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귈 때 지켜야 할 원칙

2025.4.18

2022년 8월, 저는 리우쉬안, 장치와 협력해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 막 훈련을 시작한 터라 일부 원칙을 잘 몰랐기 때문에 팀장인 리우쉬안이 늘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하고 공통된 대화 주제도 있어 금방 친해졌고, 사이도 꽤 좋았습니다.

한번은, 장치가 영상을 제작하면서 좀 복잡한 문제를 만나 리우쉬안에게 물었습니다. 리우쉬안은 장치와 함께 문제를 분석하고 의견을 나눴지만, 장치가 만든 영상에는 여전히 일부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리우쉬안은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어제 이미 얘기했는데 또 이렇게 만들었네요!” 장치는 약간 억압받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리우쉬안이 저렇게 행동하면 자매에게 상처를 줄 텐데. 문제가 있으면 차분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되잖아. 그러면 다음에 개선할 때도 도움이 되고.” 저는 그녀에게 몇 마디 조언해 주고 싶었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우쉬안이 내 조언을 받아들이면 괜찮겠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나한테 되받아치면 난처해지잖아. 그럼 얼마나 어색하겠어! 리우쉬안이 내가 장치의 편을 들었다고 나한테 반감을 가지지 않을까? 그럼 앞으로 또 어떻게 잘 지내지? 됐다. 그냥 말하지 말자.’ 그 후, 리우쉬안은 자신이 교만한 성품을 드러냈음을 깨달았지만, 간단히 인정만 했을 뿐, 자신에 대해 진실하게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와 좀 교제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려니 또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자매도 자기가 교만했다고 했잖아. 내가 또 지적하고 교제하면 내 요구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한테 편견이 생기면 어쩌지? 역시 관두자.’ 이 일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또 한번은, 우리 팀에서 제작한 영상 하나가 통과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리우쉬안은 팀장이면서도 저희를 데리고 원인을 찾지 않았고, 며칠 뒤에 다른 형제자매가 원칙에 따라 우리와 분석하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깨달았고, 얼른 해당 업무를 공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리우쉬안은 이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자기가 전에 해당 업무를 공부한 적이 있어 다 알고 있다며 우리에게 학습 기회를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리우쉬안은 업무 학습을 대하는 태도가 오만해 잘 모르는 게 분명하면서도 자만자족하여 공부하지 않고, 팀장으로서 오류를 정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의 문제를 이야기해 주고 싶었지만, 또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하면 리우쉬안이 난처해하지 않을까? 그녀의 체면을 상하게 해서 나한테 편견이 생기면 어쩌지?’ 그래서 저는 아무 의견도 내지 않고 또다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 후, 책임자가 제 내적 상태를 알아보는 시간에 저는 이 일을 적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리우쉬안 자매가 그걸 보면, 내가 자기한테 직접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뒤통수를 쳤다고 하지 않을까? 내적 상태를 작성하면서 자기 문제를 보고했다고? 리우쉬안이 나에게 편견이 생기면 앞으로 어떻게 잘 지내지?’ 이렇게 생각해서 리우쉬안의 문제는 한 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저와 리우쉬안은 웃으면서 대화했지만, 그녀의 문제를 지적해야 할 때마다 저는 늘 그녀의 생각을 추측했습니다. 그녀의 문제를 분명히 알면서도 한 마디 진실도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정말 너무 답답하고, 억눌린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여러 번 하나님께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자신을 인식하고 패괴 성품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루는 저희가 내적 상태를 교제할 때였습니다. 리우쉬안은 우리 사이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가 부족하고, 제가 너무 원칙 없이 무엇이나 다 좋다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자기 문제를 보고도 거의 지적하지 않는다며, 자기도 다른 사람의 지적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하며 매우 슬프게 울었습니다. 자매의 말을 듣고 저는 자책했고 마음이 찔려 괴로웠습니다. 알고 보니 자매의 눈에는 제가 그렇게나 무골호인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자매는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지적이나 폭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걸까요? 해당 문제에 대해 저는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서로 왕래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나누고 이해해야만 이로움을 얻을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더더욱 마음을 나누고 이해해야만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 때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데 성격이 맞지 않거나 가정환경, 배경, 경제적 조건마저 모두 서로 다를 때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마음을 활짝 열고 소통할 수 있으며, 거짓말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환히 드러낼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참된 벗이다. 그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를 찾을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네가 그를 도울 수 있다고 믿을 것이고, 설사 네가 그를 욕한다 해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네가 정직한 사람이고 네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너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말하든 또 그를 어떻게 대하든 그는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너희는 이러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너희는 이런 사람이냐? 아니라면, 너희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는 가장 먼저 네 진심과 진솔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고 교류할 때 언제나 무성의한 말, 상투적인 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무책임한 말, 상상하는 말, 또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만 한다면, 이는 진실한 것도, 성의도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지내든 이런 방식을 취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정직한 마음이 없다.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는 리우쉬안이 교만한 성품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업무 학습을 대하는 태도가 오만한 것을 알았지만, 지적이나 도움 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본성이 간사하고 남을 경계하는 마음이 너무 심해 리우쉬안이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에게 편견이 생기면 우리 사이의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평소 리우쉬안은 제 문제를 보면 바로 지적해 주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저에게는 모두 진정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경계하고 그녀의 문제를 알면서도 교제하거나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보여준 모습은 전부 허상이고 진심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간사했습니다! 