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려 하지 않으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2026.5.29

한국 단이

저는 교회에서 복음 사역자들이 간증하도록 양성했습니다. 이 본분을 막 이행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어려움에 부딪히면 기도도 자주 하고 경험이 있는 형제자매들을 찾아 구했습니다. 스스로도 실제로 진리로 무장하고, 복음 관련 영화와 영상도 보았습니다. 얼마 후, 저는 복음 전파에 관한 원칙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고 본분에서도 성과를 좀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팀에서 제일 잘하는 건 아니어도 중간은 가니까, 이대로만 유지하면 되겠지.’ 저는 스스로 만족하는 내적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책임자는 우리에게 진리로 많이 무장해야 종교인들의 관념을 해결할 수 있다며, 현실에 안주해 본분을 이행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여러 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저는 입으로는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본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진리를 많이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도 찾아야 하고, 몇몇 종교인의 관념은 내가 해결하지 못하면 남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가도 많이 치르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하잖아! 지금 복음 전파 원칙도 어느 정도 갖췄고 본분도 성과가 좀 나니까 이대로 유지해도 괜찮을 거야. 매일 신경을 곤두세우면 얼마나 피곤한데! 게다가 전염병에 걸린 후로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무리하다가 건강이라도 잃으면 어떡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마음을 들여 진리를 갖추고 싶은 생각이 더더욱 들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복음 사역자들에게 상황을 알아보았는데, 그때 사역자들이 복음 대상자의 관념에 맞추어 교제하고 해결해 주지 않아서 결국 복음 대상자가 관념을 품고 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사정을 알아보니, 사역자들은 복음 대상자의 관념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부족한 점이 많으니 예배를 통해 더 많이 교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저 역시 그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에게 교제해 주려면 경험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물어봐야 하고, 자료도 찾고 영화에서 관련된 부분도 봐야 하니까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 그럼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서 저는 그저 관련 영화 자료 하나만 찾아서 복음 사역자들에게 보내 주면서 각자 알아서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거둘 수 있는 성과가 아주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차일피일 미루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몇 명의 복음 대상자가 똑같은 관념 때문에 교회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한번은 사역을 결산할 때, 책임자는 제가 본분을 기계적으로 이행하고 그저 놀지만 않았다 뿐이지 성과를 구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해 건성으로 대충 하며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책망했습니다. 책임자의 그 말을 듣고 저는 마음이 몹시 찔렸습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가 확실히 본분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고 성과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니, 우선은 이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반성하며 인식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전에 들었던 하나님 말씀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마땅히 경험해야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너를 위해 배치한 것이고 하나님이 네게 안배한 것이라면, 설령 네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것이 너를 고생스럽게 하고, 너의 존엄과 인격이 도전받고 억압당할지라도 순종해야 한다. 네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중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과 일, 사물에는 모두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공과를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책망과 훈계를 받은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제가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가 제 문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리더는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지만, 어떻게 관리 노릇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런 자가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하겠느냐? 사람들의 마음을 산다. 그는 “신임 관리는 부임하자마자 눈에 띄는 일을 한다.”라는 식으로 먼저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몇 가지 일이나 생활 혜택과 관련된 몇 가지 일을 하여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준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리더로 보여지게 하고, “그는 우리의 부모 같은 리더다!”라고 칭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정식으로 자리에 오른다. 그는 대중적 기반이 마련되었고 지위도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지위의 복을 누리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 격언은 바로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인생은 괴롭고 짧으니, 어찌 제때에 즐기지 않겠는가?”,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한다.”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 하루 누렸으면 그만이고 한순간 즐겼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리더가 마땅히 어떤 책임과 본분을 이행해야 할지 고려하지도 않는다. 그저 형식적으로 글귀와 도리를 읊어 대고 체면을 세우는 일을 약간 할 뿐, 실질적인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다. 교회에 존재하는 실제 문제들을 파고들어 철저히 해결하지도 않는데 그런 표면적인 일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은 사람을 기만하는 행위 아니겠느냐? 이런 거짓 리더 부류의 인물에게 중임을 맡길 수 있겠느냐? 