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자와 협력하게 된 이야기

2024.9.13

저는 2020년 4월에 교회 집사로 뽑혔어요. 처음엔 제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많이 긴장했어요. 근데 형제자매들이 붙들어 주고 도와준 덕에 점차 원칙을 파악하게 되면서 사역을 좀 해 나가게 됐어요. 나중에는 교회 리더로 뽑히면서 더 많은 사역을 맡게 됐어요. 게다가 가끔 윗선 리더한테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관리 감독해야 할 게 많지만 저한테 맡기면 덜 걱정하게 된다는 평가를 들을 때면 제가 좀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제가 양육했던 크리스토퍼(Christopher) 형제도 교회 리더가 됐어요. 그 형제는 자질은 평범했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성과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그 형제가 리더로 뽑히니 저도 좋았죠. 제가 양육하고 육성한 사람이 리더가 됐으니 그건 제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방증이니까요.

2022년 6월 초에 일어난 일이에요. 어느 마을의 복음 사역을 체크해야 했는데, 크리스토퍼 형제는 신변 안전 때문에 그 마을에 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랑 온라인으로 연락하면서 협력하기로 했죠. 형제도 저한테 마을 상황에 대해 묻기도 했어요.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소통해서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저는 형제가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고 이제 막 리더로 뽑혔으니까 사역을 제대로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리더를 2년 이상 더 많이 했고 원칙도 좀 파악하고 있는 반면에 크리스토퍼 형제는 저한테서 양육을 받았던 사람이기도 하니 사실 그 형제랑 협력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그 형제가 제가 맡은 사역에 참여하는 것도 싫었어요. 어느 날 크리스토퍼 형제가 제게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저보고 이쪽 일을 어떻게 진행할 예정이냐고 물으면서 시간이 될 때 같이 의논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메시지를 보는데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이제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내가 하는 일의 진도를 체크하려고 드네. 그게 그렇게 빨리 될 일인가? 내가 맡은 사역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았죠. 그래서 이렇게 답장했어요. “이제 막 도착했고 사역은 아직 안배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그럼 최대한 빨리 안배해 주세요.”라고 답장이 온 거예요. 그 답장을 보면서 ‘자질도 나보다 부족하고, 사역 경력도 나보다 부족한 사람이 협력한다며 내가 맡은 사역에 관여하면 과연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 후로도 형제가 제가 체크하고 있는 사역에 대해 알려고 할 때면 저는 별로 대답을 해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사역에 대해서는 형제랑 거의 의논이란 걸 안 했어요. 결국은 다 제가 해야 하니 의논해 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마을에 관한 사역은 제가 알아서 안배를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형제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죠. “옆 마을 교회 몇몇 새 신자들이 잡혀갈까 봐 겁이나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어요. 전에는 정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인데, 최근에는 예배에도 잘 참석하지 않아요. 자매님이 좀 붙들어 주세요.” 그 문자를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걸 누가 몰라? 붙들어 줘야 하는 건 나도 잘 알지. 근데 지금 난 바쁜 사람이고 게다가 코 닿으면 엎어질 거리도 아니니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형제가 백날 말해도 결국 일은 내가 가서 하잖아. 당신은 별로 하는 것도 없잖아. 내가 말해 봤자 입만 아프지 뭐. 그 일들에 관해서는 내게 다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어.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을까,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 없어.’ 그래서 이렇게 답장했어요. “아직 시간이 안 돼요. 새 신자들이 낮에는 다 일하고 있어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네요.” 그랬더니 이렇게 답장이 왔죠. “아, 네. 알겠습니다.” 순간 형제가 제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 들긴 했어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분명 사역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봤을 텐데, 제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더 물어보기도 뭐했던 것 같았어요. 그 후에도 저는 형제랑 사역에 관해서는 의논이라는 걸 하지 않았어요. 형제가 사역에 대해 의논하자며 언제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면 다른 할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보자고 미뤘어요. 가끔은 시간이 돼도 형제를 찾지 않고 다른 일을 처리했어요. 서서히, 제가 맡은 3개 팀의 형제자매들도 본분을 이행할 때 제각각으로 일할 뿐 의논도 잘 하지 않고 조화롭지 못했어요. 예배 때에도 다른 교회에 비해 활기가 없었고 복음 사역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당시 저는 저부터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저를 일깨워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합리화할 핑계 거리를 찾기도 했죠. 