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내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막았는가?

2025.4.14

―정신 자매님에게 쓰는 편지

중국 천시(晨曦)

정신 자매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보내주신 편지에서, 함께 협력하는 자매가 원칙 없이 행동하고, 교만하며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지적해 주고 싶지만,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자매님에게 편견을 가지면 어쩌나 두려우시다고 하셨죠?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협력에 어려움이 생길 것 같아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저는 자매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 철학에 따라 살아가다 보니, 항상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어요. 이러한 생각이 우리를 옭아매고 구속하여 진리를 실행하거나 원칙을 지키기 못하게 하곤 합니다. 저도 예전에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의 잘못된 사상과 관점, 패괴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이제 조금은 바로잡혀서 사람들에게 문제를 지적할 때 더 이상 그렇게 얽매이지 않게 되었답니다. 자매님께 제가 겪은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부디 자매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저는 저우팡 자매, 류잉 자매와 함께 협력해 교회 사역을 했습니다. 우리가 사역에 대해 의논할 때 대부분은 저우팡 자매가 주도하곤 했습니다. 후에 우리의 본분 이행 성과가 그다지 좋지 않자, 리더는 장링 자매를 보내 우리의 사역을 지도하도록 했습니다. 장링 자매는 우리 사역에 있는 문제점을 발견해냈고, 몇 가지 실행 방안도 제시해 주었기 때문에 저희는 그녀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에 저우팡 자매가 약간 질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사역을 논의할 때 장링 자매의 관점이 명백히 옳음에도 불구하고, 저우팡 자매는 이유를 들어 그 의견을 바로 부정해버렸고, 그로 인해, 사역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저우팡 자매에게 이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지만, 우리가 막 협력을 시작한 터라 이런 갈등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이후 장링 자매는 사역의 세부 사항까지 꼼꼼하게 챙기면서 문제를 발견할 때마다 교제를 통해 해결했고, 사역 효율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우팡 자매는 장링 자매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만 급급하며, 지위를 위해 일한다는 뒷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말투에서 판단하고 깎아내리는 태도가 느껴졌고 이간질하려는 의도까지 있었습니다. 결국 류잉 자매도 장링 자매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우팡 자매가 이렇게 장링 자매를 깎아내리고 배척하며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며, 저는 문제가 꽤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저우팡 자매에게서 적그리스도 성품이 드러났고, 그녀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을 내서 저우팡 자매와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 교제해 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려니 입이 접착제로 붙은 듯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도 자매님과 똑같은 내적 상태를 겪으며 마음속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우팡 자매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부하면 그녀가 저에게 편견을 가지고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혹은 장링 자매를 대하듯 저를 배척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유를 만들어 자신을 위로하기까지 했습니다. ‘저우팡 자매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전에 그녀도 명예와 지위에 집착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어. 성품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니까, 그녀 스스로 천천히 반성하고 진입하게 하자.’

