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 이면에 숨겨진 속셈

2025.4.18

리웨 자매는 설교원입니다. 저희 교회의 사역을 점검하며 평소 저희와 아주 잘 지냈습니다. 저에게 어떤 내적 상태가 있든 자매는 자신의 체험과 함께 교제해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과거 한때 저는 자매가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감이 없고, 일주일에 한 번 그저 저희와 집사 회의에서 만나 사역 상황을 파악하며, 사역에 있는 문제에 대해 저희와 함께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리웨가 교회 몇 곳의 사역을 맡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만약 계속 이런 내적 상태를 보인다면, 교회 몇 곳의 사역이 지체될 것이기 때문에 저는 리웨에게 한 번 일깨워주거나, 윗선 리더에게 리웨의 상황을 말해서 그들이 즉각 리웨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고 리웨와 교제하여 바꾸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 쭉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리웨는 자신이 복음 사역에서 문외한이고 업무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으며 복음을 전하는 원칙도 잘 모른다며 이 본분을 하는 데에 조금 힘에 부친다고 교제한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사실 리웨의 소양은 괜찮은 편입니다. 정말 협력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본분을 이행할 때 별로 책임감이 없을 뿐입니다. 리웨가 마음을 다해 일부 원칙만 파악한다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가 리더에게 리웨의 상황을 말하고, 심지어 교회 사역에 대한 감독 상황을 점검하라고 한다면 리웨는 제가 그녀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면서 내적 상태가 의기소침해지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아 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리웨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윗선 리더의 사역이므로 제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저는 리웨의 상황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리웨가 저희와 함께 예배드릴 때면 저는 몇 차례나 리웨의 본분 이행 관련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지만, 리웨가 저더러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리웨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 관계는 깨지게 될 것이고 앞으로 저를 좋은 낯으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말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저는 또 삼켜버렸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거짓 리더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니 쉽게 알아내고 간파할 수 있으며, 적그리스도 역시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니 쉽게 알아내고 간파할 수 있다. 이는 모두 하나님 선민의 본분 이행을 교란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므로 그들을 고발하고 폭로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 사역을 그르치지 않게 된다.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를 고발하는 것은 하나님 선민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도록 보장해 주는 핵심 사역이므로 모든 하나님 선민에게 책임이 있다.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라면 그게 누구든 하나님 선민은 폭로하고 보고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 너희는 몇 년간 설교를 들었는데 아직까지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기꺼이 적그리스도와 함께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빈둥대고자 한다. 너희의 이런 모습은 너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첫째, 너희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둘째, 너희는 본분에 대해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며 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다. 교회 사역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형식만 취할 뿐이다. 적그리스도, 거짓 리더가 교회 사역을 어떻게 교란하고 망치든 너희는 지각하지 못하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 너희는 하나님 집으로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양육받았고, 또 적지 않은 설교를 들었는데 결과가 어떠냐? 교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터졌는데 너희는 지각조차 없었다. 이는 너희가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으며, 무감각하고 우둔한 데다가 육적으로 방종하게 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산 사람은 없고 온통 죽은 자뿐이라는 말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기껏해야 힘쓰는 자 몇 명뿐이다. 너희는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 설교를 들었는데도 적그리스도와 섞여 함께 지내면서 전혀 폭로하거나 고발하지 않았으니 너희가 불신자와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와 한패다. 너희는 적그리스도와 사탄을 따르는 자이지 결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적그리스도와 같은 악을 행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너희는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비호했다. 