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부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인가

2025.2.24

중국 류후이(劉慧)

2022년 9월 말, 밍후이(明慧)의 남편은 구치소에 있던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밍후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두 번이나 체포되어 박해받았는데, 이번이 두 번째 체포였고 3년 3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고 형을 선고받아 옥살이까지 하느라 10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밍후이는 아버지가 1년 전 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머니를 본 순간, 그녀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습니다. 원래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밍후이는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집에서 막내였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그녀에게 아무 일도 못 하게 하셨고, 어머니는 더더욱 그녀를 살뜰히 보살펴 주셨습니다. 부모님은 힘들게 그녀를 키우시며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학교까지 보내 주셨지만, 정작 부모님이 그녀를 필요로 하실 때 그녀는 조금도 효도를 못 했습니다. 그녀는 또 자신이 처음 구류소에 갇혔을 때, 어머니께서 그녀가 경찰에게 구타당해 먹지도 자지도 못할까 봐 걱정하시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알아보고 돈을 써서 그녀를 보석으로 빼내 주셨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밍후이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어머니는 흐느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야 돌아왔구나. 내가 지난 몇 년간 얼마나 널 걱정했는지 아니? 거기서 고생하고 억울한 일 당할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다고!” 이 말을 들은 밍후이는 어머니께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식 키워 노후 대비한다는 말이 있는데, 두 분이 아파서 딸의 보살핌이 필요할 때 나는 곁에서 모실 기회조차 없었어. 밥 한술 떠 드린 적 없고, 약 한 번 챙겨 드린 적 없으니, 길러주신 은혜를 저버렸다고. 나 같은 딸을 키워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밍후이는 생각할수록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 후 밍후이는 매일 반신불수가 된 어머니를 돌보며 지난 세월의 빚을 갚고자 했습니다. 밍후이가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지 경찰 두 명이 집에 찾아와 그녀의 사진을 찍고는 매달 한 번씩 꼭 얼굴을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밍후이는 경찰들이 자신의 행적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집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 리더가 편지를 보내 밍후이에게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밍후이는 기쁨과 걱정이 교차했습니다. 기쁜 것은 자신에게 아직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있다는 점이었고, 걱정되는 것은 반신불수가 된 늙은 어머니를 차마 두고 갈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렵게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실 기회가 생겼는데, 이렇게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밍후이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부모님이 이렇게 키워 주셨는데,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곁에 없었어.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곁에 없다면 내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웃들은 당연히 나를 배은망덕하다고 욕할 거고, 나 스스로도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을 거야! 부모님이 힘들게 나를 키우신 건 늙었을 때 내가 곁에서 돌봐 주길 바라셨기 때문이 아니겠어? 지난 몇 년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에 체포되고 박해받느라 늘 부모님을 모실 기회가 없어서 이미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끼고 있는데, 이제 와서 또 어머니를 저버릴 수는 없어.’ 이런 생각에 밍후이는 편지로 거절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 후 밍후이는 양심에 참소를 받았습니다. ‘피조물로서 마땅히 내 본분을 다해야 하는데,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본분을 거절했으니 이 또한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일이야!’ 그 며칠 동안 밍후이는 시름에 잠겨 지내며 계속 이 일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은 적어도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양심과 이성을 갖추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느냐? 말할 때와 일할 때 기본적으로 양심과 이성의 기준에 부합한다면,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사람이고 기준에 맞는 사람이다. 거기에 진리를 깨닫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 것이고 양심과 이성의 기준에 부합하고도 남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도록 공급하고, 자양하고, 이끌어 주시지요. 그러니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사탄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합니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이것도 물론 맞는 말이지만 큰 틀과 윤곽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실제적인지는 양심, 이성과 관련이 있다. 그럼, 하나님을 위해 사는 방법은 무엇이냐? (피조물로서 이행해야 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너희가 현재 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을 위해 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맡긴 부탁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고 예정하고 주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일을 네가 완성하도록 맡겼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밍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양심과 인성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피조물이며, 지금 쉬는 이 숨결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가진 모든 것 역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으며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와 공급을 떠나서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수년간 하나님을 믿으며 그토록 많은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으니, 진정 양심과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지 자신의 일만 생각하고, 가정을 위해, 부모와 자녀를 위해 사는 것은 너무나 양심 없는 일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오빠와 언니가 돌보고 있으니, 자신이 곁에 없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후 밍후이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23년 2월, 밍후이는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형제자매들을 다시 만나게 되자 말도 못 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어느 날, 밍후이는 짧은 글 한 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한 중년 여성이 먹을 것을 좀 사서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어머니를 자기 집에 며칠 모시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머니께 진심 어린 말만 몇 마디 건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밍후이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 생각이 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밍후이와 협력하는 자매가 그 모습을 보고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왜 그래요? 