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2025.4.18

저는 어렸을 때 특히 낯을 가렸습니다. 집에 손님이 온 걸 보면 늘 부모님 뒤에 숨었고, 부모가 ‘삼촌’, ‘이모’라고 불러 보라고 시키면 마지못해 부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가 벙어리라 말을 못 해요.” 평소에 엄마도 늘 제가 평생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말주변이 없어서 자주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꾸지람을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특히 두려웠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저는 단 한 번도 어떤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고, 언제나 한쪽 구석에 숨어 조용히 공부만 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 선생님께서 제가 대학원에 추천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 마음이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면접에서 지도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불안해졌습니다. ‘나는 말로 잘 표현을 못하는데, 만약 횡설수설 대답하면 너무 창피할 거야.’ 저는 며칠을 고민했지만 끝내 면접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난 뒤, 형제자매들이 함께 예배에서 교제할 때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도 서로를 비웃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이 한결 자유로웠습니다. 조금씩 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속마음을 나누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내적 상태와 인식을 이야기했는데, 가끔 말이 장황해져도 형제자매들은 저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마음의 얽매임이 점점 줄어들었고, 점차 말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예배를 드리는데, 제 교제가 핵심이 없고 주제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그 순간 팀장이 제 말을 끊었습니다. 저는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저를 두고 ‘너는 평생 남들 앞에 나설 수 없다’고 하셨던 게 떠올랐습니다.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말주변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 가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앉아 있는 게 최선인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괜히 내 약점을 드러내서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적게 말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 후 오랫동안 저는 입을 꾹 잠갔습니다. 소그룹 예배를 제외하고는 다른 예배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형제자매님들의 교제를 듣기만 했습니다. 때로 저도 어느 정도 체험의 인식이 있었지만, 자신의 말주변이 부족하고, 말이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면 혹시라도 말을 하다가 또 끊기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 교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서 영상 제작을 하게 되었는데, 형제자매들이 제 업무 실력이 조금 나아진 것을 보고 저를 팀장으로 뽑아 주셨습니다. 저는 팀장을 하면 자주 사역 상황을 점검하고 따라가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교제하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처럼 말이 서툰 사람이 만약 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하면 너무 창피할 거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려웠습니다. 저는 리더에게 제 자질이 부족해서 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니, 다른 형제자매님을 선택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리더는 저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교제해 주며, 저에게 하나님께 의지해서 일정 기간 동안 연습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팀장을 하는 기간 동안 저는 특히 소극적이었고, 매번 예배를 진행하거나 교제할 때마다 뒤로 물러서서 협력하는 자매가 더 많이 말하도록 했습니다. 협력하는 자매는 그런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할 때도 이해한 인식을 말씀하실 수도 있는데다가 자질도 그렇게 부족하지 않으면서 왜 항상 피하시는 거에요?” 자매는 제가 더 많이 연습하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말해주든 저는 여전히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몇 번이나 사직서를 내밀었습니다. 저는 본분 이행에 너무 소극적인 나머지 결국 교체되었습니다. 그 후, 팀장은 제게 자신과 협력해서 팀의 사역을 맡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조금 걱정되었습니다. ‘나는 말을 잘 못해. 가서 창피 당할 일은 없어야 해.’ 그때 팀장은 제게 하나님의 마음을 교제하며, 자신은 업무를 잘 아는 사람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팀장이 이렇게 말하자, 저는 마음 속으로 조금 자책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말은 서툴지만, 업무적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은 있어. 팀장과 협력하는 것도 사역에서 필요한 부분인데, 나는 항상 핑계만 대고, 이건 사역을 그르치는 게 아닐까?’ 이 생각을 하면서, 저는 결국 승낙했습니다. 그 후 저는 제 자신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왜 매번 팀장을 맡게 되면 나는 항상 피하고 거절하려고만 할까? 이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걸까?’ 이러한 의문을 품은 채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어느 예배에서 리더가 하나님 말씀을 한 구절 읽어 주었는데, 그 내용이 바로 제 문제에 관한 것이었으며, 제 마음 속의 의문을 풀어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말주변도 없는 탓에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 애는 머리가 나쁘고,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말재주도 없어. 다른 집 애는 사람 살살 녹게 말도 참 예쁘게 하던데, 이 애는 어떻게 된 게 종일 입이 댓 발 나와서는 사람을 봐도 한마디도 할 줄 몰라. 잘못을 해도 설명하거나 변명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 기분을 풀어 줄 줄도 몰라. 이 애는 멍청이야.”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친척과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고, 선생님도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일정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한 주변 환경을 경험하면서, 그에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의 심리가 생긴다. 어떠한 심리겠느냐? 자기가 못생겼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자기를 싫어하고, 공부도 못하고, 둔하고, 숫기가 없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누가 뭘 줘도 부끄러워서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말주변이 없을까? 남들은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 거지? 