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얻기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이 맞는가?

2025.7.11

중국 쑤언쩌(蘇恩泽)

저는 가족력으로 고혈압을 앓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심한 두통까지 생겨서 하루 이틀에 한 번씩 발작했습니다. 두통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온몸에 힘이 빠져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치통과 함께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도 동반되었습니다. 큰 병원에도 가봤지만, 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떨 때는 두통이 너무 심해 머리를 벽에 부딪쳐버리고 싶을 정도로 살고 싶지 않았지만,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참았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제게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희망을 걸며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제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면 언젠가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제 병을 고쳐 주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난 뒤 제 병세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크게 축복해 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5편> 중에서) 저는 기쁨으로 가득 차서, 제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도록 노력하기만 하면 앞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더욱 확신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고수입의 직장을 관두고 모든 시간을 본분 이행에 쓰고,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기꺼이 즐겁게 임했습니다. 그 몇 년 동안 두통도 많이 좋아졌고, 발작 빈도도 줄어들었습니다. 몇 년 후, 제가 외지에서 본분을 이행하던 중 의사인 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제 두통이 삼차 신경통이라며 약 10여 위안의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두 달 동안 약을 먹자 삼차 신경통은 뜻밖에도 기적적으로 나아졌습니다. 몇 년 동안 시달렸던 고질병이 없어지니 제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겉보기에는 약을 먹어서 나아진 것이지만,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이 보답을 받은 것 같아서 이 때문에 저는 본분 이행에 더욱 힘을 냈습니다.

2023년 7월이 되자, 저는 머리가 항상 어지럽고 가끔씩 두통과 어지러움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고혈압이 있으니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증상은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매일 오전에만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졌고, 오후와 저녁이 되면 다시 어지럽고 아프며 왼손마저 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지러움이 심해지면 침대에 누워 잠시 쉬곤 했습니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급히 벽에 몸을 기대 눈을 감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기절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깨어났을 때는 뒤통수가 너무 아파서 보니, 제가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형제가 저를 부축해 일으켜 준 후에야 문틀이 제 머리에 부딪혀 망가졌고, 제 뒤통수에는 큰 혹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문틀에 먼저 부딪혔지만, 뒤통수가 곧바로 바닥에 부딪혔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해!’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뇌경색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놀라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젊은데 어떻게 뇌경색이 생길 수 있죠? 그건 노인들이 걸리는 병 아닌가요? 잘못된 거 아닌가요?” 의사는 재삼 뇌경색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고, 제게 입원 치료를 잡아주고, 이렇게 젊은데 작은 혈관이 막혔다며 제때 치료하지 않아 주요 혈관까지 막히면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의사의 말은 무거운 돌덩이처럼 제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저는 나이 많은 분들이 뇌경색으로 심한 편마비가 오고 입과 눈이 비뚤어지며 말하는 것과 정신이 불분명해진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나중에 저도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습니까?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하고 억울하면서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동안 내가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친척과 친구들이 나를 비웃고 헐뜯어도 하나님 믿기를 포기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본분을 이행했는데, 하나님은 왜 나를 보호해 주시기는커녕 이런 병에 걸리게 했을까? 만약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본분을 더 잘 이행할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 백 명 가까운 환자 중에서 저는 가장 젊은 사람에 속했습니다. 주변의 환자들도 제가 그 병에 걸렸다고 하자 놀라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인들이 그 병에 걸리면 몰라도, 당신처럼 젊은 사람이 어떻게 뇌경색이 생겼죠?” 그 말을 듣자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 몇몇이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져 산소호흡기를 끼고 의식이 불분명한 모습을 보니, 저도 언젠가 다시 기절해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재수 없는 병이 생긴 걸까?’ 저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한동안 치료를 받은 후 병세는 조절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어떻게 건강 관리를 해야 할까 고민했고, 제가 힘들까 봐 두려워 본분에도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지난 며칠 동안 몸을 돌보느라 본분에 소홀했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조금 자책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뇌경색 진단을 받고, 앞으로 이 병이 재발해 다시 쓰러질까 봐 항상 걱정됩니다. 심하게 넘어져 생명이 위험해지면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본분 이행도 제대로 하지 않고 건강 관리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고, 제가 진리를 구해 제 내적 상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기도를 마친 후 입원하기 전 자매가 제게 보내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모든 사람의 수명은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 이 병이 의학적으로는 죽을병이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네 수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면, 너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이 있고 네 사명이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면, 설령 죽을병에 걸려도 너는 죽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너를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네가 기도하거나 진리를 구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하지도 않고 심지어 치료가 늦어지더라도 죽을 수가 없다. 