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모임 후의 반성

2026.1.15

2024년 11월, 저는 교회에서 생명 체험 간증문을 선별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책임자가 저희 팀 모임에 와서는 최근에 제출된 글들을 보니 저희가 일부 원칙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함께 글 몇 편을 선별하면서 다같이 원칙을 파악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글 몇 편을 찾아 저희에게 보여 주면서 각자 원칙에 근거해 논평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관점을 발표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저는 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내가 선별한 글들에서 눈에 띄는 문제가 몇 개 있었는데, 책임자가 이걸 빌미로 내가 원칙을 파악하고 있는지, 이 본분을 감당할 수 있는지 보려는 게 아닐까? 만약 내가 원칙을 모른다는 게 드러나면 분명 교체될 거야.’ 그 후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온전하게 대답할 수 있을지, 어떻게 말해야 제 부족함이 드러나지 않을지를 계속 궁리했습니다. 첫 번째 글을 다 읽고 장옌(张岩) 자매가 먼저 자기 관점을 말했는데, 자매가 말한 내용에는 제가 보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을 보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장옌 자매의 관점이 맞나 봐. 이따가 내가 발표할 때 이 부분도 덧붙여서 좀 더 온전하게 말해야겠다. 그러면 책임자는 내가 너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 이어서 책임자는 제게 대답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발견한 문제점을 말한 뒤에, 장옌 자매가 말한 그 문제도 일부러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에 책임자님이 원칙에 맞춰 그 글을 논평하면서 장옌 자매의 관점이 적합하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했습니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후 책임자는 제가 발견하지 못한 다른 문제점들도 말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하다니, 책임자는 분명 내가 몇 년이나 문서 본분을 했는데도 이렇게 명백한 문제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걸 보니 자질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생각할 거야. 다음번에 발표할 때는 정말 신경 써야겠다.’ 다음 글을 읽을 때 제 마음은 한참 동안 평온을 찾지 못했고, 이전 글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을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졸음이 쏟아졌고, 글의 뒷부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토론 시간에 책임자가 저에게 관점을 물었을 때 저는 조금밖에 말하지 못했고, 인식 부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아까 졸아서 제대로 못 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책임자는 이런 자리에서 졸기까지 하는 걸 보니 내적 상태가 좋지 않고 성령 역사가 없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됐고, 그러면 교체될 날도 머지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둘러댔습니다. “잠시만요, 아까 발견한 문제를 어디에 적어 뒀는지 한번 찾아볼게요.” 저는 마우스를 움직여 재빨리 글을 훑어보며 어떻게든 핵심 문제를 찾아내 책임자의 질문에 대처하려고 머리를 빠르게 굴렸습니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책임자가 말했습니다. “본 대로만 말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말이 순조롭게 나오지 않죠?” 어쩔 수 없이 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아까 잠깐 정신을 딴 데 파느라 글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그러자 책임자는 다른 자매에게 관점을 발표하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나 민망했고, 마음속이 계속 들끓었습니다. 책임자가 저의 최근 모습을 보고 저를 교체할까 봐 걱정됐습니다. 불과 몇 시간이었지만 저는 마음이 너무 지쳤고, 더는 책임자와 함께 글을 선별하며 업무를 배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임자가 우리와 함께 글을 선별하고 원칙을 교제해 주시는 건 저의 부족함을 채울 좋은 기회인데, 왜 저는 그렇게 긴장하고 힘들어했을까요? 마침 그 무렵 하나님의 최신 말씀이 나왔고, 저는 묵상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떠들다가 질문할 때가 있는데 일부 마음이 복잡한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한다. ‘굉장히 노골적으로 물어보시네. 어떤 의도로 물어보시는지 모르겠어. 신중하게 대답해야겠군!’ 잘 들어라. 너는 잘못 생각했다. 내가 누구와 한담하든, 혹은 어떤 질문을 하든 그 궁극적인 목적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너희에게 도움을 주고 너희를 지도하며 너희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다. 첫째, 너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어 망신을 주는 게 아니다. 둘째, 네가 사실대로 말하는지 정직한 사람인지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네 실상을 알아보려 떠보는 것이 아니다. 넷째, 네가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내가 어떤 내용의 한담을 하든 그것은 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사역을 잘하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고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 단순한 물음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는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섞여 있을까 봐 걱정한다. 심지어 자기한테 농간을 부리는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분명 네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우려는 것인데 너는 농간을 부린다고 생각하다니, 이는 내게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것은 어떤 문제냐?