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도는 나의 책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2024.5.15

중국 리후이(李慧)

저는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8남매를 두셨던 어머니는 몸이 약해 일을 못 하셨고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도, 돈을 벌어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농사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희 부모님이 무능하다고 비웃었고, 친척들도 저희를 무시하며 왕래를 꺼렸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이런 가정 환경에서 살고 있는 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남들보다 낮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길을 갈 때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결혼 후 평범한 노동자였던 남편과 달리, 그의 동창들은 다들 남편보다 잘나가서 저희를 볼 때마다 거만하게 굴었습니다. 때로는 비꼬는 말투로 말하는가 하면, 심지어 꾸짖는 듯한 말투로 말할 때도 있어서 저는 괴로움과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점차 열등감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얻었습니다.

2021년, 저는 타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장, 사모, 혹은 회사 임원처럼 어느 정도 신분과 지위가 있는 복음 대상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얽매였습니다. 제 가정 형편이 좋지 않고, 지식이나 지위도 변변치 않다 보니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저의 본분이라는 생각에 저는 하나님께 기꺼이 협력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한번은 사모인 어떤 복음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노동자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 사람 오지 말라고 하세요. 저는 지위 있고 명망 있는 사람들만 만나거든요!”라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무척 괴로웠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신분과 지위가 낮아서 복음 대상자는 그림자도 못 보는데, 이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어? 나에게 신분과 지위가 조금이라도 있고, 집안 배경이라도 좋았다면 이렇게 무시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그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고,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곳에는 저와 신분이나 지위가 비슷한 타지 출신 노동자들이 많아서 무시당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리더에게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여기 현지인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반면 저는 그저 타지 출신 노동자라 그들과 왕래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코로나 상황까지 심각해 협력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리더도 수긍해 주었습니다. 저는 돌아간 후에도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았고, 그 일은 그렇게 유야무야되었습니다.

2022년 여름, 제명된 어떤 사람이 한 교파의 복음 대상자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제명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녀는 품위 없고 옷차림도 평범한 저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겠어요? 성경은 좀 알고요?” 당시 저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교파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본 적이 있고, 성경도 조금은 압니다.”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자매님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복음 대상자가 자매님을 무시할 거라는 말이에요. 그 사람은 가정 형편도 좋고, 신분과 지위도 높거든요!” 그 순간 너무나도 괴로운 마음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옷차림이 단정하고 점잖은 편인데도, 단지 금붙이 하나 걸치지 않았다고 나를 무시하는구나. 복음 대상자도 나를 무시할 게 뻔해. 신분과 지위가 맞지 않으니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네!’ 만약 제 출신 배경이 괜찮고, 신분과 지위가 높으며, 돈과 권력을 가졌다면 복음을 전하는 게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했던 저는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구하던 중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렇게 비웃음이나 조롱, 조소, 비방의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심지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일례로, 어떤 형제자매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악인에게 고발당하거나 납치되고, 또 어떤 이는 경찰에 신고되어 정부에 넘겨진다. 붙잡혀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는 맞아 죽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복음 전파 사역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겠느냐? (그래선 안 됩니다.) 복음 전파는 모든 사람의 직책이자 의무이다. 어느 때든, 우리가 무엇을 듣든, 무엇을 보든, 어떤 대우를 받든 복음 전파에 대한 책임감을 굳게 지켜야 한다. 절대 소극적이 되거나 연약해져 이 본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복음 전파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고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복음을 전할 때 만나는 대상은 천사도, 외계인도, 로봇도 아니다. 너희가 마주하는 대상은 사악하고 패괴된 인류, 살아 있는 귀신, 짐승들이자 이 사악한 공간, 사악한 세상에서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이다. 그렇기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는 틀림없이 갖가지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소한 비방이나 조롱, 몰이해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만약 네가 정말 복음 전파를 네 책임이자 의무, 그리고 네 본분으로 여긴다면, 그런 일을 올바르게 대하고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로 인해 너의 책임과 의무를 포기하거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겠다던 초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이 책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 본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본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느냐? 