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주변이 없다고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요

2025.2.24

필리핀 케리(Kerry)

저는 원래 많이 내성적이고 표현력도 조금 부족해서 낯을 많이 가리고 말도 잘 못했어요. 그래서 사람 많은 데서 말하면 표현을 제대로 못 해서 창피를 당할까 봐 많이 긴장했죠. 저는 그것 때문에 늘 열등감을 갖고 살았어요. 2023년 8월에는 교회에서 저한테 새 신자 양육을 맡겼어요. 그 본분은 자주 새 신자와 예배를 같이 드려야 하고 또 양육을 맡은 다른 사람하고도 소통을 많이 해야 했어요.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면 저는 자꾸 긴장했어요. 교제를 나눌 때 말을 제대로 못 하면 형제자매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였거든요.

한번은 협력자인 스테이시(Stacy) 자매를 따라 새 신자 예배에 참석했죠. 사람은 한 50여 명 정도 있었어요. 그런 장소에 가니까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됐죠. ‘사람이 너무 많은데? 여기서 내가 교제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얼마나 체면이 깎일까! 저 사람들이 전달력도 떨어지는 내가 어떻게 자신들을 양육할 수 있겠냐고 하지 않을까?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 가슴이 뛰면서 도저히 안정이 안 됐어요. 더구나 스테이시 자매가 전달력도 좋고 실질적인 내용으로 교제를 나누니 그런 자매가 너무 부러웠죠. 그리고 괜히 많은 사람 앞에서 긴장하는 바람에 머릿속이 백지장이 돼 아무 말도 못 하면 너무 난감해지고 새 신자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에 불안하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예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들러리 역할만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저는 예배를 마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죠. 그리고 양육하는 형제자매랑 예배드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들 표현력이 너무 좋으니까 그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근데 저는 표현력이 많이 떨어져 어디 내놓을 수 없을 정도라는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속으로는 답답했죠. ‘아니, 다 양육 본분을 이행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큰 걸까? 내가 계속 입을 열지 않으면 다들 나는 아무것도 교제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조금 소극적으로 변했어요.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애초에 나한테 양육 본분을 맡긴 게 잘못된 게 아닐까? 이 본분을 이행하려면 진리를 잘 교제하고 표현력도 뛰어나야 하는데. 나는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니까 이 본분을 더는 못 맡을 것 같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어느 단계에서 어떤 본분을 맡게 되든 그것도 하나님께서 다 정해 놓으신 거니까 하나님의 선한 고심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근데 계속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서 말을 해야 하니까 그것도 걱정이 됐죠. 한동안은 계속 그런 상태에 빠져 힘들었고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어요.

어느 날, 한 자매한테 이런 내적 상태를 털어놨더니 자매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여 줬어요. 『네가 살면서 자주 참소를 받아 마음이 편치 않고, 기쁨과 평화도 없고, 늘 여러모로 근심하고 고뇌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네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탄 성품으로 살면서 항상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진리를 배반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자기 체면, 자기 명예와 지위, 자기 이익만 지키고, 자기만을 위해 산다면, 그런 삶은 매우 고통스럽다. 네 사욕이 너무 많고, 네 굴레가 너무 많고, 네 올가미가 너무 많고, 네 우려가 너무 많고, 네 고뇌가 너무 많아 평온함과 기쁨이 전혀 없다. 패괴된 육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다르다. 진리를 깨달을수록 자유로워지고, 진리를 실행할수록 평온하고 기쁘다. 그렇게 해서 진리를 얻으면 완전하게 빛 가운데서 살며 하나님 축복을 누리게 되고, 고통은 말끔히 사라진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에서) 딱 저의 실제 상태를 두고 하신 말씀이더라고요. 저는 그동안 왜 그렇게 괴로웠는지 알게 됐어요. 그건 제가 자꾸 허영심과 체면만 중시하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어요. 새 신자와 예배드리든, 양육팀원들과 예배드리든 교제를 잘 못하면 사람들이 무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저는 저의 허영심과 체면 때문에 앞뒤를 재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온통 저의 체면과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패괴 성품에 빠져 정말 괴롭게 보냈던 거예요.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의 문제점이 뭔지 조금 알게 됐죠.

