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드러내어 얻은 참혹한 교훈

2025.8.8

중국 우스(吳實)

2016년 8월, 저는 교회에서 복음 사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험이 부족하고 진리에 대한 깨달음도 깊지 못해서 이 본분을 막 맡았을 때는 압박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늘 제 어려움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동시에 스스로 복음 전파 방면의 진리와 원칙도 많이 찾아보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형제자매들에게 많이 물어보곤 했습니다. 점차 저는 각 방면의 원칙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고, 사역 중에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합리적인 건의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복음 전도에서도 약간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저희 교회의 복음 전도 성과는 점점 더 좋아졌고, 몇몇 복음 전파 담당자도 책임자로 발탁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사역이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니,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 걸. 자질과 사역 능력을 어느 정도 갖췄어.’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꿀처럼 달콤했습니다. 그 후 다시 형제자매들과 예배를 드릴 때 저는 더는 이전처럼 자세를 낮추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혀 다소 소극적으로 변하면, 저는 제가 이 본분을 막 맡았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역의 성과를 거두었는지 교제했습니다. 제 말을 듣고 형제자매들은 모두 제게 찬사의 눈길을 보냈고, 본분을 이행하려는 마음의지를 얻고 계속 협력하고자 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은 무슨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모두 제게 와서 물었고, 협력하는 형제자매도 무슨 어려움에 부딪히면 자주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모두의 지지와 우러름을 받게 되자 저는 마음이 매우 기뻤고, 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며 이 책임자를 맡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12월이 되자, 우리 교회는 많은 사람을 전도했고, 잇달아 몇몇 교회를 세웠으며, 어떤 새 신자들은 본분을 이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탁되어 양성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며 저는 커다란 성취감을 느꼈고,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저 자신을 흡족하게 생각하며, 제가 진리를 깨닫고 사람을 보는 혜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본분을 막 맡았을 때는 교회가 한 곳뿐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곳으로 늘어났고, 제가 사역을 맡은 후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인재를 몇 명이나 제공했는지 헤아려 보니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더더욱 저 자신을 괜찮은 사람, 인재, 교회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인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마음속으로 약간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도 초자연적이지 않고 사람의 협력이 필요해. 내 협력이 없었다면 사역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야. 내가 이 본분을 가장 오래 했으니, 많든 적든 공로는 있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의 가책은 사라졌습니다. 그 후, 저는 복음 전파 담당자들 앞에서 저도 모르게 자신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방금 교회에서 막 달려왔는데, 거기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겼고 제가 이러저러하게 해결해 주었지 뭐예요. 내일은 또 모 교회에 가야 하고요.” 하는 식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제 말을 듣고 모두 부러운 눈빛을 보였고, 한 자매는 “자매님은 그 많은 교회의 사역을 책임지고 계신데, 우리라면 분명 못 했을 거예요. 머리도 안 돌아갈 걸요. 역시 자매님은 진리를 잘 알고 사역 능력도 있으시네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매의 칭찬을 듣고, 저는 매우 우쭐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분명 당신들보다 나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 책임자를 맡을 수 있겠어?’ 그 기간 동안 저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다녔고, 일이 닥쳐도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바로 처리했으며, 늘 제가 진리를 깨닫고 사역을 좀 할 줄 안다고, 복음 사역을 책임지는 데는 제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형제자매들은 본분을 이행하며 문제에 부딪혀도 공을 들여 구하려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를 구해 어려움을 극복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제가 와서 교제하며 해결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간혹 제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들은 더더욱 그 문제들을 어렵게 느꼈고, 그로 인해 복음 전도 성과는 매월 하락했습니다. 이런 일이 닥쳐도 저는 제대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책벌과 징계가 제게 임했습니다.

