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나이 듦에 근심 걱정하지 않게 되다

2025.4.18

하나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저는 줄곧 교회에서 본분을 했습니다. 50대에 문서 본분을 했는데, 제 순발력이나 기억력이 젊은 친구들과 비슷하고 본분 이행 효율이나 효과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것을 보며 매우 기뻤고 본분을 이행할 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온몸 곳곳에 노화가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고혈압도 앓고 있어서 체력과 에너지도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두뇌 반응도 점차 둔해져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조금만 빨리 읽어도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 방금 읽은 내용을 바로 잊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기억력도 나빠졌고 깜빡하는 일이 잦았으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파트너 자매를 보니 30대밖에 되지 않아 에너지 넘치고, 두뇌 회전도 빠르고, 눈치도 빠르고, 손도 빨라 업무 효율이 높았습니다. 자매가 30분이면 마칠 일을 저는 1시간을 들여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매의 젊음과 에너지가 부러우면서도 저 자신이 걱정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 내가 지금보다 머리 회전이 둔해져서 그 어떤 본분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면, 그때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 속으로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이 든 후에야 하나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걸까? 스무 살만 젊으면 얼마나 좋을까! 늙으니 정말 아무 쓸모가 없네.’ 사실 저도 제 앞에 놓인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었지만, 예순이 넘다 보니 머리도, 시력도 따라 주지 않고 고혈압까지 앓으니 조금만 무리해서 사역하면 저녁에 너무 피곤해져 일찍 쉬어야만 했습니다. 제 본분 이행 효율이 젊은 사람들과 큰 격차를 보이자 저는 의기소침해지고 자격지심이 생기면서 부정적인 내적 상태로 살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업무 배우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류를 정리하여 사역 효율을 올리기는 더더욱 싫었습니다. 속으로 ‘늙으니 아무 쓸모 없어. 노력해 봤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거야. 그러다 어느 날 쓸모 없게 돼서 도태될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근심과 걱정 속에 살 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중 일부 연로한 사람들, 다시 말해 60대에서 80, 90대의 사람들도 많은 나이로 인한 고충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그들의 생각이 그렇게 정확하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고 생각과 관점이 진리에 부합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들 연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충이 있으니 그들은 항상 이렇게 걱정한다. ‘이제 몸도 따라 주지 않고 이행할 수 있는 본분도 한정적이구나. 이 정도 본분만 이행해서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려나? 병에 걸려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는 홀로 본분을 이행할 수도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나이를 먹으니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기억이 안 나고 진리를 깨닫기도 쉽지 않다. 진리를 교제할 때 횡설수설하며 논리적이지 않고 이렇다 할 체험도 없구나. 나이를 먹으니 기운도 없고 시력도 나빠지고 체력도 달린다. 다방면으로 고충이 많으니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툭하면 깜빡하고 실수한다. 때로는 흐리멍덩해서 교회나 형제자매에게 폐를 끼치니, 이래서는 구원받고 싶어도,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힘들겠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걱정한다. ‘어떻게 이 나이에 하나님을 믿었을까? 왜 남들처럼 20, 30대 아니면 하다못해 40, 50대에 믿지 못했을까? 어째서 이렇게 늙어서야 하나님의 사역을 따르게 되었을까? 팔자가 사납다고 하자니 그렇지도 않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역을 따르게 되었으니 팔자가 좋은 편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단지 원치 않게 나이를 많이 먹어 기억력도, 건강도 좋지 않고, 열의는 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걱정인 것이다. 예배 시간에 조금만 듣고 있어도 졸리고, 눈을 감고 기도하면 잠들 때도 있다. 하나님 말씀도 입으로만 읽을 뿐, 조금만 읽어도 졸리고 노곤하여 읽어 나갈 수가 없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이런 현실적 고충에도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진리를 추구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수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허투루 믿은 게 아닐까? 구원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럼 어쩌지? 걱정이다! …’ … 이런 연로한 사람들은 자기 나이 때문에 깊은 근심과 염려, 걱정에 빠진다. 고충과 좌절, 우여곡절과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나이를 원망하고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며 싫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진정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냐? 방법이 없겠느냐? (노인도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합니다.) 노인이 힘닿는 데까지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냐? 노인이 설마 늙었다는 이유로 진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노인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느냐? 그들도 부분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젊은이들도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 항상 착각하는 한 가지는 자신이 흐리멍덩하고 기억력도 없으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청년은 노인보다 기운이 넘치고 체력도 좋지만 이해하고 깨닫고 인식하는 능력은 사실 노인과 똑같다. 노인도 청년을 거쳐 온 것이 아니더냐? 태어날 때부터 늙은 것도 아니다. 청년 역시 결국은 늙기 마련이다. 노인은 자기가 늙어서 체력이 달리고 건강하지 않으며 기억력이 나쁘다고 청년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은 차이가 없다. … 노인이 할 일이 없는 것도, 본분을 이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며, 진리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다. 네가 현세에서 축적한 여러 그릇된 견해와 황당한 논리 그리고 여러 전통적인 생각과 관념, 우매하고 완고한 것, 보수적인 것, 비이성적인 것, 치우친 것들이 마음속에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청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이것들을 파헤치고 해부하여 인식해야 한다. 