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속박을 어떻게 벗어났나
중국 리이(李意)2020년 11월, 리더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몇 년째 하나님을 믿는 엄마가 계속 예배에 제대로 안 나오고 계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돈 버는 일에만 열심이고, 어쩌다 예배에 나와도 졸기만 하고, 평소 하나님의 말씀도 안...
2023년 9월, 저와 협력하던 자매가 경찰에 붙잡혀 갔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 리더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며 도움과 붙듦이 필요하고, 뒷수습도 시급한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저는 쉴 새 없이 책을 옮기고,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를 교제하며 해결해 주고, 새 신자들을 양육하고 붙들어 주느라 바빴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나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나서야 쉴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가 호전되어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고, 책들도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 것을 보니 무척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환경에서도 일을 잘 처리해서 교회 사역에 손실이 없었으니, 이대로 계속 협력하면 마지막에는 분명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에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데 더욱 힘이 났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예배에 갔고 사역을 이행했지만, 정작 제가 하는 사역이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내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조차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말씀 구절만 생각했을 뿐, 저 자신의 상태에 비추어 보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때로는 스스로 사역에만 치중하고 진리를 구하며 반성하는 데에는 소홀하다는 것을 알아 차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역에 진전이 있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 말씀을 적게 먹고 마시고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괜찮고, 사역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교회에는 해야 할 사역이 많았기에 저는 계속해서 일에만 매달렸습니다.
그 후 한 자매가 새로 선출되어 저와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자매는 막 협력을 시작해 일부 사역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제가 많은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사역을 상의할 때 자매가 먼저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을 보며 저는 그 자매가 탐탁지 않았고, 좋은 말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매가 저에게 속박 받는 것을 보고도 저는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는 심각하지 않고, 내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도 않아. 나에게는 해야 할 사역이 이렇게나 많은데, 진리를 구해 내적 상태를 해결할 틈이 어디 있겠어? 만약 이 일에 시간을 썼다가 사역에 지장을 주면 어떡해? 본분을 잘 이행해서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 그 후에도 저는 계속 사역에만 몰두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두 집사와 사역을 상의하는데, 그 둘은 모두 성격이 느긋하고 먼저 의견도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좀 조급해져서 ‘같이 사역을 상의하는데, 둘 다 의견을 내지 않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나무랐습니다. “형제님들, 매번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으시니, 이 사역을 어떻게 상의하겠어요?” 제 말이 끝나자 한 형제는 고개를 떨구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동안 비슷한 일이 적지 않게 발생했습니다. 저는 형제가 먼저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을 보기만 하면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 형제도 약간 소극적이 되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반응이 느려 자매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이 본분도 잘 이행할 수가 없네요.” 사실 저도 그 형제가 이 본분을 막 훈련하기 시작했기에 잘 모르고 서툰 것이 정상이며, 제가 더 많이 격려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그렇게 말한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과한 요구가 아니라 단지 그가 본분을 좀 더 능동적으로 이행하길 바랐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문제 해결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패괴 성품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도 아니야.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빨리 사역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지. 사역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성과가 있겠어?’ 그렇게 일에만 매달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구하는 데에는 소홀히 하고, 닥친 일에서 공과를 배우려 하지 않다 보니 마음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번은 제가 안전에 문제가 있는 한 가정에 하나님 말씀 서적 보관을 맡겼는데, 윗선 리더가 이 사실을 알고는 제가 원칙대로 일하지 않는다며 저를 훈계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억울한 나머지 한사코 이치를 따지며 대항했습니다. 리더는 제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자매님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적잖은 일을 했지만, 일하는 데 원칙이 없었고 항상 자기 마음대로 경험에 따라 했어요. 그러면 하나님 집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순종하며 구하려는 태도도 없고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해서야 성장이 있겠어요?” 그 후 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그동안 사역에만 치중했을 뿐 생명 진입이 전혀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며, 제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구하던 중,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과 무관한 그 어떤 사역도 하지 않았다. 즉, 계속 말씀하면서 오늘날까지 말씀으로 사람을 이끌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씀하는 동안 말씀으로써 그를 따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을 인도한다. 이런 말씀은 구원받기를 원하거나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 그가 인류를 구원하는 그 사실을 성취할 것이다. 이런 말씀은 내용으로 보나 양적으로 보나, 어떤 유형의 말씀이든, 어느 부분의 말씀이든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 그의 6천 년 경륜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성과를 성취할 것이다. 이런 말씀은 이 인류에게, 현재의 인류에게도 미래의 인류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태도이고,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는 목적과 의의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모른 체하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마치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말이다. 