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좋은 리더’의 반성

2024.7.6

필리핀 루비렌(Rubylen)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제게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쳤습니다. 다가가기 쉬운 사람,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나 단점이 보여도 앞에서 말하지 말고 체면을 챙겨 줘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 교육 환경 속에서 저는 한 번도 남들과 충돌이나 논쟁을 일으킨 적이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저와 잘 지내기를 바랐고, 저 또한 이렇게 처신하는 게 무척 좋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이런 방식으로 형제자매들을 대했습니다. 특히 교회 리더가 된 후로는 형제자매들과 더 사이좋게 지내야 하며, 함부로 남의 잘못을 지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관계를 망칠 일도 없을 테고, 형제자매들도 저와 함께 지내기를 바라며 저를 상냥하고 친절한, 좋은 리더라고 칭찬할 테니까요.

그러던 중 저는 팀장인 조안 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부담을 갖지 않고 실질적으로 사역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몇 번이나 그녀에게, 팀장이라면 마땅히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알아봐야 하며, 그들의 사역을 자주 체크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지만, 그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녀를 일깨워 주며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쉴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는데, 그 시간에 교회 영화를 보고 페이스북을 하느라 사역을 체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저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정말 게으른 사람이네. 부담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잖아.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그들을 붙들어 줄 방법조차 생각하지 않다니.’ 저는 건성으로 책임감 없이 본분을 이행하는 그녀를 무척이나 책망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그녀가 저를 멀리하며, 다가가기 쉬운 좋은 리더가 아니라고 할 것 같았습니다. 그녀와의 좋은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그녀를 책망하지 않고 격려했습니다. “그 한 시간을 잘 활용해서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에 관심을 갖고 알아보세요. 그럼 그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뒤로 며칠 정도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녀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새 신자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고, 심지어는 아예 예배에 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정말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라는 생각에 조안 자매를 책망하고 싶었지만, 또 그러자니 그녀가 저를 멀리할까 봐 걱정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직접 새 신자들을 양육하고 붙들어 줘야 했죠. 새 신자들과 만난 후, 그들이 많은 난관에 직면해 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조안 자매는 그들이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다고 얘기했었죠. 저는 본분 이행을 경시하는 그녀의 태도를 책망하여 그런 무책임한 본분 이행으로 초래한 심각한 결과에 관해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상냥하고 친절하고 다가가기 쉬운 좋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꿔 몇 마디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시종일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조안 자매가 원망하듯 말했습니다. “저는 이 팀에 꽤 오래 있었는데 왜 발탁해 주지 않는 걸까요?” 저는 조안 자매의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게으르게 굴면서 본분 이행도 책임감 없이 건성으로 하는데 어떻게 발탁될 수가 있겠어?’ 저는 무척 화가 났지만, 드러내지 않고 그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해 주신 거예요. 우리가 서로 다른 본분을 이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 새 신자들을 양육하는 일이고요.” 저는 ‘이렇게 하면 내가 조안 자매를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겠지?’라고 여겼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을 대할 때 저는 대놓고 폭로하거나 책망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듣기 좋게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다가가기 쉬운 사람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죠.

또 한번은 복음 집사인 에드나 자매와 팀장인 앤 자매가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했습니다. 화가 난 에드나 자매가 제게 말했습니다. “앤 자매는 너무 게을러요! 제가 그 자매한테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와 문제점을 물어보면 한참 후에야 답장이 오죠. 그러니 제때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고요.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에드나 자매의 성품이 교만한 편이며, 요구하고 명령하는 투로 말해서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앤 자매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에드나 자매의 말투를 참지 못해 답장하기 싫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에드나 자매에게 이 점을 지적해 주고 싶었지만, 또 그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고,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친근하게 말했습니다. “앤 자매가 너무 바빠서 자매님 메시지를 보지 못한 걸지도 몰라요.” 그 후, 저는 앤 자매를 찾아갔습니다. 앤 자매는 불쾌한 투로 말했습니다. “에드나 자매는 너무 교만해요! 저한테 항상 이런저런 요구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답장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앤 자매를 일깨워 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해 우리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걱정되어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자매님은 에드나 자매를 오해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에드나 자매는 그저 자매님이 본분을 잘 이행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을 거예요.” 그렇게, 저는 그저 그들 사이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만 할 뿐, 누구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고요. 에드나 자매는 앤 자매의 사역을 체크할 수 없었고, 앤 자매는 억울하다고, 심지어는 그 본분을 이행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리더의 직책을 다하지 못해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는 제가 초래한 거였죠.