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사람됨의 원칙인가?
중국 리춘(李春)2022년 2월의 어느 날, 교회 리더가 저에게 우쥔 형제에 대한 평가서를 써 달라고 했을 때 저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요즘 교회가 정리 사역을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우쥔 형제에 대한 평가를 수집하는 건 그를 제명하려는 건가?’...
저희 집은 예로부터 남자가 가장이었고, 모든 일을 아버지가 결정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식사 준비,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은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일은 어머니와 누나의 몫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저희 형제들에게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안살림을 맡아야 한다”며 밭일이나 돈벌이는 남자의 일이고, 밥하고 빨래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을 보고 자란 형들은 결혼 후 모두 가장 노릇을 하며 집안일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형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그것이 남자의 풍채와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매우 현숙하여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때로는 제 앞에 밥상을 차려다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남자라면 더더욱 빨래나 바느질, 아이 돌보기 같은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건 다 여자가 하는 일이며, 제가 하면 창피하고 체면이 깎인다고 여겼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퇴근하고 돌아와 보면 아내가 아이를 안고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느라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내대장부인 제가 그런 일을 하는 걸 남들이 알면 얼마나 창피하겠냐는 생각에 아내를 돕지 않고 카드놀이를 하러 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정상 인성을 살아 내야 하며, 남의 시중만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너무나 비이성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내를 도와 밥하기, 채소 씻기, 청소하기 등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월 어느 날, 리더님이 한 섬김 가정이 환경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그 집에 사는 어린 자매 몇 명을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며, 설이 지나고 적합한 섬김 가정을 찾을 때까지만 제가 임시로 그들을 섬겨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형제인 내가 온종일 부엌데기처럼 지내다니, 얼마나 격이 떨어지고 거북한 일이야! 리더님은 어째서 내게 섬김 본분을 맡기시는 걸까? 이러면 내가 너무 난처하잖아?’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도 몇 년이나 되었는데, 본분을 거절하면 리더님이 나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 않을까? 게다가 우리 집은 섬김 본분을 하기에 아주 적합해. 아내는 교회에서 제명되었지만 내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지지해 주고, 두 아이도 반대하지 않으니 어린 자매들이 우리 집에서 설을 보내는 게 가장 좋겠지. 또 리더님도 잠시만 맡아 달라고 했고, 적합한 가정을 찾으면 바로 옮겨 갈 거라고 했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섬김 본분을 시작하니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안살림을 맡아야 한다’는 사상 관점이 또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내가 아침밥을 파는 가게에서 일했기 때문에 매일 아침과 점심 식사 준비는 제 담당이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몇 번이나 “밥할 때 앞치마 두르고 팔토시 끼세요. 안 그러면 옷이 더러워져서 빨기 힘들어요.”라고 당부했지만, 저는 입으로만 대답하고 한 번도 그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팔토시에 앞치마까지 하라니, 그게 무슨 꼴이야? 내가 무슨 아줌마라도 된 것 같지 않겠어? 자매들이 보기라도 하면 내가 얼마나 민망하겠어! 밥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일은 원래 자매들이 하는 일이지 형제가 할 일이 아니잖아. 형제자매들이 내가 섬김 본분을 이행하는 걸 알면 분명히 나를 얕볼 거야. 문서 본분을 이행하던 내가 이렇게 밥 해주는 사람이 될 줄이야!’ 얼마 후, 리더님은 또 어린 자매 한 명을 저희 집에 보냈고, 자매들은 이사 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설 지나면 이사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우리 집에 사람을 더 보내는 거지? 매일 밥하고 요리하는 건 정말 체면 깎이는 일인데, 대체 언제 끝날까?’ 저는 답답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살며 식사도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밥은 되거나 질었고, 반찬은 짜거나 싱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도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식사를 준비해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자매들이 제게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제가 끓인 국수는 덜 익었고, 무친 나물은 소금이 채 녹지도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 괴로웠습니다. ‘사내대장부인 내가 온종일 너희한테 밥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억울한데, 이것저것 트집까지 잡다니, 정말 못 참겠네!’ 저는 자매들이 하루빨리 이사 가기만을 바랐습니다. 나중에 제 내적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닫고, 제 문제를 알도록 이끌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 찬양 한 곡을 들었습니다.
태초의 인류는 영이 있는 산 사람이다
1. 태초에 나는 ‘인류’를 창조하였다. 즉,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만들었다. 아담에게는 형상이 있었고 생기와 활력이 넘쳤으며 더욱이 내 영광이 함께했다. 그날은 본래 내가 사람을 창조한 영광의 날이었다. 이어서 아담의 몸에서 하와가 ‘생겨났다’. 그녀 역시 사람의 조상이다. 이렇게 내가 창조한 사람은 나의 생기로 충만했고 나의 영광으로 가득했다.