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네 임무도 아니고 네 책임도 아니다. 먼저, 노인은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비록 나이는 많고 몸도 상대적으로 더 노화되었지만 마음가짐은 젊어야 한다. 비록 네가 늙어 생각도 느리며 기억력도 나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는 네가 늙지 않았고 자질이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드러내신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파트너 자매는 젊고, 본분을 이행하는 효율도 높은 반면, 저는 나이도 많고 고혈압까지 있는 데다 머리도 둔하고 본분 효율도 자매보다 훨씬 뒤떨어지자, 스스로 나이가 들어 쓸모없게 되었으니 하나님도 분명 저를 내치시고 구원해 주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 속에 살며 몇 년만 지나면 온몸 여기저기가 점차 노화돼서 그 어떤 본분도 할 수 없게 되어 도태될 것이라며 걱정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똑같이 대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발표하신 진리는 한 번도 젊은이들에게만 주고, 나이 든 사람에게 주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한 번도 당신의 선민을 나이에 따라 구분하고 차등 대우하지도 않으셨으며, 나이 든 사람을 교회에서 정리하여 내보내야 한다는 말씀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말씀의 양육 공급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구원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싫어한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는 나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로 그 사람이 진리를 얻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규정하셨습니다. 나이가 얼마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면 성품 변화에 이르러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비록 환갑이 되었고, 업무 지식을 배우는 속도도 느리지만, 생각은 어리석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신 후 깨달을 수도 있고, 그 속에서 저의 부족함과 패괴된 성품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나이 들었다고 해서 저에게 깨우침을 주지 않으시거나 이끌어주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서 여러 가지 사탄의 독소와 사탄의 생존 법칙, 그리고 전통적인 문화를 인식, 분별하고 부정적인 사물에서 벗어나 진리에 따라 처신하고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제 머리는 이성적이고 정상적이며 본분도 이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온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며 성품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나이가 많다는 것을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핑곗거리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걱정과 근심 속에 살며 책임감 없이 본분을 이행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고, 결국 하나님께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또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오로지 이익과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약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른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이다. 복을 받고 상을 얻으려는 그의 속셈과 욕망이 너무 커서 단단히 붙잡고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해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한결같이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한 것, 즉 좋은 종착지를 얻기 위한 거야. 이는 지고지상의 원칙으로서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만약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선 안 되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을 믿는 의미나 가치는 사라져 없어지는 거야.’ 적그리스도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누군가가 주입했기 때문이냐? 누가 가르치고 영향을 주기라도 했느냐? 전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성 본질에 의해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데 그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정죄한다.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그의 본성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그가 바뀔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의 본성이 사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품이 사악하여 대놓고 하나님에게 고함치며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며 그의 실체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으며 고통을 얼마나 받고, 대가를 얼마나 치르든 상관하지 않는 것은 전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라고 폭로하셨습니다. 그는 복 받는 것을 진리를 추구해서 구원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복을 받지 못하면 그 어떤 본분도 하기 싫어하고, 대가도 치르고 싶어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하나님께 반항하며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원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성품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얻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기회를 얻는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기뻐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제 사역 효과가 그래도 괜찮은 것을 보고 스스로를 교회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분명 아름다운 종착지를 내려 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나이 들고 몸도 아파서 본분을 이행하는 효율과 효과도 젊은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저는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서 아무런 본분도 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도태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복을 얻는 것에 가망이 없어 보이자 저는 부정적인 기분으로 살며 고통스러워하고 걱정했으며 소극적으로 변하고 반항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헌신했던 것을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속셈은 제 결말과 종착지를 위한 계산이었고 본분 이행을 두고 하나님과 거래를 한 것으로, 그 본질은 하나님을 이용하고 기만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고, 저는 운 좋게 하나님의 앞으로 와 그토록 많은 하나님 말씀을 공급받아 부정적인 일과 사물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가치와 의미를 깨달았으며 구원받을 기회를 얻어 더는 이방인처럼 다투고, 빼앗고,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헛된 삶을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한 덕분에 저는 하나님의 앞에 살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사탄의 괴롭힘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모릅니다. 