나는 멍청이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자기를 아주 한심하게 여긴다. …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자기 장점이 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는 남들의 호감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항상 자기가 멍청하고 사교성이 없다고 느낀다. 요컨대, 자기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얼굴도 못생겼고, 머리도 나쁘고, 둔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도 않고, 학교 성적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 열등감이 마음속에서 점차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후 일종의 벗어날 수 없는 정서가 되어 네 마음을 옭아매고 네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어른이 된 이후든, 사회에 나간 이후든, 결혼해서 독립한 이후든, 네 사회적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어렸을 때부터 성장 환경에서 심어진 열등감은 네게 있어 해소할 수 없는 정서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게 되어 교회에 온 이후에도 너는 여전히 네 외모가 그저 그렇고, 타고난 머리가 나쁘고, 말재주가 없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여기며, 이렇게 생각한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걸 하자. 리더를 목표로 할 필요도, 심오한 진리를 추구할 필요도 없어. 나는 기꺼이 가장 작은 자가 될 거야. 남들이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어.’ 너는 적그리스도나 거짓 리더가 나타나도 네가 그들을 분별하고 폭로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자기는 그럴 재목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가 아니면 그걸로 됐고, 자기가 방해하고 교란하는 게 아니면 그걸로 됐고, 자기는 자기 위치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너는 마음속 깊이 자신이 무능하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구원의 대상일지 몰라도 너는 기껏해야 힘쓰는 자일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너는 자격 미달이라 생각한다. 네가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얼마나 되든, 어차피 하나님이 네게 예정해 준 자질과 외모가 그러하다면 너를 그저 힘쓰는 자로 예정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도, 리더가 되는 것과도, 그 어떤 책임자가 되는 것과도, 구원받는 것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기며, 기꺼이 가장 작은 존재가 되려 한다. 이런 열등감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면, 네 가정환경, 또 성장 환경이 네게 적당히 타격을 주거나 너를 부적절하게 규정한 탓에 네게 열등감이 생긴 것이다. 이런 정서는 네 올바른 추구 방향과 정당한 추구 의사에 영향을 주며, 무언가를 정당하게 추구하지 못하도록 너를 억압한다. 너의 정당한 추구가 억압당하고 정당한 인성에 응당 존재해야 할 의지가 억압당하면, 긍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할 동력도 억압당한다. 이러한 억압은 주변 환경에 의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네게 가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이 네게 정해 준 것도 당연히 아니다. 이는 네 마음 깊숙한 곳의 심각하게 부정적인 정서로 초래된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항상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팀장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것은 바로 열등감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때 저는 부끄러움이 많아 낯선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어려워했는데, 부모님께서는 저보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 같다며 평생 남들 앞에 나설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친척들조차 제가 사교적인 말 한마디 못 한다고 바보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들은 제 자존심에 깊이 상처를 주었고, 열등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늘 스스로를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말해야 하는 상황만 닥치면 주눅이 들었습니다. 특히 자주 교제하고 말해야 하는 본분이 주어지면, 무조건 피하고 거절하기 일쑤였습니다. 언변이 좋고 자질이 저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저는 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고 느껴 위축되었고, 한껏 소극적인 마음으로 뒷걸음질쳤습니다. 제게 팀장 역할을 맡을 기회가 와도, 저는 스스로 그런 그릇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물러셨습니다. 적극적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열등감은 제가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목표 추구에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제한하며 책임을 회피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온전케 되는 수많은 기회를 놓쳐 버렸고, 자신의 생명 진입에도 큰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집은 여전히 제게 훈련할 기회를 주시며 팀장을 맡게 하셨습니다. 저는 더 이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저를 인도하시고 믿음을 더해 주셔서 열등감의 속박과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그 안에서 열등감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열등감이 생겨난 배경이 무엇이든,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든, 어떤 일로부터 비롯되었든, 어쨌든 너는 너의 자질, 특기, 재능, 그리고 인품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열등감은 잘못된 것이고, 자만도 잘못된 것이다. 둘 다 부정적인 정서에 속한다. 열등감은 너의 손발을 결박하고 너의 사상을 결박하며, 네 관점에 영향을 주고 입장에 영향을 준다. 자만 역시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열등감이 됐든 다른 부정적 정서가 됐든, 너는 그러한 정서를 일으킨 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우선 그러한 말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말이 너에 대해 내리는 평가와 결론은 그게 네 자질과 재능에 대한 것이든, 인품에 대한 것이든, 전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고, 인식하고, 열등감과 같은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자기 인성이 어떠한지, 자기 자질과 재능이 도대체 어떠한지, 자기한테 어떤 특기가 있는지 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가늠해야 한다. 자기가 배운 것, 자기 장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 자기 결점과 부족함은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기 자질이 과연 뛰어난지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평가와 인식이 필요하다. 만약 자기 문제를 명확하게 보고 제대로 인식하기가 힘들다면 분별력 있는 주변 사람에게 평가를 부탁한다. 