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한 후의 반성

2025.6.19

2023년 3월 6일, 리더는 우리 몇몇 동역자들과 예배 시간을 정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예배가 꽤 기다려졌을 겁니다. 다 같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인식을 나누고 각자의 체험을 교류하며, 사역 중 겪었던 여러 문제와 어려움에 대해 토론하고 상의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두 달 전, 리더가 제 사역에서 복음 사역 진척이 더디고, 인재를 발견해도 제때 양성하지 못하는 등 적잖은 문제들을 지적하셨고, 제가 예배에서 교제할 때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이번 예배에 리더가 와서 그동안 제가 어떻게 체험했고 어떻게 잘못을 바로잡아 실행에 진입했는지 물으시는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리더는 제가 사역도 제대로 못 하고 생명 진입도 형편없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그러면 리더와 동역자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요?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몹시 긴장되어, 아직 점검하지 못했거나 파악하지 못한 사역이 무엇인지 예배 전에 빨리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밖에 지난번에 리더가 제가 스스로 높이고 드러내는 문제를 지적하셨을 때, 저도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좀 보긴 했지만, 반성하고 진입하는 데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만약 진실한 인식을 이야기하지 못하면, 리더는 제가 책망과 훈계를 받고도 자신을 반성하는 데 소홀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전에 읽었던 하나님 말씀을 다시 보고 묵상해서 깊이 있는 인식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본분 이행에 있어 문제도 많았고 패괴 성품도 드러냈지만, 나중에는 진리를 구하고 실행에 진입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리더에게 보여주고, 그러면 리더 마음속의 제 이미지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배 당일, 리더는 평소처럼 먼저 우리와 각자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동역자들이 먼저 이야기하게 하자. 그들이 어떻게 체험하고 인식했는지 들어보고, 그들의 교제에서 빛 비춤을 좀 얻고, 이 기회에 내 체험과 인식도 되돌아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역자들의 교제가 다 실제적인 것을 듣고 저는 조금 긴장되었습니다. ‘내가 교제를 잘 못 하면 리더 마음속에 내 이미지가 더 안 좋아질 텐데.’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교제할 때 어떻게 표현해야 더 명확하고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예전의 그 인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저는 조금 낙심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깨달은 대로 이야기하자.’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 이미 리더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이따가 내가 이야기하는 인식이 그렇게 얕은 것을 리더가 들으면, 사역도 제대로 못 하는 데다가 생명 진입도 없다며 나를 관찰 대상이나 교체 대상으로 분류하지 않을까? 만약 교체되면 형제자매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안 돼, 그래도 좀 표현해야 겠어.’ 제 상태와 인식을 이야기할 차례가 되자 저는 깊이 있는 인식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말을 할수록 정리가 안 됐습니다. 제 말이 끝나자 리더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이야기했는데, 주된 상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요.” 한 동역자도 말했습니다. “좀 소극적인 것 같은데, 인식과 진입이 있다면 소극적이지 않아야 하잖아요.”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제 글렀네. 잘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망신만 당했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수록 난처해져서 이 예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습니다. 그 후 리더는 제 상황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고, 고발 편지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번 고발 편지 처리 상황은 내가 잘 아니까,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해서 좀 만회해야겠다. 그런데 파트너 자매도 참여했으니, 만약 자매가 먼저 말하면 리더는 자매가 교제하고 처리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안 돼, 내가 먼저 말해야 해. 아까 이미 망신당했으니 이번에는 체면을 좀 살려야지.’라고 생각하고는 제가 먼저 대답하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너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급하게 말하느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고, 결국 파트너 자매가 보충해서 교제해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앞장서서 자신을 드러내려다가 오히려 망신만 당한 것입니다. 밤이 되어 낮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니 마음이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고, 저도 모르게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체면을 만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답답해지고 머리도 멍해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묵상 시간에 저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일을 하고 본분을 이행할 때, 너희는 늘 자신의 행위와 속셈을 성찰하느냐? (성찰하는 경우가 적습니다.) 성찰하는 경우가 적은데,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자신의 진실한 내적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스스로 성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예배에서는 제 속셈이 올바르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교제에서 제 체험과 인식을 내세워 스스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 했습니다. 제 속셈과 행동을 반성할수록, 예배 때 제 행동에 간사함이 묻어났고 다른 사람을 속였다는 것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살피니 갈등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예배에서 어제 내 상황에 대해 리더에게 말해야 할까? 말했다가는 리더와 동역자들이 내가 예배 때 그런 비열한 속셈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나를 어떻게 볼까?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겠어?’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 리더를 찾아가 어제의 상태에 대해 말했습니다. 다만 그때는 동역자들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고 리더에게만 따로 말했습니다.