제가 형제랑 협력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있었던 거고, 그 형제랑 같이 의논할 시간도 부족했던 거라고요. 그렇게 전 여전히 독불장군처럼 일했죠. 한번은 크리스토퍼 형제가 저랑 그 세 팀의 각 책임자들과 모여서 본분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정리해서 교제하자고 했어요. 그때 형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결부해 이렇게 말했죠. “하나님 말씀에 보면, 본분을 이행할 때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잠시 멈추고 문제점을 찾아 정리하면서 어떤 착오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지금 우리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조화로운 협력이 없고 마음을 같이하는 것도 없이 제각각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대로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지도 못해서 사역에 별다른 진전이 없어요. 앞으로 소통을 많이 하고 의논도 많이 하고 잘 협력하면서 사역을 잘 해 나갑시다.” 그러면서 다른 교회의 좋은 실행 방식을 공유해 줬어요. 하지만 전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여전히 제 방식대로 했죠. 결국 3개월간 제가 맡은 사역은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 후, 제가 머물던 마을의 간부 5명이 찾아와 이것저것 캐묻고 제 휴대폰까지 검사하려 했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이곳에서 복음을 전한다면 붙잡아서 관할 구청에 넘기겠다고 경고까지 했어요. 그제서야 저는 조금 느낌이 들었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러면서 최근 몇 개월간 본분 이행에서 성과가 미미하고 형제랑 사역에 관해 의논도 잘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났어요. 그러니 이는 하나님께서 공과를 배우라고 저에게 일깨워 주시는 상황인 거죠. 그런데 제가 반성하지 않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 본분을 더는 이행할 수 없게 될 것 같더라고요.

8월 말 즈음이었어요. 몇몇 사역자들이 모여서 제가 그 마을을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관해 의논했죠. 그때 팀장이 저에게 물었어요. “자매님이 그 마을에 3개월 동안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는데, 혹시 뭔가를 깨달은 게 있나요?” 그때 전 별로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 말해 주더라고요.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자기 문제가 뭔지 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요. 형제자매들이 저에 대해서 협력할 줄 모르고 항상 독단적이고 사역에 관해 의논하려고 해도 연락도 안 된다고 제보했다고 했어요. 처음에 저를 이 마을에 파송한 건 형제자매들을 이끌고 복음 전파에 앞장서라고 한 건데, 자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고 했죠. 그때 다른 팀장도 한마디 하더라고요. 제 역할을 못했으면 그냥 돌아오라고요. 정말 얼굴이 화끈거렸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와 꽂혔어요. 그 순간 전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고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어요. 제가 아예 협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사역에 성과가 미미한 게 온전히 제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지역은 워낙 정부에서 심하게 핍박을 하는 데다가 저는 다른 사역까지 맡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 했다는 말을 하니 억울했죠. 팀장은 추가로 어떻게 생각하냐고 저에게 물었는데,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대답했죠. 돌아가겠다고요. 대답하고는 바로 통화를 종료했고 저는 바로 침대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어요. “자매는 그곳에서 제 역할도 못했는데, 거기에 더 있어서 뭐 하겠어요?”, “제 역할을 못했으면 돌아와요.” 이런 말들이 계속 제 귓속을 맴돌았고 생각할수록 저는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어요. 며칠 동안은 계속 하나님께 기도했고, 리더도 교제를 나누면서 도와줬어요. 그제야 그동안의 제 상태에 대해 돌아보게 됐어요. 보니까 무슨 일이든 다 저 혼자 결정했고 형제를 무시하고 사역에 대해 의논하기도 싫어했었죠. 형제가 사역에 관해 의논하자고 해도 저는 바쁘다는 핑계를 댔는데, 사실은 형제가 제 사역에 관여하는 게 싫었던 거예요. 저는 분명 패괴 성품대로 하면서 사역에 지장을 주고 있었고 책망과 훈계가 임했지만 여전히 억지를 부렸어요. 정말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요. 형제자매들이 저에 대해서 독단적이고 의논할 줄 모른다고 제보한 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봤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겉으로 볼 때 주변에 조력자와 파트너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일이 닥칠 경우, 그는 다른 이의 말이 아무리 옳아도 듣지도 않는다. 심지어 아예 참고하지도 않고 그 일에 관해 교제하거나 토론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다른 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저 보여 주기식으로 형식적으로만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을 뿐, 마지막에 결정을 내릴 때는 여전히 그가 결정권을 갖는다. 