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내려놓다
중국 신청(心誠) 어릴 적, 저는 엄마가 저희들이 먹고 입고 쓰는 걸 챙겨 주는 것 말고도 밭에 나가 일도 하고 가사를 다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여자는 그렇게 살아야 현모양처라고 생각했어요. 결혼하고 나서 저도 엄마를 따라 애와 남편의 의식주를...
2022년 9월 말에 교도소에서 나온 밍후이(明慧) 자매는 남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갑니다. 밍후이 자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이유로 두 번이나 경찰에 잡혀 박해를 받았는데, 이번이 두 번째였고 징역 3년 3개월을 복역했습니다. 밍후이 자매는 계속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다닌 데다, 감옥 생활까지 하게 되면서 10년간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10년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1년 전에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하반신 마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건강했던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됐을 때 그녀는 크게 놀랐고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집에서 막내였던 터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고 엄마 또한 특별히 보살펴 주었던 게 생각이 났죠.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면서 고생스럽게 키워 주셨는데, 부모님이 꼭 필요로 할 때는 곁에서 효도를 못 한 게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처음 구치소에 갇혔을 때에도 어머니는 딸이 심하게 맞을까 봐 잘 드시지도 못하고, 밤잠도 설치시고, 어떻게든 보석으로 풀어 달라며 여기저기 부탁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밍후이 자매는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엄마 곁으로 다가갔고 어머니도 감정에 북받쳐 말합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거기서 고생하고 억울한 일 당할까 봐 그동안 내가 네 걱정 얼마나 했는지 아니?” 엄마의 이런 말을 들으니 미안함은 배가 됐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자매는 ‘자식을 키워서 노후를 대비한다고 하는데, 부모님이 몸져누워 딸의 손길이 가장 필요할 때 곁에서 수발들기는커녕 밥 한 숟가락, 약 한 알도 챙겨 드리지 못했잖아. 키워 준 부모님의 은혜에 너무 미안해. 나 같은 딸은 키워 봤자 무슨 쓸모가 있겠어?‘라며 자책하게 됩니다. 그 뒤로 밍후이 자매는 그간 못해 드렸던 걸 조금이라도 보상하고자 열심히 어머니를 보살핍니다. 문제는 밍후이 자매가 귀가한 지 얼마 안 돼 경찰 두 명이 집에 찾아와 사진을 찍으면서 매달 한 번씩 의무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건 분명 경찰들이 자신의 행적을 감시하고 있는 거였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신호였습니다.
어느 날, 교회 리더로부터 객지로 가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냐는 쪽지를 받게 됩니다. 그 쪽지를 받은 밍후이 자매는 희비가 교차합니다. 아직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쁘지만 반신불수가 된 엄마가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어렵게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챙길 기회가 생겼는데, 이렇게 떠나면 돌아올 기일을 약속할 수 없으니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날 키워 주셨는데, 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도 집에 없었잖아. 이러다 엄마가 세상 떠나실 때에도 곁에 있지 못하게 되면 인간성이 없는 거잖아? 사람들이 배은망덕하다고 욕하는 건 둘째 치고 내 양심이 허락을 못 할 것 같아. 부모님이 날 키우신다고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그건 다 노후에 곁에서 챙겨 줄 자식 농사를 한 거잖아? 지금까지 공산당의 추적과 핍박 때문에 부모님을 모실 기회가 없어서 안 그래도 죄책감이 크게 드는데, 더 이상 이렇게 엄마를 내버려둘 수는 없지.’ 이런 생각에 밍후이 자매는 거절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 뒤 마음에 가책이 듭니다.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엄마를 보살핀다는 이유로 본분을 거절하는 건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처사잖아.’ 이 일로 밍후이 자매는 깊은 고민에 휩싸여 계속 기도합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떠올립니다.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은 적어도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느냐? 말할 때와 일할 때 기본적으로 양심과 이성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사람이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거기에 진리를 깨닫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 것이고 양심과 이성의 기준에 부합하고도 남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도록 공급하고, 자양하고, 이끌어 주시지요. 그러니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사탄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합니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이것도 물론 맞는 말이지만 큰 틀과 윤곽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실제적인지는 양심, 이성과 관련이 있다. 그럼, 하나님을 위해 사는 방법은 무엇이냐? (피조물로서 이행해야 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너희가 현재 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맡긴 부탁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고 예정하고 주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일을 네가 완성하도록 맡겼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밍후이 자매는 양심과 인성을 갖추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본인은 피조물이고 지금의 이 숨결도 하나님께서 주셨고,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았으며,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주재하심과 공급하심을 떠날 수 없었다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더구나 여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정말 많이 공급받았는데, 정말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기 일만 챙기고 자기 가정만을 위해, 자기 자녀와 부모만을 위해 산다면 그건 너무도 양심 없는 처사죠. 더구나 오빠와 언니들이 어머니를 잘 챙기고 있기에 본인이 집에 없어도 어머니에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뒤로 밍후이 자매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기도합니다.