특히 하나님의 중요한 부탁을 받은 사람이 아직 그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면, 어떤 병에 걸리든 바로 죽지 않으며, 사명을 완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야 한다. 네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 믿음이 없으면 너는 “하나님, 저는 당신께서 맡기신 부탁을 완수해야 합니다.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 여한 없이 당신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지켜 주소서!”라고 입에 발린 말로 기도할 뿐이다. 네가 이렇게 기도해도 자발적으로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충성을 다하려는 의지도 힘도 없는 것이다. 네가 진실로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항상 이런 핑계와 방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흥정한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느냐? 병이 낫는다면 정말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장담할 수 없다. 사실, 네가 병이 나아서 죽지 않으려고 흥정하든, 아니면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어서 흥정하든, 하나님이 보기에 네가 본분을 이행할 수 있고 쓸모가 있으며 하나님이 너를 쓰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 너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사람이 터무니없이 굴고 온갖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될까 봐 걱정된다. 그러면 빨리 죽게 된다.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다. 사람의 수명은 창세전에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았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한다면, 병이 있든 없든, 건강이 좋든 나쁘든, 하나님이 정해 놓은 나이까지 살 수 있다. 네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 네가 도리상으로만 인정한다면 진실한 믿음이 없는 것이니,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네가 마음속 깊이 하나님이 이렇게 할 것임을 확신한다면, 네 행동 방식과 실행 방식이 저절로 바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사람의 생사와 수명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온 사명을 완수하면 그 사람의 수명도 다하게 되고, 그때가 바로 수명이 끝날 때인 것입니다. 반면, 사람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심한 병에 걸렸어도 수명은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언제 죽는지는 어떤 병에 걸렸는지와 관계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결정됩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심각한 병에 걸려 의사에게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지만, 결국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이런 일을 들은 적도 있는데, 한 소년이 감기에 걸렸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사람의 생사는 병의 경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뇌경색 진단을 받고 나서는 걱정과 두려움 속에 살면서 나중에 병세가 심해져 다시 쓰러져 생명의 위협을 받고 구원받을 기회를 잃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시지 않고 이런 병에 걸리게 하셨다고 원망하면서 본분을 적극적으로 이행하지도 않고 오직 건강 관리만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게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며 생사를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더 이상 그렇게 괴롭거나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본분 이행에도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고, 자기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어 무슨 일이든 평안하고 순조롭게 풀리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은혜를 구하고 복을 받으며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가정이나 직장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며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고 인내하면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의 축복과 특별한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하나님에게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고, 모든 일에 길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의 관점이다. 사람은 이 관점이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떠나지 않은 것은 모두 이런 관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이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악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으니 분명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실 거야. 일할 때마다 많이 고생했고 대가도 엄청나게 치른 데다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일하며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셔야 마땅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기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누리도록 말이지.’ 이것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득을 보게 되니 어느 정도 고생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으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하나님과 거래하는 심리이다. 하지만 진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 원칙은 물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는 완전히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자 순전히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관념과 상상이다. 여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거래이든, 요구이든, 아니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든 전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고, 사람을 축복하는 하나님의 원칙과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이런 거래적 사상 관점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인데도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행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즉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오해가 생겨나고 또한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는 하나님에게 이치를 따지는 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기까지 한다. 