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떻게 결혼을 대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 쑹샤오(宋曉)제가 열여덟 살 되던 해, 할머니께서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말세에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포해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며, 사람을 각기...
저는 10대 때부터 경요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를 즐겨 봤습니다. 여주인공은 정숙하고 선량했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남편과 온 가족을 지키고, 불평 한마디 없이 가족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런 모습은 시청자들의 커다란 사랑과 찬사를 받았고, 제 마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가정 교육의 영향까지 더해져, 어느새 저는 속으로 여자는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고, 온 가족을 잘 돌봐야 좋은 여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저는 매일 출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 가족의 세 끼 식사와 빨래, 설거지로 분주하게 살면서 남편과 아이의 생활을 살뜰히 보살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 해 한 해를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저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친척과 이웃들도 모두 제가 정숙하고 좋은 며느리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비록 가족의 칭찬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지만, 마음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정에 얽매여 늘 피곤하고 마음도 무척 공허했습니다. 가끔 ‘사람이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08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금세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3년 후에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어 매일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며 교회 사역으로 바빴습니다. 가끔씩 조금 늦게 돌아오자 남편은 제게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시어머니도 저를 쌀쌀맞게 대했습니다. 그들 마음속에서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저는 교회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서둘러 집안일을 정리하고 시어머니를 도와 일을 했습니다. 그때는 매일 정신없이 바빠서 하나님 말씀을 볼 시간이 전혀 없었고, 가끔은 예배 시간에 졸기도 했습니다. 속으로는 피조물로서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여자는 현모양처가 되어 가정을 잘 돌봐야 하고, 만약 온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하면 좋은 여자가 아니며,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양심에도 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늘 가정사에 얽매이고 사로잡혀 본분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2012년 국경절 연휴 기간, 아이가 7일간 방학이었는데, 마침 상부 리더가 예배 약속을 잡은 데다 교회 사역을 시행해야 해서 나흘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몸은 교회에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집안일에 쏠려 있었습니다. 제가 없으면 시어머니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남편이 화를 내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도무지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없었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남편이 화를 낼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에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뭐라고 나무라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일만 했습니다. 제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만 같아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남편과 시어머니는 TV에서 중공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비방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이를 보고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더욱더 반대했습니다.
어느 날 밤, 제가 집에 막 들어서자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며 제 차를 강에 버리고, 하나님 말씀 서적도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남편에게서 하나님 말씀 책을 지키려 했습니다.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남편은 제 뺨을 몇 대 때리고, 대걸레 자루로 제 다리도 때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못 본 척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당시 저는 그들이 단지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대하는 것에 마음이 무척 시렸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남편이 울면서 제게 사과했고, 저는 남편을 용서했습니다. 제가 이 가정을 잘 돌보지 못해서 남편이 제게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저는 조심스럽게 본분을 이행하면서 가정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마음을 온전히 본분에 집중할 수 없으니까 본분 이행의 성과가 좋지 않았고, 저도 무척 피곤했습니다. 가정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교회 사역에만 마음을 쏟는 어떤 형제자매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무척 부러웠습니다.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자유롭고 해방되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무렵 저는 하나님 말씀 찬양 <마음속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가>를 자주 들었고, 이 찬양을 들을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제가 충성한 대상은 가정과 남편, 아이들이었습니다. 제 마음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제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생각만 하면 마음이 괴롭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스스로가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인 것처럼, 본분과 가정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길을 열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 역시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남편과 아이를 내려놓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마음이 본분에 있지 않아서 본분 이행에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교체되었습니다. 교체된 후, 저는 몹시 소극적으로 변했고, 스스로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으며, 더 이상 나아지려는 의욕도 잃었습니다. 몇 달 후, 리더가 제게 와서 교제하며 문서 본분을 이행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긴장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본분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이지만, 본분을 이행하느라 바빠지면 집에 자주 갈 수 없을 텐데, 그럼 남편과 아이는 어떡하지? 시어머니는 지금 다리가 아프신데, 내가 자주 집을 비우면 누가 그들을 돌보지?’ 이런 생각들이 들자 본분을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본분이 어렵게 얻은 기회이며, 한번 잃으면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전에는 제가 가정을 돌보느라 여러 차례 본분을 소홀히 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이번에 주어진 본분의 기회 앞에서 저는 하나님의 요구에 닿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분량이 너무 작아 체험해 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끌어 주시고, 믿음과 힘을 더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 찬양 <하나님은 의지가 굳은 사람을 좋아한다>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실제의 하나님을 따르려면 이런 의지가 있어야 한다. 즉, 아무리 커다란 환경이 닥치더라도,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아무리 연약하고 소극적이 되더라도 성품 변화에 대해서 믿음을 잃으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한 말씀에 대해서도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을 줬으니 사람은 그 약속을 받을 의지와 믿음, 끈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겁쟁이를 싫어하고 의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설령 네가 많은 패괴를 드러냈어도, 설령 네가 굽은 길을 많이 걸었더라도, 혹은 과오가 많고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혹은 종교에 있었을 때 하나님을 대적한 적이 있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언젠가 변화할 수 있는지만을 본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를 위한 실행의 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지난 실패를 보지 않으시고, 지금 제가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소중히 여기는지, 진실로 회개할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의지가 굳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겁쟁이가 될 수 없고, 더 이상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 본분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기로 했습니다.