저는 남에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남들의 미움을 사는 일이며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관점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상대방이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을 보면 단순하게 마음을 열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바로 상대방에게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자신을 반성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고, 교회 사역에 손해를 끼치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저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치우치며 그릇되었고, 전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본 문제를 리우쉬안에게 이야기했고, 이 사실을 안 책임자도 편지를 보내 리우쉬안에게 교제를 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리우쉬안은 자신의 교만한 성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고, 적극적으로 우리를 데리고 업무를 공부하면서 우리의 본분 이행 효율도 향상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서 저는 부끄럽고 자책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이야기했었더라면 자매는 좀 더 일찍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고, 우리가 조화롭게 협력하고 업무를 교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후회하면서 저는 반성하고 고민했습니다. ‘왜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볼 때마다 막상 말하려고 하면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면에는 어떤 패괴 성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걸까?’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고 대충 건성으로 임하며 무골호인이 되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지 않는 것은 어떤 성품이겠느냐? 이는 바로 교활한 것으로, 사탄 성품이다. 사람의 처세 철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교활함이다. 사람은 교활하지 않으면 남에게 미움을 사기 쉽고,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충분히 교활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거나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래야 자신을 보호하고 밥그릇을 지킬 수 있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말이다. 이방인은 모두 사탄 철학으로 살며, 모두 무골호인이 되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 집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집의 설교를 들었으면서 왜 진리를 실행하여 마음속 말을 하거나 정직한 사람이 되지 못하느냐? 왜 늘 무골호인이 되느냐? 무골호인은 자기 이익만 지키고 교회의 이익은 지키지 않는다. 누군가 악행을 저질러 교회 이익에 해를 입히는 것을 봐도 상관하지 않고, 그저 무골호인이 되어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무책임한 것이다. 이런 자는 너무 교활하여 믿을 만하지 않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겉으로 보면 하는 말이 매우 온화하고 우아하며 품위가 있다. 그는 누가 원칙을 어겨도, 누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해도 폭로하거나 질책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어떤 일이든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게끔 못 본 척한다. 사람이 어떤 패괴를 드러내고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그는 관대하게 넘어가며 포용할 뿐, 성내거나 화내지도 않는다. 또 그는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끼쳤다고 해서 성내고 화를 내거나 상대를 질책하지도 않는다. 누가 악행을 저질러 교회 사역을 교란하든 마치 그 일이 자신과는 무관한 양 거들떠보지 않고, 그 일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법도 없다. 적그리스도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을 우러러보는지, 자신이 고난을 겪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마음속 깊이 찬사를 보내는지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절대로 헛되이 고난을 겪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고난을 겪고 어떤 대가를 치르든, 어떤 좋은 일을 하든, 남들을 얼마나 관심 있게 보살피고 사랑으로 대하든 그는 남들 앞에서 행동해서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그의 행동이나 사람됨, 인품에 찬사를 보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하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적그리스도는 이런 겉면의 좋은 행위로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그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하게 하려고 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성품이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은 누군가 패괴를 드러내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을 봐도 절대 지적하거나 폭로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포용하고 인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이렇게 하는 목적은 바로 온화한 겉모습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로써 사람의 마음을 매수하고 사로잡으려는 것이니, 본성이 참 사악합니다. 마치 저처럼 말입니다. 리우쉬안이 장치를 싫어하고 자매를 억압하며, 팀장으로서 모두에게 업무 학습 기회를 마련하지 않아 사역에 지장을 주는 것을 보고 저는 그녀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었지만, 말하려다가 또 말을 삼켜버렸습니다. 리우쉬안이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에게 편견을 가진다면 앞으로 같이 지내기 힘들까 봐 계속 침묵을 지켰습니다. 내적 상태를 작성할 때도 리우쉬안이 보면 제가 그녀의 문제를 보고했다고 오해할까 봐 아예 언급을 피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저는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고 꽤 온화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제 속셈은 모두 리우쉬안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저는 진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이 손해를 입을지, 교회 사역이 이로 인해 지체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으며,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바로 영락없는 무골호인인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겨워하고 혐오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인간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견지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본질을 봤을 때, 사람의 덕행 중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요구를 고상하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상처 입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된다고 말이다. 또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누구라도 상처를 주는 순간 그 관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친하고 가까운 친구에서 네게 낯선 사람, 적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가르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설령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적을 만들지 않고 몇 명의 원수를 줄여 사람들에게 탄복과 동조를 샀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너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완벽하게 덕행의 기준에 도달한 것이겠느냐? 