사람에게 어떤 관념과 오해가 생기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 어떤 일도 사람의 관념이나 뜻대로 하지 않고 그 누구도 사람의 관념이나 뜻대로 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 본질에 따라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원칙대로 대한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의 관념이나 상상, 사람의 기호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 사역에서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하지 않는 점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마련한 어떤 환경이 전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생기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도 모자라 부정하기까지 한다. 이럴 때 하나님이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사람의 관념대로 하나님의 사역 방식이나 뜻을 바꾸지 않는다. 이럴 때 바뀌어야 하는 쪽이 어디냐? 사람이다. 사람이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마련한 환경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진리를 구해 자신의 관념을 해결해야지, 관념으로 하나님의 행사가 옳은지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이 끝까지 관념을 포기하지 않고 고수하면 하나님에게 반발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발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냐? 평소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 진리가 아닌 순전히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을 때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패괴 성품도 전혀 정결케 되지 않고 여전히 패괴 성품에 의지해 산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는 구원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어떤 환경에 처하든 진리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지 여부에 따라 하나님이 배치한 모든 환경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항상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자신이 물질과 금전, 육적인 즐거움의 측면에서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이를 토대로 선택하고,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일을 대한다. 이리저리 궁리하다 결국 한다는 선택은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고 도피하는 것이다. 그렇게 반발하고 거부하며 도피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서 멀어지게 되고 생명 체험을 잃고 손해를 보게 되며,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만 생긴다. 이런 환경에 반항하면 할수록 사람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이런 형국이 되면 하나님에 대해 조금이나마 품었던 믿음은 결국 무너져버리고, 그 순간 사람의 마음에서 우위를 차지한 관념이 몽땅 쏟아져 나온다.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헌신한 나를 하나님이 이렇게 대하실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사람을 사랑하시지 않아! 하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크게 축복해 줄 것이라고 하셨어. 나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단 말이야.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괴로움과 고생을 참고 견뎠는데 하나님은 어째서 크게 축복해 주지 않으시지? 하나님의 축복이 어딨어? 왜 난 느끼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걸까? 왜 하나님은 사람을 편애하는 거야? 어째서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으시는 거지? 다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고 하던데 나는 어째서 못 느끼겠지? 다른 건 몰라도 이번 환경만 봐서는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겠어!’ 사람은 관념이 있어서 자신의 관념에 속아 오도되기 쉽다. 설사 하나님이 사람의 성품 변화와 생명 성장을 위해 사람에게 환경을 마련해 주어도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오해한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고 하나님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기는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작은 환경의 시련 한 번만으로도 이렇게 쉽게 드러나 버린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 한 가지 관념을 가진다고 폭로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며 고난을 감수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지켜 주시며 평안과 기쁨을 얻게 해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관념에 따라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을 때, 사람은 하나님께 논리를 따지며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저는 제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본분 이행에 고통을 감수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시고 제 몸도 점점 건강해지게 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관점의 지배를 받아 그동안 저는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했고, 삼차 신경통으로 머리가 심하게 아프거나 고혈압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구토하며 온몸에 힘이 빠질 때도 한 번도 본분을 지체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늘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고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시고 반드시 나를 지켜 주실 거야. 언젠가는 큰 복도 받을 거야.’ 하지만 이번에 뇌경색 진단을 받고 나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건강한 몸을 갖게 축복해 주시기는커녕 그런 병까지 얻게 하셔서 복은커녕 화만 입었다는 생각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원망으로 가득했고, 하나님께 이렇게 따지기까지 했습니다. ‘저한테 건강한 몸만 있었으면 더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그동안 하나님을 믿었던 것은 하나님과 늘 거래하고 무언가 얻으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병을 치료해 주셨을 때 저는 본분 이행에 의욕을 냈지만, 이번에 하나님께서 저를 만족시켜 주시지 않자 저는 본분 이행의 의욕도 작아졌습니다. 저는 이익만 탐하고 복만 보면 달려들고 복이 없으면 숨어 버리는 비열한 소인이었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헌신은 분명 제 자신과 복을 얻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 본분을 이행한다고 겉만 번지르르하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너무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그 후, 저는 또 사람이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방면의 내적 상태에 대해 해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바로 그가 자기 자신을 전혀 피조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전혀 창조주로 여겨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하나님을 돈줄, 화수분으로 생각했고, 고난에서 구제해 줄 보살로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보살이나 우상을 믿는 신도로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부처를 믿는 것과 같은데, 채식하고 염불하면서 늘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나서 만들어 낸 모든 이야기는 전부 그의 관념과 상상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창조주로부터 비롯된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피조물의 모습은 전혀 없고 창조주에 대해 피조물이 지녀야 할 순종도 전혀 없다. 