그 후, 저우팡 자매의 문제를 떠올릴 때마다 제가 그녀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도와주지 못한 데에 마음속으로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제가 패괴 성품에 얽매이지 않고 용감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마침 그 무렵, 한 경험 간증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주인공의 이야기가 저의 내적 상태와 좀 비슷했습니다. 주인공은 함께 협력하는 자매가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명예와 지위를 다투어 교회 사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았지만, 리더에게 이 문제를 보고하면 자매의 미움을 살까 봐 주저하며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엄중한 책망을 받고 나서야 주인공은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주인공이 읽었던 말씀 한 구절이 저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용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제일 음험하다.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세상 물정에 밝아 처세술이 능란하며, 임기응변에 능하고, 아무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패괴된 성품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용의 도를 걷는 자가 가장 음험하고 간사한 사람이며, 살아 있는 사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저의 내적 상태 모습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저우팡 자매의 문제가 조금 심각하며, 교회 사역에 방해가 되고 있으니, 바로 그녀에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매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 문제를 보고도 침묵했고, 교회 사역을 조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중용의 도를 걷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괴로워서 더 이상 교활하게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원칙을 지키고, 교회 사역을 지키며, 저우팡 자매와 교제해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날 저우팡 자매가 먼저 제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지위를 이용해 사람들을 가르치려 든다고 말했습니다. 제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 보니, 그녀에게 문제를 지적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겉핥기 식으로 간단히 몇 마디 말하고 넘어갔고, 그녀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다는 문제는 한 글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저에게 또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어떤 면에 문제가 있는지 보셨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인식하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요.” 하지만 저는 진심과는 달리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차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복수하고 있다고 여길까 두려웠고, 혹시라도 그녀가 저를 좋게 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협력하며 본분을 이행할지 걱정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약간의 체면이라도 세워주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제 마음은 자책과 책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진실 몇 마디조차 말하지 못하는 나약한 제가 무슨 진리를 실행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며칠 동안 밥맛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으며, 예배 시간에도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매의 문제를 분명히 보고도, 미움받을까 두려워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너무 나약하고,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자신을 배반하고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 이는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남과 함께 지내는 방식 중 하나로서, 남과 함께할 때 너무 각박하게 굴지 말고 여지를 주며 남의 상처를 들추지 말고 체면을 세워 주라고, 기분을 망치지 말고 관용을 베풀라고 말하고 있다. 덕행에 관한 이 말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의 처세 철학이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인간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견지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본질을 봤을 때, 사람의 덕행 중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요구를 고상하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상처 입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된다고 말이다. 또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누구라도 상처를 주는 순간 그 관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친하고 가까운 친구에서 네게 낯선 사람, 적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가르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설령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적을 만들지 않고 몇 명의 원수를 줄여 사람들에게 탄복과 동조를 샀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너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완벽하게 덕행의 기준에 도달한 것이겠느냐? 이는 기껏해야 처세 철학에 불과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교활한 처세 철학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철학에 따라 살아가며, 남들과 함께 지낼 때, 서로를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립니다. 누구와 어울려도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거나 진실을 말하지 않고, 점점 더 교활하고 간사해집니다. 저 역시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철학에 따라 남들과 지냈습니다. 저우팡 자매가 장링 자매를 질투하며 말투에도 장링 자매를 깎아내리고 배척하는 태도를 뻔히 보면서, 이 문제의 본질이 조금 심각하며, 이미 사역에 방해를 주고 있어 저우팡 자매에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우팡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그녀의 약점을 들추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처럼 느껴졌고, 그녀가 저를 좋지 않게 생각하거나 앞으로 협력이 어려워질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끝내 입을 열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간단히 몇 마디만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해서 그녀의 행동의 본질과 그 결과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또 어떤 면에 문제가 있는지 보셨으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물었을 때, 분명 그녀의 문제를 알고 있었음에도 저는 거짓말로 “없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이건 제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며 사람을 속이고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저우팡 자매가 장링 자매를 깎아내리고 배척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중간에서 좋은 사람인 척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전혀 실행하지 않았고, 교회 사역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로 너무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어 남들과 함께 지낼 때 진심으로 대하고, 형제자매가 패괴 성품에 살며 잘못된 길을 가거나 원칙을 어기는 행동을 하면, 사랑으로 교제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아도 지적하거나 돕지 않았고, 사랑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한 번도 폭로하지 않은 이유는 진실을 말하면 저에게 번거로운 일이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아도 침묵하며, 오히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첨하거나 듣기 좋은 말만 했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에서는 경계심이 가득하고, 남을 속이거나 이용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관계이며,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진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전에는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철학에 따라 행동하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남에게 미움을 사지 않으며 적을 만들지 않으니까 똑똑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사상과 관점은 사탄에 속한 처세술로, 사람을 패괴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철학이 자기 보호를 부추겨서 저는 점점 더 이기적이고 간사해졌고, 다른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서 교회 사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뻔히 보고도 교제하거나 돕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사랑도 없고, 인성도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든, 네가 사탄의 패괴 성품에 결박되고 통제되고 좌우되는 한, 네가 살아 내고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 혹은 네 정서와 생각, 관점, 일 처리 방식, 방법은 모두 사탄에게 속한 것이다. 