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은혜를 대하는 방법

2025.4.18

제가 세 살 때 부모님은 가정 불화로 이혼하셨고, 네 살 때 저는 새엄마가 생겼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이웃집 할머니들이 종종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불쌍하기도 하지. 앞으로 고생문이 훤하구나. 새엄마한테는 사랑을 못 받는 법이지! 얘야, 새엄마 화나게 하면 안 된다. 얌전하고 부지런해야 해. 그래야 매맞지 않고 밥이라도 얻어먹지.” 그때는 그 말이 알 듯 말 듯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절대 새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엄마는 뜻밖에도 저를 친자식처럼 대하며 무척 잘해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남동생이 생겼는데도 변함없이 관심을 베풀며 저를 아끼셨고, 친엄마보다도 더 잘해 주셨습니다. 새엄마는 저와 동생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랑 너희 아빠가 힘들게 일하면서 돈 버는 게 다 너희들 집도 사 주고, 장가도 보내려고 이러는 거야. 너희가 이다음에 장가가서 아빠 엄마한테 효도하면 우린 아무리 힘들어도 보람 있단다!” 그럴 때마다 저는 진지하게 다짐했습니다. “엄마, 제가 크면 꼭 두 분께 효도하고 잘 모실게요.” 새엄마는 언제나 그 말에 흐뭇한 미소를 띄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새엄마는 고생을 견디며 저를 키워 주셨고, 또 제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늘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 한다’던 할머니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고, 양심이 없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94년, 저희는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교회를 돌보러 자주 나갔고, 어떤 때는 하루 이틀만에 돌아올 때도 있었습니다. 두 살배기 아이와 농사일을 돌보고 처리할 시간이 없었는데, 저희가 주님을 위해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어머니께서 그 일들을 도맡아 해 주셨습니다. 2002년, 저희 가족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부모님은 저희가 본분을 이행하도록 더욱 열심히 지원해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잘 알려진데다, 현 단계 사역을 받아들인 뒤 현지에서 복음을 전한 일로 인해 저는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경찰에 잡혀가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나 일년 내내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명절 때마다 한자리에 모인 다른 가족들을 보면 가족이 무척 마음에 걸리고 부모님이 그리웠습니다. 특히 농번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허리와 다리가 안 좋으신데다 류머티즘이 있어서 흐린 날이나 비가 오면 통증이 심하지. 평소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두 분이 되도록 힘든 농사일을 못 하시게 했는데, 지금은 나와 집사람이 다 밖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 두 분이 아이만이 아니라 농사일도 돌보시느라 너무 고생하고 계시는구나.’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집에 돌아가 농사일이라도 해서 부모님 고생을 덜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면 경찰에 잡혀갈 가능성이 커서 별 도움도 안 되고, 게다가 당시는 본분이 바빠서 교회 사역을 내팽개치고 집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길을 가다 밭에서 밀을 수확하는 농부를 보면, 부모님이 밭에서 고개를 들어 땀을 닦는 모습이 떠올라서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저도 모르게 원망이 생겼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며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히는 것만 아니면 농사일이 바쁠 때는 집에 돌아가 부모님 일을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부모님께 죄송했습니다. 밤이 되면 밭에서 비틀거리며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참지 못하고 몰래 울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부모님을 당신 손에 맡기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2012년 12월, 저는 복음을 전하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심문을 받을 때 경찰은 고문으로 저를 괴롭혔습니다. 정신이 몽롱할 때 형사반장이 자기 휴대폰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이 퀭하고 초점이 없는 아흔 살의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장에라도 돌아가실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희끗희끗한 백발에 눈물로 얼룩진 얼굴, 입술을 떨며 뭔가 따지는 듯했고, 감정이 격앙되어 보였습니다. 화면을 보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우는 것을 보고, 보위부장은 이때다 하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마을 사람들한테 알아보니 다들 네가 효성이 지극하다면서 괜찮게 얘기하더군. 할머니도 백 살을 바라보고 부모님도 일흔이 넘으셨는데 다들 네가 돌아와서 가족과 함께하기를 바라시잖아! 할머니가 언제 가실지 모르는데 한 번 뵙고 싶지도 않아? ‘인생에서 효도가 우선’이라고 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게 노후에 자식한테 의지하면서 말년을 편안하게 지내려는 것 아닌가? 냉정하게시리 그 양반들이 이렇게 외롭게 말년을 보내도록 할 거야? 이제 두 분 다 연로해서 볼 날도 얼마 안 남았어. 네가 하나님 믿는 것 때문에 10년형, 8년형을 선고받으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몰라. 그러면 평생을 후회하고 자책하겠지. 알고 있는 것만 다 얘기하면 당장 집으로 가서 가족들을 볼 수 있어. 잘 생각해 보라고!” 그 말을 들으니 예전에 할머니, 어머니께서 아껴주시고 보살펴 주시던 장면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라서 그만 대성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노년에 제가 두 분께 효도하길 바라셨습니다. 지금 두 분이 이렇게 나이 드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저는 두 분을 곁에서 모시면서 아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두 분이 붙잡힌 아들 때문에 가슴을 졸이며 지내도록 만들었습니다. 10년형, 8년형을 선고받으면 아마 두 분을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소극적으로 움츠러들고 원망도 생겼습니다. ‘내가 만약 여기 와서 복음을 전하다 잡히지 않았으면 두 분께 효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나? 판결 받고 감옥 갈 준비를 해야 하나, 아니면 사탄 마귀와 타협해서 부모님 은혜에 보답해야 하나? 내가 만약 형제자매를 배신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배신하면 부끄러운 유다가 되는 거고, 내 양심이 결코 편안하지 않을 거야. 그건 곧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거라고!’ 저는 속으로 격렬하게 발버둥쳤습니다. 