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관점은 옳은가

2026.1.15

중국에는 예로부터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여성이 자신의 매력을 뽐내기 위해, 자신을 좋아하는 남성을 기쁘게 하기 위해 갖은 수를 내어 자신을 꾸밉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열일곱 살에 성(省)의 중심 도시에 있는 한 전문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그때부터 시골을 떠나 혼자 대도시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다웠습니다. 학창 시절에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었고, 저희는 자주 대화하고 만났습니다. 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저는 만날 때마다 공들여 치장을 했습니다. 남자 친구도 자주 저를 데리고 자기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도 저를 무척 좋아하며 예쁘고 분위기 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칭찬할 때마다 남자 친구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저를 데리고 나가면 어깨가 으쓱하다고 했고, 그래서 어딜 가든 저를 데려가려 했습니다. 그때 저희는 거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나중에 저희는 결혼했고, 처음에 남편은 무척 자상했습니다. 제가 임신했을 때 입덧이 무척 심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출근해서도 늘 저를 걱정하며 틈만 나면 집으로 달려와 저를 돌봐 주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무척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제 삶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 달라졌습니다. 몸매가 망가져 예전처럼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았습니다. 매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서 자신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저는 소녀에서 초라한 아줌마로 변해 버렸고, 남편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저를 데리고 놀러 나가지 않았고, 거의 매일 무뢰한들과 어울리느라 집에서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아이와 함께 나가서 바람 좀 쐬자고 하면 귀찮아했지만, 친구가 부르면 두말없이 바로 나갔습니다. 남편은 개를 좋아했는데, 한번은 제가 실수로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개가 집을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그 일로 제게 화가 나서 이틀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저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느꼈고, 속으로 무척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태도가 왜 그렇게 많이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올케가 집에 왔는데, 저에게 빈정거는 것입니다. “꼴이 그게 뭐예요? 지저분하고 칠칠치 못해서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어요? 아가씨 남편이 왜 집에 안 들어오는지 알아요? 저라도 아가씨 같은 여자랑 마주하고 싶지 않겠네요.” 올케의 말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편이 저를 그렇게 대한 것은 제가 예전처럼 예쁘지 않아서, 싫증이 나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먹자니 맛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부속품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 상황을 어떻게 되돌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후 저는 우선 외모부터 바꾸기로 결심하고 미용과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약을 먹고, 보정 속옷을 사 입었으며, 심지어 침을 맞고 부항을 뜨는 등 온갖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자주 어지럽고 메스꺼웠으며, 심할 때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은 고통스러웠고, 이렇게 제 몸을 학대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참았습니다. 마침내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살이 많이 빠졌고, 남편이 저를 보는 눈빛도 달라졌습니다. 저에게 예전보다 훨씬 잘해주었고, 가끔은 친구들 모임에도 저를 데려갔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이 다시 저를 감쌌고, 저는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변화는 남편에게 일시적인 신선함일 뿐, 시간이 지나자 그는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 여전히 집에서 저와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접대가 없어 나가지 않을 때도 집에서 잠을 자거나 TV를 볼 뿐, 저에게 관심을 주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깊은 고통과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일을 포기하고 모든 친구 관계도 끊었으며, 모든 희망을 그에게 걸었습니다. 그를 위해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아이와 부모를 돌봤을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와 미용으로 그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의 무심함과 무관심뿐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고독과 무력감, 고통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몇 번이나 길거리나 수로 옆을 혼자 걸으며 죽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와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외쳤는지 모릅니다. ‘하늘이시여, 왜 제 인생은 이렇게 고달픈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후,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가 제게 임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늘 인류를 보살펴 주고 계셨지만,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어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른 채 어쩔 수 없이 고통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을요.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보살핌을 떠나 사탄에게 미혹되고 해를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또한 피조물로서 사람은 마땅히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인생이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하고 본분을 이행하며 매일 충실하고 즐겁게 사는 것을 보니 무척 부러웠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부엌과 남편 주위를 맴돌며 일생을 무의미하게 보내다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짓밟혀서 만신창이가 되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평생을 사는 것이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관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제 추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의 그릇된 점을 드러내시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제게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며 과거 저의 추구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황당했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 자체가 여성을 남성과 대등하지 않은 자리에 놓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치장해야 하고, 반드시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하며,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영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불평등하다. 