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을 추구한 결과

2022.2.8

스페인 링솽

전 영상 특수 효과 본분을 맡고 있어요. 작업할 때, 조금 어려운 프로젝트가 오면 거의 모든 화면 효과를 계속 손보고 수정해야 하는데, 실패할 때도 많았어요. 근데 다른 형제자매들이 맡은 건 쉬워 보이고 완성도도 높은 거예요. 반대로 어려운 프로젝트는 기술도 좋아야 하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거기다 공부도 해야 하고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쉬운 걸 맡으면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건 그냥 단순한 기술만 있으면 가능하고 작업 기간도 짧아요. 역시 쉬운 걸 맡는 게 편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그 뒤로는 프로젝트 중에서 어느 게 쉽고 어려운 건지 보고 나서 골라서 했어요. 한번은 제가 먼저 좀 쉬운 걸 고르고 어려운 걸 다른 형제자매들한테 줬죠. 그때 다른 사람들은 흔쾌히 받아들이니까 그게 좀 걸리는 거에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근데 생각하니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데 그건 머리가 아플 것 같아서 그냥 쉬운 걸 하기로 한 거죠. 또 한번은 제가 만든 특수 효과의 질을 더 올릴 수도 있었는데, 다시 손대기가 싫기도 하고 그리고 형제자매들도 보고 말이 없어서 수정하지 않고 그냥 넘겼어요. 또 가끔은 어려운 게 있으면 간단하게 조금 생각해 보거나 주변에 물어봤는데, 그게 해결도 빠르고 저도 안 힘들고 일도 더 쉽게 끝나더라구요. 마음 한쪽에선 가책이 들긴 했어요. 사실 어떤 건 쉬운 문제라 조금만 노력하면 혼자 할 수 있는 건데, 괜히 다른 사람의 본분 시간을 뺏는 것 같았거든요. 근데도 반성해 보지 않았어요. 그러니 꼼수를 부리는 게 이젠 제 일상이 된 거에요.

