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체포되고 나서 배운 공과

2025.11.27

중국 우판(吳凡)

2013년 12월의 어느 날, 한 자매에게서 아들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돼 믿음의 뿌리도 깊지 않고, 이제 막 직장을 그만두고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잡혔을까?’ 예전에 제가 체포되었을 때, 경찰은 교회 리더와 교회 금품을 팔아넘기라고 압박하며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저를 괴롭혔고,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고문을 당했습니다. 경찰들은 하나같이 잔인무도한 악마들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극도로 증오해 때려죽여도 그만이라는 식이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의 아들이 이제껏 그런 고통을 겪어 본 적이나 있었겠습니까? 만약 아들이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가 된다면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저는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며, 마음이 칼로 베는 듯 아파 차라리 제가 대신 고통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아들을 돌보고 지켜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드렸지만, 속으로 원망이 일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했는데, 하나님은 왜 그 애를 돌보고 지켜 주시지 않는 걸까? 만약 경찰에게 맞아 불구가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혹시나 맞아 죽기라도 한다면 영영 볼 수 없게 될 텐데.’ 생각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어둡게 가라앉은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셔도 평온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리더 일꾼이 상황을 잘 지키도록 사람을 안배하지 않아서 아들이 잡히게 되었다고 탓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에서 복음 집사를 맡아 일이 바빴지만, 사역에 협력할 마음도 없고, 머릿속은 온통 아들 생각뿐이었습니다.