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깨우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리 실행은 빈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이 사람됨의 원칙이나 일을 바라보는 관점, 본분 이행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진리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와 원칙을 찾은 다음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길,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겠느냐? 원래 네 관점은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것이 훌륭한 처세법이라는 것이다. 남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면서 타인의 체면을 해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함께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런 관점에 얽매여 누가 나쁜 일을 하거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을 보아도 침묵을 지키고, 남에게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교회의 사역이 손해를 입는 편을 택하며, 누구와 지내든 두루두루 어울리고, 말할 때도 인지상정과 체면을 고려해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기분 좋게 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아도 참는 쪽을 택하고, 뒤에서 말할 뿐 그를 만났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처신이 어떠하냐? 이는 무골호인이 아니냐? 너무 교활하지 않으냐? 이는 사람됨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이런 식의 처신이 비천하지 않으냐? 이런 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처신은 귀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사람답게 처신하는 측면에서 원칙이 없다면 너는 사람됨에 있어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기억되지도,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았습니다. 어떤 일이 닥치든 진리의 원칙대로 처리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살까 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진리 실행이죠. 하지만 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있을 때 항상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사람 사이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다가가기 쉽고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좋은 리더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제자매들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진리 실행을 중시하지는 않았죠. 저는 조안 자매가 새 신자를 양육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보며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한다고 책망하고 싶었지만, 그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다가가기 쉬운 좋은 리더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그녀의 문제를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의 무책임함 때문에 일부 새 신자가 문제를 해결받지 못해 예배에 오지 않게 됐죠. 또 에드나와 앤 자매의 경우, 저는 그 둘이 사이좋게 협력하지 못하며, 둘 다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문제를 지적해서 그들이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습니다. 그것은 사역에도, 그들의 생명 진입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저는 적당히 화해시키면서 그들 사이를 오가며 위로와 격려의 말만 몇 마디 하는 걸로 그쳤습니다. 그 결과, 둘 다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고요. 저는 상냥하고 친절하고 다가가기 쉬운 좋은 리더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교회 이익은 전혀 지키지 않았습니다.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려고 했죠. 저는 정말 너무도 이기적이고 비열한 무골호인이자 간사한 인간이었습니다. 제 이런 처신과 일 처리는 모두 패괴 성품에 기반을 둔 것으로, 전혀 진리를 실행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설령 남들에게 칭찬받는다고 해도 하나님께는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 행위였죠. 저는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폭로해 지적하지 않았고, 진리를 교제해 해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지 못하고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아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었고요. 그러니 저는 형제자매들이 자신을 인식하고 생명 진입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좋은 리더의 이미지를 지키고 칭찬과 우러름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깨닫자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패괴 성품을 해결하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한 자매가 제 내적 상태를 알고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가까이하기 쉬운 것, 상냥하고 친절한 것 등 좋은 행위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은 바로 두 글자, ‘위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좋은 행위’들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며,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서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생겨났겠느냐? 사람의 속셈과 간계에서 나왔으며, 위장과 포장, 그리고 기만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이 이 ‘좋은 행위’들을 고수하는 목적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은 절대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고, 본심에 어긋나게 살지도 않는다. 본심에 어긋나게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이겠느냐? 사람의 본모습은 스스로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솔직하고 무던하고 온유하고 선량하고 어질지 않다. 사람은 양심과 이성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떤 목적이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간다. 사람의 본모습은 어떠하냐? 흐리멍덩하다. 만약 하나님이 율법과 계명을 주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무엇이 죄인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과거의 인류는 그렇지 않았더냐? 하나님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한 이후에야 사람은 죄에 관해 어느 정도 개념이 생겼다. 하지만 옳고 그름이나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에 관해서는 여전히 개념이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사람이 자신의 언행과 관련된 정확한 원칙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정상 인성에 갖추어야 할 행동과 좋은 행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수 있겠느냐? 진실로 좋은 행위는 무엇을 토대로 생겨나는지, 어떤 도를 지켜야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낼 수 있는지, 이러한 것들을 사람이 알겠느냐? 알지 못한다. 