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이행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충돌할 때
중국 산시 무청(慕誠)지난 몇 년 간 저는 계속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물론 가끔 어머니 생각이 났지만 바쁘게 본분도 이행해야 하는 데다가 어머니도 아직 젊으시고 아프신 데도 없어서 본분을 이행하는 데 큰 걱정거리나 구속받을 게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희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버셨고, 몸이 아프셔도 병원 갈 돈은 아끼시면서 저에게는 좋은 것을 먹이고 입혀 주셨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할아버지는 아버지께 “딸은 더 이상 공부시키지 마라.”라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딸이든 아들이든 똑같이 대해야 한다면서 제가 몸이 약해 힘쓰는 일은 못하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저는 부모님께 무척 감사했고, 부모님께서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부모님의 애쓴 마음을 저버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고, ‘나중에 꼭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길러주신 은혜에 보답해야지’ 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저희 가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인생임을 깨닫고 학업을 포기한 채 본분을 이행하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자매님이 저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 자매님을 체포해 갔고, 저와 아버지도 파출소로 끌려가 심문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풀려나긴 했지만, 현지 종교국과 파출소 사람들이 저희 집에 와서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다가 접대 가정 자매님의 자녀들이 효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며 저도 모르게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님께서 힘들게 저를 키워 주셨는데 곁에서 모시지 못하는 것이 무척 죄스러웠습니다.
2019년, 제가 본분을 이행하던 도시에서 큰 붉은 용의 체포가 심해져 당장 안전한 접대 가정을 바로 찾지 못하게 되자, 리더는 기존 지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우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마침 부모님께서 집에 안 계시고 타지에서 셋방을 얻어 살고 계셨기에 저는 일단 부모님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모님을 뵈었는데 어머니는 눈에 초점이 없고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셨습니다. 동생 말로는 어머니가 뇌경색과 소뇌 위축증으로 병원에서 퇴원한 지 며칠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 어머니께 그런 증상이 있었지만 제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만약 계속 어머니 곁에서 돌봐 드리면서 건강에 신경 쓰시라고 말씀드렸다면 지금처럼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 기간 저는 온종일 어머니 곁을 지켰습니다. 매일 어머니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함께 운동하며 건강 관리법을 알려 드렸습니다. 저는 모든 힘을 어머니를 돌보는 데 쏟느라 본분을 이행할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어느덧 두 달이 훌쩍 지났을 때, 리더에게서 밖에 나가 본분을 이행하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그날 고모와 삼촌도 저희 집에 오셨는데, 처음에는 제가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내 “너 며칠 있다가 또 가야 하는 거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못 하자 저를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더는 가면 안 돼. 남아서 부모님을 돌봐 드려야지. 예전에는 부모님이 젊어서 너희를 먹여 살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일흔이 넘으셨는데 너도 부모님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겠니? 부모님이 키워 주시고 돌봐 주시지 않았다면 네가 오늘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어? 사람이 너무 이기적으로 굴면 안 되지!” 그분들의 말은 비수처럼 제 아픈 곳을 찔렀고, 저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어렸을 때, 사촌 오빠가 자기 혼자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부모님이 아프셔도 돌보지 않는 것을 보고 정말 인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부모님께서 연로해지셨는데, 제가 부모님을 돌볼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효가 아니겠습니까! 그 기간 저는 속으로 너무 고통스럽고 갈등되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제 책임인 줄 압니다. 하지만 연로하시고 편찮으신 부모님을 보니 마음이 놓이지 않아 타지로 가서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셔서 이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루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는 한 사람의 삶에서 출산과 부양의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형식적으로 제공할 뿐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오직 창조주의 예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미래는 일찍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고, 그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부모조차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운명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고 각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사람의 부모도 한 사람의 일생의 운명을 전혀 막을 수 없고, 한 사람이 현생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데 조금도 힘을 보태 줄 수도 없다. 