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랑은 이제 그만

2021.1.27

스페인 모원

저는 교회에서 복음 전파 본분을 이행했고, 나중에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나 오류를 쉽게 발견하고, 자주 교제하고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다들 저를 좋게 보았고, 저 역시 크게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서서히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며 제가 주변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에 형제자매들에게 조언도 해 주고 문제도 해결해 주었더니 다들 나를 좋게 생각했어. 그렇다면 앞으로도 어려운 일을 많이 해결해 주면 내가 사역을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럼 나를 더 대단하게 볼 거야.’ 한번은 예배 모임에서 동역자인 리 형제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종교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20년 이상 사역을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관념이 강해서 아무리 교제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고, 알아보려는 마음이 있는데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리 형제가 교제를 제대로 못 한 거겠지. 내가 이런 경우를 겪어 봤으니 이 기회에 내가 제대로 얘기해 주겠어. 다들 잘 보고 배우라고.’ 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건 그렇게 어려운 문제 같지 않네요. 핵심을 짚어서 진리를 분명하게 교제하는 게 중요해요. 상대가 들으려는 마음이 있고 질문을 해결해 주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있나요? 전에 장 형제 같은 경우도 관념이 꽤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때 저는 가장 문제가 되는 관념을 집중적으로 교제하면서 반박했어요. 하나가 해결되면 다음 교제로 넘어갔고요. 결국엔 그래서 받아들였잖아요.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려면 진리를 분명하게 교제해야만 해요.” 저는 계속해서 제가 만났던 복음 상대들이 어떤 질문을 했고, 그 질문들에 저는 어떻게 교제했는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관한 전체적인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것도 혹시라도 중요한 부분을 놓쳐서 형제자매들이 저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상세하게 교제했습니다. 다들 저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했습니다. “확실히 형제님 얘기가 맞네요. 전 왜 그런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어요.” 한 자매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 후에도 사역에 관해 의논할 때면 늘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문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자질도 두뇌도 남다른 사람으로 비춰질까?’ 제 차례만 오면 항상 ‘저는’이라는 말로 입을 떼며 작정한 듯 말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이렇게 생각해요.” “저는 그때 이렇게 해결했어요.” 나만의 이론적인 근거를 일일이 열거하며 자세하게 분석해 주었습니다. 갈수록 사역을 같이 하는 형제자매들은 진리 원칙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때는 사역을 의논하면서 심지어 대놓고 저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고 나중에 본인들이 내용을 보충했습니다. 가끔은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를 숭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꼭 내 말대로 따르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그저 내 관점을 말했을 뿐이야. 더구나 먼저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말하는 것도 책임감 있는 모습이 아닌가?’ 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 뒤로 저희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낙담하고 주눅이 들었고, 그때는 저도 사실 같은 상태였습니다. 원래는 제 내적 상태를 솔직히 말하고 싶었지만, 책임자인 제가 주눅이 든다고 하면 너무 나약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내 분량이 이렇게 작은 걸 알면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동안 쌓아 온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긍정적인 진입을 많이 얘기하고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면 사람들의 적극성을 유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진입했고,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압박을 견디고 이겨 나갔는지 적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제 얘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하나같이 저를 믿음의 분량이 크고, 체험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감탄했습니다. 가끔 형제자매들과 사역 이야기를 할 때면 행여나 보이지 않는 저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너무 바빠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잘 쉬지도 못한다며 생색을 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을 반성하는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저의 교제가 심도 있고 비중 있게 보일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심오한 이론을 내뱉은 다음 형제자매들이 던지는 경탄의 눈길을 한껏 즐기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일부 형제자매들은 본분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저를 먼저 찾았습니다. 혼자 깊이 생각해 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저의 의견을 먼저 구했습니다. 또 자신의 내적 상태와 속마음을 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이처럼 형제자매들의 신임을 얻으니 내심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겉으로는 항상 바빠 보였지만 정작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성령의 깨우침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역을 의논해도 가치 있는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사역 중에 확연히 드러나는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저의 영적 상태가 매우 엉망이 되어 버렸음을 느꼈고, 더는 건방을 떨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제가 대단한 것 같았지만, 한순간 바보가 된 느낌이었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됐습니다. 영혼이 흑암에 빠져 매우 괴로웠습니다.

