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으로 사니 참 좋다

2020.12.27

일본 쉰츄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서 말을 너무 곧게 하지 말고, 모든 사람과 좋게좋게 지내는 것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동창이나 친구, 동네 이웃에게 모두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해라” ,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어서는 안 된다” 등의 사탄 철학을 적용했습니다. 누가 옳지 못한 일을 해도 저는 상대의 체면을 생각해 약점을 들추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주변에서는 모두 저를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 칭찬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게 좋은 것이라 여기며, 그것이 인간관계의 근본 원칙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험하고서야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좋은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것은 사탄의 처세술이라 타인은 물론 본인에게도 전혀 유익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피해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깨달은 후에야 조금의 변화가 생겼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됨의 원칙을 찾았습니다.

2019년 8월, 저는 교회 리더로 뽑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훈련의 기회라 생각하며 이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본분을 맡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본분을 이행하는 면에서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상 제작을 건성으로 해서 뻔한 실수를 했고, 어떤 사람은 본분에서 조화로운 협력을 이루지 못해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작업 능률도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보이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들 이렇게 패괴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하는데, 지적하지 않으면 분명 하나님 집 사역에 영향이 갈 거야. 저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기준에 맞지 않아. 형제자매들이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 잡을 수 있게 해부하고 교제하면서 짚고 넘어가야겠어.’ 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또 제가 이 본분을 맡자마자 문제점을 막 지적하면 형제자매들이 저를 좋게 보지 않을까 봐 걱정이 들었습니다. 괜히 의욕만 앞서 너무 야박하게 군다고 할 것 같았고, 그런 인상을 주면 왠지 저를 멀리할 것 같았습니다. 갈등 끝에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인간관계부터 잘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저는 형제자매들과의 좋은 관계가 깨질까 봐, 일부 사람들의 문제점을 보면서도 체면을 고려해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갔습니다.

하루는 어느 자매가 왕 형제의 문제점을 얘기했습니다. 그 형제는 자기 생각만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아 사역에 지장을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왕 형제에 관해 물어보았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왕 형제를 교만하다고 했습니다. 말투가 늘 훈계적이고 권위적이라 함께 협력하는 형제자매가 눈치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형제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꼈습니다.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왕 형제의 생명 진입은 물론, 하나님 집의 사역에도 이롭지 못했습니다. 저는 형제가 심각성을 알 수 있도록 교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형제를 만나니 자꾸 뒤로 물러서게 됐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말한 문제는 형제의 약점인데, 내가 일일이 다 들추면 내가 형제를 너무 몰아세운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완전히 체면을 구기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고의로 형제를 표적 삼아 얘기하는 것처럼 느끼고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까? 예배드릴 때나 본분 이행할 때나 항상 얼굴을 보는 사이인데, 이런 거로 관계가 틀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겠어?’ 이런 고민과 함께 예배 때 형제가 스스로 자신을 교만한 사람이라 얘기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거기에서 살짝만 더 짚어줄 뿐, 깊숙한 곳까지 들추지 않고 아픈 곳을 찌르지 않으면 형제도 크게 난처해 할 것 같지 않았고, 형제와의 관계도 틀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형제와 교제를 하면서도 형제는 성품이 교만하고, 권위적으로 군다고 문제점을 가볍게 짚어주었습니다. 그러자 형제도 확실히 그런 문제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자기도 인지하고 있다 말했습니다. 저는 형제가 여전히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음을 알았지만, 말을 아꼈습니다. 그 결과, 왕 형제는 자신의 패괴 성품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여전히 자기 생각만 고집하며 형제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해 사역을 크게 지체시켰습니다. 결국, 얼마 안 돼 본분에서 조정되었습니다. 그 후, 형제는 다른 본분을 맡게 되었지만, 여전히 패괴 성품대로 본분을 이행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왕 형제의 팀을 맡은 자매가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왕 형제에게 있는 문제점을 모르고 계셨어요? 왜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그 형제는 본분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역 진도를 크게 지체시키고 있어요.” 자매의 엄한 책망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자매를 들어 진리를 행하지 않은 저를 꾸짖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괴로웠고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제때에 문제점을 짚어 주어 형제가 진정으로 반성하며 자신을 알았더라면,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왕 형제는 자신의 사탄 본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전에 맡았던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조정된 후에도 여전히 사역 진도를 지체시키며 변화된 모습이 없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사람에게 해가 되었고 하나님 집의 사역에 손해를 끼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좋은 인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현실을 보니 저는 그저 인간관계만 유지하려 하고, 타인의 체면을 생각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생각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과 하나님 집의 사역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를 어찌 좋은 인성을 가졌다고 하겠습니까?