나중에 당시 제가 드러냈던 것들을 다시 반성하면서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의 위선적인 행동을 폭로하신 것이 떠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바리새인’이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바로 외식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가식적이고 위장한다. 어떻게 위장하느냐? 훌륭한 사람인 양,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양 위장한다. 사실, 그가 훌륭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모습과 드러내는 것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면은 어디 있느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깊이 감춰둔 것이다. 겉모습은 전부 위장한 것이고 모조리 거짓된 것이다. 이는 사람만 속일 수 있을 뿐 하나님을 속이지는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그가 하는 말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다 진리 실제가 아닌 글귀와 도리이다. 어떤 사람은 글귀와 도리를 떠들어 대는 것만 중요시한다. 누가 수준 높은 설교를 한다면 바로 따라 한다. 그 결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도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져 많은 사람이 탄복하고 숭상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며 무척이나 경건하고 영적인 척한다. 그는 이런 소위 영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어디를 가든 그따위 것들을 말하는데, 진리 실제가 전혀 없이 모두 사람의 관념에 맞는 사이비한 것들이다. 그는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 그런 것들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의 경건함과 겸손함은 실은 가짜다. 그의 포용과 인내, 사람을 향한 사랑은 꾸며 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도 거짓된 것이다. 사람은 그를 성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성결함 역시 가짜다. 진정으로 성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전부 거짓된 것으로, 전부 꾸며 내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전부 건성으로 일을 하는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렸지만 뒤에서는 무엇을 하겠느냐? 교회에서 개인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한다는 기치하에 교회 밥만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이런 자들이 바로 외식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이 위선적이고 자신을 잘 위장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데 모두 속셈과 목적이 있다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를 따르지 않고 글귀와 도리를 설교하여 자신을 드러내며, 겉으로 좋은 행동을 하여 자신을 꾸미고 포장함으로써 자신이 겸손하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내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심지어 네거리에 서서 기도하여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경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 자신을 위장하고 꾸미는 속셈과 목적은 바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사람들의 높임과 지지를 얻어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드러낸 모습도 바리새인과 같았음을 반성했습니다. 지난번 예배 때 리더가 제 사역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저는 리더가 저를 안 좋게 볼까 봐 걱정되어 이번 예배에서는 어떻게든 잘 보여서 리더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했습니다. 일부 사역이 미흡했고 세부 사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리더에게 그런 점을 들킬까 봐 서둘러 내용을 파악하고 사역과 예배에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리더가 보기에 제가 그래도 실제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여기게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사역을 점검하고 문제를 교제하며 해결하려 했던 것이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한 것이 아니라, 리더 마음속의 제 이미지를 만회하고 동역자들에게 높임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간사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우 제 체면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행동했고, 심지어 리더가 사역 상황을 알아볼 때 제가 아직 하지 않은 사역이 있었음에도, 리더가 저더러 일처리 효율이 낮다고 할까 봐 걱정되어 이미 점검 중이라고 거짓말하고 나중에 서둘러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평소 저의 유로와 예배 때의 모습을 반성하니 마음이 몹시 괴로웠습니다. 제 체면을 지키기 위해 포장하고 위장하며 위선적으로 행동했으니, 이게 바리새인과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나중에 제 상황에 맞춰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는데, 그중 한 구절이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의 지위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상당히 민감하다.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자신의 나이가 많고 적음이나 신체적인 건강 상태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많은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말하고 행동할 때 자신에게 시간과 자리를 내 주는지 그렇지 않은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지위와 위치가 높은지 보통인지, 많은 이들 눈에 자신이 높게 보이는지 보통으로 보이는지,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많은 이들의 눈에 하나님을 믿은 경력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말하는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 즉 자신이 한마디 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찬성하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박수를 치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귀를 기울이고 속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밖에도 많은 이들의 눈에 비춰지는 본인 믿음의 크기가 어떤지, 고생을 감내하려는 의지, 버리고 헌신하는 것, 하나님 집에 대한 공헌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하나님 집에서 담당하는 직무의 서열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큰일들을 한 것으로 비춰지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속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는 건 이런 일들이다. … 적그리스도는 주로 설교할 때 하나님 말씀을 잘 해설해서 본인을 과시하고 남들에게 높이 평가받기 위해 공을 들인다. 그러면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는 방식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말씀들을 잘 기억할지 궁리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장점을 보여 줄지 궁리하고, 자신이 꽤나 재간이 있고 보통내기가 아니고, 자기는 뛰어나고 일반 사람들보다 잘났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게 하려고 궁리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생각과 속셈, 관점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 그가 이런 관점을 갖고 있고, 이런 추구와 야심을 갖고 있기에 그에게서는 크고 작은 온갖 다양한 좋은 행위, 옳은 말, 좋은 행동 방식이 저절로 나온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 속에서 높은 지위를 추구하고,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찬성과 숭배를 받기 위한 것이라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난을 받고 대가를 치르며 좋은 행동을 많이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공을 들여 글귀와 도리를 갖추어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길 좋아합니다. 저 자신을 비춰보니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체면과 지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제 결점이나 본분 이행 중의 문제가 드러나기만 하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문제에 대해 반성하는 데 소홀했고 진실한 인식도 없었으면서도, 여전히 포장하고 꾸미며 형제자매들을 기만했습니다. 제가 너무 간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의 성질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증오하시고 정죄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조금 두려워졌고, 제 상태를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항상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와 같은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기 때문임을 반성했습니다. 최근 하나님께서 이 방면의 진리를 교제하신 것이 생각나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은 사람이 화려한 모습을 살아 내는 것을 중시하여 체면이 서는 일을 많이 하라고 하지, 옳지 않은 일, 불명예스러운 일을 해서 자신의 추한 면을 드러내라고 하지 않는다. 