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골호인’으로 행세한 결과

2025.9.12

중국 청첸(誠謙)

2022년 10월, 저와 장창은 리더에게서 영상 사역을 함께 책임지라는 편지를 받고 둘 다 무척 기뻤습니다. 밤이 되자 장창이 먼저 잠들었고, 저는 우리가 리더에게 보낼 답장이 다소 간단한 것 같아 마지막 부분에 제 깨달음을 좀 덧붙였습니다. 잠시 후 장창이 잠에서 깨어났길래 저는 내용을 보충한 사실을 그에게 알렸습니다. 뜻밖에 장창은 저를 훈계하는 듯한 말투로 제가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며 그렇게 행동한 속셈이 무엇인지 반성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순간 의아했습니다. ‘내 깨달음을 좀 덧붙였을 뿐이고 기존 내용도 수정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독단적인 행동이라는 거지? 왜 상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거야?’ 저는 몇 마디 변명을 했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협력하기 시작했는데 지금 관계가 틀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지내지?’ 저는 갈등이 지속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단 그 말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반성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우리가 마음을 열고 교제할 때 장창은 저더러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그가 말할 때 높은 위치에 서서 남을 가르치려 든다고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장창은 금세 얼굴을 굳히며 자신에게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태도가 상당히 완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을 더 이어 갔다가는 관계가 틀어질까 두려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꼭 제대로 본 것은 아닐 수도 있어요. 형제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제가 잘못 본 거겠죠.” 이 말을 끝내고 저는 장창과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표정이 차츰 풀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저도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장창과 지낼 때 더욱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사역을 논의할 때면 보통 그가 먼저 관점을 밝히기를 기다렸습니다. 그의 관점이 저와 비슷하면 그의 의견을 따랐고,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되도록 완곡한 방식으로 제 의견을 제시해 그가 판단하게 했습니다. 만약 그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리더에게 물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형제자매가 영상 제작 원칙에 대해 편지로 문의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장창의 답장에 부적절하며 다소 교조적인 부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답장하면 사람들을 오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직접적으로 지적하면 장창이 듣기 싫어할 것 같아 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교회 사역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신 것이 떠올라 저는 장창에게 문제점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장창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의견이 옳다며 이유를 댔습니다. 비록 마지막에는 장창도 자신이 쓴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닫고 제게 수정을 허락했지만, 그 말다툼이 있고 난 후 저는 무척 지쳤고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겠어. 문제를 제기하면 말다툼만 생기고 앞으로 어색하게 지내야 하잖아.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모두 원만하게 지내고 내 마음도 편하겠지. 그는 저런 성품 때문에 조만간 큰코다치고 말 거야. 나중에 하나님께서 환경을 마련해 그를 다스리시게 하자. 굳이 내가 나서서 그에게 미움 살 필요는 없지.’ 얼마 후, 형제자매들이 제작한 영상에 계속해서 오류가 발생하자 저는 함께 문제를 정리하고 원칙을 배우자고 제안했습니다. 장창은 그 말을 듣고 언짢아하며 말했습니다. “이 원칙들은 이미 명확하게 설명됐잖아요. 한눈에 알 수 있는데 뭘 또 배워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실수했던 것도 우리가 원칙을 가볍게 여겨서였어.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던 거지. 이번에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예전과 똑같지 않겠어? 이래서는 안 돼. 배우지 않으면 또 원칙적인 문제가 생길 거야.’ 저는 장창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입가에 맴돌 뿐 또 망설여졌습니다. ‘장창의 의사는 이미 명확해. 배우고 싶지 않은 거야. 만약 내가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화목을 유지할 수 있어. 만약 내가 또 그에게 교제하려 한다면 우리 사이에 분명 또 말다툼이 생길 거야.’ 매번 말다툼을 벌이고 나면 며칠 동안 마음고생했던 것이 떠올라 더는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도 서서히 원칙을 배우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원칙에 대해 별로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상 제작에서 나타나는 오류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더는 저와 다른 형제자매에게 장창에 대한 평가를 써서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리더는 장창이 줄곧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못해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는 것을 보고 그를 교체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드디어 장창과 협력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다음날, 리더는 우리가 제작한 영상이 오랫동안 성과를 내지 못해 우리 팀이 해체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소식을 본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아직 본분에 온 힘을 다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끝날 수 있지?’ 