2. 아담은 내 손에서 ‘난’ 존재로, 본래 내 형상을 대표한다. 그렇기에 ‘아담’이란 본디 나의 활기가 넘치고, 나의 영광이 가득하며, 형태도 모양도 있고, 영과 생기를 갖춘 나의 피조물이란 뜻이었다. 또한 내가 창조한, 유일하게 나를 대표할 수 있고 내 형상을 지니고 나의 생기를 받은, 영이 있는 피조물이라는 뜻이었다.
3. 하와는 내가 태초에 정해 놓았던, 두 번째로 지음 받은 생기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와’란 내 영광을 이어 가고 나의 생기가 가득하며, 나아가 내 영광을 지닌 피조물이라는 의미이다. 하와는 본래 아담에게서 왔으므로 그녀에게도 내 형상이 있었는데, 이는 그녀가 내 형상대로 지음 받은 두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와’란 영이 있고 뼈와 살이 있는 산 사람이라는 의미로, 인류 중에 내 두 번째 증거이자 두 번째 형상이었다. 이들은 인류의 조상이면서 인류의 보배롭고 성결한 존재로, 본래 영이 있는 산 사람이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
가사를 묵상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류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존귀하다거나 여자가 남자보다 지위가 낮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다는 것을요. 하나님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은 어떤 본분은 반드시 형제가 해야 하고 어떤 본분은 자매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의 영향을 받으며 남성 우월주의 사상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늘 여성을 무시하고 요리나 설거지 같은 일들을 얕잡아 봤습니다. 그런 일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섬김 본분을 맡는 것을 무척 꺼렸고, 맡더라도 건성으로 이행했습니다. 저의 모든 생각과 행실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저는 순종하여 성실하게 섬김 본분을 잘 이행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는 국수를 삶더라도 좀 더 오래 삶았으며, 냉채를 무칠 땐 미리 양념에 재워 두었고, 요리에도 변화를 주려고 했습니다. 어린 자매들이 아파서 기침을 하면 배숙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그 자매들이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자매들이 떠난 후, 저는 섬김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왜 그렇게 반발심이 컸는지 곰곰이 생각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남성 우월주의를 폭로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저 자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씻고 헹구고, 꿰매고 깁는 일은 모두 여자의 일이라 여자가 하면 좋을 텐데.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짜증이 나고 내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 … 남자는 이렇게 남성 우월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남성 우월주의가 심각한 일부 사람은 아이 돌보기, 방 정리, 빨래나 설거지, 청소 같은 일을 무시해서 하려 하지 않는다. 한다 해도 마지못해 하는 식이다. 남들에게 무시당할까 걱정하면서 ‘맨날 이런 일이나 하고 있으니 이러다 아줌마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사상 관점에 지배된 것이겠느냐? 이는 사상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상엔 문제가 있다. … 어떤 지역의 사람은 남성 우월주의가 굉장히 심각하다. 이는 가정에서 비롯되는 교육과 영향 때문에 네가 잘못 길들여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너를 해롭게 한 것이냐 아니면 너를 구한 것이냐? (해롭게 한 것입니다.) 너에게 해를 끼친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중에서), 『예를 들어, 형제인 너에게 매일 형제자매를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게 한다면 너는 순종할 수 있겠느냐?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깐은 순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네게 이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면 순종할 수 있겠느냐? (가끔은 순종할 수 있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순종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불순종이다. 그러면 어째서 불순종하게 된 것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속에는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전통 관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고 형제가 밥을 하면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므로 쉽게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역할 분담에 성차별이 있는 것이다. 남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남자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해야 해. 요리나 설거지 같은 건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이잖아. 우리 남자들에게 시키면 안 되지.’ 하지만 지금처럼 특수한 환경에 처해서 너에게 시킨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는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야만 순종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너는 성차별을 타파해야 한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 같은 건 없다. 이렇게 먼저 역할을 분담해 놓아서는 안 된다.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를 성별에 따라 구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실행해야 생명 진입이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 그리고 가정의 영향을 받아 늘 ‘남존여비’,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안살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빨래, 식사 준비, 청소 같은 집안일은 모두 여자가 하는 일이며, 남자는 밭일을 하거나 직장에 다니며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지위가 여자보다 높으니 아내의 시중을 받는 것이 마땅하며, 남자가 집안일을 하면 체면이 깎이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아 도와주고 싶었지만, 사내대장부로서의 풍채와 존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또 여자가 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남들이 보면 체면이 깎인다는 생각에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분담하지 않고 카드놀이나 하러 나갔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아내는 묵묵히 참고 견디며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남성 우월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리더님이 제게 임시로 자매 몇 명을 섬겨 달라고 했을 때, 저는 집안일을 여자들이 하는 일로 여겨 형제인 제가 섬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창피하고 격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내대장부라는 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식사를 준비할 때 앞치마나 팔토시도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자매들에게 얕보일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의 반발심 때문에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여 국수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나물을 무칠 땐 소금이 채 녹지도 않았습니다. 