이 자체가 여자의 지위가 낮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의 속뜻은 여자는 외모가 예뻐서 남들이 좋아하든, 자기가 주목받을 정도로 치장을 잘해서 남자들이 좋아하든 이에 대해 기뻐하고 영광스러워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자체가 여성에 대한 비하이다. 이 말은 여성에게 네 삶의 가치, 네 기쁨과 행복의 근원은 누군가 너를 좋아해 주는 데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만약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너는 불행해하고 고뇌해야 하며 왜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지, 여자로서 초라하고 실패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을 비하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해야 한다’는 말에서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남자를 의미하지 않겠느냐? 이 말 자체가 남자를 여자보다 높은 주인 자리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너를 이토록 좋아하고 알아주는 남자 주인이 있으니 너는 영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이고, 만약 남자 주인이 너를 좋아하지 않으면 너라는 여자는 문제가 있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실패한 삶을 산 것으로 여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의미이다. 보다시피 이는 은연중에 남성의 지위를 올려서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하고 여성을 짓누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의 잘못된 점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남성을 여성 위에 두는 것은 명백히 여성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여성이 잠재의식 속에서 남자를 여자의 머리로 여기게 만듭니다. 여자의 일생은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여자는 남자의 사랑과 칭찬에 기뻐해야 하며, 만약 남자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가치조차 없다고 느낍니다. 마치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관점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여성에게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저는 청소년 때부터 이 말에 깊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으면 평생 행복하고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늘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남편을 찾기를 꿈꾸어 왔습니다. 남편과 손 잡고 함께 늙어 가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그때는 저도 젊고 예쁘고, 몸매도 좋았습니다. 그는 저를 무척 좋아했고, 시간만 나면 저를 데리고 놀러 다녔으며, 저를 데리고 자기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도 모두 저를 예쁘다고 칭찬했고, 그로 인해 그는 저를 더욱 아껴 주었습니다. 저는 달콤한 사랑에 빠져 무척 행복했습니다. 사랑이 식지 않게 하려고, 저는 만날 때마다 공들여 치장하며 그에게 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 주려 했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자 저는 소녀에서 초라한 아줌마로 변했습니다. 남편의 태도는 예전 같지 않았으며, 눈빛에 담겨 있던 애틋함은 점차 싫증으로 변해 갔습니다. 남편의 호감을 얻고 제 결혼 생활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 저는 외모를 가꾸고 살을 빼는 등, 온갖 방법을 시도하며 자신을 바꾸려 했습니다. 심지어 몸이 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태도가 좋아지는 것을 보며 저는 내심 크게 만족했습니다. 그러면서 더더욱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을 결혼을 지키는 비결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서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저 자신을 예쁘게 꾸미며 모든 신경을 남편에게 쏟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친 모든 것에 대한 대가는 남편의 무관심뿐이었습니다. 저는 살아갈 희망이 조금도 없다고 느꼈고, 심지어 죽고 싶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제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이 사탄에게서 온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저는 줄곧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신봉하며, 온종일 어떻게 남편을 기쁘게 하고 그의 마음을 붙잡을지 골몰했습니다. 제 일생의 행복을 남편에게 걸었지만, 돌아온 것은 끝없는 고통과 쓰라림뿐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그릇된 주장에 대해 더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할 때 그저 여자의 용모나 치장만 좋아하겠느냐? 아니면 단지 여자의 온화하고 현숙하며 단정하고 부드러운 모습만 보고 좋아하겠느냐?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그저 눈요기하기 위해서이겠느냐? (아닙니다. 육적인 정욕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를 즐겁고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마찬가지로 육적인 정욕에 대해 방종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남자건 여자건 상대에 대한 욕구가 있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바로 육적인 정욕이다. 남자는 단지 여자의 외모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그녀를 얻으려 한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녀의 몸을 가져서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는 것이다. 그러니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 뒤에 깔린 목적은 사실 남자의 정욕을 채우는 것이다. 여자는 외모와 치장으로 남자를 기쁘게 해야 할 뿐 아니라 남자의 정욕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비천한 삶 아니냐? 만약 여자도 이 말이 옳다고 여겨서 자기가 그 말대로 해야 하고 그 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정욕을 품고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놀려 하는데 여자는 수치스러워하거나 증오하기는커녕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하려 하고 그것이 제 평생 최고의 영광인 양 영광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락없이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여성의 생존권, 존엄, 인권을 박탈하면서도 여성에게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하니 잔인하지 않으냐? 너무나도 잔인하다! 여성은 아무런 자주권이나 인권도 없을뿐더러 행복과 즐거움, 기쁨마저 남자에게 환심을 사고 남자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는 전제하에 얻을 수 있다. 