지난 몇 개월 동안 저는 장창과 협력하면서 원칙이 없었고 ‘무골호인’으로 행세했습니다. 평소에 장창과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저는 관점조차 거의 밝히지 않았고, 더더욱 마음과 뜻을 다해 사역을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 본분을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저의 그러한 과오들을 만회할 기회도 사라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스스로 반성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기를 원하지만, 많은 경우 그런 의지와 소망만 있을 뿐, 내면에서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악한 세력을 만나거나, 악인, 못된 자들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가 원칙에 어긋난 일을 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함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이 해를 입는 일이 생겼을 때, 너는 용기 있게 나서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왜 용기가 없겠느냐? 담이 작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또는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해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다 아니다. 이는 주로 패괴 성품에 속박받아 초래된 것이다.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 중 하나는 간사한 성품이다. 일이 닥치면 먼저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먼저 그런 행동에 따른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할지 고려한다. 이는 간사한 성품 아니겠느냐? 또 다른 하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성품이다. ‘저 사람이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입히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리더도 아닌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내 책임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이런 말은 네가 일부러 생각해 낸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이 드러내는 패괴 성품이다. 이런 패괴 성품은 네 생각을 지배하고, 네 손발을 묶어 놓고, 네 입을 통제한다. 일어서서 말하고 싶은데도 한편으로는 우려가 돼서, 말을 꺼내더라도 에둘러 말하며 여지를 남기거나 아니면 말을 얼버무리며 참말을 하지 않는다. 눈치 빠른 사람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너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네가 해야 할 말을 전부 다 하지는 않았으며, 효과도 내지 못했고, 그저 형식만 거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자신은 책임을 다했다고, 혹은 그 당시에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그런 말이 사실에 부합하느냐? 솔직한 말이냐? 이는 완전히 사탄 성품에 통제된 것 아니냐? 네가 한 말에서 일부는 사실에 부합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중요한 부분이나 핵심 문제에서는 거짓말을 하며 사람을 기만했다. 이는 네가 거짓말하는 사람이고 사탄 성품으로 사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네가 하는 말이나 생각은 언제나 머리로 가공을 거친 후 튀어나올 것이다. 그 결과 내뱉는 말은 죄다 거짓말이나 빈말뿐인데, 전부 사실에 어긋나는 말, 자기를 위한 궤변, 자기에게 유리한 말뿐이다. 사람을 미혹하여 다 믿게 하면 너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네가 말을 하는 방식으로, 네 성품을 대표하기도 한다. 너는 사탄 성품에 완벽히 통제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없고, 진심이나 사실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진리를 실행하고 싶어도 실행할 수 없고,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네 말과 행동은 전부 기만이고, 무성의한 것이다. 사탄 성품에 이미 완전히 속박되고 통제되어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싶지만 뜻대로 할 수 없다. 너는 사탄 성품에 통제되어 사탄 성품에 따라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완전히 패괴된 육의 꼭두각시, 사탄의 도구가 된다. 시간이 지난 후, 너는 또 패괴된 육을 따른 것에 대해 후회하고,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너는 마음속으로 ‘내 힘으로는 육을 이겨 낼 수 없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해. 나는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사람을 보고도 일어서서 제지하지 않은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래, 결심했어. 또다시 이런 일이 닥치면 반드시 일어나서 제멋대로 본분을 이행해서 교회의 사역을 교란하는 사람들을 한번 책망해야겠어. 그렇게 해서 그가 좀 착실해지고 다시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겹게 용기를 내 말하지만, 상대가 화를 내고 탁자를 내리치자 깜짝 놀라 위축되고 만다. 너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있느냐? 네게 결심과 의지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전부 소용없다. … 네가 전혀 진리를 구하지 않고 나아가 실행하지도 않으면서 속으로만 계속 기도하고 결심하고 다짐하고 맹세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너는 여전히 무골호인이 된다. 문제를 보고도 말하지 않고, 악인을 보고도 신경 쓰지 않으며, 악을 행하고 교란하는 사람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또 너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은 나 몰라라 하며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 일과 관련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입을 닫을 거야. 내 이익과 허영심, 체면에 해가 되지 않으면 절대 끼어들지 않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태도로 대할 거야. 모난 돌이 정 맞는 법,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아!’ 