그의 말이 정확하든 아니든, 최소한 네가 자기에 대해 기본적인 판단을 내리고 자기를 규정하는 데에 참고 사항은 되어 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 속에서 차츰차츰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정서는 사람이 분별하고 각성하고, 진리를 구할 수 있다면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 뒤, 제 마음은 밝아졌습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며, 객관적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대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하고 단점과 부족한 점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올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할 때 비로소 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오랫동안 열등감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항상 저를 말주변이 없다고 나무랐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스스로 언어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자주하고 교제해야 하는 본분이 주어질 때마다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평가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 어느 정도 인식이 생겼고, 자신의 체험과 인식을 나누어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유익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업무적인 문제도 조금은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표현 능력이 부족하고 말이 장황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전혀 의사소통을 못하거나,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이는 극복할 수 없는 고질병이 아니라 글을 쓰거나 교제를 많이 훈련하면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인식하고 나니 팀장 본분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고,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 문제가 생긴 것을 볼 때면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었고, 팀 내 형제자매들의 사역 진도도 자주 확인하며 그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한 뒤, 함께 상의하며 해결해 나갔습니다. 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협력하는 자매와 논의를 거치면 결국에는 어느 정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협력하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형제자매들도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팀장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자신감이 조금 생겼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리더는 제게 내부 논의 끝에 저를 책임자로 양성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는 놀랍고도 기뻤지만, 곧바로 자신의 언어 표현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팀장도 겨우 감당하고 있는데, 팀의 형제자매들도 제 그저 그런 수준을 알고 있어서 교제를 잘 못해도 이해해 줄 수 있었지만, 책임자를 맡으면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해야 하고, 예배나 사역 진행에서도 솔선하여 교제해야 했습니다. 이런 제 말주변으로 교제하려 입만 열면 부족한 점이 다 드러날 텐데, 교제를 잘못해서 사람들에게 비웃음이라도 산다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리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못해요. 책임자를 맡을 그릇이 안 돼서 다른 자매님을 양육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리더는 제게 교제해 주며 저 스스로를 단정 짓지 말고, 일단 훈련해 보면서 어려움이 생기면 협력하며 해결해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일단 일정 기간 동안 해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저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스스로 열등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이제는 자신을 올바르게 대할 수도 있게 되었는데, 왜 여전히 책임자가 되는 걸 두려워 하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걸까?’ 묵상하며 저는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았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을 포장하고, 늘 자신을 꾸미고 위장함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여 다른 사람이 그의 결점과 부족한 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늘 자신의 가장 훌륭한 면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는 교만함, 위선, 외식으로, 사탄의 성품이고 사악한 것이다. 마치 사탄 정권에 속한 자들과 같다. 이자들은 배후에서 아무리 때려잡고, 싸우고, 죽여도 이를 보도하거나 폭로하지 못하게 하고, 국민이 그들의 악마 몰골을 볼까 봐 갖은 수를 써서 덮어 감추려 한다. 대중 앞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을 꾸며서 자기들이 국민을 아주 사랑하고, 아주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올바르다고 말하는데, 이는 바로 사탄의 본성이다. 사탄 본성의 두드러진 점은 바로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 속이고 기만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바로 눈가림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본모습과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게 해서 장기 통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권력도 지위도 없지만, 그들 역시 사람들이 자신들을 좋게 보기를 바라고,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패괴 성품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사람이 항상 마음을 열지 않고 감추거나 숨기며, 착실한 척하고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 든다면, 또 남들이 꿰뚫어 볼 수 없고 다 그를 탄복하게 한다면, 이런 사람은 매우 어리석지 않으냐? 이런 사람은 누구보다 어리석다! 사람의 진면모는 언젠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걷는 길이 어떤 길이겠느냐? 바로 바리새인의 길이다. 외식하는 사람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이런 자는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말해 보아라, 이런 자가 위험하지 않겠느냐? 바리새인에 속하는 자가 걷는 길은 다 멸망의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늘 자신을 포장하고 위장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자신의 버릇이나 결점을 모두 감추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며, 이로써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만하고 위선적이며, 외식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저의 모습을 돌아보니, 저 역시 하나님께서 밝히신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는 생각에 지배받으며, 자신의 체면과 타인의 마음 속 지위를 너무나 중요하게 여겼고, 늘 타인의 마음에 좋은 이미지와 좋은 평가를 남기려고 했습니다. 