망신을 당하거나 존엄하지 않게 살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체면과 체통, 명예를 위해 자기를 쓸모없는 사람처럼 말하면 안 되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어두운 면이나 떳떳하지 못한 부분을 남에게 말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체면을 세우고 존엄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엄은 사람의 체면에 달려 있고, 사람의 체면은 가식과 포장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상충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정직한 사람으로 살 때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에 정확히 위배되는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체면을 차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체면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진리 앞에서 사람은 자신을 폭로해야지 위장이나 가식을 떨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진정한 생각과 잘못한 일, 진리 원칙에 위배되는 부분 등의 실상을 낱낱이 하나님에게 보이고 형제자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체면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진정한 피조물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구원받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종종 가정의 교육에서 비롯된 것들에 지배되어 잘못된 일을 저지르면 포장하고 위장하며 생각할 것이다. ‘말하면 안 돼. 아는 사람도 말하면 안 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장을 보겠어. 내 체면이 우선이야. 산다는 건 다른 걸 위한 게 아니라 바로 체면을 위한 거지.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해. 사람이 체면을 잃으면 존엄도 잃는 거야. 그래서 사실도 사실대로 말해서는 안 되고 위장하고 포장해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체면이나 존엄은 실추되고 삶의 가치도 없어지는 거야. 존중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싸구려가 되는 거야.’ 네가 이렇게 실행한다면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자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부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이 네게 교육한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라는 말을 따르는 것이 분명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사람에 대한 가정의 교육은 한두 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수많은 명언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은 집안 어른이나 부모가 자주 하는 말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일생에 다른 게 아닌 바로 이름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들 가운데 좋은 명성을 남기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어디서든 덕담과 칭찬을 많이 하고 선의의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남에게 미움을 사지 말고 좋은 일과 착한 일을 많이 하라.”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가정의 교육은 사람의 행위나 행동 원칙에 일정한 영향을 미쳐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즉, 자신의 명성과 명망,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인상, 그리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 나타내는 모든 관점이 사람들로부터 받는 평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중요시하면 무의식중에 본분 이행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원칙에 부합하는지,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지, 본분 이행이 합격인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차순위, 후순위로 본다. 반면 가정이 네게 교육한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은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 네가 한 모든 것은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것도,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닌 자신의 명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네가 한 모든 것이 어떻게 변하겠느냐? 종교 행위가 된다. 너란 사람의 본질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전형적인 바리새인이 된다. 네가 걷는 길은 어떻게 변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길이 된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규정하는 것이다. 네가 한 모든 일의 본질은 변질되어 바뀌어 버린다.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도,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네 본분 이행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불합격이란 한 마디로 끝난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가 너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과 피조물의 본분이 아닌 오로지 자기 명성에만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제 상황을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줄곧 사탄이 주입한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와 같은 철학 법칙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늘 ‘사람은 이 체면 때문에 산다.’라고 말씀하셨고, ‘누구네 아이가 이렇게 이렇게 행동해서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한다.’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체면을 차리고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고, 사람들과 접촉할 때 눈치를 살피며 다른 사람의 기호에 맞춰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평판을 얻게 되자, 저는 이런 사탄의 철학 법칙을 더 인정하게 되었고, 이렇게 사는 것이야말로 빛나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여전히 제 체면을 지키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며, 형제자매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 그들에게 높임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지난번 예배에서 리더가 제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자, 저는 체면을 만회하고 리더에게 제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예배 때 계속해서 스스로 위장하고 포장하며, 제 실제 상황과 사역의 부족함을 솔직히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간파당하고 문제가 드러나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잃어버린 체면을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추구하니 저는 갈수록 더 위선적이고 간사해졌습니다. 일을 할 때면 늘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킬 방법만 고려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진리 원칙에도 공을 들이지 않았고, 본분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이번 예배에서처럼 제가 저의 실제 상태와 사역에 있어서의 부족함을 감추니, 리더는 제 문제를 발견할 수 없어 저를 도울 수 없었고, 사역의 잘못과 허점도 제때 바로잡히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런 사탄 독소에 따라 살며 체면과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며, 사람을 하나님께 거역하고 대적하게 하여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사탄에게 패괴되고 이용당하여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기회를 날려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보았습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 반드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고, 절대 남에게 거짓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그게 자신의 결점이든, 단점이든, 자신에게 있는 문제점이든, 혹은 패괴 성품이든 모두 솔직히 교제하고, 포장하지 마라. 자신의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생명 진입의 첫걸음이자 가장 공략하기 힘든 첫 번째 관문이다. 이 관문을 공략한다면 진리에 진입하기 쉬워진다. 그 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네가 마음을 열고 너의 모든 것, 즉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것을 모두 드러내 남들에게, 또 하나님에게 모조리 보여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숨기거나 가리거나 위장하지 않고, 간사하게 행동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너는 빛 속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이 감찰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네가 원칙 있고 투명하게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자신의 명예와 체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거나 자신이 잘못한 일을 위해 감추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이러한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내려놓는다면 너는 아주 홀가분하게, 속박도 고통도 없이 온전히 빛 속에서 살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체면과 지위를 내려놓는 길은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하며, 자신의 부족함과 패괴를 위장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야만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로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습니다.

