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2025.4.18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보면 종종 반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시험 성적이 발표될 때마다 학교 명예 학생 게시판에 제 이름과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선생님의 만족스럽고 감탄 어린 시선을 볼 때나 주변 친구들의 칭찬을 들을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정말 뿌듯했습니다. 귀가할 때면 이웃들은 저를 보면 이런 인사를 건넸습니다. “요 아가씨는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이다음에 분명 명문대에 들어가겠지!” 저는 수줍게 웃으며 허영심이 한껏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성내 주요 대학에 합격해서 첫해에 과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기뻤고, 친구들도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부러워하고 감탄했습니다. 선생님도 저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대학 생활은 중고등학교처럼 그렇게 분주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고 느슨했고, 수업 시간에도 사회 과학 이론을 조금 배우고 이론 용어만 기계적으로 암기했습니다. 가끔은 ‘이런 이론들을 공부하고 암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 그저 시험에 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다들 먹고 마시고 놀기 바빴고, 저도 계속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지루함을 달랬습니다. 그러면서 자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시간만 보내는 게 다란 말인가? 삶에 어떤 목표와 방향을 가져야 할까?’ 하지만 저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한 자매가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 단계 사역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를 완전히 구원하기 위해 다시 한번 성육신이 되어 많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며, 이로써 사람이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저는 무척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이 지금은 하나님나라 복음이 확장되는 중요한 시기이고, 복음 확장을 위해 자신의 일부를 바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교제하면서 저에게 본분을 이행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좀 갈등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해. 지금 이렇게 경쟁도 치열한데 성적에 지장이 있으면 어쩌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길을 택해야 하나, 아니면 열심히 교양과 지식을 익혀서 좋은 성적을 받고 장차 좋은 앞날을 맞이해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살아야 하나?’ 저는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자매에게 좀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동안 저녁마다 혼자 캠퍼스를 거닐며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늦게까지 힘들게 공부하는 학우들을 보니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업과 앞날을 추구해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을 따르며 본분을 이행해야 하나?’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본디 가진 것 하나 없던 외로운 영혼이 창조주의 주재와 예정으로 부모와 가족을 얻고 인류의 일원이 되고, 삶을 경험하고 세상을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하고, 창조주의 만물 창조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알며, 창조주의 권병을 알고 그 권병 아래에 복종할 기회 역시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이 드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 사람은 평생의 에너지를 운명과 맞서 싸우는 데에 쓰고, 자기가 가진 모든 시간을 가족을 부양하고 명성과 재물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데 다 써 버린다. 사람들은 가족, 돈, 명예, 이익 등을 소중히 아끼고,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운명이 기구하다고 불평하면서도 ‘사람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처럼 사람이 꼭 알아야 하고 탐구해야 할 문제들은 뒷전으로 미룬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나날이 얼마나 되든 명성과 부만 좇다가 젊음을 보낸다. 머리가 세고 얼굴에 주름이 질 때까지, 명성이나 재물이 나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돈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그 누구도 생로병사의 법칙과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삶의 마지막 관문을 마주한 뒤에야 백만장자도, 귀한 신분과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며,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의 원래 자리, 즉 가진 것 없는 외로운 영혼으로 되돌아가야 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사람의 일생에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은 전부 헛된 것이며 기념할 가치가 없다. 네가 경천동지하는 큰일을 하고, 하늘과 달에 올라가 봤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네 과학 연구의 성과가 인류에게 약간의 이익과 도움이 되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이 모든 것은 다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지 않는 유일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오직 하나님에 대한 증거만이, 창조주를 증거하는 모든 작품들, 간증, 그리고 사람의 선행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너무나 가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저를 무척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각각 인간 세상에 오도록 안배하신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권병을 느끼고,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세상을 공허하게 한 번 걸어갈 뿐, 왜 왔는지, 왜 걸어가는지, 왜 사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뉴스 기사를 보면, 사람들에게 추앙받고 돈도 많이 벌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던 모 배우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거나, 막대한 재산에 대단한 지위를 누리던 모 유명인이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곤 합니다. 