문서 본분을 이행한 후, 저는 제 상태에 맞춰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 현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탄에게 깊이 패괴되었다.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사람의 사상 관점에는 전통문화의 요소가 적지 않다. 특히 전통문화는 여자에게 남편을 돕고 자식을 가르치며 현모양처가 될 것을 요구한다. 여자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남편과 자녀를 위해 살아가며, 가족들 세끼 식사 준비와 뒷정리를 비롯한 모든 집안일을 훌륭히 해내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현모양처의 기준이다. 여성들도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심에 어긋나고 도덕 기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도덕 기준에서 벗어나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남편과 자식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좋은 여자가 아니라고 느낀다. 네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서 진리를 이해하고 일을 간파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피조물이니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이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과 현모양처가 되는 일이 부딪히지 않느냐? 현모양처가 되려면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려면 현모양처가 될 수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책임 있게 교회 사역을 대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을 택한다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럴 때 너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네 사상에는 어떤 파동이 일겠느냐? 네 자식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겠느냐? 너의 그런 미안함과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네가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에게 죄책감이 드느냐? 죄책감도 없고 자책감도 없다면 그것은 네 마음과 네 사상 속에 진리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네가 이해한 바는 무엇이냐? 전통문화이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네 사상 속에는 현모양처가 못 되면 좋은 여자가 아니고, 바른 여자가 아니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너는 이 관념에 얽매이고 사로잡혀 하나님 믿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여전히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분 이행과 현모양처 되는 일이 부딪혔을 때, 너는 비록 마지못해 본분을 택하거나 하나님께 충성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틈이 생기면 자식과 남편에게 더 많이 보상해 주려는 마음에 여전히 그들을 챙길 기회를 찾는다. 설령 본인이 더 고생스럽더라도 마음만 편하면 된다. 이것은 전통문화 중에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 이론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일이 아니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했던 하나님 말씀은 무슨 뜻이냐?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영혼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오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부모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고, 대자연에서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단지 우리 육만 부모를 빌려서 나왔고, 우리 자식은 우리를 빌려서 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자 하나님이 정한 운명,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래서 너는 어떤 사람에게도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다할 필요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피조물이 다해야 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사람의 일생에서 반드시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너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 아니다. 사람이 볼 때 너는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주부, 효녀, 사회의 선량한 시민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 자신의 의무와 본분을 전혀 다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부탁을 받고도 완성하지 못한 사람, 도중에 포기한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은 눈곱만큼의 가치도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줄곧 여자는 남편을 돕고 자녀를 가르치며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고 여겨 왔던 이런 사상 관점은 바로 사탄에게서 온 것이었습니다.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관점은 바로 여자는 평생 가정을 지키며 온 가족을 돌보고, 남편과 자녀 주위를 맴돌아야 하며, 만약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하면 좋은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줄곧 이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본분을 이행하는 동시에 늘 집안의 모든 일을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나면 집안일로 바빴고, 심지어 영 생활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는 시간까지 희생했으며, 본분에 대해서도 부담이 없어서 교회 사역을 지체시켰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온통 남편과 아이의 생활을 생각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남편이 기분 나빠하는 것을 보면 제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설사 남편이 저를 때리고 욕하며 제 하나님 말씀 책을 버리려 하고, 시어머니가 저를 비웃고 나무라더라도 저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현모양처로서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하나님 말씀에는 여자가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여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 사탄의 그릇된 논리를 진리로 여겼고, 그 결과 현모양처가 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덤으로 여겼습니다.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했을 때는 죄책감이나 불안함이 없었지만, 가족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돌보면 마음속으로 빚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제 사상 관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세상에 오도록 안배하신 것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지, 가정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제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가족을 잘 돌보기 위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조차 이행하지 못한다면, 저는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증오하시는 사람입니다. 