하루는 협력하던 두 형제와 영적 상태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중에 천 형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과 협력하면서 지켜보니, 계속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랑이 좀 심하더라고요. 예배 때 자신의 패괴 성품이나 부족한 점을 얘기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자신의 좋은 면만 얘기해요. 그래서 저도 형제님을 아주 완벽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또 제가 사역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형제님은 진리 원칙을 교제하는 게 아니라 계속 옛날에 자기는 어떻게 했고, 어떻게 해결했다는 얘기만 해요. 마치 우리보다 더 뛰어나고, 사역도 더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요.” 형제의 말을 들었을 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자기를 높이고 자기 자랑이 심하더라’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비록 대놓고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불쾌했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것은 적그리스도뿐인데, 그렇다면 내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간다는 말이잖아? 내가 언제 나를 높이 보라고 했나?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한가?’ 인정할 수 없어서 옆에 있던 다른 형제에게도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예상과 달리 그 형제도 비슷한 대답을 했습니다. “형제님은 언제나 자신의 패괴 성품과 부족함은 입에 올리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형제님을 대단하게 생각했었죠.” 그 말에 더 울컥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몇 마디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 다 저를 그렇게 책망하고 폭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두 형제가 말한 대로라면 그것은 몹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의문을 품고 황급히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을 드러내는 방면에 관한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며 뽐내 남들이 자신을 추앙하게 한다. 이는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이자, 패괴된 인류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사람은 보통 어떻게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겠느냐?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하겠느냐? 자신이 많은 고통을 겪고 많은 사역을 했으며 많은 헌신을 했다고 증거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즉, 자신의 밑천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더 높게, 더 공고하게, 더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추앙하고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숭배하고 앙망하고 추종하게 한다. 마지막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이 이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 이성적인 일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일로, 염치없는 행동이다. 즉, 염치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증거하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어떤 은사와 재능, 경험, 특별한 기능, 처세술, 남을 우롱하는 수단이 있는지 자랑하기까지 한다.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수단은 자신을 뽐내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또한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들이 자신의 약점과 결점, 문제점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자신의 빛나는 일면만 보게 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이 되어도 남들에게 알리거나 마음을 열고 교제하지 못하며, 일을 잘못하면 온 힘을 다해 포장하고 숨기려 한다. 자신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 집에 끼친 손실은 입에도 올리는 법이 없지만, 아주 작은 기여나 성과만 있어도 즉시 끄집어내 자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재능 있고 자질이 좋은지, 자신이 얼마나 남들과 다르고 특별한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해 한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것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방식 아니더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이러한 행위가 정상 인성의 이성적인 범주 안에서 이뤄지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럼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할 때, 일반적으로 어떤 성품을 드러내겠느냐? 교만함은 가장 주된 모습 중 하나다. 그다음으로는 간사함이 있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며, 말할 때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속셈과 간계를 갖고 말을 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자신이 스스로를 뽐내고 있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의 결과는, 그는 남들보다 높고 아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며 그의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수단으로 이뤄진 것 아니겠느냐? 그 수단 안에는 어떤 성품이 있겠느냐? 사악한 성분이 있지 않겠느냐? 그것은 사악한 성품이다. 그가 이런 수단을 쓴다는 것은 간사한 성품에 지배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 어째서 사악하다고 하겠느냐? 그것이 사악함과 어떤 관계가 있겠느냐? 말해 보아라. 그가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목적을 드러내겠느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한 가지 욕망이 있으며, 그는 말하고 일할 때 그 욕망을 따른다. 그래서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말하고 일하는 동기와 목적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성동격서의 수단, 또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이 비밀스러움에 괴이한 성질이 들어 있지 않겠느냐? 그 괴이함을 사악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것은 사악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간사함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동안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드러낸 여러 가지 행동을 돌아보았습니다. 