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질을 올바르게 대할 줄 알게 되다
미국 즈신(知心)저는 2023년 4월에 양육 팀장으로 발탁됐습니다. 양육해야 할 새신자가 계속 늘어나는데 저는 팀의 전반적인 사역까지 점검해야 해서,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사역을 점검하느라 새신자를 양육할 시간이...
저는 교회에서 이린(依琳) 자매, 이양(易陽) 자매와 함께 설교문을 선별하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2022년 4월 어느 날, 리더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이린 자매는 설교문을 선별할 때 원칙에 진입하지 못하고 사역 성과가 좋지 않아 교체해야겠습니다. 자매님과 이양 자매는 본분 이행에 어느 정도 성과는 있지만, 최근 설교문 선별에 편차가 생겨서 가치 있는 설교문까지 일부 걸러냈더군요. 두 분은 일단 유예 기간을 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이린 자매는 저보다 자질이 좋은데도 교체되었습니다. 그러니 자매보다 자질이나 사역 능력이 부족하고 원칙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제가 설교문을 선별하다 또 실수를 저지르면 교체될 게 뻔했습니다. 이제 하나님 사역도 곧 끝나 가는데, 교체되어 이행할 본분이 없다면 구원받을 기회가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한동안 저는 설교문을 선별할 때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확인했습니다. 편차가 생겨 교체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수할까 봐 걱정할수록 판단이 흐려지는 바람에 문제와 편차가 더 늘어났습니다. 한번은 설교문 한 편을 평가하는데, 짜임새가 있고 교제 내용도 실제적인 편인 것 같아 리더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리더는 그 글을 보고 “이 설교문은 종교 관념이 해결되지 않아서 제출하면 안 되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나는 왜 그걸 못 알아봤을까? 내가 원칙도 모르고 본분 이행에 발전도 없다며 리더가 나를 교체해 버리는 건 아닐까?’ 그 후로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게 되었습니다. 설교문을 선별할 때도 실수해서 드러나 교체될까 봐 제 관점을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사건건 리더에게 물어보고 리더가 결정하게 했습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설교문 몇 편을 보내왔는데 그중 네 편이 비교적 실제적으로 잘 쓰여 제출해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속으로 따져 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또 잘못 봐서 가치 없는 설교문을 제출했다가, 원칙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리더가 나를 교체하면 어떡하지? 아무래도 안전하게 일단 리더에게 먼저 보내서 확인받아야겠어. 그러면 설령 잘못되더라도 내가 크게 책임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저는 그 설교문들을 리더에게 보냈습니다. 며칠 후, 리더는 그중 세 편에 대한 의견을 보내며 제출해도 좋다고 회신했습니다. 그런데 장리(張麗) 자매의 설교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리더가 답이 없는 걸 보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냥 제출하지 말아야겠다. 자칫 나중에 원칙적인 문제가 생기면 내가 분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 리더의 답을 받고 나서 제출하는 게 더 안전하겠어.’ 그러고 나서 저는 다른 사역을 하느라 바빴고, 그 설교문은 그렇게 보름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양 자매가 그 설교문을 빨리 제출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지만, 저는 “리더의 답을 받고 나서 제출해요.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하면 안 되죠.”라고 했고, 이양 자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리더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자매님들이 보내줬던 장리 자매의 설교문이 아직까지 안 보이는데, 어디서 막혔는지 모르겠네요?” 그제서야 저는 리더가 장리 자매의 설교문을 정리해서 제출해도 좋다는 답장을 진작에 보냈는데, 저희가 그 편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저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이 착잡한 마음에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내가 장리 자매의 설교문이 비교적 실제적이고 자매만의 문체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보았으니, 원칙에 따라 제출해야 했는데, 왜 계속 리더의 결정만 기다렸을까? 이건 어떤 패괴 성품에 지배된 거지?’ 저는 저의 상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지기를 두려워한다.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타내는 모습은 주로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언제나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본분을 선택한다. … 둘째, 어려움에 부닥치거나 문제에 직면했을 때 먼저 리더에게 보고해서 처리하고 해결하게 하며 자신은 편안하게 있으려고 한다. 리더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책임만 지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식의 본분 이행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책임 전가이자 직무 태만이며, 농간을 부리는 것이고, 입만 살아 있고 실제적인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내가 그 일을 했다가 마지막에 실수라도 하면 어떡해? 책임을 추궁하면 내가 처리되지 않겠어? 내가 첫 번째 책임자 아니겠냐고.’라고 한다. 바로 이 점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럼 너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올바르다면, 경험이 없고 그와 비슷한 일을 처리해 본 적도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알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것조차 믿지 못한다면 이는 불신파 아니겠느냐? 그런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런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든 안 하든 상관이 없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책임을 미룬다. 무슨 일이 닥치든 우선 직접 문제를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리더에게 전화를 걸어 통보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리더에게 통보하는 한편 직접 문제를 처리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리더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며, 전화를 한 후에는 수동적으로 지시를 기다린다. 