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에 소극적이고 태만했던 진짜 이유
중국 둥쉰(董尋)2021년 어느 날, 리더는 저에게 몇 개 그룹의 예배를 책임지도록 안배하였습니다. 한동안 훈련을 거친 후, 저는 원칙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고, 사람의 내적 상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많은...
한때 저는 공산당의 추적과 체포를 피해서 어쩔 수 없이 접대 가정에 몸을 피해 본분을 이행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책임자가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사람을 분별하는 방면의 진리 원칙을 교제해 주는데, 속으로 저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역시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좋지. 예배 참여도 많이 하고 진리도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진리에도 빨리 진입할 수 있잖아. 나처럼 문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온종일 집안에서만 지내지 않아도 되잖아. 손에 들고 있는 사역 말고는 하루 종일 접대 가정 부부와 개랑만 어울리는데, 생활 반경이 이렇게 좁아서 만나는 사람도 얼마 없고, 패괴를 드러낼 자리도 없으니 어디에서 자신을 인식하지? 어디에서 진리를 더 얻어야 하나?’ 당시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를 근거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시는데, 내가 최후에 진리를 얻지 못해 성품이 변화하지 않는데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까 문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지 않아서 책임자에게 사람들을 많이 접하고 예배를 많이 드릴 수 있는 본분으로 조정해 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는 건 이성 없는 행동이야. 사람이 이행하는 본분은 모두 당사자의 자질, 특기를 근거로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안배한 것인데, 내가 이렇게 본분을 가리는 것은 순종하지 않는 거야.’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느라 마음을 평온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에도 책임자가 예배드리러 나서는 것을 보자 몹시 부러웠습니다. ‘책임자를 맡으니 정말 좋겠다. 항상 리더와 예배드리면서 진리도 많이 깨닫고, 각 팀에 가서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도 할 수 있으니 매일 수확도 많을 거야. 그러면 생명이 얼마나 빨리 자랄까! 문서 본분을 하면서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게 안전하기는 하지만, 예배를 거의 못 드리니 어디에서 진리를 얻겠냐고.’ 저는 속으로 참지 못하고 문서 본분을 하기 싫다고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책임자가 당장 문서 본분을 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내가 이 본분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교회가 곤란해지지 않을까? 우선은 이행하고 있을 수밖에 없어.’ 손에서는 사역을 놓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부담이 없었습니다. 당시 2, 3일 동안 컴퓨터가 계속 먹통인데다 저도 본분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 사역이 지체되었습니다. 책임자는 저에게 밖에서만 원인을 찾지 말고 자신의 내적 상태를 반성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임자에게 최근에 드러난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책임자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진리를 구해 자신의 내적 상태를 해결했나요? 자매님은 지금 드러난 패괴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고, 지금 있는 공과도 배우지 않는데, 본분을 바꾼다고 해서 공과를 배울 수 있겠어요?” 책임자가 던진 그 말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가 한 말이 확실히 옳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앞에 놓인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데 집중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와 사람에게 아주 이롭고 도움이 되는 것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너희에게 필요한 자양분이자 영양분으로, 정상 인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반드시 갖춰야 할 진리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너희의 생명은 더 빨리 성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수록 진리는 더욱 명확해진다. 너희의 분량이 커지면 영계의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며, 더욱 강력한 힘으로 사탄을 이길 수 있다. 너희가 깨닫지 못한 수많은 진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때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표면적 의미를 깨닫는 데 만족하고 도리적인 글귀를 채우는 데에만 집중할 뿐, 실행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작태가 아니겠느냐?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라”라는 말의 실제를 갖출 수 있겠느냐?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을 때 생기는 것이지, 말씀을 보는 것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생명과 분량이 생길 거라고 여겼다면, 네 인식은 치우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를 실행했을 때에야 참되게 깨닫는 것이다. 너는 ‘진리는 실행했을 때 깨닫는다’는 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에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다고 할 정도는 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진리를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절반만 맞을 뿐, 100%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네가 어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너는 그 진리를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설교를 들으면 언뜻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저 진리의 글귀를 갖췄을 뿐, 진리의 참뜻을 갖춘 것은 아니다. 진리의 겉껍데기를 안다고 해서 진리를 이해하고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다. 진리의 참뜻은 모두 체험 과정에서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체험해야만 진리를 깨달을 수 있고 체험 과정에서 진리의 감춰진 부분을 찾아낼 수 있으며, 체험이 깊어져야 진리의 함의를 포착하고 진리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리를 깨달았다면 마땅히 실행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저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현실 생활에서 실행하고 진입해야 합니다. 열심히 실행하는 사람만이 진리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교제를 듣기만 하고 정작 실행과 진입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도리만 깨달은 것에 불과하고,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전에 알던 리더 두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사역에 매달렸습니다. 