너희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거나 고발하기는커녕 말끝마다 적그리스도를 별로 만난 적이 없어서 그가 저지른 일을 잘 모른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놓고 사탄을 감싸는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가 그렇게 많은 악을 행하고 교회 사역을 마비시키며 교회 생활을 말도 못 하게 어지럽혔는데 적그리스도가 저지른 일을 몰랐다고 하니 너희의 말을 누가 믿겠느냐? 너희는 적그리스도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망치는 것을 직접 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폭로하거나 고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고작 이런 책임조차 다하지 못하는 너희는 양심과 이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1)>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저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많은 진리를 발표하시어 저희에게 공급해 주시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리더를 분별하는 방면의 진리를 아주 상세하고 포괄적으로 교제해 주신 것은 누군가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할 때 저희가 책임을 다해 나서서 교회 사역을 지키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집 사역이 영향을 받는 것을 보고도 속으로 아무런 지각이 없고, 정의감도 없어 나서서 제지하거나 윗선에 말하지 않는 이런 사람은 바로 비양심적인 죽은 자이고 조금의 간증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리웨가 그동안 교회 사역을 거의 점검하지 않아 이미 사역에 영향을 준 것을 보고도 저는 걱정만 가득하여 우리 사이의 관계가 깨질 것을 두려워하며 리웨를 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윗선에 말할 엄두도 없어 교회 사역은 조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혐오를 받을만합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속으로 큰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켜고 윗선 리더에게 리웨의 상황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내가 리웨의 문제를 얘기하면 윗선 리더는 분명 리웨와 교제할 거야. 그럼 리웨는 내가 윗선에 얘기한 걸 알게 될 텐데 그때 날 어떻게 바라볼까? 내가 뒤에서 리웨의 단점을 들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만약 리웨가 날 싫어하게 된다면 우린 앞으로 어떻게 협력하며 본분을 이행하지?’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메시지를 삭제했습니다. 속으로 ‘누구나 내적 상태가 좋지 못할 때가 있고,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어.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조금 잡았다고 바로 얘기하지는 말자. 어쩌면 리웨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와 관련한 문제를 인식하고 바뀔지도 몰라. 그냥 난 얘기하지 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리웨와 저는 함께 예배드리고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의 그 구절을 다시 읽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 집으로부터 그렇게 오랫동안 양육받았고, 또 적지 않은 설교를 들었는데 결과가 어떠냐? 교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터졌는데 너희는 지각조차 없었다. 이는 너희가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으며, 무감각하고 우둔한 데다가 육적으로 방종하게 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산 사람은 없고 온통 죽은 자뿐이라는 말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기껏해야 힘쓰는 자 몇 명뿐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1)> 중에서) ‘죽은 자’라는 세 글자가 제 마음에 못처럼 박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도 진리를 실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 떠올라 큰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속으로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제가 리웨의 문제를 지적하여 교회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게 이끌어달라며 구했습니다. 기도 후 마침 리웨도 하나님의 말씀에 접목하여 자신이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았던 모습을 인식했다며, 특히 어떤 교회 리더의 소양이 뛰어나고 자신이 그 사람보다 사역 처리를 못 하면 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고 설교원의 사역 능력이 교회 리더만도 못하다고 할까 봐 그 교회 사역을 거의 점검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리웨도 스스로 감독 사역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며 거짓 리더의 모습임을 인식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또 리웨의 문제를 지적하면 리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그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리웨의 말에 얹어 일깨워 주는 말을 몇 마디만 간단히 했습니다. 얼마 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리더에게 리웨의 상황을 얘기해야 리더가 바로 리웨와 교제하고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본 상황들을 리더에게 말했습니다. 리더가 교제로 지적한 후 리웨는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거짓 리더에 대해 폭로하신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으며, 자신이 감독 사역을 점검하지 않았고 자신 본연의 사역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후 리웨는 더 자주 사역을 점검했고, 저희와 함께 복음 사역에서 효과가 없는 이유를 분석하기도 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했습니다. 리웨가 실제 사역을 해내는 보습을 보며 전 매우 기뻤습니다.