이는 사람이 이번 생을 살아가는 가치이자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말세에 사역한다는 기쁜 소식을 널리 알리고 하나님 사역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복음 전파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비웃음과 모욕, 비아냥과 조롱을 당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만나는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패괴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환경과 어려움에 처하든 복음 전파의 책임을 꿋꿋이 지켜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처음에 복음 대상자가 저를 만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는 제 신분과 지위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아 무시당하고 모욕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고 굴욕을 자초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옷차림이 평범하고 신분이나 지위도 변변치 않아 무시를 당하자, 복음을 전하러 가면 복음 대상자에게 얕보이고 무시당하며 모욕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뒷걸음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체면과 자존심이 상할까 봐 걱정하면서 제 볼품 없는 출신만 탓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허영심과 체면만 너무 앞세우고, 명예와 지위만 바라는 마음이 문제였던 것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사탄 정권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갖은 고역을 치르고, 개중엔 목숨을 잃을 뻔한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굳게 서서 증거하고, 출소한 후에도 여전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증거했던 형제자매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가 겪은 일은 고난 축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단지 체면이 좀 상했다고 협력하기를 싫어하였으니, 제가 어떻게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증거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 사역에서 수백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구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피조물인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정의로운 일이자, 저의 사명이고 책임입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고통과 모욕을 당하겠지만 그것은 모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저는 더 이상 도망치거나 뒷걸음질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복음 대상자가 저를 아무리 얕보고 모욕해도, 저는 마땅히 제 체면을 내려놓고 본분을 잘 이행해야 했습니다. 아울러 저는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면 다른 사람의 외모나 신분, 지위 유무를 중시하게 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은 우러러보고 존중하며, 신분과 지위가 없고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은 무시합니다. 이는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제명된 사람과 복음 대상자가 저의 신분과 지위 때문에 저를 무시한 것도 정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자 저의 내적 상태가 어느 정도 바로잡혔고, 그 후 다시 제명된 사람과 만났을 때 그녀도 기꺼이 협력해 주었습니다. 복음 대상자를 만나 보니, 그녀가 말씀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너무나 그릇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고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통해 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신분이나 지위가 어떻든, 결국 그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어떤 가정과 가정의 배경을 정해 놓았든, 네게 주어진 신분은 수치도 영광도 아니다. 네가 신분을 바라보는 원칙은 영광이나 수치를 따르는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너를 어떤 가정에 두든, 너를 어떤 가정 출신으로 정하든, 하나님 앞에서 너는 피조물이라는 오직 하나의 신분만을 갖는다. 하나님 앞에서 너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 눈에 너는 사회에서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다른 그 누구와도 평등하다. 모두 패괴된 인간 중 하나이고 하나님이 구원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동등한 기회가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에 이를 동등한 기회도 있다. 이런 측면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네게 베풀어 준 피조물의 신분을 바탕으로 너는 네 신분을 중시하지 말고, 네 신분을 경시하지도 말며,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피조물의 신분을 올바로 대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르치고 훈계하는 원칙을 똑바로 지켜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고 평등하게 지내야 한다. 그의 사회적 지위와 사회적 신분이 무엇이든, 너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하나님 집에 와서는, 하나님 앞에 와서는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단 하나의 신분만을 갖는다. 그러니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비천한 사람도 열등감을 갖지 마라. 네게 재능이 있든 없든, 네 자질이 높든 낮든, 네 역량이 어떻든, 너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가정 배경, 가족사에 따라 사람의 등급이나 귀천을 나누는 사상 관점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비천하다고 열등감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너는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비록 자신의 가정 배경이 그다지 막강하거나 눈부시지는 않아서 자기에게 부여된 신분이 비천한데도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고, 거름 더미와 먼지 속에서 일으켜 세워 다른 사람과 똑같은 피조물이라는 신분을 네게 부여하였으니 말이다. 하나님 집과 하나님 앞에서 너와, 하나님이 택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신분과 지위가 평등하다. 이 점을 알았다면 너는 열등감을 더 이상 갖지 말고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저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가정 형편이 좋은 사람은 존귀한 신분이라 남들보다 우월하지만, 신분과 지위가 없는 사람은 천하고 열등한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고, 학력도 높지 않았으며, 배운 기술도 없어 줄곧 사람들에게 무시당했습니다. 결혼해서는 시댁이 매우 가난하고 사회적 지위도 없었기에, 저는 제 신분과 지위가 너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등감이 심했고,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선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도, 저는 신분과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복음 대상자에게 배척당하자 더욱 얽매였습니다. 제 배경이 좋지 않고 지위가 낮아 사람들에게 모욕만 당할 테니,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회피하고 물러서고 싶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이 피조물입니다. 