동역자인 형제가 사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명목상 도와준다고 교제를 하면서도 사실은 제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떠벌리면서 자기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제가 동역자들보다 사역을 잘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역에 관해 의논할 때,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보여서 존경을 받으려고 항상 ‘저는’이란 말을 앞에 붙이며 자신을 높이고 자랑했습니다. 의기소침해지거나 패괴 성품이 드러날 때도 그것을 감추기 바쁘고, 진정한 어려움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부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고, 일부러 긍정적인 진입을 이야기하면서 저를 분량이 큰 사람으로 포장해서 남들이 우러러보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지를 항상 강조하면서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예배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참된 인식이 없으면서도 공리공론을 늘어놓았고, 자신을 잘 인식한다는 거짓된 인상을 남겨 사람들 마음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추앙받는 느낌이 좋아서 그럴듯한 말과 행동으로 자기를 자랑하고,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저의 지위와 이미지를 공고히 해서 형제자매들이 저를 숭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이 아닙니까? 저는 그제야 제 자신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정상 인성을 살아 내려면 어떻게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하겠느냐? 툭 터놓고 남들에게 마음속 진심을 보여 줘야 하며, 순수하게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패괴를 드러낼 경우,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고 마음속 깊이 스스로를 증오하고 혐오해야 하며,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스스로를 위해 뭔가 변명하거나 설명해서는 안 된다. … 본질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을 해부하며 드러내는 것, 이것이 첫 번째이다. 정직한 마음, 성실한 태도를 갖고 자신이 깨달은 성품의 문제를 말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자신의 성품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모두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제가 또 이런 패괴 성품을 드러낸다면 모두 저를 책망하고 일깨워 주십시오. 좀 심하게 말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 당시 견디지 못해도 신경 쓰지 말고 모두 함께 저를 감독해 주십시오. 만약 제게 이 측면의 패괴 성품이 심한 면이 있다면 모두 저를 폭로하고 책망해 주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저를 감독하고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잘못된 길을 걷지 않게 말입니다.” 이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태도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제가 지금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인식했든 상관없이, 잘못된 길을 계속 가서는 안 됩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 자신을 드러내고 해부하면서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저의 속셈과 목적을 알고, 제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분별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배 때, 저는 형제자매들 앞에서 저의 본모습을 해부하고 내보이며 지적과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형제자매들도 계속 문자를 보내와 제게 존재하는 문제들을 짚어 주었습니다. “형제님이 계속 자기 자랑만 해서 저도 모르게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을 찾기보다 형제님을 의지했어요. 형제님은 통찰력이 있으니까 형제님한테 물어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았거든요.” “저는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건 별로 없고, 오히려 형제님을 더 우러러보게 된 것 같아요. 형제님은 사역 능력도 좋고, 본분에 책임감 있고 충성심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대단하게 생각했어요.” 형제자매들의 진심을 들으니 몹시 괴로웠습니다. 본분을 이행한 몇 달 동안 제가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과 본분 이행에 그렇게 큰 손해를 끼친 줄 몰랐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니 양심에 찔려 몹시 괴로웠고, 하나님께서 분명 저를 증오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무척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형제자매들이 붙잡아주고 도와준 덕분에 하나님이 저를 드러내어 도태시키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려 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제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진정으로 반성하며 진실로 회개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매우 숭배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임을 가지기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형상에 관심 갖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그의 본성을 파헤쳐 보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그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네 내면에 교만함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대적할 수밖에 없다. 너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뽐내게 한다. 마지막에는 네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를 증거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이 사람을 지배하여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했는지 보아라!(<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서야 사람들 마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은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은 것이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걷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아 본분에서 조금 성과가 보이자 자만함에 빠졌고, 다양한 수법으로 자신을 높이고 자랑했습니다. 모든 언행에는 저를 더 돋보이기 위한 목적이 있었고,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제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보통 사람과는 다른 기질이 있는 듯 보일 테니까요. 모두가 저를 우러러보고 추앙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 아니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항상 설교하거나 사역하는 것을 이용해 자기가 가진 은사와 지식을 과시하고, 자신을 드러내어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도록 했습니다. 또 교회들에게 서신을 보내 자기는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많은 고난을 받았다고 생색을 내어 사람들을 농락하고 그들의 호감을 샀습니다. 