오로지 끊임없이 얻어 내려 하고 계산하며 무조건 요구하기만 하다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게 된 것이다. 이런 관계는 거래 관계에 속하니 결코 유지될 수 없다.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저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저의 관점과 추구하는 바였습니다. 부처와 관음보살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관음보살과 부처를 돈을 벌게 해주는 돈줄이나 부적처럼 여기며 승진하고 부자가 되거나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절을 하고 향을 피우며 채식하고 불경을 외우면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전부 이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반면 저는 하나님을 믿은 후 줄곧 하나님을 믿고 헌신하고 수고하면 보답을 받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살피고 지켜주시며 무한한 은혜를 주신다고 착각해서 하나님을 부적처럼 여기고, 하나님을 은혜를 베풀고 평안을 주시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뇌경색 진단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시고 지켜주시지 않았다며 하나님께 이유와 조건을 따졌습니다.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전혀 하나님으로도 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저의 관점이 부처와 관음보살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의 말세 주님은 진리를 선포해 심판 사역을 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십니다. 저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부처나 관음보살처럼 대하며, 하나님이 사람의 외적인 공헌과 헌신이 있으면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불신파의 관점이며,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저는 또 성경에 기록된 5천 명이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오른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만 여기며, 떡을 먹고 배부른 사람에 속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것도 하나님에게서 무언가를 얻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고, 이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불신파에 해당합니다. 결국에는 분명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두려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며 하나님을 은혜를 받으려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은 관점은 부처나 관음보살을 믿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당신에게 은혜와 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 관점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회개하고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크게 축복해 줄 것이다.”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가 아니겠느냐? 이 말씀은 100퍼센트 진리이다. 여기에 혈기나 기만은 없다. 거짓말이나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영적인 이론도 아니라 진리이다. 이 진리의 본질은 무엇이냐? 네 헌신이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진심’이란 무엇이냐? 불순한 의도 없이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돈을 위한 것도, 명성을 위한 것도 아니며, 자신의 속셈이나 욕망, 목적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네 헌신은 강요당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부추기거나 달래거나 끌어당겨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기꺼이 하는 것이고, 양심과 이성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심이라고 한다. 헌신에 대한 바람에서 보면 진심이란 이런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헌신의 실제 행동에서 볼 때 진심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바로 거짓과 기만이 없는 것, 요령을 피우거나 건성으로 하지 않는 것,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 등이다. 여기에는 세부적인 부분이 너무나 많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진심 안에 진리 원칙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는 기준이 있고 원칙이 있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심으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크게 축복해 줄 것이다”와 같은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 말씀은 전심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요구하지 않으며, 재난이 닥쳐도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앞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 욥과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줄곧 하나님의 도를 지키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재산과 자녀를 빼앗기고, 자신의 온몸에 독창이 났을 때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 욥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요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평소에 경배하고 제사하는 것을 은혜와 축복을 얻기 위한 자본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진심과 순종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지 버리고 헌신하며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앞으로 축복과 평안,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저의 추구 방법은 욥의 추구 방법과 정반대였습니다. 대가를 치르고 헌신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요구하며 사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믿었고, 병에 걸리면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정말 부끄러웠고, 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피조물인 저는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경배해야 합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저의 책임이자 당연한 일이고,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설령 화나 질병을 얻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해 굳게 서서 증거해야 합니다.