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다!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저는 사실만을 고하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대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따르고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일상적이고 단순한 질문을 던져도 사람은 과민하게 해석하기 일쑤다. 생각과 추측을 통해, 또 연구를 통해 몇 번이고 꼬아서 자기가 최종적인 답을 찾은 것 같겠지만 사실 내가 말한 본래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분명 간단한 질문인데 그는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신경과민이 아니겠느냐? 내가 어떤 질문을 하든 그는 들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왜 그런 걸 물어보시지?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시고 내 흠을 못 알아보실까? 어떤 것부터 말하고 어떤 걸 나중에 말해야 하지?’ 불과 몇 초 만에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이 나온다. 머리 돌아가는 게 컴퓨터보다 빠르다. 왜 이렇게 빠르겠느냐? 사실 이 과정이 너무 익숙해서 누워서 떡 먹기인 것이다. 이는 그가 남들과 교류하고 일을 처리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자 방식이다. 누구를 상대로든 농간을 부린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단순하게 물어봐도 그는 복잡하게 생각해서 내가 어떤 속셈이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줄 안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만약 사실대로 답하면 내 실상을 까발리는 게 아니겠어? 내가 나를 팔아먹는 꼴이야. 내 실상을 손에 쥐여줄 수는 없지. 그럼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고 흡족해하면서, 나한테 좋은 인상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를 쓰게 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보아라! 사람의 마음은 너무 복잡하다. 그에게 어떻게 말하든 그는 의심하고 연구하려 든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생각이 전혀 단순하지 않고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를 접한 시간이 긴 사람이면 모두 알아차릴 것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니 바로 제 상태에 대해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리스도와 접촉할 때 드러내는 생각과 마음을 폭로하신 것이지만, 저 역시 평소에 사람들과 지낼 때 늘 그런 마음가짐을 드러냈습니다. 생각해 보니 책임자는 우리가 원칙을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 우리와 함께 글을 선별하는 것이라고 처음부터 말했고, 각자 관점을 발표하게 한 것도 우리의 부족함과 편차를 파악한 뒤 그에 맞춰 교제하고 돕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책임자가 우리의 원칙 파악 정도를 시험하고, 우리가 이 본분을 감당할 수 있는지 떠보려는 것이며, 만약 부족함이 너무 많이 드러나면 저를 교체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제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관점을 발표할 때도 저는 발견한 문제를 그대로 말하지 않고, 어떻게든 책임자에게 제가 원칙을 잘 알고 문제를 전반적으로 본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심지어 장옌 자매의 관점을 베끼기까지 했습니다. 두 번째 글을 논평할 때 저는 분명히 졸아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솔직하게 이유를 말해야 했지만, 솔직히 말했다가 책임자에게 더 안 좋은 인상을 줄까 봐 두려워서 발견한 문제를 어디에 적어 뒀는지 잊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찾는 척 시늉까지 하며 결국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게 했습니다. 사실 책임자가 글에 대한 제 생각을 물었을 때 있는 그대로 대답하면 그만이었고, 틀리게 대답했더라도 편차를 정리하고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복잡해서 늘 책임자님의 의도를 추측했고, 말 한마디를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몇 바퀴나 돌렸습니다. 반성하다가 저는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이 본분을 막 시작했을 때, 리더가 일부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물으면 저는 몹시 긴장했습니다. 무의식중에 리더가 제 자질과 문제 보는 능력을 파악하고, 제가 이 본분을 감당하기에 적합한지 가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추측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어떻게 말해야 리더님께 부족한 점을 들키지 않을지 재빨리 궁리했습니다. 말 한마디를 하려면 머릿속에서 몇 바퀴나 돌려야 했기에 너무나 피곤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단지 순간적으로 간사한 성품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늘 계산하는 상태 속에서 살고 있었고, 본성 자체가 간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 예수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하시며,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간사한 사람을 혐오하십니다. 간사한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가 만약 돌이켜 변화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버리고 헌신한다 해도 결국에는 하나님께 도태되고 버림받는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 생각에 이르자 제 마음은 무거워졌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간사합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데에 늘 계산이 깔려 있고, 정직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 하나님께 도태될 것입니다. 