자기가 어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든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니 이는 여성을 짓밟고 학대하는 것 아니냐? 현대에서든 고대에서든 여성은 늘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라는 말을 좌우명이나 삶의 목표로 삼았다. 완전히 잘못된 것 아니냐? 이는 사람을 짓밟고 미혹하는 사탄의 농간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의 목적은 절대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단순한 게 아니다. 그 목적은 분명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남존여비의 기조에서 생겨난 이 말에 현실 상황까지 더해져, 여자는 어떤 사회 제도 아래에서도 항상 약자였고 남자의 부속품이나 노리개로 치부되어 왔다. 따라서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것은 분명 모든 여성에게 치욕적인 말이다. 만약 여성이 이 말에 적극 찬성한다면 이는 여성의 비애다. 이 말에 찬성하는 모든 여성을 멸시해야 한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든, 여자가 남자를 기쁘게 하든 그 목적은 모두 육적인 정욕을 채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올바른 인생관이 없으며, 어떻게 살면서 책임을 다하고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것은 대부분 육적인 정욕을 해소하기 위함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꾸며 남자를 기쁘게 해야 하고, 남자는 여자를 희롱하면서도 여자에게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논리이며, 순전히 여성을 짓밟고 해치는 사탄의 속임수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드러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여전히 이 말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어리석고 천박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남편은 처음에 제가 젊고 예쁘고, 몸매도 좋아서 함께 나가면 체면이 서고, 본인의 허영심이 충분히 채워지니까 제게 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제가 아이를 낳아서 예전처럼 날씬하고 예쁘지 않으니까, 그는 본색을 드러냈고, 과거의 사랑과 애틋함은 점차 싫증과 냉대로 바뀌었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저는 머리를 쥐어 짜며 그를 기쁘게 하려 했고, 온갖 방법을 시도하며 외모를 가꾸고 살을 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편에게 일시적인 신선함을 안겨주었을 뿐, 저희의 결혼 생활을 조금도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는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남남처럼 지냈고, 그런 느낌은 저를 늘 고통스럽고 불안하게 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끊고 싶은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이 저를 좋아했던 것은 진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저의 외모를 좋아했던 것이고, 솔직히 말해 저의 젊음과 미모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저의 용모가 시들고 몸매가 망가지자, 그의 온갖 싫증과 냉대가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저에게 관심을 가져 준 적이 없었고, 어떻게 남편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 결혼이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 인생관과 가치관을 남자를 기쁘게 하는 데에만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환심을 사야만 그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고, 그래야만 제 인생이 행복하고 즐거워지며, 여자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를 혹사하여 끔찍이 고통받았으니, 이 모든 것은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 때문이었습니다.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사상 관점으로 살면, 결국 사탄의 희생양 될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가련하고 비참한 일입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제 확실히 알았느냐?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이 말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고, 올바른 생각이나 관점도 아니다. 생각해 보아라. 성경이나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 가운데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해야 한다는 말이 한마디라도 있더냐? 남성과 여성의 지위를 계급으로 나누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한 말이 한마디라도 있더냐? 없다. 『성경・창세기』에 여자는 남자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이 지은 인간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계급이나 귀천의 구분이 없다. 귀천이나 지위, 계급으로 구분하는 것은 사탄이나 하는 짓으로 사탄이 여성을 억압하고 박해한다는 증거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이래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이 보기에 평등하다. 모두 똑같은 피조물로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인 것이다. 하나님은 남존여비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없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되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남자가 여자 위에 군림해야 한다고, 어떤 사역이든 남자가 우선이고 여자는 나중이라고, 남자는 주관이 있는 기둥 같은 존재이니 여자는 되도록 남자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한 적도 없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적이 전혀 없다. 단지 사탄의 패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남존여비 사상이 생겨나 사회와 인류 전체에 이런 조류를 형성해 줄곧 여성을 남성의 권력 아래 억압한 것뿐이다. 여성이 사탄의 각종 사악한 조류의 영향을 받거나 미혹되고 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해 자신이 남성보다 못하다거나 남성보다 지위가 낮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도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다. 이는 정말 슬픈 일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 많은 구체적인 일에서 여전히 사탄의 각종 사상과 관점에 미혹되고 조종당하면 이렇게 사소한 일로도 문제가 드러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 여성은 피조된 인간 중 하나로서 남성과 성별의 차이, 생리적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측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지위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여성에게 남성과 다른 요구를 하지 않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의 수, 구원받을 희망, 본분 이행의 기회,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나 사역 등 측면에서 여성과 남성은 기본적으로 동등하며, 여성은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실제 상황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피조물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고, 근본적으로 ‘남존여비’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결혼과 가정을 마련해 주시어 사람이 화목하게 어울려 살며 서로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사람에게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 ‘남존여비’와 같은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주입하여 여성을 억압하고 박해하려 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줄곧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치장한다’는 그릇된 사상 관점으로 살면서 남편을 제가 기댈 곳이자 제 하늘처럼 여기며, 갖은 수를 내어 남편을 기쁘게 하려 했고, 심지어 그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고쳤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 상상과 달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남편을 기쁘게 하려 해도 끝내 그의 진심을 얻을 수 없었고, 저희는 남남처럼 지냈습니다. 