글을 보고 감상에 젖었나 봐요?” 밍후이는 그 순간 자매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자신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눈빛이 눈앞에 선했고,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속을 많이 썩였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로는 계속되는 공산당의 박해로 두 번이나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그 때문에 어머니는 얼마나 놀라고 두려워하셨으며, 또 얼마나 마음 졸이고 눈물을 흘리셨는지 모릅니다. 어머니의 병은 어쩌면 자신 때문에 생긴 것일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가 보살핌을 필요로 할 때, 자신은 또 본분을 이행하러 나와 있었습니다. 밍후이는 생각할수록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또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또 감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또 어머니를 걱정하는 내적 상태에 빠졌습니다. 제 마음을 지켜 주셔서 당신의 말씀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사탄에게 교란받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그 후 밍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음에 어느 정도 해방감을 얻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부모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할 의무도 없거니와 그들의 기대를 떠안을 의무도 없다. 그들의 기대는 그들 몫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게는 하나님이 정해 준 너의 인생길과 운명이 있다. 네 부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이 불효막심한 녀석, 몇 년이 지나도록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오랫동안 전화도 한 통 없다니. 내가 병들면 보살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정말 널 헛키웠구나. 배은망덕한 녀석, 고마운 줄도 모르고!”라고 하는데, 만약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너는 칼에 찔린 듯 마음이 아플 것이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다. 부모의 말이 구구절절 네 마음을 후벼 파니 너는 부모를 볼 면목이 없다고, 부모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부모가 너를 배은망덕하다고 말할 때 네가 정말 ‘그러게 말이야. 부모님은 여태껏 날 키우시느라 자식 덕은 보지도 못했어. 이제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내가 병시중을 들며 돌보길 바라시는데 막상 은혜에 보답해야 할 때 내가 곁에 없으니 난 정말 배은망덕한 자식이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배은망덕한 자식이라 규정하는데, 이것이 이치에 맞느냐? 네가 배은망덕한 것이냐? 네가 만약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대신 집에서 부모 곁을 지킨다면 부모가 병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생사나 빈부의 문제가 네게 달려 있느냐? (그 역시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네가 아무리 효도해 봤자 기껏해야 그들의 육적인 고통이나 부담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병에 걸리고 어떤 병에 걸릴지, 언제 죽고 어디서 죽을지 너와 상관있겠느냐? 너와 아무 관련이 없다. 네가 배은망덕하지 않고 효자라고 해서 온종일 부모 곁을 지키며 돌본다면 그들이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겠느냐? 결국 걸릴 병은 걸리고, 죽을 사람은 죽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 네가 부모의 말처럼 배은망덕하든 그렇지 않든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이 보기에 배은망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람이 뭐라 하든 소용없다. 부모가 너를 뭐라 하든 꼭 그렇지 않고, 그런 말은 소용없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네가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라고 하면 사람이 아무리 너를 배은망덕하다고 욕해 봤자 소용없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사람은 단지 양심 때문에 혹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분량이 작아서 이런 악담의 영향을 받아 기분이 나빠지고 의기소침하게 되지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밍후이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방면의 진리를 명확히 교제해 주지 않으셨다면, 그녀는 줄곧 부모님이 자신을 낳아 주시고, 힘들게 학교까지 보내 주셨으며, 자신을 위해 그토록 마음 졸이셨으니, 그 양육의 은혜가 무엇보다 크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른이 되면 마땅히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은망덕한 불효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지난 몇 년간 집에 있었다면, 아버지가 아프실 때 잘 돌봐 드릴 수 있었을 것이고, 어머니도 자신 때문에 놀라고 두려워할 일이 없어 아마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밍후이는 늘 어머니의 병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느꼈는데,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 것입니다. “부모의 생사나 빈부의 문제가 네게 달려 있느냐? (그 역시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밍후이는 모든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사람이 평생 언제 병들고 언제 죽을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므로 설령 자신이 지난 몇 년간 계속 부모님 곁에 있었다 해도 그분들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밍후이는 매년 수많은 노인들이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 심근경색 등으로 갑자기 사망하거나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 노인들의 자녀 중에는 곁에서 정성껏 돌보는 이들도 있지만, 자녀가 아무리 잘 돌본다 해도 부모가 병들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제때 병원으로 모시고 가 치료를 받게 할 수 있을 뿐, 의사가 병을 고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자녀가 관장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깨닫자, 밍후이는 오늘날 어머니가 그런 병을 앓게 된 것이 자신을 그리워해서도, 자신을 키우느라 힘들어서도 아니며,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운명임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밍후이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밍후이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머니의 병이 자신과 관계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해 주신 모든 것을 생각하면, 지금 어머니가 반신불수가 되어 보살핌이 필요한데도 자신이 곁에 없다는 사실에 여전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어머니께 빚진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 단락 보고 관점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방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 또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얼마나 수준 높고 대범하고 품위 있는 말이냐! 