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본분을 하면 모두에게 해가 된다

2022.5.28

호주 허시

2020년 4월에 전 리더로 뽑혀 양육 사역을 맡았어요. 몇 달 전부터 예배 때 새 신자들이 시간을 잘 안 지키고 그랬는데, 일이나 공부 때문에 바쁘다면서 시간 될 때 온다더라고요. 또 정부나 교계에서 퍼뜨린 소문을 믿고 안 오는 사람도 있고요. 형제자매들이 연락하면 전화도 안 받고 연락 안 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제 생각엔 어쨌든 연락은 했고, 오기 싫다는데 우리 책임은 아니라고 여겼죠. ‘포기할 건 포기하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도 사람 수가 아니라 알맹이 같은 사람이야 하나님은 진심으로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니까 안 그런 사람한텐 아무리 애써도 소용 없어.’ 그래서 기도로 구하지도 않고 리더와 의논도 하지 않고 그 새 신자들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그 동안 연락도 해 봤었는데 역시나 나올 생각이 없더라고요. 제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죠. 많은 새 신자가 두 달째 방치되는 걸 보고 파트너가 그랬어요. “이렇게 많이 내버려 둬도 괜찮을까요? 리더하고 교제해서 원칙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근데 전에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처리했었잖아. 연락 안 한 것도 아니고, 다들 연락이 안 되거나 관심이 없다는데 구하고 말 게 있나?’ 이런 생각에 제안을 거절했는데, 왠지 맘이 좀 편하지 않더라고요. 이러는 게 맞는 건가 싶고, 근데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분명 옆에서 붙잡아 줬는데도 자기들이 싫댔으니 우리 때문이 아니잖아. 자기들이 진짜 믿음이 없어서야.’ 그러면서 좀 걸리긴 했지만 기도도 안 했고, 매달 새 신자들을 나가게 뒀어요.

나중에 리더가 그게 원칙에 안 맞다고 하면서 절 심하게 책망했어요. 원칙도 모르면서 구하진 않고 자기 멋대로 함부로 한다고요. 새 신자가 하나님 앞에 오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서 다른 교회들은 새 신자에게 공을 들이고, 붙들어 주는데 저는 너무 쉽게 새 신자들을 포기하고 사랑으로 도울 생각도 안 한다며 너무 무책임하댔어요. 리더가 그랬죠. “새 신자들이 왜 안 나올까요? 그들의 관념이나 문제는 교제하고 해결해 줬어요? 다른 식으로 도와주고 붙들어 줄 생각은 해 봤어요? …” 리더가 계속 물어보는데, 할 말이 없었어요. 새 신자들을 포기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제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던 게 깨달아졌어요. 진정으로 새 신자를 도와주지도 않았고요. 그들이 갖고 있는 관념이 뭔지, 무슨 이유로 예배에 안 나오는지 잘 알지도 못했어요. 그냥 한참 예배에 안 나오면 마음이 없는 줄 알고 그대로 신경을 끊었어요. 새 신자들의 생명을 전혀 책임지지 않았더라고요. 원칙을 어기고 함부로 포기했고요. 인성이 정말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와 기도했어요. 하나님 뜻을 깨닫고 제 자신을 반성하도록 깨우치고 이끌어 달라고요.