2024년 3월, 저는 뇌경색이 다시 재발했고, 왼손이 저리며 머리가 항상 어지러웠습니다. 저는 다시 넘어질까 봐 걱정했고, 심하게 넘어지면 본분을 이행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추구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주변의 형제들을 보았을 때 모두 저보다 건강해 보여서 마음속으로 무척 부러워했습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건강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가 또 불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복과 은총, 상, 면류관 등,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내려 주고 누구에게 내려 줄지는 하나님이 결정한다. 왜 그런 것이냐? 그건 모두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것이지, 인류와 하나님이 똑같이 나눠 가지는 공동 재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약속한 사람에게 내려 준다. 하나님이 너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더라도 너는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너는 피조물이 아니란 말이냐? 네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냐? 하나님이 여전히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의 신분, 지위, 본질과 사람의 신분, 지위, 본질, 이 둘 사이에는 영원히 등호가 성립될 수 없고, 영원히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고, 사람은 영원히 사람이다. 사람이 이 일을 알 수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다. 그것 말고 선택할 수 있는 제2의 길은 없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때맞춰 저를 일깨워 주었고, 제가 제 신분과 지위를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고, 저에게 어떻게 대하시기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이성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뇌경색이 재발해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기회를 잃을까 봐 저도 다른 형제들처럼 건강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했습니다. 이 또한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하고, 할 수 있는 한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가져야 할 이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뇌경색이 다시 심해진다 해도, 제가 원망하지 않고 제 본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며칠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제 병세가 잘 조절되고 있으니 약만 잘 먹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지난 치료 이후로 벌써 7개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의 긍휼에 감사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질병 하나를 안배한다면 크고 작음을 떠나 그 목적은 네가 질병의 경과, 인간에 대한 질병의 해악, 인간에게 미치는 질병의 여러 불편과 고충 및 감각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질병 속에서 질병을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병 속에서 공과를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드러내는 패괴 성품과 하나님을 대하는 옳지 못한 태도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함으로써 굳게 서서 증거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 너를 구원하고 정결하게 하고자 한다. 너의 무엇을 정결하게 하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여러 사치스러운 욕망과 요구,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여러 계산과 판단 그리고 계획을 정결하게 한다. 하나님은 너 스스로 계획하고 판단하며 하나님에 대해 사치스러운 욕망을 품는 것을 금하고 오직 네가 순종하기를, 순종을 실행하고 체험하면서 질병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하나님이 네게 준 이런 건강상의 조건에 대한 태도, 그리고 네 개인적 소원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이런 것들을 인식하면 너는 하나님이 네게 준 질병이라는 환경이나 신체 조건이 네게 무척 많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네 성품의 변화, 네 구원, 네 생명 진입에 대단히 커다란 도움이 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중에서)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 병이 생긴 데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제가 자신을 인식해 성품에 변화를 이루도록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복받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고, 그 후 몇 년 동안 이런 복받겠다는 속셈에 대해 진정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저의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는 날에도 저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번 병을 통해 제 복을 받으려는 욕심과 하나님에 대한 요구와 관념이 모두 드러났고, 제가 진리를 구해 회개하며 변화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습니다. 마치 아이가 죄를 짓는 길을 걷고 있을 때, 부모가 아이를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려고 일부 엄한 방법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의 출발점은 자녀를 위한 것인데,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고, 부모의 마음도 아프게 합니다. 제가 바로 그런 철없고 분별없는 아이가 아닙니까?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조용히 말씀으로 저를 인도해 주셨고, 제가 부정적이고 반항적인 내적 상태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앞으로 병세가 나아지든 아니면 악화되든, 설령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일이 있더라도 저는 더 이상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이 병을 체험함으로써 제가 복을 받으려는 속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고심에 대해 조금이나마 진실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수확을 얻을 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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