그들이 리더 일꾼을 선발하는 하나님 집의 원칙과 조건에 부합하겠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말의 양심과 이성조차 없으며, 조금의 책임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감투를 쓰고 리더가 되고자 한다. 어찌하여 염치를 모르는 것이냐?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질이 부족하면 리더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책임감조차 없는 폐인은 리더가 될 자격이 더더욱 없다. 먹는 것만 밝히고 일은 게을리하는 이런 부류의 거짓 리더는 어느 정도로 게으르겠느냐?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말재간이 있고 자질도 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교회 사역에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사역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문제가 갈수록 많아져도 내버려둔 채 상관하지도 않고, 여전히 형식적으로 표면적인 일만 계속해 나간다. 그로 인해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교회 사역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느냐?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워지지 않겠느냐?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하나님은 거짓 리더가 선출되면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기 위해 겉치레로 사역을 하며 환심을 사지만, 목적을 달성하면 육의 편안함을 즐기기 시작한다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이 본분을 건성으로 대하며 형식적으로 이행하고, 예배에 참석해도 글귀와 도리만 말할 뿐 실제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아서 교회 사역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각 사역에 성과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거짓 리더를 몹시 혐오하십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처음 이 본분을 이행했을 무렵에는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기 위해 실제적으로 고생하며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사역이 조금 나아지자 마음을 쓰고 고생해서 진리를 갖춤으로써 형제자매들이 복음을 전하며 겪는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해 줄 생각은 않고, 오히려 어떻게든 일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복음 사역자들에게 관련 영화 영상만 달랑 보내 주고 자기들이 알아서 복음 대상자의 질문을 해결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겉치레만 하는 거짓 리더였습니다. 저는 “세상을 사는 데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한다.”, “사람은 스스로를 아껴야 한다.”와 같은 사탄 독소에 따라 살면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누릴 줄 알아야 하고, 하루라도 더 즐기고 한순간이라도 더 쾌락을 누려야 한다고, 매일 고생만 하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고, 너무나 무가치한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상 관점의 지배를 받아 나태해지고 타락했으며, 몹시 쉽게 자만하고 안주했습니다. 성과가 조금만 나면 우려먹으려 하고, 제 육을 조금도 고생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대학에 가려고 나름대로 대가를 치렀지만, 나중에 성적이 조금 오르자 금세 만족해서 더는 공부에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늦잠을 자기 시작하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결국은 평범한 대학조차 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분에 약간의 성과만 있어도 발전하려 하지 않고, 제가 아는 진리 원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 시간이 좀 남아도 더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사역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도 대충 얼버무리며, 가능하면 건성으로 때웠습니다. 저는 정말 게으르고 간사했으며, 인격과 존엄성도 전혀 없이 하는 폐인이었습니다! 지금 제 본분 이행의 성과가 떨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서 얼굴을 가리신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는다면 결국 드러나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진리를 많이 갖춰서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라는 것이며, 이는 저에게 본분을 이행하여 선행을 예비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철없이 오직 제 육만 생각하며 최소한의 책임조차 다하지 않았으니, 너무나 비천하게 살았습니다! 정말 제 뺨이라도 힘껏 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에게 너무나 깊이 패괴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탄의 관점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육을 저버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관련 자료를 찾은 후, 복음 대상자의 문제에 맞춰 어떻게 차근차근 교제하고 해결할지에 대해 복음 사역자들과 소통했습니다. 결국에는 복음 대상자들은 관념이 해결되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협력하자 제 마음은 평안하고 든든했으며, 이것이 진정한 본분 이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분의 성과가 조금 향상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으로 진리를 구해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던 관념들도 이제는 어떻게 교제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할 때 발전하려 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조금은 꿰뚫어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에게 충분한 자질을 주었고, 뛰어난 조건까지 주었다. 그리하여 네가 여러 일을 꿰뚫어 보게 하고, 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너는 올바른 태도로 본분을 대하지 않고, 진심이 없으며, 충성심은 더더욱 없다. 최선을 다해 잘 해내려고 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키게 된다. 그렇기에 사람이 게으름을 피우며 늘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귀찮다고 여겨 하지 않으려 하고, 마음속으로 ‘왜 다른 사람한테는 안 시키고 나한테 시키는 거야?’라고 불평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네게 본분이 임한 것은 불운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이며,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너는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여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죽도록 힘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본분을 잘 이행하고 진리를 깨달아 문제를 해결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든든해지며,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아 하나님 앞에서 자신감을 갖고, 허리를 펴고 처신할 수 있다. 