사실, 그들이 말하는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각 생물에게 정해 준 법칙일 뿐이다. 사람을 포함한 각종 생물은 모두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 생물마다 그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모든 생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한층 더 입증하는 것이다. 어떤 생물도 이 법칙을 깨거나 뛰어넘을 수 없다. 생각해 보아라, 사자나 호랑이는 사나운 육식 동물이지만 새끼 때는 성체가 되기 전까지 길러지고 물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다. 사납든, 온순하든 모든 동물은 이 본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과 법칙을 따라야만 번식해 나갈 수 있다. 인류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각종 생물이 이 법칙을 지키지 않거나 이런 법칙과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번식할 수 없을 것이고, 먹이 사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는 말이 바로 생물계가 이 법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각종 생물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다. 새끼가 태어나면 성체가 될 때까지 암컷이나 수컷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자란다. 각종 생물도 자기 새끼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극진하게 돌보는데, 하물며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이 자칭 고등 동물이라고 하면서 이 법칙을 지키지 않고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동물보다 못하다. 그러니 부모가 너를 키우면서 얼마나 보살피고 책임을 졌든 그들은 그저 피조된 인류의 능력 범위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그들의 본능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겉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을 부모가 낳았고 부모가 준 것 같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근원적으로 보면 네 육의 생명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다. 사람은 생명을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아무도 사람의 숨결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각 사람의 육이 사람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숨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숨결에 생명이 깃들어 있고, 그 숨결이 바로 생명이 있는 사람의 상징인 것이다. 한 사람에게 숨결이 생기고 생명이 생긴 것의 뿌리와 근원은 부모가 아니다. 단지 부모의 출산이라는 방식을 빌려 네가 생겼을 뿐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네 생명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여 생명의 숨결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것이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네 생명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으냐? 네 숨결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니 부모가 그 숨결을 이어지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네 하루하루를 돌보고 주재한다. 네가 매일 어떻게 생활하는지, 하루하루가 순조롭고 즐거운지,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는 부모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네 부모를 통해 너를 돌보게 하였을 뿐이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이 너를 돌보라고 파견한 대상에 불과하다. 네가 태어난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가 아니다. 그럼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네 생명을 부모가 주어서겠느냐? 그 역시 아니다. 네 생명의 근원은 여전히 하나님이지 부모가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은 밍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고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실은 오히려 생물계 전체의 동물들이 자식을 양육하는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에게 정해 주신 법칙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나운 호랑이나 사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새끼가 성체가 되기 전에는 독립할 때까지 정성껏 보살피고 먹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정해 주신 법칙이자 그들의 본능이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대가를 치렀든 그것은 단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 결코 은혜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밍후이는 자신이 이전에 이해했던, “까마귀는 자라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새끼 양은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는다.”라는 말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동물조차 부모의 양육의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데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동물만도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이해는 잘못된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낳아 기르고, 먹여 주고 입혀 주며 학교에 보내 준 것 등은 모두 부모로서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였습니다. 자신은 늘 부모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거나 부모의 은혜에 보답할 생각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가 자신을 낳고 길러 준 것 같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예정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활을 돌보고 자녀를 성인으로 키우는 것 외에, 자녀의 평생 운명이 좋을지 나쁠지, 어느 날 무슨 일이 닥칠지, 어떤 불행이 닥칠지 전혀 관장할 수 없었습니다. 밍후이는 문득 자신이 대여섯 살 때 두 살 위인 언니를 따라 강가에 놀러 갔다가 부주의로 깊은 도랑에 빠져 물을 많이 마시고 하마터면 익사할 뻔했는데, 언니가 울면서 자신을 끌어내 주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때는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만약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었다면 자신은 진작에 숨이 끊어져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자신을 아끼신다 해도, 그분들은 자신의 생사를 장악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덕분이었으니 마땅히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 후, 밍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창조주 앞에서 너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네가 이번 생에 해야 할 일은 그저 부모에 대한 책임만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책임을 다하더라도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해야지 네 감정 혹은 양심상의 필요에 근거해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 …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 전부 사실인 건 맞지만 그러는 건 너무 몰인정한 느낌이에요. 