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제명 소식을 듣고
중국 아이이(艾依)2018년 10월의 어느 날, 리더로부터 부모님이 교회에서 제명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는 순간 어안이 벙벙하고, 제 귀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죠. ‘부모님께 교회를 교란하는 태도가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어렸을 때 저는 할머니께 이런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얘야, 아무개네 아이 좀 보거라. 저런 배은망덕하고 불효막심한 녀석이 있나! 부모가 힘들여 키워 놨는데도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니 천벌을 받을 게다!” 할머니는 또 제가 커서 부모님께 잘하고 시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하늘이 정해 준 이치와 같아서 효도하지 않으면 천륜을 어기는 대역죄를 짓는 것이고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이 나에게 잘해 주시든 못 해 주시든 무조건 효도해야 한다. 효도하지 않으면 인륜을 저버리는 것이고 천벌을 받을 일이다.’라고 여겼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번 후로는 힘닿는 데까지 부모님께 효도했습니다. 부모님이 아프실 때면 시간이 될 때마다 곁에서 보살펴 드렸고, 명절이면 여러 가지 선물도 사 드렸습니다. 부모님께서 기뻐하고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2001년,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얼마 후부터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고, 시간을 내 부모님을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10여 년 뒤, 유다의 배신으로 경찰이 저를 잡으러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저는 순조롭게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떠나오느라 부모님께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한 일이 많았고, 연로하신 시어머니께서 제 아이까지 돌봐주셔야 했습니다. 부모님과 시어머니까지 저 때문에 힘든 일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제가 큰 사고라도 친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께서 힘들게 저를 키워 주시고 먹여 주고 입혀 주시며 학교까지 보내 주신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생각했습니다. 이제 연세가 드셔서 자녀가 곁에서 돌봐 드려야 할 때인데, 저는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 때문에 부모님과 시어머니까지 걱정하시게 만들었으니, 부모님과 이웃들이 저를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는 불효녀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큰 붉은 용의 감시 때문에 집에 전화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 건강은 어떠신지 몰라 걱정이 되었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음이 평온하지 않고 수시로 다른 생각이 들어 사역 진도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내적 상태를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맡기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묵상을 할 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중국인의 전통 관념에는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는 불효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런 것을 주입받았으며,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이렇게 교육한다. 사람의 머릿속에 이런 것이 주입되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불효자야. 사회 여론의 질타를 받을 거고, 양심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관점이 옳으냐? 하나님이 선포한 그 많은 진리를 사람들은 모두 보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했느냐?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진리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느냐? 그런 내용은 없다. 하나님은 몇몇 원칙들만 교제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과 영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일을 여전히 간파하지 못하고 진리를 정말 모른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속적인 관계를 타파하지 못하는데, 그에게는 그런 용기와 믿음도 없고, 그런 의지는 더더욱 없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가 늘 부모님께 죄스럽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은 사탄의 전통 사상이 제 마음속 깊이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할머니께서 늘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효도하지 않으면 인륜을 저버리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라고 가르치셨는데, 저는 줄곧 이 말씀을 제 행동과 처세의 준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았습니다. 돈을 번 후로는 힘닿는 데까지 부모님께 효도했고, 명절이면 여러 가지 선물도 사 드렸습니다. 평소에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병원에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해 드렸고,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마음이 좋았습니다. 큰 붉은 용의 추격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도망치게 되었을 때, 부모님을 돌봐 드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 때문에 부모님까지 걱정하시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에 본분에 마음을 쏟지 못했고 결국 사역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마땅한 책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여전히 ‘모든 선행 중 효가 으뜸이다.’, ‘부모가 계실 때는 멀리 나가 놀지 마라.’와 같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본분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제가 전통문화에 너무 깊이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하던 중,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진리겠느냐? (아닙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옳고 긍정적인 사물이다. 그런데 왜 진리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사람은 원칙 없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모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대하는 방법은 진리와 관계가 있다. 만약 부모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네게도 잘한다면 너는 효도하겠느냐? (효도할 것입니다.) 어떻게 효도하겠느냐? 형제자매와 다르게 대한다면, 부모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며, 부모가 나이가 들면 곁에서 돌봐 주면서 본분을 이행하러 가지 않는다면, 이러는 것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럴 때는 상황을 보아야 한다. 만약 네가 집 근처에서 본분을 이행하여 부모를 돌볼 수 있고 부모도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자식의 책임을 다해 부모의 일손을 도와주면 된다. 부모가 병에 걸리면 돌봐 주고, 부모에게 힘든 일이 있다면 위로해 주어라. 또 경제적인 여건이 된다면 적당히 영양 보조 식품을 사 주어라. 