그 뒤에 하나님 말씀을 봤어요. 『전도 대상자를 대할 때는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 전도 대상자 하나하나를 마치 신생아의 탄생을 맞이하듯 전해야 한다. 그들의 생명은 아주 연약하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포용이 필요하고 우리의 커다란 사랑이 필요하다. 더욱이 방식과 방법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선포한 모든 진리를 전하여 그들이 혜택을 얻도록 하고, 그런 다음 하나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최대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복음 전파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질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믿은 지도 얼마 안 되는데, 비록 진리를 깨닫지는 못해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다만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이 생겨도 진리를 구할 줄 모르기 때문에 늘 소극적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너무 힘들고 조금은 뒤처지는 것 같아 구원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때로는 자포자기하고 스스로 내려놓는다. 이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도태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께 인정도 못 받고, 하나님이 날 좋아해 주시지도 않잖아. 나도 예배를 할 만큼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돈도 벌어야 하고 말이야.’ 이런 것들이 모두 예배에 나가지 않는 이유가 된다. 사정을 제때 알아보지 않는다면, 너는 그저 그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본분 이행에 열의도 없고, 육의 편안함만 탐하고, 세상을 추구하고, 세속에 미련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그를 포기해 버릴 것이다. 사실, 그는 그런 어려움에 시달리다 못해 소극적 상태가 된 것이다. 만약 그를 위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면 그는 소극적인 상태에 이르지 않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소극적이고 약해질 때가 바로 붙잡아 줄 사람이 필요한 때이다. 네가 도와준다면 그는 일어설 수 있고, 내버려 둔다면 쉽게 물러나고 말 것이다. 그것은 교회 사역을 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책임감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예배에 자주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진심이 없다거나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육의 즐거움만 탐하면서 가정과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정에 이끌리고 돈을 좋아한다고 판단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단지 그런 일에서 사람의 분량이 저마다 다르고, 의지 역시 저마다 다를 뿐이다. 진리를 아주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은 고생해도 내려놓을 수 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구체적인 어려움을 만나면 무기력해지고 따라가지 못하는데, 도와주고 붙잡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포자기해 버릴 것이다. 이때는 곁에서 붙잡아 주고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가 불신파이거나 진리를 전혀 좋아하지 않거나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내버려 두어도 된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고 이해 능력이 있는 데다 자질도 괜찮다면 더욱 붙잡아 주고 도와주어야 한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부끄러웠어요. 성육신 하나님이 말세에 사역하시는 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죠. 하나님은 우리가 깊이 패괴돼서 패역이 가득한 걸 아시고 한 명 한 명 최선을 다해 구원하고 계세요. 한 가닥 희망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시죠. 사람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주시고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세요. 새 신자들은 갓난아기와 같고 진리를 모르고 참도에 대한 확신도 없어요. 생명도 약하고요. 하나님은 우리가 커다란 사랑으로 이들을 보듬고 포용하길 바라세요. 진심으로 믿고 인성만 좋으면 소극적이든 연약하든 관념이 있든 예배를 잘 안 드리든 함부로 내치면 안 돼요. 단번에 쳐내는 건 더 안 되죠. 예배에 안 나온다고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 사람을 포기하는 거죠. 저도 처음에 하나님 믿을 때 집안일로 바빠서 예배를 자주 못 했어요. 근데 다들 저를 이해해 줘서 제시간에 맞춰 예배 시간을 조정하고 진리도 하나하나 교제해 줬어요. 형제자매들 도움으로 진리 추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고,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을 느끼고, 꾸준히 예배하고 본분도 하게 됐어요. 만약 그때 형제자매들이 절 내치고 진리를 싫어하는 불신파라고 생각했다면 진작에 버려져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제가 하나님 뜻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새 신자들도 이해 못 하고 못마땅하게만 생각했어요. 다들 너무 바쁘고 관념도 많은 것 같아서 단정짓고 포기했죠. 굳이 애써서 도와주지도 않았고요. 인성이 너무 못됐어요. 새 신자들 생명에 책임감도 없었고요.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회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루빨리 잘못을 바로잡아 사랑으로 새 신자들을 돕게 해 주세요.”

그 뒤로 형제자매들과 같이 새 신자들을 도와줬어요. 어려움이 뭔지 파악하고 차분히 교제해 줬더니 예배 나오겠단 사람도 있었죠. 어떤 분은 회사 일로 바빠서 못 나온다고 하면서 자긴 속으로 믿으니까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는댔어요. 전엔 그분이 돈 버는 것만 중시하고 믿음이 약하다 생각했는데 그분의 상황을 알아보니까 사실 자기 시간이랑 안 맞아서 예배를 나오지 못했던 거더라고요. 그래서 예배 시간을 그분한테 맞추고, 교제해 드렸죠. 하나님이 말세에 진리로 우릴 구원하고 정결케 하시니까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교제하고 진리를 얻으려 하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성품이 변화돼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요. 입으로 시인하고 맘으로는 믿지만 예배는 잘 안 드리고 하나님 믿는 걸 여가 취미 생활처럼 대한다면 하나님 눈엔 이방인이랑 똑같아서 끝까지 믿는다고 해도 인정을 못 받는다고 했어요. 교제하니까 그분이 자기 관점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 예배에 나온다고 하는 거예요. 새 신자들이 계속 예배에 나오는 걸 보면서 속으로 가책이 들고 후회됐어요. 제가 제멋대로 포기하는 바람에 새 신자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끊어 버리고 악을 행한 거잖아요.

