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염려해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폭로하지 못하는가

2025.8.8

필리핀 데베(Deve)

2023년 7월 초, 저는 지역 리더로 선출되어 복음 사역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리더로서 저는 제 담당 범위 안의 모든 형제자매들의 사역을 감독하고 점검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사역 점검 및 시행 진도는 무척 느렸습니다. 그 이유는 사역을 시행할 때 우선 하나를 먼저 시행하고, 형제자매들이 이를 마무리하면 그때 또 하나를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형제자매들이 사역이 너무 많다고 짜증내는 상황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자신들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사역을 감독하고 점검할 때도 무척 조심스러웠고, 형제자매들이 저를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 남을 이해할 줄 모르는 사람, 좋은 리더가 아니라고 말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한번은 복음 책임자인 크리산타(Crisanta) 자매의 사역을 점검할 때였습니다. 원래는 자매가 담당하는 모든 복음 전도자들의 사역과 모든 전도 대상들의 상황을 점검하고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매가 예배를 막 마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금 예배를 끝냈는데 자매도 좀 쉬어야겠지. 곧바로 사역을 점검하면, 날 보고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는 제가 사역을 점검하는 방식에 자매가 압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자매가 예배 드릴 때 이미 복음 전도자들의 사역 상황을 파악했을 테니까 그건 물어보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거야. 다른 것은 우선 물어보지 말자. 그렇게 해야 자매가 질문이 너무 많다고 원망하지도 않을 거고, 내가 자기 상황을 고려해 준다고 생각해서, 이해심 많고 배려심 있다고 말하겠지.’ 저는 좋은 리더는 반드시 형제자매를 이해하고, 그들의 기분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자매에게는 복음 전도자들의 사역 상황과 그들의 계획에 대해서만 물어보고, 복음 대상의 상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 후 자매는 본분을 이행할 때 복음 전도자들의 사역만 점검하고, 다른 사역 진도 및 복음 대상자들 상황은 제때 해결하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내용도 몰랐습니다. 결과적으로 본분 이행 성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또다른 복음 책임자인 벨라(Bella) 자매를 점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벨라 자매가 막 제 담당 범위가 되었을 때, 한번은 제가 몇몇 복음 전도자들의 상황을 물었더니 자매가 대답했습니다. “아직 점검하지 못했어요. 아직 그 사람들을 잘 몰라서 파악 중이에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벌써 닷새가 지났는데, 파악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나?’ 저는 본분을 그렇게 이행하면 효율이 떨어져서 사역이 지체된다고 자매를 일깨워 주고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들어온 사람한테 문제를 지적하면, 아마 날 보고 이해심과 배려심이 없고, 자기 어려움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저는 자매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사역을 시행하거나 무슨 일이 있어서 자매 도움이 필요할 때, 자매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또 앞으로 자매가 제 문제나 부족한 점을 지적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저는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고, 그 결과 자매가 담당한 범위의 복음 사역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리더의 직책에 따라 복음 사역을 감독, 점검하지 않은 탓에 제 담당 범위 내의 복음 사역은 거북이가 기듯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저희가 같이 사역을 정리할 때 벨라 자매가 마음을 열고 말했습니다. “저는 리더가 제 본분에서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자매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제가 리더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자매의 사역도 점검해 주지 않았고, 본분 이행에 있는 문제도 짚어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마음에 가책을 느껴 제 내적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교제했습니다. 교제가 끝난 뒤, 책임자인 리쉬안 자매가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처신해야 한다. 이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사람됨의 원칙을 알지 못하면서 무슨 진리 실행을 운운하겠느냐? 진리 실행은 빈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이 사람됨의 원칙이나 일을 바라보는 관점, 본분 이행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진리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와 원칙을 찾은 다음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길,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겠느냐? 원래 네 관점은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것이었다. 남들과 화기애애하게 지내면서 타인의 체면을 구기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함께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런 관점에 얽매여 누가 나쁜 일을 하거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을 보아도 침묵을 지키고, 남에게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교회의 사역이 손해를 입는 편을 택하며, 누구와 지내든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말할 때도 인정과 체면을 고려해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기분 좋게 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아도 참는 쪽을 택하고, 뒤에서 말할 뿐 그를 만났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지 않고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처신이 어떠하냐? 이는 무골호인이 아니냐? 너무 교활하지 않으냐? 이는 사람됨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이런 식의 처신이 비천하지 않으냐? 이런 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처신은 귀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처신하는 측면에서 원칙이 없다면 너는 사람됨에 있어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기억되지도,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자매가 저에게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사역을 점검하지 않아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잘 지켰지만, 결과적으로 사역이 지체됐어요. 벨라 자매가 방금 한 말을 보면 사실은 자매님이 사역을 점검해 주길 바랐던 거죠. 그래야 본분을 이행할 때 방향과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매님은 무골호인의 사상에 따라 본인 이미지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만 지키느라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어요. 결국 자기 본분을 다하지 않았죠. 벨라 자매는 점검과 지도를 거의 받지 못해서 사역에서 방향을 찾지 못했고, 이것이 복음 사역에 성과가 없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본인이 안고 있는 무골호인의 문제를 잘 반성해야 해요!” 자매 말을 듣고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지낼 때 정말 무골호인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고, 형제자매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싶지도 않으며, 형제자매들이 저를 배려심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원래 크리산타 자매의 여러 사역을 점검하려 했지만, 너무 많이 점검하고 파악하면 자매가 저를 이해심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자매가 쉽게 할 수 있는 사역만 골라서 점검하고 관여했습니다. 반면 비교적 번거로워서 자매에게 육적으로 피곤한 사역은 점검하고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자매가 저를 원망하거나 안 좋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 결과 자매가 담당한 복음 사역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벨라 자매의 사역을 점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자매의 본분 이행 효율이 낮아서 사역이 지체되는 것을 보고도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 지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제가 하는 행동은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과 같았습니다. “남들과 화기애애하게 지내면서 타인의 체면을 구기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와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고요. 저는 늘 다른 사람의 기분과 어려움을 고려하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사람됨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자매들을 내버려두는 바람에 복음 사역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교회 사역에 이미 피해까지 주었습니다. 저는 전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무골호인,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무골호인 사상을 바꾸지 않으면 제가 한 모든 일이 헛수고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자 달라지고 싶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문제나 부족한 점이 보이면, 더 이상 제 체면을 고려하지 말고 그것을 지적해서 교제하며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더 이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는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만 지키려 했을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회개하오니,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리더의 본분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마치자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뒤로 형제자매의 사역을 점검할 때는 제가 발견한 문제들을 당사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진리에 따라 실행했더니, 형제자매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화도 내지 않고, 저희 관계가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형제자매들은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최선을 다해 정직한 사람이 되어, 형제자매들에게 문제를 짚어 주거나 조언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인식했다고 바로 실행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또다시 환경을 마련하셔서 제 패괴를 드러내셨습니다.

