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중에 얻은 수확
중국 허난 장리 2007년은 제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해입니다. 당시 남편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고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는 아직 어리고 저희 가족의 생활은 곤경에 처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고...
2010년, 아내가 제게 하나님의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이시며, 진리를 선포해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꼭 하나님을 잘 믿고 따라야지. 나중에 하나님께 축복받아 구원받으면 정말 큰 행운일 거야.’ 얼마 후, 저는 교회에서 새신자를 양육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교회 리더가 되어 매일 교회의 여러 사역을 처리하느라 바빴습니다. 저는 그렇게 계속 본분을 이행하면 나중에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본분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저는 당시 수입이 꽤 괜찮았던 목재 사업을 친척에게 넘겨주었습니다.
2017년 1월, 저는 망막 박리로 인해 왼쪽 눈을 수술했습니다. 당시 수술이 잘되지 않아 시력은 0.1에 불과했고 글자도 잘 보이지 않아 오른쪽 눈으로만 생활해야 했습니다. 원래는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다시 수술을 받을 계획이었지만, 6월에 유다가 팔아먹는 바람에 중공 경찰이 저희를 대대적으로 체포하기 시작해 저와 아내는 외지로 도망쳤고, 저는 병원에 가서 눈을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집에서 문서 본분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매일 컴퓨터를 오래 보면 눈이 침침해져 본분을 이행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주변 형제자매들은 다들 눈이 좋은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사업도 내려놓고 줄곧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했는데, 왜 하필 내게 이런 눈병을 주셨을까? 오른쪽 눈도 예전에 수술한 적이 있는데, 만약 나중에 오른쪽 눈에 또 문제가 생기면 무슨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어?’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싶었지만, 중공에 체포될까 두려워 감히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병이 든 후에도 줄곧 본분을 이행했더니 병이 나았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나도 계속 본분을 이행하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고쳐 주시지 않을까? 어쩌면 어느 날 눈이 좋아질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저는 계속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2024년 5월 1일, 갑자기 오른쪽 눈이 붓고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우며 메스꺼웠습니다. 순간적으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눈앞에서 흔들리는 사람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지만, 길을 걸을 때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20여 년 전에 오른쪽 눈 망막 박리 수술을 받았는데, 설마 재발한 건가? 이제 망했구나. 왼쪽 눈도 아직 다 안 나았는데, 오른쪽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다니. 눈이 멀면 아무 본분도 이행할 수 없잖아. 하나님의 사역이 곧 끝나 가는데, 이 중요한 시점에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게 아닐까? 나중에는 도태되지 않을까?’ 저는 몹시 걱정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어서 오른쪽 눈이 욱신거리며 타는 듯이 아팠고 머리도 아팠으며, 계속 구역질이 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제가 급성 폐쇄각 녹내장에 걸려 안압이 오르고 동공이 확장되었으며, 눈이 심하게 충혈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유리체가 혼탁하거나 수정체가 이탈했기 때문일 수 있다며, 즉시 입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오른쪽 눈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왼쪽 눈 시력도 안 좋은데, 오른쪽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면 난 정말 장님이 되는 거잖아. 본분 이행은 고사하고 혼자 생활하는 것조차 문제가 될 텐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지난 몇 년간 교회에서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했는데, 왜 이런 병에 걸린 걸까? 차라리 허리나 다리가 아픈 병이라면 적어도 본분에 지장은 주지 않을 텐데. 눈이 보이지 않아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쓸데없는 인간이 되는 거잖아. 그럼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어?’ 저는 생각할수록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사흘간 입원해 있는 동안 의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했지만 제 안압은 계속 오르락내리락했고, 동공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물이 모두 겹쳐 보였고, 마치 2000도짜리 돋보기를 쓴 것처럼 시력은 0.04에 불과했습니다. 의사는 현재로서는 좋은 치료법이 없다며, 우선 천자 수술을 해서 안압이 떨어지는지 보고 수정체 상태를 확인한 후에야 2차 수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 온갖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난 몇 년간 중공은 줄곧 나를 추적했고, 나는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사업도 포기했어. 한쪽 눈만 보이는데도 줄곧 본분을 이행했고, 성과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지켜 주지 않으시는 걸까? 내가 바치고 헌신한 게 적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께서 제 눈을 고쳐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옆 침대의 한 환자가 망막 박리로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후에도 안압이 계속 높아 두 눈이 거의 실명하여, 걸을 때 아내의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걸어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미 치료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저도 그와 같이 되지는 않을지 또다시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인터넷에서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 손상은 회복될 수 없으며, 현재로서는 완치할 수 없는 병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더욱 괴롭고 걱정이 되었으며, 마음속으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형제자매가 병들었을 때 다 고쳐 주셨으면서 왜 내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걸까?’ 