또한 집안의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 고학력 지식인으로 평생 치열하게 살면서 한때는 찬란한 시절도 있었지만, 늘그막에 하루 종일 잡담으로 시간을 때우며 공허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뿐, 삶의 의미도 모르고 무작정 죽는 날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배우고 아무리 큰 성취를 이루어도 모두 덧없는 일이고, 최후에 사악한 구세계가 멸망할 때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런 과학 연구 성과와 개인의 성취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인류를 인도하여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줄 수 없고,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고 사람답게 살도록 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취가 생겨도 인류는 타락할 대로 타락했고, 게다가 지식 역시 사회의 어두운 현상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을 바른 길과 방향으로 데려가지 못하기에, 이런 지식과 개인의 성취는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에 대한 증거,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고 거둔 수확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제가 만약 지식을 추구하고 속세를 추구하는 데만 마음을 쏟으며 일생을 명예와 이익, 가정, 학업, 일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다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 결국 아무런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성품에도 변화가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 사역을 체험할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요? 하나님은 이미 제가 인생의 방향을 찾고, 사람이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저를 이끄셨습니다. 제가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고, 이런 인생이 바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입니다. 복음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저의 힘을 일부 바쳐서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 데려올 수 있다면, 이것은 저의 책임이지 하나님의 높여 주심입니다. 저는 지식을 익히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고, 하나님 믿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후 저는 대학원 추천 진학을 포기하고 본분을 이행하기로 선택했습니다.

2020년 초 설을 쇠러 집에 갔을 때, 전염병 때문에 도시가 봉쇄되어 고향에 발이 묶였는데, 교회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년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도 먹고 마시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마침 4학년, 졸업을 앞둔 시점이라 주변 학우들 중에는 대학원에 합격한 친구도 있고, 번듯한 일자리를 찾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늘 엄한 얼굴로 저를 재촉했습니다. “누구네 아들은 명문대 대학원에 합격했다. 이제는 대부분 대학원을 가는 추세이고, 그래야 앞으로 취업할 때 더 경쟁력이 있지. 너도 원래대로라면 대학원을 가야 하는데 듣지도 않고, 이제는 일도 빨리 찾지 않으니, 졸업하면 뭘 할 생각이냐?” 가족들이 재촉하기도 하고, 주변 학우들이 자기 앞날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곧 졸업이구나. 설마 졸업하고 실업자가 되는 건가?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속으로 무척 괴로웠습니다. 특히 한번은 동기 모임에서 동기들끼리 서로 향후 진로에 대해 물어보는데, 모 유명 대학 석사 과정에 합격했다며 의기양양한 친구도 있고, 국영 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치켜세우고 칭찬하며 합격 전후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저는 대화에 전혀 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화려하게 빛이 났고,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미소가 넘쳤습니다. 그것을 보며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들고 속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에는 내가 저들보다 공부를 잘해서 모두에게 부러움과 감탄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주요 대학 석사생이 되고 나만 본과생이야. 격차가 이렇게나 벌어졌어. 앞으로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지? 나에 대해 남들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먹구름에 둘러싸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물으면 그저 얼버무리거나 어색하게 한쪽으로 피했습니다. 남들의 경멸하는 듯한 시선이 두려웠습니다. 모임 내내 속으로 무척 답답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학우들이 저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서 대성통곡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남들의 우러름과 칭찬 속에 자란 제가 지금은 남들보다 뒤처져 있었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격차가 충격으로 다가오며, 앞에 놓인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지금의 제 학력으로 번듯한 일자리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내가 석사 학위를 가진 동창들보다 낮은 등급의 삶을 살아야 하나?’ 아무래도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대학원 시험을 보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 후 저는 교회에 연락해서 형제자매에게 고향에 돌아가 대학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니, 예배는 평소에 가끔 참석하면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형제자매는 지금 사람이 필요한 본분이 하나 있는데 제가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공급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험까지 몇 달밖에 남지 않았고, 이것은 제 명예를 만회할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대학원 시험이라는 발판을 통과해야만 고학력 동창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고, 저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한편 친척과 친구들 앞에 고개 들고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약 지금 시험을 포기하면 더 이상 출세할 희망이 없지 않겠어?’ 