7월 13일, 한 교회에서 선거를 치렀는데, 아화(Awua) 자매가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자 갑자기 자매가 저에게 일하러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약간 있어서,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리더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일하러 간다고 하는 데다 근무 시간도 길어서 본분을 이행할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자매에게 교제해 주었지만,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일을 해야 해요. 그래야 빚을 갚을 수 있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자매는 정말 곤란한 사정이 있어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가 없구나. 이렇게는 교회 리더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까 책임자에게 보고해서 자매의 본분 조정을 상의해야 해.’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얘기해서 본분이 조정되면 자매는 자존심이 상할지도 몰라. 그러면 아마 자기 어려움도 이해해 주지 않고 기회도 주지 않는다면서 나를 멀리하겠지.’ 자매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었기에, 저는 자매의 상황을 책임자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큰 빚이 아니니 한 달만 일하면 돈을 갚을 수 있을 테고, 그때는 본분을 이행할 시간이 생길 것이고, 자매가 일하는 동안에는 제가 자매를 도와 몇 가지 사역을 점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자매는 하루종일 출근하느라 교회 사역을 전혀 하지 않았고, 많은 사역이 지체되었습니다.

일주일 후, 자매가 본분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알고, 책임자인 리쉬안 자매가 저에게 아화 자매의 상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아화 자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리쉬안 자매가 저에게 교제했습니다. “아화 자매의 태도를 보면 자매는 더 이상 리더 본분을 이행할 수 없어요. 교회 리더는 교회 전체 사역의 진행과 관련이 있어요. 훌륭한 리더는 교회 사역을 짊어질 수 있지만, 책임감이 없는 리더는 교회 사역에 피해를 주죠. 사실 자매님도 이 교회의 상황을 알고 있잖아요. 아화 자매가 리더 사역을 전혀 할 수가 없다는 것을요. 문제를 발견했으면 즉시 보고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자매님은 행동을 취하지 않았어요. 제때 인원을 조정하지도 않고, 자매의 문제를 보고하지도 않으면서 계속해서 유임시킨다면 교회 사역은 지체될 거예요.” 자매의 교제를 듣고 나니 자신이 형편없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문제를 보고도 제 생각대로 행동하며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고, 교회 사역이 지체될지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리쉬안 자매는 저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어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해야 하는데도 책망하지 않고, 분명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 입는 것을 보아도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으면서 조금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속셈과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좋게, 높게 평가하고 내게 찬성하고 나를 좋아할 거야.’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얼마나 피해를 입든, 교회 생활이 얼마나 큰 방해를 받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사탄 철학을 지키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는 어떠한 가책도 없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하면, 기껏해야 말로 어물쩍 넘어갈 뿐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교제하는 법이 없다. 거짓 리더는 사람들이 항상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폭로하거나 해부하는 법이 없고, 어떤 실제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그릇된 행동 방식과 패괴 표출을 항상 눈감아 주며, 사람이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고 격려의 말 몇 마디로 대충 넘어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뿐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해도 해결하지 못하며, 글귀와 도리,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리더는 하나님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이해해 줘. 우리의 분량이 작아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우리는 리더의 요구에 맞출 수 있기만 하면 돼. 우리가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야. 만약 어느 날 상부에서 우리의 리더를 교체하겠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해. 리더가 교체되지 않도록 상부와 협상하고, 상부에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해야지. 그러면 리더에게도 면목이 설 거야.’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기고 리더와 이러한 관계가 형성된다. 마음에 리더에 대해 이러한 의지, 부러움, 숭배가 생기면 갈수록 리더를 믿게 되고, 리더의 말을 듣기 원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만약 리더가 하나님의 선민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또한 그 관계를 즐기며 하나님 선민이 응당 자신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리더는 바울과 다를 바 없고,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 적그리스도는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진리 교제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하지 않고 오직 지위와 명예,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사람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계속 자기를 숭배하고 앙망하고 따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루려는 목적이다.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구슬리며 하나님 선민을 통제하는데, 이런 사역 방식이 사악하지 않으냐? 그야말로 너무도 역겹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조 사람의 마음을 구슬린다> 중에서) 하나님은 리더 일꾼이 사역에서 문제를 발견하고도 못 본 체하고, 자신의 체면, 형제자매와의 관계만 지킨다면, 그런 사람은 거짓 리더이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폭로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하나님이 폭로하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벨라 자매가 본분을 비효율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뻔히 알고도 감히 그 문제를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자매가 저를 자신의 어려움을 헤아려주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저희는 충돌할 일도 없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아화 자매가 출근 때문에 리더의 책임을 다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자매의 상황을 윗선 리더에게 보고하고 즉시 자매의 본분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매가 그 사실을 알면 저를 좋지 않게 생각할까 봐 윗선 리더에게 알리지 않았고, 교회 사역이 지체되어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형제자매들에게서 인정과 지지를 받고 싶고, 그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고 언제나 하나님 집의 이익을 제쳐두었습니다. 