저는 속으로 도무지 순종할 수 없었고, 기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온종일 한숨만 쉬며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잘 자지 못해 며칠 만에 몇 킬로그램이나 빠졌습니다. 두 번째 수술 후, 의사는 제게 인공 수정체를 삽입해 주었습니다. 수술실에서 나오자 눈이 타는 듯이 아프고 머리도 몹시 아팠습니다. 수치조차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안압이 높아서 의사는 30분마다 수술 절개 부위를 통해 안방수를 빼내고 안압 하강제를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섯 시간이 지나도 안압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이런 상황은 매우 위험하며, 수술이 헛수고가 되고 시력도 지키지 못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오른쪽 눈이 실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는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비로소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눈병이 생긴 후 그때까지 저에게는 순종하는 태도가 조금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 원망과 오해만 가득했으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이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기도하며 제 눈병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고, 앞으로 눈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잠시 후 제 눈이 흐릿하게나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안압도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여전히 사물이 매우 흐릿하게 보였지만 시력은 0.2까지 올라갔습니다. 저는 순간 놀랍고도 기뻤고, 그것이 저의 연약함을 헤아려 주신 하나님의 긍휼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퇴원 후 저는 친척 집에서 잠시 머물며 요양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리더와 책임자, 형제자매들도 편지로 제 안부를 물으며 제 내적 상태를 물었고, 하나님 말씀을 찾아 저를 돕고 붙들어 주었습니다. 아내도 제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는데, 그중 두 단락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질병, 고통이 찾아왔을 때, 너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했느냐?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여 너를 인도하고 이끄느냐? 단지 너에게 깨우침과 빛 비춤만 주느냐? 단지 이런 방식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또한 너를 연단하고 시련을 준다.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 사람에게 시련을 주느냐? 사람에게 고통을 겪게 함으로써 시련을 주지 않느냐? 시련에는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시련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고통을 받겠느냐? 사람이 고통 없이 어떻게 변화하겠느냐? 시련에는 고통이 뒤따르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 역사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진리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에서),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 근심, 염려, 걱정에 빠진 채 자신의 장래와 퇴로를 위해 고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때일수록, 이런 특수한 환경과 배경에 있을수록, 그리고 이렇게 절실한 고충이 있을 때일수록 사람은 더욱 진리를 구해야 하고,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예전에 들었던 설교와 깨달은 진리가 물거품이 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네게 그런 고충이 있는 때일수록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배에 순종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하나님이 네게 그런 환경을 배치하고 그런 조건을 안배한 목적은 너를 근심, 염려, 걱정의 정서 속으로 몰아넣기 위한 것도, 네가 질병에 걸렸을 때 과연 하나님이 치료해 주는지 시험해 보고 실제 상황을 알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네게 그런 특수한 환경과 조건을 배치한 목적은 그런 환경과 조건에서 네가 실제적인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진리에 더 깊이 진입할 수 있게 하여 더욱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나님이 사람과 일, 사물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든 없든, 분명하게 지각할 수 있든 없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순종이지, 반항이나 거부가 아니며, 시험은 더더욱 아니다.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네가 만약 반항하고 거부하며 시험한다면 마지막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반대로 네가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피조물이 창조주의 지배에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구하고, 하나님이 네게 준 환경에서 네가 어떤 공과를 배우고 자신의 어떤 패괴 성품을 인식해야 하는지를 구하며,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네가 제대로 증거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는 것, 이것이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보고 나서, 저는 하나님의 고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제가 근심과 걱정이라는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그 가운데서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의 고통을 통해 저의 패괴를 정결케 하시려는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저는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달라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내도 자주 제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점차 제 마음은 더 이상 그렇게 의기소침하지 않게 되었고, 내적 상태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얼마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시력이 뜻밖에도 0.3까지 올라갔습니다. 