즉,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 이는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 그것이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어떤 운명 속에서 사명을 완수하게 될지도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한 사람이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고, 가족들 역시 그가 현생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완수하게 될지, 어떤 생존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는 완전히 현생의 운명에 달려 있다. 즉, 창조주의 뜻으로 정해진 모든 사람의 사명은 그 어떤 객관적인 조건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특정 성장 환경에서 성숙해지고, 인생 여정을 한 걸음씩 밟아 가며,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을 조금씩 실현하게 된다.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인생에서의 역할을 짊어지고, 창조주의 예정과 주재에 따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낳아 길러 주시고 성장 환경을 마련해 주셨을 뿐, 진정으로 제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운을 주셨기에 제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운명은 다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어 그 누구도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제 운명을 부모님이 좌우할 수 없듯이, 저 역시 부모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발병하셨을 때 숙모님 덕분에 제때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을 수 있었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아니겠습니까? 어머니가 언제 병에 걸리고 병세가 어느 정도일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걱정하고 염려해도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 드릴 수 없고, 제가 집에서 곁을 지킨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는 없습니다. 지난 두 달간 저는 본분도 내팽개친 채 온 마음을 다해 어머니를 돌봤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제가 집에서 어머니를 모셨더라면 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불신파의 관점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혹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획하든 그런 것들은 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피조물이든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지, 진실로 믿는지 하는 점이다. 어떤 부모는 그런 복과 운명이 있어서 자손이 번창하고 천륜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재이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복이다. 반면 어떤 부모는 그런 운명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안배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녀가 옆에서 지켜 주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복이 없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배치로,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생각해 보면 늙어서 자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운명인 것입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대할 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지, 제 뜻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관상동맥성 심장병 진단을 받으셨지만, 자기 몸은 전혀 아끼지 않고 계속 필사적으로 일하며 돈을 버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야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올바른 인생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예전처럼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았고, 그래서 몸이 점차 좋아지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 계신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제 부모님은 연로해지셨고, 비록 제가 곁에서 돌봐 드리지 못하지만 고모와 삼촌 내외분께서 살펴봐 주시고 물질적으로도 잘 챙겨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고, 밖으로 나가 본분을 이행하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두 달쯤 후,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어머니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지금은 밥도 하고 장 보러 외출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하셨습니다.
2021년 6월 어느 날, 교회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 남동생이 큰 붉은 용에게 미행과 감시를 당했고, 집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경찰이 부모님과 남동생을 모두 체포해 갔으며, 제 행방까지 묻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에는 절대 집에 돌아가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후, 저는 부모님 건강이 더욱 걱정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원래부터 편찮으셔서 놀라거나 겁을 먹으면 안 되셨고, 아버지도 심장이 좋지 않으신데 경찰의 협박과 위협을 견뎌 내실 수 있을지, 만약 병이라도 나시면 어떡하나 싶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집에 돌아가 보고 싶었지만, 경찰이 여전히 저를 쫓고 있었기에 돌아가는 것은 제 발로 함정에 뛰어드는 격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부모님께 믿음을 더해 주시어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교회를 팔아넘기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부모님은 보름간 구류되었다가 풀려나셨지만, 남동생은 당시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풀려나셨지만 경찰에게 자주 시달리셨고, 경찰은 부모님을 위협하며 저더러 빨리 돌아와 자수하라고 했습니다. 그 기간 저는 틈만 나면 부모님 생각이 났고, 너무나 그분들이 그리웠습니다.