바울이 열심히 수고하며 사역한 것은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거나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야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사역을 많이 하고 고난을 많이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더라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만한 성품은 갈수록 더 커졌습니다. 결국, 몰염치하게도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심각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징벌을 받았습니다. 저의 성품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교만합니다. 지위를 좋아하여 늘 자신을 높이고 드러냈습니다. 결국, 저를 우러러보고 추앙한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사라지고 어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진리 원칙을 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저처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형제자매를 해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교만한 성품에 따라 살다가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징계, 그리고 형제자매들의 책망과 질타가 없었다면 저는 반성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드러내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발현이자 저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거에 제가 본분에서 효과를 내고 오류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깨우침 덕분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니 저는 정말 바보처럼 아무것도 꿰뚫어 볼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진리 실제도 없으면서 그렇게 교만하고 기고만장해서 파렴치하게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다니, 참으로 이성이 없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한다면서 진리를 교제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어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악행이었습니다. 반성을 통해 깨닫고 나니 자신이 정말 증오스럽고 역겨웠습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를 보니 참으로 교만하고 이성이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진리를 실행하고 다시는 잘못된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을 높이거나 증거하지 않는 것이겠느냐?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만약 네가 자신을 드러낸다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며 남들에게 숭배받으려는 목적을 이룰 것이고,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성질이 다른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이지 않으냐? 예를 들어 마음을 열고 자신의 마음가짐과 생각을 드러낼 때, 어떻게 어휘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것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겠느냐?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의 숭배를 받는 것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겠느냐? 시련이 임했을 때 어떻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했는지, 어떻게 굳게 서서 증거했는지 등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다. 이런 실행은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폭로하는 것은 마음가짐과도 관련된 문제이다. 만약 네 마음가짐이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네 패괴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진지하고 참되게, 실제 상황과 관련된 것을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 마음가짐이 모두의 숭배를 받고 다른 이를 속여 남들이 네 진실한 면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 네 속셈, 패괴, 또는 연약함, 소극적인 모습이 다른 사람 앞에서 폭로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면, 네 말은 사람을 기만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차이가 있지 않으냐?(<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말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평소 교제할 때도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평소에 자신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속셈과 불순물을 폭로하고 해부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어떻게 겪었는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참된 인식을 얻었는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어떤 인식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제 체험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를 깨달은 후, 다음 예배 시간에는 의식적으로 제가 지위를 위해 어떤 수단으로 자신을 간증했는지, 하나님은 어떤 상황을 마련해 저를 꾸짖으시고, 저의 추한 모습을 보게 하셨는지에 대해 교제했습니다. 교제를 듣고 한 형제가 말했습니다. “형제님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진리를 행하고 육을 버린다면 변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형제의 말을 들으면서, 제가 이 정도의 인식과 변화를 얻은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이 이룬 효과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 후로는 본분을 이행할 때 의식적으로 이 방면으로 진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 보이는 오류나 빈틈을 발견하면, 예전처럼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 자세를 바로잡고, 객관적으로 저의 관점을 말했습니다. 또 최대한 진리 원칙을 찾아 형제자매와 교제하면서 함께 진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배 때에는 제가 일할 때의 속셈과 불순물, 패괴 성품을 해부하여 형제자매들에게 저의 실체를 알렸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형제자매들이 더는 저를 높게 보지 않고 올바르게 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의 언행이 진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면 신속하게 지적하고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이렇게 지내니 마음이 훨씬 홀가분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통해 저를 정결케 하고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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