저는 간사한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 후, 저는 책임자에게 저의 이런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책임자는 저를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를 교제하며 도와주셨고, 제가 진리를 실행하여 정직한 사람이 되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왜 저는 늘 제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걱정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무렵 몇몇 형제자매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원칙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와 교체되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최근에 제출한 글들에서도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저는 이번에 책임자가 저를 관찰하고 파악하러 왔으며, 만약 제가 원칙을 모른다는 것이 드러나면 저를 교체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는 어떤 사람을 발탁해서 쓰고, 어떤 사람을 쓰지 않는지, 어떤 사람을 양성하고, 어떤 사람을 양성하지 않는지에 관한 원칙이 있다. 이는 모두 하나님 집 사역의 필요에 근거한다. 어떤 사람을 발탁하여 쓰든 모두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여 사역을 감당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또 어떤 문제를 해결하든 이는 모두 사람이 진리를 더 많이 깨닫고, 자신이 직면한 여러 유형의 사람과 일에서 공과를 배우고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각 측면의 진리 실제에 쉽게 진입할 것이다. 너를 이용해 봉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적격자를 찾지 못한 공백을 너로 메웠다가 적격자가 생기면 너를 치워버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사실 이는 네게 훈련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네가 진리를 추구한다면 굳게 설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 네가 눈에 거슬린다고 트집을 잡아 도태시킬 기회를 엿보는 게 절대 아니다. 하나님 집이 너를 양성하고 발탁하겠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게 너를 양성하겠다는 말이고 네가 어떻게 진리에 이르는지 보겠다는 말이다. 네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 집도 너를 포기하고 양성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 양성되다가 자질이 떨어져서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못해 교체되는 사람이 있고, 양성되는 동안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제멋대로 방해하고 교란하여 교체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진리를 전혀 추구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면서 오로지 명예와 이익, 지위만을 위해 사역하다가 교체되고 도태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사람을 쓰는 하나님 집의 원칙에 따라 처리된 경우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설사 잘못을 저지르거나 과오를 범하더라도 하나님 집이 양성할 것이다. 반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책망 훈계를 받아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바로 교체되고 도태될 것이다. … 어떤 경우든 하나님 집이 사람을 발탁하는 목적은 사람을 양성하고 그가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그래서 사람이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하고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네가 어리석고 식견이 없어서 혹은 자질이 떨어져서 이행할 수 없는 사역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진리 원칙에 이르고, 책임감 있게 그 사역을 잘해보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교회 사역을 지킬 수만 있다면 예전에 어리석은 짓을 했더라도 하나님 집은 너를 양성할 것이다. … 네가 할 수 있는 사역이 얼마나 되든, 네 자질이 어떻든, 너를 발탁하여 쓰는 것은 너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회 삼아 네가 사역하도록 훈련하고,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고생하며, 중임을 맡는 것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하려는 것이다. 이는 너 개인을 온전케 하는 것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집 사역을 온전케 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는 선행도 예비하면서, 개인의 생명 진입에도 수확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집에서 어떤 사람을 발탁하든 모두 실질적으로 양성하며, 리더와 책임자들은 그들의 부족한 점에 대해 지적하고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의 생명이 성장할 뿐만 아니라, 사역의 성과도 갈수록 좋아질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교체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으며, 약간의 부족함이나 결점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바로 교체하지는 않습니다. 최근에 교체되고 도태된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 중 자질이 부족해 사역을 지연시킨 이들에게는 교회가 그들의 자질에 맞춰 적합한 본분을 안배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유독 자기 생각만 고집하며 다른 사람이 아무리 원칙을 교제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가져왔기에 교체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문서 본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리더와 책임자들은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거나 본분 이행의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면 교제하며 도와주었고, 제가 한동안 성장이 있는 것을 보고는 계속해서 단련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리더는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고 책임자를 보내 우리와 함께 원칙을 배우도록 안배해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루빨리 원칙을 파악하여 본분을 잘 이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나님 집이 너를 양성하고 발탁하겠다고 하는 것은 확실하게 너를 양성하겠다는 말이고 네가 어떻게 진리에 이르는지 보겠다는 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자질도 평범하고 일부 원칙에 대한 이해도 부족합니다. 