2022년 12월경, 저는 아버지께서 병으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집안 친척들은 부모님을 부추겨 저를 다시 불러들이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이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친척들은 분명 내가 배은망덕하다고 할 거야. 부모님이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키워 주셨는데 조금도 보답하지 않으니,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겠지?’ 당시 저는 막 새로운 사역을 맡아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고, 사역 중에 계속해서 오류와 허점이 드러났지만 구하지도, 정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내적 상태가 좋지 않긴 하지만 본분을 내팽개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계속 바로잡히지 않아 본분에 성과가 없자, 저는 결국 교체되었습니다. 교체된 후, 저는 오로지 부모님 곁으로 빨리 돌아갈 생각뿐이었지만, 경찰이 여전히 저를 쫓고 있어 돌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운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 잘못된 내적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주시고 이끌어 달라며 간구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내적 상태가 조금 바로잡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너를 극진하게 보살피든, 정성껏 보호하든, 결국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들이 너를 키우는 목적이 무엇이든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이 너를 낳았으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가 네게 하는 것이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부모가 네게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은혜라고 할 수 없다. 화초를 하나 키워도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책임을 다하는데 그것도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라 할 수 없습니다.)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작은 화초는 밖에서 더 잘 자란다. 땅에 심으면 햇볕을 쬐고 바람과 비를 맞아 더 튼튼하게 자라지만, 집에서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우면 밖에서 자라는 것만 못하다. 어디서든 못 살겠느냐?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너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이 살아가도록,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준수하는 법칙을 준수하도록 책임진다. 한 사람으로서 너는 부모가 양육하는 환경에서 생활할 뿐이니 그 환경에서 성장하고 살아가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고, 미시적으로 보면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어찌 되었든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지 은혜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은혜라고 할 수 없다면 이것은 네가 누려 마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누려야 할 하나의 권리이다. 너는 마땅히 양육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성년일 때는 양육받는 것이 네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가 받은 것은 단지 너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지 부모의 은혜나 은정이 아니다. 모든 생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고 번식하며 후대를 양육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다. 예를 들어 새, 소, 양 심지어 호랑이도 새끼를 낳은 후에는 키워야 한다. 후대를 키우지 않는 생물은 없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다. 이는 생물이 생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생물의 본능이다. 그것을 은혜로 귀결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저 창조주가 동물과 인간에게 정해 준 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결코 은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네게 책임을 다하고 심혈을 쏟고 돈을 썼다고 해서 너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그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책임이고 의무라면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한다.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부모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할 의무도 없거니와 그들의 기대를 떠안을 의무도 없다. 그들의 기대는 그들 몫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게는 하나님이 정해 준 너의 인생길과 운명이 있다. 네 부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떤 생물이든 후손을 낳으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돌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위해 제정하신 법칙이자 규율이며, 책임이자 의무로 은혜는 아닙니다. 동물 세계를 봐도 사나운 호랑이나 사자든, 온순한 사슴이나 영양이든 후손을 낳으면 다 새끼를 기르고 먹이를 구해 줍니다. 때로는 자신이 굶는 한이 있더라도 제때에 새끼에게 젖을 물리며, 새끼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합니다. 이것은 본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 저희 집에서 키우던 닭이 생각났습니다. 어미 닭은 병아리를 부화시킨 후 계속해서 보호하고 돌보며, 먹이를 찾을 때도 병아리들에게 먼저 먹게 합니다. 위험이 닥치면 어미 닭이 앞장서고, 비가 오거나 더운데 피할 곳이 없을 때는 자신이 고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품어 줍니다. 병아리가 자라서 독립할 수 있게 되어 자연스럽게 어미 닭을 떠나면, 어미 닭은 그렇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후손을 양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동물과 인류에게 제정하신 생존 규율이며, 책임과 의무이고, 아무런 대가 없이 하는 것이므로 어떤 보답도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깨닫고 나니, 마음속에서 늘 부모님께 빚진 듯한 느낌이었던 그 짐을 한순간에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줄곧 부모님의 양육을 평생 갚아야 할 은혜이자 빚이라고 여기며 그 부담감에 짓눌려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해방되었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양육하신 것은 그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이지, 은혜로 여겨 갚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은 저를 돌보고 양육하셨을 뿐, 진정으로 제게 생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지 않으셨다면 저 역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제가 면역력이 약해 자주 감기에 걸리고 열이 났으며, 폐렴까지 앓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께 절대 제가 찬 바람을 쐬지 못하게 하라며 만약 다시 열이 나면 폐결핵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부모님도 어쩔 도리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 저는 감기는 걸려도 열은 나지 않았고, 부모님도 무척 신기해하셨습니다. 점차 제 몸은 조금씩 좋아졌고 면역력도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없었다면, 부모님이 아무리 잘 돌봐 주셨다 해도 제가 꼭 건강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모든 것을 주셨으니, 제가 보답해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하기는커녕, 부모님을 돌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며 대적했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패역했습니다.
