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2025.11.27

중국 쑹즈(宋稚)

2019년 10월, 저는 예배를 드리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열아홉이었습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날 어머니가 데리러 오셨습니다. 몇 년 만에 뵙는 어머니는 무척 수척해지셨고 흰머리도 부쩍 늘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저는 말도 못 하게 괴로웠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어릴 적부터 저를 무척 아껴 주시며 고생 한번 시키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무엇이든 저부터 챙겨 주셨고, 특히 제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는 저보다 더 마음 졸이셨습니다. 열네 살 때 등산하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는데, 부모님은 병원에서 교대로 저를 간호해 주셨습니다. 가뜩이나 쉬는 날이 많지 않았던 아버지는 며칠 안 되는 휴가마저 저를 돌보는 데 쓰셨습니다. 간이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지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고, 부모님께 폐만 끼치는 애물단지인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때, 부모님은 서운해하시면서도 저를 지지해 주셨고, 재정적으로도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이번에 제가 체포되자 부모님은 더더욱 마음고생이 심하셨습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부모님께서 마음을 졸이고 심히 염려하며 지내셨을 것을 알기에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님께 해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늘 걱정만 끼쳐 드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기차에서 곤히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제가 체포된 후로 발 뻗고 주무시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이제 저도 다 컸으니 더는 걱정 끼쳐 드리지 말고 돈을 벌어 부모님을 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어 물질적으로나마 부모님께 보탬이 되어드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 생각을 들으시곤 제가 일하는 것에 반대하시면서 제가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하는 시간을 더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잘해 주실수록 제 죄책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부모님께 신세를 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저는 일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 팬데믹까지 겹쳐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어떻게든 보답할 생각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B형 간염을 앓고 계셔서 몸이 무척 허약하셨고, 아버지는 요통이 심한 데다 당뇨와 심장병까지 앓고 계셔서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빨래를 하거나 할 수 있는 한 집안일을 하면서 부모님을 도와드렸고, 아버지께 괄사를 해 드리거나 파스를 사다 드렸습니다. 팬데믹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찾아와 ‘3서’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서명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찾아올 것이라고 위협하며, 수시로 파출소에 출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집에서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 후, 저는 집을 나와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다시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이렇게 떠나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 부모님은 연세도 많으시고 몸도 점점 안 좋아지시는데 자식이라고는 나밖에 없어. 내가 곁에 없으면 돌봐 줄 사람도 없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남들은 자녀로 노후를 대비한다고 하는데, 나는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했으니 부모님은 정말 나를 키운 보람이 없으실 거야.’ 이런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 괴로웠습니다.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전 항상 부모님 걱정뿐이었고, 심지어 집에 돌아가 본분을 이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을 돌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경찰이 여전히 저를 찾고 있어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알지만, 편찮으신 부모님만 생각하면 불안해서 본분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제 상태를 알게 된 책임자가 저에게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을 찾아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네 부모가 막지 않고, 그들 역시 믿으면서 네가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을 무척 지지하고 독려해 준다면, 너와 부모는 평범한 의미의 육체적 혈연관계가 아니라 형제자매 관계이다. 그러니 너는 형제자매의 관계로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 외에도 자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너는 본분 이행이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즉 네 마음이 그들에게 속박받지 않는 상황에서 전화로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도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거나 생활 속 문제들을 처리해 줄 수 있고, 그들이 생명 진입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가능하다. 이는 하나님 믿는 것을 부모가 막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 관계는 지켜야 하고, 너는 네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어째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돌봐 주어야겠느냐? 너는 그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 때문에 너에게는 하나의 책임이 더 있는 것이고, 너는 그들에게 더 많이 안부를 묻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그들이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않고 네 발목을 잡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그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만약 환경적 영향이나 방해로 인해 집에서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다면, 규례를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배치를 따르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무리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하나님이 정죄하겠느냐?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교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 이행이 충돌하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교제하고 있는 것은 실행 원칙이고 진리이다. 네게는 부모에게 효도할 책임이 있다. 상황이 허락된다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겠지만, 감정에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부모 중 한쪽이 몸이 안 좋아 입원했는데,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고 해 보자. 네가 본분 이행으로 정신이 없어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럴 때는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이 일에 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라야 한다. 이런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본분에 지장을 주지 않고,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힘닿는 데까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성의 범위 안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감정에 빠져서 본분 이행에 지장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어긋난다. 