2018년 4월의 어느 날, 협력하는 자매가 원래 한 교회 예배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제가 대신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배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나중에 3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처음 구치소에 있을 때는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다가 박해받고 체포되는 것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크게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년 7개월간 구금된 후 교도소로 이감되었고, 목숨을 부지하려는 두려움에 어쩔 수 없이 ‘삼서(三書)’에 서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후회와 수치, 자책감에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깊은 밤 침대에 누워 후회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런 환경에 처한 것이 저를 드러내시는 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제가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를 이끌어 당신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그 후, 제 머릿속에는 체포되기 전 본분을 이행하던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크게 자랑하는가 하면, 사역을 좀 할 수 있다고 늘 그것을 제가 진리를 깨닫고 실제가 생긴 것으로 생각하고 저 자신을 교회에서 보기 드문 인재이자 기둥이라고 생각했으며, 온종일 우쭐대며 기고만장했습니다. 그 모습을 제가 ‘삼서’에 서명하며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의 연약하고 무능하며, 목숨을 아까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던 가련한 모습과 대조해 보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왜 갑자기 체포되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보았던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생각났습니다. 『어느 정도 고통과 단속을 받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다. 너희를 느슨하게 하면 망치게 될 것인데, 어찌 보호를 받을 수 있겠느냐? 지금 너희들은 형벌과 심판, 저주를 받고, 많은 고난을 받음으로 인해 보호를 받았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일찌감치 타락했을 것이다. 내가 일부러 너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성은 쉽사리 바뀌지 않으므로 이렇게 해야만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너희는 바울의 양심과 이성은커녕 바울처럼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능력조차 없다. 너희에게는 늘 압력을 가하고, 늘 형벌하고 심판해야 너희의 영을 일깨울 수 있다. 너희의 생명에 가장 유익한 것은 역시 형벌과 심판이다. 필요시 사실로 형벌을 가해야 너희가 완전히 수긍하게 된다. 너희는 본성상 형벌과 저주 없이는 머리를 숙이거나 수긍하려 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실 없이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너희의 인품은 천박하고 서푼어치도 안 된다! 형벌과 심판 없이는 너희를 정복하거나 너희의 불의와 불순종을 억누르기 어렵다. 너희의 옛 성품은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에 너희를 보좌에 올려 놓는다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는 더더욱 모를 것이다. 너희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모르는데 어찌 창조주를 알 수 있겠느냐? 오늘날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진 형벌과 저주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너희의 마지막 날이 임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너희의 운명은 더욱 위태롭지 않았겠느냐? 형벌과 심판이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너희가 얼마나 교만을 부리고 타락했을지 모른다. 이러한 형벌과 심판이 너희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왔고, 너희의 삶을 유지해 왔다. 지금도 너희의 ‘아비’처럼 너희를 ‘교육’한다면 너희가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너희는 자제력과 자기 반성력이 하나도 없다. 너희 같은 사람들이 따르고, 순종하고, 방해하거나 교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의 목적은 이루어진 것이다. 너희는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을 더 잘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달리 무슨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는 제가 체포되어 감옥에 간 것이 저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책임자를 하는 동안 너무나 교만했고, 사역에 약간의 성과가 있다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복음 전파 담당자들이 어려움에 부딪혀 소극적일 때, 저는 체험을 이야기하며 제 사역 능력을 의도적으로 드러냈고, 또한 제가 책임진 교회의 복음 사역 성과가 좋다고 일부러 형제자매들에게 알려 모두가 저를 우러러보게 했습니다. 나중에 몇몇 새로운 교회가 설립되자, 저 역시 제 사역 능력을 드러내어 모두가 저를 더욱 우러러보게 했습니다. 제가 늘 이렇게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은 모두 제가 본분에 부담을 느끼고 사역에도 성과를 내는, 적격인 책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를 가든 모두 저를 정중하게 대하고 존중했으며,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저에게 와서 건의를 구하기 좋아했고, 제가 제시한 건의는 대부분 받아들여졌으며, 협력하는 자매도 무슨 일이 있으면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모두의 지지와 우러름을 받게 되자 저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매우 즐겼고, 심지어 우쭐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교회의 사역에 제가 없어서는 안 되고, 제가 그들 모두보다 뛰어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어 사람들을 제 앞으로 데려왔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음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타락하는 것을 두고 보실 수 없어서 경찰의 체포를 통해 악을 행하는 저의 발걸음을 막고, 저를 멈춰 세워 반성하게 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길을 잃고 헤매다 제때에 깨달아 더는 그릇된 길을 걷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고심에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위해 이런 환경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께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저 자신에 대해 진실한 인식을 갖도록 저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십시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이 생각났습니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네가 올바른 길을 가고 하나님 뜻에 부합하게 된다면 성령 역사도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한 성품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너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나타내게 한다. 교만함은 네가 다른 사람을 얕보게 하고, 너를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교만함으로 인해 너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게 된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네게 순종하게 할 것이다.