리더가 지시하는 것만큼만 움직이고, 리더가 말하는 만큼만 행동하는 것이다. 리더가 말하거나 지시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고 미루다가 꼭 누가 재촉하고 감독해야 일을 한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겠느냐? 힘을 쓴다고 해도 충성심이 없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모습이 더 있다. 어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표면적인 일, 단순한 일, 책임지지 않는 일만 한다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고 책임져야 하는 일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또 문제라도 생기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책임을 남에게 미룬다. 교회 리더가 책임을 지지 않는 그를 보고는 인내심 있게 도와주고 책망하고 훈계하며 책임감을 가지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 본분은 제대로 이행하기가 쉽지 않아. 문제라도 생기면 책임을 져야겠지. 여차하면 제명되거나 도태될 수도 있어. 그럼 끝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태도겠느냐?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 일말의 책임감도 없다면 어떻게 그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겠느냐?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며,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면 일을 그르칠 뿐이다. 이런 사람은 믿을 수 없고 일을 맡길 수도 없다. 그는 순전히 공밥 먹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이런 ‘거지’는 내쳐야 하지 않겠느냐? 반드시 내쳐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사람을 원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보이는 세 가지 모습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두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에도 미치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할 자격도 없다. 어떤 사람은 바로 본분을 이행하는 이런 태도 때문에 도태된 것이다. 그들은 아마 지금까지도 이유를 몰라 이렇게 불평할 것이다. “이렇게 열정적인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하러 간 저를 왜 그렇게 냉정하게 내보내시죠?” 그들은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왜 도태됐는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평생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변명만 하며 끊임없이 궤변을 늘어놓고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는 건 본능이고 당연한 거야. 자신을 조금도 보호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기를 조금도 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누구나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놓지 않나?’ 일이 닥치면 늘 스스로를 지키고, 여지를 남기거나 자신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데, 이것이 진리 실행이겠느냐? 이는 진리 실행이 아니라 농간을 부리는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 본분 이행의 첫 번째 원칙은 무엇이냐? 바로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리 원칙, 네가 실행해야 할 원칙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여지를 남기는 것은 이방인들의 실행 원칙이요, 최고의 철학이다. 어떤 일이든 먼저 스스로를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1순위에 두는 것,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이니, 남들의 이익이니 하는 것은 전부 자신과는 무관하게 보는 것, 자신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하고, 그다음으로 퇴로를 생각하는 것, 이런 자는 이방인 아니겠느냐? 이런 자가 바로 이방인이다. 이런 부류는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을 지게 될까 봐 걱정하고, 실수해서 드러나 교체될까 봐 두려워하여, 일이 생기면 리더에게 결정을 맡기고, 나중에 발 뺄 요량으로 개인의 이익을 지킬 생각만 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의 처세 원칙이란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는 제 정곡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제 모습이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이린 자매가 교체되면서 저는 설교문 선별에서 편차와 문제가 발견되어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문제의 근원을 찾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하지 않고 교체되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좋은 앞날과 종착지를 잃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는 몇 편의 설교문이 비교적 실제적이어서 제출해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편차가 생겨 제 문제가 드러나 교체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핑계로 리더에게 결정을 떠넘겼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겨도 저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게 될 테니 말입니다. 리더에게서 답이 없자 저는 질질 끌며 기다렸고, 그로 인해 가치 있는 설교문을 제때 제출하지 못해 사역 일정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당시 저는 예전처럼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하거나 자신을 과신하지 않고, 일이 생겼을 때 리더의 조언을 구할 줄 아는 것이 이성적인 모습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제 안에는 비열한 속내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책임지게 될까 봐 걱정하고, 제 한 몸 보전하려 잔꾀를 부린 것입니다.