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태도

2024.5.5

한국 쓰판(司凡)

2022년 8월 17일 수요일 맑음

오늘, 본분이 조정되어 문서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 본분을 이행하게 되어 정말 기뻤지만 또 무척 의외였다. 이건 하나님의 은총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훈련의 기회를 주신 것이니까 나도 열심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역이 내게는 생소하기도 하고, 듣기로는 전에 몇몇 형제자매가 이 사역을 자기 뜻대로 원칙 없이 진행하다가 책망과 훈계를 받았다고도 하니 ‘나도 이 본분을 하다가 책망과 훈계를 받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책망과 훈계에서도 공과를 배울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닐까? 이건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2022년 9월 4일 일요일 흐림

시간이 정말 빠르다. 문서 사역을 한 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리더가 원칙을 교제하고 사역을 지도해 준 덕분에 사역에 많이 익숙해지고 원칙도 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형제자매가 본분을 원칙대로 이행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이행했다가 책망과 훈계를 받는 것을 보고 나도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될까 봐 긴장됐다. 물론 리더가 책망하고 훈계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문제의 성격과 사람의 패괴 성품을 짚어 주는 것으로, 그것이 자신을 인식하고 진리 원칙에 진입하는 데 아주 도움이 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책망과 훈계는 받고 싶지 않았다. 오늘, 왕리(王力) 형제가 본분을 원칙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책망과 훈계를 받았다. 리더가 문제점을 여러 번 교제하고 바로잡아 주었는데도 형제는 계속 실수를 했다. 리더는 형제가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원칙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했다.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이 뜨끔했다. 나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단단히 일렀다. ‘반드시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실수하면 안 돼. 그러지 않으면 책망받을 거야. 언젠가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자로 드러나면 큰일이잖아?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어? 또 양성할 가치도 없잖아?’ 이런 생각을 하니 속으로 조금 긴장이 됐다. 저녁에 다시 본분을 이행하는데 계속 걱정이 돼서 조심조심 일을 했다. 혹시나 실수할까 봐서. 다른 사람이 책망과 훈계를 받는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예민한지 몰랐다.

2022년 9월 9일 금요일 맑음

요즘은 본분을 이행할 때 행여나 실수할까 봐 전전긍긍, 노심초사하고 있다. 형제자매가 내 관점을 말해 보라고 할 때면, 내 관점이 원칙에 부합한다고 확신하면서도 혹시 잘못 얘기할까 봐 몇 사람에게 확인을 받아야 내 관점을 밝힐 엄두가 난다. 솔직히 말하면 본분을 이렇게 이행하려니 정말 피곤하고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기분이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는데, 깊은 울림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몇몇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에서 일하면서 속으로 결심한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하자고, 절대 일을 그르치지 말자고, 절대 책망 훈계를 받거나 윗선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이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리더에게 들키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일만 보여 주자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조심하고 신중하게 행동해도, 그의 출발점과 걷는 길이 옳지 않으며 오직 명리와 지위를 위해서만 말하고 행동할 뿐 진리를 구하는 법이 없기에 일을 하면서 수시로 원칙을 어기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며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된다. 심지어 늘 숱한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늘 원칙을 어기면서 일하고 과오를 남기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일상적이고 흔한 일이다. 물론, 그들이 가장 피하기 어려운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책망과 훈계이다. 그들은 몇몇 적그리스도가 엄한 책망과 훈계를 받아 드러나고 도태되는 것을 보고 머릿속에 기억해 둔다. 적그리스도가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하겠느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드러나고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조심해야 해. ‘조심해서 몰아야 배를 오래 몬다’, ‘좋은 사람은 일생이 편안하다’는 말도 있잖아. 반드시 이런 원칙을 신봉해야 해. 과오를 범하거나 사고를 치지 않도록 시시각각 주의해야 한다고. 패괴와 속셈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말자. 일을 그르치지 않고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복을 받고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거야. 그럼 하나님을 믿는 것도 성공한 거라고!’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고무시키고 힘을 북돋운다. 그들은 일을 그르치면 훗날 복받을 확률이 크게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의 계산이고 생각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의 이런 생각과 계산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차치하고, 이 생각에 근거한다면 그가 책망 훈계 앞에서 마음속으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앞날과 운명을 가장 걱정할 것입니다.) 그는 책망 훈계와 앞날, 운명을 연관시키는데, 이는 그의 사악한 본성과 관계가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이 말씀은 바로 내 내적 상태를 얘기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책망과 훈계를 받을 때 나는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책망과 훈계가 임했는지, 중간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을지, 앞으로 어떻게 그런 오류를 피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는 구하지 않고 은연중에 책망과 훈계를 앞날, 운명과 깊이 관련지어 책망과 훈계가 심할수록 복받을 희망은 작아진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더욱 경계하고 조심하면서 되도록 실수를 하지 않고 책망과 훈계를 받지 않아야 복받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책망과 훈계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또 복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나는 내 앞날과 운명에 관계된 일이라면 특히나 민감했고, 무슨 일을 하든 잔뜩 몸을 사리고, 자칫하다가 책망과 훈계를 받고 좋은 미래와 종착지를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했다. 이런 내가 너무나 간사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리더는 우리에게 원칙도 숱하게 교제해 주고 직접 지도도 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새겨듣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해서 사역을 교란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책망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이성을 좀 갖춘 사람은 이런 일에서 자신을 반성할 것이다.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고 어느 부분에서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지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제때 오류를 바로잡는다면 그게 바로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거고, 그런 사람이 바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다. 책망과 훈계는 우리가 진리에 진입해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진리를 구해 스스로를 반성하기는커녕 이를 경계하고 오해하기까지 했으니,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감사하게도 하나님 말씀의 폭로 덕분에 내 내적 상태를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됐다.