저는 선뜻 내키지가 않아서 결국 형제자매에게 풀타임으로 본분 이행하는 것은 힘들고, 시험 준비를 하면서 힘 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 커다란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낮에는 본분을 이행하거나 예배를 드렸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온 뒤, 두터운 시험 자료를 앞에 두고 졸음이 밀려와도 억지로 눈을 떠 가며,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학습 분량을 마치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아침이 밝아 오면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벌떡 일으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느긋해질 기회를 줄 엄두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장 보러 가거나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할 때도, 일을 하는 동시에 음원 자료를 틀어 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 간의 힘든 고된 시험 준비 끝에 저는 드디어 대학원에 합격했습니다. 성적을 보는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습니다. 드디어 체면을 만회하고 가족과 친구들 앞에 당당히 고개 들 수 있게 되었고, 남들에게 무시당할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제 합격 소식을 듣고, 동창들도 잇따라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빠는 더더욱 입이 귀에 걸린 채 이웃과 친척들에게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셨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이웃들도 저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대학원에 합격하다니, 대단해! 요 아가씨가 어릴 때부터 공부를 곧잘 했지. 정말 너희 아빠의 자랑이야!”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드디어 어깨를 쫙 펴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느새 신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생은 매일 소화해야 할 교과 과정이 많고, 남는 시간에도 마무리해야 할 과제가 무척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저도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패괴 성품이 흘러나오는 것을 의식했지만 스스로를 반성할 시간이 없어서 속으로 무척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구할 시간도 없는데 생명이 어떻게 자라겠어?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를 안 할 수도 없고, 게다가 동기들은 능력과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어. 시간을 잘 활용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동기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영영 빛을 못 보지 않겠어?’ 이것 때문에 저는 무척 고민스러웠습니다. ‘왜 꿈에도 바라던 대학원에 합격했는데도 기쁘지가 않을까?’

어느 날 저녁, 학교로부터 며칠 후 학교로 돌아오라는 통지가 있었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학생들이 들어온 뒤에는 학교를 봉쇄할 예정이고 마음대로 학교 밖을 나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습니다. 만약 학업을 계속하는 선택을 하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할 수가 없는데, 제가 만약 이 중대한 고비에 본분을 팽개치고 심지어 예배도 참여하지 못한다면 생명에 손해가 따를 것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줄곧 학교라는 환경에 있으면서 더는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저는 분명 세상의 앞날만을 열심히 추구하느라 뒤를 돌아보기가 힘들 것입니다. 나중에는 진리를 얻지 못해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전혀 변화하지 않고, 이방인과 같이 어울려 사악한 조류를 추구하다 결국에는 생생한 사탄의 모습이 된다면 침륜과 멸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닐까요? ‘지금 이미 재난이 내렸고, 또 복음이 확장되는 중요한 시기인데 내가 만약 세상을 추구하느라 본분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선행을 예비하지 못한다면, 분명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고, 나중에는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재난속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지만 학업도 포기할 수 없어. 어렵게 합격했는데 어떻게 간단하게 그만둘 수 있겠어? 그러면 힘들게 얻은 영광, 명예와 이익을 또 잃어야 하잖아? 또다시 남들보다 뒤처진 채 답답함 속에 살면서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괴로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놓인 선택만 생각하면 고통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는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수십 년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이 세상에 몇 번이나 왔는지, 네가 몇 번이나 환생했는지 모른다. 이 일은 누가 주관하느냐? 바로 하나님이 주관하며, 너는 이 일들을 알 도리가 없다. 네가 세상에 한 번 올 때마다, 하나님이 친히 안배를 한다. 네가 이번 생에 몇 년이나 살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언제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이룰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으로 먹고살지, 하나님은 네가 이번 생에 순조롭게 너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네 삶의 출로를 안배한다. 네가 다음번에 환생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하나님은 네가 가져야 할 것과 너에게 주어야 할 것에 맞춰 너의 삶을 안배하고 실현한다…. 이렇게 몇 번을 안배하다가, 마지막에 너는 말세의 이 시대에 태어나는데, 현재 너의 가정에서 태어난다. 하나님은 너에게 하나님을 믿는 환경을 안배하여 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며, 네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도가 있었기에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네가 몇 번이나 인간 세상을 왔었는지, 너의 모습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몇 개의 가정을 거쳐 갔는지, 얼마나 많은 시대와 왕조를 겪었는지, 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은 줄곧 너를 받치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줄곧 너를 보살펴 주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냐! “내가 60세인데, 하나님은 60년 동안 나를 보살피고 지켜 주시며 60년 동안 인도해 주셨습니다. 만약 내가 늙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면, 하나님이 그래도 여전히 보살펴 주실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바보 같은 말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사람을 보살피고 지키는 것은 한 번의 생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단지 한 번의 생애와 한평생에 국한된 일이라면, 하나님이 전능하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울인 공과 치른 대가는 단지 사람이 이번 생애에 무엇을 하는지를 안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인지 알 수조차 없는 생애를 안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환생한 모든 영혼을 끝까지 책임진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 일하고, 그의 생명을 대가로 일하며 모든 사람을 인도하고, 모든 사람의 일생을 안배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들이는 이런 정성과 하나님이 치르는 이런 대가,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이 모든 진리와 생명에도 불구하고, 만약 마지막 이 시간에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창조주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여러 번 환생했고 여러 시대를 살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는 것 아니냐? 