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과 훈계를 통해 깨달은 것
2022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리더는 몇몇 형제자매가 제가 예배 전에 새 신자들의 상태와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예배에서 교제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어떤 새 신자가 예배에 나오지 않았을...
저는 2021년에 교회에서 문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2022년 초에 본분이 조정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패괴 성품이 심하고 늘 자신을 고집한 탓에 본분 이행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음을 반성했습니다. 몇 달 뒤, 리더는 제게 다시 문서 본분을 계속 이행하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이전에 자질이 부족해서 본분이 조정되었고, 이번에 문서 사역량이 늘어 인원이 부족해지자 다시 저를 이 사역에 안배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번에 나를 복귀시킨 건 그래도 내게 자질이 좀 있고 이 본분을 감당할 능력이 되니까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형제자매들이 나를 그렇게 평가할 줄이야……. 보아하니 내가 이 본분에서 아무리 노력해 봤자 헛수고야. 지금 막 문서 사역 훈련을 시작한 형제자매들은 자질이 좋아서 얼마간 양성하면 나보다 훨씬 나아질 텐데, 내가 이 본분을 이행하는 건 그저 잠시 힘쓰는 것에 불과해. 자질이 좋은 형제자매들은 사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니 구원받을 희망도 더 크겠지만, 나는 자질이 부족해서 중요한 사역을 감당할 수 없고 앞으로 언제든 또 조정될 수 있는데, 무슨 구원의 희망이 있겠어? 이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복음을 전하고 새 신자를 양육하는 게 낫겠어. 적어도 복음 사역에서 선행이라도 좀 예비하면 살아남을 희망은 있잖아.’ 이런 생각에 마음이 의기소침하고, 심지어 이번에 문서 사역을 하러 돌아온 것이 후회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전에 자질이 부족해서 본분이 조정되었다는 자매의 말을 듣고 마음이 무척 괴롭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극적으로 변하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부디 저를 깨우쳐 주시어 제가 당신 뜻을 깨닫고, 믿음으로 노력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자질이 부족하든 뛰어나든, 나이가 많든 적든 하나님은 사람 각자의 실제 분량과 자질에 따라 요구하시고 적합한 본분을 안배해 주십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똑같이 구원해 주시며, 어느 누구도 치우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라는 체험 간증 영상에 나오는 형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비록 연세가 많고 몸도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섬김 본분을 이행했고, 체험 간증문을 쓰는 훈련을 하며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또한 일부 진리를 깨달아 생명이 성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공평하고 공의로우시며, 사람의 배경에 따라 각 사람의 분량과 자질에 맞춰 요구하실 뿐, 사람을 조금도 힘들게 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질이 좋은 사람만 구원받을 수 있고,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그릇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이 저를 자질이 부족하여 문서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제가 교회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없고 하나님도 저를 좋아하시지 않을 테니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이번에 문서 사역을 하러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관념과 상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오해하다니,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어리석고 이성이 없었습니다! 사실, 제 자질이 어떤지는 하나님도 아시고 형제자매들도 압니다. 교회가 제게 문서 사역을 안배한 이상, 저는 마땅히 순종하고 제가 깨달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힘써 협력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더 이상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기소침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후 저는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렇게 의기소침하고 괴로워했을까?’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부 리더가 자기를 두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고 하자, 자신이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하나님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 게 분명하고, 복받을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괴로웠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은 그래도 조금은 이성적이다. 어떤 사람은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말에 소극적이 되어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려 했다. ‘나보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고 하는데 그럼 복받을 희망도 사라진 것 아닌가? 앞으로 내가 복받을 일은 없겠구나. 그럼 더 믿을 필요가 있을까? 나한테 봉사하라고 해도 안 될 걸. 누가 당신한테 공짜로 힘을 써 준대?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아나!’ 이런 자가 양심과 이성이 있느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많이 받고도 갚을 줄 모르고, 약간 봉사하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자는 끝이다. 끝까지 봉사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에게 참된 믿음도 없다. 바로 불신파이다. 네가 하나님에게 진심이 있고 참된 믿음이 있다면, 너에 대한 어떤 평가도 네가 더욱 참되고 정확하게 자신을 인식하도록 해 줄 뿐이니 너는 그것을 바르게 대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일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설령 복을 받을 수 없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끝까지 봉사하려고 해야 한다. 원망 없이 기꺼이 그렇게 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 지배에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복을 받고 화를 입는 일은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렸고,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하는 것으로, 사람이 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사람이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따를 수 있느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나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하나님은 각자가 행한 바에 따라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그만한 진심이 있고, 자신이 다해야 할 본분에 최대한 힘을 바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오로지 이익과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약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이다. 복을 받고 상을 얻으려는 그의 속셈과 욕망이 너무 커서 단단히 붙잡고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한결같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 즉 좋은 종착지를 얻기 위한 거야. 이는 지고지상의 원칙으로서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만약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선 안 되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믿는 의미나 가치는 사라져 없어지는 거야.’ 적그리스도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누군가가 주입했기 때문이냐? 누가 가르치고 영향을 주기라도 했느냐? 전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성 본질에 의해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데 그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정죄한다.