여기저기서 형제자매들과 예배드리고 교제했고, 하나님 말씀도 꽤 많이 읽었습니다. 윗선 리더와도 예배를 여러 번 드렸습니다. 비록 글귀와 도리는 많이 깨달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드러내는 패괴는 열심히 성찰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언제나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형제자매를 자기 앞으로 이끌다가 결국에는 적그리스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한 명은 지위 욕심이 커서, 자기에게 굽히지 않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괴롭혔고, 결국 온갖 악행을 저질러 교회에서 출교되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형제자매들은 눈에 띄지도 않고 접하는 사람도 제한적인, 그런 본분을 이행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자신을 반성하는 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생명이 자라고, 그중에는 간증문을 써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 시대의 베드로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설교를 많이 듣기도 했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평소 주님 말씀을 자주 묵상하고 일상 생활에서도 그 말씀을 열심히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차츰 체험하다 보니 진리는 그의 생명이 되었고, 그는 점차 실제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경외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고 생명 진입에 관한 설교와 교제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일이 닥쳐도 자신을 열심히 반성하지 않고, 일을 할 때도 진리를 거의 구하지 않아서 수확이 보잘것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도리를 갖추는 데만 집중하면, 아무리 많은 것을 깨달아도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예전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면의 진리를 자주 보았고, 어떤 일이 닥치든 본분을 지키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관념과 맞지 않은 환경을 마련하시자 비로소 제가 순종의 실제를 전혀 갖추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 본분이 제 뜻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저는 반발하며 순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에 아무리 교제를 많이 들었어도, 그것이 제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제가 깨달은 것은 그저 글귀와 도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역시 진정으로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생명 성품도 변화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에 맞춰 계속 구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패괴 성품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반드시 모든 일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고, 자신을 인식하고, 진리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패괴 성품을 반드시 반성하고 파헤쳐 자기가 깨달은 진리에 따라 분석하고 분별해야 한다. 그 후, 조금씩 조금씩 패괴 성품을 타파하여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모든 행위가 진리에 부합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추구하고, 실행하고, 자기를 인식하면, 패괴 표출은 나날이 적어지게 되고, 성품 변화에 희망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 실행의 길이다. 성품 변화는 생명 성장의 일이므로, 반드시 진리를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어야 패괴 성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패괴 성품이 여전히 수시로 드러나고, 심지어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매번 드러난다면, 이는 성품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패괴 성품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진지하게 분석하고 파헤쳐야 한다.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의 근원을 파헤쳐 해결해 버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패괴 성품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 네가 이 길을 찾으면, 너의 성품 변화에 희망이 생긴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공허하지 않으며, 모두 현실 생활과 관계가 있다. 핵심은 바로 사람이 진리 실제를 위해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일 수 있는지 여부이고,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해 낼 수만 있으면 점차적으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 즉, 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한 자기 자리를 찾고, 피조물의 지위에 똑바로 서서, 하나님에게 진실로 순종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의 원칙> 중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사람은 매일 패괴 성품을 드러냅니다. 매번 어떤 일이 닥치거나 어떤 말을 내뱉을 때마다 거기에는 늘 사람의 패괴 성품과 그릇된 사상 관점이 섞여 있을 수 있으며,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진리를 구해 인식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진리를 얻을 수 있을지, 성품 변화에 이를 수 있을지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접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패괴가 많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아서 사람을 적게 접하면 패괴도 그만큼 덜 드러난다는 것은 저의 관념과 상상입니다. 사실 이행하는 본분이 사람을 적게 접하더라도, 본인의 생명 진입에 부담을 가져서 자신이 매번 일을 마주쳤을 때 드러나는 마음과 사상 관점에 유의하고, 진지하게 성찰하며, 패괴를 발견하는 즉시 진리를 구해 해결한다면, 마찬가지로 진리를 얻을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지금 본분을 이행하며 사람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사역 과정에서 패괴를 많이 드러냈습니다. 어떤 때는 사역이 바빠서 밤을 세워야 하는데, 저는 눈이 약간 안 좋아서 눈을 과하게 쓰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눈이 나빠지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해 구원을 받지 못할까 봐 몸을 사리는 바람에 사역이 지체된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했습니다. 그래서 세세하게 검사해야 하는 사역을 검사하지 않아 결국 사역을 다시 해야 했고, 사역 진도가 늦어진 적도 있습니다. 저의 불량한 습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깨달았습니다. 또 생각해 보니, 예전에 이행했던 본분은 매일 예배드리고 사람을 만나느라 바빴습니다. 