다른 이가 말해 봤자 아무 의미도, 소용도 없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어떤 일을 책임지고 하는데 그중 한 사람에게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 무슨 일이든 자기 혼자서 시작하고, 물어보고, 처리하고, 해결할 뿐, 대부분의 경우 파트너에게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자신의 파트너는 어떤 존재냐? 조수가 아니라 그저 장식품일 뿐이다. 적그리스도의 눈에는 그의 파트너가 전혀 없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는 생각해 보고 실행 가능하다 싶으면 모두에게 그렇게 하라고 통지한다. 다른 사람에겐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볼 권리가 없다. 그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의 본질은 무엇이냐? 사실 한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어떤 문제가 생기든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혼자 사역을 책임진다. 그의 파트너는 장식품이 되어 버린다. 그는 일할 때 늘 독단적으로 굴며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는다. 그는 사역할 때 누구와도 소통하거나 교류하지 않는다. 항상 혼자 결정하고, 문제가 생겨도 혼자 처리한다.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은 그가 일을 다 끝내고 처리한 후에야 그 일에 대해 알게 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일이 생기면 우리와도 교제해야죠. 그 사람은 언제 처리한 거예요? 어떻게 처리한 거죠? 우린 왜 몰랐던 거죠?” 그는 설명해 주지도, 상대하지도 않는다. 그의 파트너는 그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그저 액세서리, 장식품에 불과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는 궁리해 본 후 결정을 내리고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의 곁에 사람이 몇이 있든 마치 아무도 없는 양 다른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이런 식이면 다른 사람과 협력할 때 그에게 실제적인 면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다. 그저 형식적이고,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이 생겼는데 왜 모두와 교제하지 않는 거죠?”라고 말하면 그는 “사람들이 뭘 알아요? 난 팀장이에요. 내가 결정하면 그만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또 “그럼 왜 당신 파트너와 교제하지 않은 거예요?”라고 말하면 “얘기해 봤어요. 별 의견이 없더군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상대가 ‘별 의견이 없다’, ‘주관이 없다’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런 독단적인 행위를 덮어 버리곤 전혀 반성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건 더 불가능하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 문제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은 적그리스도의 행태를 폭로하셨는데, 적그리스도는 항상 독단적이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않으며 늘 혼자 결정하고 혼자 결단을 내린다고 하셨어요. 협력하는 형제자매가 있어도 전혀 의논하지 않고 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고 하셨죠. 게다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항상 자기 생각만 고견이라고 여기며 타인을 얕잡아 보는데, 적그리스도는 협력하는 형제자매를 그저 장식품처럼, 공기처럼 여긴다고 하셨어요. 반성해 보니까 저도 그랬더라고요. 크리스토퍼 형제랑 협력하게 됐을 때, 저는 형제가 자질도 일반적이고, 사역 능력 면에서나 경력 면에서나 저보다 부족하니까 제 사역에 관여하는 걸 싫어했어요. 게다가 저는 형제보다 리더 본분을 오래 했고 아는 것도 더 많으니까 그 사역들은 충분히 혼자 안배할 수 있고 어차피 형제는 좋은 제안을 내놓지도 못할 것이니 의논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형제가 사역을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어보면 저는 거부감을 느꼈던 거예요. 제가 오자마자 제 사역 진도를 물어보니 저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잘 상대해 주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일부 형제자매들이 잡혀갈까 봐 두려워 본분을 이행하지 못할 때, 형제가 저한테 그 사람들을 붙들어 줬냐고 물어본 건 본분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근데 전 교만하게도 본인이 직접 문제를 해결도 못 하면서 제 일을 리드하려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모임에서 문제점을 정리할 때 형제자매들이 실행의 길을 알려 줘도 저는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제가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하고 타인의 제안을 수렴하지도 않으니까 결국 본분 이행에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거예요.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제 뜻대로 행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다른 사람과 전혀 협력하지 않았는데, 결국 사역만 지체했죠. 그건 악행인 거죠. 이런 문제를 반성하게 되니까 팀장이 지적하고 책망했던 말들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저의 모든 소행은 이미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렇게 책망과 훈계를 하지 않았다면 저는 반성할 기미도 없었을 거고, 심각성을 인지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책망과 훈계는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더라고요.