너는 사악함과 간사함, 강퍅함, 진리를 싫어하는 등의 패괴 성품에 완전히 통제된다. 단단히 통제되어 삼장법사의 주문에 걸린 손오공보다 더 괴로워진다. 패괴 성품에 통제된 사람의 삶이 얼마나 피곤하고 고통스럽겠느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저는 장창의 문제점을 지적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 장창의 고자세와 교만한 성품 때문이 아니라, 제가 간사하고 이기적인 본성에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거의 매번 말을 꺼내기 전에 장창의 미움을 사지는 않을지를 먼저 생각했고, 장창이 듣기 싫어할 만한 말이라면 사역에 이로운 말일지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장창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함께 지내기 어려운 사람인 것을 보고는 즉시 제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상대방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장창의 답장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어 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말다툼이 생겨 사이가 어색해지자, 저는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라는 이 처세 철학이 옳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장창의 미움을 살 가능성이 있는 말은 모두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장창이 업무와 원칙을 배우는 데에 해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그렇게 하면 사역에 지장을 줄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갈등을 피하기 위해 또다시 양보를 선택했고, 그 결과 형제자매들은 원칙에 진입하지 못해 영상을 제작하면서 많은 헛수고를 했습니다. 저는 간사하고 이기적인 성품으로 사람과 어울리며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누구의 미움도 사지 않는 식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는 유지했을지언정, 결코 제 책임을 다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땅히 상대방에게 일깨워 줘야 할 것도 일깨워 주지 않았고, 마땅히 원칙을 지켜야 할 때도 지키지 않아 결국 사역에 손실만 가져왔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런 좋은 행동들은 모두 간사하고 이기적인 패괴 성품에서 나온 것이었고, 결국 개인의 이익과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들만 지켰습니다.

나중에 저는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라는 이 사탄 독소를 해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는데, 제 문제와 딱 들어맞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이 네게 미치는 교육과 영향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예를 들면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라는 말이다. 가족들은 늘 이렇게 가르친다. “선의로 남을 대하고 남과 다투지 마라. 적을 만들지 마라. 적이 많으면 사회에서의 입지가 좁아진다. 너를 해하거나 적대시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회에서 안전하지 못할 것이고, 언제든 위협받을 것이다. 네 생존과 지위, 가정, 신변의 안전, 나아가 직업에서의 발탁 등에 있어서 해코지를 당할 수 있고,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누구든 다정하게 대해야 하고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이든 여지를 남기고, 다른 사람의 체면을 깎거나 단점을 들추어서는 안 된다. 또 남이 껄끄러워 하는 말은 삼가거나 아예 하지 말고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것이다. 아첨이 죄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크고 작은 일을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순간을 참으면 무사 평온하고, 한발 물러서면 세상이 넓어 보인다’는 것이니까.” 생각해 보아라, 한 번에 두 가지 생각과 관점을 주입한다. 하나는 선의로 남을 대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내하며 입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참았다가 집에 와서 하라고 한다. 심지어는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기 때문에 말이 새어나가서 네게 좋을 게 하나 없다는 말이다. 이 사회에서 발붙이고 살아남으려면 사람은 한 가지를 습득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회색분자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모나지 않고 교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 현명한 것이 아니다. … 교회에는 항상 이런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크게 잘못하는 것이 없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교회 리더나 형제자매가 그를 누구와도 잘 지내는 사람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본분 이행도 그럭저럭 하고 무슨 일이든 시키면 한다. 특히 말을 잘 듣고 환심을 사며 사람과 이야기하고 일을 처리할 때에도 결코 사람을 해하거나 남의 덕을 보려 하지 않는다. 또 사람에게 나쁜 말을 전혀 하지 않고 뒤에서 판단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지, 속으로 각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그가 좀 괴상하고 짐작하기 어려운 것 같아서 그를 머물게 하면 골칫거리란 생각이 들 것이다. 어찌하면 좋으냐? 너무 난감하지 않으냐? … 그는 누구와도 실랑이를 벌이지 않는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거나 그의 존엄과 연관되는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 ‘내가 참는다. 너랑 실랑이하지는 않겠지만 망신살이 뻗는 날이 올 거다!’ 정말 그 사람이 처분되거나 망신을 당하는 날이 되면 그는 남몰래 즐거워한다. 그는 남들과 리더를, 그리고 하나님 집을 비웃으면서 자기는 비웃지 않는다.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흠이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남에게 해가 되거나 남이 자기를 간파할 수 있는 일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드러내지 않는다. 