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늘 건성으로 무성의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과오이다. 설령 어떤 손실도 초래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 과오는 네 마음속에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그 과오는 끝없는 블랙홀처럼 언제 떠올리든 고통스럽고 불안해질 것이며, 가슴을 찌르는 듯한 괴로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럼 일말의 평안과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후회와 괴로움으로 인한 고통이 평생 따라다니며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영원한 한 아니겠느냐? 그럼 하나님이 보기에는 어떻겠느냐? 하나님이 진리 원칙으로 이 일을 규정하면, 그 성질은 네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진다. … 어떤 이는 본분을 이행할 때, 겉으로는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부에서 배치하는 대로 따르지만, “당신은 본분을 이행할 때 대충 건성으로 임하지는 않습니까? 원칙대로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면서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제멋대로 굴지는 않습니다.”라고만 한다. 또 그에게 책임을 다했느냐고 물으면 “어쨌든 제가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보아라. 그는 늘 이런 태도로 본분을 이행한다.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행동하며, 안일하게 대한다. 막상 결점을 찾으려면 딱히 없지만, 진리 원칙대로 가늠해 보면 그가 이행한 본분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불합격이다. 그런데도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예전에 하던 대로 한다.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도 늘 그랬던 것처럼 하지 않으며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는 구제 불능 아니겠느냐? ‘당신이 천 가지 묘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 생각은 변함없어. 60kg짜리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나를 당신이 어쩔 건데? 내 태도는 그냥 이거야!’라고 생각하며 줄곧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다. 그는 비록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선행도 그다지 많지 않다. 너는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있다고 보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과 본분 이행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나온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미지근한 물처럼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이런 태도가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악을 행하고 방해하면 금방 정죄되겠지. 하지만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임하면 고생스럽잖아. 게다가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하면 책망받고, 심하면 교체될 수도 있다고. 그러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그러니 차지도 더웁지도 않게, 미지근하게 있으면서 시키는 것만 좀 하고 시키지 않는 건 절대 하지 말자. 그러면 힘들지도 않고, 남들도 흠을 잡을 수 없을 테니 얼마나 좋아!’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이러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실행할 때 어떻게 변해야겠느냐? 만약 네가 시종일관 진리 추구의 길을 가고자 구하지 않고 사탄의 철학대로 살기를 고수한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없을 것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특히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구원받을 희망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씀에 마음이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팠고,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거스를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본분을 대할 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전력을 다하지 않고 늘 여지를 남기며, 대가를 치러야 할 때 공을 들이기 싫어하고 항상 자신의 육만 고려하며, 본분 이행에 진심이 없고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역에 손해만 가져오고 하나님께 과오를 남길 뿐입니다. 이것은 바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희망은 없습니다. 그 시기 본분을 대했던 제 태도를 생각하니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저는 늘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을 두려워하며 진리 원칙을 갖추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과거의 성과를 우려먹으며 약간의 성과에 만족했습니다. 비록 육은 편했지만 본분 성과는 떨어지고, 제가 양성하던 복음 사역자들은 발전이 없었으며, 많은 복음 대상자가 제때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사역에 끼친 손해는 제가 만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지만, 이미 남겨진 과오는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본분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방해나 교란도 하지 않았으니, 이대로 본분을 이행하면 육적으로 고달프지 않으면서 마지막에는 복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미한 헌신을 큰 이익과 맞바꾸려고 하면서 요행을 바라고 꾀를 부렸으니, 저는 정말이지 너무나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제 불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십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고 진심이 없다면, 그런 본분 이행은 선행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자 악행이고, 결국 하나님께 혐오를 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속으로 겁이 나서 서둘러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워낙 교활하고 간사해서 본분을 너무 무성의하게 대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 회개하기 원하오니, 제가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묵상 시간에 하나님 말씀 찬양을 들으며 사람이 사는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값진 삶을 살아낼 수 있다