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만약 제가 교회 사역을 위한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졌었다면, 가치 있는 설교문을 최대한 빨리 선별해 하나님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설령 문제나 편차가 생기더라도 제때 정리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면 편차는 점점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실수해서 교체되어 앞날을 보장받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설교문 제출이 늦어지더라도 제 한 몸 보전하려 했고, 교회 사역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좋은 앞날과 종착지를 얻기는커녕, 하나님의 혐오만 사게 될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어떤 자는 하나님 집에서 공평하게 사람을 대한다는 것을 믿지 않고, 하나님 집에서는 하나님이 권세 잡고 있고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는 누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문제만 생기면 하나님 집에서 즉각 처리할 거라고, 본분을 이행할 자격을 없애고, 그 사람을 쫓아내고, 더 나아가 교회에서 제명할 거로 생각한다. 사실이 정말 그러하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 원칙에 근거해 모든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의롭게 대한다. 하나님은 한 가지 일에 나타난 그 사람의 모습만 보지 않고, 그 사람의 본성 본질, 마음가짐, 태도를 본다. 특히 사람이 실수했을 때 반성할 수 있는지, 뉘우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봄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자신을 증오하고 진실로 회개할 수 있는지를 본다. …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실수했는데 진실로 인식하고 회개하길 원하면, 하나님 집에서 기회를 안 주겠느냐? 하나님의 6천 년 경륜이 끝나 갈 때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이 몹시 많은데, 사람이 양심과 이성이 없고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려 본분 이행의 기회를 얻고도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제일 좋은 시간을 놓칠까 두렵다. 이러면 너는 드러나는 것이다. 늘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하고,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조금도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 집에서 너를 본분 이행에 쓸 수 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는 사탄이 아닌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고 있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말을 잘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책망과 훈계가 닥치면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집에서 네 본분 이행 자격을 없애지 않을 것이다. 늘 내쳐질까 봐 두려워 자기 이치만 따지고 자신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으면 문제가 된다. 사람들에게 네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면 곤란하다. 그때는 교회에서 너를 처리해야만 한다. 네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늘 드러나 내쳐질 것을 두려워한다면, 이 두려움에는 사람의 뜻이 섞여 있고, 사탄의 패괴 성품, 의심과 경계와 오해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가져서는 안 될 태도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는 늘 본분을 이행하다 실수해서 드러나 교체될까 봐, 그래서 좋은 앞날과 종착지를 얻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제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집이 진리가 권세를 잡은 곳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조정하고 교체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한두 번 실수했다고, 혹은 사역에 편차가 약간 있다고 해서 사람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을 보고, 편차나 문제가 생겼을 때 진리를 받아들여 제때 바로잡을 수 있는지를 봅니다. 생각해 보면 이린 자매는 자질과 은사가 있긴 했지만 오로지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면서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 편차나 문제가 생겼을 때 리더가 여러 차례 지적해 주어도 반성하거나 원칙을 구하지 않아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했기 때문에 교체된 것이었습니다. 반면 제 주변의 한 자매는 예전에 설교문을 건성으로 선별하다가 가치 있는 설교문을 배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지적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반성해서 제때 바로잡을 수 있었고, 교회는 그런 그녀에게 계속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실, 이린 자매가 교체된 것은 저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일이었습니다. 저 자신이 설교문을 선별할 때 왜 그렇게 많은 편차와 문제가 생기고 발전이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제가 교만하고 자만하며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경험에 의지하고 규례에 맞춘 채 원칙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치 있는 설교문을 걸러내 사역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리더는 제가 본분을 이행하다 편차와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저를 교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가 패괴 성품을 인식하도록 교제하고 도와주어서 회개하고 변화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린 자매가 교체된 일에서 공과를 배우고 제 문제를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했습니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 설교문을 보고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리더에게 떠넘겼습니다. 