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그의 본성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그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품이 사악하여 대놓고 하나님에게 고함치며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며 그의 실체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저는 문제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의 소극성과 오해의 이면에 잘못된 추구 관점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을 올바른 추구 목표로 삼았기에, 복을 받으려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낙담하고 실망해서 소극적으로 변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가 자질이 부족해 문서 사역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나는 이제 끝이라고, 아무리 추구해도 소용없고 언젠가는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본분을 이행할 의욕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 것이 복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서, 무슨 일을 하든 ‘이익’을 앞세웠습니다. 제 앞날에 이롭고 복을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했고 고생하며 대가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피하거나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정말 얼마나 이기적이고 이익만 밝히는 사람인지 깨달았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를 돌아보면, 저는 훗날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교회가 어떤 본분을 안배하든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었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구원받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온몸에 힘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 저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하자, 저는 발탁되어 양성될 기회가 없고 중요한 사역을 할 수 없어 결국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소극적으로 변하고 오해를 품었고, 문서 사역을 계속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따랐지만, 마음속으로는 역시 저의 앞날과 운명을 생각했습니다. 본분 이행을 내세워 좋은 결말과 종착지를 얻으려 했으니, 이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자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마음속으로 깊이 자책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가 제게 문서 사역을 안배하여 본분 이행을 훈련할 기회를 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저는 감사할 줄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줄도 모르고 오로지 하나님과 거래하려고만 했습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양심과 이성조차 없었으니, 정말 인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너무나 죄스러웠고, 패괴가 너무나 깊은 저 자신을 증오했습니다. 그리고 더는 이렇게 소극적으로 지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계속해서 반성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제 자질이 부족하다고 했을 때 제가 의기소침하고 괴로웠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질이 좋은 건 무엇이고, 자질이 부족한 건 무엇인지 판단할 줄 몰라 저 자신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자질을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이해도를 통해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말재간이 좋고 머리를 잘 굴리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매우 능숙하지만, 설교를 들을 때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체험 간증을 얘기할 때 글귀와 도리만을 늘어놓아 문외한처럼 보이며,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자질이 좋은 사람은 진리 이해든, 어떤 분야의 업무나 전문 기술 학습이든 그 해당 원칙을 파악하고 근원을 알며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면을 찾아 자신이 하는 일이나 종사하는 일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정확한 기준과 원칙을 정한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은 것이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 집의 각 사역에서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지만, 자질이 평범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그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는 절대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차별하거나 일부 사람을 무시하거나 가리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질 문제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이냐? 자질이 평범하거나 너무 형편없어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열심히 듣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너무 젊어서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일에 아직 개념이 없고 그리 흥미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다 주된 원인이 아니다. 주된 원인은 자질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자질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얼마나 오래 사역하든,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듣든, 어떻게 진리를 교제하든 갈피를 잡지 못하며, 본분 이행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엉망으로 만들 뿐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팀장이 되어 몇몇 사역을 관리 감독하는 책임을 맡는데, 처음 사역을 책임지게 됐을 때는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몇 번의 실패를 겪지만, 그 후 구하고 자문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파악하게 되어 원칙대로 관리 감독하고 혼자 사역을 맡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있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원칙을 알려 주어도, 심지어 세부적인 실행의 길을 말해 주어도 들을 때는 이해한 것 같지만 일할 때는 여전히 원칙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기 뜻과 상상대로 하면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원칙에 부합하는지에 관해서는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하나도 아는 게 없다. 만약 상부에서 물어보기라도 하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떻게 말하는 게 적절한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상부에 관리 감독하고 지도해 달라고 요구해야만 마음이 놓인다. 이는 자질이 너무 형편없는 것이다. 자질이 너무 형편없으면 하나님의 요구에도, 진리 원칙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준에 맞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언급할 나위도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핵심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진리를 깨달아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실행과 진입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질이 좋은 사람은 영적인 이해력과 깨달음이 있어, 일이 닥쳤을 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고,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원칙에 따라 실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능력이 다소 부족하여, 아무리 많은 도를 들어도 생명 성장이 비교적 더디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원칙을 파악하지 못하며, 많은 경우 규례만 지킬 줄 알고 본분의 성과가 조금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문서 사역을 한 지 이미 몇 년이 되었고, 원칙도 적잖이 들었지만 별다른 성장이 없었습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복잡한 문제를 만나면 당황하며 쉽사리 규례에 얽매여서 사역을 마칠 때마다 매번 리더의 점검과 지도가 필요했고, 사역 효율도 비교적 낮았습니다. 