그 후에,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타인과 협력하지 못하고 자꾸 혼자 결정하려고 하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찾고 구했어요. 그러다 제 내적 상태에 딱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어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몇 년 동안 본분을 이행했지만 생명 진입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지 못하고, 얄팍한 도리만 깨달았을 뿐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에 대해 진실한 인식을 갖지 못하고 새로운 진전도 전혀 없다면, 지금 너희의 분량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 어떤 패괴 표출이 있겠느냐? (교만하고 잘난 척합니다.)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것이 더 심해지겠느냐, 그대로겠느냐? (더 심해질 것입니다.) 어째서 더 심해지겠느냐?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그 자격의 크기를 무엇으로 판단하는 것이냐? 몇 년 동안 그 본분을 이행했는지, 얼마나 많은 경험을 총결했는지에 따라 판단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다 보면 너희는 서서히 자격과 서열을 따지게 되지 않겠느냐? 가령 어떤 형제가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고 그 본분을 이행한 기간이 가장 길다면 그의 발언권이 가장 강할 것이고, 어떤 자매가 자질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본분 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본분을 이행한 경험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믿은 기간도 짧다면 발언권이 가장 약할 것이다.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은 ‘내가 이 정도 자격을 갖췄으니 내가 이행한 본분은 합격이야. 나는 이미 정점까지 추구했으니 더 이상 추구해야 할 것도 진입해야 할 것도 없어. 나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했고 사역도 비교적 잘해 냈으니 하나님도 만족하실 거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답보 상태가 시작된다. 이것이 진리 실제에 진입한 모습이겠느냐? 이것은 정체된 것이다. 아직 진리 생명을 얻지 못했으면서 밑천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격과 서열을 따져 하나님이 상을 주길 기다린다면 이는 교만한 성품을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 사람이 밑천이 없을 때는 조심하고 신중을 기할 줄 알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일깨우지만, 밑천이 생기면 교만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기존 상태에 안주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이 바울처럼 하나님께 상과 면류관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이 어떤 관계가 되겠느냐?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순전히 거래 관계가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게 되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이것은 위험한 신호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경외해야 구원받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처럼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한 분야의 본분을 이행한 기간이 길면, 스스로 경력도 쌓이고 밑천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자격과 서열을 따지고 타인을 무시하게 되는 거였어요. 그리고 교만한 성품은 점점 더 커져서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타인과 협력하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게 될 수밖에 없죠. 저는 하나님을 믿은 뒤로는 계속 본분을 이행했고, 리더직도 2년 넘게 했으니까 이만하면 신앙생활도 오래했고, 사역 능력도 있고, 경력도 좀 쌓였다고 생각하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양성하고, 다른 사람의 사역을 체크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좋아했죠. 하지만 크리스토퍼 형제가 저랑 협력하게 되고 제가 맡은 사역에 관여하려고 할 때는 싫었어요. 저는 그 형제는 제가 양육하고 육성한 사람이니까 저보다 자질적으로 부족하고 이제 막 훈련받기 시작해서 사역 경험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제 사역에 관여하는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형제가 새 신자를 붙들어 줬는지, 사역은 어떻게 안배하고 있는지 물어볼 때, 저는 짜증이 나서 형제를 무시했어요. 굳이 형제랑 의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의논해도 어차피 좋은 제안을 주지도 못할 것이고 형제가 없어도 저는 사역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형제랑 협력을 하지 않고 같이 의논도 하지 않고 대부분의 일들을 제가 결정하고 안배했어요. 그냥 형제를 허수아비로 만든 거예요. 하나님은 본분을 이행할 때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셨어요. 사실 그것도 본분 이행 과정에 매우 중요한 원칙이잖아요. 근데 전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 집의 원칙을 무시했던 거죠. 항상 제가 능력 있고, 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역이니까 굳이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다 잘한다고 생각해 제 사역은 관리 감독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굴었어요. 전 정말 너무 교만하고 방자한 사람이었어요. 저는 교만한 성품 때문에 안하무인이었고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도 없었어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아예 없었던 거죠. 정말 하나님과 맞서는 길로 가고 있었어요. 처음에 그 마을에 들어 갔을 때만 해도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과 다르게 그 지경까지 가게 됐어요. 어떻게 삐뚤어진 길을 가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왜 그렇게 교만하게 굴고 무감각했나 싶더라고요. 계속 그대로 나간다면 하나님의 사역에 훼방을 놓은 적그리스도가 될 거고 결국은 하나님에 의해 드러나 도태되겠더라고요. 그럼 저의 신앙생활도 종점에 다다르게 되는 거죠 뭐. 이런 걸 깨닫게 되니까 덜컥 겁이 났어요. 그래서 조용히 기도했죠. ‘하나님, 제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는 짓을 했습니다. 이제 저의 패괴함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더는 패괴 성품에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사람의 자질과 사역 경험을 중요하게 보는데, 이 관점은 어디가 잘못됐는지, 본분 이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봤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네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집의 사역이고, 하나님의 사역이다. 