다 똑같은 신분과 지위라 높고 낮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가정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시며, 진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누구든 구원하십니다. 저는 피조물이므로 신분과 지위에 얽매이지 말고 마땅히 저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그 후, 한 형제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 주었는데, 제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 출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묵상해 보아라. 어떤 태도를 가져야 옳겠느냐? 먼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리를 깨달아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하나님은 한 사람의 출신 가정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후천적인 학력과 그가 사회에서 쌓은 부를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네가 무슨 일이든 하나님 말씀에 따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과 하나님의 뜻에는 분명 괴리가 있을 것이다. 그 괴리가 크지 않다면 작은 오차일 뿐이니 문제 되지 않겠지만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위배된다면 진리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는지는 하나님이 정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갖는지도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지 절대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힘들고 가난하게 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구원의 희망이 없겠느냐? 그가 신분이 낮은 사회 하층민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지 않겠느냐? 그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설마 하나님 눈에도 그의 지위가 낮겠느냐?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것은 무엇에 달려 있느냐? 그가 걷는 길, 그의 추구, 진리를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달려 있다.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고 가정 형편이 궁핍하며 학력도 좋지 않은 한 사람이 착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보기에 그 사람의 신분이 높겠느냐, 아니면 낮겠느냐? 귀하겠느냐, 아니면 천하겠느냐? 귀하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한 사람의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은 무엇에 달려 있겠느냐? 바로 하나님이 어떻게 보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너는 값지고 귀하므로 귀중한 그릇이겠지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진심으로 헌신하지 않는 것을 본다면 너는 쓸모없고 귀하지 않을 테니 비천한 그릇일 것이다. 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네 신분은 높아질 수 없다. 설령 너를 옹호하고 추앙하며 숭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너는 천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사람을 이렇게 보겠느냐? 사회적 지위가 높고 많은 사람에게 추앙받으며 심지어 위엄과 명망을 자랑하는 이토록 ‘존귀’한 사람이 어째서 하나님의 눈에는 비천해 보이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보는 관점과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어째서 정반대인 것이냐?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사람과 대립하겠느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자 공의이지만 사람은 패괴된 인간이라 진리나 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할 땐 하나님의 기준이 있다.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교육 수준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며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지를 보십니다. 만약 한 사람이 사회적 지위가 높고,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진리를 추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하나님도 그를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지식도 없고 지위도 없지만 긍정적인 것을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십니다.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높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고귀한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천하고 가치 없는 존재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높여 주심과 은혜 덕분에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게 되었으니,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 제 본분을 잘 이행해야겠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한 가정이 네게 부여한 것이 영광이든 수치이든 네게 부여한 신분과 사회적 지위가 고귀하든 비천하든, 네게 가정이란 그 정도가 고작이다. 그것은 결코 네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지, 진리를 추구할 수 있을지 결정하지 못하고, 네가 진리 추구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지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람은 그것을 중요한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한 사람의 운명이나 미래는 물론 더욱이 한 사람이 걷는 길을 결정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가정이 네게 부여하는 신분은 사람들 가운데서의 네 감정이나 느낌만을 결정할 뿐이다. 네 가정이 네게 부여한 신분이 볼품없든 자랑스럽든 그것이 네가 진리 추구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서 가정이 네게 어떤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를 부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령 그것이 네게 부여한 신분으로 인해 네가 우월감을 갖거나 영예롭게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혹여 그것으로 인해 네가 느끼는 감정이 수치나 비천함, 열등감일지라도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것은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피조물의 신분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네 가정이 네게 부여한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하나님이 보기에 모든 사람에게는 동일한 구원의 기회와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할 동등한 지위와 신분이 주어진다. 한 가정이 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신분이 영예롭든, 수치스럽든 그것이 네 인성을 결정하지 않으며, 네가 걷는 길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네가 만약 그것을 중요시하고 네 인생과 생명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여긴다면 너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손에 꼭 쥐고는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다. 