문제가 생긴 것을 기회삼아 책임자가 다시 저를 지적해주고 도와주며 함께 원칙을 배우는 것은 제가 본분을 더 잘 이행하도록 돕는 것이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일, 사물을 통해 저를 실질적으로 양성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데도, 계산적인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하며 마음속에 적대감을 가득 품고 있었으니, 정말이지 너무나 양심도 이성도 없었습니다!

그 후, 책임자는 저희 각자의 부족한 점에 맞춰 학습 계획을 세워 주었고,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저를 교제하며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자매들과 함께 관련 원칙들을 진지하게 묵상했고, 한동안의 학습을 통해 원칙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으며, 제출하는 글에서 발견되는 문제도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이 우리가 원칙을 파악하여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돕기 위함이며, 동시에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생명이 성장하게 하려는 것임을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체험 간증문을 선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제 문제에 대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고도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일을 보는 관점도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는 거짓 리더와 적그리스도가 드러나 도태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서 하나님 앞에 산다는 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고 또 칼날 위에서 사는 것과 같구나!’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리더 일꾼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란 임금을 모심이 마치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는 말과 같구나.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될 거야. 그러면 도태되고 징벌을 받게 돼!”라고 말한다. 이것이 맞는 말이냐?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칼날 위에서 사는 것’이란 무슨 뜻이냐? 아주 위험하다는 뜻이다. 매 순간 위험해 조금만 부주의해도 발을 헛디디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임금을 모심이 마치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는 말도 이방인들이 자주 하는 말로, 마왕 옆에 사는 것이 몹시 위험하다는 뜻이다. 이 말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쓴다면 무엇이 잘못이겠느냐? 마왕을 하나님과 비교하고 창조주와 비교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니,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대시하면 징벌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탄 마귀는 추호의 진리도 없고, 더럽고 사악하며,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착한 사람을 삼키는데, 어찌 그것들을 하나님과 나란히 놓고 논할 수 있단 말이냐? 사람이 어째서 사실을 왜곡하고 하나님을 모함한단 말이냐? 이는 하나님에 대한 크나큰 모독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제 상태는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과 똑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몇 년이나 믿었지만 일이 닥쳤을 때 진리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의 관점을 고수하며 ‘나쁜 마음은 먹지 말되 경계심은 가져라’라는 사탄의 철학으로 살았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늘 곳곳에서 방비하며, 자칫 방심했다가 남에게 이용당할까 봐 항상 걱정했습니다. 이번에 책임자는 저희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문제와 편차가 생기는 것을 보고 저희와 함께 글을 선별하며 원칙을 파악하도록 도우려 했지만 저는 책임자가 제 실상을 파악해서 저를 교체할 증거로 삼으려 한다고 추측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책임자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마치 큰 적을 만난 것처럼 시시각각 상대를 방비하며, 자칫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못 대답했다가 책임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책잡혀 교체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사탄이 권세를 잡은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과 계산이 가득하며, 조금만 방심하면 이용당해 관직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저는 세상의 집권자를 방비하듯 하나님 집에서는 진리가 권세를 잡는다는 것을 조금도 믿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신다는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질이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을 이행한 지난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며 많은 진리를 깨닫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인데, 저는 