그것은 모두 진리에 어긋나고,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와 적대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서 멀어질수록 너는 사탄의 그 멍에에 통제되고 얽매일 것이다. … 사람은 패괴 성품에 통제되어 사탄의 멍에 속에서 살면서 사탄이 준 각종 방식과 생각, 관점으로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한편, 하나님으로부터 평안과 기쁨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사탄의 패괴 성품에 결박되어 있고, 사탄의 멍에에 갇혀 자각적으로 저버리거나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멀리하기에, 늘 하나님에게서 온 위안과 기쁨, 평안, 행복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어떤 내적 상태로 살아가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려고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려고 하나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데, 딱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패괴 성품 속에서 사람 같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또 늘 어두운 구석에서 살아가면서 떳떳하지 못한 사악한 방식으로 자신이 직면한 수많은 어려움을 해결하려 한다. 사실, 사람은 마음속 깊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빛을 동경하며, 사람답게 존엄성을 갖추고 살아가기를, 진리를 추구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하나님 말씀을 자신의 생명과 실제가 되게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언제나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며, 수많은 이치를 이해했음에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사람은 이 진퇴양난 속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딱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이다. ‘걸려 있다’는 말은 고통과 극도의 괴로운 느낌을 준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빛을 동경하는 바람이 있으며, 하나님 말씀과 바른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는 않으며,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도 못하며 줄곧 사탄의 패괴 성품으로 인한 결박과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말할 용기가 없었던 이유는 바로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처세 철학을 긍정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행동해야 사람에게 사랑이 있고, 자신도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께서 남들과 함께 지낼 때 다른 사람의 문제를 말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를 자초하고 사회에서 발붙이기 힘들다고 하셨고, 저는 외할머니의 가르침이 매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들과 함께 지낼 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쉽게 말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한 적도 없었습니다.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비결이라고 마음속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렇게 살아야 고상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점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어울릴 때도 저는 이러한 사탄 철학을 따르며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원칙을 어기며 행동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문제를 지적하거나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사탄의 철학에 얽매여 그들에게 지적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의 철학은 마치 그물망처럼 저를 옴짝달싹 못하게 단단히 묶어놓았고, 저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원래 우리 교회의 사역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아서, 교회에서 장링 자매를 보내 우리의 사역을 지도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사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우팡 자매는 장링 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하기는커녕, 다른 사람이 사역에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장링 자매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고, 눈앞의 성과와 이익에만 급급하다고 판단하며, 장링 자매를 깎아내리고 배척해서 그녀의 의욕을 꺾으려 했습니다. 또한 저와 류잉 자매 앞에서 장링 자매를 판단하며 우리 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함께 장링 자매를 배척하려 했습니다. 저우팡 자매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장링 자매를 배척하고 공격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패괴 표출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파트너로서 제 책임을 다해 그녀에게 문제를 지적해야 했지만,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사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음속으로 제 자신이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책임감이 없는지를 후회하며 자책했습니다. 제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음으로써 저에게 아무 편견이 없었던 저우팡 자매와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제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혐오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 왜 제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도 폭로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라는 말은 좋겠느냐? 이 ‘들추다’는 단어에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하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인류의 언어를 통해 이 ‘들추다’는 단어에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악의적으로 남을 폭로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사람의 문제점이나 결점, 또는 아무도 모르는 일, 행위, 그리고 배후의 음모나 생각, 관점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들추다’는 단어의 뜻이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며 서로 마음이 통하고 마음의 벽이 없다면, 또 상대가 자신으로부터 이로움과 도움을 얻었으면 하며, 앉아서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정당한 일이지 단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상대의 문제를 발견했는데 상대가 네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예 입을 닫고 분쟁이나 충돌을 피하면 된다. 네가 그를 도와주고 싶다면, 그의 의견을 구하며 먼저 “저는 당신의 문제점을 발견했고, 의견을 말해 주고 싶은데 당신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받아들이겠다면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지금은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물어봐도 된다. 그가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적절한 말을 하죠. 저는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인정받은 것과 같다. 그때 하나씩 문제점을 교제해 주면 된다. 상대가 전부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도움을 얻는다면 너희는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솔직하게 서로를 대하는 태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올바르게 함께하는 방식이지 약점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 그럼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약점을 들추지 말라’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사람의 결점이나 상대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문제를 말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폭로하거나 그렇게 노골적으로 들추지도 말며, 표면적인 부분, 모두가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 상대도 인식하고 있는 부분만 말하라는 것이다. 