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본분을 이행하는 법을 깨닫다

2021.1.27

이탈리아 신청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할 뿐 진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에 도태될 것이다. 그런 자는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는 변화되지 않은,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는 불순한 것들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악으로 가득 차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마음을 들여 본분을 이행하고 책임을 질 수 있으려면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말로만 떠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을 들이지 않고 항상 힘만 쓰고자 한다면 분명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형식만 갖추었을 뿐 본분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들이면 점차 진리를 깨닫게 될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할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마음을 들이면, 점차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발견하며 자신의 다양한 내적 상태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성찰하는 데에 마음을 들이지 않고 겉으로 힘쓰는 데에만 신경 쓴다면, 자신의 다양한 내적 상태, 그리고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가지 반응을 발견하지 못한다. 성찰하는 데에 마음을 들이지 않으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통해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책임감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야 하며, 진리 추구를 중시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을 다하지 않고 대충 하기 일쑤였는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고의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수고를 들이며 대가를 치러야 하는 복잡한 일을 만나면 무책임하게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바람에 결국은 늘 문제가 생기곤 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제 패괴 성품을 조금이나마 알고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찾아 진지하고 책임감 있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에서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원고를 감수하는 본분을 맡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성실한 태도로 감수 작업을 하며 어려움이 생겨도 기꺼이 응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잔뜩 쌓여 있는 원고들을 보면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온갖 색깔로 표시된 주석들과 원고에 가득한 마침표, 쉼표 등 갖가지 문장 부호들의 형식이나 배치가 맞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데, 그걸 보면 숨이 턱 막혔습니다. ‘원고들을 다 정리하려면 대체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하는 거야?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꼼꼼하게 감수하기 귀찮아진 저는 원고를 대충 읽어 보고 맞다 싶으면 넘어갔습니다. 가끔 번역이 정확한지 집중해서 확인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문장 구조가 좀 복잡하다 싶으면 바로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모든 단어와 구절을 다 검토하려면 얼마다 공을 들여야 하는 거야? 결국 아무 문제도 발견되지 않으면 시간만 낭비한 게 되잖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처리하도록 넘기자.’ 저는 그렇게 무성의한 태도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러자 문제가 끊임없이 생겨났습니다. 제가 감수한 걸 다른 사람이 확인할 때면 대소문자 표기나 문장 부호 표기 실수는 물론, 번역이 누락된 글자까지 나오곤 했습니다. 이런 실수가 나올 때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쉽게 발견하는 간단한 문제를 어째서 저는 멀쩡히 보고도 잡아내지 못하는 걸까 싶었습니다. 제일 눈에 잘 띄는 번역 누락 문제조차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생각할수록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감수한 원고에서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단수와 복수 표현 실수가 나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 괴로웠습니다. 얼마나 건성으로 일했으면 그런 기본적인 문제까지 놓쳤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제가 감수한 다른 원고에는 그런 문제가 없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맡은 본분에서 실수가 속출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무척 괴로웠던 저는 황급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며 그간 제 내적 상태와 본분을 대하던 태도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마음을 다하지 않고 건성으로 임하며, 쉬운 방향으로만 행동한다면 그것은 어떤 태도겠느냐? 무성의하게 행동하며 본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는 태도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마다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애쓰며, 불성실하게 임하고 대충대충 넘어간다면, 본분 이행을 놀이처럼 가볍게 대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 그런 사람은 결국 “당신은 본분을 별로 잘 이행하지 못하는군요. 그저 대충 형식만 갖추고 넘어가는군요.”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뭐라고 말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믿을 수 없는 자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사역을 맡겼는데, 너는 그것이 중요한 책임이든 일반적인 책임이든 상관 않고 마음과 책임을 다하지 않고, 그 일을 하나님이 네게 준 일이나 사명으로 여기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을 너의 본분이나 의무로 여겨 행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의 본분 이행을 ‘믿을 수 없다’라는 말로 정의 내릴 것이고, 너라는 사람의 인품이 부족하다고 말씀할 것이다. 네게 일을 맡겼는데 너는 그런 태도로 임하고, 그런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나중에 네게 또 본분을 맡길 수 있겠느냐? 큰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어쩌면 네 태도에 따라 네게 본분을 맡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불안하고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언제나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하나님은 진정 사람의 마음을 속속들이 감찰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구절구절마다 제 아픈 곳을 찔렀습니다. 그제야 저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쉬운 방향으로만 행하는 건 무성의한 태도로, 조금도 마음을 다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식적으로 일하는 것이지 본분에 대한 책임감이 조금도 없는 태도였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던 때를 돌아보니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때마다 저는 가장 빠르고 손쉽게 끝낼 방법을 택하곤 했습니다. 