저는 그가 저에게 무관심하고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원망했고, 그는 제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평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사랑도, 배려도 없었고, 서로를 싫어했으며,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점차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이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정 생활에서 아내는 아내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만 하면 되지, 남편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신경쓸 필요도 없고, 온갖 방법으로 그를 기쁘게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는 것을요. 그것은 자신을 짓밟는 것입니다. 부부는 본래 평등하며, 각자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 주신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 책임을 다하고, 서로를 부축하며 인생의 각 단계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피조물로서 마땅히 하나님께서 주신 부탁과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이고, 가장 올바른 추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 그저 육적으로 놀고먹기 위함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너희가 말해 보거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힘이 닿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다. 최소한 양심에 참소가 없고, 본인의 양심에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까지는 되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태어난 가정, 교육 수준, 자질을 떠나 사람의 생존에서 알아야 할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걸어야 할 길, 사람이 살아야 할 삶,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참된 가치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사는 삶을 헛되이 살아서는 안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에는 복음 전파 사역에 온 힘을 기울이며 평생을 쏟아붓고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사람을 얻은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의 삶이 헛되지 않고 가치 있다고 위안을 느낀다. 그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하거나 생을 마감할 때 그가 한 이 모든 일과 걸었던 길을 돌이켜 보면서 마음에 위로받고 참소가 없으며 아쉬움도 없다. 그리고 교회 리더를 맡거나 한 측면의 사역을 담당할 때 여력을 남기지 않고 자기 역량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온 힘을 다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해야 할 사역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며 대가를 치르는데 많은 사람이 연약하고 부정적일 때 그의 양육과 인도, 도움과 붙듦 덕분에 강건해지고 일어서며,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다. 이 외에도 그가 리더를 맡는 동안 여러 중요한 사역을 완수하여 많은 악인을 제명하고 적지 않은 하나님의 선민을 보호하며 일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그가 리더를 맡은 기간에 이룬 것이다. 자신이 걸었던 길과 그동안 했던 사역, 치렀던 대가를 돌이켜 볼 때 마음에 아쉬움도, 참소도 없고,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으며, 가치 있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낀다. 이러면 얼마나 좋으냐! 이것이 성과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위안을 느끼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를 추구하여 얻게 되는 효과이자 수확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그저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얘기해 보자. 자신의 위치를 찾은 후 자기 본연의 위치에 제대로 서서 그 본연의 위치를 지키면서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대가를 치르며 온 힘을 다해 자기가 해야 할 일, 완수해야 할 일을 잘해 낸다면,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보고할 때 스스로 마음에 참소나 아쉬움 없이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위안과 수확이 있으며 값진 삶이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많은 여성이 남편을 위해 살고, 평생 남자를, 남편을 기쁘게 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들이 결혼과 가정을 잘 유지했을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녀들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헛되이 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예전에는 결혼의 행복을 추구하며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수많은 무의미한 일을 했고, 수많은 쓸데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만신창이가 된 것 외에 제가 얻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과거의 그 경험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뼈에 사무칩니다. 그것은 제 인생이 바닥을 치는 시기였고,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으로 저는 패괴된 인류는 모두 사탄 성품으로 가득하고, 정욕으로 가득 차서 무엇이 사랑인지 전혀 알지 못하며, 자신의 결혼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는 더욱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이용하고 속이는 것뿐, 진정한 사랑은 없습니다. 오직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심 없고, 거래나 요구가 없는 가장 진실된 사랑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단지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 비천합니다!

이제 저는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는지, 어떤 그릇된 사상 관점이 존재하는지 성찰하는 데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다고 느낍니다. 잘못된 사상 관점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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