하나님은 네게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저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면 된다고 요구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하나님을 믿으십니다. 환경이 허락되고 본분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저는 집안일을 돕고 부모님의 생활을 돌봐 드리며 담소도 나누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여 부모님의 생명 진입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저는 본분을 최우선시해야 합니다.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부모님을 하나님께 맡기고 제 본분부터 잘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한번은 리더가 예배에 와서 제게 절대 집에 돌아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경찰 일고여덟 명이 저희 집에 찾아와 어머니를 닦달하며 제 행방을 캐물었고, 성(省)급 부서가 제 사건을 맡고 있어 저를 꼭 잡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제 친척과 친구들에게까지 찾아가 심문했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저를 찾지 못하면 분명 끊임없이 부모님을 닦달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몹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마음속으로 계속 자책했습니다. ‘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연루되신 거야. 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고난 당할 일은 없으셨을 텐데. 내가 집을 나오는 바람에 경찰이 나를 못 찾고 부모님을 닦달하면서 괴롭히는 거잖아. 저 경찰들은 독사 같아서 한번 물면 놓지 않는데, 어떻게 편히 지내실 수 있겠어?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호강 한번 못 시켜 드리고 오히려 짐만 되었으니, 나 같은 자식은 안 키우느니만 못해!’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런 환경이 임한 것이므로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조용히 하나님께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고통 속에서 얻은 기쁨>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허리 통증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은 주인공은 이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생명이 성장했습니다. 저는 불행처럼 보이는 일이라도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순종하며 공과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희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란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너희 모두 이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지만 누구도 그 진정한 함의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이 말의 실제적인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말세에 이루고자 하는 것이며,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서 그것의 잔혹한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큰 붉은 용은 하나님을 핍박하는 하나님의 원수이므로 이 땅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다. 따라서 이 말은 너희 이 무리에게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에서 사역을 펼치므로 그의 모든 사역이 강력한 저지를 당하게 되며, 그의 말씀 중 많은 부분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는데, 이 역시 ‘고난’의 한 요소이다.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의 땅에서 사역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이 ‘어려움’을 통해 한 단계의 사역을 행함으로써 그의 지혜와 기묘한 행사를 나타낸다. 또한, 그것을 기회로 이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받는 고난, 사람의 자질, 이 더러운 땅에 있는 사람의 모든 사탄 성품으로 인해 정결케 하고 정복하는 사역을 행하며, 이를 통해 영광을 얻고, 그의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을 얻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는 의의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한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사역하시면서 큰 붉은 용의 체포와 박해를 이용해 하나님 선민을 온전케 하는 데에 봉사하게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를 통해 공산당의 추악한 민낯을 똑똑히 보게 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본질을 알게 하여, 더욱 굳건히 하나님을 따르게 하십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통해 사람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권병을 알게 해서 더 이상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난 속에서 공과를 배우고 진리를 얻게 하십니다. 저희 부모님이 핍박받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부모님께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기회를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안목이 좁아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 저는 육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해서 부모님이 고난받으실까 걱정했고, 심지어 모든 책임을 제 탓으로 돌렸습니다. 저로 인해 부모님이 연루되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마치 제가 체포되지 않았다면 부모님도 핍박받지 않았을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매우 비이성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큰 붉은 용은 본성이 사악하여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미친 듯이 체포하고 박해합니다. 제가 잡히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부모님은 공산당에게 박해당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도 부모님은 하나님을 믿으며 경찰의 체포를 피해 저를 데리고 여기저기 숨어 다니셨고, 몇 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해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경찰의 괴롭힘과 박해를 받고 계신 지금, 저는 큰 붉은 용을 증오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여 그들을 부끄럽게 해야 마땅합니다. 그 후 저는 부모님께 편지를 써서 하나님의 뜻과, 이 상황을 겪으며 깨달은 것을 교제하며 부모님을 응원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께 답장을 받았는데, 경찰이 계속 찾아와 괴롭힐 때마다 두렵고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권병에 관한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사탄은 단지 하나님의 장난감일 뿐이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경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에 맞설 믿음과 용기가 생겼고, 심지어 경찰의 유언비어와 황당한 논리에 반박할 용기까지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수확을 보고 제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저 없이도 부모님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더 잘 지내고 계시니, 전 정말 부질없는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더 이상 부모님이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식하며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다. 예를 들어 새, 소, 양 심지어 호랑이도 새끼를 낳은 후에는 키워야 한다. 후대를 키우지 않는 생물은 없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다. 이는 생물이 생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물의 본능이다. 그것을 은혜로 귀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저 창조주가 동물과 인간에게 정해 준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네게 책임을 다하고 심혈을 쏟고 돈을 썼다고 해서 너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부모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할 의무도 없거니와 그들의 기대를 떠안을 의무도 없다. 