얼마 후 저도 돌이켜 생각해 봤습니다. 왜 저는 줄곧 리웨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리더에게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이건 대체 어떤 통제를 받은 것일까요? 구하던 중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인간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견지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과거 저는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와 같은 말에 매우 수긍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이 저에게 다른 사람과 지낼 때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려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지 말라고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폭로로 저는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이 처세 철학이며 이 말에 따라 살면 매우 교활하고 간사하며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겉으로는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 있는 속셈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상대방의 문제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늘 좋은 사람이 되어 육적인 관계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과 지내면 겉으로는 관계를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심이 없는 것으로 서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방어적이고 이용하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와 같은 처세 철학으로 살았습니다. 지난 시간 리웨가 감독 사역을 거의 점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저도 리웨에게 지적해 주거나, 리더에게 얘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폭로할 때 단점을 폭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리웨도 공동 사역이 힘들다고 말했는데, 제가 감독 사역을 점검하지 않는다고 또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한 요구가 너무 높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누구나 내적 상태가 안 좋을 때가 있고, 모두 부족한 점이 있다는 말을 핑계 삼아 입을 닫고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리웨가 자신이 사역을 점검하지 않았음을 인식했다고 털어 놓았을 때 저는 리웨의 문제를 더 지적하면 리웨의 상처를 들추는 것으로 생각하며 리웨의 말에 가볍게 몇 마디만 보탰을 뿐입니다. 겉으로 저는 모든 것이 리웨를 위한 생각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제 비열한 속셈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리웨가 저더러 요구가 너무 높다고 말하거나, 제가 뒤에서 그녀의 단점을 고자질했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만약 이 일로 그녀에게 미움을 사면 앞으로 리웨가 저를 미워하고 저한테 인상을 쓰면 앞으로 지낼 때는 지금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협력할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리웨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저는 매번 진리 실행을 포기했습니다. 겉으로는 제가 리웨와 사이좋게 지내고 할 말이 있으면 뭐든 하는 좋은 친구처럼 보였지만, 저는 리웨에게 조금의 진심과 사랑도 없었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 리웨가 종종 저에게 교제와 도움을 주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리웨는 제게 무슨 문제가 보이면 그걸 지적해 주어 제가 인식하고 바뀌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리웨와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을 위한다는 핑계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리웨가 패괴된 성품에 사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리웨는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즉각 내적 상태를 바꾸지 못했고, 생명 진입에 손해를 입었으며 교회 사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합니다! 이런 제 모습이 무슨 리웨를 위해 생각한 것입니까? 이는 수렁에 빠질 것 같은 사람을 보고도 그 사람을 끌어주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게 바로 늘 좋은 사람, 고약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반성한 후에야 저는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사탄의 철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은 이런 처세 철학으로 사람을 패괴시켰고, 사람들이 서로 방비하고 이용하여 점점 이기적이고 냉정하며 인성이 없는 사람으로 변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이런 행태로 산다면 점점 간사해질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고, 어떤 것이 단점을 들추는 것이고 어떤 것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라는 말은 좋겠느냐? 이 ‘들추다’는 단어에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하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인류의 언어를 통해 이 ‘들추다’는 단어에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악의적으로 남을 폭로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사람의 문제점이나 결점, 또는 아무도 모르는 일, 행위, 그리고 배후의 음모나 생각, 관점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는 단어의 뜻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서로 마음이 통하고 마음의 벽이 없다면, 또 상대가 자신으로부터 이로움과 도움을 얻었으면 하며, 앉아서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정당한 일이지 단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일을 바라보는 저의 잘못된 관점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의 ‘약점을 들추다’는 악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문제나 결함을 들추는 것으로 그 속셈은 사람을 도와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음험한 속셈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공격할 수밖에 없게 되어 사람에게 어떠한 조예나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점을 들추다’는 긍정적인 사물로 상대방에게서 문제를 발견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을 도와주어 그 사람이 문제의 성질을 이해하고 바로 바뀌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폭로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며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닙니다. 