2022년 9월 12일 월요일 많은 비

오늘 예배 시간에, 왕리 형제가 책망받은 일 때문에 소극적으로 지내고 눈치를 보며 위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리더가 알게 됐다. 리더는 우리에게 눈치가 보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예전의 내 내적 상태를 떠올리며 아무래도 좀 눈치가 보인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리더가 교제를 해 주었는데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왜 어떤 사람들은 여러 번 책망과 훈계를 받아도 진리를 얻지 못하고 눈치가 보인다면서 압박감과 고통을 느끼는 걸까요? 그런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얻는 것에 집중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죠. 책망을 받을 때 반발하고 화를 내며 다른 사람과 맞서고 대립한다면 그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일까요? 사실 책망받는 것은 진리 원칙을 어겼기 때문인데 전혀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소극적인 자세로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고, 진리에 맞서고 진리를 거역하는 것이죠. 진리를 거역하는 본질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니, 성질이 심각한 거예요.” 리더의 교제를 듣고 그제서야 책망과 훈계, 그리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성질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런 내적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마음이 한참 가라앉지 않았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 대체 어떤 거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과를 배우고 자기를 반성해야 할까?’

2022년 9월 14일 수요일 맑음

오늘 왕리 형제가 교체됐다. 그리고 몇몇 형제자매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본분 이행에 발전이 없어 교체되었다. 어떤 자매한테서 들은 얘긴데, 왕리 형제가 알고 보니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진리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리더가 인내심을 갖고 원칙을 교제해 주기도 하고, 가끔 책망과 훈계도 하면서 형제의 문제가 어떤 성질인지 지적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형제는 진리를 구하며 자신을 반성하지는 않고, 책망을 받으면 소극적으로 변해서 게으름을 피우고, 사역을 논의할 때 본인 관점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은 형제가 예배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잘했을 때는 리더가 안 보고, 못하면 바로 책망을 받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좀 의아했다. 형제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거잖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다. 『책망 훈계가 임했을 때 적그리스도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먼저 반발심과 거부감, 반항심이 생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본질과 성품 때문에 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적그리스도는 책망 훈계를 대할 때 완전히 거부하고 반항하는 태도를 보인다. 마음속 깊이 싫어하고 거부하며, 전혀 받아들이거나 순종하지 않고, 진실한 반성이나 회개는 더더욱 없다. 책망 훈계가 임하면 그를 책망하는 사람이 누구든, 어떤 일로 책망하든, 그의 책임이 크든 작든, 그가 저지른 잘못이 분명하든 그렇지 않든, 혹은 얼마나 많은 악을 행하고 교회 사역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든 적그리스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누군가 자기를 책망 훈계하면 그건 자기를 힘들게 하는 거라고, 자신의 약점을 잡아 못살게 굴고, 나아가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하며, 사람대접을 해 주지 않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책망 훈계가 임할 때, 자기가 과연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는지, 책망받는 일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원칙을 구했는지,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했는지, 책임을 다했는지 등을 반성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문제를 성찰하거나 돌아보지 않고, 생각하거나 묵상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뜻대로, 혈기대로 책망 훈계를 대할 뿐이다. 누가 책망 훈계를 하면 분노가 솟구치며, 마음속에 불만과 원망이 가득해진다. 누가 타일러도 안 된다. 그는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충 제멋대로 본분을 이행하는 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스스로를 인식하거나 성찰함으로써 해결하지 않는다. 또 그 가운데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고 이유를 찾아 스스로를 변호하고 변명하며, 심지어는 도발하고 선동하는 성격의 말을 하기도 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사람이 어떤 환경에 있든, 특히 사람이 역경에 처했을 때나 하나님이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할 때 사람은 제일 먼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언행과 패괴 성품을 성찰해야지, 하나님의 말씀과 행사의 옳고 그름을 검사하거나 연구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면 네가 해야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패괴 성품이 있고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면 문제는 커진다. 패괴 성품이 있고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너는 네 뜻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기분과 취향, 그리고 감정 내키는 대로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과 교류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진리를 구하지도, 실행하지도 않는다면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너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고, 정죄하며 하나님께 대항하고, 심지어 속으로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을 저버리며,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고 하나님의 행사가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네게 이런 것들이 생겨난다면 아주 위험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위험하다.