그 순간 비로소 저 자신이 정말로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에 제가 스스로 자질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진리 원칙에 따라 가늠한 것이 아니라 저의 관념과 상상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비록 사역을 조금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제 자질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역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 정도 사역 경험이 쌓였던 것뿐이지, 정말로 자질이 좋은 형제자매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실질적인 자질의 좋고 나쁨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내리게 되었고, 형제자매들의 평가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교회가 여전히 제게 문서 사역을 할 기회를 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양심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없으며, 마땅히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보고 나서 복을 추구하는 잘못된 관점이 어느 정도 바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복받기를 추구 목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잘못되었겠느냐? 이는 진리를 완전히 위배한 것이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복받는 것이 정당한 추구 목표가 아니라면 정당한 추구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겠느냐?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모든 배치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추구 목표이다. 예를 들어, 너는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관념과 오해를 가지며 순종하지 못한다고 하자. 어째서 순종하지 못하겠느냐? 네 종착지나 복받으려는 꿈이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괴로워하며, 본분을 내팽개치고 이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네 추구에 문제가 있어서이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서둘러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급선무이다. 너는 “나는 본분을 내팽개칠 수 없어.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복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해.”라고 말해야 한다. 복받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걸으면 한결 홀가분해지는데 소극적인 상태에 빠질 리 있겠느냐? 설령 가끔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 속박받지는 않을 것이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싸우면서 네 목표를 복받는 것과 종착지를 추구하는 것에서 진리 추구로 바꿀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진리 추구는 피조물의 본분이야. 오늘 나는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달았으니 가장 큰 수확을 얻은 거야. 이건 무엇보다 큰 복이야. 하나님께서 나를 원치 않으신다고 해도, 좋은 종착지가 없고 복받을 희망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거야.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무슨 이유든 내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데 지장을 줄 수는 없어. 이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내 원칙이라고.’ 이러면 육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그런데도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면 어떻게 하죠?”라고 말하는데, 그럼 또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소극적인 상태에 몇 번을 빠지든 계속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데 신경 쓰고, 진리에 공을 들이면 소극적인 상태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게 된다. 그러면 언젠가 너는 복받으려는 욕망이 사라지고 종착지와 결말에 속박받지 않으며 사는 것이 한결 홀가분하고 자유롭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올바른 추구 목표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든 없든, 저는 피조물로서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며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로서 제가 가져야 할 이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도달해야 할 열한 가지 기준을 요구하신 것이 생각났는데, 그중 한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정말로 봉사자라면 건성이나 소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봉사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매우 심각한 문제 ― 배반 2> 중에서) 생각해 보니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정말이지 자신의 요구와 욕망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배하시든 저는 마땅히 순종해야 하고, 아무런 선택권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저에게 힘쓰는 자라고 하셔도 저는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해 힘쓰고, 피조물의 자리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번에 형제자매들이 제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한 것에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고, 제가 배워야 할 공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통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복을 얻으려 하고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저의 비열한 속셈이 드러났고, 덕분에 제가 제때에 깨닫고 회개하며 이전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끝까지 저 자신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길로 들어서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묵상하니, 더 이상 이 환경에 반발심이 들지 않았고, 더 이상 제 앞날과 종착지를 위해 걱정하고 염려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보고 실행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질은 형편없어도 내 마음은 정직하네.”, 이 말은 듣기에 참 현실적이고 여기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들어 있다. 어떤 요구이냐? 바로 자질이 부족해도 괜찮지만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역시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 너는 어떤 상황, 어떤 배경에서도 반드시 정직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고, 정직한 말을 하며, 정직하게 일을 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음과 뜻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며, 꾀를 부리지 말고,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이 되지 말고, 거짓말하거나 기만하지 말아야 하며,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에 근거해 일을 해야 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자질이 너무 부족해 아무리 해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늘 기준에 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음과 힘을 다해서 일을 하지만 늘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성과가 여전히 별로 좋지 않다 보니, 결국에는 자신의 자질이 부족함을 원망하게 되고 소극적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자질이 부족하면 길이 없는 것이냐? 자질이 부족한 것은 죽을병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구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예전에 하나님은 정직하지만 우매한 사람들 때문에 슬퍼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우매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느냐? 많은 경우 우매함은 자질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진리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깊이 깨닫지 못하고, 늘 겉면에 머물고, 글귀, 도리, 규례만을 이해하는 데 그친다. 그래서 많은 문제들을 꿰뚫어 보지 못하며,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원하지 않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준 길과 방향은 무엇이냐?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입으로 말만 하면 정직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이냐?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다. 둘째, 정직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모습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네가 스스로 무척 정직하다고 말할지라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네가 “저는 자질이 부족해도 마음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본분이 주어졌을 때, 고생할까 두려워하고 잘 이행하지 못하면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핑계를 대며 거부하거나 다른 이가 이행하도록 제안한다면, 그것이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겠느냐? 