비록 지금 제가 나이도 많고 고혈압까지 있지만, 아무런 증상이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일하고 쉰다면 약물에 의지하지 않고도 정상적으로 본분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도 보답할 줄 몰랐고, 오히려 본분 이행을 두고 하나님과 거래하려 했으니 정말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께 참회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동안 본분을 이행하며 당신과 거래하고 복 받기를 추구하여 당신의 혐오와 증오를 샀습니다. 당신께 진실로 회개하고 싶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또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 말고도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 네가 멍청하거나 치매가 있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제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이상 네가 해야 할 일은 많다. 청년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구할 수도 있다. 또한 늘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진리 원칙을 구하여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걸어야 할 길이다. 자신이 나이가 많고 병치레가 잦으며, 육신이 노화되었다 하여 늘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해서는 안 된다. 근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네가 할 일이 아니다. 이는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깨달았습니다. 나이 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 주신 생로병사의 법칙을 바르게 대하는 것 외에 종종 하나님의 앞으로 와서 기도드리고 구해야 합니다. 진리 원칙에 따라 우리에게 직면한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해야 하며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본인이 나이가 많아 여러 방면에서 젊은이들보다 못하다고 열등감을 가지거나 나이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와 신체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자, 저도 제 나이와 부족한 부분을 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아 자꾸 뭔가를 잊어버리니 제가 해야 할 사역을 미리 적어 놓으면 사역을 지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업무적인 측면에서 젊은이들은 한 번 배우면 기억할 수 있지만, 저는 기억력이 떨어지고 이해력도 더디니 더 많이 노력해서 한 번으로 안 되면 세 번을 배워야 합니다. 늘 젊은이들과 비교해서는 안 되고 진리를 추구하며 열심히 본분을 이행하여 최대한 따라잡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또 떠올랐습니다. 『나는 사람의 종착지를 정할 때, 그의 나이나 관록, 또는 그가 겪은 고난의 양을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에 따라 종착지를 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에게 진리가 있는지 여부만 볼 뿐, 그 외에 다른 선택 기준은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징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는 그 사람의 나이나 고생한 정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를 얻었는지, 성품에 변화가 있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제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복을 얻으려는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며 패괴된 성품에 변화가 없다면 스무 살이 어리더라도 도태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그릇된 추구 관념을 고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길 바랍니다. 살아있을 때 제 본분을 잘 이행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며 최종적으로 좋은 결말이 없더라도 제 본분을 완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양심과 이성이자 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과 목표입니다.

한 번은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같이 업무 지식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어떤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자 파트너 자매가 교제해 주었는데, 무척 얘기를 잘했습니다. 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또 올라왔습니다. ‘나는 나이도 많고 깨닫는 것도 느려. 2년만 지나면 점점 더 둔해져서 그 어떤 본분도 이행하지 못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씁쓸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네 건강 상태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없든, 그 어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든 없든, 네 본분 이행을 허락하든 말든 네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져서도, 네 본분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네 책임과 의무와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이것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충성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제 우려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나이가 많아지고 깨달음이 느려지면 문서 본분을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 저에게 맞는 다른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언젠가 본분을 이행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스스로를 반성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내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에 대해 진실된 믿음이 없고, 늘 복 받기를 추구하는 것을 혐오하십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더는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마음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묵상하고 공부해서 업무에서도 발전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저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제 몸이 어떻든, 어떤 결말과 종착지가 있든 저는 기꺼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따를 것이며, 제 본분을 잘 이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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