그러다 영상 제작 본분을 맡게 됐어요. 근데 제작 말고도 제가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기술 교육도 해야 했어요. 그러니 그전보다 신경 쓸 게 더 많아진 거예요. 저도 업무에 관한 공부를 해야 하고 형제자매들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준비해야 했죠. 그러니 너무 힘들어 보이더라구요. 차라리 특수 효과 본분이 나아 보였어요. 이렇게 신경 쓸 것도 없고 자기 파트만 잘하면 되거든요. 근데 이 본분은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은 거에요. 이런 것들이 정말 머리 아팠어요. 그러다 어떻게 하면 시간도 줄이고 저도 좀 편할까 고민하다가 특수 효과 제작 강의를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그러면 형제자매들이 공부할 내용도 있고 저도 따로 자료를 안 찾아도 되잖아요. 생각 끝에 역시 그 방법이 최상이더라구요. 한동안 지나니 다들 그 강의를 봐도 문제가 해결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 좀 미안한 맘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자료를 찾아서 간단하게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어쨌든 공부를 하기만 하면 된다 싶었어요. 그러다 얼마 안 지나 팀장이 그러는 거에요. 몇몇 형제자매들은 기술이 부족해서 영상의 효과가 떨어지고 재작업하니 진도가 늦어진다고요. 그때까지도 전 자신을 반성해 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 본분은 많은 걸 신경 써야 하고 잘못하면 책임도 져야 하니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어느 날 리더가 저한테 본분에 건성으로 임한다고 책망하면서 그런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본분을 교체할 거라고 했죠. 그때 리더가 책망해도 건성으로 했다고 인정만 했지 뉘우치진 않았어요. 앞으로도 본분에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만 생각하면 이 본분을 하고 싶지 않고 쉬운 걸 하고 싶은 거에요. 다음 날 리더한테 가서 전 이 본분을 못하니까, 바꿔 줄 수 없냐고 했어요. 그랬더니 또 책망했죠. 정말 할 수 없는 거냐고, 노력을 해 봤냐고, 쉬운 것만 하려고 하면서 건성으로 하고 꼼수만 부리는데, 인성이 안 좋다고 저 하는 걸 보니 이 본분에 안 맞는다고 했죠.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리더라구요. 작업실에 갔는데, 다들 본분으로 바빠 보였어요. 근데 전 본분을 잃게 돼 마음이 괴로웠어요. 본분을 잃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때 속으로 따졌어요. 이 본분을 못하겠으니 다른 걸로 바꿔 주면 되는데, 아니 왜 본분을 정지시키기까지 하냐고요. 근데 또 모든 일이 하나님께 있으니 교체된 것도 하나님의 공의 성품이 임한 거라 순종하는 자세로 반성해야겠더라구요. 그리고 며칠간 리더가 본분을 그만두라고 했던 게 계속 떠오르는데 그때 했던 말을 생각하면 너무 괴로웠어요. 특히 인성이 안 좋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반성해야 할지... 괴로워서 자신을 알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 이런 말씀을 보게 됐어요. 『그렇게 경솔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하게 모든 일을 대하는 것은 패괴 성품에 속한 것 아니겠느냐?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건달 기질이다. 모든 일에서 그들은 “대충 맞는 것 같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아마도’, ‘십중팔구’ 식의 태도이다. 형식적으로 일을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고, 할 수 있는 한 일을 대충 해 나가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거나 세밀함을 추구할 필요도 없으며 원칙을 구하는 것은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괴 성품에 속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발현이겠느냐? 이를 교만함이라 해도 옳고, 방종함이라 해도 완전 적합하지만, 가장 알맞게 표현하는 어휘는 ‘건달’이다. 건달 기질은 대다수 사람의 인성에 존재한다. 모든 일에서 대충 건성으로 하려 하고, 기만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우며, 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여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으면 얼렁뚱땅 넘어가면 돼.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숙달하는 경지까지 배우는 일이 없으며 배우는 일에 전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대충 배워 전문가 행세를 하고 그걸로 때우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람, 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냐? 이것이 옳은 태도겠느냐? 그러한 사람들이 사람, 일, 사물에 대해 취하는 이런 태도는 한마디로 ‘때우는 것’이며, 그러한 건달 기질은 패괴된 인류에게 다 존재한다. 인성에 건달 기질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어물쩍 때우면 된다는 관점을 지니는데, 그러면 일을 잘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 그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의 귀천을 어떻게 구분하겠느냐? 사람, 사건, 사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방식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인격과 존엄이 있는 사람들은 행동에 있어 세심하고 진지하며 마음을 쓰며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인격과 존엄이 없는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무성의하며 항상 속임수를 쓰려 하고 그냥 대충 넘어가려 한다. 그들은 어떤 기술도 숙달할 정도로 배우지 못하며, 아무리 오래 배워도 기술이나 업무 면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에게 진지하게 따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이지만 진지하게 따지면 곧 그들은 허둥지둥하며 진땀을 흘리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들은 인격이 비천한 사람들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만 순종하게 한다(2)> 중에서) 말씀에 마음이 찔렸어요. 특히 이 말씀이요.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운다, ‘인격과 존엄이 없다,인격이 비천하다’. 본분에 대한 제 태도와 인성을 폭로한 거죠. 돌아보면 제가 그런 거에요. 뭐든 다 대충 하면서 웬만하면 된다는 식으로 넘어갔어요. 전 항상 어떻게 고생을 덜 할까 제 육만 생각했지 본분을 잘 이행할 생각은 안 했어요. 제 육의 안락을 위해 고생을 안 하려고 했죠. 특수 효과를 만들 땐 쉬운 프로젝트만 골라서 했고 또 만드는 과정에선 설령 문제가 보여서 보완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거면 그냥 넘어가 버렸어요. 영상 제작을 할 땐 저도 기술을 배워야 하고 다른 사람까지 가르쳐야 하니 이 본분을 잘하려면 압력이 크고 고생을 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제 몸 편하겠다고 꼼수를 부리면서 그냥 강의 영상만 보여줬다가 결국 업무 능력이 올라가지 못해 본분 효율이 떨어져 진도만 늦어졌죠. 본분하면서 기만과 수단만 부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과 제 본분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인성이 없더라구요.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었죠. 이걸 깨닫고 후회와 자책이 됐어요.