하나님이 치른 모든 대가에 죄송한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그러면 사람은 너무 양심이 없으니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 하나님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일생 동안, 전생은 말할 필요도 없이 현생만 논하더라도, 만약 자신의 사명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물질적 누림과 화목한 가정과 같은 몸 이외의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위해 치른 대가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육적 즐거움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너무 비양심적이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해도 모두 가치가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치른 대가에 비하면, 사람이 바치고 헌신하는 것이 뭐 얼마나 되겠느냐? 그 정도의 고통이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알기나 하느냐? 사람이 받는 그 정도의 고통은 하나님이 받은 고통에 비하면 거론할 가치도 없다. 더군다나 지금 네가 본분을 이행해 얻게 되는 것은 진리와 생명이고, 마지막에 살아남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니, 이 얼마나 대단한 복이냐? 하나님을 따르는 기간에 네가 고통을 받든 대가를 치르든 사실 이는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슬프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협력하면 네가 약간의 고통도 받아야 하고,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기도 해야 한다. 명리, 지위, 금전, 세속의 즐거움, 그리고 결혼, 직장, 세상에서의 진로 등등,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네가 이런 것들을 포기하면 하나님이 아느냐? 하나님이 볼 수 있느냐?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기뻐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기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치른 대가가 효과를 보았다. 사람이 나와 협력하기를 원하고, 사람이 이러한 의지를 가졌으니 나는 사람을 얻었다.” 하나님이 기쁘고 즐거워하든 혹은 만족해하고 위안을 얻든, 하나님은 이런 태도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일을 하고 그의 사역으로 이룬 성과도 보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사랑, 긍휼은 태도일 뿐만 아니라 사실이기도 하다. 무슨 사실이냐? 바로 하나님이 네 내면에 하나님 말씀을 더하여 네가 내면에서 깨우침 받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보게 하고, 네 마음을 밝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얻게 된다. 하나님은 너에게 실제적으로 매우 많은 사역을 하여 네가 진리를 얻게 한다. 네가 진리를 얻고 가장 귀중한 것, 즉 영원한 생명을 얻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할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기뻐하고 만족해한다. 또한 하나님의 태도가 생기고, 하나님은 태도가 생기는 동시에 일을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정하고 축복한다. 하나님이 “나는 너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 이는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축복이다.”라고 하면, 너는 진리와 생명을 얻게 된다. 네가 창조주를 알게 되고 창조주의 상을 받는데 네 마음이 여전히 공허하겠느냐? 공허함이 사라진다. 너는 충실함과 즐거움만 느낀다. 이는 가치 있는 삶 아니냐? 이것이 바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지금까지 걸어오는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저를 인도하고, 보살피고,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말세에 태어나서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도록 해 주셨어. 내가 앞날과 내 일을 추구하게 하시지 않고, 당신 말씀의 공급을 받아들여 진리를 깨닫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를 원하신 거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예비하신 가정과 직장은 모두 일시적인 거야. 내가 만약 가족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눈앞의 물질적 향유와 명예,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공급을 저버리고 구원받을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내가 지금 본분을 이행하기로 선택한다면 비록 개인적인 이익은 조금 포기한 셈이지만 가장 귀한 진리를 얻고, 결국 하나님께 구원받아 살아남는 행운을 누릴 수 있어. 그렇다면 그것은 가장 커다란 혜택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무척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마주보며 저를 격려하고 인도하시는 느낌이 들었고, 저도 동력을 얻었습니다. 저는 또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체험 간증 영상을 보았습니다. 자매는 하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의연하게 칭화대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또한 자매가 선생님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선생님은 무척 감동을 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생님은 계속해서 주님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드디어 오랫동안 바라던 하나님의 복음을 만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보고 저는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동기나 친구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사탄의 권세 아래서 무척 괴롭게 살고 있어. 나는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먼저 받아들였으니 마땅히 책임을 짊어지고,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갖춰서 하나님의 복음을 널리 알려야 해.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정결케 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 안에서 살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 끝에 저는 학업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되자 여전히 좀 괴로웠습니다. ‘내가 만약 학교를 그만두면 앞으로 다시는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없을 거야.’