리웨의 문제가 사역에 이미 영향 준다는 것을 봤을 때 리웨를 지적하려고 했던 것은 리웨가 깨닫고 바뀌어 본분을 잘 이행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리더에게 얘기하려고 했던 것도 리더가 리웨의 상황을 파악해서 즉시 리웨가 바뀌도록 도와주길 바랐고, 그래야 교회 사역이 지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진리를 실행하여 형제자매를 도와주는 것이지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며 뒤에서 고자질하는 것은 더욱 아닌 긍정적인 일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지적과 폭로 앞에서 반성하고 인식할 줄 알며 즉시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의 생명 진입과 교회 사역 모두에 도움이 됩니다. 리웨를 보면, 리웨는 리더의 지적과 도움으로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했으며, 즉각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복음 사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저희와 함께 탐구하고 구했으며, 교제 후에는 조금이나마 실행의 길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고 폭로하는 것이 가혹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분량과 소양을 고려하지 않고, 그 사람이 최선을 다해 협조했는지도 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보면 득달같이 요구하여 생트집을 잡고 억지로 결점을 찾으려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에게 가혹하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을 통제하게 되어 그 사람은 소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리웨는 리더 일꾼으로서 교회 사역을 감독하고 점검하는 것이 바로 리웨가 해야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게다가 리웨는 어느 정도의 소양도 있습니다. 물론 리웨가 복음 사역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열심히 배운다면 일부 원칙을 파악하거나 팀 내에서 형제자매와 협력하여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리웨가 패괴된 성품에 살며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아 제가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고 얘기한다면 그건 정상적으로 리더 일꾼을 감독하는 것이지만, 저는 그걸 리웨에게 제가 너무 가혹하다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일을 바라보는 제 관점은 정말 너무 엉터리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고, 제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기를 원하지만, 많은 경우 그런 의지와 소망만 있을 뿐, 내면에서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악한 세력을 만나거나, 악인, 못된 자들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가 원칙에 어긋난 일을 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함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이 해를 입는 일이 생겼을 때, 너는 용기 있게 나서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왜 용기가 없겠느냐? 담이 작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또는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해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다 아니다. 이는 주로 패괴 성품에 속박받아 초래된 것이다.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 중 하나는 간사한 성품이다. 일이 닥치면 먼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먼저 그런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할지 고려한다. 이는 간사한 성품 아니겠느냐? 또 다른 하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성품이다. ‘저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입히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리더도 아닌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내 책임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이런 말은 네가 일부러 생각해 낸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진리가 네게서 생명이 되었을 때, 만약 누군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 누군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 누군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진리 원칙대로 대할 수 있다. 분별해야 할 것은 분별하고, 폭로해야 할 것은 폭로할 것이다. 만약 진리가 네게서 생명이 되지 않고 네가 계속 사탄 성품으로 살아간다면, 악인이나 마귀들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을 보았을 때,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으며 수수방관할 것이다. 심지어는 누가 교회 사역을 교란하든 너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회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이 아무리 크게 손해 보아도 신경 쓰지 않고, 상관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는다면, 이런 자는 바로 양심과 이성이 없는 자요, 불신파, 힘쓰는 자다. 너는 하나님이 베푼 것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누리지만, 하나님 집의 이익이 그 어떤 손해를 입든 모두 너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팔이 밖으로 굽은 것으로, 배은망덕한 인간이다. 네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고도 사람이냐? 이런 자는 바로 교회에 잠입한 마귀다. 하나님을 믿는 척하면서 하나님 선민을 사칭하여 하나님 집에서 밥이나 축내려 하고, 전혀 사람답지 않게 사는데, 불신파가 분명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저의 실체입니다. 제가 진리가 없고, 간사하고 이기적인 사탄의 성품으로 살았으며 어떤 일 앞에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교회 사역을 지키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리웨가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감이 없고, 감독 사역을 거의 점검하지 않아 교회 사역의 정상적인 발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정상적인 인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즉각 리웨에게 언급하고, 윗선에 얘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와 리웨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몇 번이고 말하려고 했다가도 ‘리더가 리웨를 자주 만나니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리웨의 내적 상태를 알 거야’라며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윗선 리더에게 리웨의 문제를 얘기하려다가도 리웨에게 미움을 살 것이 두려워 스스로 허울 좋은 핑계를 찾아 ‘누구나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너무 높은 요구를 하면 안 돼’라고 말하며 스스로 진리를 실행하지 않을 핑계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간사하고 매우 교활합니다! 저는 그토록 많은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목양을 받았습니다. 저한테 조금의 인성과 양심이 남아있다면 교회 사역이 손해 보는 것을 봤을 때 앞장서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지켜야 했습니다. 만약 제가 즉각 리웨의 문제를 지적했다면, 리웨는 하루라도 빨리 인식하고 바뀌었을 것이며, 사역도 이렇게 긴 시간 지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이기적이고 비열하여 진리를 실행하지 않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또한, 과거 저는 리웨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윗선 리더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제 생각도 틀렸습니다. 