그 후에 또 말씀을 보게 됐어요.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볼 때는 큰 문제가 없이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 눈에 띄는 악행도 저지르지 않았고, 방해하거나 교란하지도 않았으며,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지도 않았다. 본분 이행에도 이렇다 할 큰 잘못이 없고, 원칙적인 문제도 없지만, 몇 년도 안 돼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파로 자신도 모르게 드러난다. 이는 어떻게 된 것이겠느냐? 사람은 문제를 간파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므로 문제를 간파할 수 있다. 그는 줄곧 대충하며 회개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되니 드러날 때가 된 것이다. 줄곧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그는 늘 잘못된 태도로 임한 것인데, 대충 건성으로 넘어가는 태도로 계속 본분을 이행했다는 것이다. 또 공을 들이는 법이 없고, 마음을 다하는 일은 더더욱 없으며 힘을 좀 쓸 때도 그저 과정만 밟았을 뿐, 온 힘을 다하는 법이 없어 과오가 끊임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그는 계속 회개하지 않았고 대충하는 태도도 바꾼 적이 없다. 즉, 그는 손으로 행하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회개하는 태도를 본 적도,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그는 늘 이런 태도와 방식으로 자신의 본분을 대하고 하나님이 맡긴 일을 대한다. 이렇게 완고하고 강퍅한 성품을 시종일관 고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죄스럽다거나 이렇게 대충하는 것이 과오나 악행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마음속으로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끼지 않으며, 가책받거나 참소받지도 않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구제 불능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하든, 그가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들었든,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든, 그의 마음은 감동받지 못하고 태도의 변화나 전환도 없다. 하나님은 “이 사람한테는 희망이 없다. 아무리 말해도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변화시킬 수가 없다. 이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자격도, 내 집에서 봉사할 자격도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가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을 행할 때 그에게 아무리 큰 관용과 인내를 보여 줘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되거나 본분을 잘하지도 않고 진정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지도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은 구제 불능이다. 하나님이 어떤 이를 구제 불능이라고 정할 때, 그 사람을 단단히 잡고 놓지 않겠느냐?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은 손을 놓을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어떻게 대하는 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사명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이자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 보고 깨달았어요. 제가 겉으론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배반했어요. 고생은 안 하려 하고 늘 자기 육만 생각했고 꼼수 부리면서 건성으로 대했죠. 어떤 일은 분명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안 했는데, 제가 굉장히 잘한 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했으니까 충분하다 생각했죠. 전 건성으로 하는 태도를 별거 아니라 여겼고 반성도 하지 않았던 거에요. 그리고 리더가 경고를 준 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데, 전 뉘우치는 마음이 없고 제 육의 이익만 생각한 거에요. 본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 본분을 그만두고 싶었죠. 왜 제 마음은 그렇게도 강퍅했는지... 하나님께서 계속 회개할 기회를 주신 건 긍휼을 베푸신 거잖아요. 근데 전 그저 육만 생각하면서 진리를 구해 반성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항했어요. 너무 패역한 거죠. 본분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 당연히 완수해야 해요. 근데 전 자기 본분도 제대로 못 하고 건성으로 하나님을 속이고 본분을 거부했으니 하나님을 배반한 거지 뭐예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니 저의 소행을 증오하실 수밖에 없죠. 본분 교체는 정말 하나님의 공의였어요. 이걸 깨달으니 속으로 두렵고 하나님께도 너무 면목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다신 대충 하지 않고 회개하기로 다짐했어요.