저는 안경을 새로 맞췄고, 컴퓨터의 글자도 조금 더 잘 보이게 되어 타자를 치는 데도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그 병의 고통 속에서 제가 드러낸 그 많은 원망과 오해에 대해, 어느 방면의 패괴 성품을 반성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다 복을 받고, 상을 얻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이런 생각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누구나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이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항상 말로 내뱉지 않아도, 나아가 복을 받으려는 자신의 속셈과 욕망을 숨겨도, 마음 깊은 곳의 그 욕망, 그 속셈과 동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사람이 영적인 이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어떤 체험적 인식이 있든,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속셈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 또 사람은 언제나 이 복받으려는 속셈을 위해 고생을 마다치 않고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 아니더냐? 복을 받으려는 속셈이 사라진다면 너희는 어떤 기분이겠느냐? 어떤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마음속에 숨겨진 복받으려는 그런 속셈을 정말로 완전히 없앤다면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 많은 사람이 소극적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영혼을 잃어버린 듯 하나님 믿는 일도 무의미하다고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받으려는 속셈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지표> 중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그들의 목표와 전혀 무관한 일은 귀찮아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또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얼핏 들으면 아주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외지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까지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니, 거기에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우리는 지금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즉,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이 바로 제 내적 상태였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가정과 생업을 뒤로하고 고난을 겪으며 헌신한 것은 모두 복을 받아 장차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저는 본분을 다하고 버리고 헌신하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축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본분을 지체시키지 않기 위해 사업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저는 온몸에서 끝없는 힘이 솟는 것 같았는데,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왼쪽 눈에 병이 생겨 시력이 떨어졌을 때도 저는 계속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제가 꾸준히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봐서라도 하나님께서 제 눈을 고쳐 주시고, 장차 반드시 좋은 종착지를 맞이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왼쪽 눈이 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른쪽 눈마저 녹내장에 걸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아무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복을 받을 희망이 없어진 것을 보고 저는 몹시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잔뜩 오해하고 원망했으며, 마음속으로 쉼 없이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병을 고쳐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저는 비로소 제가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천국의 복을 얻으려 했으며, 하나님과 완전히 적나라한 이해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몇 년간 본분을 이행하면서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패괴 성품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른 이면에는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요구와 기만이 가득했을 뿐, 진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복을 받으려고만 했던 것의 근원이 무엇인지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기도든 교제든 설교든 할 것 없이, 결국 사람이 추구하고 생각하고 동경하는 것은 다 하나님에게 요구하고 받아 내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기를 바란다. 어떤 이는 “이는 본성의 일입니다.”라고 말하는데, 그렇다. 이 밖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너무 많이 요구하고 지나친 욕망을 너무 많이 품는 것은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모두 스스로를 위해 요구하고 얻어 내려고 하거나 구실과 핑계를 댄다.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많은 일에서 사람의 행동에 조금의 이성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 자는 천벌을 받는다.”라는 사탄의 논리가 이미 사람의 본성이 되었음을 완벽하게 보여 준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떤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냐? 