저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못 견디겠어요.” 못 견디겠다면 네 감정을 충족시키면 된다. 부모 곁에 딱 붙어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시중을 들면서 효성을 다하고, 부모가 옳은 말을 하든 틀린 말을 하든 무조건 따르며 그들의 껌딱지, 그들의 들러리가 되어도 된다. 그러면 뒤에서 너를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다들 너를 대단한 효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손해를 보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 너는 효자라는 평판을 지키고, 자신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양심에 참소를 받지 않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소홀히 하고 잃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 모든 일을 대하고 처리하지 않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네가 부모에게는 효도했으나 하나님을 배반했고, 효도하면서 부모의 육체적,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켰으나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차라리 효자가 되기를 선택했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선택하기를 원치 않았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불경이다. 하나님은 네가 대단한 효자이고, 부모를 저버리지 않았고, 양심이 있고,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네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며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기 양심과 육체적, 감정적 필요만을 충족시킬 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여 이 문제를 대하거나 처리하는 근거 및 원칙으로 삼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심하게 거역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되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모든 일을 바라보고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기준에 맞다고 할 수 있고, 인성과 양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이 문제를 대하거나 처리하는 원칙 및 근거로 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본분을 이행하러 나가지도 않는다면, 혹은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놓치거나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 곁을 지키며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에게 행복을 주고, 노년을 즐겁게 보내게 해 주며 그들의 은혜에 보답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인성도 양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할 것이다. 너는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밍후이는 교회 리더가 처음 편지를 보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를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가장 먼저 자신이 지난 몇 년간 부모님께 많은 빚을 졌고, 특히 아버지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빚을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반신불수가 된 어머니마저 저버린다면 더욱 면목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양심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이웃들에게 효녀라는 말을 듣기 위해 본분을 거절하고 집에서 어머니를 돌봤으며, 이것이 양심 있고 인성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숨결로 호흡하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자신이 본분을 이행해야 할 때, 자신은 어머니를 돌본다는 이유로 본분을 거절했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어머니를 잘 모시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을 효녀라고 칭찬한다 해도, 창조주 앞에서는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밍후이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미워졌습니다. 만약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자신은 하나님을 수년간 믿으며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음에도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여전히 이방인과 같았으니, 이것이야말로 불신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부모와 가정을 버렸던 일과, 외국의 선교사들이 가정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 중국에 와서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전해 주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에게도 부모와 자녀, 친척이 있었지만,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가정이나 부모, 자녀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죄 속에서 사탄에게 깊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구원받게 할 것인지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양심 있고 인성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말세이고, 하나님의 사역은 곧 끝날 것이며, 이미 전염병, 수해, 전쟁 등 각종 재난이 닥쳤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듣지 못했고, 이들은 언제라도 재난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오늘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나라 복음을 널리 전할 기회를 얻은 것, 이것이 가장 정의롭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인성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아무리 좋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여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밍후이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보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과 영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일을 여전히 간파하지 못하고 진리를 정말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속적인 관계를 타파하지 못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용기와 믿음도 없고, 그런 의지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밍후이의 마음은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줄곧 어머니를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실은 사탄이 주입한 전통 문화의 교육과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며,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자녀로 노후를 대비한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와 같은 사탄 독소에 의지해 살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이 “아무개네 아이는 정말 효자야. 부모님께 효도하고 은혜 갚을 줄 아니, 정말 양심 있는 아이라고! 근데 저기 아무개네 아이는 글렀어. 부모가 아픈데도 돌보지 않으니, 정말 배은망덕한 놈이야. 양심도 없는 놈이지!”라고 수군대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이런 말들은 밍후이의 마음속 깊이 뿌리박혔습니다. 