제 태도가 어찌나 사악한지 하나님께서 혐오하실 만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교회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언제나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만 고려하면서, 그들 눈에 좋은 리더로 비춰지고, 존경받으려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행위는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교회 사역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리더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리쉬안 자매가 제 오류를 발견하고 제 모자란 부분을 지적하도록 안배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진리를 실행하여, 아화 자매와의 관계를 지키기보다, 교회 이익을 생각하겠습니다.” 그 날 오후, 저는 아화 자매와 교제했습니다. 자매는 자신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교회 사역을 지체했다고 인정했지만, 일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고 해서 저는 자매의 본분을 조정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처세 철학 중에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즉, 좋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간파했어도 다 터놓고 말해서는 안 되며,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들추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서로 기만하고 숨기고 음모를 꾸미며, 마음속으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솔직히 말하지 않고, 교활한 수법으로 그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 관계를 지키려 하겠느냐? 이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적을 만들어 자신이 수시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가 너의 원수가 되어 너에게 해악을 끼칠 것을 알고, 너 스스로도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처세 철학을 취하는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봤을 때 이런 관계의 두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을 나눈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겠느냐? 기본적인 사회 관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회 관계에서 사람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없고, 깊이 사귈 수 없으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도 없다. 또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자신이 본 상대의 문제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찾아서 한다.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감히 참말을 하지 못하고 원칙도 지키지 못한다.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때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안하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을 제창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분명 남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있는, 완곡하고 간사한 생존 방법으로, 자기 보호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진심을 나눌 친구,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피차간에 서로 경계하고 이용하며 수작을 부리고 원하는 것을 취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냐?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말의 근본적인 목적은 남의 원망을 사거나 상대와 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수법이자 방식이다. 이 몇 가지 측면의 본질을 봤을 때, 사람의 덕행 중 “때려도 얼굴은 때리지 말고,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지 말라.”라는 요구를 고상하고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이것이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누구에게도 원한을 사거나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상처 입는 사람은 너 자신이 된다고 말이다. 또한,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누구라도 상처를 주는 순간 그 관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친하고 가까운 친구에서 네게 낯선 사람, 적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 가르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설령 네가 이렇게 행동해서 적을 만들지 않고 몇 명의 원수를 줄여 사람들에게 탄복과 동조를 샀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너와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완벽하게 덕행의 기준에 도달한 것이겠느냐? 이는 기껏해야 처세 철학에 불과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8)>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라는 말은 일종의 사탄의 처세 철학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런 철학으로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것은 제가 사람들과 지낼 때 줄곧 사용해 오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 깊고 세심한 친구로 보이기 위해, 저는 사람들 앞에서 늘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설령 다른 사람의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적을 만들지 않고 남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지적하지 않고, 서로 감싸며 아무도 사실을 말하지 않으며,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우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탄 철학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다 보면 서로 경계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순전히 일종의 간사하고 기만적인 행위입니다. 이제 저는 제가 크리산티, 벨라, 아화 자매를 교회 자매로 생각하지 않았고, 자매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돕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단지 자매들에게 인정을 받고, 자매들이 저를 나쁘게 보지 않게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제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설령 자매들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사역을 지체시키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지적해서 교제하며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에게 진정한 사랑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줄곧 제가 자매들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않으면, 협력을 계속하고 심지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저는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라는 철세 철학을 고집하느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교회 사역을 지체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매들의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았고, 자매들이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도와주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리더는 형제자매가 본분 이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발견하면 마땅히 지적해서 그들이 자신을 인식하고 문제점을 고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형제자매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그 후 저는 또다시 하나님께서 리더 일꾼의 직책을 교제하신 말씀 중 일부를 보았습니다.