사람이 사탄에 의해 그 지경까지 패괴되고,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하나님을 전혀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가 왜 늘 복을 받으려 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이익이 없으면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와 같은 사탄 독소에 따라 살며,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이익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본성은 특히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 사람을 구원하시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며,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해야만 하나님께 구원받아 살아남을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여기고 주저 없이 사업을 내려놓고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만약 복과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저는 결코 그렇게 큰 열정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몇 년간 저는 한쪽 눈만 잘 보였지만, 계속해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구원받고 아름다운 종착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고용주로 여기고, 본분을 조금 이행하고 나면 염치없이 하나님께 축복과 약속을 요구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른쪽 눈에 병이 생겨 실명할 위기에 처하고 아무 본분도 이행할 수 없게 되자, 저는 곧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헌신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복을 받을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억울해서 하나님을 잔뜩 오해하고 원망했으며, 왜 하필 제게 이런 병을 주셨냐고 하나님께 따지기까지 했습니다. 저의 그런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인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저는 하나님을 믿을 때 결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았고, 본분을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거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 본질은 바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하나님과 거래하려 하며, 수고와 노력을 통해 큰 축복을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어찌 인성과 이성이 있었겠습니까? 시련이 닥치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을까는 생각하지 않고, 온통 제 앞날과 종착지만 걱정했으니, 저는 정말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이후, 제가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받고, 하나님께서 제게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셔서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각 방면의 진리를 깨닫고 얻게 된 것을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자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본분 이행을 복을 받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혐오하고 증오하셨겠습니까! 저는 바울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바울은 수고와 노력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공의로운 면류관을 요구했고, 만약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으시다고 말하며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대들고 대항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징벌을 받았습니다. 제가 당시 가던 길이 바로 바울의 길이 아니면 무엇이었겠습니까?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국 지옥에 떨어져 징벌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분 이행이라 할 수 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심판받은 후 온전케 되어 누리는 복을 말하고, 화를 입는다는 것은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거친 후에도 성품 변화를 이루지 못해, 즉 온전케 되지 못해 받는 징벌을 말한다. 그러나 복을 받든 화를 입든 사람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본분 이행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명확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이자, 피조물로서 회피할 수 없는 책임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속셈이나 불순물도 섞여서는 안 됩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며, 어떠한 대가도 바라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관건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는지,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는지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대로 반듯하게 처신하고 착실하게 일한다면, 피조물의 분수를 지키며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면, 아무리 큰 시련과 연단을 겪더라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여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구원받는 사람이고,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사람입니다. 단지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패괴 성품이 조금도 변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저의 관념과 상상이었고, 터무니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닥치는 일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본분을 잘 이행함으로써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보답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제 내적 상태는 어느 정도 호전되었습니다. 비록 때로는 설교 말씀을 잠시 보고 나면 눈이 매우 흐릿해져 쉬어야 했지만, 마음은 예전처럼 괴롭지 않았습니다.