쉬운 방법이 있으면 그렇게 하고, 힘들이지 않고 간편하게 일할 수 있으면 또 그렇게 했습니다. 새로운 단어가 많이 나오거나 문법이나 구조가 어려운 문장이 나오면 진지하게 자료를 찾아보는 대신 표시해 뒀다 다른 사람에게 묻는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복잡한 주석이 나오거나 문장 부호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할 때도 대충 훑어보고 웬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갔습니다. 저는 본분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대함에 있어 잔꾀를 부리며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굴었고, 어떻게 하면 제 육이 고생을 덜 할지만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인성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감독하지 않을 때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들에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인성이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다른 사람이 항상 걱정하고, 감독하고, 진행 상황을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맡겨질 때마다 물건 하나를 망쳐놓을 것이다. 요컨대,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항상 성찰해야 한다. ‘내가 이행한 이 본분이 합격인가? 마음을 들였는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충대충 하려는 내적 상태는 없었는가?’ 그러한 내적 상태가 있다면 좋지 않다.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좁게 보면, 그러한 사람은 신뢰성이 없고 사람들이 그를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더 넓게 보면, 그러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건성으로 임하고 계속 하나님을 기만한다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알면서도 속이면 그 결과는 어떻겠느냐? 단기적으로는 패괴된 성품이 있고, 자주 과오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으며, 진리를 실천하는 방법을 모르고 진리를 실천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계속 그렇게 하면 미래가 사라질 것이고, 결국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소위 큰 실수는 하지 않지만 사소한 실수를 끊임없이 거듭하는 경우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아주 심각한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무성의한 태도의 본질과 결과를 폭로하신 말씀을 보니 저도 모르게 두려워졌습니다.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건 사람은 물론, 하나님도 속이는 짓으로 하나님께 정죄받을 태도였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언젠가 심각한 과오를 저질러 하나님께 버림받을 게 분명했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본분을 맡겼을 당시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분을 이행하며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되자 고생하는 것이 귀찮고 꺼려져 육을 좇아 원고를 대강 감수하고 넘겼습니다. 그 결과 제일 간단한 문제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기만행위였습니다.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온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태도로 본분에 임해 당신의 미움을 샀습니다. 저는 정말 양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회개하겠으니 저를 이끌어 주세요. 육을 저버리고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고생을 감내할 의지를 더해 주세요.”

그 후론 번역문을 감수할 때마다 어색한 단어가 보이면 여러 사전을 확인해 보았고 그래도 확신이 안 설 때는 주변의 형제자매나 전문 번역가에게 문의해 단어를 확실하게 파악했습니다. 내용이 어렵고 긴 원고를 감수할 때도 더 이상은 잔꾀를 부리며 대충 넘어가지 않고, 모든 문장을 진지하게 여러 번 살펴보고 검토하면서 더 정확한 번역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감수를 마무리할 땐 확인해야 할 세부 사항들을 목록으로 작성했고, 모든 단계에서 세심히 살펴야 한다고 늘 스스로를 일깨웠습니다. 마무리 전엔 한 문장씩 대조해 보며 마지막 단계에서 최대한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확실히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고 실수도 줄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팀에 자매 한 명이 새로 들어왔는데 탈고된 번역 원고를 표준 양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맡게 됐습니다. 자매는 수시로 제게 이것저것 물어왔습니다. 이 문장 부호가 맞냐, 저긴 왜 저 문장 부호를 쓰냐, 계속 물어오니 귀찮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걸 언제 다 일일이 설명해? 최종본대로 정리하면 되지.’ 그래서 대강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건 최종본이라 문장 부호가 틀린 데는 없을 거예요. 영어나 이탈리아어나 문장 부호 사용법은 비슷하니 대부분 영어의 것을 따르면 돼요. 하지만 예외도 있어서 그땐 의미를 봐야 해요.” 자매는 또 우리가 쓰는 참고 서적이 전문가용이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이탈리아어 문장 부호에 관해 간단하게 정리된 자료가 없냐고 물었고 저는 아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새로 온 자매가 참고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문장 부호가 워낙 많고, 그걸 정리하려면 또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데 그 일들이 너무 귀찮게 느껴져 자료 정리 작업은 일단 미뤄두었습니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영어나 이탈리아어나 문장 부호 사용법은 비슷하다’는 제 말대로 문서 형식을 정리해 15만 자가 넘는 이탈리아어 문서에 나온 대시 부호 앞뒤의 공백을 다 삭제해 버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는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이탈리아어에서는 대시 부호와 하이픈 부호를 구분하기 위해 대시 부호 앞뒤에 한 칸씩 공백을 둬야 합니다. 그 점이 영어와 다른데 제가 미처 말하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결국 그 자매는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며 부호를 일일이 찾아내 수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너무 속상하고 후회스러웠고 스스로가 미웠습니다. ‘왜 나는 그때 시간을 들여 참고 자료를 만들지 않았을까? 왜 난 늘 육을 좇아 귀찮은 일 하는 걸 싫어할까?’ 저의 무성의한 태도로 자매는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수정하고 검토도 새로 해야 했습니다. 인력 낭비도 낭비지만 사역 진도까지 지체되어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한 게 되었습니다. 자책감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고 제 뺨이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또 이렇게 건성으로 일하다니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어느 날 묵상 도중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경솔하고 오만하며 무책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건달 기질이다. 모든 일에서 그들은 “대충 맞는 것 같아.”, “그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아마도’, ‘십중팔구’ 식의 태도이다. 