고통스럽고 무력한 가운데,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아들이 유다가 되지 않고, 형제자매를 팔아넘기지 않도록 돌보고 지켜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기도 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일이 닥칠 때마다 너는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이 이로움을 얻어야 하고, 소극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찌 되었든 너는 하나님 편에 서서 일을 바라보아야 하며, 사람의 관점에서 분석하거나 연구해서는 안 된다(이것은 체험상의 편차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된 사람에 대한 약속> 중에서) 그렇습니다. 매일 닥치는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이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들이 체포된 일에 대해 저는 육적인 관점에서 아들이 고통받지 않기만을 바랐기에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여겼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저는 욥의 체험이 떠올랐습니다. 욥이 막대한 재산을 잃고, 그 자녀들이 화를 당하고, 본인도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 그의 아내는 그를 조롱하며 하나님을 저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욥은 아내를 꾸짖었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복을 받든 화를 당하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이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입으로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미움을 사는 일도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이 잡혀갔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도 아닌데 원망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본분 이행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욥과 저를 비교하니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고, 정말이지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이 본분을 이행하다가 체포되었고,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유다가 되어 나중에 징벌을 받을까 걱정됩니다. 하나님, 저는 마음이 너무 고통스럽고 본분을 이행할 때 내적 상태도 교란을 받습니다. 부디 저를 이끄시어 제 문제를 반성하고 인식하게 해 주십시오.” 기도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감정을 ‘표출’할 기회를 남겨 두지 않는다. 내게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에 대한 나의 증오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사람은 사람과의 ‘정’ 때문에 나를 한쪽에 밀쳐 두었고, 그로 인해 나는 사람의 눈에 ‘제삼자’가 되었다.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정’ 때문에 나를 잊었고, 사람의 정 때문에 기회를 틈타 다시 ‘양심’을 주워 들었으며, 사람의 정 때문에 언제나 나의 형벌을 싫어했다. 사람은 정 때문에 늘 내가 공정하지도 의롭지도 않다고 말하고, 내가 일을 처리할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설마 땅에 내 ‘친족’이라도 있단 말이냐? 누가 나처럼 내 모든 경륜을 위해 침식을 잊고 밤낮으로 애썼더냐? 사람이 어찌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과 합할 수 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8편> 중에서), 『사람은 모두 ‘정’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피하지 않고 전 인류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냈다. 왜 감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느냐? 그것이 양심의 기준보다 높단 말이냐? 양심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느냐? 감정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눈에 감정은 하나님의 원수다. 설마 하나님이 이를 명확히 말씀하지 않았단 말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 해석ㆍ제28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정에 이끌려 사는 것을 혐오하시며, 사람이 일단 정에 이끌려 행동하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온통 육적인 혈육의 정과 이익뿐이라 근본적으로 진리를 구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만 하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아들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경찰이 분명 아들을 때리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 리더 일꾼을 팔아넘기도록 강요할 것이고, 만약 아들이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유다가 되면 구원받을 기회를 잃게 되어 나중에는 복은 고사하고 지옥에 떨어져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또 만에 하나 아들이 경찰의 구타로 불구가 되면 아직 젊은 나이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하는 한편, 경찰이 만약 아들을 때려죽이기라도 한다면 저는 아들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심각한 결과를 떠올리며 저는 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제 아들을 돌보고 지켜 주시지 않느냐며 불평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따지고 대들었습니다. 제게 이성이 어디 있고, 인성이 어디 있었나요? 사람이 정에 이끌려 살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왜 ‘감정은 하나님의 원수’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구하는 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여 가게 하는 길이 곧게 뻗은 순탄 대로가 아니라 가파르게 굽이지고 울퉁불퉁한 길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하나님은 험난한 길일수록 우리의 사랑을 더 극명하게 보여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 중에 그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또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험난하고 순탄치 않은 길을 많이 걸었으며, 크나큰 고통도 감내하였다. 심지어 때로는 가슴 찢어질 정도로 슬퍼서 크게 소리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날까지 걸어왔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모든 괴로운 고통을 참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일진대 누가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복받는 것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따라가거나 그들의 길로 가고 싶지 않다. 오로지 충성을 다하며 내가 가야 할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다른 이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 또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왠지 나는 이 부분에서 매우 예민한 것 같다. 나는 항상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하는지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라 그 누구도 누구를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길 …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이 일생 동안 얼마나 고통받고 어떤 환경을 겪을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며, 저는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가져야 할 이성이자 실행이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을 증오하고 진리를 증오하는 큰 붉은 용의 본질에 대해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오늘 체포되어 이런 고통을 받는 것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더욱이 아들이 배워야 할 공과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많은 형제자매가 큰 붉은 용의 체포와 박해를 겪으며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통과 환난 속에서 차라리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지언정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고, 육을 이기고 사탄을 이겨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고 힘 있는 간증을 했습니다. 제가 체포되었던 경험도 떠올랐습니다. 비록 당시 육적으로 고통을 겪었고 혹형을 당할 때 겁이 나고 연약해지기도 했지만,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심이 있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더 커졌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붉은 용의 사악한 본질에 대해 분별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인식하고 난 뒤, 저는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그분의 지배와 안배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한 달 후, 아들은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분량이 작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감히 인정하지 못했고, 결국 풀려났습니다. 이번 실패를 겪은 후, 아들은 몇 가지 공과를 배우고 큰 붉은 용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고, 자신이 분량이 너무 작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반년 후, 아들은 다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 10월의 어느 날, 교회에서 아들이 다시 체포되었고, 아들이 소속된 교회에서 리더 일꾼을 포함해 서른 명이 넘는 사람이 체포되었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들은 이미 전과가 있었기에, 만약 경찰이 아들이 리더를 맡았던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교회 돈과 리더 일꾼을 팔아넘기라고 핍박하고 ‘3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각기 부류대로 사람을 드러내시는 때인데, 만약 공산당에 세뇌되거나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3서’에 서명하여 하나님을 배반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지옥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것이므로 다시는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가슴이 무언가에 꽉 막힌 듯 괴로웠고, 아들의 앞날과 운명을 걱정하기 시작하니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아들을 긍휼히 여겨 이 난관을 무사히 넘기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몇몇 형제자매는 제가 기분이 가라앉아서 온종일 한숨만 쉬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주었고,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또다시 정에 얽매인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이 또 경찰에 잡혀갔습니다. 