실수했다가 교체되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될까 봐, 그래서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을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패괴된 인류처럼 실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일단 실수하면 바로 도태시키는 분으로 상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폄훼이자 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정말 너무나 사악하고 간사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고 제 상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분을 대할 때, 그리고 하나님을 대할 때는 반드시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정직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어떤 태도로 대하겠느냐? 최소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바로 화복을 신경 쓰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지배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다. 늘 하나님을 의심하고 연구하는 자,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는 자가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겠느냐? 간사함과 사악함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그는 늘 연구한다. 무엇을 연구하겠느냐?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연구합니다.) 사람이 늘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를 연구하는 것은 어떤 문제겠느냐? 사람이 왜 그것을 연구하겠느냐? 자신의 실제적인 이익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내게 이 환경을 배치하고 이 일이 닥치게 하셨어. 왜 그러셨을까? 다른 사람한테는 이 일이 닥치지 않았는데 왜 하필 나한테만 이 일이 닥친 거지? 이 일이 닥쳐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라고 궁리한다. 그는 이러한 일들만 연구한다. 개인적인 득실과 화복 같은 일만 연구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연구하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궁리해 낸 것은 어떤 성질이겠느냐? 모두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자신을 위해 혜택을 도모하는 것이다. … 장래와 운명, 개인의 이익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사역이 그의 장래와 운명에 유리한지, 그가 복을 받는 데 유리한지를 고려한다. 그러면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느냐?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될 뿐이다. 계속 본분을 이행할지라도 소극적인 정서로 대충 임하게 되며, 마음속으로 항상 어떻게 해야 실속을 챙기고 손해 보지 않을지를 궁리하게 된다. 이러한 속셈을 갖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이는 간사함이고, 사악한 성품이다. 이는 일반적인 패괴 성품을 뛰어넘어 이미 사악함에 이른 것이다. 마음속에 이런 사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은 곧 하나님과 다투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밝히 알아야 한다. 사람이 늘 하나님을 연구하고 거래 심리로 본분을 이행하면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그는 마음과 정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정직한 마음도 없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관찰하고, 늘 마지막 한 수를 남겨 놓는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지 않아 그는 흐리멍덩한 상태로 무엇이 진리 원칙인지 알지 못한 채 무슨 일을 하든 자기 뜻대로 행동하며, 항상 차질이 생길 것이다. 왜 항상 차질이 생기겠느냐? 생각이 너무 흐려서 문제가 닥치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도 않으며, 고집스레 자기 뜻대로 일하거나 자기 기호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본분 이행에 늘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교회 사역이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지 않는다. 늘 자기 자신을 위해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이익과 체면, 지위를 위해 계산한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 사역에 악영향과 지장을 가져다주니, 이것이 그릇된 길을 가며 본연의 일에 힘쓰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자기 이익과 장래를 고려하고, 교회의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으면, 이것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자신을 위해 혜택을 도모하고,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런 본분 이행은 성질이 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이고, 본분 이행을 이용해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집의 사역에 교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자신의 득실이나 손익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으며,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을 때, 노아는 자기가 잘 지을 수 있을지를 따져보지 않고, 오직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부탁을 최대한 빨리 완수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노아의 순수하고 정직하며 순종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간사하고 사악한 사람은 본분을 대할 때 늘 따져 보고 관찰하며, 매사에 자신의 앞날을 계산해 보거나 발 뺄 궁리만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혐오를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몹시 찔렸습니다. 저 자신을 반성해 보니, 본분을 대하는 데 진심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합격한 설교문을 최대한 빨리 선별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제 한 몸 보전하려 매사에 하나님께 잔꾀를 부리고 하나님을 경계하며, 무슨 일이든 리더가 결정하게 했습니다. 제가 이런 속셈을 품고 본분을 이행했으니 정말 간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매번 저의 앞날과 종착지만 생각했습니다. 마치 실수하지 않고 교체되지만 않으면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살아남아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롭고 거룩하신데, 저는 하나님을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본분을 이행하니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없었고, 생각이 몹시 혼탁해져 설교문의 문제점을 분별해 내지도 못했습니다.