지난 세월, 저는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본분을 이행할 많은 기회를 잃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그 후 저는 의식적으로 마음을 본분에 쏟았습니다. 가끔 집안일이 생각나면 하나님께 제 마음을 지켜 주셔서 본분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러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가끔 집에 들러 집안을 정리해 주곤 했는데,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제 마음은 그다지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2015년 6월, 저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같은 지역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이따금씩 집에 들러 살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몇 달 동안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자, 저는 또다시 남편과 아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들자 제 마음은 또 평온하지 않았고, 원래 지역으로 돌아가 본분을 이행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얻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지, 이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이 세상에 와서 나를 한 번 마주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고, 진리를 찾고 얻을 기회도 얻기 어렵건만, 너희는 어찌하여 이 좋은 시간을 소중히 간직해 금생에 추구할 바른길로 삼지 않는 것이냐? 또 어찌하여 항상 진리와 정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냐? 어찌하여 늘 사람을 우롱하는 불의와 불결함으로 인해 스스로를 짓밟고 망치는 것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큰 격려를 받았고, 올바른 인생의 목표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복음 확장 사역에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얻은 것은 제 복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신 것입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추구했던 베드로를 떠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양떼를 목양하라고 맡기셨을 때,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를 느끼고 더욱 진리를 추구하며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힘 있는 증거를 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일생은 가장 의미 있는 삶이었습니다. 지금은 복음 확장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므로, 저 역시 베드로를 본받아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에너지를 진리를 추구하는 데 쏟으며,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을 위해 제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가정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게 되었고, 더없이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최신 말씀을 보고, 정숙하고 덕이 있는 여성상, 현모양처와 같은 전통 문화에 대해 좀 더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양인은 여성에게 늘 고분고분하고 삼종사덕을 지키며 정숙하고 상냥하라고 하는데, 그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쉽게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는 동양의 전통문화에서 생겨난 일종의 암적인 사상이다. 그건 사실 사람을 해치고 결국 여성이 방향도, 주견도 없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게 옳고 어떻게 하는 게 그른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한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가족에 바치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는 사람을 해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자신이 가져야 하고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고도 반항하지 않는다. 그녀는 왜 반항하지 않겠느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반항은 옳지 않아요. 반항하면 현모양처가 아니에요. 누구누구와 비교해 보면, 그 사람은 저보다 훨씬 잘하고 훨씬 더 고생하는데도 불평하지 않아요.” 그녀는 왜 이렇게 생각하겠느냐? (전통문화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통문화가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그녀를 해치는 것이다. 그럼 그녀는 왜 이런 해를 받아들이겠느냐? 그녀는 그런 해가 자신을 아주 고통스럽고 무력하게 하며 마음에 크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받아들이겠느냐? 객관적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사회적 환경이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외부의 압박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말하면 그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존엄 있고 옳은지도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모든 준칙은 무엇이겠느냐? 전통문화다. 그녀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 옳고, 그것을 위배하면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그녀의 ‘준칙’이다. 사실상 그 준칙이 옳겠느냐? 그 준칙에 인용 부호를 붙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 준칙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사상 관점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행위가 얼마나 수긍이 가고 호감을 주든 실제로 그것이 준칙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건 진리와 인성에 위배된다. 오랜 세월, 동양의 여성은 온 가족을 뒷바라지하고 집안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을 전부 혼자 처리해야 했다. 그게 공평하냐? (불공평합니다.) 그럼 그녀는 왜 견딜 수 있는 것이냐? 그런 사상 관점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내할 수 있고, 최소한 마음속 깊이 80%는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자신이 맹목적으로 참으면 전통문화의 기준에 미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기준과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만약 그녀가 마음속 깊이 그렇게 하는 게 옳지 않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하면 인성에 부합하지 않고 인성과 진리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과 분리되고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그렇게 할 엄두를 못 낸다. 그녀는 그 집단을 떠나도 살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집단을 떠난 뒤 짊어져야 할 오명이 얼마나 클지, 그렇게 하는 결과는 어떨지 가늠한 뒤 만약 그렇게 하면 동료들은 자신이 현모양처가 아니라고 비평할 것이고 사회도 그녀를 비난할 것이며 여론이 형성돼 아주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이렇게 궁리한다. ‘그냥 참자. 