저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아들의 생사와 앞날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를 이끄시어 진리를 구하고 이 일에 얽매이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 후, 저는 자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하나님의 교제가 생각나 그에 관계된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부 어리석은 부모들은 인생과 운명을 밝히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인식하지 못해 자녀를 대하는 일에서 쉽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다. 예를 들어, 자녀가 독립한 후 특수한 일을 만나거나 고난과 큰 사고가 닥친 경우가 그렇다. 어떤 이는 병에 걸리고, 어떤 이는 소송에 휘말리며, 어떤 이는 이혼하고, 어떤 이는 사기당한다. 또 어떤 이는 납치당하거나 남에게 해를 입고 구타당해 죽음에 직면하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자녀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한다. 이렇게 특수하고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대다수의 부모는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 부모의 신분을 지닌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을 하겠느냐? 이런 일을 전해 듣고 남의 일처럼 행동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하룻밤 새에 머리칼이 하얗게 세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낮에는 밥을 넘기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 싸맬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하염없이 울어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고 눈물마저 말라 버린 채 하나님을 믿는 자신을 봐서 좀 봐달라고, 자기 자식을 지켜 달라고, 자녀에게 죽을 고비가 닥쳤을 때 자녀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부모로서 인성적인 연약함과 유약함, 그리고 자녀에 대한 정이 전부 드러난다. 동시에 무엇이 드러나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패역이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 자식에게 어떤 재앙도 닥치지 않게 해 달라고, 설령 재앙이 닥치더라도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악인에게 해를 입지 않게 해 달라고, 병세가 심해지지 않고 호전되게 해 달라는 등 이런 것을 구하고 기도할 것이다. 그는 무엇을 구하는 것이냐? (하나님, 그의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며, 또 원망이 들어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자기 자식에게 그런 일이 닥친 것에 몹시 불만을 품고, 그런 일이 닥치지 않게 해야 했다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불만 속에 원망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 후에는 하나님에게 생각을 바꾸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자기 자식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평안해지게 해 달라고 구한다. 병에 걸렸다면 낫고, 소송에 휘말렸다면 그 상황이 마무리되고, 화를 당했다면 화근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즉 모든 것이 평화롭고 순조롭게 해 달라고 말이다. 이런 기도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패역한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담긴 속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도 좋지도 않으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네 자식이고 너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은 그에게 그런 일이 닥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다른 사람의 자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하나님을 믿는 너를 봐서라도 하나님은 그를 축복해 줘야 한다고 말이다. 만약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지 않는다면 너는 괴로워하고 울고 소란을 피우며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거라고, 그가 죽는다면 너도 못 산다고 말이다. 이런 의미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누구의 운명을 지배하고 주재하든 너와 관계가 없으면 괜찮고, 네 아이의 운명을 주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냐? 하나님이 보기에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주재 아래 있으며, 누구도 하나님 손의 주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왜 네 아이만 예외란 말이냐? 하나님의 주재에는 그의 정함과 계획이 있다. 네가 바꾸고 싶다고 그게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일이나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르지 마라.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다 전생의 인과가 있다. 그것이 너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주재에 대항한다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네 자녀에게 그런 일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감정일 뿐 정의도, 긍휼도, 선량함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감정의 작용에 불과하다. … 사람과 사람 간의 진정한 관계는 육적인 혈연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든 하나의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 사이의 관계이다. 그 관계는 육적으로도 혈연으로도 얽혀 있지 않다. 그저 독립된 두 생명체일 뿐이다. 이런 각도에서 생각한다면, 부모로서 자식에게 불행히 병고가 닥치거나 혹은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런 일을 올바로 마주해야지 자식의 불행이나 죽음 때문에 자신에게 남은 생존의 시간을 버려서는 안 되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나 완수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버려서도 안 된다. 이 일은 올바로 마주해야 한다. 네가 올바른 사상 관점으로 이 일을 밝히 알 수 있다면 절망과 비통, 그리움 속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원래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사람은 독립적인 생명체이며, 영혼이 환생하여 이 물질세계에 온 후에야 비로소 가정이 생기고 부부, 부자, 모녀 등과 같은 관계가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본질로만 보면 원래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런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육적인 혈육의 정과 혈연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 자녀에게 재앙이나 병고, 혹은 생명의 위협이 닥쳤을 때 부모는 정에 사로잡혀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합니다. 사실, 사람이 일생 동안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지 부모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이웃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그 부부는 평생 먹을 것 안 먹고 쓸 것 안 쓰며, 힘들게 번 돈을 전부 딸에게 쏟아부어 귀족 학교에 보내 최고의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딸이 장래에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딸은 바른길을 가지 않고 어린 나이에 마약을 했고, 결국 마약 밀매로 체포되어 1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자 부부는 거의 정신이 무너졌습니다. 또 한 젊은 자매가 있었습니다. 자매의 부모는 오랫동안 타지에서 일하느라 어릴 때부터 딸을 큰아버지 댁에 맡기고 딸의 학업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결국 대학에 합격했고, 큰아버지 부부를 따라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며, 지금은 본분을 이행하며 인생의 바른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지는 부모의 관심이나 교육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부모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줄곧 아들의 앞날과 운명을 걱정하며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했고, 심지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까지 교란을 받았습니다. 그저 아들이 혹형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유다가 되면 구원받을 기회를 잃을까 봐 걱정했고, 심지어 하나님께 아들이 마귀에게 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난관을 넘기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제게 이성이란 게 조금이라도 있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이 처음 체포되었을 때 그는 분량이 작아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감히 인정하지 못하고,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10년 후 아들이 다시 체포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던 것이고, 아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며, 아들에게는 하나의 검증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아들이 큰 붉은 용의 흑암 권세의 속박을 이겨 내고 목숨을 내걸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한다면, 이번에 체포된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며 본인에게는 온전케 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에 따라 일을 바라보느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그저 안일한 환경에서 육이 고통받지 않는 것이 아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보는 제 관점은 하나님의 뜻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으니, 정말이지 너무나 엉터리였습니다! 아들이 이번 체포에서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을지는 본인의 본질과 평소의 추구, 그리고 본인이 걷는 길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아들의 앞날과 운명에 대해 조바심을 내며 늘 고통 속에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해방되었습니다.