하루는 리더가 묻더라고요. “양육 사역을 맡은 이후로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포기한 새 신자가 얼마나 돼요? 새 신자를 포기하기 전에 진리 원칙은 구해 봤어요?” 제가 아무 말도 못 하니까 리더가 말씀을 보내줬어요. 『너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왜 그 일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속셈에 지배받는지, 그 일을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일은 어떤 성질에 속하는지, 긍정적인 것에 속하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것에 속하는지, 이러한 것들을 다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는 원칙을 갖고 일을 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만약 그 일이 본분 이행에 속한다면, 너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이 본분을 대충대충 하지 않고 잘 이행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야 하며, 그 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바로 진리와 실행의 길, 하나님의 뜻,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지 종교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할 때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 그것은 종교 의식이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 진리에 따라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일하지 않을 때는 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마치 매우 영적이어서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일할 때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행하며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그런 말은 그저 입에 발린 말에 불과하고 영적인 척하는 것이다. 너는 본분을 이행하거나 일할 때 항상 ‘이 본분을 어떻게 이행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을 통해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을 통해 일하는 원칙과 진리를 구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원칙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든 전부 자기 생각대로 하고, 그 일을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또 진리를 구하지도 않고 원칙이 전혀 없으며,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할지, 어떻게 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할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자기 뜻대로만 하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전혀 없다. 어떤 이들은 “저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일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도 소용없으니까요.”라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이 전혀 없다. 평소에 어떤 일을 하든 진리를 구하지 않고 그저 자기 뜻대로만 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렇다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원칙이 있겠느냐? 절대 없다. 그는 무슨 일이든 만만하게 생각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누군가 진리 원칙을 교제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할 때 전혀 원칙이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 하나님 자리는 없고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뜻도 훌륭하고, 악을 행하는 것도 아니며, 진리에 어긋난 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뜻에 따라 그렇게 행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사람은 그 일에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거나 기도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이런 진실한 내적 상태도 아니고 그렇게 되고자 하는 바람도 없다. 이것이 실행에 있어서 가장 큰 잘못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슨 결실이 있겠느냐?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서이다> 중에서) 폭로하신 말씀이 딱 제 상태와 모습이에요. 새 신자들을 포기할 때 기도도 안 하고, 리더와 상의도 안 하고 제멋대로 처리했어요. 전에도 몇 달씩 예배에 안 나오는 새 신자들은 못 데려오면 포기해서 이 사람들도 못 데려오면 포기해도 되겠거니 했어요. 그리고 딱 보면 누가 추구하지 않고 누가 불신파인지 안다고 생각해 맘대로 단정해 포기했고, 마음이 불편해도 구하지 않았어요. 파트너가 알려 줘도 그냥 무시하고 제 맘대로 처리했어요. 제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진리 원칙으로 생각하고 저는 틀릴 리가 없다고 믿었죠. 이게 안중에 사람도, 하나님도 없는 거잖아요. 제 생각이 너무 강했어요! 예배 나오는 것만 가지고 진심으로 믿는지 아닌지 단정 짓고, 교회로 다시 데려오지 못하면 그냥 포기해 버린 거죠. 사실 똑같이 예배를 안 와도 누가 진실하게 믿고, 누가 불신파인지를 구별해 대해야 해요. 포기한 새 신자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가족들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고 말씀도 안 읽고 예배도 안 왔어요. 또 어떤 사람은 사악한 조류와 명예만 좇고 믿음 생활과 예배에 관심이 없어서 아무리 말씀을 교제해 줘도 싫어하고 반감을 가졌어요.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싫어하고 본질이 불신파라서 계속 예배를 안 나오면 완전히 내려놨어요. 근데 인성이 좋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진리를 모르고 예배드리는 의미도 잘 몰라 하나님만 인정하면 예배는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예배에 오고 싶음 오고, 오기 싫으면 안 오고 그랬죠. 또 어떤 사람들은 일이 있거나 회사 일과 예배 시간이 겹치면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은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사랑으로 교제하고 도와줘야 해요. 그들의 관념을 진리로 해결해 주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맞춰 예배 시간을 조정해 줘야죠. 근데 전 그들의 실제 상황은 고려하지도 않고 원칙 없이 했어요. 진리도 모르면서 제 생각을 고집하고 제멋대로 한 사람 한 사람 영혼을 쉽게 포기해 버려서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방해하는 잘못을 저질렀어요.