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3)> 중에서), 『수시로 소극적인 사람은 모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다.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극성은 마귀처럼 너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너를 계속 소극적으로 만들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불복하며 불만을 갖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만들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 맞서고 대항하고 대들게 되면 너는 끝장나게 되고, 너의 추한 몰골이 드러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너를 폭로하고 해부하고 규정하면, 너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비로소 눈물을 흘릴 것이며, 그때 너는 주저앉아 가슴을 치기 시작할 것이다. 너는 그저 하나님의 징벌을 기다려라!(<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나는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지 여부가 가장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똑같이 책망과 훈계가 임하지만 진리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기서 자신을 반성할 수 있고, 아무리 엄한 책망과 훈계를 받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이 과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는지 깊이 생각한 다음, 거기서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운다. 그런 사람도 물론 소극적이고 연약해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본인이 너무 깊이 패괴되고 자신이 범한 과오의 성질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자책하며 후회해서 스스로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계속 소극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 속에서도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본인 행동의 성질을 명확히 파악한 뒤에는 책망과 훈계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럴 때 사람의 내적 상태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비록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입에 담진 않지만 절대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자신을 인식하지도 않는다. 대신 속으로 겨루고, 반항하고, 따지다 보니 생각할수록 속상하고, 괴롭고, 급기야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자연스레 소극적인 정서가 생긴다. 이런 소극적인 정서에는 현실에 대한 불만,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책망과 훈계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진실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고, 회개하고, 변화하는 계기가 되고, 하나님 믿는 길에서의 전환점이 된다. 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드러나 도태되는 계기가 된다. 자주 소극적인 상태를 보이는 사람은 모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고, 진리를 싫어하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발전하지 않는다. 책망과 훈계를 받았을 때 왕리 형제는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역하는 성질과 그 결과도 인식하지 못하고 실행 원칙은 더더욱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치를 보고, 움츠러들고, 의욕을 잃었다. 처음엔 나도 그게 단지 책망과 훈계를 받고 나서 생긴 소극적 상태이고, 그건 정상이라고, 며칠 후 반성하고 인식하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형제자매한테 듣기론 형제가 전에도 그랬다고 한다. 겉으로는 아주 열심히, 적극적이지만, 사역에 문제가 생겨서 지적이나 책망을 받으면 바로 움츠러들고 의욕을 잃어서 토론할 때 의견도 별로 내지 않는다고 한다. 또 형제가 말하기를 평소에 사역을 하면서 자기가 건의를 많이 하면 문제도 그만큼 많이 드러나는데, 건의를 적게 하고 관점을 덜 말할수록 문제도 그만큼 덜 드러난다면서 지금 책망과 훈계를 받으니까 본분 이행할 때 눈치가 보여서 위축되고, 답답하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형제의 이런 소극적 상태의 본질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고, 불평하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다. 여기서 드러내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나는 그제서야 이런 소극성의 이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성품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왕리 형제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 내게는 경종을 울리는 일이 아닐까? 특히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3)> 중에서) 전에는 이 말씀이 별로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최근 체험한 이 일을 통해 속으로 이 말씀에 특히 ‘아멘’ 하게 되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았을 때 진리를 구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이번에 교체된 형제자매들은 사실 은사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 바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싫어한 점이었는데, 그 때문에 본분 이행에 줄곧 성과가 없어서 결국 조정되고 교체되었다. 묵상할수록 진리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되었다.