구하는 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가 한 사람의 일생에서 맡는 책임은 출산과 부양 외에, 형식상으로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데 그칠 뿐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오직 창조주의 예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지는 누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부모조차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다. 운명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고 각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누구의 부모도 한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막을 수 없고, 그가 현생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데 조금도 힘을 보태 줄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 이는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 그것이 운명을 조금도 결정할 수 없고, 어떤 운명 속에서 사명을 완수하게 될지도 전혀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한 사람이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고, 가족들 역시 그가 현생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완수하게 될지, 어떤 생존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는 완전히 현생의 운명에 달려 있다. 즉, 창조주가 정한 모든 사람의 사명은 그 어떤 객관적인 조건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특정 성장 환경에서 성숙해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인생길에 들어서며,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을 조금씩 실현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끝없는 인해 속으로 들어가 인생의 자리에 서서 창조주의 예정과 주재에 따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가 자녀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을 명확히 알려 주셨습니다. 부모로서 저의 책임은 아들을 잘 키워 건강하게 성장하게 하고, 그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고,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믿고 바른길을 걷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모로서의 저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체포되어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을지, 이후의 결말과 종착지는 어떠할지, 복을 받을지 징벌을 받을지, 이런 것들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조물로서 저는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하며, 그래야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제 마음은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아들이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든 없든, 장래에 복을 받든 화를 당하든, 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조금은 마음이 쓰이지만, 내적 상태는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고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따지고 변명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떤 성품인가?

중국 쟈위(佳語)2024년 4월 어느 날, 저는 윗선 리더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몇몇 자매들이 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줄곧 예배를 안배해 주지 않았고, 평소 사역 점검도 제때 하지 않으며, 편지 답장도...

마음속 응어리를 풀다

중국 춘위 작년 봄에 저는 복음 전하는 본분을 했고 왕 자매가 복음 집사로 뽑혀서 저희는 자주 본분에 대해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왕 자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솔직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한테 무슨 문제가 보이면 바로 말했고 말투도 좀 강했어요....

저는 더 이상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미국 위징(于敬)저는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고 머리 회전도 느렸습니다. 가족들도 제가 영리하지 못하고 머리가 나쁘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표현력도 좋지 않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말할 때 쉽게 긴장했고, 한번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늘...

올바르게 본분을 대하는 법을 배우다

중국 류창(劉强)저는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늘 어머니가 밥을 하고 청소하는 모습만 보았지, 아버지가 요리나 집안일을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가끔 외할머니가 하루 종일 집에 안...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