그것은 분명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직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자신이 이행해야 하는 본분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 드리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측면의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육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딴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 너의 마음과 사랑을 전부 본분에 사용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며 보여야 하는 모습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자질의 좋고 나쁨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는지, 최후에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록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디지만, 진리를 추구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고,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한다면, 그런 사람도 마지막에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자질이 부족하고 일을 할 때 쉽사리 규례에 얽매여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질이 부족한 것은 불치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느리다면,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공을 들여야 하고, 상부의 설교와 교제를 많이 듣고, 무슨 문제나 어려움이 있을 때 형제자매들에게 많이 구하고, 교제하고, 상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도 성장할 수 있고, 실질적인 사역을 조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러난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를 생각해 보면, 그 중에는 자질과 은사가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오직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일한 탓에, 결국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여 출교되고 도태되었습니다. 반면 어떤 형제자매들은 비록 자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조금이라도 깨달으면 바로 실행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본분을 이행하며, 교회가 어떤 본분을 안배하든 순종합니다. 그들은 사람됨과 마음이 올바르고, 하나님과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정직하기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자질이 너무 부족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할 정도라면, 진리를 얻어 생명 성품에 변화를 이루고 구원받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진리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지,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에 달려 있으며,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후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고 실행할 길이 더욱 분명하고 환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질을 높이라는 것은 이해 능력을 키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지를 알라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나를 따르면서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엉터리로 믿는 것 아니겠느냐? 내가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너희가 따라오지 못하고 어떻게 말해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이는 너희의 자질이 매우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너희는 이해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며, 상응하는 성과를 얻기가 매우 힘들다. 수많은 말을 너희에게 직접 전할 수 없으니, 소기의 성과를 낼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의 사역에는 추가적인 항목이 필요하다. 너희는 이해 능력, 일을 바라보는 능력이 부족하기 짝이 없고, 생활 수준도 떨어지기에 나는 너희를 대상으로 ‘인간의 자질을 높이는’ 추가적인 사역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흐름으로, 이렇게 해야만 일부라도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한 말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너희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겠느냐? 인간 말종이 되어 버리지 않겠느냐? 너희는 너희를 대상으로 하는 나의 사역과 요구를 모르는 것이냐? 너희는 자신의 자질이 나의 요구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역을 그르치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너희의 자질과 인격으로는 단 한 사람도 나의 증거가 될 자격이 없고, 단 한 사람도 이후 이어질 내 사역의 중임을 감당할 수 없다. 너희는 이 사실이 못 견디게 부끄럽지 않으냐?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내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네 삶을 충실하게 살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마라.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이다. 너는 자신이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너는 아직 멀었으니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지 마라. 너에게는 인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전부 헛된 것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자질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함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비록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에 진입하는 것이 더디며, 사역 효율이 다른 사람보다 높지 않지만, 자포자기하거나 소극적으로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자발적으로 진리의 요구에 닿기 위해 힘쓰면서 관련 원칙을 배우고, 자질을 향상시키고,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이번에 형제자매들의 평가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저 자신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늘 제가 자질이 좋고 어느 정도 사역을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상태에 빠져 살았을 것입니다. 계속 그런식으로 나간다면 저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더 이상 제가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본분을 얼마나 더 오래 이행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저는 제 힘을 바쳐 제 본분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설령 언젠가 제 자질이 미치지 못해 다시 본분이 조정된다 해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자질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분에서 자발적으로 배우고 파고들었으며, 과거 본분을 이행할 때 있었던 편차와 실수를 반성하고 정리하기 시작했고, 원칙에 따라 일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본분 이행에 어느 정도 발전이 있었고, 스스로 더 향상되려고 노력할 때 본분의 효율도 향상되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느꼈고, 하나님께서 각자의 자질에 따라 각기 다른 요구를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질이 어떻든,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하고 순종하는 한, 모든 사람에게는 구원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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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저는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리더는 몇몇 형제자매가 제가 예배 전에 새 신자들의 상태와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예배에서 교제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어떤 새 신자가 예배에 나오지 않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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