며칠 후에 책임자가 양육자 교류회가 있는데, 회차별로 돌아가면서 인도하자고 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또다시 긴장됐죠. 이번에는 양육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 11명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상(異象)에 관한 진리에 있어서 저는 지금껏 다른 사람들보다 교제를 잘 못했는데, 이제는 교류회 인도까지 해야 한다니 안 그래도 표현력도 떨어지는 데다 긴장까지 하면 교제를 나눌 때, 말을 더듬게 되고 생각도 정리가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럼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이 앞섰어요. 며칠 후, 예배 모임 날짜가 되었는데, 책임자에게서 빨리 참석하라는 전화가 온 거예요. 그날은 제가 인도할 차례는 아니었지만, 내적으로 갈등은 있었어요. 만약 저보고 교제를 나누라고 할 때 아무 말도 못 하면 이 얼굴을 못 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참석하지 않았죠. 그러고 나서 며칠 동안은 속이 체한 것처럼 숨도 안 쉬어졌어요. 물론 그날을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양육 본분을 이행하기에 합당해 보이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본분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 송구스럽고 가책이 느껴졌죠.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면서 조금 돌아서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어서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데, 삼사십 대의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성격을 극복하지 못해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솜씨가 없으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서툴다. 그는 리더가 된 후에도 이런 성격 때문에 사역에서 어느 정도 제약받고 가로막혀 늘 이로 인해 괴로워하고 고뇌하며 심각하게 속박받는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모두 정상 인성의 모습이다. 이런 것들이 정상 인성의 모습이라면, 하나님은 과오로 보겠느냐? 전부 과오가 아니며, 하나님은 이를 올바르게 대할 것이다. 네게 어떤 문제와 결함, 허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원래부터 갖추고 있는 정상 인성의 조건하에서 네가 어떻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며, 어떻게 진리 원칙대로 행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지를 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에서는 정상 인성의 자질이나 본능, 성격, 습관 또는 생활 규칙 등 기본적인 조건에 제약받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 기본적인 조건들을 극복하는 데 정력과 시간을 쏟아붓지도 말아야 하며, 이를 바꾸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 네가 원래 어떤 성격이든 그대로 두고, 구원받기 위해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마라. 그것은 사람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사람의 성격은 객관적 사실로, 너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객관적 원인을 보면,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고자 하는 성과는 네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와 아무 관계가 없고,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지 여부 역시 네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또한,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인지,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인지도 네가 어떤 성격인지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본분을 이행한다거나 어떤 사역의 책임자가 되었다고 해서 성격을 바꾸려 하지 마라.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럼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느냐? 어떤 성격을 지녔든, 어떤 선천적 조건을 갖추었든 네가 지키고 실행해야 할 것은 진리 원칙이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네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지,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 네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자질이나 능력, 재능, 은사, 재주를 타고났는지 등은 보지 않는다. 물론 네가 육체적 본능과 필요를 얼마나 억제했는지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했는지,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다짐이 있는지를 본다. 결국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데 이르렀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바이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아 마음이 조금은 자유로워졌어요. 하나님께서 바꾸시려고 하는 건 사람의 본능과 성격이 아니라 사람의 패괴된 성품이더라고요. 성격상의 결함은 정상 인성의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어요. 근데 저는 항상 저만의 관점이 있었죠. 바로 저는 내성적이고 표현을 잘 못하니까 양육 본분을 이행하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말이에요. 그래서 외향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난 형제자매를 만나면 위축됐고 제가 표현을 잘 못하면 남들이 저를 부족한 사람으로 볼까 봐 걱정했어요. 그래서 열등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됐고, 더더욱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건 저의 치우친 관점이더라고요. 과거 다른 본분을 맡았을 때에도 보면, 마음을 들여 말씀을 묵상하고 본분을 이행하면 소기의 효과를 볼 수 있었고, 예배 시간에 교제를 나누면 깨우침과 빛 비춤이 따랐거든요. 물론 제가 남들보다 표현력이 조금 떨어지긴 해도 아예 표현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으로도 충분하죠. 문제는 제가 교제를 잘하지 못하면 창피를 당할 거라며 허영심과 체면에 자꾸 신경 쓴 거죠. 자꾸 저는 내성적이고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만 댈 뿐, 본분에 존재하는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고민하지 않았고, 더욱이 저의 패괴 성품에 대해 돌아보지도 않았어요. 그저 허영심과 체면에 빠져 자유롭지 못하게 살았던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제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잘못된 걸 알게 됐죠. 저는 내성적이고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열등감을 갖고 소극적이 되어서도 안 되더라고요. 저의 성격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거니까 그건 바꿀 수 없는 거고, 또 그건 패괴 성품도 아니었어요. 제가 해야 할 건 더는 허영심과 체면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진리를 추구하면서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훨씬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지죠. 그래서 그 뒤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했어요. 제 성격상의 결함에 대해 인정하고 직면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하고, 제가 못하는 건 협력자 자매와 서로 보완해 나갔어요. 그러니 더 이상 내성적이고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거나 괴롭지 않았어요.