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아 사람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되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 바로 사람에게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며, 사람이 교만한 성품이 있으면 자신을 매우 대단하게 여기고 자신이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사람들 속에서 저도 모르게 자신을 증거하고 드러내어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한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책임자를 하는 동안 사역이 약간의 성과를 거두자, 저는 스스로를 자질이 있고, 진리를 깨달아 문제를 해결할 줄 알고, 인재도 발굴할 줄 아는, 교회에서 보기 드문 인재이자 교회의 기둥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교만한 본성에 지배된 것입니다. 분명 복음 사역에 약간의 성과가 있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와 이끄심,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공동 협력으로 이룬 성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공로를 저 자신에게 돌리고, 의도적으로 형제자매들 앞에서 드러내었습니다. 이로써 사람들이 제가 진리를 깨닫고 사역 능력이 있어서 사역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결국 모두가 저를 우러러보고 숭배하게 했습니다. 저는 정말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행정 첫 번째 조항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여야지, 함부로 잘난 체하거나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법령>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고 크게 여겨야 하며, 사람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님의 지위만 있어야 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일깨우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저 자신을 크게 높였고, 또 자신을 드러내어 형제자매들의 마음속에 제 지위를 두려고 했습니다. 제가 교만하고 방자한 본성에 따라 한 일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고, 이미 행정을 거슬렀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를 즐겼으니, 정말 너무나 무감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가 저를 책임자로 양성한 것은, 한편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라는 뜻이고, 그와 동시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여 사역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함께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의지하며, 진리를 구해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이로써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모두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자리를 마련하게 하고,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제 책임이고 본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책임자가 마땅히 해야 할 직책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사역을 기회로 한결같이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하였습니다. 그 결과 형제자매들은 저를 우러러보고 숭배하는 한편,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저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제 앞으로 데려온 것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걷는 길은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이었고, 이미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것이었습니다. 만약 계속 이렇게 본분을 이행한다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을 받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닫자 식은땀이 났습니다. 저는 이번 체포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제가 임한 것이고, 또한 저에 대한 하나님의 크나큰 보호와 구원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이 환경에 잘 순종하여 공과를 배우기로 다짐했습니다. 2021년, 저는 형기를 마치고 중공 감옥이라는 그 인간 지옥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형제자매들이 제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하루는 영 생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너희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성령의 깨우침을 느낄 수 있느냐? (그렇습니다.) 성령 역사를 느꼈음에도 우쭐해서 자신에게 실제가 있다고 여긴다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 (본분 이행에 성과가 생길 경우 하나님께 절반의 공로가 있고, 자신에게도 절반의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협력을 무한히 확대 해석하여 역시 자신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고, 자기가 협력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깨우쳐 주실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너를 깨우쳐 주느냐?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깨우쳐 줄 수 없느냐? (깨우쳐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깨우쳐 주든 모두 하나님의 은총이다. 너의 그 조그마한 협력은 무엇이냐? 공로냐, 아니면 본분과 직책이냐? (본분과 직책입니다.) 네가 그것이 본분과 직책임을 인식한다면 그런 마음가짐은 옳다. 그러면 너는 공을 가로채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이건 내 공이야. 내가 협력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깨우쳐 주셨을까? 역시 사람의 협력이 있어야 해. 사람의 협력이 주가 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렸다. 만약 성령의 깨우침이 없고, 너에게 진리 원칙을 교제해 주는 사람도 없다면 네가 어떻게 협력하겠느냐? 너는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실행 길도 모를 것이다. 설령 하나님께 순종하고 협력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모를 것인데, 네 협력은 그저 빈말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진실한 협력이 없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한다면 네 본분 이행이 합격에 이를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것은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어떤 문제냐?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성과를 내고 본분 이행에 합격해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네가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이행했다 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너를 깨우쳐 주거나 인도하지 않는다면 너는 길과 방향, 목표를 모를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한동안 바삐 돌아쳤어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진리 생명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헛수고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 본분 이행이 합격하고,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이 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사람은 그저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사람의 본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네 본분 이행이 성과를 낼 수 있는지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에 달려 있다. 