하지만 네가 본분으로 바쁜데 부모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면, 또 부모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럴 때는 어떻게 선택해야겠느냐? 네가 실행해야 할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사람의 책임이나 의무에 불과한 이상, 네 의무가 본분과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본분을 위주로 하고, 본분을 일 순위에 놓아야 합니다.) 의무가 꼭 본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분 이행을 선택하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지만,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진리 실행이 아니다. 만약 조건이 된다면 그 책임과 의무를 이행해도 되겠지만, 당장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저는 본분을 이행하러 가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겁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만, 진리 실행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면서 본분을 위주로 하고 본분을 지켜야 한다. 만약 지금 네가 본분이 없고 외지에서 사역을 하지도 않으며 부모 곁에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부모를 돌봐 주며 최선을 다해 부모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덜 고생을 하게 해도 되지만, 그것도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봐야 한다. 만약 부모가 인성이 좋지 않고, 늘 네가 하나님 믿는 것을 가로막고, 네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네가 실행해야 하는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그들을 저버려야 합니다.) 이럴 때는 저버려야 한다. 너는 의무를 다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네게는 그들에게 효도할 어떤 의무도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한 가족이고 너의 부모겠지만,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너희는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그들은 사탄을 신봉하고 마왕을 받들며 사탄의 길을 걷고 있으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이고, 한 가족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적이나 원수로 여기니 네게는 그들을 돌봐 줄 의무가 없다. 그들을 철저히 저버려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 이행 중 어떤 것이 진리겠느냐? 당연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부탁이 있는데 그것은 네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책임은 진정한 책임으로, 창조주 앞에서 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창조주의 요구이자 인생의 큰일이기도 하다. 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그저 자식의 책임이자 의무일 뿐, 절대 하나님의 부탁이 아니고, 나아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본분 이행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일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오직 본분을 이행하는 것만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진리이고, 천직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사람에게 효도하는 것으로, 본분 이행에도, 진리 실행에도 속하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실제란 무엇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최소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줌이자 특별한 은혜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부모님을 대하는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충돌할 때는 본분을 중시해야 하며,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중대사라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만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본분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맡기신 부탁이고 가장 높은 직책이며, 하늘이 정한 이치로서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리를 몰라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사람됨의 원칙으로 여겼습니다. 본분이 바쁘거나 추격을 피해 도망치느라 부모님을 돌보지 못할 때는 부모님께 죄스럽고 스스로 불효녀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제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얻었으며,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면서 진리도 좀 깨달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너무나 인성도 없고 양심이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제 생명만큼 중요하며,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하고,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역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 마음도 평온해져서 본분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0년 5월 중순, 저는 몰래 부모님 댁에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처음 봤을 때는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이 확 돌변하며 저를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뭘 하고 다녔냐고 따져 물으시며, 2년 전에는 큰 병을 앓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제 그림자도 못 봤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와 남편이 밖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잡힐까 봐 밤새도록 잠도 못 주무셔서 마음의 병까지 얻으셨다면서, 제가 배은망덕한 불효녀라고 하셨습니다. 원래는 제가 노후를 돌봐 드리길 바라셨는데, 저 때문에 울화통이 터져 돌아가실 뻔했다며, 저를 괜히 애지중지 키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제 마음은 바늘로 찔린 듯 아팠습니다. 아버지께서 힘들게 저를 키우시고 먹여 주고 입혀 주시며 학교까지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효도는커녕 걱정까지 끼쳐 드렸고, 심지어 아버지가 중병을 앓으실 때 곁에서 돌봐 드리지도 못했으니, 제가 너무 불효막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정말 집에 좀 더 머물면서 부모님을 잘 보살펴 드려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아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 마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기도 후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고, 예전에 먹고 마셨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며, 부모님 곁을 지키며 자식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본분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고 대역죄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차분하게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고, 아버지의 태도도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저는 볼일을 마치고 서둘러 떠났습니다.