그 후에 한 자매와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자매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여 줬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사랑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이는 그의 성품 본질 안에 있는 것으로, 한때의 취미도 아니고 한순간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속에, 뼛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즉,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다른 게 아닌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의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지위와 명예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에게 있어 매일의 삶과 상태,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가장 신경 쓰고, 그걸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본다고 폭로하셨어요. 돌아보니까 저도 그런 상태에 있었어요. 새 신자랑 예배드릴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데 마음을 들이고, 제가 깨달은 만큼 교제하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전 그러지 않았어요. 새 신자를 만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새 신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경 쓴 게 아니라 어떻게 교제를 잘해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지를 고민했어요. 그러니 제가 다른 사람보다 표현력이 떨어져서 교제를 잘 못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매여서 저는 교제를 나눌 엄두도 못 냈던 거죠. 또 양육자들과 교류 모임을 가질 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다들 저보다 표현력이 좋은 걸 봤을 때, 저는 배우려는 자세를 갖거나 소통을 하면서 부족한 걸 채우려고 한 게 아니라 그저 표현력이 떨어지는 제가 교제를 잘 못하면 저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만 했었고, 말을 하지 않을 때에도 모두가 저를 어떻게 보는지만 신경 썼어요. 또 저는 허영심과 체면에 심하게 얽매였을 때도 빨리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구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걱정하고,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전에 그 본분을 그만두는 게 났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게 저의 마지막 체면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거든요. 이처럼 저는 침묵을 지키든, 아니면 말을 하든,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든 항상 저의 허영심과 체면부터 고민하더라고요. 이번에 제가 괴로워하고 소극적이고 열등감을 갖게 된 것도 모두 제 허영심과 체면 때문이었고, 사람들 가운데서 제가 폼 나게 체면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심지어 저는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분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어요. 사실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체면이 금과 같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런 사탄 독소에 영향받아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항상 좋은 이미지를 주려는 경향이 있었어요. 대단하게 보여지지는 못해도 무시는 당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학교생활에서나 직장 생활에서나 아니면 본본을 이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저는 늘 그걸 지켰고, 제 명예와 지위가 원하는 대로 채워지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 것처럼 생각했어요. 보니까 제가 드러낸 건 적그리스도의 성품이었어요. 이걸 깨닫게 됐을 때, 하나님께서 저한테 이런 성격을 주신 것에도 그분의 선한 고심이 있었음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봤죠. 『인류는 사탄에게 패괴되어 사탄의 패괴 성품을 생명의 본질로 삼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으로 살고 있고, 사람의 생명은 패괴 성품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 좋고 뛰어난 자질까지 더해진다면, 즉 여러 측면의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데다가 완전하고 완벽하다면 패괴 성품이 조장될 것이며 더욱 기승을 부려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은 더욱 교만하고 강퍅하고 간사하고 사악해질 것이고, 진리를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려워져서 어떤 방식으로도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7)>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만약 제가 말주변이 뛰어나고 표현력도 좋고 다방면으로 잘해서 어디를 가든 주인공이 되고 사람들한테 대단하게 보여질 수 있었다면 저는 분명 잘난 척하면서 살았을 거예요. 