형식적으로 일을 하며, 얼렁뚱땅 넘어가고, 할 수 있는 한 일을 대충 해 나가는 수준에서 만족한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거나 세밀함을 추구할 필요도 없으며 원칙을 구하는 것은 더욱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패괴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정상 인성의 발현이겠느냐? 이를 교만함이라 해도 옳고, 방종함이라 해도 아주 적절하지만, 가장 알맞게 표현하는 어휘는 ‘건달’이다. 건달 기질은 대다수 사람의 인성에 존재한다. 모든 일에서 대충 건성으로 하려 하고, 기만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요령을 피우며, 문제를 살피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발각되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으며 책임을 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얼렁뚱땅 넘어간다. 번거로움을 무릅쓰면서까지 일을 굳이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숙달하는 경지까지 배우는 일이 없으며 배우는 일에 전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냥 대충 배워 전문가 행세를 하고 그걸로 때우려고 한다. 사람들이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지 않으냐? 이것이 옳은 태도겠느냐? 그러한 사람들이 사람, 일, 사물에 대해 취하는 이런 태도는 한마디로 ‘때우는 것’이며, 그러한 건달 기질은 패괴된 인류에게 다 존재한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만 순종하게 한다(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가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심각한 건달 기질 때문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대충 속여 넘기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했던 것입니다. 자매가 정확한 문장 부호 사용법을 물었을 때도 귀찮은 마음에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고, 또 더 이상의 질문을 막기 위해 대략적인 규칙만 알려주며 무성의하게 넘어갔습니다. 또 자매가 참고 자료가 있냐고 물었을 땐, 자료를 만들어줄 수도 있었지만 제 육이 고생하며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자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문제가 생길까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만약 별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수고를 던 셈이라 생각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대충대충 일을 하며 요행심과 기만적인 마음가짐을 품은 채 잔머리를 써 쉽게 넘어갈 방법만 찾았지, 어떻게 공들여 본분을 이행하고 세세한 부분들을 모두 살펴 최대한 잘못이 생기지 않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일을 하며 질문에 대답도 해주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간사한 짓을 하며 자매를 속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제 말을 믿었던 자매는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간 들인 시간과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되어 버렸습니다. 더구나 모조리 재작업을 해야 한 탓에 전체 사역 진도가 느려져 교회 사역에 손실을 입혔습니다. 제가 줄곧 신봉했던 ‘쉽게 할 수 있으면 쉽게 하고, 수고를 덜 수 있으면 그렇게 하자’는 행동 원칙은 남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잔꾀를 부려 당장의 수고를 덜고 육도 고생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 본분에서 과오가 쉴 새 없이 나와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고 말았습니다. 남에게도 피해를 주고 저 자신에게도 해를 끼쳤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역이 주어졌는데도 제 태도는 경솔하고,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기만 했습니다.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기만적으로 굴었던 저는 가장 기본적인 양심조차 없었습니다. 그제야 저의 건달 기질이 심각한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저속한 인격을 가진 너무나 가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 말씀 낭송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섬기는 과정에서 표현해야 할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본래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며, 속이고 대충 하기까지 한다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은 것이다. 그런 자는 이른바 ‘둔재’이자 쓸모없는 폐물이다. 그런 자를 어찌 당당한 피조물이라 칭하겠느냐? 겉보기는 화려하나 속은 썩어 문드러진 자가 아니겠느냐? … 너희의 언행이 떳떳하냐? 설마 너희의 그 작디작은 희생으로 내가 베풀어 준 모든 것에 떳떳하단 말이냐?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고 얼마 되지도 않는 너희의 기능이다. 그렇지 않으냐? 설마 너희는 자신들이 아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음을 모른단 말이냐? 그렇다면 너희가 어찌 피조물이라 불리겠느냐? 너희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는 자기 자신이 잘 알지 않느냐? 너희는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관용과 풍성한 은혜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은혜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너희 소인배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라는 것 없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다. 너희 같은 사람들, 너희 같은 둔재들은 하늘의 은혜를 누릴 자격이 전혀 없다. 오직 고난의 나날과 끝없는 징벌만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 충성을 다할 수 없다면 너희의 운명은 곧 고통이고, 나의 말과 사역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너희의 결말은 곧 징벌이다. 그 어떤 은혜와 축복,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삶도 너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너희가 누릴 몫 또한 없다. 너희에게 이것은 당연한 결말이며 자업자득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이 가운데 “너희에 대한 나의 마음은 한결같아서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너희는 나에게 음흉한 속셈과 딴마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본분이다.”라는 말씀을 묵상하는데 마음이 너무 찔렸습니다. 하나님께선 저를 구원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얻어서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으라는 뜻이었는데, 저는 진리를 추구하긴커녕 늘 육을 좇으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며 속였습니다. 하나님께선 인류 구원을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갖은 수모와 고통을 참으시고, 집권당에 쫓기며 핍박당하고, 사람에게 정죄당하고 버림받으셨지만 계속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자질이 부족해 진리를 잘 깨닫지 못해도 성가셔하지 않으시고 여러 각도에서 세심히 교통해 주시면서 모든 진리를 아주 소상히 알려 주셨고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 형식을 빌리거나 예시와 비유를 들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관련되는 내용이 많은 복잡한 진리에 대해서는 단계별로, 개요를 나누어, 차근차근 교제해 주시면서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천천히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책임감 있게 우리 생명을 대하셨습니다. 