오히려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방비하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이렇게 높은 벽을 쌓았으니 정말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를 추구하겠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한번은 다른 책임자가 저희와 함께 업무를 배우면서 한 사람씩 관점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여전히 조금 긴장했고, 대답을 잘 못 하거나 편차가 있으면 책임자에게 부족한 점을 들킬까 봐 걱정됐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남들과 교류하면서 농간을 부리지 않으려면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의 범위 안에서 교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교류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동시에 상대방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득을 보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교류이다. 이렇게 교류하면 농간이 배제될 수 있다.(<말씀ㆍ7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6)> 중에서), 『진솔하게 대하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개인적인 바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고 네가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네가 한 말이 어떤 결과가 생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고려할 필요도 없다. 생각한 것을 바로 말하되 속셈을 갖지 말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뜻이나 불순물이 너무 많으며 말을 할 때 늘 잔머리를 굴리며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일은 말하고, 어떤 일은 말하지 말아야겠다. 골라서 말해야지. 나한테 유리하고, 내 결점을 가릴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해야겠어.’ 이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말하기 전에 마음속에는 온통 나쁜 생각뿐이며, 하고 싶은 말을 몇 번이나 가공했다. 그러니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렇게 순수하지도, 조금도 진실하지도 않으며, 개인의 속셈과 사탄의 간계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는 진솔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꿍꿍이나 불량한 저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 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계산하지 않으려면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의 범위 안에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속셈이나 목적을 품지 않아야 하고, 머리로 분석하고 가공하지 않아야 하며 생각하는 대로 말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서로 돕고 서로에게서 유익을 얻기 위함입니다. 오늘 책임자가 우리와 함께 업무를 배우는 것은 함께 원칙을 교류하고, 서로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며 우리가 원칙을 더 잘 파악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솔직한 태도로 대해야 합니다. 깨달은 만큼 말하고, 틀리게 얘기하면 형제자매들의 지적과 도움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학습과 교류의 기회이니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당신 앞에서 평온함을 지킬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고, 관점을 발표할 때 당신의 감찰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 후에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원칙을 묵상할 수 있었고, 일부 원칙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도 얻게 되어 이전보다 더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임자의 교제를 통해 저의 일부 부족한 점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학습을 통해 저는 비교적 해방감을 느꼈고, 얻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 후, 책임자가 다시 우리와 함께 글을 논평하거나 제가 책임자의 질문에 답할 때,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점점 더 해방되었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조금이나마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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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까?

이탈리아 마누엘라(Manuela)2022년 1월, 저는 교회에서 복음 집사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아서 본분 성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교회 복음 사역의 성과가...

나의 간사함과 거짓말을 해결한 과정

필리핀 프랭크(Frank)저는 늘 스스로 순진한 사람이라고, 말과 행동,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 모두 진실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저를 그렇게 평가했고요. 그래서 저 정도면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프랑스 아리엘라(Ariella)2021년 8월, 저는 어떤 교회에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전 어떤 새 신자가 성품이 다소 교만하고 고집을 잘 피워 본분을 이행할 때도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짓말이 낳은 고통

미얀마 로널드(Ronald)2019년 10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예배 때, 형제자매들이 모두 자신의 체험적 인식을 솔직하게 교제하고, 어떤 패괴나 부족함도 아무 거리낌없이 터놓고 교제하는 것을 보고 저는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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