그 후 저는 ‘본분 이행과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이 충돌할 때 어떻게 실행해야 합당할까?’ 하고 더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두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고 이 방면의 실행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일 뿐, 진리 실행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진리 실행이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자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어쨌든,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이다. 그럼 현재 실행해야 할 진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본분 이행입니다.) 그렇다.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 실행이다.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힘만 쓰는 것에 불과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4)> 중에서), 『네가 생활하는 환경과 처한 배경을 볼 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충돌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행할 수 있다. 너는 형식적으로 부모와 떨어질 필요가 없으며, 형식적인 의미에서 버리고 포기할 필요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 그러하겠느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충돌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러합니다.) 그렇다.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네 부모가 막지 않고, 그들 역시 믿으면서 네가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는 것을 무척 지지하고 독려해 준다면, 너와 부모는 평범한 의미의 육체적 혈연관계가 아니라 형제자매 관계이다. 그러니 너는 형제자매의 관계로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 외에도 자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너는 본분 이행이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즉 네 마음이 그들에게 속박받지 않는 상황에서 전화로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도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거나 생활 속 문제들을 처리해 줄 수 있고, 그들이 생명 진입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가능하다. 이는 하나님 믿는 것을 부모가 막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 관계는 지켜야 하고, 너는 네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어째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물으며 그들을 돌봐 주어야겠느냐? 너는 그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 때문에 너에게는 하나의 책임이 더 있는 것이고, 너는 그들에게 더 많이 안부를 묻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그들이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않고 네 발목을 잡지 않는 상황에서 네가 그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만약 환경적 영향이나 방해로 인해 집에서 부모에게 효도할 수 없다면, 규례를 지킬 필요는 없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배치를 따르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무리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하나님이 정죄하겠느냐?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 감정 속에서 살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책임을 다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도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부탁을 포기했으니,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본분에 지장을 주지 않고,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힘닿는 데까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성의 범위 안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감정에 빠져서 본분 이행에 지장을 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어긋난다. 하나님은 네게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저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면 된다고 요구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4)>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대하는 원칙을 매우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이 구절이 더욱 그랬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일 뿐, 진리 실행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진리 실행이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이며,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자야말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전제하에 부모님께 효도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효도를 잘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 진리를 실행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시고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지지해 주시기에, 제가 그분들을 더 걱정하고 생각하는 것 역시 인성과 양심의 범위에 속하는 일입니다. 환경이 허락되는 상황에서는 마땅히 힘닿는 데까지 그분들을 돌봐 드려야 합니다. 제가 집에 돌아갔을 때 힘닿는 데까지 집안일을 돕고,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곁에서 돌봐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을 때는 마땅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제 뜻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정과 부모, 자녀를 버리고 머나먼 중국까지 왔던 서양 선교사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나 자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여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속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야말로 양심과 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또 저희 가족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된 것을 생각했습니다. 만약 형제자매님들이 저희에게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다면, 저희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제가 육적인 정에 만족하며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이기적이고 인성이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정죄받고 혐오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한 단락의 하나님 말씀을 보고 마음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가장 처리하기 어려워하는 관계이지만 사실 처리 못 할 일은 아니다. 사람은 오로지 진리를 깨달은 기초에서만 이 문제를 올바르고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다. 