그 후 아버지의 그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괴로웠습니다. 다른 사람은 저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지만, 아버지까지 어떻게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나 싶었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 본분을 이행하고는 있었지만 마음이 꽤 무거웠고, 마치 큰 짐을 짊어진 것처럼 늘 죄책감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살다 보니 마음이 어둡고 답답했고, 본분을 이행하는 효율도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한두 달 정도 지나서야 제 내적 상태가 점차 나아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께서 교제하신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방면의 진리를 보고 나서야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꿰뚫어 보게 되었고, 억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숨결이 생기고 생명이 생긴 것의 뿌리와 근원은 부모가 아니다. 단지 부모의 출산이라는 방식을 빌려 네가 생겼을 뿐이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이 베풀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네 생명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여 생명의 숨결을 인간에게 주었다. 이것이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네 생명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으냐? 네 숨결은 부모가 준 것이 아니니 부모가 그 숨결을 이어지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네 하루하루를 돌보고 주재한다. 네가 매일 어떻게 생활하는지, 하루하루가 순조롭고 즐거운지, 매일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는 부모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네 부모를 통해 너를 돌보게 하였을 뿐이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이 너를 돌보라고 파견한 대상에 불과하다. … 사실 그들은 평범한 피조물이다. 단지 네 입장에서 신분이 특별할 뿐이다. 그들이 너를 낳아 키웠으니 너의 직속상관이자 부모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고 패괴된 인류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도 주관하지 못하는데 네 생명을 주관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너를 낳았지만 너의 그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그 생명이 언제, 몇 시에, 어디에서 왔는지, 그 생명이 어떤 생명인지 다 모른다. 그들도 수동적으로 기다릴 뿐이다. 하나님의 주재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안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지배되고 일어난다. 부모가 네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 이해하기 쉽지 않으냐? (이해하기 쉽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부모가 너를 키우는 것은 단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니 대가가 없어야 하고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는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거나 부모와의 관계를 다룰 필요가 없다. 만약 갚을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대하고 부모에게 보답하고 부모와의 관계를 다룬다면 이는 오히려 비인도적인 태도인 동시에 육의 정에 제약을 받고 발목 잡히기 쉬우며, 육의 정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심지어는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너는 부모의 기대에 일일이 부응할 의무도 없거니와 그들의 기대를 떠안을 의무도 없다. 그들의 기대는 그들 몫이고,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네게는 하나님이 정해 준 너의 인생길과 운명이 있다. 네 부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이 불효막심한 녀석, 몇 년이 지나도록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오랫동안 전화도 한 통 없다니. 내가 병들면 보살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정말 널 헛키웠구나. 배은망덕한 녀석, 고마운 줄도 모르고!”라고 하는데, 만약 “부모는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이 말을 듣는다면 너는 칼에 찔린 듯 마음이 아플 것이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다. 부모의 말이 구구절절 네 마음을 후벼 파니 너는 부모를 볼 면목이 없다고, 부모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부모가 너를 배은망덕하다고 말할 때 네가 정말 ‘그러게 말이야. 부모님은 여태껏 날 키우시느라 자식 덕은 보지도 못했어. 이제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내가 병시중을 들며 돌보길 바라시는데 막상 은혜에 보답해야 할 때 내가 곁에 없으니 난 정말 배은망덕한 자식이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배은망덕한 자식이라 규정하는데, 이것이 이치에 맞느냐? 네가 배은망덕한 것이냐? 네가 만약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는 대신 집에서 부모 곁을 지킨다면 부모가 병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생사나 빈부의 문제가 네게 달려 있느냐? (그 역시 아닙니다.) 부모가 어떤 병에 걸리든 너를 키우느라 고생해서, 네가 보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특히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크고 중한 병에 걸리는 것도 너 때문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니 너와 상관없다. 네가 아무리 효도해 봤자 기껏해야 그들의 육적인 고통이나 부담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너와 상관있겠느냐? 너와 아무 관련이 없다. 네가 배은망덕하지 않고 효자라고 해서 온종일 부모 곁을 지키며 돌본다면 그들이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겠느냐? 결국 걸릴 병은 걸리고, 죽을 사람은 죽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 네가 부모의 말처럼 배은망덕하든 그렇지 않든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이 보기에 배은망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람이 뭐라 하든 소용없다. 부모가 너를 뭐라 하든 꼭 그렇지 않고, 그런 말은 소용없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네가 기준에 맞는 피조물이라고 하면 사람이 아무리 너를 배은망덕하다고 욕해 봤자 소용없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사람은 단지 양심 때문에 혹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분량이 작아서 이런 악담의 영향을 받아 기분이 나빠지고 의기소침하게 되지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자녀로서 “부모가 너의 채권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깨달아야 한다. 너는 평생에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일은 창조주에게서 받은,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이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며 갚는 것은 네 평생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하고 보답하며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건이 되면 효도하고, 책임을 다하되 여건이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네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은 아니다. 