2022년 9월 15일 목요일 비 조금

요 며칠 계속 그날 저녁 리더가 했던 교제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하나님 말씀이 있었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를 찾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심판에서 도피하는 사람이자 크고 흰 보좌 앞에서 도망가는 꼭두각시, 배신자라고 하겠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전에 “심판에서 도피하는 사람”, “크고 흰 보좌 앞에서 도망가는 꼭두각시, 배신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을 때 머릿속에 얼른 떠오르는 건 종교 관념을 고집하는 종교계 사람들이었다. 은혜에 기대어 구원받을 생각만 하고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거부하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서 도망가는 꼭두각시, 배신자라고. 그런데 스스로 반문해 보았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이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는 뜻일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실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나서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세 심판을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세 심판을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책망과 훈계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책망과 훈계도 못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일 리는 만무하다. 나는 또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책망 훈계를 대할 때 사람이 최소한 알아야 할 한 가지가 무엇이냐? 책망 훈계는 사람이 본분 이행에 합격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이자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데 있어 날마다 마주하고 늘 겪게 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책망과 훈계를 떠날 수 없다. 한 사람에 대한 책망과 훈계가 사람의 앞날과 운명에 관련되느냐? (관련되지 않습니다.) 그럼 왜 책망하고 훈계하겠느냐?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서냐? (아닙니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원칙 있게 본분을 이행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맞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이해다. 한 사람에 대한 책망과 훈계는 일종의 징계이자 채찍질이면서 당연히 사람에 대한 도움과 구원이기도 하다. 책망과 훈계는 너의 잘못된 추구 방향을 신속히 바로잡게 해 줄 수 있고, 현재 네게 존재하는 문제와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제때 인식하게 해 줄 수 있다. 어쨌든 책망과 훈계는 네가 잘못을 인식하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네가 실수하거나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제때 너를 구해 줄 수 있고, 네가 큰 화를 초래하지 않게 해 줄 수도 있다.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큰 도움이자 구원 아니겠느냐?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책망과 훈계를 올바르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실행 길을 너무나도 분명히 알려 주셨다! 사실 책망과 훈계는 사람의 앞날, 운명과는 무관하다. 책망하는 말이 호된 말이든, 정곡을 찌르는 말이든, 정죄하는 말이든 그것은 모두 사람이 자신의 패괴와 사역의 오류를 인식하고, 진리를 구해 원칙에 따라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책망과 훈계가 늘었다거나 책망하는 말이 엄하다고 해서 앞날과 좋은 운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책망과 훈계를 안 받았다고 해서 좋은 앞날이 있다는 뜻도 아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늘 책망과 훈계를 받는데, 때로는 책망하는 말이 정말 엄하고 마음을 찔러 마치 드러나고 정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에 진리를 구하고 자신을 반성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또 자신의 결점과 오류를 인식하고 나면 조금 달라지고, 생명이 자라나서 나중에는 중요한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가 하나님을 믿은 후 어떤 태도로 책망과 훈계를 대했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9년째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그동안 책망과 훈계를 겪거나 큰 좌절과 실패를 겪은 적이 거의 없었다. 책망과 훈계에 대해 늘 남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책망과 훈계를 받는 것은 안 좋은 일, 드러나고 정죄되는 일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책망과 훈계를 받는 걸 보면 잘못하다간 나도 책망과 훈계를 받을까 겁나서 바로 몸을 움츠렸다. 나는 책망과 훈계를 정죄되고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해 속으로 거부하고 반발했다. 그저 안일하게 하나님을 믿으려고만 했다. 이런 추구가 교회에서 떡으로 배만 불리려는 사람들과 뭐가 다를까? 하나님 말씀을 많이 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 책망과 훈계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그에 대한 진실한 인식도 없었고,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런 식이면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발전이 있을 수 없고, 진리를 얻어 생명 성품에 변화가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징벌받는 대상이 될 게 뻔하다. 생각할수록 내 내적 상태가 위험하게 느껴졌다. 나처럼 이렇게 안일함을 탐하고, 은총을 추구한다면, 설령 책망과 훈계를 받지 않더라도 그것이 좋은 결말과 종착지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계속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서 패괴 성품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구원도 받지 못할 것이다. 책망과 훈계가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드러낸다. 전에는 늘 책망과 훈계를 받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거나 하나님께 정죄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관점은 너무나 치우친 관점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야 제 무지와 어리석음을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본성이 진리를 싫어했습니다. 책망과 훈계에서 계속 도망치고 숨으려 했습니다. 하나님, 회개하겠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공과를 배우겠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홀가분해지면서 동경과 갈망이 생겼다. 나도 책망과 훈계를 체험해서 생명이 자랄 수 있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2022년 10월 5일 수요일 구름 많음