머리가 터질 것 같고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좀 살려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현듯 머릿속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백성은 시시각각 사탄의 간계에 대비하고, 나를 위해 내 집의 문을 지켜야 한다. 사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붙잡아 주고 공급해야 한다. 함정에 빠지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3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소용돌이치는 제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탄은 계략을 써서 정으로 저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저는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굳게 서서 증거해야 합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아서들 하세요!” 경찰은 갖은 수를 써도 유용한 정보를 얻지 못했고, 결국 법원은 저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2016년 7월, 드디어 인간 지옥과도 같았던 수감 생활이 끝났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제 머리를 끌어안고 엉엉 우셨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공산당의 체포와 박해 때문에 한 번 나가서 십 년이 지나도록 집에도 돌아오지 못했어. 부모님은 늘 내 안위를 걱정하셨고, 특히 내가 수감되어 있는 몇 년간은 더욱 애를 태우셨지. 지금 두 분 다 일흔이 넘으셨는데 정말 다시는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 이제는 집에 돌아왔으니 두 분을 잘 모시고 아들 된 도리를 다하자.’ 며칠 후 당숙께서 저를 보러 오셔서 원망 섞인 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간 지가 언제인데 그동안 집에 한 번 오지도 않고, 네 어머니가 몇 번씩 아파서 입원을 해도 그림자도 안 비추다니. 사람들이 너보고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하잖니! 네 어머니 아버지가 나이도 많은데 아이도 대신 돌봐주고 밭일도 대신 해 주고 있다. 몸도 성치 않으신 분들에게 쉬운 일이냐? 이번에 돌아왔으니 집에서 얌전히 지내면서 부모님 잘 돌봐드리고, 다시는 남들이 뒤에서 수군대지 못하게 하거라!” 멀어져가는 당숙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가 정말 그분들 눈에 배은망덕한 불효자가 되어 버린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앞으로는 현지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면 부모님도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뜻을 구했습니다. 당장의 제 처지를 생각하니 집에서는 전혀 본분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언제든 잡혀갈 수 있었습니다. 늘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이유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수년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양육, 공급을 너무 많이 누렸기에 양심 없이 행동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제 본분을 다하며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집을 나가 본분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일이 생길 때는 가끔 속으로 교란을 받곤 했습니다. 저를 접대하는 자매님은 자주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한번은 병이 재발해서 병원에 열흘 넘게 입원한 적 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이제 곧 여든이신데 고혈압에 심장병도 있고 머리도 자주 어지러우셔. 그러다 병이 나서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어떡하지?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고 하고, ‘인생에서 효도가 우선’이라고 하는데, 아들이 돼서 부모님 곁에서 병수발도 못하면 친척이나 친구, 이웃들이 불효자라고, 배은망덕하고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한동안은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늘 어머님의 애타는 눈빛이 떠나지 않았고, 사람들의 빈정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서 매일 기계적으로 본분을 하느라 성과도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본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부모를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 네 직속상관이나 어른, 너를 낳아 키워 준 사람, 의식주를 마련해 주는 사람, 너를 키워 준 은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모의 기대를 내려놓기 쉽겠느냐? (내려놓기 쉽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육의 관점으로 부모의 기대를 대하기 십상일 것이고, 너에 대한 부모의 부적절하고 불합리한 기대를 내려놓기 어려울 것이다. 너는 그들의 기대에 결박되고 억압될 수밖에 없다. 설령 마음에 다소 불만이 있고 원하지 않는다 해도 거기서 벗어날 능력이 없으니 순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어째서 순리를 따를 수밖에 없겠느냐? 너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내려놓고 거들떠보지도 않거나 거부한다면 너는 자신을 불효자, 부모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나쁜 놈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육의 관점으로 최대한 양심에 따라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 부모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네게 거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할 것이고, 부모가 시킨 모든 일을 열심히 해서 그들의 체면을 세우고 그들을 실망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부모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그들을 부양하겠다고 마음먹을 것이다. 좀 더 멀리 본다면 부모의 임종을 지켜서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동시에 효자가 되겠다는 자기의 바람도 충족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 사회의 여러 여론과 분위기 그리고 사회에서 유행하는 여러 사상 관점의 영향을 받는데, 만약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저 육적 감정의 관점으로 이런 일을 바라보고 처리할 수밖에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 내적 상태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육의 정이라는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모든 것은 부모님이 주셨으니 사람이라면 은혜를 알고 길러 주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부모님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해야 양심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불쌍한 아이라며 계모에게 학대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새엄마는 저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는 새엄마를 친엄마보다 더 가깝게 생각했습니다. 