그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었고, 어머니가 아프면 자식으로서 마땅히 곁에서 모셔야 하며, 만약 곁에 없다면 불효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이웃들이 자신을 배은망덕하고 인성 없는 사람이라고 욕할까 두려워 본분을 거절했고, 나중에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사탄 독소에 너무나 단단히 묶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때 밍후이는 또 어머니가 비록 하나님을 수년간 믿었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작년에는 병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악령에게 절까지 하러 갔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을 수년간 믿고도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 어머니는 알면서도 일부러 저지른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혐오하시는 대상이며, 바로 불신파였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본분에 영향을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밍후이는 너무 눈이 멀고 어리석었던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또한 마음속 깊이 감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선포하셔서 우리에게 부모와 친척을 대하는 실행 원칙을 알려 주신 덕분에, 내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빚을 내려놓고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사탄이 주입한 이런 전통 사상에 지배당해 본분 이행에 전혀 마음을 쓰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잃었을 테니, 얼마나 불쌍했겠어!”

밍후이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두 단락 보고 어떻게 부모님을 대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네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있다.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객관적인 환경이 허락했다면, 그들 곁을 지키는 동시에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면 너는 그들 곁에서 항상 그들의 생활을 돌보고 네 책임을 다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환경 때문에 너는 반드시 그들을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을 지킬 수 없었다. 네가 자녀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성질이 다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집을 떠난 것이 그들에게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불효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워 줬는데 너는 머리가 커지자마자 나가서 혼자 살지 못해 안달이고, 부모를 보기 싫어하고, 부모한테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으려 하고, 상관할 여건이 돼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불효이다. 하지만 지금이 이런 상황이냐?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자기가 살던 현(縣)을 떠나고, 시(市)를 떠나고, 성(省)을 떠나고, 심지어 나라를 떠났다. 이미 고향을 멀리 떠난 데다가 갖가지 이유로 집에 연락하기가 어려워서 가끔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 부모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한다. 사실 너는 불효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을 상실한 수준에 이르러 부모마저 신경 쓰지 않으려 들고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이 아니다. 갖가지 객관적인 원인 때문에 이렇게 하기를 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불효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두 가지 원인이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그토록 많은 진리를 들었으면 최소한의 인식과 이해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의 운명은 하늘이 정하며, 사람은 하나님 손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킴이 자녀의 걱정과 효도, 자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이 부모를 보살펴 주고 지켜 준다면 네 마음이 푹 놓이지 않겠느냐?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네가 걱정한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작은 것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그들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린다면 자주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그들을 하나님 손에 맡겨 하나님이 지배하고 안배하도록 해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자녀로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깨달아야 한다. 너는 평생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은 창조주에게서 받은,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이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갚는 것은 네 평생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보답하며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건이 되면 좀 효도하고, 책임을 조금 이행할 수 있으며, 여건이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단지 양심과 인간의 도의 및 관념에 조금 위배될 뿐 최소한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죄하지도 않는다. 네가 진리를 깨닫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밍후이는 지난 몇 년간 집에서 부모님을 돌볼 수 없었던 주된 이유가 공산당의 핍박과 체포 때문이었음을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부모를 부양할 책임을 일부러 회피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부모님을 돌볼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자신은 전과가 있어 경찰이 수시로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행적을 감시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도저히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할 수 없고, 그래서 부득이하게 다시 집을 떠나 어머니를 모실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불효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깨달았습니다. 피조물로서 자신은 단지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정의로운 일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밍후이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만약 여건이 허락되어 집에서 어머니를 돌볼 기회가 생긴다면 자식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돌봐 드리면 되고, 적절한 환경이 아니라면 자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는 누구도 누구에게 빚진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깨닫자, 밍후이는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녀로 하여금 전통 문화가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을 꿰뚫어 보게 하셨고, 피조물로서 오직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사는 것만이 의미 있으며, 그래야만 진정으로 양심 있고 인성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 후, 밍후이는 온 마음을 본분에 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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