새 신자들이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기까지 하나님은 많은 심혈을 쏟으셨고 형제자매들도 사랑과 인내로 계속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전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고, 사람들을 구원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했으니, 이성이 없을 정도로 너무 교만했어요. 새 신자들이 예배에 안 오는 건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 제가 그분들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책임감을 갖고 도와주지 않아서였어요. 하나님이 바라는 건 사람 수가 아니라 알맹이 같은 사람이라는 말씀을 방패 삼아 새 신자를 포기했어요. 사실 그 말씀은 하나님 나라엔 진심으로 믿으며 진리를 사랑하는 자를 원하고 불신파와 악인은 구원 대상이 아니란 뜻이죠. 근데 전 예배에 안 오는 사람을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으니 하나님 말씀을 왜곡한 거잖아요? 새 신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안 주고, 노력과 책임도 다하지 않고, 또 새 신자들이 진리에 정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불신파인지 파악도 안 하고 제 맘대로 포기한 거예요. 리더가 책망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 기회를 놓쳤을지 몰라요. 보니까 제 모든 행동이 너무 가증스럽더라고요! 진리 원칙도 모르면서 구하지도 않고 패괴 성품대로 일을 처리했으니 이게 다 과오죠! 이런데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거예요.

전 리더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새 신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잘 양육해 주면서 각종 관념과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알려서 빨리 참도에 뿌리내리게 해야 하잖아요. 근데 전 제멋대로 했어요. 저 혼자만 치우친 게 아니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 형제자매를 잘못 이끄니 다들 쉽게 새 신자들을 포기해서 구원받을 기회를 끊어 버렸어요. 악행을 저지른 거죠. 멋대로 일한 결과가 그렇게 심각한 걸 보고 겁이 나더라고요. 제 자신이 미웠어요. 왜 그때 기도해서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았었는지, 왜 그때 리더와 의논하지 않았는지, 뭣 땜에 겁도 없이 그렇게 함부로 행동했던 건지… 기도로 구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봤어요.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네가 올바른 길을 가고 하나님 뜻에 합하게 된다면 성령 역사도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배반할 위험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네게 교만한 성품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너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뽐내게 한다. 교만함은 네가 다른 사람을 얕보게 만들고, 너를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만든다. 교만함으로 인해 너는 안하무인이 되고, 하나님도 안중에 두지 않게 된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네게 순종하게 만들 것이다.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에 지배받아 사람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는지 보아라!』(<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은 자주 봤었는데, 이 일에 비춰 보니까 더 와닿더라고요. 리더를 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진리 실제가 별로 없었어요. 본분하는 동안 모르는 진리 원칙도 많았는데, 제가 뭐든 다 알고 잘난 줄 알았어요. 새 신자들을 대할 때 그 사람 본질이 아니라 겉에 드러난 모습만 보고 제가 옳다고 생각돼 기도도 하지 않고, 상의도 안 하고, 파트너 의견도 무시했어요. 너무 교만했어요! 리더가 저보고 원칙도 모르면서 구하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더라고요. 사실 새 신자를 대하는 원칙은 정말 많아요. 사랑으로 도와주는 원칙도 있고, 공평하게 대하는 원칙, 관념을 해결해 주는 각 방면의 진리 등 많아요.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경외심을 갖고, 또 자신을 믿지 않고 이런 원칙들을 찾고 고민했다면 교회 사역을 교란시키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교만한 성품으로 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악을 행하게 된 거였어요. 생각할수록 제가 밉고 하나님께 저주받아 마땅하더라고요. 그래서 진리를 구해 제 교만한 성품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뒤로 말씀을 또 봤는데『교회의 리더나 일꾼이 사역할 때는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사역 지침에서 규정한 원칙을 정확히 따라 행하되, 원칙을 어기거나 마음대로 상상하거나 자기 뜻대로 행동해선 안 된다.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 집의 사역을 생각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신경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히 따라 실행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성령의 인도를 어기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뜻과 상상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가장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리더와 일꾼이 사역하는 주요 원칙> 중에서) 『네가 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 하나님이 매우 흡족해하지 않았다면, 너는 어떻게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하겠느냐? 그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느냐? ‘이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이 이 일을 아시면 기뻐하실까, 아니면 반감을 느끼실까? 극도로 증오하지는 않으실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는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누군가 일깨워 주었다고 해도 너는 그 일이 별것 아니라고, 원칙에 어긋나거나 죄를 지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진노를 사게 됐으며, 심지어는 하나님께 증오까지 받게 되었다. 만약 네가 미리 구하고 알아보며 그 일을 꿰뚫어 본 후에 행했다면 확실하지 않았겠느냐? 때로 사람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거나 소극적이 되어도,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신중하게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 기도한 다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구한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때 실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네가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진리에 부합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진리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성품은 변화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다른 이와 교제하며 진리를 구해야 한다. 만약 다들 꿰뚫어 보지 못할 것 같으면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혹시라도 언제 좋은 방법이 생각나거나 좋은 길이 생긴다면 이는 아마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중에 그렇게 실행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재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실수를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 일을 할 때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녔고 진리대로 실행했으나, 다만 그 당시에 원칙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 실행에 약간의 실수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용서받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이 일함에 있어 오직 자신의 두 손으로만 행하고, 자신의 머리로만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고 상상할 뿐, ‘그렇게 실행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에 맞을까? 내가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나를 미더워하실까?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 들으시고 ‘이 일을 올바르고 적절하게 행했구나. 계속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실까?’ 이렇게 생각해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너는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겠느냐?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반성하며, 그렇게 행하면 하나님이 기뻐할지 아니면 증오할지, 그렇게 행하면 하나님 선민들은 어떻게 여기고 어떻게 평가할지 등을 깊이 생각할 수 있겠느냐? … 이런 식으로 자꾸 따져 보고, 스스로에게 묻고, 많이 구한다면 일을 할 때 실수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행해야만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네가 행한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방향에 맞춘 것이고 진리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진리를 실행하기 위해서이다> 중에서)