너는 항상 이 점을 인지하고 인식해야 한다. “이건 저 자신의 일이 아닙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고 있고, 제 책임을 다하고 있고, 교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부탁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제 본분이지 사적인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장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본분을 사적인 일로 여겨서 일할 때도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속셈, 관점, 의도에 따라 행동한다면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네가 본분을 사적인 일과 확실히 구분해서 그것이 본분임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 요구를 구하고, 원칙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 만약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알지 못하고, 생각은 있지만 아직 명확하지 않을 때는 진리를 깨달은 형제자매를 찾아 교제해야 한다. 이것이 진리를 구하는 것이고, 본분을 대할 때는 이런 태도를 가장 먼저 갖춰야 한다. 네 생각에 이렇게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해서 그렇게 규정하고 또 결정짓지 말아라. 그러면 쉽게 문제가 생길 것이다. … 네가 매일 어떤 일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가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네가 그 일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를 보려 한다. 네가 그 일들을 하는 태도, 행동 방식은 무엇과 관계가 있느냐?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지 아닌지와 관계가 있고, 네 생명 진입과도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네 생명 진입을 보고, 네가 가는 길을 보려 한다. 네가 가는 길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고 네가 생명 진입이 있다면, 본분을 이행할 때 다른 이와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고, 본분 이행은 쉽게 합격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죠. 하나님 집에서 이행하는 본분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니까 자기 일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니라고요. 본분 이행은 하나님 집의 사역과 연관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하면 쉽게 사역에 훼방을 놓게 된다고 하셨죠.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실 때는 신앙생활한 기간이나 사역한 경력이나 사역한 양을 보시는 게 아니라 진리를 대하는 자세, 본분을 이행하는 출발점, 방향성, 가는 길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인지를 보신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진리를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맞는 말도 받아들이지 않고 뭐든 혼자 결정하면 결국 본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거죠. 저는 제가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리더직도 오래 했고, 사역한 경력도 쌓였으니까 그걸 밑천으로 삼았고, 그거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사실 그런 경험과 자질이 진리 원칙을 갖췄다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그건 단지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죠. 보니까 저는 제 경력과 자질을 진리 원칙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알고 있고, 진리 원칙대로 일한다고 착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점점 더 교만하게 굴고, 형제자매들을 무시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했던 거죠. 결국 3개월 동안 사역에서 이렇다 할 성과는 전혀 없었어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본분을 잘 이행했는지는 신앙생활을 한 기간이나 세운 공로에 비례하는 게 아니고 경력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원칙대로 일 처리하려고 진리를 찾고 구하고,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에는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최소한 다른 이가 말하고 다른 의견을 내놓게 해야 한다. 네게 정말 이성이 있다면 어떤 사역을 하든 먼저 진리 원칙을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주동적으로 다른 이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모든 의견을 진지하게 대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기본적으로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어려움이 많이 줄어들고, 어떤 문제가 닥쳐도 해결하거나 처리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조화로운 협력으로 이루게 되는 성과이다. 때로는 극히 사소한 일에서 의견 충돌이 생길 수도 있지만, 사역에 지장만 주지 않는다면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단, 핵심적인 일, 교회 사역과 관련된 큰일의 경우, 반드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 너는 리더라는 감투와 지위가 주는 허세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남들과 같은 위치에 서서 본분 이행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본분을 감투나 지위, 월계관처럼 여기면서 모두가 너의 지위를 위해 힘쓰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너를 혐오하고 역겨워할 것이다. 네가 마음속으로 너 자신이 그저 다른 이보다 하나님의 부탁과 책임이 좀 더 있을 뿐 다른 이와 평등하다고 여기며, 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법을 배운다면, 나아가 허리를 굽혀 다른 이의 의견을 묻고, 진지하고 세심하게, 마음을 다해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남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겠느냐?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너는 전에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은 진리의 빛 비춤과 생명의 실제이다. 또한 다른 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배울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네가 관념적으로 다른 사람이 어리석고 멍청하고 우둔하고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때, 또는 다른 사람이 마음을 열고 네게 이야기할 때, 너는 부지중에 모든 사람은 그렇게 평범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그 내면에는 서로 다른 생각과 취할 만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운다면 네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울 수도 있고, 너의 교만과 독선이 드러남으로써 잘난 체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탄복하는 내적 상태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네게는 보호가 되지 않겠느냐? 이 모든 것은 남과 협력하면서 배워야 할 공과이자 얻어야 할 이점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말해 보아라. 완벽한 사람이 있겠느냐?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능력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또한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이자, 사람이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올바로 대하고자 할 때 마땅히 갖춰야 하는 태도이며,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하는 이성이다. 