2023년 2월에 밍후이 자매는 경찰의 감시를 벗어나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형제자매들과 상봉하게 되어 너무 기뻐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밍후이 자매는 짧은 글 한 편을 보게 됩니다. 한 중년 여성이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에 이것저것 사 들고 찾아갔다가 아픈 엄마를 집으로 모셔 오고 싶어 했는데 그럴 여건이 안 돼서 그저 위로의 말만 해 줄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연히 밍후이 자매도 엄마 생각이 나서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그때 곁에 있던 협력자 자매가 농담을 던집니다. “왜 그래요? 무슨 추억이라도 떠올랐어요?” 하지만 밍후이 자매는 그 자매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막내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거든요. 어릴 때에 엄마를 고생시켰고, 하나님을 믿은 뒤에는 계속 박해를 당하고 두 번이나 잡혀 감옥까지 가면서 엄마를 크게 놀라게 했죠. 그로 인해 많은 걱정을 끼쳐 드리고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어쩌면 자기 때문에 엄마가 아픈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자매가 가장 필요할 때 이렇게 본분 때문에 객지에 와 있으니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배가 되면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하지만 금세 정에 빠져 있다는 걸 인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또 엄마에 대한 걱정을 가득 안은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사탄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아멘!’
그러고 나서 밍후이 자매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부모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할 의무도 없거니와 그들의 기대를 떠안을 의무도 없다. 그들의 기대는 그들 몫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게는 하나님이 정해 준 너의 인생길과 운명이 있다. 네 부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이 불효막심한 녀석, 몇 년이 지나도록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오랫동안 전화도 한 통 없다니. 내가 병들면 보살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정말 널 헛키웠구나. 배은망덕한 녀석, 고마운 줄도 모르고!”라고 하는데, 만약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너는 칼에 찔린 듯 마음이 아플 것이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다. 부모의 말이 구구절절 네 마음을 후벼 파니 너는 부모를 볼 면목이 없다고, 부모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부모가 너를 배은망덕하다고 말할 때 네가 정말 ‘그러게 말이야. 부모님은 여태껏 날 키우시느라 자식 덕은 보지도 못했어. 이제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내가 병시중을 들며 돌보길 바라시는데 막상 은혜에 보답해야 할 때 내가 곁에 없으니 난 정말 배은망덕한 자식이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배은망덕한 자식이라 규정하는데, 이것이 이치에 맞느냐? 네가 배은망덕한 것이냐? 네가 만약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대신 집에서 부모 곁을 지킨다면 부모가 병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생사나 빈부의 문제가 네게 달려 있느냐? (그 역시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네가 아무리 효도해 봤자 기껏해야 그들의 육적인 고통이나 부담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너와 상관있겠느냐? 너와 아무 관련이 없다. 네가 배은망덕하지 않고 효자라고 해서 온종일 부모 곁을 지키며 돌본다면 그들이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겠느냐? 결국 걸릴 병은 걸리고, 죽을 사람은 죽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 네가 부모의 말처럼 배은망덕하든 그렇지 않든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이 보기에 배은망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람이 뭐라 하든 소용없다. 부모가 너를 뭐라 하든 꼭 그렇지 않고, 그런 말은 소용없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네가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라고 하면 사람이 아무리 너를 배은망덕하다고 욕해 봤자 소용없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사람은 단지 양심 때문에 혹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분량이 작아서 이런 악담의 영향을 받아 기분이 나빠지고 의기소침하게 되지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밍후이 자매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진리를 말씀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부모님이 자기를 낳아 주시고 고생하면서 공부시켜 주셨고 정말 걱정도 많이 해 주셨으며, 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으니 어른이 됐으면 당연히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사람들에게 배은망덕하고 불효막심한 녀석으로 낙인찍혔을 것입니다. 밍후이 자매는 그동안 집에 있었으면 아버지가 아팠을 때 잘 보살폈을 거고 엄마도 자기 때문에 놀라고 걱정하는 일이 없었을 거고, 그럼 저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가 아픈 게 자기 탓이라고 느끼곤 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부모의 생사나 빈부의 문제가 네게 달려 있느냐? (그 역시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밍후이 자매는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사람이 언제 어떤 병을 앓게 될지, 언제 죽을지에도 다 하나님의 정하심이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니 설령 자기가 부모님 곁을 지켰어도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죠. ‘매년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 심근 경색 같은 병을 앓거나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하거나 반신불수 같은 증상을 겪는 노인들이 많고 많은데, 그들도 자식들이 곁에서 살뜰히 보살피고 있잖아. 