그가 예전에 저지른 잘못이나 민감한 부분은 들추지 말고 말이다. 이렇게 행동한다면 상대에게 어떤 유익이 되겠느냐? 그에게 원한은 사지 않고 그의 적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 행동은 그에게 어떤 도움도, 유익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에서 ‘약점을 들추지 말라’는 것은 솔직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 교활하고 간사하며 수작을 부리는 것으로, 검은 속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과 올바르게 지내는 방법이 아니다. 이방인은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는 말을 도덕적으로 고상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 여기는데, 단언컨대 이는 남과 함께하는 간사한 방법이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지, 절대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 약점을 들추지 않는 것 자체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약점을 들추는 데는 다른 속내가 있을 수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예전에 저는 자매님처럼 다른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약점을 들추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적을 만들며, 서로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일을 바라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어 형제자매들과 지낼 때 진심으로 대하며, 서로를 도우라고 요구하십니다. 형제자매가 패괴 성품으로 원칙을 어기며 행동하거나 잘못된 길을 갈 때, 우리는 진리의 원칙에 따라 문제를 지적하고, 그들이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폭로와 책망의 말이 듣기 불편할 수 있어도 그것은 상대가 자신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므로 진정한 사랑과 도움이며, 교회 사역을 지키는 일입니다. 소위 약점을 들춘다는 것은, 진심으로 사람을 돕기보다는 개인적인 속셈과 목적을 가지고, 사람에 대한 편견을 품은 채 패괴 성품으로 다른 사람의 결점과 단점을 폭로하는 행위로, 말에 공격하고 판단하며 깎아내리는 태도가 담겨 있고, 일부러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난처하게 만듭니다.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은 길을 잃고,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워질 뿐입니다. 저는 저우팡 자매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 교회 사역에 이미 영향을 끼친 것을 보고, 그녀가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그녀와 교제하며 조언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교회 사역을 지키는 일이자, 그녀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은 한결 밝아지고 편안해졌으며, 더 이상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후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그 말씀은 형제자매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매우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대하는 원칙은 무엇이냐?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모든 형제자매를 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다. 어떻게 공평하게 대하느냐? 반드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고 어떤 사람을 도태시키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지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이것이 진리 원칙이다.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돕고 서로 포용하며 인내해야 한다. 악인이나 불신파는 분별해야 하고 선을 긋고 멀리해야 한다. 이래야만 사람을 대할 때 원칙이 있는 것이다. 형제자매에게는 모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으며 패괴 성품도 있다. 그러므로 함께 지낼 때 사랑으로 서로 돕고 포용하며 인내해야지, 너무 각박하게 굴거나 지나치게 따져서는 안 된다. … 너는 하나님이 무지몽매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분량이 작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정상적으로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또 악독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 대하는 방식을 달리하고, 사람의 내적 상태에 따라 다루는 방식도 달리한다. 그러므로 너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네가 이런 진리를 모두 깨달으면, 체험할 줄 알게 되고 어떻게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형제자매들을 돕는 원칙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기 때문에 모두 많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드러나는 패괴 성품에 대해, 만약 사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그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다면, 그 사람의 패괴와 부족함을 함부로 붙잡아 폭로하고 해부해서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랑으로 긍정적인 면에서 교제하고 도와야 합니다. 반면,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거나, 패괴 성품이 심각하여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면에서 교제해서는 성과를 얻지 못하므로, 책망과 훈계, 폭로와 해부를 실행해서, 그 사람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만약 이런 폭로와 해부가 없다면 형제자매들은 자신의 문제를 반성하고 인식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할 것입니다.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본질, 분량, 다양한 배경에 따라 다르게 실행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바로 그것을 폭로하고 해부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문제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포용하고 참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일들은 사역과 관련이 없으면 포용하고 참아야 하지만, 어떤 일들은 사역과 관련이 있고,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한다면 폭로하고 책망해야 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분량에 맞춰 적절한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로써 형제자매가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고, 회개하고 변화하여, 매사에 원칙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되는 성과를 얻습니다. 이렇게 교제하고 돕는 것은 사람과 교회 사역에 모두 유익합니다. 이를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저우팡 자매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의 문제를 교제하고 폭로했습니다. 그 후, 저우팡 자매가 저에게 답장을 보내 “저를 이렇게 책망하고 폭로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어요. 저는 그저 약간의 패괴만 드러났을 뿐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좀 찾아보고 반성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고, 인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어요. 자매님이 이렇게 교제하고 해부해 주셔서, 진심으로 저를 도와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진심으로 받아들여 제 자신을 잘 반성하고 인식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저는 깊이 감동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 남과 자신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느끼며 마음도 편안하고 평안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과거에 저는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사상과 관점에 따라 살면서 사탄에 의해 고통받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간사하고 교활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행동해야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요.

제 경험은 얕은 편이니, 자매님도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다면 답장을 통해 교제해 주세요.

천시

2022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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