남의 경계를 늦추거나 남을 미혹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이든 드러내 보인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가장 음흉하고 다루기 어렵다. 그러니 하나님 집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겠느냐? 쓸 수 있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제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째서겠느냐? 이런 부류의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 집과 형제자매, 그리고 리더를 비웃을 수 있는 불신파이다. 그가 하는 역할이 무엇이냐? 사탄 마귀의 역할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형제자매를 인내하는 것은 진정한 포용이나 사랑이 아니다. 그는 자기를 보호하고 적을 만들지 않으며 위험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형제자매를 보호하거나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형제자매를 포용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진리 추구를 취지로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하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남에게 해를 끼치고 남을 미혹시키려는 태도인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회색분자이자 빛 좋은 개살구이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무의미한 세월을 보낼 뿐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마음이 몹시 찔렸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제가 줄곧 ‘무골호인’으로 행세했던 것은, 사실 적을 만들지 않고 제 자신의 나날을 조금 편하게 보내기 위함이었고, 받들어 행했던 것은 바로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 “한순간을 참으면 무사 평온하고, 한발 물러서면 세상이 넓어 보인다”와 같은 처세 철학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사람들과 지내왔습니다. 어떤 불공평한 일,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제 물건을 훔치거나 어떤 친구가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일에 대해 저도 그들에게 따지기는 했지만, 그들의 태도가 강경하거나 저에게 다소 불만을 품은 기색을 보일 때면, 갈등을 격화시키지 않고 제 자신에게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저는 대부분 속으로 삭이며 참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저는 줄곧 그렇게 사람들과 지냈습니다. 이번에 장창과 협력하면서, 장창과 의견이 다르거나 그의 말이 저를 건드릴 때마다 저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참는 방식으로 그런 문제들을 처리했고, 가능한 한 말을 줄이고, 되도록이면 아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 ‘참음’은 겉으로는 사소한 일로 남에게 따지지 않고 사람을 비교적 잘 포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인위적으로 억제하며 꾸며낸 것이었고, 오직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게다가 참고 있을 때 제 마음속에는 사람에 대한 포용은커녕 오히려 편견과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장창이 패괴 성품으로 일을 처리하여 사역을 얼마간 방해하는 것을 보고도 그를 폭로하여 제지하거나 일깨워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가 벽에 부딪혀 실패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장창이 교체된 후에 저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그가 하루빨리 떠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영상 사역에 대해서도 저는 조금도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편안하게 지내고 시비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저는 사역이 손해를 입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무관심했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으며, 하나님께 조금의 충성심도 없었습니다! 이번에 제 본분이 조정된 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일깨움과 경고였습니다. 만약 제가 여전히 사탄의 처세 철학으로 처신하고 일을 처리한다면 점점 더 이기적이고 간사해질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을 지체시켜 하나님을 대적하기 쉬우며, 결국에는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제 자신이 사람들과 협력하는 면에서 줄곧 원칙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협력이란 무엇이겠느냐? 일이 생기면 상의하고 관점이나 견해를 밝히며 서로 보완하고 감독하는 것, 그리고 서로 구하고 의논하고 일러 주는 것이야말로 조화로운 협력이다. 예를 들어, 네가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일은 잘못 처리했어요. 철저히 원칙을 위배했다고요. 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처리했죠?”라고 말하는 걸 듣고 네가 “그러게요. 당신이 일깨워 줘서 다행이에요.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큰 화를 부를 뻔했어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서로 일러 주는 것이다. 그럼 상호 감독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자신의 지위와 체면만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이런 내적 상태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너는 그와 적극적으로 교제하며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라고 그에게 일깨워 주면서 스스로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호 감독이다. 