반면 저는 어떻게 본분을 대했습니까? 신경을 많이 쓰고 대가를 많이 치르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진지하지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원고를 검토했습니다. 본분의 효과나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편한 길만 택했습니다. 이렇게 줄곧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가볍게 여기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한 저에게는 양심이란 게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하나님께 벌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구원하시려고 제가 자신에 대해 알고 하나님 뜻을 알 수 있게 말씀을 이용해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잔꾀를 부리며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한다면 저는 정말 사람이라 불릴 자격도, 살아갈 자격도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 건달 기질이 너무나 심각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뻔뻔스럽고 존엄성 없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게 진리를 행할 힘을 더해 주세요. 사람답게 살면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들이면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해야지, 건성으로 해서는 안 되며, 책임을 지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기분에 따라 행동해서도 안 된다. 이는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하는 것이겠느냐?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기분, 환경, 사람, 일, 사물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명을 받아들이겠어. 하나님께서 이 사명을 나에게 주신 거야.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러니까 이걸 내 일로 간주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 어떤 식으로든 좋은 결과를 낼 거야.” 네게 이러한 내적 상태가 있으면 양심의 지배를 받을 뿐만 아니라 충성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효율성과 결과 달성을 위한 노력 없이 일을 끝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저 힘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양심의 기준에 지나지 않으며 충성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기준은 양심의 기준보다 약간 높다. 이것은 단지 힘을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다해야 한다. 항상 본분을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여기고, 이 일에 대해 부담을 가지며, 사소한 실수라도 저지르거나 조금이라도 대충대충 하려는 생각이 들면 가책을 받고 ‘난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하나님께 정말 죄스러워.’라고 생각해야 한다. 진정으로 이성이 있는 사람은 누가 감독하든 안 하든 마치 자신의 일처럼 본분을 이행한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기뻐하든 아니든,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그들은 항상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것이 바로 충성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기쁨이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실행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는 내 기분에 따라 하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해선 안 되고 어려운 문제로 고생하기 싫다며 건성으로 해도 안 됩니다. 본분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자 내 책임이라고 여겨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일이 많이 어려워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저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말씀대로 실행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새 팀원이 오면 참고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 이탈리아어 문장 부호 용법을 자료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번역할 때 자주 나오는 문제들을 정리하고, 주의할 점을 리스트로 정리해 놨다가 원고를 검수할 때 대조하면서 누락되는 부분이 없도록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또 형제자매가 본분과 관련된 질문을 해오면, 대충 살펴보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지 않고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본 다음 원칙에 따라 관련 지식을 참고해서 성심껏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런 실제적인 협력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 덕분에 저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잘 모르던 문제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또 어떤 잘못된 마음이 있는지 자주 성찰했고, 문제에 부딪혀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육을 저버리고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니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가 한결 반듯해졌고 건성으로 일하는 경우도 줄어 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나마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이룬 결실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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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추이바이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자신의 운명을 위해 마땅히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너희가 스스로를 하나님 집의 일원이라고 시인한 만큼 어디서나 하나님을 안심하게 하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을 흡족게 해야 한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

허베이성 이신 저는 형제자매들로부터 자주 이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모두 가장 좋은 것이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입으로는 수긍했지만 이에 대해 참되게 깨닫고 느낀 바가 없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실제...

재난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

후베이성 차오퉈 5ㆍ12 쓰촨 대지진이 일어난 후 저는 언제 재난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마음 졸이며 지냈습니다. 특히 재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지진 발생 빈도도 늘어나는 것을 보며, 저는 재난이 더 두렵게 느껴져 온종일 ‘만약 지진이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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