2023년 8월, 본분 조정으로 저는 장친 자매님과 협력하여 한 교회를 맡았습니다. 막 일을 맡았을 때는 일부 사역이 익숙하지 않아 장친 자매님께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제 부족함이 드러나 자매님이 “예전에 교회 리더까지 하셨다면서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아요? 너무 형편없네요.”라고 할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질문하려던 것을 꾹 참고 속으로 ‘됐어, 그냥 나 혼자 천천히 더듬어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삼일이 지나도 일부 사역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장친 자매님께 감히 묻지 못한 것이 또 체면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장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너는 마땅히 먼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교회의 사역을 생각해야 하며 그것들을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 그다음 네 지위가 안정적인지,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볼지를 생각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저는 속으로 더 이상 체면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것은 장친 자매님께 물어보았고, 장친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후 협력할 때도 어떤 부분을 모르거나 사역에 편차가 있을 때면, 가끔 체면 때문에 말하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간사한 사람을 미워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제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위장하고 가장하는 패괴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기꺼이 자신을 저버리고, 자신의 부족함과 패괴를 솔직히 드러내며 체면의 속박에 그리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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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회에서 아트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크고 작은 디자인과 드로잉 작업을 완수하면서 업무 능력을 많이 키울 수 있었고, 나중에는 팀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팀장으로 선발되었다는 것은 내게 기술적 특기와 사역 능력이 있고,...

외식하는 자의 고통

중국 쑤완(蘇晩)2020년 8월, 저는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서 교체되었습니다. 그 일로 무척 괴롭기도 하고, 크게 후회도 됐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앞으로는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그 뒤로 자매님...

거짓으로 꾸미는 고통

중국 무천(慕晨)2018년 어느 날, 윗선 리더가 저에게 신생 교회를 붙들어 주는 일을 안배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하고 긴장도 됐습니다. ‘리더가 그래도 나를 괜찮게 보는 것 같긴 한데, 내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면 형제자매들이 날...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고난받았는가

이탈리아 안젤라(Angela) 저는 하나님을 믿은 후, 기꺼이 고난을 감내하는 리더 일꾼들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사역하며 본분을 이행했고, 형제자매들은 모두 그들에게 동조하고 감탄했습니다. 그들이 무척 부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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