단지 양심과 인간의 도의 및 관념에 조금 위배될 뿐 최소한 진리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죄하지도 않는다. 네가 진리를 깨닫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시며, 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제가 쉬는 이 숨결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누리고, 또 하나님의 너무나 많은 은혜를 누린 저는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양심과 인성이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님이 저를 낳아 기르시고 힘들게 키우시며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학교까지 보내 주신 것 같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안배와 예정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단지 그분들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신 것일 뿐, 은혜라고 말할 수 없으며 제가 갚거나 보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구하지 않고 사탄의 사상 관점으로 살면서 부모님을 제 채권자로 여겼습니다. 부모님이 힘들게 저를 키우셨으니 마땅히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버지가 중병을 앓으실 때 곁에서 돌봐 드리지 못한 것을 두고 스스로 배은망덕한 불효녀라고 여기며 늘 마음속으로 가책을 받았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가책 때문에 사역 효율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피조물인 제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양심 있고 인성 있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부모님을 대할 때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딸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 부모님을 보살펴야 하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으면 가책을 받을 필요도 없고, 부담을 안고 본분을 이행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사실 자녀와 부모 사이는 단지 육적인 혈연관계일 뿐, 누구도 누구에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본분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 효녀 노릇을 하거나, 혹은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빠져 본분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양심도 없고 인성도 없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네가 바른길을 가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로 한 것, 네가 창조주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인간 세상에서 유일한 바른길이기에 네 선택은 옳은 것이다. 부모를 포함하여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몰이해하고 실망하든, 그것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선택하거나 본분을 이행하려는 의지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네 믿음에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된다. 네가 가는 길이 바른길이기 때문에 너는 그것을 견지해야 한다. 부모의 기대는 더더욱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네가 바른길을 가는 데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바른길을 가는 것은 네 인생에 가장 올바른 선택인데 부모가 지지하지 않고 너를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한다면 너는 더더욱 그들을 분별해야 하고, 감정적인 면에서 그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들에게 속박받아서는 안 된다. 만약 그들이 너를 지지하거나 격려하지 않고, 또 위로해 주지 않으면 너도 상관하지 마라. 그들의 지지나 격려, 위로가 있건 없건 큰 의미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기대하고, 너를 격려하고, 너에게 공급하고, 너를 인도하고 있으니 너는 외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기대가 없어도 너는 원래대로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고,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너는 여전히 선한 사람인 것이다. 부모의 기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윤리 도덕을 상실한다는 뜻이 아니며, 더욱이 인성과 도의를 저버린다는 뜻도 아니다. 네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이유는 긍정적인 사물과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옳은 선택이며 가장 올바른 길이다. 너는 이를 고수하며 굳게 믿어야 한다. 어쩌면 네가 하나님을 믿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다는 이유로 부모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부모의 축복은 더더욱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선택하면 하나님이 너에게 기대하고 너를 좋게 본다는 것이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친구나 친척을 떠나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고, 물론 부모를 떠나서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떠나기만 하면 사람은 흑암에 빠질 것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인도에 비하면 부모의 기대는 그야말로 보잘것없으니 말할 가치도 없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인간 세상에서 가장 존중받을 만한 사람은 어떤 부류이냐? 바른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 바른길이란 무엇이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길이 아니겠느냐? 바른길을 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네가 이런 사람이거나 이런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는데 부모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담을 퍼붓는다면, 네가 연약해지고 의기소침해질 때나 길을 잃고 헤맬 때 너를 지지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기는커녕 늘 부모에게 돌아와 효도하라고, 자기들을 저버리지 말고 돈 많이 벌어서 부모를 부양하라고, 자기들이 네 덕을 보고 호강하게 해 달라고 한다면 이런 부모를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모를 존중할 가치가 있겠느냐? 네가 효도할 가치가 있겠느냐? 네가 그들을 책임질 가치가 있겠느냐?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이 긍정적인 사물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 가지 사실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증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 가지 사실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들이 네가 바른길을 가는 것을 경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 가지 사실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의로운 일에 몸담는 사람을 경멸한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며 본분을 이행하기 때문에 그들이 너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는 어떤 부모겠느냐? 비열하고 졸렬한 부모가 아니냐? 이기적인 부모가 아니냐? 