그때는 패괴가 꽤나 드러났지만, 본분이 바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를 해결한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많은 일을 체험하며 그만큼 패괴도 많이 드러났지만 진리를 얼마 얻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문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매일 일에만 매달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패괴를 반성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본분 이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머릿속이 텅 빈 상태이거나, 육의 즐거움, 가족의 정, 명예와 지위 등 진리와 무관한 것들을 생각하느라 생명 진입 면에서 이렇다 할 성장이 없습니다. 진리를 얻는 일에서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열심히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느냐, 패괴가 드러나면 이를 진지하게 대하고 노력을 기울여 해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설령 책임자라고 해도 진리를 얻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 앞에서 저는 비로소 제 관점이 얼마나 황당하고 그릇되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관점에 기대어 일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저는 늘 이 본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않고 본분에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사역을 그르쳐서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할 때는 올바른 사상 관점을 갖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런 점들을 깨닫고 난 뒤, 저는 더 이상 본분을 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지금의 이 기회를 단단히 붙들어서,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잘 살피고, 즉시 진리를 구해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반성하는 과정에서, 제가 순종해서 지금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 데는 제 잘못된 관점 때문만이 아니라,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지배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본분을 이행하면 진리를 많이 얻지 못하고, 그러면 복을 받을 희망도 요원해지는 줄 알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하는 속셈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은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으며 버리고 헌신하며 힘들게 사역하는 목적은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복을 받지 못하면 본분을 이행할 동력을 상실했고, 무슨 일에도 의욕이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후로 줄곧 열정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직장과 결혼을 포기하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며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서 본분을 안배받게 되니까, 그 본분을 이행하면 나가서 예배드릴 기회도 적고 진리도 많이 얻지 못해서 구원받는 데 지장을 받을 것이라 여기고, 책임자에게 본분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려 했습니다. 또 리더가 저에게 안배해 준 본분이 부적절하다고 불평하며 본분도 건성으로 이행하기 시작했고, 일을 질질 끌면서 사역을 지연시켰습니다. 제가 버리고 헌신하면서 본분을 이행한 목적이 오직 복을 받으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였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로지 제 이익만 생각했고, 본분 이행을 복을 받기 위한 도구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복을 받는 데 유리한 본분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극적으로 대하고 반발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만족게 해 드릴 생각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고, 하나님께 일말의 진심도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추구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수밖에 없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마땅히 교회의 안배에 순종하고 본분에 마음을 기울여 진지하게 대해야 하고, 일이 닥치면 자신을 반성하고 공과를 배우는 데 집중하며 성품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 뒤로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접대 가정의 형제는 열정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지만, 생명 진입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과거에 늘 선의로 그를 도와주려고, 일이 생길 때마다 무턱대고 형제에게 스스로를 인식하라고 하는 바람에 형제로부터 반발과 반감을 샀습니다. 그러면 저는 오히려 형제가 제 선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며 억울하게 생각했습니다. 반성을 통해 저는 제 내면에 교만한 성품이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는가 하면, 사람들을 도울 때도 원칙이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사랑으로 남을 돕는 원칙’을 보고 사람을 도울 때는 적어도 그 사람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며,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려면 그 사람의 분량에 맞게 대하고 차근차근 교제하며 도와주어야지, 남에게 자기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는, 전에 많은 형제자매들이 외지로 나가 복음을 전할 때 저는 몇 가지 이유로 외지에 갈 수 없어서 소극적이 되며 낙담했고, 왜 저에게 이런 일이 닥치게 하셨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후 저는 진리를 구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제 내면에 도사린 복받으려는 속셈과 잘못된 관점을 반성하고 인식했습니다. 외지에 나가 본분을 이행하면 훈련 기회도 많고,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기회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소극적으로 변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저는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고, 사람이 진리를 얻는 일은 그 사람이 진리에 노력을 들이고 대가를 치르는지가 관건이지, 어디서 본분을 이행하는지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마땅히 제 본분을 지키고 지금의 상황에서 진리를 추구하며 공과를 배우고 자신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그동안의 체험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믿으면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실행하는지가 관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만나는 일에서 진지하게 구하는 한편, 자신의 패괴를 반성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하는 데 집중하며, 성품 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면, 매일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문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에 더 이상 반발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본분을 소중히 여기며 진리 추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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