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들의 칭찬도 내려놓기 힘든 영광이 되어 버렸습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지식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탄은 온갖 방식을 동원한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단순한 특정 지식을 활용하기도 하고,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꿈을 이루게 만들기도 한다. 사탄은 대체 너를 어떤 길로 끌고 가려고 이러는 걸까? 사람은 지식 학습이 비난할 만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원대한 이상과 포부를 가진다는 것은 패기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삶의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 크게 성공하는 게 더 멋진 삶 아닌가? 가문을 빛내고 이름을 후세에 떨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이는 좋은 일이고, 정당한 일이고,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사탄이 사람을 그러한 길로 유도하는 것으로 그칠까? 당연히 아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식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고 온건한 방식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식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인생의 꿈이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구하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의 유혹이 너무나 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사람이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아도 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점차 깨달았습니다. ‘출세해서 가문을 빛내자’, ‘모든 게 다 쓸모 없고, 오직 공부만이 최고다’와 같은, 제가 지금까지 삶을 의지해 온 이런 사상 관점, 생존 법칙은 모두 사탄에서 온 것입니다. 저는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학력만 손에 넣으면 남들보다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것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추구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힘들게 공부해 가며 아무리 큰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동기들이 더 높은 학력을 얻고 더 나은 직업을 찾았을 때는 제가 낮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할까 겁났습니다. 저는 체면을 만회하고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기 위해,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포기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대학원 시험에 쏟아부었습니다. 교회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하면 시험 준비할 시간을 빼앗길까 걱정했습니다.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밤낮 없이 필사적으로 공부하며 스스로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불안과 고통 속에 사느라 정말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전에 일부 네티즌들이 자신의 체험을 공유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대학원 시험이나 취직에서 실패한 뒤 우울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또 한 친구에게서 자기가 전에 정신 병원 환자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 학교 졸업생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학원 시험에 떨어지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매일같이 ‘난 대학원 갈 거야, 난 대학원 갈 거야….’라며 소리친다고 했습니다. 또 대학이나 대학원에 떨어진 많은 사람들이 장래도 없고, 명예와 이익도 얻지 못하고, 삶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자살을 택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생생한 예들이 모두 사탄의 괴롭힘으로 초래된 결과가 아닌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오로지 장래와 명예, 이익만 추구하느라 명예와 이익의 심연에 빠졌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사탄의 음험하고 사악한 마음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으로 저를 유혹함으로써 제 심신을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제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진리를 추구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망치려 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고 가정 형편이 궁핍하며 학력도 좋지 않은 한 사람이 착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보기에 그 사람의 신분이 높겠느냐, 아니면 낮겠느냐? 귀하겠느냐, 아니면 천하겠느냐? 귀하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한 사람의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은 무엇에 달려 있겠느냐? 바로 하나님이 어떻게 보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너는 값지고 귀하므로 귀중한 그릇이겠지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진심으로 헌신하지 않는 모습을 하나님이 본다면 너는 쓸모없고 귀하지 않을 테니 비천한 그릇일 것이다. 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네 신분은 높아질 수 없다. 설령 너를 옹호하고 추앙하며 숭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너는 천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사람을 이렇게 보겠느냐? 사회적 지위가 높고 많은 사람에게 추앙받으며 심지어 위엄과 명망을 자랑하는 이토록 ‘존귀’한 사람이 어째서 하나님의 눈에는 비천해 보이겠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보는 관점과 사람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어째서 정반대인 것이냐?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사람과 대립하겠느냐?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자 공의이지만 사람은 패괴된 인간이라 진리나 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할 땐 하나님의 기준이 있다.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추상적일 수 있으니 다르게 말해 보자.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하나님과 진리, 긍정적인 사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이렇게 말하면 추상적이지 않을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1)>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 사람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진리를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보십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눈여겨보시는 사람입니다. 