그러나 자식들이 아무리 잘 보살펴도 부모가 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걸 막을 수는 없고 기껏해야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병원에 가도 의사가 치료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자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제야 밍후이 자매는 엄마가 그런 병에 걸린 건 자기를 그리워해서 생긴 것도, 자기를 부양하느라 힘들어서 생긴 것도 아니라 그저 엄마의 명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밍후이 자매는 엄마의 병이 자기랑 무관하다는 걸 알았지만, 엄마가 자기를 위해 해 준 걸 생각하면 아픈 엄마 곁에서 챙겨 주는 게 맞는데 있어 주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은 여전히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관점이 조금 바뀌게 되었는데, 바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 또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대범하고 품위 있는 말이냐! 사실, 그들이 말하는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정해 준 법칙일 뿐이다. 사람을 포함한 각종 생물은 모두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 생물마다 그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모든 생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한층 더 입증하는 것이다. 어떤 생물도 이 법칙을 깨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 생각해 보아라, 사자나 호랑이는 사나운 육식 동물이지만 새끼 때는 성체가 되기 전까지 길러지고 물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사납든, 온순하든 모든 동물은 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따라야만 번식해 나갈 수 있다.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각종 생물이 이 법칙을 지키지 않거나 이런 법칙과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번식할 수 없을 것이고, 먹이 사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바로 생물계가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성체가 될 때까지 암컷이나 수컷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각종 생물도 자기 새끼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극진하게 돌보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이 자칭 고등 동물이라고 하면서 이 법칙을 지키지 않고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동물보다 못하다. 그러니 부모가 너를 키우면서 얼마나 보살피고 책임을 졌든 그들은 그저 피조된 인류의 능력 범위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그들의 본능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겉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을 부모가 낳았고 부모가 준 것 같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근원적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생명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아무도 사람의 숨결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각 사람의 육이 사람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숨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숨결에 생명이 깃들어 있고, 그 숨결이 바로 생명이 있는 사람의 상징인 것이다. 한 사람에게 숨결이 생기고 생명이 생긴 것의 뿌리와 근원은 부모가 아니다. 단지 부모의 출산이라는 방식을 빌려 네가 생겼을 뿐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네 생명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여 생명의 숨결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것이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네 생명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으냐? 네 숨결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니 부모가 그 숨결을 이어지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네 하루하루를 돌보고 주재한다. 네가 매일 어떻게 생활하는지, 하루하루가 순조롭고 즐거운지,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는 부모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네 부모를 통해 너를 돌보게 하였을 뿐이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이 너를 돌보라고 파견한 대상에 불과하다. 네가 태어난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가 아니다. 그럼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겠느냐? 그 역시 아니다. 네 생명의 근원은 여전히 하나님이지 부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밍후이 자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게 사실이지만, 이 사실은 이 생물계의 모든 동물이 자식 부양이라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죠. 그건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에게 주신 법칙이니 아무리 사나운 호랑이나 사자라도 자기 새끼가 다 자라서 독립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먹이면서 보살피죠. 그건 하나님이 정해 주신 룰이자 그들의 본능인 거죠. 사람도 마찬가지죠. 부모가 자녀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든 그것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거지 은혜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밍후이 자매는 자신이 이해하는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말의 의미가 진리에 부합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여태 동물도 부모에게 키워 준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자기는 그것도 못 하니 동물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이해였고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낳아 기르며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학교에 보내 준 건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것이니 그것 때문에 항상 부모님께 빚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생각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거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부모가 자신을 낳아 주고 키워 주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른 거였죠. 부모가 자녀의 생활을 챙겨 주고 어른이 될 때까지 부양해 주는 것 말고 자녀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살게 될지, 언제 어떤 일이 생기거나 예측 못 할 상황이 발생할지는 부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밍후이 자매는 대여섯 살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두 살 터울의 언니와 강가에서 놀다 실수로 물에 빠지는 바람에 물을 많이 먹어 거의 죽을 뻔했는데, 언니가 울면서 물에서 건져 냈거든요. 