제1조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깨닫도록,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한다.

제2조 각 부류 사람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여 그들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히는 생명 진입에 관련된 여러 어려움을 해결한다.

제3조 각종 본분을 잘 이행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진리 원칙을 교제한다.

제4조 수시로 각 사역의 책임자와 각각의 중요한 사역 담당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제때 조정하거나 교체하여 부적합한 인선으로 인한 손실을 피하거나 경감함으로써 사역이 효과적이고 순조롭게 진전되도록 보장한다.

제5조 각 사역의 현황과 진도를 제때 알아보거나 파악하고, 사역 중에 존재하는 문제를 제때 해결하며, 사역 중에 나타나는 편차를 바로잡고, 사역 중에 나타나는 허점을 보완함으로써 사역이 순조롭게 진전되도록 한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 행위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리더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리더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들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깨닫고, 진리를 실행하여 생명 진입을 이루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리더로서 저의 직책 중 하나는 바로 각 방면의 교회 사역을 감독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이든 사역 진행이든, 교회 사역을 가로막는 요소가 있으면 즉시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전에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저는 어떻게 해야 리더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2024년 2월 어느 날, 어븐(Erven) 형제가 제게 교회 리더인 스테이시(Stacey) 자매가 복음을 전할 때 지혜롭게 말하지 못한다는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매가 복음 대상과 막 접촉했을 때부터 종교, 혹은 목사와 장로를 폭로하는 바람에 복음 대상이 관념을 품고 계속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스테이시 자매가 말할 때 지혜롭지 못하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 반드시 자매와 이 문제를 교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매가 말을 직설적으로 하긴 하지만, 복음 전도를 한 지도 꽤 되었는데, 내 지적을 받아들일까? 만약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까?’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니, 자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면, 자매는 본분을 그런 식으로 이행할 것이고, 그러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으니까 그래도 자매의 문제를 지적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스테이시 자매와 함께 복음을 전했고, 거의 끝나갈 무렵 저는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게 스테이시 자매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자매가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받을까 조금 두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제 패괴 성품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라 교회 사역에 영향을 주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제게 용기를 주세요.’ 그 후 저는 저희가 복음을 전할 때 드러난 문제들을 정리하고, 또한 스테이시 자매의 몇몇 문제들을 지적했습니다. 그랬더니 자매가 말했습니다. “제 모자란 부분과 문제점을 지적해 줘서 고마워요.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 후, 자매는 천천히 훈련을 통해 그 문제들을 바로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이 환경들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저는 ‘문제가 보여도 말하지 않아야 좋은 친구’라는 말은,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처세 철학이고, 정말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무척 실제적이어서 우리가 사탄의 관점과 철학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겪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사탄의 철학으로 살면서 계속해서 거짓 이미지로 다른 사람을 속이고도 자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으로 저는 사람됨의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복된 일이고, 덕분에 저는 패괴 성품을 변화시킬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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