감정의 각도나 세인의 시선과 각도를 출발점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올바르게 부모를 대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자녀는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지, 자녀가 부모를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사람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이런 문제에 있어서 감정을 근거로 해서는 안 되며 그 어떤 잘못된 사상 혹은 사회 여론의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올바르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한 환경 속에서 네가 부모에게 어떤 책임도 다하지 못한다거나 그들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치자. 그러면 불효하는 것이냐? 네가 양심에 참소를 받겠느냐, 받지 않겠느냐? 네 주변 이웃, 동창, 그리고 친척들이 모두 뒤에서 너를 욕하고, 헐뜯고, 너를 불효자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네 곁에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이 불효자 같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는 잘 지내는지 연락 한 번을 안 하고. 새해에도 집에 안 오면서 전화 한 통조차 없고 부모님 안부도 안 묻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 양심이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가책을 느낀다. ‘아아, 저 말이 맞아.’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꼭 바늘에 찔린 것처럼 흠칫흠칫 떨린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느냐? (예전에 그랬습니다.) 네가 불효한다고 하는 이웃과 친척들의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불효한 것이 아닙니다.) … 우선,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객관적인 전체적 환경 때문이다.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하고, 부모 곁을 지키면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원해서 부모를 떠나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 측면의 객관적 원인이다. 다른 측면을 보면, 주관적으로 말해서 네가 밖에 나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부모를 떠나 네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만 했고, 그들 곁에 남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냐? 책임을 회피하려고 나온 것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들인 네가 그들을 떠나 밖에 나와서 본분을 이행해야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가 아니냐? (그렇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제가 그동안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줄곧 전통 문화의 영향을 받아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불효자는 짐승만도 못하다’를 긍정적인 사물로 여기며, 본분을 이행하느라 집에 가서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는 것이 양심 없고 인성 없는 것이며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친척들에게 비난받을 때 마음으로 참소를 받았는데, 이제 보니 제가 이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었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 부모님 곁에서 돌봐 드리지 못하는 것은 공산당의 핍박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지, 불효가 아닙니다. 만약 제가 여건이 허락되는 상황에서도 제 이익만 챙기고 자녀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효입니다. 제가 진리가 없어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니, 정말 너무나 가련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가장 정당한 일이다. 이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정의로운 일이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창조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권세하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공급과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받아들이므로 마땅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행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일이다. 인류 가운데 어떤 일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없으며, 지음 받은 사람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없다. 땅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창조주께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조류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인솔과 인도에 순종하며, 오로지 창조주의 말씀을 듣고, 창조주가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뿐이다. 이는 가장 진실되고 힘 있는 증거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훌륭한 증거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제 마음은 더욱 밝아졌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피조물의 가장 높은 책무이며,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이자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니,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고, 더는 전통 문화에 얽매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친척들이 어떻게 비난하든, 저는 본분 이행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님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제가 비록 그분들 곁에 없지만, 친척들이 돌봐 줄 수 있고, 때로는 형제자매님들도 찾아뵙습니다. 부모님께서 병고와 큰 붉은 용의 핍박을 겪는 것에는 그분들이 마땅히 배워야 할 공과가 있고, 하나님께서도 그분들의 증거를 원하십니다. 저는 부모님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이를 깨닫고 나니 마음이 가볍고 해방되었고,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염려도 점차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중국 산시 무청(慕誠)지난 몇 년 간 저는 계속 객지에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물론 가끔 어머니 생각이 났지만 바쁘게 본분도 이행해야 하는 데다가 어머니도 아직 젊으시고 아프신 데도 없어서 본분을 이행하는 데 큰 걱정거리나 구속받을 게 없었습니다....
중국 아이이(艾依)2018년 10월의 어느 날, 리더로부터 부모님이 교회에서 제명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는 순간 어안이 벙벙하고, 제 귀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죠. ‘부모님께 교회를 교란하는 태도가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제가 돌도 지나지 않았을 때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님은 저희 5남매를 키우시기 위해 홀로 두 사람의 몫을 일하셨고, 매일 밤낮없이 바쁘게 지내셨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모두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나중에...
프랑스 이사벨라(Isabella)몇 년 전 타지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갑작스레 아버지가 악인으로 규정되어 출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일관되게 관념을 퍼뜨리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서 본분을 이행하려는 다른 사람들의 열의를 떨어뜨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