그 후 하나님이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인성이 좋다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중간자적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견지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미움받을 일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 비위를 맞추고 능란한 처세술을 보여 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모두 좋은 인상을 주는 것, 이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과 사람, 어떤 일을 대할 때 늘 진심을 갖고 책임을 지며, 모두가 지켜보고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며, 모든 사람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성이 좋다고 하면서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거나 탐하지도 않는다고 내세운다. 또한 이해 갈등이 생길 때면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손해를 보는 쪽을 택하며, 험담을 하는 법도 없다고, 모두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몸을 사리고 농간을 부리며, 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해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다급해하는 것을 다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본분을 위해 이익을 내려놓은 적도, 자신의 이익을 버린 적도 없다. 심지어는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도 폭로하지 않으며, 어떤 원칙도 없으니, 이런 자는 인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니 사람됨의 원칙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진정 좋은 사람은 중간자적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고, 타인의 문제점을 보고도 지적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며, 인간관계를 생각해 타인과 좋게좋게 지내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좋은 사람의 기준은 사람이나 일을 대함에 있어 원칙을 지키며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가 되는 일에서는 사람에게 밉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로지 원칙을 고수하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기준에 비춰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과 어떻게든 상대의 체면을 건드리지 않고 밉보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인간관계만 잘 유지하면 모두에게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전혀 진리의 원칙에 맞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패괴 성품에 따라 일을 해 하나님 집 사역에 방해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지키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지 않았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특히 왕 형제를 대하는 문제에서 두드러졌습니다. 형제가 하나님 집 사역에 심각한 손실을 끼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제가 의도적으로 형제 문제를 콕 집어 얘기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주지 않으려 했고, 형제가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에게 편견을 가질까 봐 가볍게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최대한 좋게좋게 넘어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결과는 형제가 자신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좋은 이미지’를 남겼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님 집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손해만 끼쳤습니다. 이렇게 보니 저는 거짓된 좋은 사람이자 쓸데없는 좋은 사람이었고, 두말할 것 없는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교회 리더 중에 어떤 사람은 형제자매들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면, 마땅히 꾸짖어야 하는데도 꾸짖지 않는다.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해를 보는데도 사람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그런 것을 외면한다. 그가 그렇게 하는 목적은 타인의 연약함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본인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야 누구에게도 밉보이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해야 다들 나를 좋은 리더로 볼 것이고, 좋고 높은 평가를 할 것이고, 나를 지지하고 좋아할 것이야.’ 그래서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큰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들이 생명 진입에서 얼마나 큰 피해를 보든, 교회 생활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되든 상관없이 사람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사탄의 철학을 고수한다. 그러고도 마음에 가책을 느끼지 못하며, 그저 가볍게 얘기하고 넘어간다. 상대의 문제를 놓고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그 본질을 짚어주지도 않으며, 그런 상태를 해부하지도 않고, 그 사람을 진리 실제로 이끌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교제하는 법이 없고, 사람이 자주 잘못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실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연약해지거나 소극적으로 변해도 늘 모른 척하며, 심지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도 내버려둔다. 그들이 행한 모든 것에 어떤 정의를 내리는 법이 없고 오히려 그렇게 하도록 묵인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우리 리더는 어머니 같은 존재야. 우리 리더는 하나님보다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알아주는 사람이야. 우리는 믿음의 분량이 없어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는 이르지 못해. 하지만 리더의 요구 기준에만 이르면 충분해. 저 사람은 우리의 좋은 리더야. 만일 상부에서 우리 리더를 교체시킨다면, 우리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상부와 다른 우리의 의견과 바람을 말하면서 협의를 해야 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리더와 이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었고, 리더에 대해 이렇게 좋은 인상을 받고 있으며, 마음으로 리더를 의지하고 선망하고 존경하고 추앙하고 있다면, 그 리더는 어떤 느낌이겠느냐? 이런 일이 있을 때, 마음에 가책을 느끼고 책임감을 느끼며,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사람들 마음에서의 자기 지위와 이미지를 중요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고 높이며, 사람들 마음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만을 높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야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이런 사람이 되어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런 방법과 수법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여 참도에서 멀어지고, 진리를 배반하도록 하며, 심지어 사람들 마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무책임하게 대하는 것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방법 아니겠느냐? 