상호 감독하면 무슨 작용을 하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동시에 사람이 길에 잘못 들지 않게 할 수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진정한 조화로운 협력은 참고 양보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형제자매 사이에 서로 포용하고, 돕고, 일깨워 주고, 감독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형제자매에게 작은 단점이나 흠이 보인다면 상대방의 부족함을 포용해 주어야 하고, 만약 형제자매가 원칙에 어긋나게 일을 처리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거나 교란한다면 제때 일깨워 주고 제지해야지 무조건 참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장창이 사람들을 조직하여 원칙을 배우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을 보고 그에게 교제해 주었을 때 그는 여전히 자기 생각만 고집했는데, 그때 저는 그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시에는 다소 말다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만약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그에게도, 교회 사역에도 유익한 일입니다. 설령 제가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가 듣지 않더라도, 저는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계속해서 일깨워 주고, 책망 훈계하며, 경고하고, 심지어 고발하고 폭로하는 방식을 통해 원칙을 지키고 교회 사역을 수호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협력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실패했던 것은 오직 참는 것으로 표면적인 화목을 유지하려 했을 뿐, 상대방을 일깨워 주고, 감독하고, 문제를 보고하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우리는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돕지 못했으며, 파트너 사이에도 진정한 화목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만약 협력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들을 모두 꺼내어 토론하고 상의하며, 형제자매에게, 그리고 교회 사역에 유익한 일을 했다면, 영상 사역이 그토록 많은 손실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고, 저도 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몇몇 동역자들이 모두 생명 진입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상태에 빠져 있고, 평소에 사역에 관해서도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저는 설교원이 우리를 도와 교회 사역을 하지 않고, 본분 이행에 꽤 수동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말이 입가에 맴돌 뿐 또 망설여졌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보통 이런 말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데, 말했다가 우리 사이의 화목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저는 곧바로 제가 또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제 상태를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만약 원론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집의 이익과 연관된 일에서 적절한 취사선택을 하고,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자신의 처세 철학을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고 네 과오와 하나님 앞에서의 악행을 줄인다면, 이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최소한 훗날 하나님이 한 사람의 결말을 정할 때 너에 대한 징벌과 처벌을 줄여 줄 테니 그렇게 실행하면 너로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지 않으냐?(<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실행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이 닥쳤을 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지 않고, 먼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고 자신의 과오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저는 설교원에게 그녀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자매는 반발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에게 자신의 내적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저 또한 우리 동역자들 사이의 협력 문제를 이야기했고, 몇 가지 제안도 했습니다. 협력하는 자매들도 스스로 반성하고 인식했고, 그 후 어느 정도 개선되었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만 파트너 사이에 진정한 화목이 있고, 스스로의 마음도 평안하고 든든하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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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프랭키(Frankie)2021년, 저와 함께 타지에서 복음을 전하던 가브리엘(Gabriel) 형제가 교체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 몇 년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일을 제멋대로 처리해서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무골호인과 작별하다

스페인 리페이하나님을 믿기 전 저는 무골호인이라고 하면 성품이 온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화내는 일도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학교의 교육과 사회의 영향으로 저는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미움받더라도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

필리핀 아이푸리(April)2020년 5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열심히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다 보니 10개월 뒤에 교회 리더로 선출됐습니다. 그 일은 당시 커다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의 이면

몇 개월 전, 리더는 우밍 형제와 제가 양육 사역을 함께 담당하도록 안배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우밍이 사역을 대할 때 별로 부담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문제가 있어도 적시에 교제로 해결하지 않고, 사역을 논의할 때도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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