그때는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지 않으셨다면 벌써 숨을 멈추고 황천길에 올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아무리 부모님이 자기를 아껴 줘도 자기의 생사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보호와 보살핌 덕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밍후이 자매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됩니다. 『창조주 앞에서 너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네가 이번 생에 해야 할 일은 그저 부모에 대한 책임만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더라도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해야지 네 감정 혹은 양심상의 필요에 근거해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 …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 전부 사실인 건 맞지만 그러는 건 너무 몰인정한 느낌이에요. 저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못 견디겠어요.” 못 견디겠다면 네 감정을 충족시키면 된다. 부모 곁에 딱 붙어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시중을 들고, 효성을 다하고, 부모가 옳은 말을 하든 틀린 말을 하든 무조건 따르며 그들의 껌딱지, 그들의 들러리가 되어도 된다. 그러면 뒤에서 너를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다들 너를 대단한 효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손해를 보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너는 효자라는 평판을 지키고, 자신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양심에 참소를 받지 않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소홀히 하고 잃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 모든 일을 대하고 처리하지 않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네가 부모에게는 효도했으나 하나님을 배반했고, 효도하면서 부모의 육체적,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켰으나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차라리 효자가 되기를 선택했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선택하기를 원치 않았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불경이다. 하나님은 네가 대단한 효자이고, 부모를 저버리지 않았고, 양심이 있고,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네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며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 양심과 육체적, 감정적 필요만을 충족시킬 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여 이 문제를 대하거나 처리하는 근거 및 원칙으로 삼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심하게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이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모든 일을 바라보고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합당한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고, 인성과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이 문제를 대하거나 처리하는 원칙 및 근거로 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본분을 이행하러 나가지도 않는다면, 혹은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놓치거나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 곁을 지키며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에게 행복을 주고, 노년을 즐겁게 보내게 해 주며 그들의 은혜에 보답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인성도 양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너는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밍후이 자매는 처음에 리더에게서 객지로 나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냐는 편지를 받았을 때 그동안 부모님께 못 해 드려 죄송한 마음이 컸던 데다, 아버지에게는 보상할 길이 없는데 반신불수가 된 엄마까지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양심적으로 위로받고 이웃들에게 효를 다했다는 말을 듣고자 본분을 거절하고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기로 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그게 양심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본인은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숨결로 숨을 쉬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걸 누리니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건 당연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근데 교회 본분에 꼭 필요한 상황에서 자기는 엄마를 보살핀다고 본분을 거절했는데, 아무리 어머니를 잘 보살피고 효녀라는 칭찬을 받아도 창조주 앞에서는 비양심적이고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거였습니다. 그 일을 떠올리니 밍후이 자매는 자신이 너무 미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본인은 하나님을 믿은 지도 오래됐고, 하나님 말씀도 많이 봤는데도 이방인들과 같은 시선을 갖고 있으니 불신파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고 천국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모와 가족을 내려놓았고, 외국인 선교사들도 가정을 내려놓고 바다를 건너 먼 중국 땅까지 와서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전해 줬던 게 생각났어요. 그들에게도 부모와 자식이 있고 가족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가족, 부모와 자녀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죄 가운데에서 해를 입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죠. 지금은 말세이고 하나님의 사역도 곧 끝나는 시점이고 전염병, 홍수, 전쟁 등 다양한 재앙이 시작되는 때인데, 아직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재앙에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한다는 건 가장 정의롭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인간성을 갖춘 사람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사람의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해 창조주께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한 거니까요.