사람은 사탄 본성과 사람의 본능 때문에 위장을 통해 자신을 포장할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체면과 존엄성을 갖추고 살아가려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교양 있고 사리 밝은 것, 온화하고 우아한 것, 점잖고 예의 바른 것,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 상냥하고 친절한 것, 가까이하기 쉬운 것 등의 기만책이 생겨났다. 이런 속임수, 남을 기만하는 수법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생겨난 후, 사람은 이 기만책의 범위 안에서 선택적으로 그중 한 가지, 또는 여러 가지를 고수한다. 어떤 사람은 상냥하고 친절한 것, 가까이하기 쉬운 것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교양 있고 사리 밝은 것, 온화하고 우아한 것을 선택하며, 어떤 사람은 점잖고 예의 바른 것,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몇 가지를 모두 선택한다. 그러나 이런 ‘좋은 행위’를 갖춘 사람을 나는 한 가지 단어로 규정한다.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자갈이다. 자갈이란 무엇이냐? 강에서 오랜 세월 강물에 씻기고 마모되어 모서리가 사라지고 반들반들해진 돌멩이다. 자갈은 발로 밟아도 배기지 않으나, 자칫 방심하면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다. 이 돌멩이들은 겉모양이 무척 예쁘지만, 막상 집에 가져가면 아무 쓸모가 없다. 버리자니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갖고 있지도 못하는, 이런 것이 바로 자갈이다. 내가 볼 때, 표면적으로 좋은 행위를 갖춘 사람들은 온화하고 자신을 잘 꾸미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실제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들이 바로 자갈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예전에 저는 늘 다가가기 쉽고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행위의 이면에 사탄의 패괴 성품과 개인의 속셈, 목적이 숨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죠. 저는 어릴 때부터 다가가기 쉬운 사람,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제가 이해심이 많다고 칭찬해 줬고요. 하지만 사실 제 행동은 남들의 우러름과 칭찬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다가가기 쉬우며 상냥하고 친절한, 겉면의 좋은 행위로 형제자매들을 속이고 기만해 온 거죠. 하나님은 이런 ‘좋은 행위’를 갖춘 사람을 ‘자갈’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겉은 예뻐 보이고 발로 밟아도 배기지 않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밟고 미끄러질 수 있죠. 또 감상용으로 쓸 수는 있어도 실제 쓸모가 없고요.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겉으로 볼 때 다가가기 쉽고 상냥하고 친절하며 누구에게도 상처 주는 법이 없는 것 같았지만, 형제자매들에게 조금의 실질적인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마음속에는 간사함과 기만이 가득했고요. 처세에 능해서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지 않는데, 바로 자갈, 중용의 길을 걷는 무골호인이자 음험하고 교활하며 외식하는 인간, 그게 저였습니다. 라는 하나님 말씀에서 폭로한 것처럼 말입니다. 『중용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제일 음험하다.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고, 세상 물정에 밝아 처세술이 능란하며, 임기응변에 능하고, 아무에게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패괴된 성품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에서) 지난날, 저는 다가가기 쉬운 사람,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면 모두가 좋아해 주고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습니다. 제 행동은 진리의 원칙에도, 하나님 말씀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그저 간사한 성품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존엄도 인격도 없어 하나님의 혐오를 받게 됩니다. 이대로 회개하거나 변화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되겠죠. 저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했습니다. 제 성품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제게 진리를 실행할 힘을 더해 주시어 하나님과 형제자매들에게 참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루는 한 자매가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선인지 악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바로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드러내는 것, 행하는 것에 진리를 실행한 간증, 진리 실제를 살아 낸 간증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네게 그러한 실제가 없고 그러한 살아 냄이 없다면, 너는 의심할 나위 없이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리더 일꾼의 직책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깨닫도록,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한다. 제2조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여, 그들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히는 생명 진입에 관련된 여러 고충을 해결한다. 제3조 각각의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진리 원칙을 교제한다. 제4조 수시로 각 사역의 책임자와 중요한 사역 담당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적시에 조정하고 교체하여 부적합한 인선으로 인한 손실을 피하거나 경감함으로써 사역이 효과적이고 순조롭게 진전되도록 한다. 제5조 적시에 각 사역의 현황과 진도를 파악하고 조사하여 사역 중에 존재하는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고, 사역 중에 나타나는 오류를 바로잡고, 사역 중에 나타나는 빈틈을 메움으로써 사역이 순조롭게 진전되도록 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시는 기준은 표면적으로 좋은 행위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우러름 받는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생각과 행동에 진리를 실행한 간증이 있는지 등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인성이 좋은 사람이고요. 저는 조안 자매가 건성으로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에드나와 앤 자매가 패괴 성품으로 살면서 서로 기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었죠. 그러니 교회 리더로서 마땅히 교제하여 도와주는 한편, 그들이 일하는 성질을 드러내고 해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 사이에서 듣기 좋은 말이나 하고 원칙 없이 화해나 시키려 했습니다. 교회 사역에 지장이 생긴 것을 보았으면서도 제 이미지를 지키려고만 했죠. 제게는 진리를 실행한 간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 리더로서의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또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요. 이 밖에도, 예전에 저는 형제자매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그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사람,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면 좋은 리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리더는 진리를 실행하고 교회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형제자매들의 문제점과 어려움을 발견하면 적시에 진리를 교제하고 해결해 줄 수 있고,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폭로내지도, 지적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진리를 깨닫고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도록 돕지도 않았습니다. 