이러한 방법은 사악하지 않으냐? 역겹지 않으냐? 너무도 역겹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리더와 일꾼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1)> 중에서) 하나님은 말씀을 보니 이렇게 일 처리한 저의 속셈과 본질을 다 파헤치셨습니다. 저는 리더의 본분을 맡아서부터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인간관계 유지에 신경 썼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이 보여도 그들의 체면을 생각해 곧바로 폭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왕 형제가 심각할 정도로 교회 사역을 지체시킨 것을 알면서도 다급해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화의 방식을 생각하고 고민했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저의 입지를 굳힐 방법만 생각했습니다. 보기에는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말했지만, 사실은 거짓된 모습을 보이며 형제자매를 미혹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좋게 보이는 방식과 말투로 환심을 샀는데, 그것은 다 사람들이 저를 높이 평가하고 추앙하도록 만들고, 저의 입지를 굳히려는 방법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형통하려고 저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먹었고 진리의 원칙을 어기며, 하나님 집 사역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저는 완전히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친지와 친구, 아내(남편)와 자녀, 부모에게 매우 자상하고 충실하며, 여태껏 다른 이를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부모와 가족을 세심하게 돌본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여전히 악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간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하나님 집에서 리더의 본분을 맡겨 주며 훈련할 기회를 준 것은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실행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이끌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잘 수호하라고 맡겨준 것입니다. 저의 직책은 형제자매들의 문제점이 보이면 진리 교제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고,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알고, 또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았고, 늘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저의 명망을 지키는 것만 중시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집의 사역에 지장을 주었고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도 가로막았습니다. 완전히 사탄 편에 서서 일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처럼 저는 진정한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간교하고 이기적이며 비열한 악인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분명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가진 생존 법칙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해라”,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어서는 안 된다” 등의 사탄 독소는 진정한 사람됨의 원칙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회개하면서 저의 잘못된 추구 방식을 바로 잡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이것을 기초로 다른 사람과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만약 너와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든, 어떻게 노력하고 힘을 쓰든 그것은 모두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한다. 그것은 사람의 관점과 처세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너의 위치를 지키고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는 것일 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다른 이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길 원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와 다른 이의 관계는 육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초에서 맺어진 것이 된다. 육적인 왕래는 거의 없지만, 영적으로 교제가 있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며 공급하게 된다. 모든 행함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에서 이뤄진다. 이는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부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므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다.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따라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처세술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형제자매들의 영 안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형제자매는 물론 본인에게도 유익한 길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패괴 성품대로 본분을 이행하여 사역을 지체시킬 때, 저는 저의 지위와 이미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결부해 문제점을 짚어주면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패괴 성품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진리를 깨달아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왕 형제도 예배드릴 때 하나님 말씀에 비춰 자신을 인식했습니다. 그것은 형제도 자신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증거였습니다. 다만 그 문제점의 근본을 깨닫지 못해 자신을 진정으로 증오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패괴 성품에 따라 행동한 것인데, 저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 형제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본질을 해부하면서 도와주고,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원칙을 찾아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후, 잘못된 저의 추구 방식을 바로 잡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왕 형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잘못한 부분을 종합하고 하나하나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형제와 그가 행한 것에 대해 교제를 나누며 문제의 근원을 파보았습니다. 교제를 마친 후, 형제는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저를 미워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교제해 준 것을 다 받아들였고, 나중에는 그렇게 지적해주지 않았으면 심각성을 몰랐을 것이라며 지적해 주어 고맙다는 메시지까지 남겼습니다. 그때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마음 자세를 바로 가지고,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며 원칙을 지켰더니, 형제자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마음은 참으로 편하고 든든했습니다.