그 후에 복음 전파에 투입하게 됐어요. 전 원칙도 잘 모르는 데다 친화력도 약하다 보니 그 본분도 힘들게 느껴졌고 또 노력하기 싫더라구요. 근데 전에 본분을 경솔하게 대한 걸 생각하니 이 본분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 주신 큰 긍휼이더라구요. 그래서 어렵다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니 해보자는 의지가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반성해 봤어요. 전 왜 본분에서 어려움이 오면 먼저 피하려는지, 어떤 본성의 지배로 그런 건지요. 나중에 말씀 영상을 보고 알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말씀 구절구절마다 제 마음을 찌르고 하나님이 절 책망하시는 거 같았어요. 하나님께 너무 죄송했죠.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해 우릴 양육하셔서 진리를 얻게 하시고 패괴 성품을 벗고 구원받게 해 주시는데, 이건 가장 큰 축복이잖아요. 현명한 사람은 이런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죠. 또 그 과정에서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기고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거에요. 근데 어리석은 자는 눈이 멀어서 자기의 육만 생각하고 진리 추구에 신경 쓰지 않죠. 본분에 전혀 마음을 들이지 않으니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리를 전혀 모르고 생명 성품에 변화가 없어 결국 도태되는 거에요. 돌아보니까 제가 그 어리석은 사람인 거에요. 전 “게으른 사람은 게으른 복이 있다.” “되는대로 살자”, 이런 사탄의 철학을 생존 법칙으로 삼아 지키면서 살았더라구요. 매일 현상태에 안주하며 그런대로 편하게 지내려 했죠. 그동안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생명 성품 변화와 하나님 뜻에 맞게 본분하는 데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저 제 육을 진리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거예요. 그래서 본분에서 고생해야 할 때, 전 대충 하면서 꼼수를 부렸고, 본분에서 좋은 성과는 없고 하나님 집 사역에 지장만 줬어요. 그런데도 전혀 자책감을 느끼지 못했죠. 육의 안락만 추구하니까 점점 타락하고 진취심이 없는 거에요. 그게 폐인이지 뭐예요? 짐승과 다를 게 없잖아요. 사탄 독소란 건 사람을 패괴시키는 그릇된 논리란 걸 알았어요. 안락을 탐하기만 하고 소극적이고 타락하게 만들어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죠. 제가 본분을 잃게 된 건 제 게으름이 자초한 거고 제 스스로 인격과 신뢰를 잃은 거죠. 하나님과 형제자매의 미움을 샀구요. 예전엔 본분에 대한 요구가 높고 양이 많은 건 고생이라 여겼는데, 사실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다 제가 게을러서 그런 거고, 너무 이기적인 탓이더라구요. 본본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대가를 들여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주세요. 또 하나님은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저의 패괴와 부족함을 드러내 제 자신을 알게 하시고 진리로 해결하고 성품 변화에 이르게 하시죠. 그리고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참된 믿음을 갖게 하시구요. 예전엔 미련하고 눈 멀어 하나님 뜻을 모르고 진리를 얻고 온전케 될 기회를 놓쳤는데, 결국 제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거죠. 육적으로는 편안하고 고생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진리 실제는 전혀 없고 패괴 성품도 그대로고 선행은 고사하고 하나님 집 사역만 지체시켜 하나님의 증오를 샀어요. 제가 계속 그런 상태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잃게 될 거예요. 그제야 제 자신이 너무 밉고 역겨워서 짐승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요.