그들의 기대는 그들 몫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게는 하나님이 정해 준 너의 인생길과 운명이 있다. 네 부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낳아 키우시고 생활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 것은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지, 보답해야 할 은혜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 새가 새끼를 낳으면 먹이를 주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하여 새끼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새끼가 위험에 처하면 어미 새는 자기가 다치더라도 필사적으로 새끼를 지킵니다. 새끼에 대한 어미의 보살핌과 사랑은 전적으로 본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류가 자손을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은 저를 낳으신 순간부터 저를 양육할 책임과 돌보고 보살필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두 분이 저를 돌보는 것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므로 부모님께 죄스러워하거나 보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녀로 노후를 대비한다’,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와 같은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아 부모님의 보살핌을 은혜로 여겼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위해 많이 희생하고 헌신하셨으니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 남은 인생을 바치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저는 구치소에서 2년 넘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했고 본분도 이행하지 못해 생명 진입이 한참 뒤처졌기 때문에, 이제는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 때문에 애태우고 고생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 윤택한 삶으로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팬데믹만 아니었다면 저는 돈을 벌러 갔을 것입니다. 그 후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때도 어떻게 부모님께 보답할지 생각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마치 제 남은 인생을 오직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호흡을 주셨고, 제가 장성할 때까지 지켜 주셨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또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으니, 저는 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야 마땅합니다. 비록 부모님께서 저를 많이 보살펴 주셨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까지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열네 살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등산하다가 산에서 실족사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죄송해야 할 분은 부모님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 본분을 다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저는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두 가지 원인이다. 이 외에 한 가지 원인이 더 있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 믿는 것을 유난히 박해하고 가로막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부모가 지지했다면, 혹은 너처럼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였고 모두가 하나님 집의 사람이었다면 마음속에 부모가 떠오를 때 묵묵히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부모를 하나님 손에 맡기고 그들의 건강과 안전, 그들 생활에 필요한 것 일체를 하나님 손에 맡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네가 부모를 하나님 손에 맡긴다면 그들에게 최고로 효도하는 것이다. 너는 그들의 생활에 온갖 난관에 부딪치기를 바라지 않고 그들이 잘살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너는 마음속으로 분명 그들이 평안하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기를 바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본분을 이행하고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것이다. 사람은 인성으로 그 정도에만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그토록 많은 진리를 들었으면 최소한의 인식과 이해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며, 사람은 하나님 손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킴이 자녀의 걱정과 효도, 자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이 부모를 보살펴 주고 지켜 준다면 네 마음이 푹 놓이지 않겠느냐?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 결론적으로 사람은 객관적 환경의 영향으로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해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등등을 느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믿는 삶 속에서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과 관련된 화제가 나왔을 때 사람은 이렇듯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더는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 마음이 해방되었고, 저는 진정한 불효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돌볼 여건이 되는데도 자신의 안락만 챙기고 책임을 회피하며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양심이 없는 짓이며, 이것이 바로 불효입니다. 하지만 제가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며, 효도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공산당의 핍박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부모님도 하나님을 믿으시기에 제게 가장 바라시는 것은 부모의 노후를 돌보는 봉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하나님을 잘 믿고 본분을 다하며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부모님께는 가장 큰 위로인 것입니다. 아울러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길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이끌어 주시도록 두 분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제가 곁에서 돌봐 드리는 것은 표면적인 보살핌일 뿐 별다른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허리가 아프실 때 저는 기껏해야 괄사를 해 드리거나 파스를 사다 드리는 게 전부였고, 협심증에 걸리셨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그저 곁에서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더욱이 고통을 덜어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곁에 있든 없든, 걸릴 병이라면 걸리실 것이고 건강하실 몸이라면 건강하실 것입니다. 제가 곁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부모님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지금 부모님은 좀 편찮으시긴 해도, 서로 돌보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며 마음의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다. 이는 그 어떤 보살핌이나 물질적 풍요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하나님께 맡기니 마음이 무척 놓입니다.

예전에는 제가 사탄의 독소에 시달리고 얽매여 저 자신을 부모님께 빚진 자처럼 여겼고, 두 분을 돌봐 드리지 못해 늘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의 족쇄를 풀어 주어서 더 이상 부모님의 은혜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오랫동안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무탈하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고, 제 시간과 에너지를 본분에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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