여전히 자신이 추구할 것을 추구하고 자신이 할 것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밖에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어. 하나님께서 동쪽을 가리키시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을 가리키시면 서쪽으로 가는 거야. 하나님이 죽으라면 그분 눈앞에서 죽겠어.’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이런 신념뿐 하나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이 너무 많아. 그냥 단순하게 내가 할 일을 바로 말씀해 주시면 될 것을. 그럼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텐데 말이야.’ 하나님이 얼마나 말씀하든 그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문외한처럼 결국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체험 인식도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싶겠느냐? (그러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결코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가 수없이 얘기했거늘 너는 어찌하여 소경과 귀머거리처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보아하니 오로지 복받을 생각과 아름다운 종착지로 들어갈 생각밖에 없구나. 너는 그저 바울의 목표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나의 도를 준행하려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왜 믿느냐? 너는 구원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종착지를 얻고 복을 받겠다는 욕망을 채우러 왔구나. 이런 계산이 있으니 너는 힘쓰는 자가 제격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도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모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사람이 이방인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는 것보다는 충성스럽게 힘쓰는 자로 살아남는 것이 훨씬 낫다. 특히 하나님 집 사역에는 힘쓰는 자가 필요하기에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왕의 종노릇보다야 훨씬 낫고,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흡족하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정결케 하며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힘쓰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역사하면서 이루려는 목표도 아니고, 하나님이 보려는 결과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욕망의 불길에 휩싸여 어리석고 눈멀면 사소한 이익에도 미혹되고 마음을 빼앗긴다. 반면 하나님의 이토록 귀한 생명의 말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직시하지도 않으며, 중시하지 않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과연 슬기로우냐, 아니면 어리석으냐? 구원에 이를 수 있겠느냐?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모두 내려놓고 진리 추구에 집중해야만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사람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겉으로 일하는 것에만 치중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제하시든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이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나 말씀 가운데서 진리를 구하는 데에 소홀하면, 그런 믿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고 폭로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니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교회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일만 잘 처리하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그분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하는 것에만 치중하고 하나님 말씀을 신경 쓰지 않았으며, 심지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본분 이행할 시간을 뺏는다고 싫어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말세에 사역을 통해 이렇게 많은 말씀을 선포하신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와 성품 변화 추구하여 최종적으로는 진리를 얻어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제 관념과 상상에 따라 추구하며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역자와 협력할 때 패괴를 드러내고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사람 안에 있는 온갖 패괴 성품을 폭로하셨고 실제 환경을 마련해 사람이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진리를 깨달아 패괴를 벗고 정결케 되게 하시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단순히 사람이 일하고 힘만 쓰게 하려 하셨다면, 오늘날까지 단계적으로 역사하실 필요도 없었고, 성육신하여 그 많은 고난을 받으시며 진리를 선포하실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도 저는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고, 실행과 진입에는 소홀했으며, 패괴 성품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으니,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문외한이었던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제가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해도 마지막에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 말씀의 폭로로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변화되고 싶습니다. 부디 제가 잘못된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에 공을 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며 생명 진입에 힘쓰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대가를 치러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이런 내적 상태로 살고 있다. 이는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으로, 순전히 하나님이 내리는 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에는 진리가 없으며, 틀림없이 글귀와 도리를 얼마간 이해한 것으로 곳곳에서 뽐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걷는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결같이 사역만 한다. 그는 사역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고, 틀림없이 하나님을 만족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을 얻을 자격이 있고 큰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고생하고 전도하며 죽을 수 있는 사람,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맡긴 본분을 훌륭히 완수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하나님께 가장 큰 복을 받을 사람이며, 분명 면류관을 얻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상상하고 추구한 것이며, 바울이 걸은 길이다. 바울이 바로 이런 사상에 지배받아 사역하고 하나님을 섬겼다. 이런 사상과 속셈은 사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는 지식을 추구해야 하며, 지식을 갖추고 나면 남들보다 뛰어나고 관직에 나아가고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위를 얻으면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치며 자신의 가업과 사업을 눈부시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여긴다. 