근데 저는 말주변이 없다 보니까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게 되고 또 정말 연약하고 무능하고, 보잘것없고 둔한 저 자신을 알게 되니까 거만하게 굴지 않을 수 있었던 거예요. 저는 명예욕과 지위욕이 정말 심했어요. 말주변도 없고 표현력도 떨어지는 그렇게 큰 결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으니 만약 제가 말주변까지 있었더라면 분명 더 거만해졌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제게 말 잘하는 재능을 주지 않으신 건 저에 대한 보호였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또 보게 됐어요. 『진리 추구는 어떤 각도에서 말하든 가장 중요하다. 인성 측면의 결점과 부족함은 피할 수 있지만 진리 추구의 길은 절대 피할 수 없다. 네 인성이 아무리 완벽하고 고상해도, 혹은 다른 사람보다 결점이 적고 특기가 많아도 그것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진리 추구를 대체할 수도 없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여 깨달은 진리가 많으며 깨달은 진리가 매우 깊고 실제적이라면 인성 측면의 여러 결점과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하)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매일의 일상 가운데 네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자신의 패괴 성품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고, 어떻게 진리 원칙을 깨닫는지 하는 문제와 관계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진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고, 생명 진입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따르면서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조금씩 진리 실제에 진입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여전히 명예와 지위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뽐내 남들의 우러름을 받는 데 집중한다면, 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네가 추구하는 것은 진리나 생명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것, 명리와 지위이다. 그렇기에 네 모든 행동은 진리와 무관한 악행에 속하며, 이는 힘쓰는 것에 속한다. 만약 네가 마음속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향해 매진하며 성품 변화를 추구한다면,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고,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단속하면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네 상태는 점점 좋아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좋은 행위가 성품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력이 뛰어나거나 말주변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게 봐 준다고 해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사람의 결함을 보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보시죠. 저는 새 신자 양육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새 신자를 마주하든, 양육자를 마주하든 저의 책임을 다하길 바라시는 거죠. 또한 새 신자들이 하루빨리 참도에 뿌리내리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저는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많이 찾고 구해야 하고요. 근데 저는 새 신자나 양육자를 마주할 때, 매일 저의 체면과 지위만을 위해 고민할 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을 역행하고 있었어요. 그건 오히려 하나님과 더 멀어지기만 하고 결국은 도태되는 길로 가는 거죠. 그 뒤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의식적으로 마음을 본분 이행에 쏟았고, 저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 신경 쓰고, 진리 원칙을 구하면서 본분을 잘 이행하는 걸 중시했어요. 그 후 순차적으로 예배 인도를 맡게 됐을 때 저는 더 이상 피하지 않았어요. 저는 예배 인도 훈련을 통해 표현력을 제고하면서 저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는 또 저의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제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달란트를 온전히 끌어내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감과 힘을 달라고요. 제가 교제할 차례가 됐을 때, 저는 떨지 않고 침착하게 제가 아는 만큼 교제를 했어요. 더구나 제가 미리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 술술 나왔는데, 더는 체면 때문에 구애받지 않았어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괴롭고 답답한 원인은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명예와 지위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말주변이 없고 표현력이 다소 부족한 건 인간적인 측면의 결함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리 추구에 마음을 쏟고, 본분에서 어려움이나 문제점이 생겼을 때, 진리 원칙을 많이 구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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