반면 제 아무리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모두가 우러러보고 앙망한다 해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고, 사악하고 패괴한 것만 추구한다면, 하나님 눈에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을 깨달은 저는 속으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학력의 높고 낮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저의 관점이 얼마나 그릇되고 진리에 어긋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속으로 동력을 얻고, 더 이상은 무조건 높은 학력, 좋은 성적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휴학을 신청하러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무턱대고 저를 나무랐고, 심지어 2년만 다니면 높은 학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데 포기하다니 너무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면서, 대학원을 포기하는 일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비웃음을 마주하니 마음이 연약해졌습니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학 때 다들 분명 열정 가득 투지를 불태우며 대학원생으로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텐데, 나만 휴학하고 모두와는 상반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만일 다들 나를 별종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내 입장을 고수하며 남들의 의구심을 마주할 수 있을까?’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런 비웃음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무척 연약해졌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을 주시고, 제가 담대함과 용기로 이 모든 것을 마주하고 제가 서야 할 자리에 굳게 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제 내적 상태에 맞춰 이와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보는데, 우연히 하나님 말씀 찬양 <젊은이가 추구해야 할 것>을 듣고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젊은이는 이상(理想)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고, 사리를 분별하고, 정의와 진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1. 젊은이는 간사함과 멸시로 가득한 눈빛을 지녀서는 안 된다. 파괴적이고 가증스러운 일을 행하는 사람이어서도 안 된다. 젊은이는 이상(理想), 기개, 힘차게 전진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젊은이는 앞날에 대해 낙담하거나, 삶에 대한 희망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서도 안 된다. 젊은이는 오늘날 자신이 선택한 진리의 도를 위해 꿋꿋하게 걸어갈 의지를 지녀야 하고, 나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야 한다.

2. 젊은이는 진리가 없어서는 안 되고, 거짓과 불의를 감싸서도 안 되며, 마땅히 가져야 할 주관을 가져야 한다.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지 말고, 정의와 진리를 위해 과감히 헌신하며 노력하는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젊은이는 흑암 세력의 압제에 무릎 꿇지 말고, 자신이 살아가는 의의를 바꿔 놓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젊은이는 역경에 순응해서는 안 되며, 허심탄회한 마음과 형제자매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3. 젊은이는 사리를 분별하고, 정의와 진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는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를 얻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지, 이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나이 든 자와 젊은 자들에게 전하는 말>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저는 하나님이 저를 마주한 채 격려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흐름을 따라 휩쓸리지 마라.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 밝고 바른 길임을 확신했다면 굳건히 나아가야 한다.” 저는 또한 깨달았습니다. ‘오늘 내가 다행히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은총이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은 긍정적인 사물이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부정적인 사물이야. 남들에게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 두려워 흐름을 따라 휩쓸리며 자신을 보전한다면 그것은 세상과 어울리는 것 아닐까?’ 하나님 말씀의 인도 아래, 저는 제 자리에 굳게 설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얻었고, 휴학을 신청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 말씀이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탄의 음험하고 사악한 마음을 인식하도록 저를 이끌고 인도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명예와 이익을 좇는 심연에서 헤어나와 말씀의 인도가 주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또한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고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흔치 않은 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해. 열심히 진리를 갖추고 복음을 전해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리라!’ 그 후 저는 새신자 양육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학업에 얽매이지 않고 장래에 구속받지 않으니 마음을 본분 이행에 쏟을 수 있었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갖추는 시간도 더 많아지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더 많은 것을 깨닫고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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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미셸 저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은행 관리자처럼 높은 지위에 오르길 꿈꿨었죠. 그럼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을 테니까요. 대학 졸업 후 전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어요. 근데 원하는 직장을 얻는 건 쉬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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