새엄마는 고생을 견디고 먹을 것, 쓸 것을 아껴 가며 저와 남동생을 키우신 분, 저를 공부시키고 제가 가정을 이루고 자리잡도록 도와주신 분이고, 제 인생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존경스러운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다음에 어머니에게 열심히 효도하고 어머니를 잘 모시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바라는 것도 별로 없으셨습니다. 그저 부모님이 늙으면 제가 두 분께 효도하고 기댈 곳이 되어 주는 것, 이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기대였습니다. 저는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최선을 다해 부모님의 바람에 부응하고 효도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대역무도하고, 은혜를 모르고,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세상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처지여서 명절이나 농사일이 바쁠 때마다 애가 탔습니다.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다 지쳐서 병이라도 나실까 봐 걱정되어서 집에 돌아가 부모님 대신 일하고 싶었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 못해서 건성으로, 형식적으로만 이행했습니다. 제가 잡혀가자, 경찰은 부모에 대한 정을 이용해 저를 구슬리며 형제자매들을 배반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가 아니었더라면 자칫 정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할 뻔했습니다. 접대 가정의 자매가 아파서 입원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울컥해서, 몸도 약하고 아픈 데도 많으신 어머니를 돌보러 돌아가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괴로워했고,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지는 한편, 속으로 하나님을 소리 없이 원망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하는 것이 다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진리를 얻지 못해서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부모님과 가족 생각만 하면 육적인 정에 치우치며 역시 이방인의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제가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깨우치고 이끌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과 영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주입받고 물든 전통 문화의 영향과 더불어 성장 배경의 영향으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와 같은 전통 사상을 사람의 도리로 여기고 지켰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제 은인이자 평생 빚을 갚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며, 부모님이 이 만년을 편하게 보내시도록 효도하지 못하면 양심도 없는 불효자가 되어 세상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고 버림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전통 문화의 영향 아래서 명절이나 농사일이 바쁠 때나, 나이 든 형제자매가 아파서 입원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울컥했고, 집에 돌아가 부모님을 돌봐드리지 못해서 며칠씩 침울한 기분으로 지내느라 본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대는 제가 마음 깊이 짊어진 갚을 길 없는 감정의 빚이 되었습니다. 경찰에게 잡혀 가서 심문을 받을 때도 그들은 ‘인생에서 효도가 우선’이라는 사상으로 저를 미혹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커다란 확률로 육의 정을 좇느라 하나님을 배반했을 것입니다. 잡혀간 뒤 정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이 비록 가족을 만족시키고 육을 만족시키기는 했지만, 그 대신 하나님의 구원을 잃어버린 것을 생각할 때, 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분을 이행한 덕분에 저는 일부 진리를 깨닫고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를 알았고, 패괴 성품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가 인생의 바른길을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지만 저는 감사를 모르고 도리어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 믿는 일로 중국 공산당에 쫓기지만 않았더라면 고향을 등지고 떠나느라 부모님 앞에 효를 다하지 못할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 앞에 효도를 다할 수 없는 것은 명백히 중국 공산당의 체포와 박해 때문인데도 저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사탄에게 미혹되어 시비를 가리지 못했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깨닫고 속으로 크게 뉘우치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내적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당신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있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사탄이 주입한 사상 관점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진리를 깨닫고 분별이 생기도록 깨우치고 이끌어 주십시오.’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가 너를 낳은 것에 대해 살펴보자.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이냐, 아니면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이냐? 누가 누구를 택했느냐?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아니다. 네가 태어날 부모를 택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너를 낳기로 택한 것도 아니다. 근원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운명적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이 일은 사람이 이해하기 쉬우니 이 주제는 일단 제쳐 두고 이야기하지 않겠다. 네 관점에서 보면 너는 수동적으로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그들에 의해 태어났다. 부모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주관적으로 너를 낳기를 원했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본다면 네가 태어난 일에서 주도권은 부모에게 있다. 그들이 너를 낳기로 했으니 그들에게 주도권이 있다. 너는 그들에게서 태어날 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태어났다. 너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 부모가 주도권을 가지고 너를 낳기로 선택했다면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고 키울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너를 공부시키든, 먹이고 입히며 돈을 쓰든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이다. 