이런 이성이 있다면, 너는 올바른 태도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대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 또한 올바른 태도로 대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네가 이 측면의 진리를 깨달으면, 이 측면의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형제자매와 함께 화목하게 지내며 서로 장점을 배워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네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일을 하든, 모두 점점 더 잘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과 협력할 때는 남들과 같은 위치에 서서 진지하게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 모르면 먼저 문의해야 하더라고요. 그렇게 실행할 때, 형제자매들의 장점을 볼 수 있게 되고, 저보다 뛰어난 부분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남을 무시하지 않게 되고, 늘 스스로에게 탄복하며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게 되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아 자신이 뛰어나다고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단점도 올바르게 대할 줄 알아야 하더라고요. 사실 돌아보면, 제가 2년간 리더의 본분을 이행했지만 전 복음 전파에 능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복음 사역 진도를 체크할 때는 늘 다른 사람의 도움과 지도가 필요했죠. 하지만 크리스토퍼 형제는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짦아도 계속 복음을 전해 왔고, 전한 사람도 많은 등 성과가 좋았어요. 복음 사역 면에서 만큼은 저보다 경험도 많으니까 당연히 제가 먼저 자문을 구해야 하는 거죠. 게다가 형제는 본분에 책임감이 있었고, 사역에도 매우 긍정적 부담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늘 먼저 저에게 연락해 사역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다른 곳에서 좋은 실행의 길을 찾으면 그걸 참고하기도 했어요. 그건 형제의 장점이자 제가 따라 배울 부분이었죠. 근데 전 너무 교만해서 형제의 장점을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시하기 바빴고 형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가 맡은 사역에 관여하지도 못하게 했어요. 저는 보잘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했는데, 다시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요. 정말 자기 주제를 너무 몰랐어요. 조금이라도 일찍 형제와 조화롭게 협력했더라면 사역이 그 정도까지 지장받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너무 후회가 돼요. 지난 과오는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는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어떤 일이 생기든 많이 소통하고 의논하면서 교회의 이익을 1순위에 두고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우면서 옛길을 가지 않기로 했어요.

나중에 전 그 마을을 떠났고 관리 구역도 협력 파트너도 다 바뀌게 됐어요. 바뀐 협력자는 미나(Mina) 자매였어요. 저는 자매랑 조화롭게 협력해서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죠. 자매랑 지내면서 보니까 자매가 저보다 나이는 많아도 신앙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한 기간은 저보다 짧더라고요. 그래서 사역을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잘 체크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가끔은 자매에 대한 형제자매들의 이런저런 불만 제보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저의 교만한 성품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어요. 이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역시 저고, 자매는 그저 견습생 정도라고만 생각하게 됐어요. 한번은 같이 사역 기획안을 작성하게 됐는데, 리더는 특별히 같이 의논을 잘하라고 당부했어요. 근데 전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의논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근데 평소에도 나혼자 잘 했는데 굳이 둘이나 필요할까? 더구나 내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혼자 하려고 했는데, 미나 자매한테서 바로 연락이 온 거예요. 자매가 저랑 같이 의논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지만 저는 그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전화를 안 받았죠. 근데 나중에 가책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전에 교만함 때문에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않아서 사역에 걸림돌이 됐던 것도 생각났고요.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분명 사역에 지장을 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기도했죠. ‘하나님, 자매에게서 적극적으로 사역을 의논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저는 교만함 때문에 자매와 협력하기 싫어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독단적인 행동으로 교회 사역에 훼방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교만한 성품대로 살지 않고 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나니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생각났어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교회의 이익을 위해, 형제자매들을 이끌기 위해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 서로 협력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어 더 좋은 사역의 성과를 이끌어 냄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협력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진입한 사람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이스라엘인의 섬김을 본받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 저는 미나 자매와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지 더는 교만한 성품에 따라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자매한테 연락해 어떻게 사역을 안배할지 의논했어요. 그때 자매는 자기 구상을 이야기했고 저는 좋은 구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우리의 기획안 소통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제가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빨라졌어요. 정말 기뻤어요. 비록 큰일은 아니지만 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니까 너무 기쁜 거예요. 그 후로도 사역하는 과정에서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면서 본분을 이행하는 법을 배웠고 사역의 성과도 월별로 계속 상승했어요. 정말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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