만약 가정이 네게 부여한 신분이 고귀하다면 너는 그것을 하나의 밑천으로 생각할 것이고, 가정이 네게 부여한 신분이 비천하다면 너는 그것을 수치로 여길 것이다. 가정이 네게 부여한 신분이 고귀하여 영예롭든, 아니면 수치스럽든, 이는 모두 네 개인적인 이해로, 네가 패괴 인성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본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 이해일 뿐으로,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진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네 진리 추구를 위한 밑천이 아니며 네 진리 추구의 장애물도 물론 아니다. 네 사회적 지위의 존귀함과 높은 계급은 네 구원의 밑천이 아니며, 네 사회적 신분의 비천함과 미천함 역시 네 진리 추구의 장애물, 더 나아가 네가 구원을 추구하는 데 장애물은 더더욱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가정 환경이나 사회적 지위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본분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고,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사역을 분명하게 교제하며 증거할 수 있는지, 전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오직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양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영화에 나왔던 한 형제가 생각납니다. 가톨릭 신부인 그는 신분과 지위가 무척 높았지만, 형제자매들이 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신분이나 지위는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꺼이 구하고 알아보았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확신하고는 받아들였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듣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얽매였던 것은 바로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는 피조물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저의 책임과 의무입니다. 복음 대상자의 신분과 지위가 높든 낮든 그들은 모두 패괴된 인간이고,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저의 책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증거하는 것일 뿐,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들이 하나님의 양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양이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3년 8월, 한 자매가 제게 한 교파의 복음 대상자를 소개해 주며 복음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복음 대상자가 부호의 집안사람으로 가족 중에 군 간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 낮은 신분과 지위랑은 격차가 너무 커서 도저히 협력하지 못하겠어. 만약 그 사람이 날 무시하고 내 증거를 들으려 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예전에 비웃음과 무시를 당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르자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을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한 사람의 출신 가정이나 사회적 지위 그리고 후천적인 학력과 그가 사회에서 쌓은 부를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네가 무슨 일이든 하나님 말씀에 따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일을 바라보는 네 관점과 하나님의 뜻에는 분명 괴리가 있을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1)> 중에서) 저는 제가 여전히 신분과 지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복음 대상자의 신분과 지위가 아무리 높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똑같이 패괴 성품을 지닌 피조물이며, 모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 최선을 다해 협력하는 데만 신경쓸 뿐, 복음 대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마음이 더는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복음 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전 평온한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그녀에게 분명하게 증거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뜻밖에도 그녀는 저희를 무척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교제하며 증거하니, 그녀는 듣고 나서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렇게 네 번째 교제를 했을 때, 그녀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저는 자매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듣는 게 참 좋네요. 앞으로 매일 저희 집에 오셔도 환영이에요.” 저를 싫어하기는커녕 복음을 기꺼이 알아보려는 복음 대상자의 모습에 저는 마음속 깊이 감동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듣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역을 분명하게 교제하며 증거하기만 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의 양이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신분과 지위를 가졌는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복음을 전하다 신분과 지위가 높은 복음 대상자를 만나면 그가 복음을 전할 만한 사람인지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에 따라 분별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마음을 다해 협력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교제하고 증거했습니다. 더는 신분과 지위에 얽매이지 않으니 제 마음에도 해방감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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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샹쉰(向尋)2023년 4월, 저는 교회에서 설교원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담당하던 몇몇 교회에서 중국 공산당이 사람들을 체포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해 적지 않은 리더 일꾼이 잡혀갔습니다. 저는 동역자 왕후이(王輝) 형제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한국 융쑤이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에 진입하려면 모든 것을 실생활로 향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실생활에 진입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생활 속에서 정상 인성으로 살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은 실패자가 될 것이다....

말벌에 46방 쏘인 후 기적처럼 살아나다

성경에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베드로전서 2:6)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접 체험을 통해 저는 이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 머리말 2017년 11월, 겨울이 막 시작된 그때는 약초를 캐 돈을 벌기에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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