사악한 부모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큰 붉은 용에게 추적당하고 수배당하고, 사방으로 도망치느라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해외로 피신할 때도 있다. 주위 친척과 친구 그리고 동기들이 모두 네가 지명수배자가 되었다고 하면 부모는 이런 소문과 유언비어를 듣고 너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너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동정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들, 너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자들을 책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너를 미워한다. 불신자나 집권자들과 똑같은 논리로 너를 대하니 이런 부모는 어떠냐? 좋은 부모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너희는 아직도 그들에게 빚졌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 어떤 부모는 항상 말한다. “널 키우느니 개를 키우지. 개는 키워 주면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친근하게 구는데, 널 키워 봐야 뭘 기대하겠니? 맨날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한다고 장사도 안 하고, 직장도 안 다니고, 철밥통도 마다하다가 결국 주변 이웃들에게 웃음거리나 되고 말이야. 네게서 건질 게 뭐가 있겠니? 쓸모라곤 하나도 없고 덕 볼 것도 없다.” 네가 만약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라 세상에서 두각을 보이려 애쓰느라 고생하거나 병이 나고 괴로워하면 부모는 아마도 너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위로해 줄 것이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받을 희망이 생기면 그들은 기뻐하거나 축하하지 않고 오히려 너를 미워하고 욕한다. 이런 부모는 본질적으로 원수이자 앙숙이니 너와 다른 길을 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한가족이지만 본질, 추구, 취향, 걸어가는 길, 긍정적인 사물을 대하고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보면 그들은 너와 한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네가 “제게는 구원받을 희망이 있어요. 전 인생의 바른길을 걷습니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를 축하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수치스러워하는 것이다. 이런 부모는 감정 면에서 보면 네 가족이지만, 본성 본질 면에서 보면 가족이 아니라 원수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중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제 마음은 더욱 밝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대하는 원칙에 대해 분명하게 교제해 주셨는데, 부모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이따금 아버지의 그 말씀에 영향을 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 하신 그럴듯하지만 터무니없는 말들을 분별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보고 처신하며 일을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돈을 벌어 효도하고 노후를 책임지며, 자신들의 얼굴을 빛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전에 제가 집에 있을 때는 명절 때마다 좋은 담배와 술, 맛있는 음식을 사 들고 아버지를 찾아뵈었고, 아버지께서 편찮으실 때는 병원에 모시고 가 치료받게 해 드렸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제가 말 잘 듣고 철이 든 효녀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찾아뵐 수 없으니 아버지의 육적인 이익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제게 불만을 가지신 것입니다. 제가 큰 붉은 용에게 쫓겨 집에 돌아가기 어려워졌음에도, 아버지는 큰 붉은 용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제가 당신들 체면을 깎았다며 저를 배은망덕한 불효녀라고 욕했습니다. 온갖 듣기 싫은 말을 퍼부으셨고, 심지어 부녀지간이라는 관계조차 유지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어떻게 아버지가 저를 위해 그러신 것입니까? 정말 저를 위하셨다면 제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인생의 바른길을 걷는 것을 지지해 주셨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지해 주시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모욕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전에는 강에 뛰어들어 죽겠다며 협박까지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본성이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 사탄이고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이런 아버지는 제가 걱정하거나 효도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하고 늘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을 가졌으니, 저는 정말 마음도 눈도 멀어 흑백을 분간 못 하는 바보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본질을 간파하고 나니, 더 이상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음으로써 저는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오직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만이 올바른 인생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땅히 뒤돌아보지 않고 꿋꿋이 이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본분에 마음을 쏟았더니 본분을 이행하는 효율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러한 인식과 수확을 얻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 로 인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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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이이(艾依)2018년 10월의 어느 날, 리더로부터 부모님이 교회에서 제명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는 순간 어안이 벙벙하고, 제 귀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죠. ‘부모님께 교회를 교란하는 태도가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2022년 9월 말에 교도소에서 나온 밍후이(明慧) 자매는 남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갑니다. 밍후이 자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이유로 두 번이나 경찰에 잡혀 박해를 받았는데, 이번이 두 번째였고 징역 3년 3개월을 복역했습니다. 밍후이 자매는 계속...
중국 선밍(沈明)저는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경작으로 생계를 유지하셨습니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부모님은 건강이 안 좋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양쪽 다리가 다 아프셔서 심할 때는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늘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 중화 민족의 전통 미덕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부모님도 항상 그렇게 저를 교육하셨고, 더군다나 행동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할머니 댁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는 본인 집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