하지만 너는 양육받는 동안 늘 수동적인 입장이다. 네게는 선택권이 없고 그들에게 양육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는 어리고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의 손에 수동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너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난다. 부모가 네게 좋은 것을 먹이면 좋은 것을 먹고, 부모가 네게 제공하는 생활 환경이 고달프고 빈곤하면 너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양육받는 동안 너는 수동적이고, 부모는 책임을 다한다. 화분의 꽃을 키우기로 했으면 비료와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 주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너를 극진하게 보살피든, 정성껏 보호하든, 결국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들이 너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이든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이 너를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예정하신 일입니다. 아무리 고생스럽게 자기 자식을 돌보더라도 그것은 모두 부모의 책임과 의무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런 가정에서 성장한 것 역시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일입니다. 저를 키우기 위해 부모님께서 얼마나 많은 고생과 대가를 치르셨든, 그분들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신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신 일이며, 은혜라고 할 수 없고, 저도 보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새어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도록 안배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저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며, 그 공을 부모님께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부모님 없이는 제 모든 것도 없다고 믿었고, 저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이 제 고달픈 인생을 바꾸었다고 믿었습니다. 친모가 아닌데도 친모보다 더 가깝다고 느낀 나머지 어머니를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며 언제나 길러 주신 은혜에 보답할 생각만 하고,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너무나 인성이 없는 태도가 아닙니까? 비유하자면, 부모가 보모를 고용해서 자기 아이를 잠시 돌봐 달라고 맡기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전부 충분히 주었는데, 아이는 오히려 보모를 어머니로 생각하면서, 보모가 자기를 돌봐 준 것만 알고 부모가 자신에게 해준 것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부모 마음에 너무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닙니까? 배은망덕하고 본말이 전도된 경우가 아닙니까? 제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로 오늘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키워 주신 것은 그분들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것일 뿐, 이를 두고 은혜라는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를 빚을 갚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 모든 것을 주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보답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부모님께 효도하느라 하나님 앞에서 제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진정 은혜도 모르고 양심도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피조물의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고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만약 제가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돌보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효자 소리를 들으며 칭찬받는다고 한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생활하는 환경과 처한 배경을 볼 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충돌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행할 수 있다. 너는 형식적으로 부모와 떨어질 필요가 없으며, 형식적인 의미에서 버리고 포기할 필요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 그러하겠느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충돌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러합니다.) 그렇다.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네 부모가 막지 않고, 그들 역시 믿으면서 네가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을 무척 지지하고 독려해 준다면, 너와 부모는 평범한 의미의 육체적 혈연관계가 아니라 형제자매 관계이다. 그러니 너는 형제자매의 관계로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 외에도 자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너는 본분 이행이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즉 네 마음이 그들에게 속박받지 않는 상황에서, 전화로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가지며, 그들을 도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생활 속 문제들을 처리해 줄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이 생명 진입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가능하다. 이는 하나님 믿는 것을 부모가 막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 관계는 지켜야 하고, 너는 네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어째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돌봐 주어야겠느냐? 너는 그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 때문에 너에게는 하나의 책임이 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 때문에 너는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그들이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않고 네 발목을 잡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그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만약 환경적 영향이나 방해로 인해 집에서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다면, 규례를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배치를 따르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무리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하나님이 정죄하겠느냐?