자매들이 제게 의견을 제시했을 때도 저는 그들이 까다롭다고 여기며 하루빨리 이사 가기만을 바랐습니다. 저는 전통문화 사상에 따라 살면서 소위 남자의 존엄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아주 이기적이고 냉담해졌습니다. 정상 인성이 조금도 없었고, 본분에 대한 순종이나 충성심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진리를 깨달아 남성 우월주의 사상의 속박과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말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책임을 구분해야겠느냐?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평등해야 하지 않겠느냐? 남성의 지위를 지나치게 높이고 여성을 깎아내리는 것이 공평하겠느냐? (불공평합니다.) 그럼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도대체 어떻게 대하는 것이 공평하고 합리적이겠느냐? 그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남성과 여성을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이론적 기초이다. 어떻게 실행해야 공평성과 합리성을 실현할 수 있겠느냐? 이는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겠느냐? 먼저, 남녀의 지위가 평등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남녀의 사회 분업 역시 평등해야 하며, 자질과 업무 능력을 고려하여 안배하는 것이 적절하다. 특히 인권 면에서는 더더욱 평등해야 한다. 남성이 누리는 것은 여성도 누려야 사회에서 남녀의 지위 평등을 보장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말고 해당 업무를 할 수 있고 지도자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 원칙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이는 양성평등을 구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소방관을 채용하는데, 지원자 중에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다면 누구를 채용해야겠느냐? 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이론적 기초이자 원칙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겠느냐? 방금 말했듯이 자질과 능력에 근거하여 누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고 이 원칙대로 채용해야 한다. 그 지원자 중 누구의 자질이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르며 반응이 민첩한지, 누가 위급 상황에서 빠르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또 각 개인의 업무 능력이나 이력, 소방 업무에 대한 적합성 등 여러 측면의 상황을 파악한 후 최종적으로 적절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이렇게 채용된 사람들에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포함된다. 남성은 건장하고 튼튼하며 소방 관련 경력이 있는 데다가 여러 차례 소방 구조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고, 여성은 민첩하고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으며 소방 상식과 업무 절차에 능숙한 데다가 과거 다른 업무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채용된 사람들 모두 업무에 상당히 적합했다. 이는 쟁쟁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자를 뽑으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 일단, 너는 이 일을 처리할 때 남성이나 여성에게 편견이 없으며, 여성 중에도 걸출한 인재가 많고, 그런 사람이 꽤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이러한 식견으로 인해 여성의 업무 능력이나 사회에서 발휘하는 가치가 남성보다 못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식견과 인식을 갖고 일을 처리하면 이 사실에 근거하여 정확한 판단과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즉,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성별에 대한 모든 편견이 사라지면, 네 인성은 이 부분에서 비교적 정상적일 것이며,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남존여비라는 전통문화의 사슬을 끊고 더는 그것에 사상이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영향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1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니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남존여비’,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안살림’과 같은 전통문화 사상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성은 여성에게 편견을 품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여성을 얕보거나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입니다. 남성은 여성을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집안일을 여자가 태어날 때부터 해야 할 일로 여기고, 남들 앞에 나서서 하는 일이나 지위 있는 일을 남성이 해야 할 일로 여기는 사상 관점은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이며, 진리에 완전히 위배됩니다. 하나님 집에는 어떤 본분을 반드시 형제가 해야 하고, 어떤 본분을 반드시 자매가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본분을 안배할 때 성별이 아니라 개개인의 자질과 특기, 사역 능력, 그리고 교회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합리적으로 안배합니다. 리더님이 제게 섬김 본분을 맡기신 것도 자매들이 머물던 섬김 가정이 환경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었는데 당장 안전한 가정을 찾을 수 없었고, 저희 집의 조건이 적합하며 아내와 아이들도 저의 본분 이행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리더님의 안배는 한편으로는 자매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여 교회 사역이 지장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섬기는 것 역시 교회 사역을 지키는 것이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니, 저는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남존여비’,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안살림’이라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대로 섬김 본분을 잘 이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 본분을 어떻게 올바로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의 상하 귀천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부탁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이긴 하지만, 이런 일을 하면 남들이 깔볼 거야! 체면이 서는 일은 남들보고 하라고 하고, 티 나지 않고 뒤에서 힘을 내는 일은 나한테 시키네. 이건 불공평하잖아! 난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 난 체면도 세우고 이름도 날리는 본분을 맡아야 해. 