말씀에서 실행 길을 찾게 됐어요. 리더는 사역할 때 엄격하게 사역 지침과 원칙을 지키고 모든 일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해요. 또 본분할 때 많이 기도하고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지, 자기의 맘대로 하거나 경험이나 관념 상상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면 절대 안 돼요. 맹목적으로 자기를 믿지 말고 진리 원칙을 구하고, 자기도 잘 모르겠는 부분은 형제자매들과 같이 교제해서 원칙을 잘 파악한 다음 해 나가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어요. 이번 일로 큰 교훈을 얻게 됐어요. 하나님이 리더를 통해서 절 책망하지 않았다면 제멋대로 일한 결과가 어떤 건지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진리를 구하고 원칙대로 본분하기로 다짐했어요. 그 뒤로 또 두 사람이 예배에 잘 안 나왔는데, 이젠 쉽게 단정짓고 포기하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그중 한 명은 여러 번 알아보고, 도와주고, 또 리더하고도 얘기했는데, 결국 불신파라고 판단돼 포기했어요. 다른 한 자매는 아직 2년도 안 됐지만 평소 말씀도 자주 보고 본분도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패괴 성품을 폭로하는 말씀을 보게 될 때마다 자기한테 맞춰 보고 자기가 너무 깊이 패괴됐다고 하면서 자포자기하더라고요. 그 후에, 저희는 자매한테 하나님 말씀을 교제하면서 하나님이 구원하실 대상은 우리처럼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라고, 그분은 어머니처럼 우리의 어려움과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다고 알려 줬어요.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한 쉽게 포기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최대한 사람을 구원하시니까요. 그랬더니 하나님 사랑에 감동해서 펑펑 울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도와주니 지금은 예배도 아주 잘 나와요.

이 일을 겪고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고심과 사랑을 절실히 느꼈어요. 또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고 나서 제 교만한 성품에 대해서 좀 인식하게 됐고, 제멋대로 본분할 때의 위험성을 알게 됐어요. 그러니 하나님께 경외심도 생겼죠. 지금 제가 원칙대로 본분하게 된 건 다 하나님 인도예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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