오늘은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어떤 사역을 하는데, 내가 원칙을 구하지 않고 멋대로 본분을 이행해서 재작업하게 되는 바람에 사역이 지체되었다. 리더는 문제의 성질을 지적했고, 또한 내가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자질이 부족하다며 그렇게 하는 건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모습이라고 책망했다. 리더가 책망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괴로운 나머지 나 자신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리더는 분명 나를 꿰뚫어 보고 내가 이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 언제든 교체될 거야.’ 생각할수록 기가 죽었다. 나는 내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걸 의식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오늘 책망과 훈계를 받았는데, 어떤 공과를 배우고 어떻게 스스로를 반성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소극적인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우치고 이끌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나니, 책망과 훈계를 받았을 때는 진리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극적인 정서로 살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나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고, 어느 부분에서 영적인 이해력이 없었는지 잘 반성해야 마땅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번에 책망받은 이유는 주로 내가 본분을 마음대로 이행하고, 원칙에 대해 생각하고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에 리더가 관련 원칙을 교제해 주었지만, 나는 그저 규례나 글귀에만 매달렸다. 심지어 그 원칙들은 나도 몇 번 들어서 잘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더 이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맹목적으로 스스로를 믿었기 때문에 원칙은 한쪽으로 제쳐 둔 채,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내 생각이 너무 강해서 원칙대로 하지 않고 무턱대고 규례만 내세웠다. 그게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약 이런 책망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무감각해서 본분을 괜찮게 이행하고 있다고 믿고, 정말 어떤 악행을 저지를지 몰랐을 것이다. 책망과 훈계가 나에게는 일깨움이자 보호였던 것이다. 이 점을 인식하자 소극적인 정서가 사라졌다. 그리고 열심히 원칙을 구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고 다짐했다.

2022년 10월 8일 토요일 맑음

오늘, 리더가 우리와 예배를 드리면서 차근차근 본분 이행의 원칙을 교제해 줬다. 그리고 최근에 어떤 수확이 있었냐고 묻고, 진리를 향해 노력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어떤 상황이 임해도 공과를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러면서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네가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든, 혹은 책망 훈계가 임해 드러나든 그것은 다 나쁜 일이 아니다. 리더 일꾼의 책망이든, 혹은 형제자매들의 책망이든, 어떤 책망과 훈계를 받든 그것은 다 좋은 일이다. 너는 기억해야 한다. 즉, 네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든 사실 너는 다 유익을 얻은 것이다. 체험이 있는 사람은 이 점을 다 입증할 수 있다. 여하튼 책망 훈계가 임하거나 드러나는 것은 다 좋은 일로, 그것은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다. 그것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네게 생명 체험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자신의 패괴된 본모습을 알 수 있는 기회도 조건도 배경도 얻지 못한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아 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패괴된 것을 파헤칠 수 있고, 확실히 분별할 수 있다면, 이는 좋은 일이다. 이는 생명 진입의 큰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성품 변화에 큰 도움이 된다. 진실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개과천선하여 새사람이 되고 거듭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면 진리가 생명이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 수 있게 되고, 진리를 갈망하고 실행하며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네가 이 기회를 잡아 실패하고 좌절했을 때 진지하게 스스로를 반성하여 진실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면, 소극적이고 연약한 상태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 고비를 넘기면 크게 한 걸음 성장할 수 있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이 말씀을 듣고 감동받은 나머지 눈물이 계속 흘렀다.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마음은 괴롭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소극적으로 변할 때도 있다. 하지만 겪고 나면 확실히 하나님 사랑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이 있었기에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 내 패괴 성품을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었고, 내가 어느 부분에서 잘못했는지 반성할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해 약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놓이고 평안해졌다. 책망과 훈계가 없었다면 나도 내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떤 교란과 방해를 저지를지, 사역 과정에서 또 어떤 문제와 빈틈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이런 책망과 훈계 덕분에 나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원칙을 구하는 것을 중시할 수 있었다. 본분 이행은 정말 책망과 훈계 없이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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