이름을 날리거나 체면을 세우지 못한다 해도 내게 이득이 되고 몸이 편한 본분이어야 돼.” 네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 태도가 옳은 것이냐?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는 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본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본분을 거절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모습이다. 그 안에는 개인적인 취향과 바람이 섞여 있다. 네가 자신의 이익과 체면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그것은 순종하는 태도로 본분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떤 태도로 본분을 대해야 하느냐? 첫째, 분석하지 말고, 누가 안배한 것인지 따지지도 말고,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부탁이고 자신의 본분이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본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상하 귀천을 논하지 말고, 어떤 성질의 본분인지,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앞에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뒤에서 하는 일인지 등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 가지 태도는 순종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예를 들어, 형제자매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이 네 책임이고, 그것이 네 본분이라면, 너는 이 일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겠느냐? (진리 원칙을 구해야 합니다.) 진리 원칙을 어떻게 구할 것이냐? 이것은 실제와 진리에 관한 문제다. 너는 어떻게 하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이것이 어떤 측면의 진리에 관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 단계로 우선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은 내가 먹으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본분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 측면이다.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이겠느냐? (어떻게 하면 음식을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잘한다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요구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요구가 바로 진리이자 기준이며 원칙이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이 한 측면의 진리다. 우선 너는 이 측면의 진리를 생각한 뒤에 ‘하나님께서 내게 이 본분을 이행하게 하셨어. 그러면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기초가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을까? 바로 건강에 좋고, 맛있고,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먹고 난 다음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은 세부적인 문제다. 네가 이 원칙에 따라 음식을 만들면 네가 만든 음식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만든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네가 이 일에서 이 측면의 원칙을 구하고 하나님이 부여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다면 옳은 것이고, 네 본분을 잘 이행한 것으로, 기준에 달한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집에서는 어떤 본분을 안배하든 사람의 성별에 근거해 정하지 않으며, 본분 자체에 높고 낮음이나 귀하고 천함의 구별도 없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가 안배했든, 남들 앞에 드러나는 일이든 아니든 진리 원칙을 구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실행 방법이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리더님이 제게 섬김 본분을 맡기셨을 때, 저는 남들이 얕볼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진리 원칙을 구해 마음과 힘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했습니다. 우선, 환경을 잘 지켜 자매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해야 했고, 또한 평소에는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해야 했으며, 식사를 준비할 때는 영양과 건강을 고려하여 식단을 짜야 했습니다. 섬김 본분을 이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남성 우월주의라는 저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이 바로잡혀 더는 ‘남존여비’라는 전통 사상으로 여성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의 생활 기술도 향상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예전보다 훨씬 능숙하게 채소를 씻고 썰 수 있게 되었고, 집에서는 거의 제가 요리와 청소를 도맡아 합니다. 한번은 점심을 먹을 때 아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전에는 제가 당신한테 밥을 해 줬는데, 이제는 반대가 됐네요.” 아이들도 제가 변했다고 말합니다. 가끔씩 자매 몇 명이 저희 집에 와서 설교 초안을 검토할 때도 대부분 제가 요리를 하는데, 체면이 깎인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자매들은 제가 만든 생선 요리가 아주 맛있다고 칭찬해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남성 우월주의라는 전통 사상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정상 인성을 살아 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이 이룬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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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리춘(李春)2022년 2월의 어느 날, 교회 리더가 저에게 우쥔 형제에 대한 평가서를 써 달라고 했을 때 저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요즘 교회가 정리 사역을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우쥔 형제에 대한 평가를 수집하는 건 그를 제명하려는 건가?’...
한동안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늘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는 제 부주의 때문이었고, 어떤 문제는 원칙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조금 걱정했습니다. 리더나 파트너 자매가 저를 책망하며 제가 본분을 대충 이행한다고 말하지...
2017년 초, 저는 이웃인 리란으로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도받았습니다. 한동안 알아본 끝에, 저는 하나님의 사역을 사실로 인정했고, 일부 진리도 깨달았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으로 오셔서 사역하시는 것이 사람의 패괴...
저는 전통적인 중국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사리에 밝고 예의 바른 아이가 되어야 하며, 어른을 보면 공손하게 인사하고, 버릇없이 행동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저를 교양 없는 아이라고 흉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