이는 기껏해야 처세 철학에 불과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 “직언하면 미움을 받으니 듣기 좋은 말만 하라.”, “옳지 않은 줄 뻔히 알아도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다.” 이라는 말은 모두 사탄의 처세 철학이고, 사탄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상을 주입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늘 체면을 세워주고 교활하게 행동해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배척당할 것이라고 여기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처세 철학에 따라 사람과 사귀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며,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늘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고, 겉과 속이 다르며 진실과 진심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점점 위선적이고 사악하게 변해 가면서 존엄과 인격도 없이 살아갑니다. 제가 줄곧 리우쉬안의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탄의 처세 철학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말과 행동에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나 남들의 결점과 단점을 말해서는 안 되며, 말을 할 때는 남들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남의 미움을 사고 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 저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사귀었습니다. 늘 조심스럽고, 눈치를 살피며 항상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제일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의 반감을 사고 고립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비록 모두들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 저는 피곤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이런 식으로 형제자매들과 사귀었고, 사람과의 사귐에 진실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저는 분명 리우쉬안의 문제를 알았지만,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한 번도 그녀에게 지적해 주지 않았고, 언제나 진짜 생각을 마음속에 감춰놓고 겉으로는 그녀와 격의 없이 잘 지내는 척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서 중용의 길을 걸었고, 누구에게도 밉보이지 않으며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늘 눈치를 보았습니다. 이는 자매를 해쳤을 뿐만 아니라 사역도 그르쳤으며, 저 자신도 억압받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혐오를 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우리가 사람들과 사귀면서 진실하게 대하고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기를 바라십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정직한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사탄의 철학대로 살면 잠시 동안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오랫 동안은 절대 유지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분별받고 버려질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사탄 철학에 따라 살며 자매와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에 대한 자매의 신뢰마저 잃었습니다. 결국 자매는 제가 무골호인이고 사람과의 사귐에 진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러한 사탄 철학을 저의 처세 원칙으로 삼았던 것은 정말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자신이 사탄에 의해 너무 깊이 패괴되어 하나님의 구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이렇게 이기적이고 간사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이렇게 구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과 지내야 할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언행은 무엇을 근거로 삼아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 그럼 사람의 언행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이냐?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진실한 말, 솔직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적어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기만하거나 미혹하거나 조롱하거나 놀리거나 비방하거나 비웃거나 속박하거나 남의 단점을 까발리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정상 인성의 모습이고 인성의 미덕이다. …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어떤 것이겠느냐? 주로 격려하고 일깨우고 인도하고 권면하고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말이다. 이 외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예를 들어, 네가 몹시 제멋대로이고 교만한데 스스로 늘 의식하지 못한다고 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너를 잘 아는 사람이 직설적으로 네 문제점을 지적해 준다면 너는 ‘내가 제멋대로라고? 교만하다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감히 못 하던데, 이 사람은 나를 알고 있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아. 열심히 반성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다른 사람들은 다 듣기 좋은 말만 해 주고 칭찬만 합니다. 툭 터놓고 솔직한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죠. 저한테 존재하는 단점이나 문제점을 짚어 주는 사람도 없고요. 오직 당신만이 제게 툭 터놓고 이런 말을 해 주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 말은 제게 가장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마음을 나누는 것 아니겠느냐? 상대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너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또 지난날 자신이 그런 일을 겪을 때 가졌던 관념과 상상, 소극성과 연약함, 그리고 진리를 구해 그 상태에서 벗어난 체험 등을 하나하나 교제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며 마음의 소통이다. 요컨대, 말을 할 때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마음속에 있는 것, 진실한 체험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게 가장 이로운 말이고, 공급과 도움이 되는 말이며, 가장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하나님 말씀과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상대가 패괴를 드러내어 사역을 그르치거나 원칙을 어기면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즉시 상대에게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이는 사역과 사람의 생명 진입에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처세해야 원칙이 있고 정정당당하게 사는 것이고, 인성과 정의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상대가 즉시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반감을 사거나 배척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데에 감사할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진리를 추구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그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저도 