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기만 할 것이고, 그때는 정말로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두려움을 느낀 저는 그 즉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묵상 시간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사실 사람에게 원래 있는 것, 즉 사람이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 된다. 섬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은 단계적으로 체험하고 심판받는 과정에서 점점 줄어들므로 본분을 가로막거나 본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섬기는 과정에서 폐단이 생길까 봐 섬김을 멈추거나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가장 나약한 자다. … 사람의 본분 이행에 사람의 생각과 관념이 수없이 섞여 있을지라도 너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고,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사역하다가 불순한 것들이 섞이는 것은 자질의 문제지만,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매사에 진리 원칙대로 해야만 진실로 책임을 다한 것이다. 사람의 방법으로 형식만 따르는 것은 건성으로 임하는 것이다. 진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네가 책임을 다하면, 이는 충성을 다하는 모습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이러한 책임감과 의지, 바람을 갖고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나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고 인정한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실행의 길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닙니다. 모든 일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처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마음으로 마음과 뜻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다 한다면, 또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동역자 형제자매나 리더와 소통하며 함께 원칙을 구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책임을 다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설교문을 선별할 때 교만하게 경험에만 의지한 채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아 편차가 생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원칙에 더 힘써서 설교문 한 편 한 편을 선별할 때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원칙에 따라 평가해야 합니다. 설령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문제나 편차가 생기더라도 올바르게 대하여 원인을 정리하고 즉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깨달은 저는 더 이상 제가 교체될지 걱정하지 않고 본분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와 편차는 차츰 줄어들었고, 업무와 원칙 면에서도 어느 정도 수확이 생겨 마음이 무척 편했습니다.
그 후, 저는 팀장으로 선발되었습니다. 한번은 책임자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저희가 이번에 제출한 설교문의 주제가 불분명하고 진리에 관한 교제도 실제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제가 검토했는지, 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물었습니다. 편지를 보고 저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정말 제가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책임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협력했는데도 여태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본분을 감당할 수 없겠다며 나를 교체해 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본분을 이행할 때 저는 다소 몸을 사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설교문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또 실수해서 제가 드러날까 봐 책임자에게 평가와 검토를 넘겼습니다. 저는 제 상태가 바람직하지 않고, 또다시 자신의 앞날만 생각하고 발 뺄 궁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나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은 실수할 때가 있고 자질과 식견이 부족한 데가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이니 올바르게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네가 해야 할 일은 속히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이 업무에 능하지 않아 생긴 문제인지, 아니면 일 처리에 속셈과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관념과 상상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인지 여러 측면을 전부 성찰해야 한다. 만약 업무에 익숙지 않아 생긴 문제라면 업무 관련 기술을 익혀도 되고, 업무에 익숙한 사람을 찾아가 상담하고 의견을 구해도 된다. 만약 올바르지 못한 속셈이나 관념, 상상이 있는 거라면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한 뒤 뉘우치고 올바르지 않은 속셈과 관념을 저버리며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면 된다. 물론, 네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교회 리더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가 구하고 교제해도 된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본분에서 편차나 문제가 생기면 올바르게 대하고, 반성하고 정리하여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저 자신을 반성해 보니, 설교문을 선별할 때 경험에 의지해 대략적인 틀만 맞으면 세부적으로 묵상하지 않아 일부 문제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자매들과 함께 문제가 있는 설교문을 놓고 토론했고, 소통과 토론을 통해 관련 진리와 원칙을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저는 경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아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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