제 체면과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간사한 짓을 하면서 위로와 격려의 말이나 좀 했을 뿐,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죠. 저는 이렇게 형제자매들을 건성으로 대하고 기만한 것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좋은 리더가 되려면 언행 하나하나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지, 전통문화의 미덕을 지키고 남들에게 칭송받기를 바라며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리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은 처세 철학으로 형제자매들을 대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없었죠. 마땅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형제자매들이 문제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도와주고, 모두가 진리의 원칙대로 본분을 잘 이행하게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 책임이었고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가 진리를 실행해 패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가장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삼고 진리를 준칙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야 빛 속에서 살아갈 수 있고,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낼 수 있다. 빛 속에서 살려면 진리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정직한 말을 하고 정직한 일을 해야 한다. 처신함에 있어 진리 원칙을 갖는 것이 바로 근본이다. 사람이 진리 원칙을 잃어버리고 좋은 행위만 강조하면 거짓되고 위장하는 성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처신함에 있어 원칙을 잃는다면 행위가 아무리 훌륭해도 외식하는 것이 된다. 한순간 남을 미혹할 수 있어도 영원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처신해야 비로소 진정한 토대가 생긴다. 만약 처신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고 좋은 행위를 꾸미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렇게 해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좋은 도리와 행위는 사람의 패괴 성품을 바꿔 놓을 수 없고, 사람의 본질 또한 바꿔 놓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만이 사람의 패괴 성품과 사상, 관점을 바꿔 놓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다. …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성품 변화의 길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사람이 처신하고 일할 때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삼고 진리를 준칙으로 삼아야지, 겉면의 좋은 행위로 자신을 위장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실행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죠. 또 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나 패괴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를 보면 솔직히 말해 주고 원칙대로 대해야 합니다. 교제와 도움이 필요하다면 교제하고 도와주며, 지적이 필요하다면 지적하고, 책망이 필요하다면 책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본분 이행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깨닫고 제때 뉘우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형제자매들을 돕는 거고요.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는 하나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간의 정상적인 관계죠. 진리 실행의 길을 알게 된 후, 저는 다짐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잘못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늘 좋은 말만 해서는 안 돼. 하나님은 위장하고 기만하는 사람을 증오하셔. 내 모든 언행은 하나님 말씀에 부합해야 한다고. 진리의 원칙대로 일하자.’ 그 후, 저는 또 조안 자매가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했다가 제 좋은 이미지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됐지만, 전에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제가 여전히 다가가기 쉬운 사람,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려는 생각으로 처신하고 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안 자매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건성으로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하는 바람에 많은 새 신자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지 않고 있어요. 이런 식의 본분 이행은 새 신자들의 생명 진입에도, 교회 사역에도 큰 지장을 줍니다.” 그녀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에는 제 체험에 관해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조안 자매가 화를 내며 저를 무시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제 예상과 달리 그녀는 화를 내기는커녕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했습니다. “그건 제 부족한 점입니다. 바뀌어야겠네요.” 그 후, 조안 자매는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양육하는 새 신자들의 예배는 점점 정상화되었습니다. 저희 사이도 제 지적과 도움으로 어색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좋아졌고요. 얼마 후, 저는 그녀가 패괴를 드러내는 걸 보고 또 바로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도 지적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인식했죠. 지금 조안 자매는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고, 게다가 교회 리더로 뽑혔습니다. 저는 에드나와 앤 자매에게도 각자의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에드나 자매는 자신의 오만하고 교만한 태도를 깨닫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말했습니다. 앤 자매 역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는 변화하고 싶다고 말했고요.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체험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은 남의 눈에 좋은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처신하고 행동하며 진리를 실행하여 정직해지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입니다. 이 밖에도 저는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발견하면 바로 교제하고 도와줘야 하며, 폭로하고 책망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패괴와 부족한 점을 깨닫고 진리를 구해 패괴를 해결하며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형제자매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죠. 지금 저는 더 이상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를 어떻게 보든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을 견지하며 교회 사역을 지킬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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