이방인들은 모두 이런 길을 가지 않더냐? 이런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바울처럼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심을 보여야 해. 그러면 나중에 큰 상과 면류관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추구하는 것과 틀에 박힌 듯 똑같다. 그것들은 전부 똑같은 본성에 지배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런 사탄의 본성을 갖고 있으면,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고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추구한다. 하나님을 믿으면 면류관과 큰 복을 얻기를 추구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분명 이런 길을 걸을 것이다.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으며 이는 자연법칙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가는 길은 베드로의 길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복을 받고 자신에게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며 버리고 헌신하는데, 이는 복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된 것이라고 폭로하셨습니다. 반성해 보니 제 추구 관점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저는 사역과 본분을 많이 하고 리더가 맡긴 일을 잘 해내 성과를 거두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시고 저에게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직 일에만 몰두하며 매일 바쁘게 사역했습니다. 바울을 생각해 보니, 그 역시 전도와 사역에만 치중하여 많은 길을 다니고 적잖은 대가를 치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아 패괴 성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모든 것은 하나님과 거래한 것이었고 면류관과 상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라고 말하며 자신을 증거했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도태되고 징벌을 받았습니다. 다시 돌아보니 제가 걸었던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었습니다. 저는 제 관념과 상상에 기대어 사역만 많이 하고, 맡겨진 본분을 다 잘 해내 성과를 거두기만 하면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분명 저에게 좋은 종착지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하는 것에만 치중했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조차 시간을 뺏는다고 여겼으며, 교만한 성품을 드러내 사람을 구속하고도 해결하는 데에 방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는 헌신과 사역 성과로 하나님과 복을 맞바꾸려는 생각뿐이었으니, 어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겉으로 보면 저는 매일 쉴 새 없이 바쁘고 본분에 굉장히 충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한 것도, 교회 사역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저의 결말과 종착지를 도모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며 하나님과 거래한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여전히 사심과 불순물을 가지고 추구하고 패괴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는 분명 하나님께 도태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삶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흡족게 하지 못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지 못하면 통회했으며, 그 후에 적합한 길을 찾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 위해 힘써 노력했다. 그는 생활 속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려고 했으며, 자신의 옛 성품을 조금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진리에 깊이 들어가려고 했다. …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자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종하고자 했다. 그는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연단과 환난, 궁핍한 생활 역시 받아들였으며,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 아니겠느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 것 아니겠느냐? 형벌이든 심판이든 환난이든 너는 죽기까지 순종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도달해야 하는 경지이자, 사랑 안에 있는 순결한 요소이다. 사람이 이런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는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창조주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은 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너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이다. 너는 진리가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과 자신에 대한 인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창조주를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할뿐더러 창조주께 순종하지도 않고 창조주를 사랑하지도 않는다면, 너는 천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창조주는 이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베드로가 생활 속에서 사소한 일을 만났을 때도 진리를 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추구했으며, 패괴 성품을 드러냈을 때에도 제때 자신을 반성하고, 사역하면서 개인의 진입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탁과 자신의 생명 진입에 책임감이 있었으니, 성공적인 길을 간 것입니다. 반면 저는 사역하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에만 치중하고 진리를 구하는 데에는 소홀했으며, 패괴를 드러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실패의 길을 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사람의 본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그저 이 일들만 끝내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이 닥쳤을 때 진리 원칙을 구해야 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인식하는 데 힘쓰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며, 진리를 행동과 사람됨의 준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실행해야 생명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제 패괴 성품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지만, 저는 인식하고 바로잡는 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반성하고,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본분 이행이 아무리 바빠도, 문제가 닥치면 진리를 구해 해결할 줄 알며, 설교를 듣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구하고 교제한다. 또 매일 마음을 평온히 하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체험 간증 영상을 보면서 얼마간 수확을 얻는다. 이런 자는 본분 이행으로 아무리 바빠도 전혀 생명 성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생명 진입에 지장을 주지도 않는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실행한다. 