그런 것들이 있어야만 너는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준 길과 하나님이 정한 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다. 사람이 이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눈이 먼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던 것은 제 안에 있던 또 다른 그릇된 관점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역에 성과가 있는 것은 제 협력 때문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며 사람의 협력을 너무나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사실 사람의 협력도 진리 원칙을 깨달은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만약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지 않으셨다면 사람의 협력도 길과 방향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협력은 단지 사람의 본분과 직책을 다하는 것일 뿐, 사역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느냐 없느냐는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처음에 이 본분을 맡았을 때는 파악하지 못한 원칙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많이 하고 원칙도 많이 보며 형제자매들에게 구했더니 점차 원칙을 일부 파악하게 되었고, 여기에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가 더해져 몇몇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복음 사역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우쭐대는 내적 상태로 살면서 기도도 줄어들고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했고, 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복음 사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제가 체포되어 감옥에 간 후 교회의 복음 사역은 제가 잡혀간 것 때문에 정체된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으며 성과도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멀고 어리석어 제 협력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며, 제가 없으면 교회 사역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또한 제가 몇몇 인재를 발굴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진리를 깨달아서 사람을 보고 선택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역을 위해 이미 오래전에 각 방면의 인재를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저도 꿰뚫어 보지 못하는 문제가 많았고, 모두 협력하는 자매와 함께 진리 원칙을 구함으로써 비로소 명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여 본분과 관련된 원칙을 이렇게까지 밝히 교제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런 원칙들을 깨닫고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실 모두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고 계신 것이고, 저는 단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조금 했을 뿐,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더욱 부끄럽고 창피하여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량의 사역을 하였는데, 하나님이 얘기한 적 있느냐? 해명한 적 있느냐? 설명한 적 있느냐? 없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오해해도 하나님은 많은 말로 해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나이가 예순이든, 여든이든 하나님을 너무 모른다. 하나님을 그 정도밖에 모른다면 너는 아직 어린아이인 셈이다. 하나님은 네게 따지지 않는다. 너는 아직 철부지다. 어떤 사람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육은 늙었는데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유치하고 천박하다. 그래도 하나님은 네게 따지지 않는다. 네가 모르면 모르는 것이고, 겨우 그 정도 자질밖에 안 되는 변변찮은 인간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은 네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를 증거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조금만 일을 해도 사람들이 이를 몰라줄까 걱정한다. 적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그는 조금만 일을 하면 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한다. 그 말을 들어 보면 겉으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으면 그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뽐내고 자신을 내세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그런 말들을 하는 속셈과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선민과 지위를 두고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추지만 사탄은 자신을 드러낸다. 이는 차이가 있지 않으냐? 드러냄과 낮춤과 감춤 중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냐? (낮춤과 감춤입니다.) ‘낮춤’이란 말이 사탄에게 쓰일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사탄의 사악한 본성 본질을 보면, 사탄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싸구려이다. 사탄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비정상이거늘, 무슨 낮춤을 말하겠느냐? 낮춤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분,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은 위대하고 존귀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자신을 과시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감춤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묵묵히 행하고 있고,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끊임없이 공급받고, 양분을 얻으며, 인도받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안배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고, 그런 일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이 낮춤과 감춤 아니냐?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언급하지도 설명하지도 않고, 사람과 이런 일들을 논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낮춤인 것이다. 너는 이렇게 할 수 없는데 네가 무슨 낮춤을 논하겠느냐? 그런 일들은 네가 한 일이 아님에도 한사코 공을 가로채려 하니, 이를 뻔뻔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인류를 이끌며 이렇게 큰 사역을 하였고, 온 우주를 주관한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그토록 크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나의 능력은 비범하다.”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숨어서 이 모든 것을 주관하며 인류가 양분과 공급을 얻도록 하고, 온 인류가 대대로 이렇게 이어지게 한다. 예를 들어, 공기, 햇빛 그리고 인류가 땅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끊임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한다는 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이를 숨기고 이름 없는 영웅이 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교회에 있는 일부 적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그들은 다소 위험한 사역을 맡은 적이 있고, 버리고 고생한 적도 있으며, 심지어 옥살이한 적도 있다. 또한 하나님 집의 어떤 사역에 공헌을 한 자도 있다. 그들은 그 일들을 늘 되새기며 잊지를 않고, 이를 평생의 공로이자 평생의 자본으로 삼는다. 이는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말해 준다. 