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교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 이행이 충돌하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교제하고 있는 것은 실행 원칙이고 진리이다. 네게는 부모에게 효도할 책임이 있다. 상황이 허락된다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겠지만, 감정에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부모 중 한쪽이 몸이 안 좋아 입원했는데, 보살펴 줄 사람이 없다고 해 보자. 네가 본분 이행으로 정신이 없어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럴 때는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이 일에 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라야 한다. 이런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목숨을 거두어 그를 데려가려 한다면, 너도 순종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순종하겠지만, 마음이 무척 괴롭고 며칠 동안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 아닙니까?”라고 하는데,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인간미이자 인성으로,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 감정에 빠져서 본분 이행에 지장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어긋난다. 하나님은 네게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저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면 된다고 요구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요구는 배경이 있다. 여러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범위에서라면 책임을 다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큰 병에 걸릴지, 죽게 될지 등을 네가 결정하는 것이겠느냐? 그들이 어떻게 살지, 언제 죽을지, 어떤 병으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등이 너와 관계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아무 관계가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4)>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서 저에게는 실행의 원칙과 길이 생겼습니다.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여건이 허락한다면, 저는 부모님 생활을 돌보며 효도를 다할 수 있고, 만약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두 분을 돌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지금 부모님을 돌보기 싫은 것이 아닙니다. 중국 공산당에게 잡혀간 적이 있고 그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기 때문에 만약 계속 집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했다가는 또다시 잡혀가 더 혹독한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적절한 여건과 기회가 주어져서 집으로 돌아간다면, 부모님 앞에 효도할 것이고 두 분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교제할 것입니다. 이런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제 본분을 잘 이행하고, 부모님의 병치레와 양로 문제는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그분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에게 생로병사의 법칙을 안배하셨습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이 법칙을 어긴 사람은 없었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벗어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연세가 많은 부모님께서 질병이 있는 것도 정상적이고 피할 수 없는 법칙입니다. 게다가 제가 부모님 곁을 지킨다고 한들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두 분을 대신하여 고통받을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제 남동생도 두 분을 돌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 걸어가야 할 길이 있고, 겪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부모님의 운명은 하나님 손안에 있으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 제가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체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전통 문화, 조상의 유산 등, 사람들이 옳은 것, 좋은 것, 대중의 관념과 윤리도덕에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런 것들은 진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도 아니고, 처신의 기준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며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이고,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저는 부모의 은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더 이상 전통 사상에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단란한 가정을 추구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

중국 샤오터(肖特)저는 남편과 8년간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약혼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저는 생식 능력을 잃게 됐어요. 그때 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더는 살아갈 용기가 없었어요. 남편 집안에서도 생식 능력을 잃은 저와 헤어지라고...

진정한 행복을 찾다

중국 충성(重生)저는 어릴 때부터 청춘 드라마를 많이 좋아했는데,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보면 너무 부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절 아껴 주고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는 게 가장 행복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17살에 남편을 만났는데,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 후

제가 돌도 지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님은 저희 5남매를 키우시기 위해 홀로 두 사람의 몫을 일하셨고, 매일 밤낮없이 바쁘게 지내셨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모두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나중에...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