1.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이겠느냐?한편으로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네가 사는 동안 너는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단한 사명과 본분, 책임을 완수하는 건 차치하고, 최소한 한 가지 일은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자신의 위치를 찾은 후 자기 본연의 위치에 제대로 서고 그 본연의 위치를 지키면서 모든 심혈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자기가 해야 할 일, 완수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완수함으로써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놓을 때 스스로 마음에 참소나 아쉬움 없이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위안과 수확이 있으며 값진 삶이었다고 느낀다.

2. 삶이 값지고 마지막에 이런 수확을 얻기 위해 육체가 피로하여 병에 걸리거나 몸이 병들더라도 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은 가치가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육적으로 즐기려는 것도, 놀고먹는 것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삶의 가치가 아니며 올바른 길도 아니다. 사람의 삶의 가치,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사역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길, 올바른 일이라 한다. 사람이 하나의 가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고 진리를 추구하고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든 다 가치가 있다.

3. 네가 만약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추구하고 인생의 바른길을 걷기를 원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의미 있고 값진 삶을 살기 원한다면, 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대가를 치르며 시간과 세월을 들이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기간에 질병을 좀 겪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너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평생 온종일 마음 편히 빈둥거리며 토실토실 건강하게 관리한 몸으로 장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 이 둘을 비교하면 어떤 삶이 가치 있느냐? 어떤 삶이 결국 죽음에 직면했을 때 마음에 위안이 되고 아쉬움이 남지 않겠느냐?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내면 진리를 얻게 되고, 마음속에 위안과 기쁨이 생긴다.

―<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이 찬양을 듣고 속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때 비로소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과 편안함이 있고, 이렇게 사는 삶이야말로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육의 편안함을 즐기면 그때는 편하지만, 지나고 나면 허무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본분 이행에 신경 쓰지 않고, 힘들고 고생스러울까 봐 문제 해결에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이 지난 후 마음이 자주 불안하고 양심에 참소를 받았고, 성령도 제게서 얼굴을 돌리고 하나님의 함께하심도 느낄 수 없어 마음이 어둡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 주시어 이 본분을 이행하게 하셨으니 마땅히 제 능력을 다해 사역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가족의 몰이해와 사람들의 비웃음, 비방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비록 육적으로는 무척 힘들고, 지치고, 마음도 약해졌지만,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부탁이기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견뎌 내야 한다는 생각에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임했고, 마침내 방주를 완성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했습니다. 비록 제가 노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 능력을 다해 하나님의 양을 하나님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께 구원받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입니까!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정말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추고 있고, 문외한이 아니라 정말 네 책임 범위 내의 업무를 이해하고 있다면, 네가 하나만 실천해도 본분에 충성을 다할 수 있다. 그게 무엇이냐?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일에 마음을 쓰고 사람에게 마음을 쓰면 본분에 충성을 다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다. ‘마음을 쓰는 것’이 실행하기 쉽겠느냐, 어렵겠느냐? 어떻게 실행하겠느냐? 귀로 듣는 것도 아니고 머리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쓰는 것이다. 사람이 정말 마음을 쓸 수 있게 되면, 그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태도를 지니는지, 한 가지 일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눈에 보이거나 일부 사람들이 하는 주장과 논조가 귀에 들릴 때 마음을 써서 고민하고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면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생각, 관점, 태도가 생겨나고, 이런 생각, 관점, 태도는 그가 한 사람 혹은 한 가지 일에 대해 깊고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갖게 해주는 동시에 적절하고 정확한 판단과 원칙이 생기게 해 준다. 사람이 이렇게 마음을 쓰는 태도가 있어야 본분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7)> 중에서) 사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진심입니다. 마음만 쓴다면 사람은 본분에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이 문제들을 두고 구하고 묵상하면 해결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역 성과는 자연히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문제가 눈앞에 있어도 발견하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 되고, 본분의 성과는 점점 더 떨어질 뿐입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을 쓰는 것은 정말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본분을 처음 이행했을 때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자주 기도하며 저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앙망했더니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 서서히 본분 이행의 원칙들을 파악하게 되었고, 사역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분 이행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며 건성으로 임하고, 문제를 발견하고도 해결하지 않자 본분의 성과는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결국 복음 대상자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마음을 쓰지 않은 것은 정말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기록한 다음 마음 써서 묵상했습니다. 본분 이행의 태도와 관련된 문제는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서 복음 사역자들에게 교제해 주었고, 복음 대상자의 관념 해결과 관련된 문제는 관련 자료를 찾았습니다. 모르는 것은 형제자매들에게 물어본 뒤, 어떻게 복음 대상자의 관념에 맞춰 해결할지에 대해 복음 사역자들과 교제하고 토론했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무척 든든했습니다. 이번에 책망과 훈계를 겪으며 당시에는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 본분 이행 태도를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육을 즐기던 제 근원에 대해 조금 인식하게 되었고,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만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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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나 몰라라 하지 않겠습니다

이탈리아 마사(Martha)2021년 6월, 저는 교회에서 영상 사역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사역량이 늘어나면서 교회에서는 저에게 다른 팀의 사역도 맡도록 안배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지금 맡고 있는 사역도 충분히 바쁜데, 더 많은 사역을 맡으면 더...

마침내 본분을 이행하는 법을 깨닫다

이탈리아 신청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점 변화하고, 또 그 과정에서 비로소 충성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네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게 되고, 더 실제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본분을 잃은 뒤의 후회

이탈리아 둥워이(董微)전 배우 본분을 이행한 지 벌써 몇 년이 됐어요. 2022년 5월 즈음이었죠. 리더가 저한테 영상 검사를 겸해 감독 본분을 훈련하라고 했어요. 솔직히 압박감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노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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