교회 사역을 지키는 것은 모든 하나님 선민의 책임입니다. 저는 하나님 집의 일원으로서 리더 일꾼의 사역을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리더 일꾼이 하는 일이 원칙에 위배되거나 교회 사역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저는 당연히 이를 지적하여 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저는 더 이상 패괴한 성품으로 살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하나님께 제가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게 이끌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원칙에 맞는 일이라면 네가 그것을 하면서 사람들의 미움을 사고 뒤에서 욕을 먹을지라도 개의치 마라. 반면, 원칙에 맞지 않는 일이라면 모두가 너를 인정하고 옹호하며 너와 잘 지낸다고 해도 다만 한 가지, 하나님 앞에서 설명하지 못할 것이니, 너는 손해를 볼 것이다. 네가 만약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지켜서 사람들이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며 다들 너를 좋다고 해도 하나님, 창조주에게 죄를 짓는다면 너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바보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그 일이 원칙에 맞는지, 하나님이 기뻐할지, 하나님이 그 일을 어떤 태도로 볼지, 사람이 가져야 할 입장과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떻게 당부했는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는 먼저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4)> 중에서), 『너에게 무골호인의 속셈과 관점이 있다면, 너는 어떤 일에서도 진리를 실행하거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늘 실패하고 쓰러질 것이다. 깨닫지 못하고 시종일관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불신파이니, 영원히 진리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런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구원해 달라고 해야 한다. 네가 원칙을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하며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입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 집의 사역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무골호인의 관점을 저버리고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사탄을 이긴 것이며 이 부분의 진리를 얻은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주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떤 것이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 것이 두려워 진리를 실행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과의 관계를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하더라도 진리 원칙을 위배하여 하나님 집 이익에 손해를 끼쳤으므로 이는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 집 이익이 손해입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교회의 사역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저는 조용히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교회 이익에 손해 끼치는 일을 보면 더는 저 자신을 지키고자 머리를 숨기는 거북이처럼 굴지 않고,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고 저에게 인상을 찌푸리거나 이로 인해 저에게 편견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런 것에 제약받지 않아야 합니다. 제 속마음은 상대방을 돕고 싶은 마음이고, 교회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이므로 긍정적인 일입니다. 패괴된 내적 상태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제가 계속 제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면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기대어 우리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기를 구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내려놓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실행했습니다. 한때 협력했던 자매인 선칭은 양육 사역을 거의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한 양육자가 개인적인 사유로 2주간 새신자를 양육하지 않았는데도 선칭은 몰랐습니다. 선칭이 양육 사역을 담당하므로 양육자의 사역 현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양육 사역의 문제를 즉각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선칭에게 이런 문제들을 얘기해주고, 선칭이 빨리 바뀌어야겠다고 의식하게 하여 새신자 양육이 지체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 문제들을 하나씩 다 지적하면 선칭이 못 받아들이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선칭도 평소 사역을 하긴 했는데, 어쩌면 지금 이 시기에만 즉각 점검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 조금만 지나면 바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득 제가 또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려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봤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무골호인의 관점을 저버리고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사탄을 이긴 것이며 이 부분의 진리를 얻은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제가 선칭의 문제를 봤으니 당연히 선칭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 사역을 지키는 것으로 악의가 없습니다. 선칭이 받아들이지 않고 저에게 인상을 찌푸린다고 해도 저는 제 책임을 다한 것이니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려 저에게 진리를 실행할 힘을 주십사하고 바랐습니다. 기도 후 저는 제가 본 문제를 선칭에게 얘기했습니다. 처음엔 선칭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치를 따지며 변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선칭이 실제 사역을 하지 않았던 모습을 지적했고, 점검 사역의 길에 대해서도 교제했습니다. 다음 날, 선칭은 저의 지적으로 자신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했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으며 바뀌고 싶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선칭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세세하게 양육자의 사역을 점검했습니다. 선칭이 바뀔 수 있는 모습을 보며 저는 드디어 진리를 한 번 실행했음에 속으로 정말 기뻤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께 기대어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도록 실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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