일이기에 그다지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네가 부모와 떨어져 있어서 효도할 기회가 없고 여건이 안 된다면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네가 효도하지 못하는 것이 부모를 볼 면목이 없을 일도 아니다. 단지 여건이 따라 주지 못할 뿐이다. 자녀로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깨달아야 한다. 너는 평생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은 창조주에게서 받은,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이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갚는 것은 네 평생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보답하며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건이 되면 좀 효도하고, 책임을 조금 이행할 수 있으며, 여건이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단지 양심과 인간의 도의 및 관념에 조금 위배될 뿐 최소한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죄하지도 않는다. 네가 진리를 깨닫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제 평생의 사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는 마땅히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기회가 되어 부모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자식의 책임을 다해 부모님을 돌보고, 기회가 없다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전념해야 합니다. 지금 제가 부모님을 돌볼 수 없는 것은 자식의 책임을 다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중공에 쫓겨 집에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 책망받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말세에 태어나게 정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저는 너무나도 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습니다. 지금이 하나님나라 복음이 확장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저는 마땅히 복음 사역에 마음을 쏟아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부모님께 효도하려고만 하고, 피조물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과 보살핌, 보호를 저버리는 것이며, 그야말로 정말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깨닫게 되었고, 더는 사탄의 전통 사상에 얽매이거나 속박당하지 않게 되어 마음의 해방감을 얻었으며, 차분히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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