분별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저는 자신의 체면만 고려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저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지, 제가 원칙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처세 철학에 따라 사람들과 사귀면서 말과 행동에서 늘 구속받으며 억압되고 자유롭지 못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면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사탄에게 속박된 포로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람을 대하고, 사람과 사귈 때는 진심으로 대하며 진심 어린 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훈계 책망하든 담담히 진리를 교제하든 모두 진심으로 사람과 사귀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과의 관계가 정상적이고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후 저희가 영상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리우쉬안은 모두의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자기 관점만 말하고 원칙은 거의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예배 때 리우쉬안은 자신의 패괴 표출을 거의 털어놓지 않았고, 사역하면서 겪는 문제도 저희와 솔직하게 교제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그녀에게 분량과 사역 능력이 있다고 느껴 그녀를 약간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리우쉬안에게 지적하고 싶었지만, 막상 말을 꺼내려 하니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가 말하면 리우쉬안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우리 사이에 영향을 미치면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 저는 자신이 또 무골호인이 되어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저에게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을 저버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기도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모두가 도리상, 이론상으로 인식한 내용만 얘기하고 실제 체험을 통한 인식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교제하면서 자신의 생활,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 개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언급을 피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떻게 진실된 소통이 이루어지겠느냐? 어떻게 진실된 신뢰가 생기겠느냐? … 언어적 소통과 마음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 공급하고 도와주지 못한다. 너희는 이런 체험이 있지 않으냐? 만약 친구가 너에게 무슨 말이든 다 한다면, 자기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속에 어떤 고충이 있고, 어떤 기쁜 일이 있는지 모두 너에게 얘기한다면, 너는 그 친구와 특별히 가깝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그가 너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너 역시 마음을 그에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너는 그와 특별히 잘 맞아서 그와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 도울 수 있다. 만약 교회 형제자매들 사이에 이런 소통과 교류가 없다면 영원히 화목하게 지낼 수 없을 것이고, 본분도 조화롭게 협력하며 이행할 수 없다. 그러니 진리를 교제할 때는 반드시 마음의 소통이 있어야 하고,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원칙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이전에 저는 처세 철학에 따라 자매를 대했고, 자매와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거나 자매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자매의 문제를 보고도 교제하거나 지적하지 않고, 자매를 속이고 상처만 줘서 사람에게 반감을 사고 하나님이 혐오하시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이기적이고 간사하게 살며 무골호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 정직한 사람이 되어 자신이 본 문제를 말해야 합니다. 다음 날 내적 상태를 교제할 때, 저는 리우쉬안이 자신의 패괴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모두를 원칙으로 이끄는 데 열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기 쉽고 이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길은 잘못된 것이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리우쉬안은 듣고 나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리우쉬안은 이 일에서 공과를 배웠고, 본분을 이행하며 저희와 원칙을 교제하는데 집중하며, 항상 자신의 패괴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사이는 이 때문에 깨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때로는 저 역시 자신의 내적 상태를 간파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리우쉬안과 함께 교제하면서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사귀고 마음을 나누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생명 진입과 업무 학습에서 많은 성장을 했고, 본분 이행 성과도 향상되어 하나님의 인도를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예전을 돌이켜 보면, 저는 처세 철학에 따라 자매와 지내면서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피곤했고, 자신의 책임을 다해 교회 사역을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 정직한 사람이 되어 진심을 말하면 하나님의 인도가 있고 본인의 마음도 가벼워지며 해방되어 말 못 할 달콤함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또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는 서로 의심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생명 진입과 본분 이행에서 서로 돕고 붙들어 줄 수 있으면 남과 자신에게 모두 유익이 될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에도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덕분에 사람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하나님을 믿으면서 사람을 숭배한 결과

네덜란드 쑹위 2019년에 전 리더 본분을 맡고 왕모와 협력하게 됐어요. 그때 왕모에 대해 알게 됐는데, 보니까 중국에서도 리더 본분을 오래했었고, 많은 사역을 책임졌었더라고요. 외국에 와서도 왕모는 리더로 발탁됐고 각 지교회 사역을 책임졌고요. 전...

참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

일본 장린 2012년 9월, 저는 교회 사역을 맡으면서 리더 옌주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옌주어가 형제자매들에게 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집의 복음 전파 원칙에 심각하게 어긋나는 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

중국 마훙(馬紅)2011년 가을, 저는 팡민(方敏)이라는 고향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성이 무척 좋고 사근사근했죠. 게다가 주님을 20년 넘게 믿으면서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보는,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진리를 교제할 때는 단순하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폴란드 줄리아(Julia)2021년 초,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었지요. 약 두 달 후에는 양육 집사로 뽑혔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집사회에 참여하여 본분 이행 과정에서...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