묵상 시간에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질병이라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는 대부분 사람이 일생에서 겪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언제 어느 연령대에 사람이 어떤 병에 걸릴지, 사람의 건강 상태가 어떨지는 사람이 스스로 정할 수 없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해 놓았다. 이는 사람이 태어나는 시간을 정할 수 없듯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을 두고 근심하고 염려하며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해결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묵묵히 순종하며 하나님이 보호해 주길 구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정말로 병에 걸리거나 죽음이 닥치면 사람은 불평하지도 말고, 하나님을 거역하지도,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공격하는 말을 하지도 말고 순종해야 한다. 피조물 본연의 자리를 지키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을 체험하고 체득하며 다른 선택이 없어야 한다. 이를 하나의 특별한 체험으로 삼아 네 인생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을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러니 질병이라는 일에 대해 우선 질병의 근원에서부터 사람의 잘못된 사상 관점을 해결하면, 사람의 이런 염려는 사라지게 된다. 아울러 미지의 일이나 이미 알고 있는 일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과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재 아래 있기 때문에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와 실행 원칙은 기다림과 순종인 것이다. 인식에서 실행까지 모두 진리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리 추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4)> 중에서), 『그렇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고 질병이라는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무척 단순하다. 바로 진리 추구의 외길을 걷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것,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인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행해야 하겠느냐? 네가 체험한 이 일들에서 네가 진리와 하나님 말씀을 바탕으로 얻은 인식과 깨달은 진리 원칙을 모두 실행하여 너의 실제, 너의 생명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한 측면이다. 다른 한 측면은 본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질병 속에 있든 아니면 고통 속에 있든 네가 숨이 붙어 있는 한, 네가 살아 있는 한, 네가 말하고 걸을 수 있는 한 본분을 이행할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럼 너는 성실하고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피조물의 본분과 창조주가 네게 맡긴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죽지 않는 한 너는 너의 본분을 완수해야 하고, 제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이런 말은 사람의 인정에 맞지 않아요. 저는 병에 걸렸고 괴롭단 말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네가 괴로울 때는 쉬어도 되고 요양하면서 치료를 받아도 된다. 그래도 계속 본분을 이행하고 싶다면 업무량을 줄여서 적합한 본분을 이행하면 된다. 요양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된다. 이는 네 마음이 본분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의 올바른 피조물이 되려는 소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것들을 모두 해내면 하나님이 내 병을 없애 주실까?”라고 말한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없애 주든 않든, 치료해 주든 않든 네가 하는 것은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네 건강 상태로 그 어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든 없든, 네 본분 이행을 허락하든 허락하지 않든 네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져서도, 네 본분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그러면 네 책임과 의무와 본분을 다한 것으로, 이것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충성심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이 일생 동안 어느 시기에 병이나 환난을 겪게 되든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안배하신 것이며, 거기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눈병에 걸려 하마터면 실명할 뻔하지 않았다면, 저는 영원히 하나님과 거래하려 했던 저의 비열한 속셈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제가 줄곧 바울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록 그 기간 동안 마음이 몹시 고통스럽고 슬펐지만, 그것은 저로 하여금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게 하여 생명에 어느 정도 성장이 있게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만약 안일한 환경이었다면 저는 영원히 그런 것들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또 욥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큰 시련과 연단을 겪으면서도, 모든 가산을 강도에게 빼앗기고 자녀들도 죽었음에도, 온몸에 악창이 나 잿더미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으며 고통을 덜면서도 입으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라고 하고 세 친구가 그를 판단할 때조차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욥은 차라리 자신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며 사탄을 부끄럽게 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불과 7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수백 번의 시련과 연단을 겪으면서도 줄곧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었고,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해 드리기를 구하여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욥과 베드로는 하나님께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에 대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을까만 생각했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여 사탄을 철저히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제가 본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제게 아직 본분을 이행할 기회가 있고, 제가 눈으로 글자를 볼 수 있으며, 손으로 계속 타자를 칠 수 있고, 정신이 맑은 한, 본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설령 어느 날 눈이 보이지 않아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되더라도 기꺼이 순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 낭송을 듣고 마음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아내와 아이에게 저의 체험과 인식을 들려주고 대신 체험 간증문을 써 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하나님의 교제를 듣고, 하나님 말씀에 결부하여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저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아내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 말씀을 보았으며, 매일 꾸준히 설교 말씀을 기록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체험 간증문도 썼습니다. 컴퓨터를 오래 보아 눈이 흐릿해지기 시작할 때면 안약을 넣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쉬었고, 좀 괜찮아지면 다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눈 수술을 한 지 약 두 달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고, 의사가 레이저 치료로 제 눈의 유리체 혼탁을 어느 정도 제거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가까운 곳의 사물이 예전보다 훨씬 더 잘 보이게 되었고, 컴퓨터의 글자를 볼 때도 돋보기안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으며, 심지어 더 작은 글자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마음 깊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거래하려 했던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열했는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가 자신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변화하게 해 주셨습니다. 마음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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