저는 말주변이 없고, 어릴 때 어른들에게 자주 꾸중을 들어서 이게 저의 단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저는 회피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예배에서 교제할 때 말이 장황하고 주제에서 벗어나 형제자매들에게 이야기가 끊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무척 창피했고, 이후에도 예배에서 더이상 교제하고 싶지 않았으며,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는 말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모습은 사실 저를 포장하고 위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저의 단점과 버릇을 보지 못하도록 하면 그들로부터 무시 당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겸손하고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고, 좋은 인상과 평가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를 생각해 보면, 원래는 하나님 말씀의 체험과 인식을 서로 교제하고, 서로 돕고 붙들어 주는 것인데, 저는 사람들에게 저의 단점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체험과 인식이 있어도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제가 팀장을 맡고 훈련할 기회를 주며 양육해 주는데, 저는 줄곧 회피하고 거절하기만 했습니다. 설령 팀장을 맡았다 해도 최선을 다해 협력하지 않았고, 계속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본분을 회피하고 거절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자질이 부족하다는 그 이유로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속셈을 감췄습니다. 이 결과 형제자매들은 제가 본분을 거절하는 문제를 추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를 이성이 있고,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며, 지위를 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제게 좋은 인상을 가졌습니다. 저는 일종의 은밀한 방식으로 자신의 체면과 지위를 보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형제자매들을 기만하고 속이고 있던 행동이었으며, 너무 간사한 태도였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저는 제 안에 또 하나의 관점이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저는 오직 언변이 뛰어난 사람만이 리더나 일꾼이 될 자격이 있으며, 언변이 부족한 사람은 리더나 일꾼이 될 그릇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이 관점은 과연 옳은 것인가요?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금 언급한 각 부류의 인재 중 첫 번째 부류는 각 사역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제시되는 첫 번째 요구는 바로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과 자질을 갖추는 것으로, 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부담을 갖는 것이며 이는 필수적이다. 어떤 사람은 진리에 대한 이해가 일반 사람보다 빠르고, 영적인 이해력도 있고, 자질도 뛰어나며, 사역 능력도 있어서 일정 기간 단련하면 반드시 혼자서 한몫을 할 수 있지만,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으니 바로 부담이 없는 것이다. … 또 어떤 사람은 그의 자질을 본다면 사역을 하나 담당하기에는 너끈하지만 아쉽게도 부담이 없다. 그는 책임지는 것, 번거로운 것, 신경 쓰는 것을 싫어해서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설령 일이 보여도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부류가 발탁하고 양성해야 할 대상이겠느냐? 절대 아니다. 반드시 부담을 가져야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다. 부담을 가지는 것은 책임감이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책임감이 있다는 것은 인성 방면에 중점을 둔 것이고, 부담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한 측면의 기준과 관련되는 것이다. 부담을 가지면서 다른 두 가지 요건을 갖춘다면, 즉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사역 능력도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는 부류이며, 이 부류는 각 사역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각 부류의 책임자를 발탁하고 양성하는 것에 관한 요구 기준이며, 이 몇 가지를 갖춘 사람이 바로 발탁하고 양성할 수 있는 대상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리더와 일꾼을 세울 때는 주로 그 사람의 인성과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 그리고 사역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표현력이 좋은 사람은 진리를 교제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 말을 조리 있게 하고 핵심을 잘 짚어 주어, 듣는 사람이 즉시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 유리합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책임자가 언변이 좋고 자질이 뛰어나며 업무 능력도 강하지만, 인성이 좋지 않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며, 본분에 대한 부담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면, 이러한 사람은 리더나 일꾼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많은 리더와 일꾼이 언변과 자질은 뛰어났지만, 본분에 대한 부담이 없고 실제 사역을 하지 않으며, 지위의 복만을 탐하다가 결국 교체되었습니다. 반면, 어떤 리더와 일꾼들은 언변이나 자질이 다소 부족하지만, 본분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이 있으며, 정직하게 사역을 하고 형제자매들이 본분에서 겪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러한 리더와 일꾼은 일정 부분 실제 사역을 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도 훈련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예전에는 저도 제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팀장이나 책임자가 될 그릇이 안 된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제가 진리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잘못된 관점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어떻게 하면 본분을 최선을 다해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지 않고, 최대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노력했으며,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마주하는 일들 속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천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실제의 체험이나 인식이 생겼을 때, 간증문을 작성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말하는 법,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여 듣는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이 방면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에서 사역을 점검할 때, 협력하는 자매가 저에게 진행을 맡겨도 예전처럼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문제점이나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다 같이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면서 점차 성과도 좋아졌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실천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서서히, 저는 열등감의 그늘 속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이전에 비해 훨씬 밝아졌고, 더 이상 어둠의 구석에 숨어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로 조금씩 열등감의 그늘에서 벗어나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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