안 그러면 비난에 숨 막혀 죽을지도 몰라.’ 동양의 여성은 대대로 이렇게 살아왔다. 그 모든 좋은 행위의 이면에 사람은 무엇을 견디고 있겠느냐? 사람은 존엄도, 인권도 박탈당했다. 이런 사상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부합하지 않는다. 존엄도, 인권도 박탈당했고 인격도 사라졌으며 독립된 생활 공간이나 사상 공간도, 말할 권리도, 자기 뜻을 표현할 권리도 없이 하는 일은 전부 가족을 위해서다. 그녀가 그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여성에 대한 전통문화의 요구 기준을 충족시켜 남들에게 칭찬받고 좋은 며느리,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는 해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생각이 정당하냐, 아니면 왜곡되었느냐? (왜곡됐습니다.) 진리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속으로 무척 확신했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사탄의 전통 문화에 깊이 해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어질고, 선량하고, 정숙하고, 덕이 있는 모습이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거기다 부모님의 교육과 사회적 여론의 영향이 더해져 제 사상은 완전히 속박되었습니다. 저는 현모양처, 남편을 돕고 자녀를 가르치는 여성을 여자의 모범적 기준으로 삼고, 긍정적인 사물로 여기며 지켰습니다. 온종일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남편과 가정을 지키며, 온 가족의 의식주를 위해 살았고, 인격과 존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고상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런 ‘좋은 여자’의 이미지를 지키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진리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감히 대범하게 추구하지 못했습니다. 본분을 좀 이행하려 해도 가정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뒤따랐습니다.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가족들에게 빚을 진 것 같아서 서둘러 방법을 찾아 만회했으며, 심지어 본분을 내팽개치고서라도 가족들을 돌보려 했습니다. 원래 남편과 시어머니는 모두 성인이고, 아이도 이미 중학생이 되어 완전히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지만, 저는 여전히 안심하지 못하고 제가 그들을 돌보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꾸만 교회 사역을 내팽개치고,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을 내팽개쳤으니, 정말 가증스럽고 가련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본래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분명히 가족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제 본분을 막았음에도 저는 그들을 분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느라 그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고 여기며 도리에 어긋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이 전통 문화가 사람에게 너무나 해가 되며, 그것이 제 사상을 완전히 왜곡시켜 흑백과 시비를 가리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은 현모양처, 삼종사덕과 같은 전통 문화로 사람을 미혹하여, 여자는 가정에서 반드시 남보다 열등해야만 하고, 노예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여기게 함으로써 여성의 자유 의지와 생존권을 박탈합니다. 이는 여성을 통제하고 짓밟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에 저는 줄곧 이 전통 문화에 시달리고 통제당하며, 자꾸만 본분을 소홀히 하고,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잃고,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며, 인격과 존엄성이 조금도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계속 이대로 간다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저는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들을 인식하고, 저는 마음으로부터 사탄을 저버리고, 더 이상 이런 전통 문화에 따라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어 사람이 그 자유 의지 안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했느냐? 인성에 부합하는 것 아니겠느냐? 최소한 인성에 부합한다. 그 밖에 생활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 정확한 생각과 인지를 가지게 했고 옳은 길을 선택해 생활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준,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생이다. 그러나 사람은 평생 소위 전통문화나 도덕경에 속박되고 얽매이고 왜곡되어 결국 무엇이 되었느냐? 전통문화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이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 일어난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이런 길을 걷기를 선택할 수 있겠느냐?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원칙대로 하는 것은 당연히 옳다. 원칙대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한다. 그가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를 형제자매로 대하고, 믿지 않는다면 이방인으로 대해야 한다. 스스로를 서럽게 만들거나 자신의 인격을 왜곡할 필요도,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포기하고 그들을 위해 일생을 바칠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이 세상에 네가 일생을 바칠 만한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누구겠느냐? (하나님입니다.) 왜 그렇겠느냐?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인류가 생존하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준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 있으면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마지막에 사람이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성과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혼인을 안배하신 것은 가정에서 책임을 다하게 하라는 뜻이지, 노예가 되라는 뜻도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가 있으며, 누구도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가정과 혼인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든, 그것은 단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하나의 책임일 뿐입니다. 교회 사역이 바쁘지 않을 때는 아내의 책임을 다해 가족의 생활을 돌볼 수 있지만, 만약 본분이 바빠져 집에 갈 시간이 없다면, 저는 마땅히 본분을 중점으로 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은 커다란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마치 마음의 창문이 별안간 활짝 열린 것처럼 아주 밝아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는 저를 ‘현모양처’라는 이 전통 사상의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고, 하나님나라 복음 확장 사역에서 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 일생에서 가장 큰 복이며, 제가 살아가는 가치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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