사람은 확실히 보잘것없고, 사탄은 염치가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하나님의 본질은 겸손하고 아름답고 선하지만, 사탄의 본질은 사악하고 추하며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분명 세상 만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사탄은 오히려 자기가 창조했다고 말하며, 자신을 경배하라고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저는 또 중공을 떠올렸습니다. 분명 인류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일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계신데, 중공은 오히려 자기가 인민을 이끌어 좋은 생활을 하게 했다고 말해서, 인민들이 그것을 모두 중공의 공로라고 여기게 만듭니다. 또 교회에서 출교된 그 적그리스도들도 곳곳에서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며, 자신이 하나님 집을 위해 얼마나 사역하고 얼마나 수고했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로써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고 숭배하게 만듭니다. 마귀 사탄은 정말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더 생각해보니, 분명 교회의 사역은 모두 성령의 역사가 이룬 성과인데, 저는 오히려 속으로 제 공로를 헤아리고 또 늘 형제자매들 앞에서 이를 자랑함으로써 그것을 제 공로로 보이게 했고, 이로써 사람들로부터 우러름을 받고 그들 마음속에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제 방식이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표현과 똑같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었는지요!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낮아지시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크나큰 굴욕과 고통을 견디시며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사역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지만, 결코 그것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십니다. 그런데 작은 피조물에 불과한 저는, 한 일이 제 본분과 책임을 다한 것밖에 없는데도,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드러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비천하고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제 과오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며, 새 사람이 되어 제 교만한 성품을 변화시키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법을 배우기로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어떻게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지 실행하는 방면의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마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실제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 지난날, 너희는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정복되었다. 이 점을 영원히 잊어선 안 된다. 이 방면의 일을 많이 묵상하고 생각해서 이해한다면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뻔뻔스럽고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르기 쉬운데, 그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참된 체험이 없고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한다.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기 위한 실행 길을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겪었는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는 의미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에게서 어떤 성과를 거두려 하시는지 형제자매들에게 많이 얘기해서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고심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체험 중에 드러낸 패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일들을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우리가 한 일의 성질에 대해 인식하고, 그로부터 분별력을 키우고, 자신과 맞춰 보며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미워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것만 골라서 말하느라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역에 성과를 거두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얻었고 얼마나 많은 교회를 세웠는지만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드러낸 패역과 패괴, 연약함은 형제자매들에게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형제자매들이 제 겉으로 드러난 좋은 행위에만 미혹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 모든 소행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였으니, 저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출소 후 5개월만에 교회가 저에게 계속 복음을 전하도록 안배해 주었을 때, 저는 매우 감동했고, 반드시 본분을 잘 이행하여 이전의 하나님께 대한 빚을 갚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한 새 신자가 몇 가지 관념을 제기하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참을성 있게 그녀와 교제했습니다. 결국 관념이 해결된 그 자매는 이번 예배에서 커다란 수확을 거두었다면서, 하나님께서 형제자매들이 자신과 교제하도록 주재하고 안배해 주신 것에 대해 매우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자매가 감격에 겨워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며,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자매의 관념은 주로 내가 교제해서 해결해 준 거야. 나도 꽤 괜찮은 것 같아.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저는 제가 또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변의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의 이끄심에 감사드리는데, 저는 여기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화자찬하고 있었으니, 저 자신이 정말 혐오스럽고 너무나 뻔뻔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얼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네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자신의 패괴를 알고, 교만함의 비열함과 추함을 알게 되면, 역겹고 메스꺼워지며 마음이 괴로워진다. 또한,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일을 하여 마음이 편안해지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여 마음에 기쁨을 느끼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폭로하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밝혀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저는 제 안의 비열한 생각을 형제자매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또한 오늘 예배에서 다룬 몇 가지 문제들은 저도 처음에는 잘 깨닫지 못했지만, 교제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깨우침을 통해 점차 명확해진 것이며, 이는 제 원래의 분량이 아니라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아주 평온했고, 그렇게 처신하니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오늘 이 정도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이 제게서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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