밍후이 자매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자신의 문제점을 조금 더 보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과 영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일을 여전히 간파하지 못하고 진리를 정말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속적인 관계를 타파하지 못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용기와 믿음도 없고, 그런 의지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조금 더 환해졌습니다. 밍후이 자매는 그동안 자신이 어머니를 내려놓지 못한 것은 사탄의 전통문화 교육에 물들어 버렸고,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자식을 키워서 노후 대비를 한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라는 사탄의 독소에 의존해 살았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이 자주 ‘누구누구네 집 자식은 정말 효자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자식이고 정말 양심적인 자식이다.’라고 칭찬하거나 ‘누구누구네 집 자식은 부모님이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는 배은망덕한 자식이고, 양심은 개나 준 자식이다.’라고 욕하는 걸 보면서 일찍이 부모 공경을 첫 자리에 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라면 엄마가 아플 때 당연히 곁에서 챙겨 드려야지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불효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밍후이 자매는 주변 이웃들에게 인간성이라고는 없는 배은망덕한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자 본분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사탄의 독소에 꽁꽁 매여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밍후이 자매는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은 지는 오래됐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합니다. 그 전 해에도 엄마는 병통이 힘들어 악령을 섬겼던 사람인데,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랜데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자 하나님의 염증을 하는 것이니 그게 곧 불신파의 모습이었습니다. 본인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걱정하느라 본분에까지 지장을 주었으니 그건 선악을 구분 못 하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밍후이 자매는 소경 같고 어리석은 자신이 미웠습니다. 그러면서 감회가 밀려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말씀으로 부모와 가족을 대하는 실행 원칙을 주셨기에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내려놓고 평온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됐어. 아니면 평생 사탄이 주입한 전통 사상에 매여 살면서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없었을 거야. 그러면 결국 구원받을 기회를 놓칠 텐데, 정말 가여운 사람이 될 뻔했어.’
밍후이 자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보고 나서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두 가지 원인이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그토록 많은 진리를 들었으면 최소한의 인식과 이해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며, 사람은 하나님 손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킴이 자녀의 걱정과 효도, 자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이 부모를 보살펴 주고 지켜 준다면 네 마음이 푹 놓이지 않겠느냐?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걱정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작은 것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그들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린다면 자주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그들을 하나님 손에 맡겨 하나님이 지배하고 안배하도록 해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자녀로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깨달아야 한다. 너는 평생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은 창조주에게서 받은,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이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갚는 것은 네 평생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보답하며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건이 되면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되 여건이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단지 양심과 인간의 도의 및 관념에 조금 위배될 뿐 최소한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죄하지도 않는다. 네가 진리를 깨닫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하여 밍후이 자매는 그동안 자신이 집에서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한 이유는 공산당의 추격과 핍박 때문에 부모님을 보살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지 의도적으로 부모 부양을 기피한 게 아님을 깨닫습니다. 더구나 본인은 공안에 기록이 남아 있는 데다 경찰이 툭하면 집에 찾아가 괴롭히고 계속 행적을 감시하려고 하는 통에 집에서 신앙생활과 본분 이행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만 한 것이니 그것은 불효가 아닌 것이죠. 피조물로서 오직 부모 공경을 위해 살 게 아니라 무엇보다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게 삶에서 가장 정의로운 일이자 더더욱 자신의 사명임을 다시 느낍니다. 밍후이 자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어머니를 돌볼 여건이 된다면 자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함으로 돌봐 드려야 하겠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안 되면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는 거였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누구도 서로에게 빚지는 건 없었습니다. 이걸 깨닫자 밍후이 자매는 훨씬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전통문화가 주는 해악을 깨닫게 되었고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사는 게 가장 의미 있고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임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 뒤로 밍후이 자매는 본분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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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젠시(簡稀) 전 어렸을 때, 몸이 좀 허약해서 자주 아팠어요. 가끔은 부모님이 한밤에 절 안고 진료소를 찾곤 했는데, 아무리 의사의 말투가 거슬리고 태도가 불친절해도 제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런 걸 다 감내하셨죠. 부모님은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