그 후, 또 한 자매가 맡은 본분에서 자기 멋대로 행하고 늑장 부린 관계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로 인해 자매는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평소에 본분을 대하는 자매의 자세와 매우 큰 관계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매에게 그것을 짚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또 ‘자매는 안 그래도 속상할 텐데, 이럴 때, 이런 것까지 지적하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아닐까? 괜히 지적했다가 더 소극적으로 변하면 주변에서 나를 배려심도 없는 인성이 나쁜 사람이라 하고, 이것 때문에 나를 멀리하면 어떡하지? 그냥 본분에서 생긴 구멍을 메울 방법만 얘기하고 자매의 문제점은 지적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제가 또 사탄의 처세술로 사람을 대하려 한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자매의 그 문제점을 짚어주지 않으면 자매는 자신의 패괴 성품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자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떤 진리에 진입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 단 한 번도 우유부단한 적이 없다. 그의 사역 원칙과 목적은 흠 없이 순결하고 투명하며, 여기에는 절대 그 어떤 계략과 음모도 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에는 어둠과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께는 사람처럼 중간자적인 것이 없고, 인간의 뜻이 섞여 있지 않다. 언제나 정확하고 분명하며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모호한 것이란 없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실한 순종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시거나 일을 하실 때, 매우 원칙적이시며 애증이 분명하셨습니다. 사람이 긍정적인 일을 하면 하나님은 인정해 주시지만, 진리의 원칙을 어기거나 하나님 집 이익을 해치는 일을 할 때는 증오하는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시는 데 있어 모호한 면이 없었고 모두 확실한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베드로와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마 16:23)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성격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의 행동을 사탄이 하는 짓이라 정의하셨습니다. 그 당시 주님은 베드로의 체면을 생각해 주거나 베드로가 소극적으로 변할까 걱정되어 말씀을 아끼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한 행동에 따라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셨고, 사람이 자신이 행한 짓이 어떤 성격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에서 저는 실행의 원칙을 찾았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드러나는 문제에서 참아주고 관대하게 대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본분에 영향을 끼치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체시키는 문제에서는 무골호인처럼 중간자적 길을 택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놓고 해부하고 교제하며, 진리 원칙을 고수해야 했습니다. 그 자매가 비록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어도 저는 저의 체면과 지위를 생각하고, 밉보이지 않기 위해 자매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매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높은 위치에 서서 자매를 지적하지 않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교제하며 문제의 성격을 파헤치고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자매가 자신의 패괴 성품을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하고, 또 자매와 함께 진리를 행할 길을 찾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 실행법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자매에게 있는 문제점을 놓고 해부하면서 자매의 잘못된 관점을 짚어 주었고, 추가로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매를 이끌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너무 강하게 느껴지지 않을지, 자매가 못 받아들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제를 마친 후, 자매는 제가 생각한 것처럼 매우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저에게 편견을 가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알지 못했던 것들이라며 진심으로 이런 책망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본분을 이행하는 자매의 자세가 많이 바뀌었는데, 문제가 생기면 의식적으로 진리 원칙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저도 기뻤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이행하니 마음도 정말 편했습니다.

예전에는 누구와 어울리든 항상 제 말 때문에 상대가 상처를 받거나 편견을 가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늘 처세술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경험과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어떤 사람이 진정한 좋은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고, 또 누구와 어울리든 진리 원칙을 고수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사람됨의 원칙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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