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본분 이행으로 바쁘든 바쁘지 않든, 어떤 문제가 닥치든 진리를 구하지 않으며, 마음을 평온히 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인식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분 이행으로 바쁘든 한가하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 마음을 갖고 진리를 갈망하며 자신의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에 부담을 느낀다면, 사역이 아무리 바빠도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다가가고 기도할 것이며, 성령의 깨우침과 빛을 얻을 것이고, 생명이 끊임없이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에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면, 수확이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패괴 표출이 있는지 반성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본분을 이행할 때 패괴를 드러냈다면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편, 스스로를 돌아보고 패괴 성품을 인식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이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업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어렵겠느냐? 이는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려 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 성장에 관심이 없으며, 마음속으로 이런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생명 성장에 마음을 쓰고자 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를 수시로 묵상하며, 어떻게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되새긴다.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곧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면, 그렇게 몇 년간 실행한 후 적잖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본분 이행에 합격점을 받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패괴 표출도 훨씬 줄어들며,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진실한 체험도 많아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여부는 본분 이행으로 바쁜지, 시간이 없는지에 달린 게 아니라 마음으로 진리를 사랑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실, 사람이 가진 시간은 누구나 똑같다. 다만 개개인이 사용하는 곳이 다를 뿐이다. 진리를 추구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육적인 누림에 시간을 쓰거나 표면적인 일로 바빠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다. 이는 생명 성장에 지장을 주는 큰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매일 시간을 내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묵상하며, 그날 하루 어떤 패괴를 드러냈고 어떤 일을 원칙 없이 했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시간의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확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본분을 이행하다가 바쁘지 않을 때면 더 시간을 내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바쁠 때는 본분 이행에 집중하며 하나님 말씀을 현실 생활 속으로 가져와 실행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영적 묵상을 하자거나 하나님 말씀을 찾아 자신의 상태를 해결하자고 할 때면 시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본분이 바빠서 하나님 말씀을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일하는 것에만 치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본분이 바쁘지 않을 때조차 하나님 말씀을 보거나 진리를 구해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에 소홀했습니다. 이제 저는 본분 이행과 생명 진입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고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 모두 생명 진입과 관련한 것입니다. 사역은 마땅히 해야 하지만, 생명 진입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진리를 구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자투리 시간도 활용해 평소에 밥을 먹거나 길을 걷거나 빨래를 할 때도 제 상태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구하려고만 하면 시간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늘 협력하는 형제자매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늘 혈기를 부렸는데, 이것이 어떤 문제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제 상태에 맞춰 하나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이를 통해 혈기를 드러내는 것은 교만한 본성의 지배받는 것이고, 제가 다른 사람에게 너무 높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협력하는 형제는 나이가 많고 예전에 이 본분을 이행해 본 적이 없어 반응이 좀 느린 것도 정상인데, 저는 늘 제 기준으로 형제에게 요구했고 탐탁지 않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저는 전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각 사람의 다른 상황에 맞게 대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고, 얽매이게 했습니다. 제가 너무나 이성이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점들을 깨닫고 나서야 저는 마음으로 이 방면의 문제를 진정으로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역을 상의할 때 형제가 반응이 느린 것을 보고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어 그에게 묵상할 시간을 주었으며, 관련된 원칙은 최대한 자세히 교제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떤 문제를 물어볼 때도 저는 인내심을 갖고 그들과 교제하며 함께 진리를 구하고 함께 진입했습니다. 그 후 닥치는 일들에서 저도 제게서 드러나는 것들을 살피는 데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옳지 않은 생각이나 패괴 성품이 드러날 때면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관련된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하면서 제 패괴 성품에 따라 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후 한동안 본분이 또 바빠졌습니다. 몇몇 형제자매가 원칙을 어기며 일해서 교제가 필요했고, 일부 복음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시급히 협력해야 할 사역이 많은 것을 보고 저의 첫 생각은 서둘러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예전에 늘 일에만 신경 쓰느라 많이 뛰어 다니고 일도 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원칙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묵상하고,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으며 어떻게 교제해야 성과를 거두고 그들이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복음 대상자에 대해서도 상대방의 주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관련된 진리를 구해 미리 준비했습니다. 이렇게 구하자 저는 이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일부 진리 원칙들을 깨닫게 되었고, 약간의 수확도 있었으며, 본분 이행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체험을 통해 저는 생명 진입에 힘쓰고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 원칙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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