묵상 시간에 또 말씀을 보게 됐는데, 『오늘날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모두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이것을 목표로 추구한다면 성령이 함께할 것이다. 추구하는 목표가 높을수록 더 온전케 될 것이며, 진리를 추구할수록 성령이 더욱 많이 역사할 것이고, 추구하는 힘이 클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성령은 사람 내면의 상태에 따라 온전케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거나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으며, 그저 육적으로 평안하고 재앙만 없으면 된다고 말한다. 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고 무저갱에 내려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것도 이루어 준다. 하나님은 네가 추구하는 것에 맞춰 이뤄 줄 것이다. 지금 너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느냐?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느냐? 지금 네가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기 위함이냐? 일상생활 속에서 너는 늘 이렇게 스스로를 가늠해 봐야 한다. 네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온 마음으로 추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이는 성령이 가는 길이다. 성령이 인도하는 길은 추구해야 들어설 수 있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기를 갈망할수록 성령은 네 내면에서 더 많이 역사할 것이고, 네가 추구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물러날수록 성령은 역사할 기회가 없기에 차츰 네게서 떠나갈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느냐?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느냐? 너희의 모든 행동은 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 얻어지며 쓰임 받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주 만유에게 하나님의 행사가 너희에게 나타났다는 것과 만물 가운데서 너희가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게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만유 가운데에서 너희로 인해 증거와 영광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가장 복받은 세대임이 증명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 말씀에서 알았어요. 본분하면서 진리를 얻으려면 육을 버리고 진리를 행해야 하죠. 그래야 온전케 될 수 있고 또 그게 가장 의미 있는 값진 삶이구요. 근데 육의 안락을 위해 진리를 버린다면 그런 삶은 기개도 없고, 존엄도 없고, 성령의 역사도 잃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도태돼 구원도 잃게 돼요. 그리고 또 육의 안락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려면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모든 일에서 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본분에 써야 해요. 어려움 앞에서 육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켜야 하구요 그래야 성령 역사와 인도를 얻죠. 이걸 깨달으니 마음이 밝아졌고 육을 버리고 본분에 마음을 들이기로 했어요.

그 후로 어떻게 복음을 잘 전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잘 모르는 원칙은 형제자매한테 묻고 다같이 모여 배우기도 했어요. 나중에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졌는데, 힘들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제 책임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니 바쁘긴 해도 충실감이 느껴졌어요.

그러다 하루는 리더가 저보고 다시 특수 효과 본분을 맡으라는 거에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기뻤어요. 그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었죠. 전 제 육만 생각하고 본분을 소홀히 했었는데 하나님께 면목이 없었어요. 지난 과오는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는 꼭 잘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후에도 본본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의식적으로 기도하면서 해결책을 생각했어요. 한번은 제가 맡은 프로젝트가 잘 안 됐는데, 팀장이랑 책임자가 봐도 해결책이 없었고, 저도 방향을 몰라 어렵기만 했어요. 그러니 또 계속 수정만 하다 보면 시간과 노력은 둘째고 잘 될지도 모르니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넘길까 싶더라구요. 이 생각을 하는데, 순간 또 피해 가려는 게 느껴져 얼른 기도드렸어요. 그때 말씀이 생각났어요. 『바로 본분이 임해 그 일을 너에게 맡겼다면, 어려움을 회피하려고 고민하거나 힘들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꿋꿋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고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너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에서) 이 말씀에서 실행할 길을 찾았어요. 본분에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닥치든 하나님을 의지해 해결책을 찾아야죠. 근데 고생할까 봐 본분을 밀어내거나 피한다면 그건 배반이고 충성심이 없는 거잖아요. 그걸 깨닫고 다짐했어요. 이번엔 꼭 육을 이기고 하나님께 의지해서 잘 수정하기로요. 그래서 마음을 차분히 하고 조금씩 수정해 봤더니 생각보다 빨리 완성된 거에요. 다들 보고 잘했다면서 고칠 게 없댔죠.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너무 편안한 거예요. 본분을 잘하기 위해 고생하는 건 축복이더라구요. 아멘!

어떻게 해야 죄성을 이기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상태에서 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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